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임시 거처는 땅에 판 곰굴 꼴이나마 마련을 해두었고, 씻거나 마실 맑은 개울가가 있었으며, 덫 사냥이며 채집 활동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번 세계에서도 식용 가능한 최소한의 식량들을 마련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괄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오죽하면, 페일은 문득 자신이 '원래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 그렇게 멀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판단할 정도였다. 페일이 살던 세계는 이미 여러 세계가 뒤섞여있던 세계였고, 그 중 자신이 살던 세계와 이 세계의 시대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하루하루 멸망을 향해 황폐화되어가던 자신의 세계보다 훨씬 싱그럽고 풍성하게 살아 숨쉬는 이 세계에, 페일은 잠깐 횃불 기사들의 과업이 완료된 것이 아닌가 하고 가당찮은 어림짐작마저 해볼 정도였다.
하지만 횃불은 여전히 싸늘히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이 머금고 있는 희망이라는 그 개념을 조롱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 세계에서도, 여전히 그 원인이 불명한, 그러나 그 현상이 분명한 변칙은 일어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주민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한 채로 「숲 속의 죽음의 기사」 괴담 취급을 당해가며 이 세계에 대해 독자적으로 조사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지였다. 그러나 페일이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민가에 가까이 다가와 조사를 해보고자 한 계기가 있었다. 영과 윈터, 그리고 아아루와의- 추락자들과의 연속된 만남.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던 동질감. 횃불을 짊어진 불사자들 사이에서나 서로간에 느낄 만한 동질감, 그러나 그것과는 그 종류가 다른 동질감.
그것이 페일이 갑옷을 거두고 평복을 입은 채로 최대한 조심스레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접근한 이유였다. 자신의 평상복이 이 세계의 시대상과 그렇게 다르지 않으니 어쩌면 갑옷을 거두면 이들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영과 윈터와의 조우에서 느낀 것처럼, 녹록지 않다.
폐쇄적인 중세 마을 특유의 낯선 외지인에 대한 경각심에 더불어, 추락자들을 향한 그 원인을 모를 증오. 그것은 아무리 페일이 그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머리를 다른 사람들의 어깨 위에 두고 있는, 크다 못해 거대한 신장 때문에 은신하기도 글러먹은 것은 덤이고. 아무리 이모양 이 꼴로 전락했어도 그는 기사였지 도적은 아니었기에. 결국 페일도 거의 비슷한 신세가 되어, 자신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페일은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벗어나는 중이었다.
그런 그 순간 마주친 것이 아델라이데였다.
처음 그 까만 눈을 마주친 순간, 페일의 시선은 가장 먼저 피가 흐르고 있는 아델라이데의 이마로 튀었다. 그리고 다음 아델라이데의 눈으로 향했다. 이 자도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다. 아델라이데와 마찬가지로 페일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페일이오. 제대로 통성명을 하기에는 자리가 좋지 않군."
지금까지 마주친 '기이한 동질감'을 느낀 이들 중 눈높이가 가장 가깝다- 그리 생각하며, 페일은 마을의 외곽으로 향하는 길로 아델라이데를 눈짓했다. 여기에서 더 이러고 있다간 저 자들이 종교사냥을 하러 나서는 미치광이 무지렁이들마냥 쇠스랑이며 괭이들을 치켜들고 떼지어 몰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다.
─아델라이데가 그를 기사라고 판단한 이유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평생을 무예를 갈고닦으며 함께 단련해왔음이 자명한, 옷가지 따위로는 숨길 수 없는 우락부락한 근육질 체격과 더불어서 페일이 서있는 자세가 무예에 능통한 이의 균형잡힌 자세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델라이데가 페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면 또 다른 바를 느꼈을 것이다. 그가 살아온 세상은 아델라이데가 살아온 것처럼 낭만이 충만한 세계는 결코 아닐 것이라고. 그의 눈빛이며 태도는 궁중 예법을 갖춰 여유롭게 깍듯한 강대국의 준귀족의 그것이 아니라, 수많은 전장을 헤쳐나온 베테랑의 그것에 훨씬 가까웠으니.
" 윈터, 나는 본래 연구자였어요. 긁힌 상처와 아닌 상처 정도는 쉽게 구별할 수 있어요. "
하지만 이 이상 권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 잡힌 손이 살짝 아팠던 것도 있고 이렇게까지 거부하는 이상 정말 괜찮을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녀도 일반적인 수인과는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다 윈터의 말이 들려와 나는 작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 위협이 되면 제거하는 것뿐이에요. 최대한 피하려하지만 필요할땐 주저 없어야하니까요. "
주저하다가 죽어간 주시자들도 몇몇 보았다. 죽어간 이들은 곧장 되살아나긴 했지만 '그들'에게 흥미를 주지 못한 몇몇의 주시자들은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도 흔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나 위협은 존재했고 그때마다 망설임 없이 제거해야 뒤탈이 없었다. 지금도 그 일의 연장선일뿐.
" 그들이 날 따라왔다가 당신에게 해를 입히면 어떡해요. 그럴 일은 절대 있으면 안되니까. "
그렇게 말하고선 주저 앉아버렸다. 사실 중간에 그렇게 거친 싸움을 하고 여관까지 갔다가 여기까지 온 것도 나로써는 엄청 선방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윈터의 부축을 받아서 나무 줄기에 기대 앉을 수 있었고 옆에 같이 앉은 윈터의 얼궁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기에 나는 말했다.
" 알레프는 도시 바깥의 숲에 숨겨놨어요. 그곳이라면 주민들도 찾기 힘들테니까. "
여관 밖에서 떨고 있던 소녀는 자신이 곧장 챙겨서 도망 나왔다. 같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거기에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나에겐 불가능했다. 윈터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윈터를-.
"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여기에 온 것처럼 어느샌가 다른 세계로 가버릴 수도 있는거 아닌가하고. "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이다. 영원히 여기에 갇혀서 이런 범죄자 취급이나 받아야할 수도 있다.
" 그때도 같이 있어 .. 아니, 같이 있고싶어요. 같은 세계로 가게 된다면. "
둘이 아예 다른 세계로 가버릴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그녀와 내가 온 세계가 다르니까 마찬가지로 흩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도시는 평화롭고 같은 방을 사용하던 영은 어디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항상 걸치고 다니는 외투를 챙겨입은채 거울을 바라본다. 졸음이 가득한 얼굴이라 나는 볼을 두어번 때려서 정신을 차린 뒤에 방을 나섰다. 아침이라 그런지 여관은 어젯밤보다야 한산했다.
" 좋은 아침이에요, 마시. "
여관에서 머무는 대신 나는 마시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요리를 할 줄 아니까 재료 손질을 도와준다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일이었다. 어젯밤에도 꽤나 바빠서 나는 다 떨어질 것 같은 재료들을 손질하고 식기들을 설거지 하는 등의 주방 잡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몸이 꽤나 뻐근했는데, 간만에 빡세게 운동했다고 생각하며 나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 어제 다치셨던 분이네요. 몸은 좀 괜찮으신가요? "
그렇게 내려가자 보랏빛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남자 하나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어제 영의 손에 이끌려온 남자였는데 부상이 꽤나 심각해보였다. 내가 치료마법을 사용할줄 아는걸 어떻게 알았는지 기가 막히게 데려온 영의 눈 앞에서 나는 그를 치료해주고선 다시금 일을 하러 갔었다. 이렇게 멀쩡히 앉아있는 것을 보면 치료가 효과가 있었나보다.
" 제 치료마법은 완벽한게 아니라서 쉬어줘야 상처도 완벽하게 낫는답니다. 아, 어제 마시에게 말해둔게 있는데 잠시만요. "
나는 그를 치료해주고서 마시에게 말해둔게 있던걸 기억해냈다. 그대로 마시에게 향한 나는 어제 만들어둔걸 달라고했고 마시는 이미 데워놨다며 접시에 담아 죽 같은 것을 전달해주었다. 나는 테이블로 돌아와 그 남자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 속에 부담을 안주면서 열량은 높은 음식이에요. 맛은 ... 그렇게 자극적이진 않겠지만 당신은 환자니까 이걸 드세요. "
그는 맹렬한 기척을 느낌에, 질끈 감고 뜨지 않았던 탁한 눈을 잠시 천천히 떴다. 그리고는 어둠 뿐인 세계를 바라보다, 다시금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렇습니다. 이해 해주셔서 기쁠 따름입니다."
사내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란을 피우는 것은 좋지 않았다. 지금 같은 때에 이곳에서 돌을 맞았노라고 분개하며 난리를 피운다면, 내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닐 터이다. 확실한 일이었다.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있다. 소녀의 모습으로 신이라고 자칭하는, 알레프 양은 분명히 떨고 있었다. 윈터 양 역시 힘의 폭주를 이야기하곤 했었다. 칼 녀석도 활동하기 쉽지 않아지리라. 첫 만남 때부터 경비병과 좋지 않게 엮였으니, 분명 주시하고 있으리라. 미하엘 양과 영 님, 코우 양은 괜찮겠다만... 아아, 코우 양은 어쩌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베어도 되는 사람이 늘어날테니. 영 님께서는 조금 곤란해 하시겠지. 절대적인 아가페를 갖추고 계신다고 할 지언정 공격받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이리라. 그렇게 얽혀버린 이들이 있다.
그것들을 모두 내버려두고 이곳에서 고작 돌을 맞은 일로 날뛰기엔, 너무도 어리석은 일임이 명백했다.
그는 기척을 느낀다. 느릿하게 뛰는 심음. 지팡이로 바닥을 탁, 하고 치며 사내의 형태를 들어본다. 말소리로 보아헌데 키는 2미터가 넘는가. 나보다 큰 이는 오랜만이군. 북부 출신의 기사일까. 균형잡힌 자세. 쉬이 쓰러뜨리지 못할 상대임이 분명했다. 되돌아오는 파장이 거칠다. 숨길 수 없는, 단단한 근육이 자리잡고 있으리라. 그는 제 앞의 사내의 형태를 어림짐작하면서 차분히 미소지었다. 말투로 보아헌데 평범한 이가 아니다.
무엇보다, 나와 같은 이들에게서 나는 숨길 수 없는 피냄새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럴까요. 앞장 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터라, 하하."
짧은 농담을 건네듯, 옅은 웃음으로 적의가 없음을 알리며 사내는 천천히 그의 발걸음 소리를 따라 걸었다.
...
어느정도 마을을 빠져나오자 사내는 짧게 숨을 뱉으면서, 피로 젖어 무거워진 행커치프를 꾹, 하고 주먹 그러쥐어 피 짜내고서는, 돈을 담는, 비어버린 주머니에 넣고서는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를 빨아야겠군. 그리 생각하면서 사내는 입을 열었다.
"실례, 아까는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이해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시 한번 제대로 소개하죠. 아델라이데라고 합니다. 편하게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페일 경."
사내는 오른손을 가슴께에 대고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천천히 머리들었다. 싸우지도 않았으메, 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에 대한 예의였다. 북부 출신의 기사이리라. 사내는 그리 어림짐작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부러 어투까지 바꾸었는데도, 쉽게 눈치채는구나 싶다. 아니지, 애초에 장난스러워서 알아차린 걸지도 모르겠고. 미하엘은 웃는 당신을 보며 따라 웃어보인다. 비록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 이미 습관처럼 굳어진 행동이 바뀔 리는 없었다.
“으응~?”
잠시 고민하는 아델라이데를 보며 미하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생각을 끝낸 아델라이데의 말에 그렇구나, 하고 받아친 미하엘이다. 비오는 날의 개울가라. 식량을 잡으려는 건 아닐 테고, 빨래하거나 씻는 것 정도려나. 어쩌면 개울이 넘치지 않는지 살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럴 필요 없는데도.
개울이야 넘치건 말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미 이 도시의 사람들은 추락자들을 배척하고 있는데. 그게 넘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생기지 않든, 그들은 추락자 탓을 할 텐데 말이다. 뭐, 아무래도 상관 없나. 미하엘은 이어진 네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나? 감시 중이지.”
아무렇지 않게 감시한다고 말하며 미하엘은 네가 펼친 손을 보았다. 잠깐 정도는 괜찮으려나. 여관과 저 멀리 짐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보던 미하엘이 고심했다. 잠깐 없는 사이이 무슨 일이 터지겠냐마는, 또 생각하면 터질 수도 있는 게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서 참 오묘하다.
그 고민을 깨뜨린 건 네 말이었다. 제 쪽으로 와주겠냐는 말에 미하엘은 별 생각도, 망설임도 없이 지붕 위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빗물 흐르는 방수천이 한 번 풀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다행히도 바닥으로 내려온 미하엘이 중심을 잃고 땅을 뒹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이내 네게 가까이 다가온 미하엘이 빙긋 웃는 얼굴로 묻는다.
사내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감시라고 한다면 어떤 감시를 한단 말인가. 비 오는 날, 이 늦은 밤에 감시라. 거나하게 취한 사내의 얼굴에서 미소가 천천히 사라진다. 진중한, 평소대로의 얼굴이 되었다. 사내는 젖은 머리칼을 천천히 뒤로 넘겼고, 곧이어 뛰어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비를 뒤집어 쓰고 있나. 펄럭 거리는 소리. 다시 빗방울 쏟아지는 소리.
"언제나 미하엘 양과 만나면 질문만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럽군요. 헌데, 언제나 미하엘 양은 그런 분이시지요."
"눈 앞에 있어도, 눈 앞에 없는 것 같은 사람."
사내는 그리 말하며, 감았던 눈을 떠 탁한 눈으로 미하엘 쪽을 바라본다. 의문스러운 사람이다, 당신은. 허나 그걸로 좋았다. 물어보면 대답해주니까.
"무엇을 감시하고 계셨습니까?"
"그리고... 왜 신이나 불사자, 마족같은 존재들이 추락자 속에 섞여 있다는 것을 말씀주시지 않았습니까?"
>>821 그건... 순전히 제가 지금까지 미뤄 왔기 때문에,,,,🙄 쓰으읍 요즘 글럼프가 왔는지 며칠 전만큼 뚝딱 써지지가 않네요... 미션 같이 하자고 해놓고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절대 두 분 글이 잇기 힘들어서가 아니고!!!!!! 집중력과 필력이 떨어진 상태라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그랜절)
북부- 그의 세계에서 지역에 방위의 이름을 붙여 가리키는 것은 이미 매우 오래된 일이라 북부 출신이냐고 물으면 그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는 아델라이드의 세계와 비슷한 시대선상에 있는 세계들 중 가장 잘못된 축에 드는 세계에서 왔으니. 이 사실을 아델라이드가 알게 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아델라이드에게 해줘도 괜찮겠다고 판단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이들은 이들 스스로를- 나를 포함해서 그렇게 부르는가. 그 소년도, 그 아이도, 그 여자도. 생각은 여기까지 하고, 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페일은 아델라이드의 시력이 온전치 않음을 발견했다.
"그렇군."
그에 대한 감상은 거기서 끝났다. 시력에 문제가 있거나 시력을 상실한 동료도 여럿 봐왔기에, 이게 그에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걸음을 조금 서둘러야 할 텐데 괜찮소?" 이런 이들을 많이 대해보기라도 한 것처럼, 페일은 부츠 소리를 분명히 내며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그들이 마을을 빠져나가는 동안, 또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혹은 또다른 문제가 더 생기기 전에 그들은 마을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마을 어귀가 내어다보이는 숲의 수목경계선에 서서, 페일은 주변이 괜찮은지 누군가 쫓아오는 이는 없는지 한 번 둘러보고는 "여기 앉는 게 좋겠소." 하고 잘려나간 나무등치를 툭툭 두드려 소리를 내어보였다. 그리고 자신은 허리를 피고 나무에 기대어섰다. 그리고 제대로 된 자기소개를 내어놓았다.
"그리프홀드의 횃불잡이 기사 페일이오."
들어본 적 없는 지명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통성명을 하자마자 질문부터 하는 무례에 양해를 청하오. 그 흉흉함 말인데."
분위기가 흉흉해졌더군요, 하는 말에 페일은 우선 인사치레를 내어놓았다. 사교성을 10점으로 치면 2점 위로 절대 올라가지 않을 양반이 바로 이 보복의 기사였으나, 그나마 0점이 아닌 것은 이런 예의치레 정도를 할 사회성은 남겨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인사치레 뒤에 바로 꺼낸 질문은 그것이었다.
"우선 두 가지 묻고 싶소- 아델라이드 경. 나를 추락자라고 불렀는데, 이 땅의 주민들이 추락자라 일컬어지는 이들을 비정상적으로 적대시하고 있는 듯한데 여기에 대해서 어떤 아는 바 있으시오?"
>>822 (스담스담스담스담)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들이 글로 나오는 어딘가에서 교통체증이 오는 그 기분 그거 잘 알지 천천히 쓰는 것이다 내가 뭔가 도와줄 게 있다거나, 혹시 페일이 이런이런 행동을 하는 장면을 추가해줄 수 있냐거나 하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달라구
짧은 감상이었다. 부러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사내와 자신은 닮아있었다. 특유의 무뚝뚝함도. 지워지지 않는 피비린내도.
"괜찮습니다."
사내 역시 짧게 대답하고는, "보이는 것 보다 더 잘 볼 수 있으니." 그리 덧붙이며 싱긋 미소지었다. 사내는 지팡이를 분명히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분명하게 내어지는 부츠 소리. 자그마한 배려에는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표하고. 얼마쯤 걸었을까. 사내는 문득 멈추어섰다. 그리고는 여기 앉는게 좋겠다는 말에, 사내가 소리 낸 나무등치에 천천히 앉았다.
하아.
짧게 숨을 뱉었다. 온전치 않은 몸으로 피를 흘렸더니 조금 어지러웠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 말하면서 사내는 다시금 싱긋 웃어보였고.
"그리프홀드라."
들어본 적 없는 지명. 허나 분명한건, 자신의 생각대로, 그는 기사라는 것. 많은 전장을 겪은 베테랑인가. 그리 짐작하면서 사내는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방랑자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자신 역시 한 왕국의 기사단장이었노라고. 아델라이데 세인트 바울이라고. 그리 말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있어, 그것은 숨겨야 할 부끄러운 과거에 불과했으니. 자신의 실수로 왕국이 멸망했다. 제 분수를 모르고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뛰어 신에게 해를 입혔다. 죄 많은 인생이로다. 그리 생각하던 차에, 이어지는 질문.
"경이라는 딱딱한 호칭으로 불러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페일 경. 저는 단순한 방랑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사내는 짧게 숨을 뱉고.
"첫번째로, 아는 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째서 추락했는지. 왜 적대받고 있는지. 아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미하엘 양은 알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얼굴을 사내 쪽으로 향한다. 그리고 오른쪽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긴다. 몸에 밴 예법이었다.
"저와 페일 경을 포함해서 아홉.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최 들었던 것만 해도 여섯이었으나, 이렇게 새로이 추락자 분들을 뵙곤 하니."
"제가 만나지 못한 추락자가 있을 수도 있지요. 혹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이 발을 딛는 추락자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아델라이데라 이 사람도 성이 없이 이름만 있는것 같았다. 그런데 눈이 보이지 않는다니 행동하는건 눈이 보이는 것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 같은데. 근데 지금까지 보아온 눈이 안보이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물체를 인지하는 것 같았다. 이 사람도 그런 무언가가 있는 것이겠지.
" 어떤 분이라기엔 저는 엘프라는 것밖엔 없습니다. "
딱히 내세울건 없고 주시자라는걸 얘기해도 대부분이 그것이 뭔지 모르니까 설명하는데에 시간을 쏟게 된다. 한두번 그랬더니 더이상 그러고 싶진 않아서 엘프라는 것 정도만 간단하게 소개했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인간인걸까, 딱히 특징이 보이지 않으면 대부분은 인간이었으니까 말이다.
" 앞이 보이지 않으시는데도 잘 인지하시는군요. "
청각이나 그런 것이 발달했다고 해도 사람이 어디있는지 확실하게 바라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랬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자신은 본래 연구자였다고. 긁힌 것과 아닌 것쯤은 구분할 수 있다고. 위협이 되면 제거할 뿐이라고. 때로는 주저가 없어야 한다고. 혹여 당신이 해를 입으면 어떡하냐고. 그런 일은 절대 있으면 안 된다고. 부축하고 있는 엘프를 나무줄기에 앉힐 때까지, 윈터는 한마디 말이 없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 저를 먼저 생각하고 걱정하고 챙겨주었던 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순간이나마 그를 의심했던 자신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알레프를 어딘가에 숨겨놓았다 말한 라크는, 분명히 함께 있었을 아이를 어째서 혼자 내버려두었냐고 추궁하지 않았다. 윈터는 등을 기대이고 있는 줄기에 제 뒤통수를 쿵 소리가 나게 찧었다. 제가 무책임하게 도시를 방황하는 사이, 그 혼자 소녀를 책임지고 있었단 말이다.
"알레프라고 하는구나. 꽤나 어려 보이던데, 혼자 둬도 괜찮겠어?"
딱히 소녀가 걱정되어 한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말해야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이다. 어느샌가 고개를 돌린 윈터는 한동안 라크와 눈을 맞추었다. 주홍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담담한 목소리가 흘렀다.
"네가 그러고 싶으면, 같이 있어줄게." "함께 있으면 같은 곳으로 갈 수 있겠지."
다시 정면을 바라본 윈터는, 아까와 같은 자세로 나무에 머리를 기대인 채 하늘을 올려보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있지. 나, 처음 여기 떨어졌을 때는 계속 여기에서 살고 싶었다? 새파란 하늘, 흰 뭉게구름. 따듯한 햇살, 울창한 숲. 사슴과 토끼, 그리고 새들까지. 전부 내가 살던 곳에는 없는 것들이거든. 그렇게 도착한 이곳에서 너를 만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죽고 죽이는 게 너무 지긋지긋해서. 이곳이 너무 평화로워서. 이대로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네."
사내는 싱긋 웃었다. 엘프라. "마지막으로 엘프 분을 뵈었던 때가.. 십년도 전이니까요. 정말 그립군요." 그리 말하면서 사내는 추억에 젖듯, 짧게 숨을 뱉었다. 엘프, 고명한 숲의 현자들. 하이 엘프는 영생을 산다고 들었다. 내 곁에 있던 이들중 몇몇은 하프엘프였으나, 그들은 크게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엘프를 만난것은 십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그 역시도 하이 엘프 급은 아니었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 숲의 지식부터, 살아가는 방식중 일부분까지. 그립던 추억이구나.
"헌데, 노던 엘프라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내는 흥미로운듯, 여전히 미소 싱그럽게 띄우면서 말을 물었다. 그러다 이어지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는 것 보다 더 잘 볼수 있습니다. 귀가 좋아서요. 두근거리는 심음, 테이블에 놓여지는 소리, 발 소리, 말 소리..."
"제 세계는 빛과 어둠 뿐이지만, 소리와 향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