"에에. 그렇게 더듬어보셔도 기계여도 의념으로 돌아가니까 전혀 눈치 못챌 수 있다구요~" "물론 농담이긴 하지만요!" 근데 여선이 하는 걸 보면 농담... 맞..지? 라고 반응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가면이 산산조각난 걸 흥미롭게 바라봤었던 것 같은 여선입니다. 이 즐겁다는 듯한 발랄한 표정! 그 표정으로 홧병이 나게 해서 죽이는 것도 암살자의 롤이 아닐까(?)
"재미있기만 할까요~ 사실은 반쯤 농담인 거일지도 모르죵...?" 후후후.. 언제든 기폭시킬수 있는.. 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물론 진짜 농담입니다.
6층에서 고난을 겪은 끝에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7층으로 향한다. 윤성의 지금 몰골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치료를 한 덕에 그럭저럭 버틸만 하였다. 3층에서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여 끈질기게 싸운 끝에 이겨냈고, 4층에선 바다의 거인을 만나 야만적인 놈에게 별 짓을 다하며 이겨냈다, 그리고 6층에선 함정과 하피가 기다리고 있는 절벽을 의념이 봉인당한체 기어 올라가야했다.
그런 시련들을 겪으며 먼지와 피로 더럽혀진 윤성이었으나, 지금의 기회를 놓치고 싶은건 아니었기에 자신의 육체가 허락하는 한 몸을 움직이기로 하였다. 철거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단을 오른 윤성이 7층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동시에 주변을 휘감은 어둠이 유성을 반기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손진했다.
"최악이네"
7층의 시련이 무엇인지도 확인 안된 지금 무턱대고 들어갈 순 없었지만, 이곳에서 멍하니 서있는 것도 조금 그랬기에 윤성은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씩 전진할 때 마다, 칠흑같은 검은 천에 휘감기면서 숨이 턱 막히는 느낌과 함께, 지금 자신이 어딜 향해 걷고 있는지 착각하게 되는 방향감각의 상실이 뚜렷해졌다. 이런것들은 전부 뇌의 착각이라고들 하지만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윤성 조차도 정말로 착각인가 의심할만큼 선명하게 느껴지는 상실감이 점점 진해졌고. 이내 방향감각이 모조리 사라져 중력이 없는 것 마냥 둥실거리는 감각이 윤성을 사로 잡았다. /1
우주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어떻게 나갈지 고민하며 윤성이 바닥을 가만히 바라보던 중, 필름이 차르륵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낡은 상영기로 필름을 돌리듯 흐릿한 빛과 함께 어떤 풍경이 재생되었다.
"?"
아이들이 뒤엉켜 장난감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쓰레기장을 뒤져 찾은 잡지를 살펴본다 이 모든 것이 1인칭의 시점으로 펼쳐졌기에 무슨 장면인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윤성은 단숨에 그것이 자신의 기억임을 알아차렸다. 싸구려 사탕을 얻기 위해 싸우고 속이고, 정상적인 가정의 아이들에게 주어질 것 같은 환경은 아니었다.
"..."
그리고 그 말대로, 고아였던 윤성이 가장 끔직하게 생각하는 과거들이 계속 재생되고 반복되자, 참지못한 윤성은 방패를 쥐어 그 광경을 향해 집어 던졌다. 상영되는 기억을 향해 집어던져진 방패는 곧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졌고, 기억은 이내 다른 장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떨어진 자들의 추방된 낙원 - 그 게이트의 풍경이 보여진다. 똑똑히 보라는 듯, 멈추지 않고 세세하게 보여주자 윤성은 잠깐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더니, 위에서 올라오는 쓴물을 견디지 못하고 토해냈다 /2
저것을 도저히 지켜보지 못하겠다. 그렇게 생각한 윤성이 눈을 질끈 감고 저 광경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손으로 귀를 틀어막은체 견딘다. 얼마 지나고 윤성이 다시 몸을 일으키자, 상영되던 게이트의 기억은 끝나 넘어간체 새로운 기억이 재생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윤성이 봐왔던 기억이 아니었다.
"..."
윤성의 미래, 앞으로 겪을 일 들. 마음속의 불안으로 남아있지만 꼭꼭 숨겨뒀던 수 많은 실패의 예시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특별반이 끝내 해체되어버린 것, UHN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것, 더이상 최고를 노리지 못하고 꺾여 자신을 배신하는 것. 윤성이 보고 싶어하지 않고 두려워하는 모든 광경들이 동시에 재생되었다.
게이트의 기억을 넘기자 이젠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 허나 윤성이 불안하게 생각하고 머릿속에 떠올렸던 일들이 재생되었고 윤성은 이젠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잠시 서있다가 분노를 담은 눈을 뜬 체, 마구자비로 주먹을 휘둘러 그 광경들을 하나하나 으스러트렸다.
이것이 허세나 다름없고, 발악에 가까운 절규라는 것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윤성이 두려워 하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장 구역질이 치밀어오르지만 벗어날 수 없기에 공포를 앞에 두고 보일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행위를 기계적으로 재생시키는 것이 어린 윤성이 보일 수 있는 대처법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막 헌터로서 나아가는 윤성에겐 이것들은 치명적인 공포였고, 단순히 그것들을 비춰주는 것 만으로도 벌써 어지러웠는지 화낼 힘도 떨어진 윤성은 휘청거리며 그 광경들로 부터 멀어지기 위해 이동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집요하게 윤성을 따라와 실패와 불안을 재생시켰다. 점점 구체적이게 변한 그것들이 보여주는 광경은 점점 자세해졌고 현실성을 품기 시작했다. 바이엘느마에 의해 정신력이 바닥나고 폭주하여 끝내 바이엘느마에 의해 파멸한 자신이 보여졌다. 자신을 잡아먹은 바이엘느마가 흑요석 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윤성을 잡아먹는 광경. 그것을 보던 윤성 자신도 갑옷 안쪽에서 자라나는 가시에 몸이 느리게 관통당하는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
황급히 바이엘느마를 벗기 위해 손을 뻗지만 갑옷을 벗는 부분이 사라진 체, 가시들만 서서히 자라나 윤성을 집어 찔렀다.
"...!"
윤성의 호흡이 불편해지고, 잔뜩 숨을 들이키고 내쉬기를 반복하지만 호전 될 기미가 조금 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과호흡 증세에 폐와 뇌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갑옷의 이음새에서 부터 검은 피가 흘러내렸고, 폐를 찌르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윤성이 주저 앉아 쓰러지자 어둠속에서 부터 기어나온 사슬이 벌레 처럼 움직이며 윤성의 발목을 휘어감았다. /4
인간의 공포를 마주하게 하는 7층 답게 윤성이 두려워하는 것을 간파한 그것들은 윤성의 몸을 끌어당기기 위해 사슬을 팽팽하게 당겼지만, 사슬은 팽팽해질 뿐 윤성이 끌려오는 일은 없었다.
"쿨럭"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해내며 부들거리는 윤성은 바닥을 꽉 움켜잡은체 기어가듯 몸을 버둥거리며 움직였다. 그럴 때 마다 흑요석의 가시들이 몸을 파고들었고, 이음새에서 흘러나오는 혈액의 양도 점점 많아졌다. 고통에 의식이 날아갈 것 같았지만 윤성은 멈추지 않았다.
"..."
저것들 전부 두려워하는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저것들이 두려워서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그는 묵묵히 기어가며 공포들 사이에서 오기를 부렸다.
윤성은 지금껏 저것들이 두려워서 기민하게 움직였다. 눈치를 봤고 위험을 회피했다. 친절한 사람 연기를 하였고, 그것에 속은 사람들로 부터 원하는 것 을 취했다. 윤성의 의념속성인 편취 대로 남을 속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기에 살아남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이었다.
"그러니 괜찮아 나만 똑바로 하면 저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등명탑은 그런 윤성을 향해 조소하듯 새로운 광경을 보여주었다. 별거 없었다. 하지만 윤성에겐 중요했다. 어떤 인물이 윤성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그가 거짓된 인물임을 고발하고 있었다. 그가 과거에 저질렀던 모든 일들을 낱낱이 고하며, 윤성의 가면을 깨트리고, 소리치고 있었다. /5
자신의 무기가 더이상 통하지 않는 순간이 왔을 때, 모두가 윤성의 본성을 알게 되어 그를 손가락질 했을 때, 윤성은 그것을 버틸 수 있는가. 근원에 가까운 질문이자, 윤성의 가장 큰 실패의 광경을 보여주자 윤성은 기어가는 것을 멈추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과 방식에 대해 전부 부정당하는 광경에 손 끝이 덜덜 떨려왔고. 윤성이 그 광경에 손을 뻗는 순간, 철갑으로 이루어진 가면이 윤성의 얼굴을 감싼체 조르며 단단히 결박했다. 동시에 얼굴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윤성은 짐승과도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얼굴의 마스크를 뜯어내고자 긁어댔지만 그럴수록 바이엘느마의 가시가 몸에 더욱 파고들어 눌려졌고, 더욱이 어둠속에서 뻗어진 사슬은 이젠 윤성의 양 손목에 감긴체 끌어당겨졌다.
"...!"
결국 바닥을 기는 것 조차 무리가 되어버린 윤성은 바닥에 검은 피를 뚝뚝 흘리며 끌려가지 않도록 버티는게 고작인 꼴이 되어버렸다. 숨을 들이 내쉴 때 마다 달궈진 가면 덕에 고온의 산소가 폐에 가득 채워지고, 바이엘느마의 흑요석 가시가 윤성의 몸을 푹푹 찌르며 검은 피를 흘러내리게 만든다. 검은 피 들이 주저앉은 윤성의 밑에 웅덩이를 이루자, 피의 웅덩이가 부글거리더니 거기서 부터 빠져나온 손들이 윤성의 몸을 움켜잡았다.
"..."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손들이 윤성을 끌어대는 한 편, 두려운 광경을 보여주던 화면들은 이제 수십, 수백개로 불어나 과거에 윤성에게 속았던 이들, 지금 윤성과 대면하고 있는 이들 전부 한 명씩 화면에 비춰져 윤성에게 손가락질 하며 그의 품성에 대해 비난하고 있었다. /6
사슬과 핏덩이 같은 손에 휘어 감겨 죄인의 자세로 끌어 당겨지던 윤성은 고통을 꾹 견디며 조금씩 입술을 움직였다. 이 모든 그의 공포가 만들어낸 상황에 공포에 질린 듯 입술이 파르르 떨리며, 검은 피를 흘리던 윤성의 몸은 이젠 흑요석 들이 그의 몸을 뚫고 자라났고, 크고 작은 흑요석들이 그의 몸에서 자랄 때 마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쇳소리에 비명이 섞였다.
남을 속인 거짓말의 대가를 받고, 추잡한 과거가 발목을 잡고,미래에 자리잡은 실패가 짖누르는다. 그러나 윤성은 가면 너머에 일렁이는 흐릿한 푸른 눈을 뜬 체, 손가락질 하고 있는 모두를 노려보았다.
스스로 자신을 기사 같이 고결한 인물로 포장한 적 없다. 그럴 자격이 안된다는 것도 알고, 그것을 꿈꾼적도 없다. 기사라는 것은 자기 희생이 주되기에 오히려 미련하다 생각하는 입장이다. 오히려 자신은 괴물에 가까웠다. 그러니 저런 야유 쯤은 웃어 넘겨줄 수 있다.
물론 두려웠다. 미리내의 인물들과 특별반의 인물들이 자신의 실상을 알아채고 손가락질 하는게 두려웠다. 그렇지만 간파된다고 해서 전부 끝나는건 아니다. 그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롭게 전진한다면 분명 더 괜찮은 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 이다.
윤성이 입술을 깨물며 고통어린 비명을 내지르더니 몸을 일으킨다. 몸에 감긴 사슬로 부터 검은 피가 뚝뚝 떨어지지만, 한 발 자국 앞으로 내민다. 철퍽 하고 피웅덩이를 짖밟으며 들리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 윤성을 붙잡고 늘어지던 손들이 같이 짖밟히며 비명을 지른다.
타들어가는 가면을 쓴 체, 웅얼거리듯 말하였고, 고통의 쇳소리가 뒤섞여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윤성의 그런 말을 들은 환상들의 야유는 점점 커졌다. 위로 갈 자격이 없다, 뻔뻔하다, 가증스럽다. 윤성을 힐난하는 모든 소리들, 그것들 전부를 받아들인 윤성은 이젠 검은 피의 웅덩이에서 벗어나 사슬을 끌어당겼다. 사슬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지며, 저 멀리 어둠속에서 부터 질질 끌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철구가 윤성을 따라 조금씩 끌려오기 시작했다.
"!"
팔의 근육이 터질 듯, 흑요석 가시들에 박힌 몸이 비명을 지르고 검은 피가 이음새를 따라 뚝뚝 떨어지지만 신경 쓰지 않고 철구를 끌어당긴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버티던 철구가 윤성에 의해 질질 끌려오고, 몸에 감긴 사슬을 이빨로 깨물며 온 몸의 힘을 끌어 철구를 당긴체, 마스크가 주는 고통에도 익숙해진 윤성은 천천히 한걸음씩 전진했다.
당연히 모두가 그럴 것 이다. 너는 왜 하얀 손수건이 아니냐고 손가락질 할 것 이다. 하지만 더러워질 수 밖에 없는 손수건도 있다. 그런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면 선택지는 2개 밖에 없다. 하얀색으로 남은 상태로 죽거나, 아니면 더럽혀진체 살아남거나 자신은 그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했고, 살아남았으니 위를 바라는 것 뿐이다.
철구를 끌어당기고, 타들어가는 폐와, 흑요석에 관통당한 몸을 이끈다. 윤성이 움직일 때 마다 잘그락 거리며 깨진 흑요석들이 바닥에 떨어졌고, 피를 머금은 흑요석이 깨질 때 마다 검은 핏 자국이 바닥에 남았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