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situplay>1597048394>353 난 운이 좋았다. 가족이 없었으나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든든한 형누나들과 멍청하지만 착한 동생이 있다. ... 착한...가? 착하다고 하자. 레벨 0지만 돈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하게 해준 고마운 동생이니까. 동생의 능력으로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고 어려움 없이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한 때는 이런 내가 나 스스로는 아무 것도 얻은 게 없는 한심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한 때는 나보다 먼저 앞서가는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자괴감을 느끼고 무너질 뻔했다. 한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놓아버리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친구들이 손을 내밀어줬다. 항상 고마운 사람들이 나를 구해주었다. 그 중에서 가장 고마운 건...
정말로 내가 무너지려고 할 때, 나를 꾸짖어준, 나를 잡아 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을 알려준.
너야.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다. 첫키스의 맛은 물컹한 토마토에 입술을 댄 느낌이라고.
...
그 말이 맞았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지만 정말로 물컹한 토마토에 입술을 댄 느낌이었다. 좋은 향기가 났다.
황홀하다는 감정을 정의하자면 이런 것인가 싶었다.
팔로 한 아름 끌어안으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가녀린 몸. 미묘한 샴푸향과 비누향이 코를 자극했다.
심상의 추락은 한순간이며, 애석하게도 붙들어줄 존재는 주변에 부재했다. 서휘는 스트레인지에서 벌어진 일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고, 2학구로 가서 연구할 것이 있다며, 떠나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 조심스럽게 타이른 한결은 여전히 부재중이다. 연락은 닿긴 했지만 그마저도 문자 한두 개였다. 남은 지지대인 혜우는 망가졌다. 아니,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다. 그 부분에서 태오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연약한 지지대였거니와 담당의로 하여금 전화로 들었던 내용들이 하나같이 속내를 뒤집었던 탓이다. 태오는 그날 이후로 제 핸드폰을 꺼버렸다.
아무리 아득바득 살아보고자, 살려보고자 그 발악을 해왔건만 자신의 삶을 제물로 바쳐도 세상은 요지부동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몰아친다. 생각은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졸업 이후 암부의 생활로 돌아가서도 제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는 지경까지 이르자 속이 뒤집히다 못해 이지러진다.
"……."
하지만 태오는 이마저도 지나갈 일이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상태를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승화될 우울과 체념, 무력감, 그리고 충동일 뿐이다. 세상은 단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곳이며, 인간의 삶은 덧없다. 결심한 뒤 기로를 잡아보고자 한 것이 망가졌다 한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실마리는 나올 것이다.
태오는 늘 그렇듯, 언제나 그랬듯이 무언가에 기대지 않고 혼자 풀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어쩌면 오늘 자고 일어난 뒤, 머리를 감고 아무거나 목구멍 너머로 쑤셔 박아 배를 채우면 승화될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해도 언젠가는 무뎌지고 외면할 줄 알게 될 테지. 무력, 내지 탈력감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충동은 다르다. 아무리 자신을 잘 알고 있고, 스스로의 상태가 어떤지 꿰뚫는다 해도 무력해진 의지는 사소한 충동을 붙잡을 만큼 단호하지 못하다. 작게는 이런 우울함을 극복한답시고 답지 않게 산책을 나가 돌아오는 길 충동적으로 저녁 대신 마실 카페의 음료수를 사 오는 것부터, 크게는 무심코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것까지. 태오는 볼캡을 깊게 눌러쓰며 신발을 신었다.
후드가 달린 바람막이 점퍼, 캔버스화, 깊게 눌러쓴 검은 볼캡과 턱 밑에 걸쳐둔 검은 마스크……. 화려하거나 자신만의 스타일 찾아 이것저것 입는 것 좋아하던 태오 치고는 소박하기 짝이 없는 옷차림이었다. 그런 옷차림으로 무작정 향한 곳은 2학구였다. 이번 역은 북해로, 북해로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2학구청으로 가실 분께서는 이번 역에서……. 태오는 걸음을 옮김과 동시에 무선 이어폰에서 흐르는 노래의 음량을 더 높이면서도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반문했다. 내가 미쳤다고, 지금 어딜 온 건지. 또 그 소리에 뒤덮이고 말 텐데, 아니면 류시원에게 들켜 다시금 붙잡힐지도 모르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역 주변에서 종교를 권유하는 사람들을 매몰차게 지나치며, 태오는 고개를 푹 숙여 땅을 보고 걸었다. 벌써부터 비명소리가 뇌리에 쑤셔 박히는 것 같지만 착각이라 생각하고 거꾸로 10부터 숫자를 세니 한결 낫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데 마레였다. 태오는 데 마레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제사장의 손아귀에 놀아난 승환은 근신 처분이 풀리기가 무섭게 장문의 문자와 전화를 걸었지만 태오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승환의 잘못은 아니지만 혜우가 쫓아가 뺨을 후려쳤다는 얘기를 들은 탓이다. 아마 자신에게 사슬을 걸어둔 것을 들었던 모양인 듯하다. 이대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까, 자신 때문인지 이전보다 보안이 더욱 강화되어 경호 인력이 더 늘어난 것도 꺼려진다. 그렇지만 타이밍 좋게, 한참이고 우두커니 선 태오를 발견한 보안요원 하나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용건이 있으십니까?" "……."
태오는 잠시 침묵했다. 이대로 들어가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다시 스스로를 찌를까, 이번에는 타인을 찌를까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괴물이라고 부르는 건 아닐까? 타인의 속내나 읽는 괴물이 들어와 이번엔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눈길로 쳐다보는 건 아닐까…….
태오는 자신의 손목을 내밀었다. 갑자기? 의아한 눈길로 태오를 쳐다본 보안요원은 얼굴 주변에서 노이즈가 지직거리자 그제야 칩 이식자임을 깨닫곤 스캐너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 스캐너에 선명하게 떠오른 태오의 이명과 재학 중인 학교를 확인한 요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가도 좋다는 듯 자리를 비켜주었다. 태오는 데 마레로 들어가면서 다시금 되새겼다. 내가 미쳤지.
데 마레는 여전하다. 리버티 때문에 경계심이 올라갈 법도 하지만 여전히 활기차고 포근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형 커리큘럼실로 향하는 연구원도, 잡담을 하며 지나치는 연구원들도 있었다. 태오는 사람들의 심상에서 들려오는 행복과 안정을 밀어내며 걸음을 옮겼다. 치고 들어오는 모든 생각을 밀어내야만 2학구에 있단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어릴 적 터전으로 삼았던 곳은 많은 리모델링을 거쳤다 한들 각 연구실과 방의 위치는 변함이 없었고, 연구원들의 개인 연구실이 있는 3층까지 올라가 명패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백한결. 찾았다. 수습 연구원에서 어느덧 수습이란 이름이 떨어진 걸 뵌 긍정적인 일이 있던 모양이다. 다만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으니, 태오는 단념하고 돌아가고자 했다. 그래, 충동적으로 일 벌였으니 돌아가는 것이 맞다.
"……아."
그래, 이럴 줄 알았지. 태오는 순간 한쪽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크게 휘청였다. 시야가 핑 돌며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뇌에 그대로 쑤셔 박혔다. 다행스럽게도 계단 막바지라 구를 뻔했던 상황은 면했지만, 끄트머리의 난간을 잡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주변의 시선이 순식간에 쏠렸다. 태오는 연구원들이 괜찮냐며 다가올 적 천천히 고개를 올리다 저도 모르게 눈을 홉떴다. 백의. 손끝이 저려오고 손등이 욱신거린다. 눈이 가늘게 떨려오고, 안색은 창백해졌다.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연구원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먹먹하게 들려오고, 귀를 찢고 뇌를 후벼파던 소음이 점차 형태를 갖추고 커져갔다. 원망과 고통, 증오와 한 서린 절규가 사방팔방 들려오는 것 같았다. 태오의 상태를 알 리가 없던 연구원들은 호흡이 불안정한 태오를 부축하고자 손을 뻗으려 들었고, 누군가 그 손길을 부드럽게 제지했다.
"아, 한결 선배! 몸은 좀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학생은 내가 데리고 나갈게.] "어,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커리큘럼 진행하셨잖아요." [괜찮아. 내 책상 위에 있는 보고서, 소장님께 대신 전해드릴 수 있을까? 노란색 파일.] "노란색이요? 알겠습니다!"
눈 감고 있어도 돼요. 한결의 상냥한 심음과 부축하는 손길에 이끌려 고개를 품 속에 깊게 묻은 채, 태오는 후들거리는 발을 질질 끌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한결은 태오를 품에 가볍게 안아 들고는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드문드문 연구원들의 심음이 들리긴 했지만 태오는 고개를 더 깊이 파묻을 뿐이었다. 한결 또한 들을 필요 없다는 듯 태오를 다독였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기다리기를 잠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달칵 열리자 선선한 가을바람이 뺨을 스친다. 상쾌한 공기에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몇 걸음 더 걷고 나서야 한결은 우뚝 걸음을 멈췄고, 태오를 어딘가에 앉혔다. 햇빛에 따스하게 덥혀진 쿠션에 등이 닿자 잔뜩 긴장한 몸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태오는 겨우 눈을 떴고, 흐린 시야가 조금씩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 ……여기는 왜 온 거예요. 위험하잖아.
눈을 뜨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가을의 색을 온전히 담던 짙은 갈색 머리가 조금 더 옅은 색감을 가지게 된 것을 제외하면 여전히 익숙하고 상냥한 외관이었다. 태오는 머리의 색에 대해 질문하려다가도 입을 꾹 다물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당신이 나를 또 떠나버린 줄 알고, 전부 당신 탓이잖아. 그때 나를 두고 가지 않을 거라면서 나를 떠나고, 확실한 증거도 없이 또 2학구로 가버렸으니까 못 믿겠기에……. 태오는 혀끝에서 맴돌던 단어를 꾹 삼켰다. 아직도 손끝이 욱신거려 당장이라도 원망 서린 말을 뱉고 싶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믿고 얘기해 보고 싶었다. 누가 비슷한 조언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자신의 망상이 빚어낸 충동인 것 같다. 한결은 한참을 쭈뼛거리던 태오를 부드러운 태도로 기다렸다. 태오는 고개를 푹 숙이며 단어를 뱉어냈다.
"무서, 워서." ─ ……무서워? "……혼자 있는 거, 싫어서… 붙들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집에 형님도, 혜우도, 아무도 없는데…… 가장, 먼저 떠올라서. 유일하게, 어디 간다고 말했으니까, 2학구 버러지들이랑 다르게, 믿었는데……. 또, 고백했을 때처럼, 그런 눈으로 보면서, 버려질까 봐,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무서웠는데, 그러니까……."
태오는 횡설수설하더니 입을 꾹 다물다 천천히 눈을 올렸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지 잔뜩 긴장한 모습이 태오답지 않았다.
"잘못, 했어…… 나, 그래도, 그게, 2학구까지 혼자 와서…… 저번처럼 말썽도 안 부렸고, 시, 시끄러워도 잘 참았는데……. 안 버리면, 안 돼……?"
한결은 표정을 굳혔다. 태오는 그게 또 불안했는지 잘게 떨리는 시선을 휙 피해버리며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볼캡에 가려진 표정은 안 봐도 불안함에 젖어있는 것 같다. 한결은 잠시 고개를 들어 파란 가을 하늘을 마주했다가 심호흡을 했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불신을 더 깊게 심어버린 바즈라에 대한 분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을 신뢰한다는 점에 대한 대견함, 오만방자하게 2학구 사람들을 버러지로 칭하더니만 이제는 자신에게 절절매며 가장 먼저 떠올랐으며 버리지 말라 하는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고, 동시에 등골이 오싹했다. 지난번 적원심노하여 쏟아내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에, 어째서 주변 사람들이 한차례 꺾으려 들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한결은 태오에게 들리지 않을 발언을 입속으로만 달싹였다. 역겹군. 스스로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퍽 역겹다.
─ 태오야. "……."
한결은 고개를 내리고 태오의 곁에 앉으며 상냥하게 손을 감싸 쥐듯 잡았다. 달달 떨리는 손에 온기가 닿자 떨림이 점차 줄어들고, 한결은 애써 시선을 돌리는 태오와 눈을 마주하며 괜찮다는 듯 손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불안함에 어쩔 줄 몰라 하던 태오는 입술을 꾹 다물었고, 한결은 손등을 토닥여주던 손을 들어 태오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 태오가…… 시끄러운 것까지 참을 필요는 없어요.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그걸 가지고 이곳에 온 걸 잘못했다고 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 ─ 하지만 여기는 2학구고, 아직 바즈라의 일은 해결되지 않았어요. 위험하다는 뜻이에요. "……자, 잘못─" ─ 그러니까 같이 돌아가요. "……같이?" ─ 응. 같이. 무서웠을 텐데 혼자 둬서 미안해요. 이제 다 끝났으니까…… 버리지 않을게요. 바즈라의 일이 끝나도 버리지 않을 거고.
태오는 눈을 온전히 들어 한결을 마주했다. 볼캡에 눌려있어도 눈만큼은 유리알처럼 미묘하게 번들거리는 광채가 있었다. 새까만 눈동자를 한참이고 바라보던 태오는 입술을 달싹였다. 진짜?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버리지 않을 거야……?" ─ 물론이지. "……약속."
태오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허리를 기울여 고개를 바짝 붙이고는 가볍게 입술을 누르듯 대었다 뗐다. 잽싼 행동은 아니었다. 외려 천천히 다가와 느릿하게 행동했고, 한결은 순간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을 홉떴다.
"그, 그러니까. 즈, 증거가 필요해서…… 스, 스트레인지는, 그러니까."
태오는 그런 시선을 살살 피하며 부끄럽다는 듯 어깨를 조금 움츠렸고, 한결은 잠시 벙쪄있다가도 정신을 차리곤 태오를 품에 바짝 당겨 안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괜찮아."
묵직하게 치고 들어오는 한 단어에 태오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입술을 벙긋거리다 눈을 질끈 감았다. 한결은 부드럽게 눈을 휘더니 다시금 가볍게 입을 맞췄고, 태오는 눈을 가늘게 뜨다 화들짝 놀라더니 귀까지 새빨개져선 한결의 옷깃을 꽉 잡았다. 한결은 조금 더 바짝 붙어 태오의 표정을 살폈다. 금방이라도 울 듯이 눈시울까지 달아올라선, 손에 닿는 뺨은 따끈따끈하다. 바람막이의 소매를 손으로 꽉 쥔 태오는 앞니로 아랫입술을 짓누르며 시선을 다시금 슬슬 피하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바, 방금 그거." "응." "한 번만, 더 하면 안 돼……?"
한결의 몸이 움찔 떨렸다. 등골을 타고 모종의 감정이 삽시간에 치고 올랐으나 도저히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갈피 없는 질투와 희열, 소유욕에 준하던 감정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태오의 뺨을 감쌌다. 가볍게 내려앉은 입맞춤은 떨어질 기미 없이 점차 열정적으로 변했고, 한 번 타오른 불길처럼 거세게 타올랐다. 태오는 한결의 목을 껴안고는 손가락 끝을 잘게 떨었다. 길쭉한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파고들자 볼캡이 툭 떨어지고 긴 머리카락이 우수수 쏟아진다. 머리에서 불꽃놀이가 터지는 것 같다. 정신이 아득하니 어떠한 심상의 소리도 들리지 않고 뇌가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이대로 척수까지 죄 녹아버려 멍청해져도 좋을 것 같다. 당신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태오는 고작 매달리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일뿐인 것을 깨닫곤 한결을 꽉 붙들었다.
"그러니까 희야가 말했잖아요, 레몬 탕후루는 사회악─"
달칵, 한 손에 포도 탕후루를 쥔 채 문을 연 희야는 시야에 잡힌 광경에 우두커니 선 채로 얼어붙었고, 뒤따라오던 태휘는 잠시 벙쪄있다 상황을 파악하곤 희야의 눈을 손으로 슥 가렸다. 인기척을 느낀 한결이 천천히 눈을 흘기며 입술을 뗐을 적, 희야는 태휘의 손을 꽉 잡아 내리려 들고 있었다.
"아 놔 봐요 희야 이제 다 컸어! 야! 탕후루보다 달다!!" "아, 그- 하던 거, 마저 하… 이게 맞나, 아니, 그. 죄송합니다? 아닌데. 그. 서까지 함께……? 아 씨 이것도 아닌데 그-" "……."
태오는 난장판 속에서 숨을 가다듬으며 멍한 머리를 한결의 손에 툭 가누곤 손을 들어 제 입술을 더듬더니 부스스 미소 지었다. 충동이란 꽤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는구나.
"이 센터에서 일한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불린다면서요?" "진짜 다 알고 왔구만. 애를 얼마나 쪼아댄 거야?" "뻔뻔한 인간." "칭찬 고맙다. 근데 이 노트를 왜 나한테 줘?" "이제 이리라 학생이 그 노트를 들여다 볼 일은 없을 테니까요. 당신과 말 섞을 일도 없고."
시현은 안경 너머에서 가라앉아 있는 정인의 검은 눈을 가만히 응시한다. 이리라가 노트를 직접 건네줬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압수했나. 열심히 쓰고 다니던데 그건 좀 안타깝게 됐다. 다만 저 성질머리에 압수한 즉시 태우지 않은 건 의외인데, 뭐. 이제 내 알 바는 아닌가. 다만 꾸준한 저 태도에는 슬슬 열이 뻗친다.
"나랑 말 섞게 하고 싶지 않으면 담당 연구원님이 노력을 하셔야지. 이 센터에서 내가 하는 일이 도 넘는 연구원들 가는 길 앞에 흙탕물 뿌리는 일인데. 정인아. 네가 잘만 하면 이리라랑 나는 크게 말을 섞을 일이 없다?" "타 연구소 조사 도움도 업무의 일환입니까? 아닐 텐데요. 애초에 '센터의 선생님' 으로서 대한 게 맞긴 합니까?" "아, 이건 또 뭔 소리야 진짜. 아니면 뭔데." "아니면 말고요. 예전처럼 또 제 연구 성과를 망치고 싶어졌나 했습니다."
센터의 앞마당으로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그걸 듣고 있자니 헛웃음을 참을 수 없어져서, 정인은 얼굴을 찡그리듯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잘도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군요. 소장 직함까지 달아보셔서 숨기기 쉽진 않았을 텐데." "딱히 숨긴 적 없다. 다 사정 아는 사람끼리 모인 거니까." "끼리끼리라는 말을 어렵게도 하는군요. 처음부터 이 센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명확히 알겠습니다. 한심한 것 이상으로 위선적이었네요." "야, 깔 거면 나만 까. 네가 뭔데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깎아내려." "왜요. 다들 엄시현 씨의 사정을 안다면서요? 인첨공에서 잔혹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자. 전대 소장의 목숨을 꺾고 자리를 차지한 2대 소장. 손에 묻힌 피가 얼마나 많은지 알면서도 당신을 채용했다는 것 자체가 위선적인 거죠. 안 그렇습니까?"
노트를 쥔 시현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정인은 끌어올린 입꼬리를 도로 내린 후 몸을 돌렸다.
"이제 이딴 곳에는 볼 일 없습니다. 나도, 내 담당 학생도." "듣던 중 반가운 소리, 응? 잠깐. 너는 그렇다 치고 걔는 왜." "내가 막을 거니까요." "너 이리라 여기서 심리상담 받는 거 알고는 있지?" "인첨공에 상담소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여길 고집할 이유는 없죠. 아직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아마 이리라 학생도 따라줄 겁니다. 그도 이미 당신에 대해서는 충분히 아니까."
노트의 표지가 구겨진다. 동시에 격양된 음성이 정인의 뒷통수를 때린다.
"윤정인. 적당히 해라. 내가 네 담당 근처에 있는 게 거슬리는 건 알겠는데 난 이제 연구에 관심도 없고 애초에 옛날 옛적부터 네 것에는 관심이 요만큼도 없었어! 가만히 있는 사람 꾸준히 쓰레기로 만드는 짓거리, 솔직히 짜증나지만 나한테만 하는 거면 어지간해선 받아주겠는데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그러는 건 아니지."
가만히 있는 사람이라. 멀어지던 정인의 발이 문득 멈춰선다.
"가만히 있기는 무슨. 내가 모를 것 같습니까?" "뭘." "10년 전에 프리드웬을 빼돌린 인간. 엄시현 씨잖아요."
침묵이 길다. 각자 해를 등지고 그림자를 얹어 표정이 가려졌지만 눈으로 보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이윽고 후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정인의 모습이 사라지자 시현은 가볍게 혀를 차고 건물 안으로 발을 돌린다. 그러던 중 구겨진 노트 안에서 흘러나온 포스트잇 하나가 뒷마당을 나뒹굴다가 이내 바람을 타고 후문 밖으로 날아가 자취를 감춘 건 둘 중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작은 사건이었다.
부장인 진은 사고로 입원을 한 데다가 부부장인 채영은 다가올 대입 시험 공부로 인해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다. 덕분에 축제 이후의 부활동 주도는 거의 리라와 다음 부장이 될 학생이 도맡고 있었다. 물론 무리가 되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활동인 성하제 공연이 마무리된 지금 정기적인 단체 연습 시간은 주에 1회로 줄었고, 그마저도 적당히 흘러가는 느낌이었으니까. 다만 그건 곧 활기가 부족해졌다는 의미를 포함했기에, 리라는 미묘한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서 부활동이 끝난 후 댄스부실에 잔류했다. 다양한 음악을 따라 몸을 움직이고 나면 어느새 태양도 건물들의 숲 너머로 사라져 있다.
"......아, 바닥 청소 하고 집 가야 되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러나 그만큼 몸을 움직였는데도 마음 속의 미묘한 울적함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럴까. 물론 요즘 이런저런 일이 많긴 했지만. 한쪽 벽을 꽉 채운 거울을 응시하던 리라는 이윽고 풀썩 주저앉더니 주머니에서 포스트잇을 꺼내고, 대걸레를 든 곰돌이 인형을 그려낸 후 실체화 시킨다. 한 마리, 두 마리, 음. 아마 세 마리면 충분하겠지. 이윽고 인형이 청소를 시작하자 리라는 무용실의 구석 자리로 옮겨가서 몸을 삐딱하게 눕혔다. 바닥의 차가운 한기가 열 오른 등을 식힌다. 천장으로부터 내려꽂히는 형광등 불빛에 눈이 부셨다. 그래서 눈을 감고, 음악이 꺼진 공간의 고요함에만 귀 기울이고 있다 보면—
"선생님~ 여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갑니다~"
눈꺼풀 너머로 어둑한 실루엣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퍼뜩 눈을 뜬 리라는 시야에 들어오는 얼굴들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상체를 튕겼다.
"진이 언니, 채영이 언니!" "넌 왜 매트도 안 깔고 자? 감기 든다. 저 곰들은 뭐야?" "리라 오랜만이야! 잘 있었어?" "둘 다 어떻게, 아. 진이 언니는 이제 걸어도 괜찮아요? 다리..." "응. 거의 다 나았어. 다음주면 깁스도 풀 거고, 앞으로 활동하는 데에도 지장 없을 거래." "다행이다!"
몸을 일으키는 리라를 바라보던 채영은 이윽고 한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를 들어보인다.
"뭔가 여기 있을 것 같아서 와 봤는데 척 하면 착이네. 우리 진이 퇴원 축하 파티 할 건데, 너도 낄 거지?" "당연하죠!" "좋아. 그럼 너네 집 가자. 택시 부른다?" "당연... 응?" "오면서 찡찡이 선물 사 왔어." "이 언니들 작정했네. 그치만 좋아요! 가자!"
때마침 곰돌이들은 청소를 마치고 한 줌의 반짝이가 되어 사라졌다. 리라는 가방을 챙겨들고 댄스부실의 문을 잠근 뒤 체육관을 나선다. 케이크 상자 틈으로 은근히 풍겨오는 달콤한 치즈 크림 향기가 퍽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