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저것은 무엇일까 6층에서 7층으로 올라오자 마자 윤성은 눈을 뜨며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마주보았다. 어둠속에 그것은 윤성의 존재를 눈치챈 듯 몸을 일으켜 그나마 빛이 보이는 곳으로 다가왔고 그것은 서서히 형태를 완성하며 윤성을 마주보았다.
"허."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보인건 윤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방 측에서 나온 소리였다. 그것은 하윤성을 닮아있었다. 아니 하윤성 본인이라고 하는게 맞았을 것 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는 성인이 된 하윤성이라는 것 이었다. 지금의 하윤성 보다 완성되어 있었고, 연륜이 보였으며,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망가져 있었다. 완성이 되었지만 하윤성이 원하는 방향성은 아니었다. 연륜이 보였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것 처럼 보이진 않았다. 자세히 보면 여유가 아니라 해탈이나 포기에 가까워 보였다.
성인 하윤성이 설명하자 윤성은 드디어 납득한 듯 고갤 끄덕였다. 저것은 탑이 만들어낸 하윤성이 가장 두려워 하는 공포. 즉 실패한 자신이었다. 마음 한켠에 자리잡아 버린, 어중간하게 남아버릴 자신에 대한 두려움 이었고, 머리속으로 항상 생각하는 실패한 미래의 자신이었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이라고 다짐한 과거 밑바닥에서 구르고 있었던 자신의 연장선을 보자 자연스레 기분이 나빠졌고 윤성은 망설이지 않고 다가가 방패를 휘둘렀다.
"아서라 쓰레기로 성장했지만, 지금의 너랑 싸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윤성의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낸 성인 윤성은 한손으로 윤성이 휘두른 방패를 붙잡고, 탁한 시선으로 윤성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굉장히 불쾌하였기에 조금 더 힘을 줘 방패를 짖눌렀지만, 몸이 꺽이는 충격과 더불어 의식이 날아갈 듯한 고통이 윤성을 찾아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탑의 벽에 처박힌 체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폐에 고인 고통을 기침으로 뱉어내며 정신을 차리자, 성인 윤성이 윤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는 지금 니가 모두를 잘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거 아주 큰 착각이야 UHN도 알고, 다른 몇몇 애들도 다 알지만 그냥 넘어가는거야 왜? 니가 큰 사고 칠 감냥이 안되는 놈이라는 걸 알고 있거든." /2
뭐 뒤쳐지면 곤란한 부분이 있지마는 그건 이제 본인 캐릭터에 해당하는 얘기지 우리에게 민폐랄 부분은 많이 없어. 개인 진행 위주거든. 그리고 좀 그런게 많이 부진하다 싶으면 내부에서 성장 보정이나 이벤트를 연결해주는 처리를 해가지고, 사실 꾸준히 참여하면 어지간해선 그런 걱정에 해당 될 정도로 뒤처지진 않아.
자기 혐오에서 비롯된 따끔한 훈수, 물론 윤성은 특별반에 들어가서 배운건 저런 것 뿐인가? 라는 생각만 할 뿐이었지만 성인 윤성의 잔소리는 계속되었다. 듣기 싫었다, 윤성은 성인 윤성을 향해 주먹을 뻗었고, 성인 윤성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주먹을 손으로 움켜잡아 멈춰세웠다. 손으로 감싸 쥐어둔 주먹을 으스러트리듯 강하게 붙잡은 성인 윤성은 그런 윤성의 저항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너는 실패할거야, 내가 그 증거야. 당장 특별반도 실패할 운명이고. 알고 있잖아? 분위기가 이상한거."
성인 윤성이 하는 말은 이성적이었다. 논리적으로 지금의 특별반이 왜 불안한지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그 예시중엔 막 특별반에 들어간 윤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기에 저 말 중에 거짓말이 유무를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UHN이 특별반을 유기하기전에 다른 대형길드의 인맥을 알아보는 것도 좋아, UHN이 아니꼽게 볼 수 있겠지만 어쩌겠어 살아야지 아니면 끝까지 특별반과 뭐 해보고 싶다고 발버둥치다가 내 꼴이 되고 싶은거야?" /3
현실성 충만한 이야기. 하윤성이 좋아하는 대화주제 였다. 그는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당장 미래 없이 허우적 거렸던 과거의 자신과 동떨어져있음을 느꼈고, 그것은 자신이 성장했고 탈출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싸구려 알사탕 하나 먹어보겠다고 뒤엉켜서 싸우지 않아도 되었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울 수 있었으며, 이제는 자신 보다 위에 있는 자 들과 경쟁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을 당장 느끼게 해주는 현실성 충만한 대화를 윤성은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실패자가 하는 이야기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불쾌했다.
윤성이 머릿속으로 떠올렸지만 자신에 대한 확실과 야망으로 닫아두었던 수 많은 불안들이 기분나쁘게 뭉쳐진 것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불안을 사실마냥 짓걸이는게 구역질이났다.
"후."
드디어 조금 지쳤는지 실패자는 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으스러트리듯 움켜잡고 있던 주먹도 놔버렸다. 그렇게 실패자는 쓰러진 윤성과 조금 거리를 떨어트리고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무언가를 잠깐 생각한 듯, 멍하니 시선을 흐트러두다가 문득 생각난건지 운을 띄웠다. /4
"너 알렌을 내심 못이기는건 알고있지? 그 녀석이 너와 다르게 스스로의 인망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것에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있고?"
저건 좀 열받는다.
윤성은 몸을 일으켰다. 몸에 얹어져있던 벽의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먼지가 일어났다. 윤성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상황 가령 전투에 임할 때 말이 많은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진정 헌터라면, 전열이라면 백마디 말보다 하나의 행동이 설득력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성은 자기의 미래라는 실패자를 보며 조소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특별반에 말이 많은 친구들이 제법 있지만 그 영향으로 저렇게 한심해진다고? 코미디네'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을 느꼈다. 그 기회와 재능을 가지고 실패했다고 자신 보다 약한 과거의 자신에게 징징거리기나 하는 한심한 몰골에 분노했고, 그 실패를 겪고 멈춰서서 꺾여버린 미래의 자신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실패자는 과거의 자신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도깨비 불 따위가 연상되는 귀기어린 안광을 번뜩이며 자신을 노려보는 윤성으로부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의 실패는 이유가 있는 실패이다. 실제로 그것을 과거의 철부지가 겪는다면 당연히 자신처럼 될 수 밖에 없을 것 이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실패자는 손에 쥔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고 강하게 짖밟았다.
"계속하게? 죽인다 진짜?"
분명 뒤에 말을 더 이어가려 했음에도 실패자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였다. 돌진한 윤성은 실패자의 몸을 향해 방패를 앞세워 부딫혔고, 두 사람이 뒤엉켜 쓰러지자 먼저 위를 잡은 윤성을 실패자를 향해 방패를 연신 내려찍었다.
분명 실패 할 수 있다. 당장 내일 자신에게 실망할 수 있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고, 실패를 교훈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실패라고 불리지 못한다.
그렇게 항상 생각해왔기에 자신은 이곳에 있다. UHN의 눈에 띄어 특별반에 들어왔고, 등명탑을 올랐으며. 이게 끝이 아니라 계속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갈 것 이다.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그 순간까지, 자신의 공허함이 채워지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그 순간까지. /6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기에 억지를 부리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윤성도 알고있다. 실패자가 윤성의 마음 속에 있는 가장 큰 공포라는 것 역시도 알고있다. 살면서 한번은 마주할 재기할 수 없을 실패에 대한 공포, 그것으로 인해 과거와 같이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하루하루 느긋하게 죽어가는 상황에 놓여지는 공포. 이 모든 것들이 윤성은 두려웠다.
하지만 그게 무섭다고 당장 무기력하게 놔버릴 순 없었다. 그렇기에 억지를 부리듯 실패자를 공격하고 소리쳤다.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감정을 속이기 위해 그것을 분노로 덮으며 힘껏 내려찍었다.
"어이가없네"
실패자는 윤성의 방패를 팔로 막아내며, 윤성의 억지를 받아내다가 고갤 틀어 방패를 회피하였고, 방패가 바닥에 찍히자 윤성의 갑옷을 끌어당겨 바닥에 꽂힌 방패의 모서리에 이마를 박게 만든 뒤 빠져나왔다.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도 자신을 노려보는 윤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보를 취득하여 싸우는 이라 하면 자신을 마주했을 때, 왜 실패했는지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을지 자세하게 물어보며 대책을 세울거라 생각했다. 설마 당장 기분 나쁘다고 달려들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며, 더욱이 격의 차이를 알려주었는데도 싸움에 임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7
"어리니까 그런거냐? 레벨의 차이를 보고 다른 대책을 떠올리는 건? 그건 시도조차 안해?"
실패자의 말에도 윤성은 손을 뻗어 실패자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아직 더 싸울 수 있었고 극복해낼 수 있었다. 실패하는 미래를 납득하듯 항복하거나, 돌아가는건 그의 마음이 용납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배신이라고 여겼다.
"그만"
결국 그런 행동조차 객기라고 여긴 실패자는 윤성을 걷어차 날리며 혀를 찼다.
인간은 모두 실패를 겪는다. 자신의 이상대로 나아가는 인간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실패를 받아들이고 현실에 숙일 줄 알아야한다. 그것을 교훈으로 삼는다? 그리고 다시 나아간다?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은 실패를 겪어본적이 없거나 타인에 의해 운 좋게 빠져나와서 그딴 말을 할 수 있는 것 이다. 정확히 지금의 윤성과 상반되는 생각을 가지게 된 실패자 였기에, 윤성이 타협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그 실패를 알려주고자 하였다. /8
흙먼지가 자욱하게 날리는 곳을 바라보며, 흙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순간 먼지를 뚫고 튀어나온 윤성이 실패자를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벤데타!"
자신이 받은 피해를 저장해 되돌려주는 일격의 기술 희열의 벤데타를 사용한 윤성이 흙먼지가 최대한 피어오르는 때를 기다리다가 내지른 일격. 그것을 허용한 실패자가 처음으로 데미지를 입어 바닥을 구른다. 레벨의 차이가 있기에 치명상 까진 닿지 못했지만 제법 고통스러운 듯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실패자를 향해 달려든 윤성은 흐려져가는 의식을 부여잡고 쓰러진 실패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앞으로 겪을 실패가 두렵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실패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윤성이 두려워 하는 것은 너무나 많았다. 당장 미래에 겪을 실패가 그러했고 그 실패로 얻을 주변의 시선 변화도 두려웠으며, 당장 자신의 연기가 들켜서 더 이상 사람들을 기만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다. 자신이 갈고 닦은 이빨들이 무뎌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당연히 두려워 해야하는 것 이었다. 당장 중요한 것은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다. 하윤성 자신은 아직 16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두려워하는게 당연했다. /9
그리고 그런 윤성의 저항을 바라본 실패자는 윤성의 눈에 서린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욕망을 발견하곤 묵묵히 주먹을 받아냈다. 더 이상 자신이 잔소리해도 들어먹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실패를 대비하고 기민하게 움직여라, 다른 이들을 기만하기 전에 상대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여라 따위의 훈수는 애초에 실패한 자신이 해선 안되는 것 이었다.
끝내 가드를 내린 실패자는 자신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내려찍는 윤성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조용히 읊조리듯 말을 전했다.
"그래 니 멋대로 해라"
!
힘껏 내려찍은 윤성의 주먹이 바닥에 내려꽂힌다. 언제부턴가 주변을 감싸고 있던 어둠이 서서히 옅어진다. 방금까지 그 자리에 있던 실패한 하윤성의 모습도 어둠도 남지 않고 사라지자. 윤성은 입에 고여있던 피를 바닥에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위에 친구들이 설명을 좀 잘못해줬는데. 레스주의 현실적인 요소나 메타적인 시선을 노골적으로 접목시키면 안 돼. 진행 내에서의 합리성을 아주 중요하게 여김. 가끔 안중요한 상황에서 농담삼아 넣거나 캡틴의 메타적 힌트를 다소 자연스레 반영하는 정도는 괜찮지만 진지한 장면에서 캐릭터 외적인 시선을 가져오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