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잊어버렸구나. 조금 아쉽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말에는 알겠다고 쓰려다 의문스러운 표정이 된다. 라클레시아가 한쪽 눈을 부자연스럽게 깜빡거린 것이다. …뭐지? 눈에 뭐가 들어갔나. 잠시 아리송하게 생각했지만, 물어볼 정도의 일은 아닌 듯해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 ]
그리고 되묻는 말에 공연히 글쓰기에 열중하는 척 고개를 숙인다. [ 원래는 할 수 있었는데… ] 따위의 말이 한구석에 변명처럼 조그맣게 쓰였을 테다. 그마저도 끄트머리는 벅벅 문질러 지워 버렸고.
그는 라클레시아의 손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겹친 손 가만히 붙잡혀 목까지 가는 동안에는 꼼짝없이 굳어 있었다. 접촉이 싫다기보단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긴장으로 삐걱삐걱 뻣뻣해진 목 간신히 돌려, 라클레시아의 모습과 손에서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해 본다. 그러는 동안 긴장도 조금은 덜해졌다. 그가 반대쪽 손으로는 제 목을 짚고 입을 벌린다. 작은 숨 짧게 들이쉬더니.
……모기보다도 소심한 소리였지만 적어도 듣기 싫은 쇳소리는 아니었을 테다. 첫 발성에 비하자면 장족의 발전이다.
아델이 내민 손을 처음이었다면 거절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 눈에 저 손은 금칠 된 손이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손으로 보였다. 귀한 손을 내 양손으로 받들며 말했다.
"아이고,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부렁을 내뱉겠습니까? 이 신뢰의 대명사인 칼을 믿어주시지요!"
비굴하게 내 주둥이는 그대로 뭐든 필요한게 있으면 말만 해달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하긴, 돈이 최고야. 돈이면 평생 모신 형 뒤통수도 치는게 이 세상인걸?
이후 아델의 말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아델은 마치 내 의문증을 해결해주듯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이야기해주었다. 잠깐... 다른 세상으로 또 넘어간다고? 그러면 가게는? 순간 뒷목이 땡겨왔다. 카페는 그냥 노점상으로 해야하나? 그 어린 신이 들으면 내 햄버거는? 하면서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는데... 식인식물은 그냥 배고프다고 내 멀쩡한 다리 하나 떼 가는거 아냐?!
아, 난 이제 돈이 많지 참?
어느새 눈 앞의 아델은 금덩어리로 바뀌어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충격발언,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열배라...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디메리트가 넘쳐나는 사채와도 갚은 악마와의 계약을 할 리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제안을 듣지 않아도 그 대가의 열배를 금으로 받는다고? 잘됐다, 이제 양 팔도 금으로 도금... 아니 금으로 바꿔야지, 여기 어디 엔지니어 없나몰라?
난 이 날을 기점으로 주인님... 아니 아델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내 영혼이며 빛이고 내 주인이었다. 말만 하면 바로 배 뒤집어 까고 흙바닥에 드러 누을 수도 있었다.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내게 내 빛은 내게 또 다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그만 웃어버렸다. 주먹을 말아쥐고, 입가를 조심스레 가리면서 몇번 더 쿡쿡거리며 숨을 참고 웃었다.
"알기 쉬운 사람은 싫어하지 않아서요."
말 그대로였다. 이것으로 사내와의 신뢰 관계는 어느 정도 쌓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내는 돈을 원했다. 나는 그가 도시를 파괴하지 않기를 원했다. 이제 그는 차라리 누군가 도시를 파괴하겠노라고, 물건을 구해달라고 말해주길 바랄테다. 그러면 내게 다가와 그 정보를 귀띔해주는것으로,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있고, 사내는 많은 금을 얻을 수 있을테니.
"죄송합니다. 그것은 알지 못하나... 아아."
헌데, 말했잖은가. 우리는 서로를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금 더, 사내가 하듯 보험을 들어 둘 필요는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방법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져버린 몸. 조금쯤은 사도를 걷는다고 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거기에- 이것은 단순히 추측일 뿐이니.
소녀는 여전히 억울함을 피력하는 중이다. 맨발로 땅을 쿵쿵 굴러대기도 하면서. 진짜 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간이잖아! "거짓말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이대로 가다간 정말 인내심에 한계가 올 것 같았다. 인내심에 한계가 와봤자 별 뾰족한 수도 없지만.
"서명하면 되잖아, 이 멍청아."
콧김을 씩씩 내뿜으면서도, 남자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 얌전히 사인하는 소녀. 하지만 감정에 휘둘린 소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보지 않았다는 것...
알레프는 예상 외로 너무 쉽게 계약서에 싸인을 해버렸다. 아무래도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아 쉽사리 흥분한 모양인데 내게 있어서는 절호의 찬스였다. 정말 신이라면 부려먹기 좋은... 아니 미지의 존재를 얻게 된거니 비싸게 종교단체에 팔아먹으면 되고 허언증을 가진 소녀라면 알바비 대신 직원으로 부려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을 하던 손이 많아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에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사인을 해주시는 걸 보아하니 이 미천한 인간이 감히 무례를 저지른게 맞군요!"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하며 난 고개숙여 알레프에게 사과를 했다.
"제 이름은 칼이라고 한답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이것저거 다 파는 장사치였죠."
고객님이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신속하고, 정확하게! 라는 문구를 외친 나는 알레프를 달래주며 말했다.
"대신 누명을 쓴 알레프 고객님께는 특별히 할인가에 식사를 제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그래봤자 가격은 내 맘대로였다. 그거 아는가? 사이버넷에서 파는 제품들의 할인률 90%는 의미가 없는 숫자였다. 원래부터 3만 크레딧에 파는걸 90프로 할인한다고 하고는 3만 5천 크레딧에 파니까 말이다.
하지만 칼은 몰랐다. 훗날 이 계약서로 인해 자신에게 엄청난 파국이 닥칠것이란 것을 말이다.
이곳에 머무른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처음에는 평화롭기만 하던 도시에 균열이 이듯 여러 불안한 소문이 들려옵니다. “그거 아는가? 외곽 쪽 땅이 계속 무너진다더군. 그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다쳤던데······.” “아, 들었죠, 들었죠.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무너진 곳에 접근할 수 없게 해두었다지요?” “맞아요. 그러고 보니 지난 번 침입자 이후로 또 누가 중앙에 침입하려 했다더군요.” “겁도 없는 사람이야. 아니, 사람들인가?” “뒷골목 깡패 여럿이 살해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치들은 살해 당해 마땅하죠! 어찌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문제만 일으켰던지······!” “이 사람아, 이 도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것도 몰라?” “하지만요······.” “그렇거나 말거나, 도시가 불안정하긴 마찬가지네요. 이게 전부 ■■■ 탓일까요?” “관련 없다고는 못하겠지. 에휴, 우리는 우리 일이나 함세.” 문제라곤 없을 것만 같던 도시에 생긴 문제들은, 어쩐지 어떤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결코 평화롭지 않을 거란 것도요.
그가 알았다며 보여준 종이 끄트머리엔 조그맣게 '원래는 할 수 있었는데…' 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말을 원래부터 못한게 아니라 할 수 있었는데 못하게 됐다? 물론 그런 증상을 가진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어증이나 함묵증이 그러하다. 둘 중 어느쪽에 속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 오, 그렇게 하면 되겠는데요? "
영의 손을 잡아서 목에 가져다대고 말을 해주자 그도 반대 손으로 자신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선 무언가 말을 하려는듯 했다. 그리고 엄청 작아서 듣기는 힘들었지만 어쨌든 목소리가 나온 것은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내는 법을 알았으면 크게 내는건 목에 힘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다르다.
" 거기서 목소리 크기를 키우고 싶으면 목에 힘을 더 주면 됩니다. 이렇게요. "
여전히 그의 손을 붙잡은채라서 나는 목에 다시금 가져다대고선 음의 높낮이를 바꿔가면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근육에 들어가는 힘의 정도라던가 그런 것까진 알려줄 수 없는게 아쉬웠지만 그런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녀는 뒤늦게라도 들뜬 기색을 감춰보려 하지만, 한 번 품기 시작한 기대는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뒤이은 남자의 말이 그 기대를 더욱 부풀렸으면 부풀렸지.
"...정말? 친구 데려와도 돼?"
소녀는 눈을 번뜩이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라클레시아랑, 라클레시아의 친구랑, 네차흐도 같이? 역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아까 일은 사과도 했고, 누구나 오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니까! 남자가 건넨, 다소 유치한 스티커를 받아든 소녀가 제멋대로 결론 내리고선 고개 끄덕인다.
"그래, 좋아! 이제 화 다 풀렸어."
그러더니 아무 걱정 말라는 듯 방싯 웃어보인다. "칼은 좋은 사람이구나." 사실과는 영 거리가 먼 생각을 두어 마디 덧붙이기도 하고...
인간은 식물에게 열매나 잎을 요구했다. 잎을 새로 내는데는 양분이 필요했다. 그러니 벨트체와 교환하는게 그런 것들이라면 벨트체로 얻는 양분은 잎을 내는데 필요한 양분보다 많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글쎄, 그렇다면 인간의 일방적인 손해가 아닌가. 적은 양분과, 많은 양분을 교환하자니. 믿을수 없다.
"자세히."
인간은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양분과 관계 없이 미각이라는 것으로 더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같은 꿀이라도 더 향긋한 꽃을 찾아가는 벌과도 같은 습성이리라. 그렇다면 양분이 적어도 같거나 높은 가치를 가질수 있겠지. 식물은 납득했다.
그러나 식물은 제 잎과 줄기가 인간에게 무해한지, 선호도가 높은지 알지 못했다. 제 서식지에서 인간은 이미 한참 전에 떠나버렸고 식물은 인간을 추락 후에 처음 만났다. 식물은 어찌되었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제 잎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아 공생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뭐, 인간을 땅에 묻어 비료로 쓰면 그만이 아닌가.
식물은 인간을 땅에서 뱉어냈다.
"열매는 맺지 않아. 줄기는 다시 내는 시간이 오래 걸려. 그러니 잎만 줄수 있어."
식물은 잎의 작은 조각을 쭉 찢어 내밀었다. 그는 동물을 잡아 삼키는 포식성 덩굴이었고, 사냥에는 언제나 미끼가 필요한 법이었다. 식물의 잎에서 단 향이 날수 있었던 까닭이다. 미끼가 되기에 충분한, 나무열매를 연상케 하는 향은 충분히 인간의 기호에도 어울리는 것이었다. 거름이 될 뻔 했던 칼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