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저러니 할 수 밖에 없다면, 불만을 가지는 것 보단 노력하는게 낫다. 물론 그것 또한 말에 비해 실제론 하기 어려운 선택지다만.
"협력 후보는 UGN, 바티칸, 기사단....뭐 그 정도였던 것 같은데. UGN은 특별 의뢰를 수행하면서 나를 포함해서 어느정도 연줄이 생긴 녀석들이 있을테고. 바티칸은 최근 그 쪽 테러를 막은 녀석들이, 기사단은....내가 얘기를 해봐.....야겠지. 그와 별개로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고수준의 몬스터 러쉬가 발생할거야. 손이 남는 인원들은 거길 막으러 가야할테고."
일단 상황 파악이 빠른 것에 비해서 현 정세를 그다지 자세히 듣진 못한 것 같아, 나는 본격적으로 자세히 정황들을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그것 참 정말로 다행이군. 그 자현이가 나가버린지도 꽤 됐거든. 네가 단독 탑이다. 나도 일단 180 정도는 있다마는.....짐작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은 정치에는 소질이 없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힘 내. 하고 어깨를 두드리면서
"반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다고 들었으니. 토고 쇼코, 주강산. 이 둘을 찾아가봐. 전자는 남은 아이들 중 언변이 화려하고 이런 정치쪽에서의 행동력이나 고려가 가능한 거의 유일한 멤버고. 뒤는 명가 소속으로 나름대로 입지가 있는 아이인데, 성품이 순하고 착한데다 반의 존속을 강하게 희망하기에 협력 해줄거다."
조금 생각하다가 그의 두통을 줄여줄 수 있을만한 특별반의 협력자(같이 고생할 사람)들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흠. 별 볼일 없다고 말하기엔, 서로 수준이 너무 높지 않나?"
그렇게 웃으면서, 나도 제대로 소개해주기로 했다.
"특별반 소속 헌터. 카하노 기사단 소속의 백색의 기사 윤 재클린 시윤. 저격수이고....1세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다."
>>504 >>507 시윤이가 초기에는 전생(1세대 각성자 군인)의 인격과 기억 쪽에 치우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 꼰대같은...그런 캐릭터성이 있었죠. 현생의 자신을 받아들인 이후부턴 좀 중화되었나 했더니 약간 오랜만에 그때의 시윤이가 나온 느낌이네요.🤭 (팝그작)
"뭔가 열심히 고민하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공격력은 감소해서. 어디까지나 진영 붕괴 정도야. 현재로써는."
나는 턱을 괴면서 마저 설명해준다.
"단일 화력이라면 【역성혁명】이나 【의념발화】 쪽이 더 강해. 전제 조건을 무시한다면 의념기인 【찰나의 생명】이 압도적이고."
왜 이런 설명을 해주냐면, 의념탄을 유심스럽게 바라보는 그 눈길이 마치 가상의 적을 두고 싸움법을 그리는듯한 미묘한 적대감 아닌 적대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물론. 실제로 시비를 거는게 아니고서야. 자신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를 고려하는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런건 나라도 종종 한다.
"이명은.....【백색의 기사】."
▶ 백색의 기사 ◀ 오랜 기간동안 흑기사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오랜 시간동안 유럽을 떠돌며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위대한 혈투를 통해 위대한 거악 중 하나인 흑기사를 마침내 토벌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수많은 기사들은 당신의 그런 업적을 칭송하고, 감히 당신을 그렇게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흑기사를 부순, 섬광과도 같은 일격. 그 일격을 따서. 백색의 기사라고 말입니다. ▶ 이명 ▶ 명성이 50 증가합니다. ▶ 기사와의 만남에서 호감도 보정. ▶ 유럽 지역에서 명성 보정
".....유명한 네임드인 흑기사를.....토벌한 것으로 알려져서 받은 이명이지. 자세한 내막은 다소 복잡하지만, 그건 지금 설명할 부분은 아닌 것 같군. 뭐.....뭔가 강해지는 효과는 없어. 이 쪽은. 유명해졌다던데, 실감은 잘 안 나."
허허, 하고 한번 되뇌인 다음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나, 감히 우리가 UGN과의 협력 관계에서 주도라.
"자칫 정치관계나 '이후의 일'을 고려하다가, 강림한 신에게 전멸 당하고 대재앙이 펼쳐졌습니다. 라면 웃을 수도 없어."
결국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선택은, 마찬가지로 여력이 있을 때에나 가능한 것이다. 당장 우리의 전망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등바등 했을 때 승산이 있을까 어쩔까 아닐까... 사실 '여태 그런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된거 아니냐' 라고 말하면, 또 그건 할 말은 없지만 서도. 성정상 결국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의 난관에 모든걸 끌어쓰기 급급해질 수 밖에 없긴 한 것이다.
"....아까 말한 '명령 불복종'을 한게 반장인 김태식이고, 자현이는 그 사건으로 인해 반장과의 불화로 나갔다고 들었어. 정치감각은 정말 궤멸적이지만....반대로 차라리 궤멸적이라서 나았을지도 모르지. 어설프게 잔꾀를 쓰는 녀석이 있었다면, '바보의 무해함'은 주장할 수 없지 않았을까."
그 부분에 있어선 나도 정말로 소문으로나 들은지라 자세한 정황은 모른다. 다만 헌팅 네트워크가 불 타는듯한 논란에 휩쌓였고, 국내에선 1세대 인물들이 학교에 찾아가고 그랬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반장의 성격을 보건데 절대로 사욕을 위해서 움직이진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마는.... 반장의 처세술이 그다지 능숙하지 못했다는 것도, 부정은 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
"뭐, 정확히는. 1세대 시절 대한민국 군인 저격수의 기억의 편린이 강하게 남아있다.....그렇게 말하면 조금 더 그럴듯 해지나? 여튼, 그런 느낌이야. 이상한 소리란건 알지만, 대화를 나누다보면 특별반 내에선 다들 믿어주더군."
- 자칫 정치관계나 '이후의 일'을 고려하다가, 강림한 신에게 전멸 당하고 대재앙이 펼쳐졌습니다. 라면 웃을 수도 없어.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말은, 합당한 것 처럼 들린다.
" 헌터의 수장이 될 생각이 있다면, 가디언과의 우열 자체는 인정 할 수 있어야 겠지. 그렇지만 " " 그것에 순응 해서는 안되는 일이야. 그것이 협회에서 우리에게 바라는 일이기도 해. "
헌터가 비교적 약소하다고. 여력이 없다고... 특별반은 아직 미숙하다고. 바보라서 눈앞의 일에만 급급했다고. 이런 변명이 언제까지 통하겠는가? 감히 가디언에게 대적한다는 생각을 하는 리더를 누가 원하는가?
" 이용 할 수 있는건 이용해. 정치와 이권으로 엮어서 가디언이 손댈 수 있는 범위를 줄이거나 이동시킨다. " " 신 토벌전에 그들을 이용해도 괜찮지. 다만, 그들은 그저 조력으로의 이미지가 남도록 해야해. "
그렇게 말하며 1세대 환생자인, 그를 바라본다.
" 특별반에게 다음 기회는 없어. 신에게 죽나, 협회에게 정리 당하거나... 결과는 그다지 다르지 않아. "
바티칸? 좋다.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끌어들이자. 신성의 전문가들 아닌가? 기사단? 그들도 역시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 아닌가. 교단의 교위 사제나 특수 개체를 막는것에 도움을 줄 수 있겠지.
신 토벌에 참여하는 단체의 수를 늘려서 관심을 희석시킨다. 그렇다면, 어느 한 단체가 주도하여 신의 토벌을 행했다는 의견을 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케이크의 체리부분인 신살을 특별반이 행한다면? 가디언에게 쏠리는 관심을 줄이며, 이쪽의 입지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 가장 최선은 특별반과 헌터의 힘 만으로 끝내는 거지만, 말 그대로 우리는 그들보다 약소니까. "
그렇기에 영리해져야해. 라고 덤덤하게 말하며 시선을 돌려 등명탑을 바라본다.
" 우리는 리더라는 위치에 선 이상, 목숨이 제 1목표로 삼을 수 없게 되었어. " " ...이해 할거라 믿어. 형씨. "
"역시 머리가 좋은 마도사의 의견은 훌륭한데. 아. 비꼬는게 아니라, 정말로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최초의 헌터'인 이상, 사실은....미숙하다는건 애초에 용납될 수 있는 구실이 아니야."
비꼬는게 아니라 실제로.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협회는 미숙한 꼬맹이들 뒷바라지를 해주기 위해서 막대한 지원금을 쏟은 것이 아니다. 바보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변절의 가능성을 의심받는 최악의 상황에서 해명하기 위해 말했을 뿐이지. 사실은, 시간벌기라고나 부를 수 있을지 조차 애매한. 어느 의미론 우리에게 받는 기대를 제 손으로 부숴버린 격이다.
다만....
"딱히 반론을 하려는건 아니고. 아까 말했듯이, 나는 이렇게 떠들고 있으면서도....근본적으론 정치와 잘 맞지 않아."
열심히 같이 진지한 이야기를 해놓고 혼자 이상으로 달려나가는 것 같아 미안한 느낌이 들어, 나는 팔짱을 끼곤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기사야. 논리적으론 네 말에 공감하더라도, 결국 내 행동의 근간은 뒤바뀌지 않아. 기사도는 바보 같은거거든."
그러니까.
"나는 결국 이 불합리한 세상이 싫고. 거지같은 상황 속에서 무고한 아이가 우는게 싫어. 지키고 싶은게 있고, 부수고 싶은게 있어. 그러니까 그것을 향해 최선을 다해. 그 찰나의 순간에 영혼을 내던질 수 없다면, '이후의 일'에서도 결국 나는 내가 아니게 되겠지. 그러니까 나는 찰나를 살아. '이후의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건 결코 아니지만, 그 단 한순간을 평생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 나에겐 그런 '기억'이 너무나도 많아."
나는 충분히 닦은 꼴깍이를 어깨에 멘다.
"너와는 얘기가 꽤 잘통하는 것 같고, 가능한 돕고 싶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해줘. 그렇지만 나란 녀석은 근본적으로 이런 느낌이니까, 정치적인 부분에서.....너무 기대하지는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