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한두입이면 다 먹을 마들렌 서너개, 생크림 툭 올린 바스크 치즈 케이크, 새빨간 라즈베리와 체리 콤포트가 듬뿍 올라간 타르트, 갖가지 한입 크기 쿠키가 소복하게 담긴 접시까지.
다 먹었다간 저녁 배도 안 남겠지만, 그러라고 주문해놓은게 뻔했다. 어쩌면 손도 안 댈 것도 예상 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여기 있으란 소리를 하진 않을 테니...
뭐가 됐든 아무렴 어때...
낮잠 자도 된다고 했으니 잠깐 눈이나 붙일까 했다. 그러면 두세시간 정도야 훌쩍일 터였다. 방금의 생각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지만, 지금 내 상태에, 깊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의자에 거이 파묻히듯이 앉아 큼직한 쿠션을 푹 끌어안았다. 작게 숨을 내쉬며 정신을 멍하게 늘어뜨리는데 예고 없이 어깨 위로 뭔가 툭, 닿았다. 그 감각에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이어서 감각이 느껴진 오른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가 푹, 하고 볼에 꽂히는 손가락에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러고보니 방금, 목소리가. 기시감이.
가늘게 뜬 눈을 위로 흘겨 서한양의 얼굴을 확인하고 어깨의 손을 따갑게 쳐내려 하며 말했다.
"...누구신데 이러세요."
방금 행동에 대한 짜증을 내는 것보다 모르는 척을 하는게 이 상황을 덜 번거롭게 흘려보낼 것 같았다. 그와는 저번에 좋지 않은 언쟁도 있었으니까. 뻔뻔하게 표정을 정리하며 고개를 돌렸다.
혜우에게 손이 쳐지자, 손에서의 얼얼함을 느끼면서 서한양은 살짝 식은 땀을 흘리고는 " 맵네.. " 라고 중얼거린다. 아마 서한양의 관점에서라면 전에 있던 일이 안 풀려서 이런가 생각했겠지. 어쨋거나 까칠한 혜우와 대비되게 지금의 한양은 꽤나 가벼웠다. 전에 부실에서 보이던 안절부절함이나 다정함이랑은 거리가 멀은, 그러니깐 다소 가볍고 시원한 모습. 주로 후배들보다는 3학년 동기들이 거의 매일 보는 한양의 모습이었다.
" 누구신데 이러냐니~ 혜우씨네 부부장이잖아요~ 물론 이제는 곧 졸업을 앞둔 뒷방 늙은이 똥차지만... 흑.. "
마치 줄어들은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서 한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다시금 가벼운 톤으로 입을 열기 시작한다.
" 좌우지간에! 혜우씨 전에 있던 일 때문에 이러는 기야?! 그렇다면 내가 미안해요. 그때는 나도 쓸 데 없이 저기압이었으니깐. 기분이 태도가 됐다니! 이런 부부장이 되지 않도록 또 노력하고 노력하겠습니다.. 따흑.. 그러니깐 혜우씨, 감정 풀자. 응? 이제 오랜 기간은 아니어도, 인첨공의 생존권이 걸린 싸움들이 있는데.. 이렇게 까칠까칠해서 훌륭한 팀워크가 나오겠냐고! "
" 나오긴 나오는구나.. 이건 내가 잘못 생각했다. 어쨋거나?! 응?! 부부장은 꽤나 상처를 받았거든ㅇ.. 아, 잠시만 내꺼 나왔다. "
서한양은 자신의 진동벨이 울리자, 카운터로 가서 차가운 아이스 커피와 야채 샌드위치를 받고는 혜우의 옆자리나 앞자리는 아니고... 옆 테이블에 앉는다.
" 와, 혜우씨.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거, 저번하고는 느낌이 다르다. 이번에는 좀 날카롭고 막 제대로 비수가 팍팍 꽂히는 느낌이었어요. 졸라 매력 있다.. 앞으로 다른 적들을 상대할 때 이렇게 하도록! "
서한양은 손가락을 올리며 " 어우.. 이번 거 좋았어.. " 라며 감탄사 아닌 감탄사를 중얼거린다. 그는 잠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인간 서한양으로 대화해보실래요라는 말에 혜우에게 엄지를 올리며 " 오우.. 역시 저지먼트의 두뇌.. 아이디어가 남다르네.. 좋았어! " 라며 대답한다.
" 근데 말이죠, 혜우씨. 우리가 꼭 저지먼트 부부장과 부원으로만 얽혀 있어야 해요? 학교나 저지먼트 부실이 아니면 아는 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좀.. 응? 그러니까 이렇게 밖에서도 가볍게 대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아, 나만 가볍게 생각하나? 어우, 근데 이거 별개로 인간 서한양과 대화..크으.. 역시역시 레벨 5의 머리라고 명언도 잘 만드는 것 봐봐.. 나도 나중에 써먹어야지. "
그렇게 능글하게 대답을 이어간다.
" 이제라도 와서 면식 좀 생겼으니깐 추구할 수도 있고, 어?! 거, 늦었을 때가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다는 말 모르오?! "
" 혜우씨는 나 싫어해? 난 혜우씨 같은 사람 정말 좋은데. 아아, 이성으로 말고. 어쨋거나.. 왜냐하면 솔직하잖아요? 직설적이고, 거침없고... 인자 보니깐 그런 매력이 있었네? 사실, 혜우씨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말해준 건 처음 아닌가? 아, 처음은 아니구나. 어쨋거나 이게 우리 사이에 새로운 면식이 생기는 순간이 아닐까요? 아, 그리고 저번에는 같이 강아지 카페 가서 강아지들이랑 같이 놀자고 혜우씨가 먼저 제안했잖아. 이거는 어?! 사적인?! 어?! 관계가 아니야?! 생각해보니깐 억울하네?! "
서한양은 " 내가내가 잊을 줄 알았지? "라고 중얼거리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뭐, 혜우씨가 그토록 싫어하다면 사적인 관계를 추구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나쁘지 않네. 어차피 혜우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싫어할 거니까. 그래도 혜우씨 이렇게라도 웃는 모습 보이니깐.. 난 만족이에요, 만족!! 10점 만점에.. 어.. 7.6점!! 만점에 도달할 수 있게 더 분발하도록! "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고막이 아닌 뇌를 찔러들어와 계속 듣고 있으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가 아까 픽업하러 갔을 때 나갔어야 했다. 지금처럼 기력 더 떨어지기 전에 일어났어야 했는데 제때 판단을 못 한 내 불찰이었다.
나가지 못 한다면 정신이라도 붙들어야 하니 다 식은 카푸치노를 가져와 몇 모금 들이켰다. 카페인이 그나마 정신 놓는 것 만은 막아줄 것 같았다.
한양이 겨우 조용해진 참에, 숨 좀 돌리고 이를 뿌득 갈았다. 내가 왜 이래야 하나 하는 억하심정이 입을 열게 만들었다.
"저지먼트로 얽혀야 하냐는 사람이 아까 오자마자 부부장이란 단어는 몇 번을 말했는지 알아요? 누가 보면 작업 걸려고 별에 별 구실을 다 갖고 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고. 그런데, 솔직히 말해봐. 저지먼트 아니었으면 같은 목화고고 나발이고 나한테 말 안 걸었을 거잖아, 안 그래?"
치밀어오른 짜증은 어느새 말끝도 잘라먹었다. 카푸치노를 다시 마시고 옆눈으로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진짜 뚫린게 입이라는 말이 딱이네. 이성으로 안 본다면서 좋다느니 매력이니 마음에도 없는 소릴 잘도 하고. 솔직함? 직설적? 몇 번 겪어봐. 지긋지긋하단 소리가 아침에 눈 뜰 때마다 나올 걸? 면식은 무슨 빌어먹을. 직함 떼고 교문 나서면 뒤도 안 돌아볼 인간이 혓바닥만 살았어 아주."
하! 헛웃음에 속이 시렸다.
"아, 강아지 카페. 그거 말할 때만 해도 내 머리가 좀 녹아있었지. 이 X 같은 도시래도 뭐,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을 거 같았어. 내가 비록 여기 버려졌어도 X발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고. 그런데 현실이 또 통수를 쳤잖아.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비밀 투성이였고, 이 망할 도시는 지멋대로 자폭이니 뭐니를 하겠다니. 그래, 자폭 그깟거 막는다고 쳐. 그럼 뭐가 되는데? 믿어봤자 통수 맞는 현실은 그대로고 누굴 만난들 한없이 불안하기만 하겠지. 그럴 바에는 그래, 차라리 내가 사라지는게 낫지. 어차피 죽든가 살든가 둘 중 하나면 내가 이 바닥을 뜨는게 낫지. 어."
하다보니 반쯤 혼잣말이 되어버렸지만 멈추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대로 내뱉었다. 그리고 음료 한 모금 마시고, 서한양을 향해 말했다.
"니가 뭔데 점수를 메기고 W랄이세요. 사람 개빡돌게 만들고서 혼자 좋댄다. 아주."
고개 절레절레 젓고 마들렌 하나를 집어들었다. 잠깐 떠들었지만 욱한 탓인지 당이 뚝 떨어진 듯 했으니까.
서한양은 혜우의 말을 듣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오우..."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다소 낮아졌지만, 그래도 가벼운 톤으로 대답하기 시작한다.
" 혜우씨~ 내가 말하는 게 짜증나고 귀찮을 수 있다는 거 알아요~ 방금 거는 나도 들어도 화났겠다. 딱히 화내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음, 역지사지의 자세 갖기, 이거 적어둬야겠네. 근데 진짜, 내가 여기서 작업 걸려고 별에 별 구실 갖고 오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건 좀 억울한데..? 물론 내가 부부장이라는 직함을 사용해서 접근하는 게.. 이건 사실이네. 혜우씨가 이건 잘 짚어줬다. 어우, 냉철해. 근데 사실은 그 직함이 아니어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혜우씨가 방금 말한 건 '인간 서한양'으로서 고쳐볼게요, 응? "
서한양은 잠시 짧게 옅은 웃음을 짓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 맞아요, 저지먼트가 아니었다면 우리 사이가 이렇게 얽히지 않았겠지. 근데 지금 봐봐요. 우리가 저지먼트에서 같이 일하는 사이고, 그걸 기반으로 서로 대화해왔잖아요? 안 그렇나? 그렇게 따지면 모든 관계는 다 무의미해져야지.. "
그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 그리고 솔직함과 직설적인 말, 진짜 힘들다는 거 알아요. 근데 가끔은 그런 솔직한 대화가 필요한 거 아닌가? 계속해서 마음속에 쌓아두기만 하면 더 힘들어지잖아.. 아, 이거는 전에 말한 사정이 있었지. 이거에 대해서는 혜우씨가 말한 사정 고려해서 입 닫고 있을게요? 하지만 혜우씨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주는 게, 나한테는 오히려 도움이 돼요. 내가 더 나아질 수 있게 해준다니까? 다른 부원들은 그래도 내가 꼴에 선배라고 돌려서 말하는데, 어우 혜우씨는 화끈해. 이거 비꼬는 거 아닙니다? 진짜 도움 되니깐. 아, 물론 '인간 서한양'이라는 놈이 이렇게 날카롭게 직설적으로까지 말해서야 알아듣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있구요? "
서한양은 말을 이어갔다.
" 나는 강아지 카페에 대한 것도 진심이었단 말이야? 그런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나도 처음 볼 때 혜우씨 그냥 얼마 안 보고 갈 후배라고 생각했어요. 아아, 이거 가지고 뭐라고 욕해도 좋아요. 인정할게, 내가. 예예, 인정합니다~ 그런데.. 난 솔직히 강아지로 서로 만난 다음에 좋은 후배라 느끼기 시작했어요. 아, 그리고 이성으로 안 좋아해도 매력을 느낄 수 있지?! 남자도 남자한테 뭐 동경심이나 그런거 가지면 다 게이고, 여자도 그러면 다 레즈비언이게?! 혜우씨, 이거는 좀 너무 나갔다.. 내가 막 크리에이터 아저씨에게서 매력을 느꼈다고, 그 아저씨를 막..어..사랑하지는 않잖아요? 아..씨..하필 예시가 왜 유부남이냐.. 어쨋든.. "
그는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 어쨋거나.. 무슨 말을 들어도 부정적으로 느껴질 텐데.. 아, 이거 이해가 안 간다는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오고, 상처도 많이 받았으니깐 안 그러는 게 더 이상하죠, 예예. 나였어도 사람한테 마음 열기 엄청 겁났을 거니깐요. 정작 진심으로 마음 열었는데, 배신이나 당하고.. 그게 한두 번이면 몰라, 서너 번 계속 되면 그것이 본인의 운명처럼 느껴질 테니깐.. 혜우씨 진짜 고생하셨네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 다 끌어안기는 너무 힘들잖아요. 서로 도와가면서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보는데... 계속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면 더 힘들어질 거예요. 사람한테 마음을 열기 어려워도, 조금씩이라도 시도해보는 거죠. 그런 용기가 결국 혜우씨를 더 강하게 만들고요.
그러니까, 힘들 때... 저는 일단 마음에 안 들 테니깐 1순위로 재껴두고... 같은 1학년 동기나 윗 선배라도 먼저 터놓고 얘기해봐요. 혼자서 다 끌어안고 있지 말고. 뭐, 믿고 얘기 들어줄 동기나 윗선배들 많잖아요.. 정하나 청윤씨나 리라씨라던가.. 하.. 그리고 이런 얘기하면 또 욕 먹을 것 같은데.. 사라질 생각은 하지 마세요. 혜우씨 이런 생각할 정도로 엄청 힘든 거 이해하긴 하는데.. 어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사라질 생각은 하지 말아요. 힘든 거 이해해요. 진짜 이거는 내가 생각해도 무책임한 발언인데, 욕 바가지로 먹을 각오하고 어거지로 땡깡 좀 부려볼게요. 혜우씨 지금까지 견딘 걸로도 충분히 강한 사람이니깐, 조금만 더 용기를 가지고 힘냈으면 좋겠다고요. "
"그리고 혜우씨, 내가 점수 매기고 그러는 건 그냥 장난이에요. 그런 걸로 사람 화나게 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거든요. 그냥 좀 더 가볍게, 저라도 좀... 어.. 유순하게? 받아주고 싶었거든요. 근데 오히려 더 화나게 만들었네. 미안해요, 히힛.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혜우씨가 바로 마음이 풀리는 건 아닐 테지만, 딱히 긁으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걸 알았으면 해서요. "
서한양은 그렇게 커피를 다 마시고는, " 어우 잔소리 그만할게! 이만 꺼질게! 꺼질게! 더 욕 먹다가는 나 울겠다. " 라고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평범하게 자랐으면 저랬을까 싶었다. 그런 비참한 시작이 아니라, 아주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면 이 빌어먹을 인첨공이어도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라니, 전제부터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막혀오는 목을 남은 카푸치노로 적시고 포크로 치즈케이크를 쿡쿡 찌르며 입을 열었다.
누가 멋대로 가게 냅둘 줄 알고?
"그걸 다 알면서 계속 말을 거는 건 나를 아주 가지고 놀겠다는 의미로 밖에 안 보이는데, 그게 작업질이 아니면 뭔데? 내가 한 번은 모른 척, 한 번은 확실하게 싫다고 말 했잖아. 그랬는데도 끈덕지게 들러붙는게 작업질이지."
부드러운 케이크가 씹을 새도 없이 목으로 넘어갔다.
"이봐요, 서한양 씨. 나는 도움이 필요한게 아니야. 까놓고 말해줄게. 나는 들러붙어서 기생할 존재가 필요해. 이런 나라도 거부하지 않고 마냥 받아줄 인간이 필요한 거라고. 내가 어느날 목을 졸라도 순순히 졸려 줄 그런 사람. 그런데 그거 당신이 해줄 거야? 아니지? 진정하? 이청윤? 이리라? 걔네는 해줄 수 있을 거 같아? 아니지, 오히려 걔들은 내가 제일 멀리 해야 할 부류야. 그 주변도, 전부 다. 나 같은게 그 인생에 끼었다간 무슨 동티가 날 지 모르는데, 내가 무슨 염치로 믿고 마음을 열어. 아닌가? 걔들의 뭘 믿으란 건지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내 본질을 알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타인을?"
푸흐흐흐. 건조한 웃음소리. 까맣게 죽은 눈이 한양을 보았다.
"그런 나한테 도와주겠다면서 이성으로는 안 보겠다니 그만한 기만도 없는 거야. 알겠어? 차라리 거짓말로라도 도와주는 대가로 몸이 목적이라 하지 그랬어. 그랬으면 그 많은 말들 듣는 척이라도 해줬을 텐데. 어떡하나. 그렇게 떠들었는데 다 헛수고네. 아아, 타고난 것도 어떻게든 노력하면 될 거라 생각하는 그 마인드가 참 싫어. 본인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내 말은 전혀 안 듣는 것도 정말 열받고."
남은 음료가 든 머그컵을 들어올렸다. 절반 이하로 줄은 크림색 커피를 살랑살랑 흔들고 그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결심이 섰어. 사라질까 말까 했는데, 역시 나는 사라지는게 좋겠네. 물론 발 담근 일은 끝까지 하고 갈 거니까 걱정 마. 아마도 올해- 그래, 올해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저지먼트에도 학교에도 있을 거야. 그게 끝나면, 당신들 앞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거고. 아, 못 할 거라곤 생각하지 마. 나는 지난 반년간 커리큘럼 재료로 내 몸도 쓴 사람이야. 당신도 저번에 봤잖아? 번개에 뛰어드는 거. 전신이 불타도 그러려니 하는데 맥 하나 슥 긋는게 어려울까. 뭐, 이건 반쯤 농담이지만."
머그컵을 천천히 비우고 내려놓았다. 격렬히 짜증을 냈던 모습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평소와 같은, 공허한 모습이 거기 있었다.
서한양은 혜우의 말을 듣고 잠시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까지는 진심이었다. 설령 본인을 계속 싫어한다고 해도, 욕을 먹어간다고 해도, 아무리 본인이 서툴어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어주고는 싶었으니깐. 같은 저지먼트라는 울타리인 것도 사실 이유에 속했다. 미우나 고우나 어쨋든 자신의 후배가 힘들어하니, 본인에게 휘두르는 발톱을 감당하고서라도 조금 더 낫게해줄 길을 찾고 싶었으니깐. 설령 자신이 이상한 녀석으로 오해받아도 상관 없고, 꾹 참았으니깐.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안에서 무언가가 뚝 끊긴 느낌. 그리고 이 마저도 진심이었다.
악의가 담긴 진심.
" 와, 혜우씨.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게 자기 비참함을 자랑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기생할 존재가 필요하다니, 그게 자랑인가요? "
그는 냉소적인 웃음을 지으며 계속 말했다.
" 목을 졸라도 순순히 졸려 줄 사람을 찾는다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그냥 자기 연민에 빠져서 현실을 도피하려는 것뿐이야... 타인을 끌어들이지 마세요. 진정하? 이청윤? 이리라? 이건 당신 말이 맞네. 당신 같은 사람이 끼어서 동티가 나면 안 될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 지금까지 당신을 좋은 친구, 선배로 생각했을 텐데. 근데 이거는 철저하게 타인이 아닌 본인의 탓인 건 알고 있죠? 그건 당신이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배신당했든, 그건 상관 없어요. 결국 그 핑계로 자기자신을 묶어두고 포기한 것이네요. 결국 본인의 문제인데.. 그걸 아직 배신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잠재적 배신자로 규정하면서, 본인을 스스로 묶어서 한다는 말이 기생할 존재가 필요하다라.. 당신의 문제가 맞네. 아, 당신의 얘기를 들어보니깐 본질이 정말 악하긴 하네요. 그런데 그거는요, 돌변이 아니고 '각성'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
한양은 혜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 도와주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기만이라니. 참, 황당하네요. 그래요.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세요. 평생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라고. 일기에도 써놓지 그래요? 그래도 당신이 그따구로 말을 해도, 나는 당신이 하는 착각과 똑같은 오해를 받아도 힘든 사람들을 도울 테니깐. 그리고 당신이 말하는 기생할 존재, 그건 명백히 비참하고 추한 모습이거든요. 그런데도 그걸 당당하게 말하네요. 혜우씨, 그건 당신이 노력할 의지가 없다는 거예요. 그냥 자기 연민에 빠져서 모든 걸 포기한 것, 그게 당신의 본질이라고. "
한양은 고개를 들어 혜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 그리고, 사라지겠다고요? 그건 또 다른 도피예요. 당신은 지금까지도 그렇게 도피해왔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하겠죠. 그런데, 그게 진짜로 당신이 원하는 거예요? 사라질 결심을 했다면, 그렇게 비참하게 구는 대신 정말로 무언가를 바꿀 용기를 가져졌을 텐데- 아니다, 아니다. 내가 이제 무슨 의무로 이런 말까지 건네냐. 나도 참 미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