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유럽의 귀족 가문 자제가 아니고서야, 신한국에서 미들네임을 쓰는자는 극히 적었다. 그저 멋으로 붙인게 아니라면 필히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일테지. '그 자체로 이력이 생기는 타입이거나, 혹은 무언가의 상징 혹은 증표려나' 머리 한구석으로 헌터 생활을 하며 익힌 지식들을 이리저리 들춰내며 말을 이어나간다.
" 그래. 시윤 형씨 라고 부르면 되겠지? "
정세가 많이 달라져서 놀랐겠다 라는 말에 속으로 헛웃음을 짓는다. '아무렴 놀라고 말고. 뒤집어지는줄 알았다만' 같은 말을 초면에 할 수는 없었기에 옅게 웃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정도가 최선이였다.
목각인형은 덩굴 채찍을 휘두르거나 팔다리를 휘두르며 저항하지만 곧 윤성에 의해 머리가 방패에 처박힌다. 콰직! 그 까맣게 그을려져가는 머리에 큰 금이 간다. 엎어뜨린 목각인형을 보니 덩굴이 목각인형의 안에서 자라나 휘감은 것임이 보였다.
"입학할 때부터 이렇진 않았어."
강산은 윤성에게 답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전투 아직 안 끝났으니까 방심하지 말고."
강산이 '적이 레벨 38 치고는 너무 쉽게 밀리는데.' 라고 생각하던 순간 목각인형의 움직임이 잠시 멎는가 싶더니... 콰콰쾅!! 그 안의 덩굴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목각인형을 깨고 나와 폭발적으로 자라나서는, 그 비대해진 줄기로 윤성을 역공하려 하지만, 큰 피해는 주지 못한다. 윤성의 갑옷 때문도 있지만, 강산의 염동 마도 기술이 덩굴을 뒤로 잡아당겨서 공격이 일부 빗나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덩굴이 본체였나."
기술 - 제 3세계(C) 의념의 흐름을 쥐어 활용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의념의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적에게 강한 대미지를 입힌다. 사용 중 망념이 꾸준히 20 증가한다.
염동 마도는 그의 주특기는 아니었지만 꼭 지금처럼 가끔 필요할 때가 있었다. 어찌되었든...몬스터에게 가해졌던 덩굴의 구속은 시전의 의미가 없어졌지만, 윤성의 방패에 시전된 '도깨비불'은 유지되고 있는 상황.
"곧 버프형 의념기를 쓸 거야. 오래 쓰진 못하지만. 마무리할 수 있겠어?"
강산은 침착하게 윤성에게 묻는다.
//11번째. 정주행하면서 써둔거 먼저 올리기... 원래 이번 턴에서 의념기 쓰려고 했지만 레벨이나 윤성이 기술셋 생각해서 2페이즈로 넘어간 후 의념기를 시전하게 되었네요...!
콘스프를 한입 떠먹으면서 고개를 기울인다. 특별반에서 선하고 순하기론 상위권에 드는 녀석이 엄격하다는 평가를 받는건 잘 이해가 안가는데. 녀석이 정색할만한 상황이라곤, 상대가 자신을 먼저 속이거나 해하려고 할 때 정도일터다. 나는 눈 앞의 소년의 이미지를 다소는 조정했다. 강산이 엄격하게 대한 녀석이라면 평탄하진 않나보군.
"그러냐."
나는 스프를 몇번 더 떠먹으면서 그가 갑자기 펼치는 자기소개를 듣곤, 조금 생각하다가 입을 연다.
"평범한 대화에 안 익숙하지?"
방금 조정한 이미지랑 합쳐서 나는 언제나처럼, 그닥 날카롭진 않지만 덤덤하게 찔러본다.
"왜냐면 맥락이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애초에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네 정보를 주었다고 대답할 의무는 없고....아. 오해하진 마. 까다롭게 구려는건 아니고, 단지."
뭐라고 해야할까. 라고 운을 띄우곤 스푼을 몇번 허공에서 빙글 돌리다가 결론을 낸다.
"그렇군. '내가 무언가 제공받으려면 상대에게 제공해야겠구나' 라고 당연하게 여기는 시점에서, 상당히 이해타산적인 것 같아서 말이야."
가디언이나 여러 상황이 엮여 있는 상태만 아니라면 좋아 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차세대의 리더를 원하고, 리더에겐 여러 신화가 필요한 법이니까.
- 편한대로. 백색의 기사라고 부르면 좀 부끄러울 것 같지만. " 이명이 다 그렇지. 백색의 기사씨? "
장단을 맞춰 웃으며 답해주곤, 정보를 기억에 새긴다. 40레벨대에 이명을 하사 받는 것 자체는 그럭저럭 있을 법 하지만, 신의 이름을 받는것 까지 합한다면 절대 흔한 업적이 아니였다. '어찌되었든, 특별반의 무력 수준 자체는 그렇게 비관적인 상황이 아니란거겠지.' 반대로 말하자면 무력 수준이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버려져도 이상 하지 않을 상황이기도 했다.
" 친해진 사람은 딱히 없지만... " " 소문? 들은거야 많지. "
자신이 들었던, 특별반의 현 상황을 읊으며 무덤덤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이런 말들은- 감정을 담아서는 안되었다.
" ...이 중에서 사실이 아닌게 있나? "
겨울의 의념을 담은 눈동자가, 잠시 눈 앞의 소년을 훑고 지나갔다. 아니, 소년이라고 말하기엔... 청년에 조금 더 가까웠을까?
"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로 그렇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가디언과 손을 잡으려 하거나, 우리 UHN을 적처럼 여기기도 하고. 우리와 상의 없이 UGN이 준 특수 의뢰를 진행하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들이 내린 명령을 자의적으로 거부한 끝에 우리 입장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
곧 그는... 지금까지 특별반의 일들을 하인리히에게 설명해갑니다. 시간이 지나가고, 그는 미소를 지으면서 하인리히를 바라봅니다.
"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겠습니까? " - 라고 오늘 진행에서 나왔습니다. 다 들은듯?
나는 조금 감탄하면서 그의 쏟아지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정곡에 제대로 찔렸나 보군. 다소는 부자연스럽던 예의가 시원스럽게 날아갔다.
"네 말이 맞아. 이해타산을 고려하는건 딱히 나쁜게 아니고, 사회 생활에서 당연히 필요한 기능이야. 어느 의미론 배려라고도 할 수 있지."
숟가락을 빙글빙글 허공을 젓다가 딱 하고 가리킨다.
"근데 배려라는 말을 꺼내는 것 치곤 상당히 채근거리는군. 배려라는건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야. 지금의 '참 피곤해 보인다' '좋게 좋게 넘어간다' '1차원적이고 편리하지' '더 귀찮아보이는데' 에는 오로지 자기의 입장만을 담고 있지 않나."
그렇게 말하곤, 나는 조금 웃기다는듯 쿡 하고 소리를 낸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은 왜 그래야 되는지에 대해선 생각할 여유가 없는가보군. 첨언하자면, 정곡을 찔려서 다소 기분이 나빠보이기도 하고."
왜 웃는가 하면, 사실 나는 그 '반쩍거리는 이름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 에 대해 조금의 거리낌도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당장 미들네임과 하는김에 이명에 대해서 알려줘도 상관은 없다. 그러나 굳이 정곡을 찔러대는 이유는, 서투르게 숨겨대는 본성에 다소의 오지랖이라고 할까.
"예의바른 어조와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사회에선 그걸 '무례' 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으니 조심하는 편이 좋아. 주로 요즘 세대에선 꼰대라고 불리는 오지랖이 넓은 족속들이 그리하지."
상대의 불편함을 느끼는 기색이 강해져서,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주 상식적인 친구인 것 같은데, 그런 만큼 오자마자 상황파악을 하곤 위통을 호소하는 모양이다.
"글쎄. 내가 무엇인가 책임을 지는 권한자가 아닌 만큼, 곤란할 부분은 없어. 다만 주어가 빠진만큼....굳이말한다면. 실망했을 때에 곤란한 쪽은 하인리히, 네 본인이 아닐까. 영리해보이니 스스로도 알고 있겠지만."
상대의 사정이 무엇인지는 하나도 모른다. 그러나 이 특별반에 들어온 사람들이란 대게의 깊은 사정을 가지고 있고(그렇지 않은 경우도 왕왕 있지만). 특히나 지금처럼 실망을 언급하는 경우는 더욱 그리하다.
"실망이란건 남아서 기대를 해야 할 때 하는 법이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 나갈 수 있었다면, 실망하지 않았겠지."
안 그런가? 하고 팔짱을 낀체 상대를 바라보며 덤덤히 묻곤
"....다만, 이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곧은 눈동자로 마주하면서, 다만 단호하게 얘기한다.
"아이들이 주변 어른들이 보기에 멍청했을지언정, 치열하게 최선은 다했네. 그 결과가 이 꼴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사실 나도 만족하는건 아니지만. 다들 제 나름대로 노력한거야. 노력으로 모든걸 포장할 순 없는게 현실이지만, 반대로 그 모든 노력이 무의미 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나는 당당히 말했던 것이다. 우린 그냥 바보라고. 최선을 다했는데 생각이 닿지 않은 부분도 있었을 뿐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음....UHN 담당자께서 말씀하시길. 뭘 어떻게 해서든 강림한 신을 죽이라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