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윈터는 눈앞의 엘프가 하는 이야기를 잠자코 들으며 그의 어깨 같은 애매한 곳에나 시선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제가 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지만, 왠지 자신의 일생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많아서.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을 때, 대뜸 손을 내밀어 검지로 그의 입을 막으려 했다.
"누군가의 도구로 쓰였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야. 너는 신 되는 존재를 받들어 숭고한 일을 행해왔을지 몰라도, 나는 여태 사람을 죽여왔다고." ... "... 글쎄."
방금 한 말은 실수였을까.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떠들어대기나 하고.
씁쓸한 미소로 자신을 내려보는 엘프와 눈이 마주친 윈터는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엘프가 말하는 잃어버린 감정. 어쩌면 포기했다고 해도 좋을 감정을 윈터도 한때 느껴본 적이 있다. 허무하고 허탈하고 무의미하다고 두고두고 후회했던. 다시는 가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던.
끝까지 그는 윈터에게 상냥하게 굴었다.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말이나 이곳에 떨어진 것이 구원이라고 합리화하는 것까지 비슷해버려서는.
"... 그러니까. 나랑 뭐 어쩌고 싶은 건데. 내가 죽을 때까지 평생 곁에 있어줄 거야?"
>>36 그런 건 잡화점보다는 좀 더 고급품목을 판매하는 곳에서나 팔 것 같긴 한데... 뭐 설정하기 나름이라. 하지만 이 세계에 유니콘이나 샐러맨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어서 걔네들 입장에선 그런 물품을 팔면 우리 동족의 뿔이...! 우리 동족의 비늘이...! 돈이 많이 필요했나 보네. 하지 않을까 싶어.
마족? 불경해? 유린? 몇몇은 어휘의 의미는 알지만 이 상황에 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고, 그중 하나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첫 마디 들었을 무렵부터 느꼈던 감상이 한층 강해졌다. 저 사람 난해한 말투를 쓰는구나…….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은 대체로 말씨가 비슷했는데 말이다.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다. 성심성의껏 말해 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야기의 결을 도무지 종잡지 못하겠어서. 가뜩이나 물정에 어두운 그가 다른 세계의 감춰진 사정까지 간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돌려주는 말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엔 그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 정도 상처는 괜찮은데……. 맨 마지막 말에나 간신히 미력한 반박이나마 던져 두고선, 그는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가뜩이나 험악했던 상대의 표정은 한층 더 사나워져 있었다. 점차 살스레 치달아 가는 분위기에 그가 멋쩍게 중얼거렸다.
“미안, 무슨 말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그냥 내가 비켜줄까?”
넌지시 던진 소심한 항복 통할는진 모르겠다. 상대가 이해했든 이해하지 않았든, 그는 다가섰던 걸음 물렸을 테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은 자신이 곁에 있는 걸 싫어하는 듯 보였으니. 이대로 물러나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파리 인간은 소녀의 설명을 어떻게 잘 알아먹은 듯했다. 말이 통하는 식물?이라 다행이야. 여러 그루라는 건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이 있단 뜻일까?
"뭘?"
이파리 인간의 물음에 소녀는 얼떨떨히 되묻기만 한다. "뭘 하냐니..." 돌이켜보면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행을 따라다니는 것도 그저 자신이 혼자이고 싶지 않아 그럴 뿐. 그 동행에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닫자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일었다. 추락한 세계에서, 추락자들은 뭘 해야 하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순 없는 건가?
"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나도 며칠 전에 막 떨어졌다구."
소녀가 뒷머리 긁적이며 시선을 피한다. 괜히 발 끝으로 땅 두들기며 주변에 눈길 한 번씩 주다가, 뿌리내린 이파리 인간을 다시 쳐다본다. 그래도 같은 추락자니 가까이 지내는 게 좋겠지. 비록 초면에 포식당할 뻔하긴 했지만.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고요함 속에서 움직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니, 그것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터이나, 혹시 모른다. 이쪽까지 올 때의 기척 역시, 목소리를 듣기 전 까지 알아채지 못했으니. 상대는 지엄한 고수임에 틀림없다. 심음도 들리지 않고, 몸에 밴 향 역시 없으며, 기척조차 없는 상대를 어떻게 베어야 할까. 주륵, 하고 흐른 식은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 끝에서 방울져 떨어진 뒤에서야 사내는 피식 웃어버렸다.
"눈이 보였으면 싶은건, 이번이 처음이로군요."
감았던 탁한 눈을 뜬다. 어스름한 빛무리가 세상을 뒤덮는다. 그리고는 들려오는 알 수 없는 말에 사내는 짧게 숨을 뱉었다.
"심장이 뛰고, 각자의 향이 있는것이 산 자의 기본 조건입니다. 체취와 기척은 지울 수 있을 지언정 심음은 숨길 수 없지요."
"우리는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을 사람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마족이라고 부르지. 그러니, 다시 묻겠습니다."
"누구십니까, 불경한 자여."
곧이어 비켜줄까? 라는 말에 최악을 상상한다. 이대로 보낼 순 없다. 재빠르게 땅을 내딛는다. 그리고 가까이, 말소리가 들려온 쪽 까지 한번에 뛴다. 검을 그러쥐고서는 말소리가 들려온 곳 아래, 목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곳으로 칼을 겨눈다. 목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형체가 있는것은 벨 수 있고, 벨 수 있다면 죽일 수 있다. 죽지 않는 상대는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헤헤 일상 너무너무 재밌다~ 오늘밤은 좀 늦게 자야겠는걸 :3 피곤했던것도 싹 사라져버렸어~ 영주도 재밌었으면 좋겠네! 귀엽고 예쁘고 잘생긴 영이한테 칼 들이대고 막 베어서 죄책감에 가슴이 쓰리지만... 두근거려... 나는 쓰레기야... 그래서 좋아...(????)(영주:뭐지)
>>59 마자마자 나도 좀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델 잔뜩 겁먹어서 속으로는 덜덜 떨고 있는데 >>머쓱...<< 이라니 영이 입장에선 갑자기 친한 척 말걸었는데 공격당한거 맞으니깐 ㅠ 넘웃기고 미안한걸~
>>72 음... 그건 형평성에 어긋날 것 같아서 어려워. 아이템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물건들은 대체로 미션이나 상점에서 구할 수 있는 거라, 그 외의 활동(독백, 일상)으로 얻는 건 아이템이 아니라 그냥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네. 그러면 밸붕의 염려도 없을 테구.
이 포식성 덩굴이 사냥을 하는 이유는 이를테면 그런 것이었다. 파리지옥이 배가 부르다고 파리 잡기를 멈추던가. 벌레잡이통풀의 포충망이 가득 찼다고 해서 그 입구가 닫히는가. 이는 능동적인 사냥이라기보단 그저 반사적 반응일 뿐이거나, 애시당초 닫히지 않는 덫일 뿐이었지만 그들이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배가 불러도 사냥을 하는 고양이와 같은 본능이 되었다.
"왜냐고? 생각해본적 없어."
그래 생각해본적 없다. 그냥 눈 앞에 있으니 한번씩 씹어보는 것이다. 그건 본능이었고 반사작용이었다. 그러나 지금 하는 말이 공생 제안이라면 들어줄 의향도 있었다. 사냥 만큼이나 영양 섭취를 통한 생명 유지도 본능이었으니까. 사냥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활동이었고, 그만큼 덩굴은 많은 양분을 필요로 했다. 그러니 덜 움직이고 더 먹는다면 좋은 일이다.
그래, 사냥을 하지 않고 양분을 얻어낸다고. 벨트체*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지? 이러한 형태의 공생은 이전 자생지에서도 흔히 일어나곤 하는 것이었다. 꽃밖꿀샘에서 당액을 내어 공생 생물을 불러들이고, 공생 생물이 다른 천적을 견제하는.
(벨트체: 일부 아카시아 식물이 공생 관계인 개미를 불러들이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 단백질이 풍부하다.)
"하지만 공생... 공생 좋지. 어떤 공생. 벨트체 대신 어떤것?"
아카시아의 벨트체를 먹고 살아가는 개미가 다른 벌레를 쫓아내 아카시아를 지키는 것처럼. 분명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을 터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도 지금 일상 완전 재밌게 즐기고 있으니 걱정 마시길! 히히 오해 받는 전개 재밌다~~~!!! 영이는 여기서 더 베이거나 억울하게 몰려도 절대 화내지 않을 테니까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다구요ദ്ദി˶ˆ꒳ˆ˵) ㅋㅋㅋㅋㅋㅋㅋㅋ저 솔직히........ 겁먹은 아델 넘 귀여워요.....(?)
첫번째 이 세상에는 나 말고도 다른 추락자들이 있다. 그들은 전부 같은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만났던 수인 선배에 식물을 보면 그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러면 이런 다른 세상에서 내가 새로운 안정적인 삶을 살 방법은? 정직하게 일을 하는 것이다.
"옛날 버릇 죽이고 살아야겠군."
남들에게 뺐기보다는 우호적인 아군을 만들어야하는 상황, 힘이 없던 시절 내가 했던 것들이었다. 예전에는 잘 했으니 요즘도 잘 되려나 모르겠네... 여하튼 그렇게 내 아군을 만들려면 그들에게 줄 뇌물, 그리고 내 자신이 약해지지 않도록 예전의 힘을 찾아야했다. 맞아, 바로 돈이다.
당장 있는 크레딧은 이 곳에서는 사용 할 수 없고, 이 곳 주민들은 내게 의뢰를 하고 물건을 주는 상황. 그렇다면 나도 그 순환에 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뭘 주고 받는거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내 가장 훌륭한 무기를 꺼냈다.
그건 바로 다름아닌 내 팔에 있는 펜과 종이였다.
"좋아, 뭐든 팔아먹으려면 시장조사가 필요하겠지?"
난 주변에 사람들을 붙잡고 여러 질문을 했다. 다양한 이들에게, 어리든, 나이가 많든 간에 따지지 않았고 사람이던 사람이 아니던 상관 않고 물어보았다.
가끔은 너무 집요하게 물었는지 치안 유지대 같은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려는 사람들도 있어서 힘차게 도망도 다녔지 뭐야.
"이쯤이면 됐다... 마지막 한 장은 누구에게 부탁할까나?"
주변을 돌아다니며 적당한 사람을 찾던 나는 긴 주황빛 머리를 한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아이들의 취향은 많이 못찾았는데...
옛날에 한번쯤은 꿈꾸었던 카페를 차리는 목표... 예전 불법거래를 할 때는 꿈도 못꿨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좋아, 마지막은 소녀들의 취향을 한번 조사해보자.
"안녕하세요~! 수상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잠시 설문 조사를 부탁드리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난 환하게 웃으며 펜과 종이를 들고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사장님, 사장님은 실눈 때문에 그렇게 웃으시면 안돼요, 무슨 음모를 꾸미는 사기꾼 같거든요.'
예전에 그 말을 유언으로 바닷 속에 사라진 부하의 조언, 이상하게 그 조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구나? 그 말에 상대의 눈가로 새삼 시선이 갔다. 그리고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 땀 흘리는 뺨에 머무른다. 갑작스레 흠뻑 흐르는 땀이라 하면 어김없이 한 가지 가정으로 생각이 새어 버리고 만다. 어디가 아픈가? 모든 생물을 연약하게 보곤 하는 불멸자의 고질적인 염려증에 또 다시 불이 켜지고 말았다. 아파서 그런 것이라면 지금까지의 날카로운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본디 생물은 취약해진 상황에서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라고, 얼마 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으니까. 모든 의문을 해소한 그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생겼으니. 아픈 사람을 치료하려면 도시에 데려가는 게 맞으리라. 하지만 그 환자가 아픈 상태에서도 자신보다 강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이제 다른 의미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시체도 사람 취급해 주는 것 같던데…… 미하엘은 그랬어.”
몸에 관해 정확히 밝힌 적은 없지만 아마 윈터나 알레프도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만났던 때, 그는 미하엘이 제게 시체냐며 정확히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엄밀히 말해 시체라는 말엔 다소의 어폐가 있지만, 대강 뭉뚱그려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상대의 주장도 귀담아 두기로 했다. 스스로도 제 정체성이 모호한 상황이었기에 마족이라는 분류가 틀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고려해 두어야 했다.
채 두 걸음을 물러나지도 못한 자리에서 멈추어 서고 만다. 순식간에 다가와 목 아래에 겨눠진 검보다도, 가지 말라는 말이 발목을 붙잡았다. 새까만 눈동자에 상대의 형상 고스란히 비친다. 검이 맞닿은 살 위로는 열기도 숨결도 내리앉지 않았으리라. 한동안은 그렇게 바라는 대로 묵묵히 있어 주었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가만하던 그가 문득 말했다.
“……그러면 이제 뭐하게?”
자신의 존재를 꺼리는 듯해 벗어나 주려 했더니 보내지 않겠다 한다. 그러면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천연하게도 물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칼날이 살을 얕게 파고들어 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움직이지 말라고 한 건 발이었으니까 목은 괜찮다는 뜻 아닌가? 그는 정말 순수하게 그리 믿고 있었다.
아델라이데 세인트 바울. 그것이 귀족으로 태어난 나의 이름이다. 내겐 남들보다 긴 이름과 성씨가 주어진 대가로 어깨에 많은 것들이 얹어졌다. 명문가인 바울 가문, 훌륭한 현자의 이름을 따온 그 가문은 내게 새장이었다. 어머니만이 내게 세상을 알려주었다. 하늘이 무엇인지, 색깔이란것이 무엇인지, 순수했던 나의 호기심 어린 모든 질문들에 일일이 대답해주며 때로 노래하고 같이 춤을 추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전설과도 같은 동화들, 영웅담들을 들려주곤 했다. 그렇기에 열둘에 집을 나섰다. 갑갑한 세상이 싫었다. 더이상 내게 세상은 어둠과 빛 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알려주었기에, 풀이 무엇이고, 하늘이 무엇이며, 구름이 무엇인지 배웠기에 나는 새장 밖으로 나섰다. 검과 몸 하나만으로 세계를 떠돌았다. 모험가가 되어 마수를 베었고, 많은 마족들을 해치웠다. 악인을 베며 선함을 세상에 퍼트렸고 때로는 방랑하는 음유시인으로써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그 때의 따스한 여관, 서늘한 초원 위로 퍼진 희끄무레한 모닥불빛. 동료들과 나누어 마셨던 스프, 질겨서 녹여 먹어야 했던 육포.
그 모든것들이 한 때의 실수로, 한 때의 동정으로 전부 불타버렸다.
그것에겐 영혼이 없다. 그것은 불길한 짐승이며 악마의 헌신이었다.
"...잠깐, 뭐라고 하셨습니까? 미하엘?"
곧이어 미하엘의 이름이 들려온 것을 깨닫고, 그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미하엘과 만났다고? 헌데 그녀가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고? 침착하자. 놈들 중에는 기억을 읽는 이도 있다. 마음을 읽는 이도 있으며 거짓된 속삭임일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와 목적이 맞아 내버려 둔 것일수도 있지. 아는 이름이 나왔다고 신뢰하기엔-
검에 내려앉는 숨결도, 열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알 수 있다. 미하엘 양, 윈터 양, 코우 양... 만난 이들마다 깨달은 이 기척. 그 역시도 추락자임에 분명했다. 허나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상대는 정체모를 이다. 한가지 확실한것은- 살아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마족과 가까운 이 임을 뜻하는 것. 생과 사는 가장 기본이 되는 세계의 법칙이리라. 사자가 움직이는 세계는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반드시 막아야 했다. 자신 앞의 이 상대가 누구든 간에, 좋은 이가 아님에는 틀림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자신의 숨소리와 심음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심검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체력이 소진되어가는것이 느껴진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뱉는것에 집중하며, 상대의 희미한 기척에 집중하며- 언제든 벨 수 있도록- 입가에서 천천히 고여가는 피를 한움큼씩 흘려내릴때에.
'그러면 이제 뭐 하게?'
칼날 끝에, 살이 얕게 파고드는것이 느껴진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검을 당겼다. 피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베여 목이 떨어지리라.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동작을 마친 뒤에,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대로 쓰러지며 입가에 고여있던 피를 토해냈다. 손 끝에서 차차, 파스스 하고 심검이 흩어지는것이 느껴졌다.
>>168 (망태기에 칼 담기)(???) 헤헤 그러게~ 나 칼주랑도 일상 완전완전 기대중이야 ;3 그래도 아마 그렇게 막 베려고 들지는 않을것같네! 약간 내가 뭐라구... 요런 기조가 강해서 말이지~ 왕국도 멸망했구... 자기도 대역죄인이니깐 ; ; 그래도 조오금 까칠해질지도?
내일 우리 시간 맞으면 꼭 돌려보자구~ 나는 슬슬 간단하게 두유랑 달걀같은거좀 먹고 자러갈까 생각중이라서...
>>170 (고민) 그러게... 우리 어떻게 해야 혐관 없이 잘 할수 있을까 🤔 나 짱고민돼.....
문을 나서자 그가 따라왔다. 생각해보니 아직 통성명도 하지 않았다. 여관에 다들 모인 시점이 밤이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잠자리를 정돈하고 하다보니 어느새 잘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밖으로 향하는 걸음걸이를 살짝 늦춰서 그와 발을 맞췄고 그가 어디로 가던 따라가기 위해서 가는 방향을 잘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여관의 입구였다.
" 여기는 ... 산책이라기보단 바람을 쐬러 나오는 곳이겠네요. "
뭐 의미는 비슷하니까 상관 없으려나. 여관 근처에는 걸터앉을만한 연석이 길거리를 따라 쭉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비교적 깨끗해보이는 연석 하나를 골라서 손으로 대충 쓸어내린 다음 앉은 뒤에 그를 바라보고선 말했다.
" 아직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큼큼. 반가워요, 라클레시아 테시어라고 합니다. 노던 엘프에요.
사람들이 많아 시끌벅적하던 낮과 다르게 밤은 고요한 기운만이 흐른다. 그래도 가끔씩 들려오는 고성은 아직까지 밤을 즐기는 이들이 남아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밤하늘을 향했던 시선을 그를 향해 옮겨갔다. 여전히 느껴지는 위화감. 이것이 어디서 오는 위화감인지 아직 알아내질 못했다. 추락자끼리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인데.
" ... 일단 만나서 반갑습니다. "
나는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보니 이 남자는 얘기를 할때 무조건 필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갑작스럽게 다가온 검지 손가락 때문에 놀랐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그 손을 치우고선 빙긋 웃어주었다. 듣기 싫다는 뜻일까 싶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선 그런건 아닌것 같았기 때문이다.
" 윈터는 군인이었다면서요? 군인의 책무는 원래 그런 법이니까요. 저도 당신도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책무를 수행한 것이 지탄 받을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
시선을 피하는 윈터를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녀도 평범한 생명들보다 충분히 긴 삶을 살아왔으니 몇개쯤은 잊어버린 것이 있을 것이다. 혹은 포기해버린 것이 있을 것이다. 허나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녀가 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듯이 나도 그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 아, 윈터는 안죽는다면서요? "
분명 인간들이 수작질을 부렸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 이럴땐 진지하게 얘기했어야했나? 하지만 너무 진지한 분위기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야 이런 감정을 느낀 것이 너무나도 기뻐서 주체가 잘 안되니까.
" 그러니까 나는 평생 같이 있고 싶어요. 윈터만 좋다면요. "
머리를 다시 만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녀가 툭 쳐냈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하나. 나는 쳐내진 손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럼 이건 어떨까 싶어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세상에 윈터의 입에서는 믿기 어려운 단어가 나왔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들었던 엘프, 내가 만약 윈터를 만나기 전에 머리 없는 상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거짓부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아직은 경계심이 있군.'
첫술에 배 부를 수는 없지. 천천히 내 편으로 만들면 되는 문제였다. 그 사이 윈터가 날 배신하지만 않으면 되니까. 우선은 천천히 윈터의 호감을 사기로 결정했다.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다른 추락자를 넷이나 더 먼저 만난 사람이다. 은원관계까진 모르겠지만 인맥이 있는 사람을 내 편으로 삼는게 더 빠르게 안전해지는 방법일 것이다.
잠깐만, 그런데 이 사람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큰 사고...?"
세상에 그 빛나는 조각을 찾게 만든 범인이 여깄을 줄이야.
"이야, 그거 찾느라 고생을 좀 했는데... 그거 찾으라고 의뢰를 준 상인은 그게 뭔지 설명은 안해주더라구요. 대체 그게 뭡니까? 사람 홀리는 재주가 있는 물건 같던데..."
처음 그 조각에 홀려서 멍하니 하늘을 보았던 지난날을 떠올리니 역시 이 세상엔 내가 모르는 위험한 물건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그게 머리 위로 날아다닐 때 꽤나 정신 놓고 멍하니 보게 되던데... 꽤나 위험한 물건 아닌가요?"
//에고 제가 못봤군요! 미안해요 윈터주!!! 답레는 천천히 주셔도 되요! 내일오면 바로 이을게요~!! ㅠㅠㅠㅠ
“그건 모르겠어. ……영혼은 어떻게 판별되는 건데? 너는 영혼이 있어? 나는 사실 시체는 아니거든. 그러면 나한테도 영혼이 있을까?”
생명과 영혼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들은 어디에 깃든 것일까? 숨쉬는 몸과 휘도는 혈류에 묶였나? 명징한 이성과 정념이 그것을 좌우할까? 그도 한때는 골몰한 적이 있는 논제였다. 하지만 홀로 거듭하는 몽상은 망념이나 다름없기에 그에 관해서는 더는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다를 듯싶다. 그는 순전하게 궁금한 의도였기에 그리 물었는데, 그것이 상대에게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졌을지는 모르겠다.
“응, 미하엘이 날 도와줬거든.”
좋아하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말하는 기색 은근하게 들뜬다. 칼날이 번뜩이고 식은땀을 흘려 대는 분위기만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미하엘에 관한 이야기를 조잘거리지 않았을까.
나란히 선 두 명의 사이에 숨소리는 하나 뿐. 불길하게 울렁이는 듯한 침묵이 계속되다, 마지막 물음을 끝으로 정적이 깨어진다. 무언가가 둔탁하게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는 바닥을 구르는 둥근 그것. 목이 떨어지기 직전까지도 천연스레 지껄이던 목소리는 이제 영영 현묵하리라. ……그러나 뒤따라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몸이 쓰러지지 않는다. 덩그러니 머리 잃은 몸체는 참수 직전의 자세로 온전히 서 있었다. 비스듬히 누운 머리마저도 물끄럼 피를 토하는 인물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스락, 바스락. 이윽고 서툰 걸음소리가 들린다. 느릿느릿 떨어진 머리 곁으로 다가간 몸이 다리를 굽혀 떨어진 그것을 주워들었다. 한동안 두 손으로 제 턱이나 뺨을 붙잡고 틈을 끼워맞추던 그가 마침내 말했다.
“아니.”
……틈이 생긴 부분 탓에 성대에서부터 공기가 이상하게 샌다. “아, 아.” 몇 차례 연습하며 단면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맞추고서야 그나마 온전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가장 먼저 꺼낸 말이란.
“너 역시 아프구나. 일어설 수 있어? 도시까지 가야 할 텐데…….”
몸이 온전한 상태였더라면 어찌 부축이라도 해 줄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손을 아주 잠시 떼기만 해도─ 앗, 떨어뜨릴 뻔했다. ……그렇게 된 것이다. 그는 여전히 목에서 손을 떼지 못한 우스꽝스러운 상태 그대로 걱정스러운 시선만 보내었다.
"제게는 영혼이 있고, 인간에겐 영혼이 있으며, 시체가 아니라면 죽어 있음과 다를 바 없음에도 살아 움직이는, 마족을 닮은 당신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
사내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말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인간이 아닌 것에게는 영혼이 없다. 어찌 영혼을 가진 존재가 인두겁을 뒤집어 쓰고 그런 일을 벌인단 말인가. 내가 벤 것들에게도 영혼이 없으리라. 나는 저열한 살인자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미하엘이 당신을 왜 도와줍니까. 추락자라서? 그녀 역시 이 세계를 지키고자 할 텐데, 어째서 당신 같은 것을."
아아. 분명히 베었음에도 어째서.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 바닥을 뒹구는 소리. 분명히 알 수 있다. 남들보다 예민한 두 귀로 똑똑히 들었다. 헌데 어째서, 몸이 쓰러지지 않는 단 말이냐. 울컥, 하고 다시 피를 토했다. 더이상 검을 겨눌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조금만 더 내게 힘이 있었더라면.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 서툰 걸음소리. 머리를 줍는 소리. 틈을 끼워맞추는 기괴한 소리.
"하아."
그는 탄식하듯 짧은 숨을 뱉었다. 아니, 아니야.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사내는 꿇었던 무릎을 천천히 일으켜 지팡이를 쥐었다.
"무릇 가로되, 검이란 무엇인가. 칼날과 손잡이가 있어야 그것이 검이더냐. 아니, 아니올시다."
"마음속에 검을 품으면 손끝만으로도 사합금을 벨 수 있나니..."
사내는 지팡이를 꾹 그러쥔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말에-
"그리 하지 마십시오. 우선은 대답부터. 어째서 당신은 죽은 몸으로 산 자의 흉내를 내십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무엇 뜻하는 바 있어 이곳에 왔습니까."
"그리고-"
"무슨 일을 벌일 생각입니까. 저 도시를 불태우기라도 할 겁니까? 세계의 멸망을 바랍니까? 악한 일 중 그 어느것 하나라도 바란다면-"
"내가 그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나를 기꺼이 베고 지나가십시오."
"나의 이름은 아델라이데 세인트 바울, 왕국을 멸망시킨 기사단장. 나의 기사도, 내가 맹세한것은 세가지."
영이가 죽는대서 푸는(??) tmi! 알렢이는 편의상 불로불사라고 하긴 했지만 아예 죽지 않는건 아니에여. 정확히는 육체만 죽음을 맞이하는건데 알렢이랑 같은 신족들은 육체랑 영혼이 따로 존재해서 육체가 죽어도 영혼이 있는 한 계속 다시 살아나거든여~ 근데 육체가 죽고 영혼까지 소멸하거나 파괴당하면 얄짤없이 죽어여! 이상 비루한 티미...
라크는 주시자로써 살아온 세월은 긴데 본인이 체감하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어. 주시자라는 직책 자체가 멘탈에 심한 무리를 주는만큼 시간이 오래 지나면 미쳐버리는 일이 자주 생기거든. 그래서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어떤 기계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잠들어있다가 빠져나오는거야. 물론 그 시간동안 세계에서 있던 일들은 모종의 장치로 빠짐없이 확인할 수 있고.
다만 그 장치가 실제 인생을 사는 것처럼 꿈 꾸게 해주다보니 후유증이 심해. 깨어나고서도 10년 정도는 제대로 일을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오늘도 여관 앞에 앉아 무료하게 시간 죽이는 소녀. 무릎 다소곳이 모은 채 중천에 뜬 해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응?" 잠깐 고개 갸웃이던 소녀는 곧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더니 남자를 빤히 응시하고서.
"..."
몇 초간 아무 말도 않은 채 침묵을 유지했다. 수상한 사람 아니라고 하니까 더 수상해보인다! 물론 소녀도 애먼 사람을 다짜고짜 수상한 녀석으로 몰아가는 건 아니다. 그러나 눈 앞의 남자는 어딘지 인상 흉흉한 구석이 있었다... 마치 게임에 나오는, 흔한 삼류 흑막들처럼.
"괜찮아! 무슨 설문조사야?"
하지만 그런 말도 있잖은가, 외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소녀는 금세 평상시의 태도로 돌아와, 남자의 말에 흥미를 표했다. 정말 수상한 사람이었다면 경비병이 진작에 잡아갔겠지.
윈터는 담담하게 왼손을 들어 제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옷이 찢어져 드러난 곳을 자세히 살피면 그녀의 어깻죽지 부근에 현대인이나 쓸 법한 c 타입 충전 단자처럼 가로로 길쭉한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녀가 자연적으로 죽지 않는다 했던 말과 연관 있어 보일 뿐, 겉으로 보아서는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면 손은 괜찮냐며 엘프가 내미는 흰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윈터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너는 평생이라는 말을 정말 편하게 하네. 수천 년을 살아온 너와 달리 나는 고작 수십 년 살아왔을 뿐이라고. 평생 같이 있고 싶다니, 만약 청혼의 의미로 한 말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난 너랑 다르게 언제든지 죽어버릴 수 있는 몸이니까. 그리고 우리 아직 만난 지 만 하루도 안 됐어, 귀쟁아."
윈터는 끝내 그의 손을 맞잡지 않고 뒤돌아섰다. 평생 함께하자는 말은 이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어서. 매번 그 끝이 좋았던 적이 없어서. 이제는 정말 어둑어둑해져 지나는 사람도 드물어가는 낯선 밤거리 한구석을 멍하니 응망할 뿐이다.
메구무는 삿갓을 푹 눌러쓴 채로 벽에 기대 한숨만 푹푹 쉬었다. 요정에 대해 수소문하던 중 웬 애늙은이 꼬맹이를 믿었더니 일명 퍽치기를 당해 무기를 제외한 모든 소지품을 몽땅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약은 물론이고 그나마 약을 팔아 벌었던 돈도...
그나마 검은 도둑맞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름 비싼 고급 검으로 보이는 아이리를 훔쳐가지 않은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아이리를 도둑맞지 않은게 다행이지. 다행이긴 한데...
「 이제 우얄기가?」
아이리의 물음에 메구무는 삿갓을 벗고 허공을 삐뚜름하게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메구무와 반평생을 같이 산 아이리가 해석하기론, 지금 그의 상태는 '말 하기도 싫다'였다. 에휴, 저, 저... 아이리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던 그때...
짤그랑——
누군가 메구무의 삿갓 안에 동전 몇 푼을 넣고 갔다. 아마도 그가 부랑자로 보였던 것 같지. 틀린 말도 아니지만. 메구무는 소리쳤다. "마!!! 내가 거지새낀줄 아나?!" 그러면서 동전은 주머니에 주섬주섬 넣고 있었지만... 그런데 이 도시 사람들, 인심이 좋은지 다른 몇몇 사람들도 그를 향해 적선을 베풀며 지나갔다.
「야, 이거 좋다. 쫌만 더 해보자.」 "뭘 더 하노 이 똘갱이시끼야!" 「그나저나 이거 한끼 값은 되겠구마~ 내는 못 묵지만.」
메구무는 (일단 삿갓 안에 놓인 돈들을 주머니에 넣고) 한숨을 푹 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리 말대로 밥이라도 먹으러 가기 위함이었다. 며칠동안 다시마와 육포만 먹었으니 뭘 먹어야하긴 했다. 그나저나 아이리 임마는 자존심이라는 것도 없나... 그러나 오너 왈, 메구무. 때때론 자존심을 놓아야 할 때가 있단다. 바로 당장 팔 약도 없는 지금 말이야.
「어, 코우!」
그렇게 식당으로 향하던 그때, 아이리가 놀란 듯 외쳤다. 메구무도 놀란 얼굴로 고개를 휙 돌렸다. 메구무는 조금 수치스럽다는 듯 정색하며 물었다.
산책보다는 바람 쐬기란 말에 그가 멋쩍게 웃었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만 밖으로 나가면 되는 거라. 근처에 있으면 도중에 필요한 물건이 생겼을 때 바로 가지러 갈 수도 있고 말이다. 그는 열없는 낯으로 웃다, 라클레시아를 따라 조금 떨어진 곁에 앉았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당초의 목적은 홀로 나와 발성 연습을 하는 것이었지만 옆에 사람이 있으니 그러기에도 조금 무엇했다. 그는 지난번 잘 나오지 않아 억지로 낸 목소리를 들었던 미하엘이 보인 반응을 기억했다.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충격 받은 것 같았지……. 힐끔 눈치를 살피던 중, 라클레시아가 먼저 소개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 한 박자 늦게 그 손을 마주잡았을 테다. 감았던 붕대는 해어져 풀어 버렸다. 짧게 마주 잡힌 손은 녹은 피부와 긁힌 상처, 군데군데 박힌 빳빳한 실의 감촉이 고스란히 느껴져 꽤 껄끄럽지 않았을까. 지난번 알레프와 악수를 해서 다행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뭘 하자는 건지 몰라서 멀뚱멀뚱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지도. 잘 부탁한다는 말에 고개까지 열심히 끄덕이고는 그도 소개를 돌려주었다.
[ 나는 ▒이라고 해. ]
이제는 자기소개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글자가 잘 보이도록 빛 비치는 곳에 종이를 펼치고 있다 시간이 좀 지난 뒤에 거두었으리라. 그는 이름을 쓴 위치의 바로 아래 즈음에 몇 마디를 더했다.
[ 노던 엘프가 뭐야? ] [ 그리고 ] [ 너는 이름이 두 개야? ]
미하엘, 윈터, 알레프, ……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이름이 짧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에는 라클레시아만 다르니 특이하게 느껴진 것이다. 악수마저 잊은 그가 보편적 작명 방식을 기억하고 있을 리도 없었다.
나에게 평생이란 족쇄와도 같은 말이었다. 연구소는 좁지는 않은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넓은 공간도 아니었다. 몇년 주기의 외출만 가능한 그런 곳에서 살아왔다. 이렇게 계속해서 영생을 살아야한다니 그것은 불공평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언갈 잊을 수도 없는 이런 삶이 즐거울리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계속되는 삶에서도 계속 변화하는 것들을 체감하고 즐길 수 있다.
" 간만에 가슴이 떨리네요. 이런 느낌은 또 오랜만이라. "
매몰찬듯한 그녀의 말에도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다만 귀쟁이라는 말은 워낙 오랜만에 들어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귀를 만지작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는듯 했다. 나는 그저 무한한 수명을 얻은 것뿐이지 다른 것들은 차이가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연구소에서 쉽사리 나가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일반적인 존재들은 우릴 눈치채거나 할 수 없었지만 눈먼 총알 같은 것들은 또 다르니까.
" 지형 탐사를 나갔다가 갑작스럽게 벌어진 기습 전투에 휘말려서 죽을뻔한 기억 정도는 있네요. 그리고 윈터 말대로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오히려 지금부터의 하루하루가 이전의 삶들에 비해 몇배는 더 좋을거에요. "
멋쩍은듯이 웃으면서 뒤돌아선 윈터의 옆에, 아니 그보단 살짝 뒤에 나란히 섰다. 그래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급했을지도 모른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너무 급하게 생각했다. 원래는 너무 느긋해서 결정이나 좀 빨리하라고 타박 받던 사람이 아니던가.
" 그리고 윈터 말대로 수천년이나 살아서 기다리는건 잘하니까~ 한 이 정도쯤? 에 서있을께요. "
그가 내 손을 맞잡은 순간 그에게서 느껴지던 위화감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깨달았다. 마치 시체를 만지는 것처럼 차갑고 딱딱한 손.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응당 느껴져야할 약간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이건 네크로맨시(Necromancy)의 산물인가 싶다. 허나 내가 아는 부분에서는 술자가 존재하지 않으면 그 결과물도 힘을 잃기 마련인데 그런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 영원이란 뜻이군요. "
삶이 없으니 영원이란 말이 딱 걸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단 시체가 걸어움직인다곤 해도 이렇게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한다던가하는 것을 보면 자유 의지를 갖고 있고 딱히 적대감은 없어보였으니 그의 존재에 대해 안심해도 좋을듯 했다. 그에 대한 경계 단계를 한단계 내려둔 나는 영이 하는 말을 듣고선 살짝 웃으며 말해주었다.
" 노던 엘프는 제 종족. 제가 살던 세계는 인간 말고도 여러 종족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름이 두개 ... 는 아니구요. "
그러고보니 성과 이름이 나뉘어있는 사람을 별로 못본것 같다. 윈터, 알레프 그리고 눈 앞의 영까지. 그러니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어떻게 설명해주어야할까 고민하던 나는 간략하게 설명해주기로 하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 라클레시아 테시어라는 이름에서 라클레시아는 제 이름이고 테시어는 제 성이에요. 성이 뭐냐면 일종의 표시인데 나는 이 사람의 자식이다, 라는 뜻이에요. 예전엔 사람 하나하나가 노동력이라 나름의 재산이기도 했으니까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
그러니까 제 이름은 '라클레시아' 에요. 덧붙이는 말엔 강조까지 해주면서 얘기한 나는 문득 그가 이 시간에 여기까지 나온 이유가 궁금했다. 단순히 바람을 쐬려고 나왔다기엔 이 사람은 생명 활동이 없는데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있나 싶었다.
1. 맨날 뒤에서 하루종일 잠만 잔다. 2. 사실 인터넷에서 유명한 스트리머! 입담이랑 목소리가 좋은데 얼굴은 철저히 비밀. 3. 외모가 예쁘장하니 학교에서 여장대회 있으면 출전 1순위 4. 학교 성적은 완전 바닥. 모의고사 언수외탐탐 35764 라는 미친 성적 5. 노는건 또 엄청 좋아해서 어디 놀러가는데 안빠짐.
문득 그는 상대의 말로부터 어떠한 결의를 느꼈다. 아니, 그 정해진 답이 아니라면 위태로운 근간이 즉시 무너질 것만 같은, 벼랑 끝에 몰린 듯한 필사必死의 처지를 느꼈다. 저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이 상처 입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장에 말했다.
“그러면 그런 거라고 할게. 나는 아마 영혼이 없을 거야. 그렇지?”
어느 세상, 어느 문화, 어느 누군가에겐 그 무엇보다도 중할 진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목소리가 역설적이게도 밝다. 그에겐 영혼의 존재 여부 같은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라. 남이 바란다면 얼마든지 그렇다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다친 것처럼 보였나 봐. 그래서…….” 그런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화가 깊어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곧이어서는 아예 목까지 날아가 버려 떠들 형편도 되지 못했고.
태연스레 머리를 주워들었지만, 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복잡하게 나돌았다. 이 정도의 손상을 입을 상태에서 피를 토하는 사람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잠깐이라도 고정이 풀리면 굴러떨어지는 머리를 붙들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제한되어 있다. 지금의 상태로는 상대가 제풀에 쓰러진다 해도 끌고 갈 수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이쪽이 도망을 가 도움을 구하든 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흉흉하게 벼린 기세를 보니 그것도 어려울 듯싶다. 그는 잘려나가 바람 새는 목으로 짧은 한숨 내쉬었다.
“피가 나는데 왜 자꾸 움직이려고 해? 아무리 잘라봤자 어차피 넌 날 못 죽일…….”
걱정 어린 기색으로 대답하던 말이 끊어졌다. 세계의 멸망?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피식 실소가 새었다. 그는 곧 소리 내어 웃었다. 가지런히 찢어진 입매 손으로 가벼이 가려내지만, 불측하게 새는 소성 완전히 감추어지지는 않는다. 숨죽인 웃음소리 연신 흘려 대던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 너희 자신보다도 내가 너희를 더 아낄 거야. 나는 이 세상을, 세상을 구성하는 사람 모두를, 생명이 존재함으로서 생겨나는 모든 산물을 사랑하고 있어.”
칼보다도 예리한 의지에 심장이 꿰뚫린다. 그러나 걸음만은 멎지 않는다. 이어 몸을 가르고, 어깨가 잘려나가고, 찰나간 육신 곳곳을 난도질 당하면서도 악착스러운 목숨을 붙잡은 의지만은 굳건했다. 끝내 상대의 목전에 당도해서야─
“너를 괴롭히는 모순과 불행마저도 전부. 난 너희를 사랑해.”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던 ‘것’들이 무너져내렸다. 머리를 잃고서도 버티던 몸이 마침내 쓰러진다. 미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비로소 무로 돌아간 몸뚱이는 이제…….
……. ……. …….
어떤 방식으로도 그 순간을 인지할 수는 없었을 테다. 변화의 과정이나 전조를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현상은 이미 눈앞에 닥쳐 있었다. 이것이 응당한 이치나 진리라도 된다는 양, 그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무참할 지경으로 찢어발겨진 옷 사이로 드러나는 살갗엔 더는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 온전해진 몸을 살피던 그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길게 늘어진 머리칼 드리우며 해맑게 웃는 얼굴.
>>474 영이 입장에서는 아무리 공격당해도 실질적으로 당하는 피해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기억 상실도 본인한테는 당연한 거라서 손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칼로 난도질 당해도 우리로 치면 햄스터한테 사정없이 물리는 정도의 기분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요(?) 아델 햄스터 설(???)
"당신이 선한 마족이라고, 모든 일이 내 빌어먹을 실수 때문이라고 믿게끔 만들지 마십시오. 솔직히 괴로우니."
그래, 그래야만 했다. 몇번이고 자신에게 되뇌어 묻는다. 정말로 내가 베었던 것들에게도 영혼이 있는가? 인두겁을 뒤집어 쓴 채로, 사람의 영혼을 가진 채로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하는 인간조차 수없이 많았다. 허나 나는, 그런 이들조차 일말의 가능성을 믿으며 베어오지 않았다. 내가 오로지 베어 온 것은- 마족들과 마수들, 불경한 것들 뿐. 강한 힘을 가진 이가 있었다. 하늘을 누비며 번개를 쏘았고 불길을 다루었다. 여덟개의 이기어검으로 내게 맞서오던 사내도 있었다. 전부 베어왔다. 하나같이, 강자들 뿐이었다. 그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싸우면서 웃었다는 것. 비록 표정을 볼 수는 없었으나 검을 맞대던 그 순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의 검에는 환희가, 무엇보다 열렬한 환희가 있었다. 전투, 정정당당한 목숨을 건 투쟁으로부터 오는 그 기쁨이. 나도 웃었던가? 머리가 깨질것만 같다. 눈 앞의 그것은 자신은 영혼이 없을거라며 말해온다. 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아뇨."
"벨 수 있다면, 죽일 수 있습니다."
말이 끊어진다. 불축하게 새는 소성. 숨죽인 웃음소리. 한 걸음 발 앞으로 내딛는 소리. 흉흉한 기색.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고, 제발 내게 말해주십시오."
어째서. 어째서 저것의 말에서는 거짓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던가. 두번의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그 마족 아이를 처음 본 순간에도 느껴졌던 이 감정에게 배신당했다. 사람을 믿기에, 사람을 믿고 있기에 배신당한다. 그러니까 더이상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흘러가는 구름처럼, 다만 떠다니는 구름처럼 살겠노라고. 그래서 신께서 나를 벌하시는거라고, 이 빌어먹을 추락도, 지금의 해후도, 모든 것들이 전부!
빌어먹게도 나를 자책했단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대체 왜. 나는 다시금 각혈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짧고 얕은 숨을 간신히 몰아쉬며 탁한 눈만을 뜨고 있을 뿐이었다.
"..."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제 어차피,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분명히 베었다. 심장을 찌르고, 그대로 검신을 위로 돌려 어깻죽지를 가르고, 머리를 반으로 베었으며, 몸통을 상단으로, 대각선으로, 하단으로, 수없이 베었다. 그런데 어째서, 멀쩡한 육신을 앞으로 기울이는 소리가 울리는가. 더이상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윈터는,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는 속설을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삿된 말로 자신을 우롱하려는 것이 아님을 잘 알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의 얼굴을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수천 년을 살아왔음에도 총알 한 발에 죽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덧없게 느껴져서.
"지금, 나 혼자서만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거 아니지?"
내 어디가 좋아서 그러냐느니, 혹시라도 딴 생각을 품고 있는 건 아니냐느니 하는 이야기는 구태여 꺼내지 않았다. 애매하게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저 달을 등지고 다시 돌아서서, 비슷한 눈높이의 새하얀 눈동자를 슬쩍 마주했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릴 뿐이다.
"나도 네가 편하고,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지만,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어버리는 건 조금 두렵네." ... "그러니까. 정말 나 혼자서 네 말을 이상하게 받아들인 거 아니지?!"
여태 부드럽고 나긋하던, 조금은 풀이 죽어있는 목소리였는데. 별안간 소리를 빽 내지르더니 토라진 것처럼 볼을 부풀리고 오른발로 흙바닥을 쿵쿵 내리찍으며 금방이라도 눈앞의 엘프를 때리기라도 할 것처럼 두 주먹을 꼭 그러쥐고서 어깨를 바들바들 떠는 윈터였다.
>>506 헉! 답레 쓰고 왔더니 이런 신청을...! 감사합니다!! 헤헤헤 한개 더 준비해야해서 혹시 선레 한번 부탁드릴 수 있을까용? 후후 어떤 상황이든 다 좋아요 혹시 가능하다면 나쁜 놈으로 오해받아서 치안유지대에게 억울함을 토하는 칼을 구해주는 시츄 어떠실지...(츄릅...!)
몸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음에도 방랑을 나서는 이유는, 조금 더 도시를 알아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빵과 스프, 단출하지만 든든한 아침을 먹고 거리로 나섰다. 헌데 어째서일까, 거리가 조금, 평소보다 시끄러운 이유는.
'아침부터 소란스럽군.'
걸음을 멈추고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재킷을 여미고, 단추를 잠근다. 안쪽의 조끼도 가지런하게 정돈하고, 넥타이 역시 마찬가지로 다시금 매었다. 몇번 행커치프의 끝자락을 매만지다가, 발걸음을 떼어 소리 나는 쪽으로 향했다. 이런 일에 휘말릴때에는 무엇보다 보이는 품새가 중요했다. 조금 경망스럽긴 해도, 걸으면서 머리카락 역시 단정하게 가다듬는다. 오른 쪽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긴다.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경청하겠다는, 자신이 있던 왕국의 예의 범절 중 하나였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지팡이와, 쓸어 넘긴 머리. 허나 그는 이런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 품색이란게 무엇일까. 자신은 앞이 보이지 않아 알아 차릴 수 없었지만, 어머니에게 들어 그 중요함은 익히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어째서 보이는 것으로 서로를 판단할까.'
세상에는 보이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많다고, 그리 믿고 있었다. 그걸 다른 사람들도 알아준다면 좋을텐데. 그럼, 무슨 일일까. 웅성거리는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가보니... 치안대인가. 어느 사내와 문제가 생긴 듯 싶었다.
"저어, 무슨 일이십니까?"
조금 물어보도록 할까.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것은 사양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혹시 모를 곤란한 이를 저버릴 이유는 되지 않았다.
사실, 소녀는 이 못미더운 인상의 남자가 추락자인 걸 진즉 인지하고는 있었다. 그냥 이 세계는 추락자가 길가에 채이는 돌멩이마냥 흔한 거구나, 하고 말았을 뿐.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이렇게 흔하니 일일히 신경쓸 필요 없다는 거다.
"출신지? 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것도 잠시 소녀는 남자의 물음에 말 끝을 흐린다. 소녀가 태어난 곳은 그야말로 태초의 무無. 이후 자신이 우주와 세계를 빚어냈긴 하였지만 그걸 보고 출신지라고 말할 순 없을 터다. 잠깐 뺨을 긁적이던 소녀가, 그의 말에 번뜩 눈을 빛낸다. 디저트 카페를 연다니! 생기 도는 눈빛으로 남자를 올려다보던 소녀가 한 말은,
"디저트 카페? 그럼 감자튀김도 팔아?"
...다소 뚱딴지 같은 질문이었다. 디저트 카페에 왠 감자튀김! 이건 소녀가 디저트의 범위를 잘 모르는 탓이다. 간식으로 먹는 거면 전부 디저트 아니야?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간단한 조사를 했을 뿐, 시민분들께 문제를 일으키거나 위해를 가한 적은 없습니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주장을 하면 대부분의 이런 조사는 무난히 넘어간다. 하지만 내 눈매와 마지막 말이 문제였던 것 같았다.
"위해...? 우린 문제를 일으켰냐고만 물었는데 위해라고?"
아차, 원래 세상에서 압수수색 들어왔을 때의 버릇이...! 당황했지만 이럴 때 티를 내면 더 억울한 상황이 올 수 밖에 없었다.
"오해십니다, 이건 버릇 때문에..."
"버릇?! 이거 완전 상습범 아냐? 너 깡패야?"
아뇨, 전직 불법상인인데요?
이걸 대놓고 말할 수도 없었다. 진짜 옛날이 너무나 그립다. 예전에는 내 얼굴만 봐도 봉투 안받은 놈이 없어서 다 하나같이 고개 숙이고 했는데... 다른 세상에 이렇게 맨몸으로 오게 되니까 남는게 없네, 아주 그냥... 그리운 옛날 영광을 떠올리던 나는 눈에 뜨거운 눈물이 맺힐 것만 같아 억울함을 호소하기로 했다.
"이게 영화를 많이 봐서... 여튼 증거도 없는데 이래도 되는겁니까!?"
어떻게든 상황을 치안유지대의 실수로 만들어야했다. 잘못하면 일이 엄청나게 귀찮아져서... 아니 새 인생을 시작한지 며칠도 안되서 슬기로운 감옥생활을 찍을 수도 있었다. 안돼, 그런 출연료도 못 받는 일은 죽어도 못 해!
그때 마침 여론몰이에 필요한 제 삼자의 개입이 들어왔다.
"저어, 무슨 일이십니까?"
치안유지대의 등 뒤에는 깔끔한 차림의 젊은 남성이 다가와 질문을 했다. 곧바로 그의 상태를 살펴보니 문제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확인했다. 자고로 여론몰이도 저렇게 훤칠하고 정의의 편 같아 보이는 사람이 해야 되는거지 나 같은 사람이 하면 역으로 몰려서 바로 감옥행이었다.
"아이고, 젊은 형씨! 내 이야기 좀 들어주시겠어요? 글쎄 이 사람들이 저를 범죄자 취급합니다! 전 그저 장사를 준비중인 사람인데!"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 두가지 알 수 있는 점이 있었다. 한가지는 몇번이고 겪어 이젠 익숙해진 감각. 저 사람도 추락자라는 것. 두번째는, 조금은 귀찮은 일에 휘말렸을까, 하는 것. 아마 다른 세계에서 왔기에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장사를 준비했거나... 원래 가지고 있던 물건을 팔아 여비를 좀 마련하려던게, 세계의 상식과는 다른 물품이라 조금 오해가 빚어졌을지도 모르는 거겠지. 뭐가 되었든, 도와서 나쁠 것 없는 일 같아 보였다. 피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데다, 노예상 특유의 불쾌한 시취가 나지도 않았으니.
"추락자, 시지요?"
빙긋 웃으면서, 그에게 들릴법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경비병의 심음이 들리는 쪽을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잠시 자리에 앉아있으면 뭔가 아리송한 표정의 가게 점원이 윈터가 주문한 커피를 내어온다. 커피에 샷을 네 번이나 추가했으니 이상하게 볼 만도 하지.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아직까지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한 윈터는 무언가라도 자극적인 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머그잔을 두 손에 들고서 혀를 날름거리는 것은 흡사 물그릇을 핥는 강아지의 모양새. 보통의 인간처럼 물이나 음료를 꿀꺽꿀꺽 마시지 못한다는 그녀의 비밀이 여기서 밝혀진다.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의 윈터는, 잔을 내려놓고 오른손 검지 손톱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다 맞은편에 앉은 칼을 슬쩍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귀쟁이나 돼지 코라면 몰라도, 인간은 믿지 않아. 보아하니 사기꾼 장사치 같은데 나한테 수작 부릴 생각은 말라고."
넉살 좋게 떠들어대는 모습이 꼭 저를 잘 따르던 후임 놈을 닮아서 괜히 더 언짢을 말이 나와버린다. 윈터는 한숨을 폭 내쉬면서도 다시 잔을 들어 진한 커피를 할짝거리다, 칼의 물음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글쎄, 정확한 건 나도 모르지.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케이스가 많지 않을까?"
망했군, 하필이면 구원을 요청했던 젊은 형씨는 나와 같은 추락자였다. 왜 이제서야 눈치챘을까? 이래서 공권력이란건 다 사라져야하는게 맞다. 이 놈들 때문에 상대를 먼저 조사하기도 전에 내 정체가 까발려졌잖아! 어차피 눈만 마주쳐도 추락자들은 서로를 알 수 있으니 그런것도 다 무의미 하지만 적어도 대비는 하게 해줘야지!
"하하... 우리 젊은 형씨도 추락자셨군요?"
조용히 말한 나는 그대로 그의 뒤에 숨어서 대응을 지켜보았다. 절도 있는 모습으로 치안대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 잘 배운 로열을 보는 기분이었다.
'한때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었는데...'
하지만 사회는 빈민가 출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대로 차별의 대상이었고 나는 그들에게 털면 돈 주머니가 나오는 더러운 금고였을 뿐.
에이, 안 좋은 생각 그만하자. 우선은 눈 앞의 일이 더 중요했다. 그의 정중한 사과에 치안대도 정중한 태도가 되어서 저자세로 나오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친구분께는 주의를 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민들이 불안해한다는 민원이 들어와서요."
결국 치안대도 물러나게 되고 주변을 구경하던 사람들도 재미가 없었는지 물러나기 시작했다.
"에이, 범죄자 끌려가는거 보고 싶었는데..."
"그러게? 아깝다."
사람을 구경거리 취급하는 인간들 때문에 뒷골이 잡힐 것 같았지만 지금은 복수할 처지도 아니었다. 그리고 저런 놈들보다 더 중요해보이는 이가 있었으니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아이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에 이 동네 치안대는 무고한 사람을 잘도 몰아가더군요! 아- 저는 칼이라고 합니다! 추락하기 전에는 조그만한 가게를 했었습니다, 헤헤..."
나는 젊은 형씨에게 다가가서 고개숙여 인사를 했다. 작전변경이다. 오늘 장사준비는 접고 이 양반에게서 정보를 한번 뽑아보자.
그렇게 말한 뒤에, 그는 자신의 뒤에 숨었다. 조용히 지켜보는가, 현명한 선택이다. 여기서 아까처럼 길길이 날뛰어봐야 일은 더욱 번잡해 질 터. 자신의 대응으로 어느정도 소란스럽던게 가라앉아간다. 몇 마디 더 말을 나누면, 아침의 소동도 빛무리처럼 조용히 가라앉겠지.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잘 일러두도록 하겠습니다."
다시금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사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아주 천천히 눈을 감는다. 멀리서 지저귀는 새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들이 다시금 분주하게 움직인다. 누군가는 아침준비를 하고, 누군가는 떠날 준비를 한다. 술에 취해 이제서야 집으로 들어가는 이들도 있고, 경비병들이 다시금 제 자리를 찾아가는 소리. 어디선가 빵 굽는 향, 수프를 끓이는 향. 아이들 떠들며 뛰노는 소리. 그런 것들이 들려온다.
고요하고, 평온하구나. 사내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고,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칼 씨. 저는 아델라이데라고 합니다."
"헌데, 어떤 장사를 하셨는지 조금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노예상같은 일을 하실 분은 아니라고 사료됩니다만..."
"아, 저 역시 어떤 일을 했었는지 미리 말하는게 예의겠지요. 조금 껄끄럽지만, 나름 군에 몸을 담았던 이입니다. 너무 걱정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악의같은건 없으니."
만나뵈었던 다른 추락자분들도, 대부분은... 악의가 없어 보였지요. 조금은 경고하듯 그리 말하면서도, 사내는 여전히 미소 띈 채였다.
가, 감자튀김! 남자의 활기찬 대답에 소녀는 더욱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남자를 올려다보는 게, 신이 나서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기세다. 이윽고 다른 메뉴를 말해보라는 그의 말에, 소녀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진다. 그러더니 마침내 입을 여는데.
"치킨이랑, 피자랑, 햄버거랑, 스파게티, 라면..."
와플, 슈크림빵, 핫도그... 끝도 없이 줄줄 튀어나온다.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밀가루 음식들을 끝없이 나열하던 소녀는, "앗." 돌연 말을 멈춘다.
아직은 만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경계를 할 뿐, 윈터 같은 경우는 속은 순수한 케이스였다.
"오해가 많으시군요, 이래뵈도 제가 살던데서 물건 구할 때 왠만해서는 다 구해드리는 만물상이 저였답니다~!"
능글맞게 맞받아친 나는 윈터의 정보를 머릿 속에 기억해두었다. 당장은 쓸데없는 정보지만 나중에 이 세상에 우릴 끌어들인 놈을 잡는데는 필요한 정보가 될지도 몰랐으니까 말이다.
"흠, 사실 저는 술은 그렇게 안 좋아합니다, 알콜이 몸에 스며들고 뇌가 육체를 제어하지 못하는 그 느낌이 진저리치게 싫어서 말이죠."
자신이 제어를 못하는 몸뚱이는 위험했다. 잘못하면 한순간에 총을 맞을 수도 있었고 취기는 숨겨진 비밀들을 주둥이로 튀어나오게 하는 일종의 구토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제가 누굽니까? 전직 만물상이었던 제 명예를 걸고 다음에 만났을 때 맛난 술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우리가 알던 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혹시 루브로크 176년산 좋아하십니까? 로열들이 즐겨마시는 와인으로 유명하잖습니까? 제가 그런 비싼 것도 취급했다니까요."
물론 여기에 그런 술이 있을리가 없었다. 비슷한걸 찾아서 라벨만 갈아주면 되겠지, 뭐.
"제가 다 구해드리죠, 대신 이번에는 공짜지만 다음에는 이거! 준비 주셔야 합니다~!"
검지와 엄지로 돈을 달라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난 웃어보였다.
"아, 물론 물건도 받아요. 이 세상에 왔으니 이 세상 사람들 법을 따라야죠,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
// 이 술 이야기를 기점으로 칼은 윈터의 세상과 자신의 세상이 다르단 걸 알게 됩니다! 빅 정보! 고마워요! 역시 윈터 눈나가 채고에요!!
그나저나 학원물 에유가 지나갔었구나. 식물이는 야생에서 살아와서 그렇지 오히려 머리가 좋고 학습이 빠른 편이라 처음부터 사회에서 자라왔으면 그냥 평범할걸. 근데 그럼 재미없으니 야생에서 잡아와서 학교에 넣은걸로 하겠습니다. 인간 사회의 지식이 없어서 상식이 필요한 영역은 다 조지고 그냥 단순 암기는 잘할것같아. 수학은 평범하고. 국어 언어쪽은 다맞고 문학쪽은 다틀리는 학생이 되지 않을까나... 야생에서 잡아왔으니까 야생성이 안빠져서 사람의 규칙을 잘 이해를 못해가지고 수업시간 잘 안지킬듯
그대로 난 사레에 들려 헛기침을 연신 해댔다. 사실 비슷한건 했지요, 인공장기를 싫어해서 이식을 원하는 로열들에게 좋은 양질의 물건을 전달하곤 했는데...
이 남자, 떠보는 솜씨가 장난 아니었다. 직업이 뭐였길래 이렇게 무서운 질문부터 하는걸까?
"하하... 그냥 만물상이었습니다요! 이것저것 다 받아주고 없는 사람들에게는 시민증만 받고도 돈이나 식량을 주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위험한 이야기를 피해갔다고 생각했는데 아델이라 자신을 소개한 남자의 입에서는 놀랄 이야기가 나왔다.
"아ㅡ 군 말씀이십니까?"
순간 트라우마가 발생할 것 같았다.
'사장님! 튀세요!'
'아니, 또 왜? 이번에 감시관한테 다 찔러줬잖아.'
'저번에 물건 사간 놈이 군에 있는 로열의 자식놈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적대조직부터 다 쓸려가고 있어요!'
'어머나, 세상에...'
결국 확인도 안하고 물건을 판 놈은 그대로 바다로 들어갔다. 그놈 하나로 간신히 조직은 유지가 되었지만 그때 쫒기던 경험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수구까지 총을 들고 쫒아오는 그 미친놈들이란...!
"하하하... 그러셨군요? 역시 기품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평범하신 분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아주 대단하십니다!"
이 인간도 설마 한번 홰까닥하면 내 머리에 총질 하는거 아냐? 아니야, 그래도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데 그렇게 막나가진 않겠지? 아니야, 저런 분류가 또 위법행위 같은걸 보면 못참는다고 총을 쏘는 타입이라고!!!
긴장이 잔뜩 되는 탓에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이젠 미소만으로 어찌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야, 항상 정직하게 장사를 했답니다."
'매번 정직하게 뜯어먹었답니다.'
"덕분에 신뢰의 칼이라고 불렸을 정도였습죠!"
'덕분에 돈에 미친 칼이라고 불렸을 정도였습죠!'
나와 정 반대인 양지에서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을 만나니 여러 감정이 머릿 속을 뒤집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침착하자, 상대는 내가 뭘 했는지 모르잖아? 여기서는 세탁이 되니까 이 기회에 한번 줄 잘 잡아보자. 저런 주인공 같은 사람 옆은 위험하지만 잘만 버텨주면 출세 백프로 하는 타입이야!
"아델 형씨도 혹시 필요한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주십시요, 제가 뭐든 구해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요! 헤헤"
그러다가 새까만 속내가 담긴 부탁을 하면 바로 잡아먹는거다. 항상 하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 종자가 생겼습니다! 가끔씩 발작하면 때려주시면서 교육하시면 회색에서 새하얀 색으로 바껴요!! 헤헤!!
더욱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 이 아가씨는 그냥 우리 세상에서 온 아가씨야... 그냥 패스트푸드 좋아하는 친구구만. 역으로 빼먹을 만한게 없다고 생각이 되서 허탈했지만 어떻게 보면 또 다행이었다. 나 같은 속내가 어두운 것들이 아니니까 맘 편히 말할 수 있겠지.
"흠... 대부분 노력을 하면 되겠지만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저희는 디저트 카페여서요."
하지만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면 또 정이 없지 않은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수제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며 이야기했다.
"아마... 화학조미료가 없어서 맛이 조금 심심하겠지만 대부분 만들려면 만들 수는 있겠군요. 저희가 최대한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고생을 시킨 대가는 제대로 받아낼 생각이었다. 어디보자... 적당히 먹이고 직원으로 부려먹으면 되려나?
"그럼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손님께서는 이 세상 주민이 아니시죠?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마지막 질문은 아마 대부분의 추락자에게 하려고 생각했던 질문이었다. 넌 이 곳에 어쩌다가 오게 된거니? 이유도 없이 신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죽어가던 사람들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 오게 된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하다보면 언젠가는 우릴 이 세상에 보낸 놈도 만날 수 있고, 그러면 아마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종족이라는 말도 영 낯설다. 모든 것을 영원과 필멸만으로 이분하는 그의 특성 상 단번에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개념이었고. 하지만 아주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설명 역시도 일목요연해서, 들은 내용을 잠깐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대강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다.
[ 라클레시아는 친절하구나 ]
그리 쓰인 종이를 보여주며 눈으로는 감탄의 기색 투명하게 반짝인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궁금증이 또 하나.
[ 라클레시아도 뜻이 있어? ]
윈터는 겨울, 알레프는 신. 미하엘은…… 아쉽게도 그때는 물어볼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봐선 미하엘이라는 이름에도 아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잠시 본래의 용무도 잊고 대화에만 집중하던 중, 불쑥 질문이 들어왔다. 그는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그런다고 눈앞에 닥친 상황이 없던 일이 되지는 못하는 법. 결국 느릿느릿 답을 써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 목소리 내는 연습 ] [ 하고 있었어 ]
그렇게 말하는 표정 왜인지 묘한 것이…… 본인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듯싶지만, 아마도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한 눈치였으리라.
풀 죽은 표정으로 시무룩하기도 잠시, 남자가 덧붙이는 말애 소녀가 환한 미소 되찾는다. "정말이지?!" 물론 고려해본다는 말은 확정이란 뜻도 아니지만, 순진하기 짝이 없는 소녀가 그걸 알 수 있을리 만무했다. 아무튼 착한 사람이다! 장사꾼은 원래 이득을 쫓는 게 당연하기에 선악의 구분 따윈 의미없거늘 소녀는 이 남자가 착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보다 이 사람은 치킨이나 피자가 뭔지 알고 있구나. 그럼 지구와 비슷한 기술력이 있는 세계에서 온 걸까? 추측해보기도 잠시 남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음... 게임?"
그 뿐이다. 떨어지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냐 묻는다면 정말 게임만 하고 있었고. 아, 막 컵라면을 먹으려고 하기도 했었다. 다소 빈약하고 싱거운 대답이지만 소녀에겐 그런 자각도 없다.
하지만 소녀의 눈은 거짓 한점 없는 순수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세상에 맙소사, 이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릴 여기로 끌고 온 놈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끌고 온게 아닌 것 같았다.
"진짜로? 시한부라던가?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 허탈해서 게임만 하다가 온거라던가?"
진짜 모르겠다. 대체 이 일을 꾸민 흑막 놈을 우리에게 뭘 원하는걸까? 하다못해 그냥 게임하던 평범한 여자애를 끌고왔다고? 아무 사연도 없는 애를? 좋아, 오늘부터 결심했다. 이 일을 꾸민 흑막 놈은 내가 꼭 잡아서 우리 부하놈들이 잠자고 있는 앞바다에 다이빙을 시켜버릴거다.
"하하... 좋아요, 뭐 게임하다 올 수도 있죠... 음식은 저희가 고려를 해볼게요, 대신 가격이 좀 비쌀 수도 있답니다?"
이젠 아무래도 좋아, 정말 우리에게 즐기라고 하는걸 수도 있잖아? 우선 진짜 장사나 열심히 해야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허탈함에 무기력증이 올 것만 같아...!!
"그럼 간단한 구두 조사는 이쯤하구 서류 하나 작성해주시겠어요?"
그 곳에는 인적사항을 적는 칸들이 적혀있었다.
이름에서부터 나이, 종족, 좋아하는 메뉴, 싫어하는 메뉴, 못 먹는 것 등등... 다양한 종족들이 모인 추락자들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서류였다.
헛기침을 하는 상대에게 의아한 듯, 괜찮으십니까? 하며 물었다. 어째서 갑자기 헛기침을 하는걸까. 노예상 특유의 시취같은건 전혀 나지 않는데, 인간적이지 못했던 일을 했던걸까. 사내가 경계하는 태도가 조금 커졌다. 흐음, 하며 탁한 눈으로, 그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서는.
"만물상이라... 그거 신기한 직업이로군요. 제가 있던 곳에서도 비슷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헌데.."
사내는 조용히, 지팡이를 들어 심음이 들려오는쪽으로 망설임 없이 겨누었다.
"제가 착각한것이 아니라면, 시민증이라 함은, 시민으로써의 권리를 말씀하시는것입니까? 차라리 착각이었으면 좋겠군요. 없는 이들에게서 가장 기본적인 것 마저 빼앗아 고작 몇 푼의 돈과 식량으로 바꾸다니. 그것들을 좋은 일에 썼을 리는 없을테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군 말씀입니까? 하며 물어오는 태연한 듯한 사내의 태도. 허나 알 수 있었다. 두근거리며 미친듯이 뛰는 심장소리. 사내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 땀 소리. 당황. 분노. 초조. 도주. 망설임 없는 가능성들. 그러면서도 머리가 회전하는 소리. 하하, 그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거 아십니까?"
"저는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 말하고는 천천히, 한 발자국 더 그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죠... 거짓말을, 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허나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띈 채로, 사내는 말을 이어갔다.
"계약이 필요하겠군요."
"이전 세계에서의 위법을 처단할 정도로 저는 대단한 이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저 약속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그 전에 한가지."
망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던 그런 종류의 사람 같았다. 아니 그전에 사람은 맞아? 마치 속을 뻔히 꿰뚫어보는 듯한 모습은 평상시 같았다면 욱해서 네가 뭔데 하고 덤벼봤을 상황이었지만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소름돋는 위압감이 있었다.
"에이, 세상물정 너무 모르신다~! 우리 아델형씨!"
난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면서 겨눠진 지팡이를 옆으로 살짝, 공손하게 두손으로 슬며시 밀어내려했다.
"잘 들어보세요, 아무래도 우리가 살던 세상이 달라서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희 세상의 시민증은 그냥 별 것 아니에요. 그 사람의 데이터는 정부기관에 다 입력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냥 시민증은 평범한 자료 조회를 도와주는 용도랍니다."
그러던 중 계약? 이상한 말들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정신은 멀쩡한 사람이 허세로 저런 말을 하는건 아닐테니 뭔가 비장의 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눈이 안보이는데 군인이었다고? 얼마나 사람을 잘 썰면 눈이 안보이는데 군인을 해!?
적어도 그의 검에 썰린 사람 중 한명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난 최대한 자세를 낮춰서 비굴한 말투와 능청맞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만약에 저희가 그런 보험도 없다면 돈을 어찌 돌려받겠습니까? 이 칼이 솔직하게 말씀드리는데 그랬다간 이자는 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할 겁니다요! 그리고 시민증은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조회용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저 위치나 조회 가능한 용도이지요 헤헤... 이제 오해가 좀 풀리셨습니까?"
물론 사는 곳이 확인되면 수금을 하러갔다. 이자를 못받았기 때문에 물건, 혹은 그들의 소중한 것들을 받아가긴 했다. 적어도 나에게 뺐어가던 양아치보단 나은 것 아닌가? 난 아무 것도 얻은게 없이 빼앗기기만 했지, 그들은 내 돈을 가져다 썼는데... 어떻게든 최대한 둘러대려고 했지만 나긋하게 들려오는 아델의 목소리에는 위압감이 실려있었다. 마치 예전에 내게 팔을 빼앗아간 그 로열 영감쟁이와도 같은 느낌의 목소리였다. 결국 난 긴장 속에서 그의 질문에 답을 했다.
"그런데 마가 뭡니까? 저는 그런거 모르는 평범한 인간이랍니다. 우리 형씨가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이 칼이! 설명을 잠시 해드리자면... 저는 순수하게 작성한 계약서에 따라 장사하던 장사꾼이었답니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던 그런 도시 마스코트 같은 사람이 바로 저였답니다!"
통찰은 짧게 번쩍인 직후 다시금 빛을 잃었다. 그것이 그리도 중요하느냐 묻지 않은 것만이 최후의 분별이었으리라. 그는 속사정 제법 깊어 보이는 상대에게 무어라 말 더하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못 해. 나는 너도 정말 좋아하는걸.”
그 대신에 한 차례 소생한 몸을 끌어당겨 더욱 다가갔다. 낡아서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던 마디도, 녹은 피부가 당기는 감촉도, 곳곳이 적출되어 균형이 어긋나 있던 감각도, 이제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죽게 된 것은 조금 아깝지만 그는 이런 점만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온전한 몸이란 게 이토록 개운한 상태였던가? 상쾌한 감각에 상황에 맞지 않게도 기분이 들떴다. 날아간 기억에 대한 염려마저도 미뤄둘 정도로.
“이제 좀 진정됐어?”
목소리는 여전하게도 천연스러운 웃음기 서려 있다. 곁까지 다가간 그는 쓰러진 상대를 앉은 채로 내려보았다. 이에 치렁치렁하게 내려오는 머리칼이 중상자의 위나 피 웅덩이 곁으로 마구 쏟아졌으리라. 그러나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듯했다. 회색이었던 머리 끝이 붉게 물들어갔다.
“나는 ▒̴̨͖̥̣͍̠̓̇̍̍͒͊̅͊͊̿͟이라고 해. 추락자라는 건 너도 알 테고……. 너는 아까 소개했으니까 말 안 해도 돼.”
하나로 들리지 않는 말,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광의의 언어. 대답은 제때 하지 못했지만 아델라이데의 말은 모두 제대로 들어 두었던 모양이다.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몸 일으킨다. 도중에 제 머리카락을 밟아 비척거리긴 했지만서도. ……역시 머리카락은 거슬린다. 일이 다 해결되기만 한다면 얼른 잘라 버려야겠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으니까, 일단 움직이자. 치료 받아야지.”
태도가 마냥 태연했기에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는 잠시 이 거구를 어떻게 옮겨야 할지 고민하다……. 마침내 시도한 방법이란 게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드러누운 부상자의 두 다리를 당겨서 질질 끌고 가려 한 것이다. 인체에 대한 부실한 이해도가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소녀는 황당해하는 남자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한다. "그런 거 아니고, 갇혀있다가 풀려난 뒤로 계속 게임만 하다 온 거야." ...더 아리송한 대답이다. 같은 신들에게 배반당해 하계에 갇히고, 최근 풀려나 인간의 문물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많은 걸 생략해버린 탓에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비, 비싸? 얼마 정도...?"
순간 소녀는, 가격 언급하는 그의 말에 흠칫한다. 너무 비싸면 못 먹을지도 몰라. 더군다나 지금은 돈도 없는데... 잠깐 시무룩해하던 소녀는 곧 남자가 내민 종이를 받아든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묵묵히 작성한다. 이름, 알레프. 나이, 모름. 종족, 신... 상대 입장에선 해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서류를 소녀가 다시금 내민다.
친절하단 말을 유독 많이 듣는 것 같네. 뭐 나쁜 말은 아니니까 감사히 듣고 있다. 이것도 오래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이 유해지고 이해심만 늘어나다보니 생기는 부산물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곧이어 나온 다음 질문, 내 이름엔 뜻이 있냐는 것이었다. 이름엔 다들 뜻이 있겠지만 내 이름 같은 경우엔,
" 있다곤 들었는데 기억이 안나요. 물론 아이에게 지어주는 이름은 가급적 좋은 뜻을 담아서 지어주니까 저도 좋은 뜻이 있겠죠? "
어릴때 할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로는 고대 엘프어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했었는데 그땐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려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주시자는 모든 기억을 다 갖고 있는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정확히는 주시자가 된 이후의 기억만 전부 가지고 있다. 아니었으면 난 어머니 뱃속에 있던 시절부터 모든 기억을 다 갖고 있겠지.
" 라클레시아라는 이름은 길어서 쓰기도 어려우니까 간단하게 라크라고 불러주세요. "
한쪽 눈을 가볍게 윙크하며 대답한 나는 이윽고 이 사람이 밖으로 나온 목적을 들을 수 있었다. 말하기 어려운 것인지 잠깐 망설이는듯 해서 진짜 어디 갈 생각이었나 싶었는데 정작 그가 보여준 이유는 상당히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 목소리 내는 연습? "
그러니까 이렇게 필담으로 얘기를 하는 이유가 목소리 내는 법을 몰라서 그랬다? 내 입장에선 어처구니 없는 말이었지만 여기엔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면 제대로된 방법을 알지 않는 이상 꽤나 힘든게 아닐까 싶었다.
"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려도 되죠? "
나는 그의 손을 잡으려하며 말했다. 잡힌다면 그의 손을 내 목에 가져다대고선 여러가지 발음을 해주었다. 목이 떨리는 느낌을 손으로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목에 적용시킨다면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지막히, 타이르듯 이야기하면서 조심스레 밀어진 지팡이를 그대로 움직여, 팔을 타고 갈비뼈 부근에 대려 했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으나, 일종의 경고에 가까웠다. 자신의 검술은 충분히 당신을 벨 수 있는 정도라고.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으니, 쉽게 넘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마라는 듯.
"제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인지 아십니까?"
"심장소리와 맥 뛰는 소리, 흐르는 땀의 소리,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 혓바닥이 움직이는 소리, 떨리는 목소리..."
"그런 것들로도 충분히 알 수 있지만."
그는 느릿하게 미소지으며.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 말하고는, 곧이어 오해라는 말에 가벼이 귀를 기울인다. 사내는 설명했다. 시민증은 별것 아니라고.
"데이터?"
그리 짧게 되뇌이면서도, 적당히 이해 할 수 있었다. 서류 같은 것으로 이미 정리가 되어 있고, 단순히 개개인이 지니는 소지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인가. 허나-
"그리 가벼운 것이라면, 시민증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텐데요."
여전히 의심하듯 말하면서도, 돈에 관한 사내의 이야기는 진실된것 같았기에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고뇌했다. 평범한 장사치인가.
"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마술서 같은 것으로 보험을 들어놓고, 돈을 빌려 준 뒤에, 그 돈을 빼앗아냈다... 쉽게 말해,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했을 뿐이다, 그 말씀이시지 않습니까? 만물상이라 했으니 사람 역시 다루셨겠지요."
그리 말하면서도, 마와 관련되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기에, 사내는 지팡이를 거두어 탁, 하고 바닥을 짚었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은데.
"하아... 그렇다면 됐습니다. 이렇게 하실까요."
"두가지만 약속해주십시오. 돈이라면 제시하는 금액의 두배를 드릴 테니, 첫번째로."
"마와 관련된 의뢰는 어떤 것도 받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사내는 한 발자국 더 그에게로 다가갔다. 탁한 눈으로, 사내의 기척을 좇으며.
"인간이 아닌 것. 살아 움직이는 시체. 불경한 것. 시귀. 그 무엇이 되었든, 인간이 아닌 자의 의뢰는 받지 마십시오. 그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아닌 불경한 것과 연관이 된다면-"
"제가 직접 경을 벨 것입니다. 저를 쓰러트리실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터입니다."
사내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되도록 도시에 해를 끼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이신만큼 정도를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부탁으로, 도시가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저의 욕심일 뿐이니, 들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으십니까. 내 목숨을 앗아가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당신은 도대체..."
그것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흙 밟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간신히 힘을 짜내어 고개를 든다. 빛무리와 어둠 뿐인 세계에서, 사내는 무엇을 갈구하는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내는 무엇을 눈에 담고자 하는가.
들렸다.
이제 좀 진정되었느냐고 묻는 소리. 치렁치렁하게 흐르는 머리칼이 닿는 감촉. 서늘한 감각.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전혀 들리지 않는 심음. 배어 있지 않은 체취. 그리고.
'▒̴̨͖̥̣͍̠̓̇̍̍͒͊̅͊͊̿͟永'
하나로 들리지 않는 말.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언어. 사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당신은, 당신은.."
"신이군요."
천사, 신, 창조주,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것은 고대의 마법 주문과도 같은 것이리라. 단순히 들어보지 못한 언어 따위가 아니었다. 고작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저런 언어, 저런 개념을 말 할수 있는 것은 분명히 그런 존재이리라. 무슨 농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사내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아! 탄식을 뱉는다. 두 눈에서는 흐르는 피와 섞여,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새빨간 눈물. 사내의 빛과 어둠뿐이던 세계에 새빨간 색깔이 물든다. 그것의 이름은 죄책감이리라. 저것은 마이며 동시에 선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날, 내가 베어 온 그것들에게도 영혼이 있으리라. 내가 베어 온 것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규칙이 있고 법도가 있으며 신이 있으리라. 나는 무엇을 베어왔는가. 나는 무엇을 동경했는가.
내가 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부서질 따름이었다.
사내는 꾸욱, 하고 주먹을 쥐었다. 말아 쥔 주먹에 손톱이 박혀 피가 터져나올때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분했다. 그저 억울했다. 그저, 그저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아파왔다. 심장에 박힌 비수가 수만개의 조각으로 갈라져 미친듯이 진동한다. 사내는 죄책감으로 얼룩져 다시금 피를 토해냈다.
그 아이가 그저 악이었을 뿐이다. 여느 평범한 사람들 처럼. 나는 배신 당했을 뿐이고, 나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선을 행하리라 맹세하고 악을 휘둘러왔다. 많은 것을 베어왔고 위선에 떨며 어리숙하게 눈 먼 장님처럼 행동할 뿐이었다.
사내는 질질 끌려가며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빛과 어둠 뿐이던 세계에 죄책감이라는 새빨간 빛이 새어들어온다. 마치 선악과를 한 입 베어 문 것 처럼.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엣 거짓말 아닌데. 윈터의 말에 나는 좀 당황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총알 한발에 죽을 수도 있다는게 덧없긴하다. 기왕 불로불사를 시켜줄거면 그런 외부 요인으로도 안죽게 해줬어야지 그들의 의중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냥 이러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이 더 컸을 것 같지만.
" 그게 어떤 상상일까요? "
엉뚱한 상상이라,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래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모른다. 알고 있어도 모른다고 할거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딴청을 피웠다가 이내 평소보다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면서 윈터를 바라보았다.
"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저는 모르겠는걸요. "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 그래도 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그래, 내가 생각해도 성급했다. 하지만 급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도 맞다. 아마 동료 주시자들이 보았다면 누군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웃을 것이오, 누군가는 믿지 못하겠다며 눈을 비빌 것이고 누군가는 이건 거짓말이야! 하고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의 조급함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순수한 감정을 부딪힐 수 있는 것이라면,
" 난 당신을 좋아해요, 아마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
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혹시나 누군가 보고 있으면 ... 시선은 좀 피해줬으면 좋겠다. 부끄럽잖아.
역시 거짓이 통하지 않는 고리타분한 타입이었다. 난 내게 다시끔 겨눠진 지팡이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마치 한순간에, 이런 지팡이 따위로도 나 하나는 벨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었다. 강철 팔이 버텨줄까? 에이, 이게 얼마짜리인데... 저런 지팡이 하나 못 막을까? 하지만 도박을 할 자신은 들지 않았다. 아델은 그런 내 사정을 잘 아는지 협박을 이어갔다.
"그것 참... 우연이군요, 하하하... 저도 형씨랑 같은 타입이어서요."
적어도 사람을 믿지 않는 하나의 공통점은 있는걸 보아하니 아예 못해볼 상대는 아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금새 포기하고는 한가지만을 당부했다.
"하하... 우리 아델형씨의 말이면 뭔들 못 들어주겠습니까? 저만 믿으십시요. 신뢰 100퍼센트의 칼이 바로 저랍니다!"
돈을 준다는 말에 그새 또 이 촉새같은 주둥이는 멋대로 나불거렸다. 에휴, 그냥 머리를 싹 다 기계부품으로 갈아끼울걸...
"너무 걱정 마십시..."
당당하게 말을 하던 도중 나는 찔끔했다. 인간이 아닌 것이라... 잠깐만... 어? 식인식물도 포함이야?
망했다. 우리 카페에서 재료공급을 담당한 공급처가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겼다. 식물이 물론 순순히 당해주진 않겠지만 이 인간을 당해내기엔 조금 부족했다. 제대로 된 지성이 아직은 덜 성립된 순수악이니 말이다. 아니 그런데 이 양반 웃긴 양반일세?
그럼 그 악을 베어야지, 왜 나를 베냐! 왜!
당장이라도 따지고 들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바로 나는 당신 적이오 하고 까발리는 격이었다. 아직까진 생존본능이 내 자존심을 이겼다.
"두번째도 아주 쉬운 조건이군요!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저 장사꾼이랍니다, 이번에 하려는 가게도 그저 카페인걸요."
식인식물이 있는 카페지만... 그냥 조경용이라고 둘러대야겠다. 한편으로는 머릿 속에 아델을 이용해먹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식물의 가치가 다해서 거래가 안될 경우 놈이 날 잡아먹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때 아델에게 식인식물이 돌변했다고 한다면? 정의로운 그는 분명 검을 뽑아들것이다. 좋았어, 이거다...!
난 아델과 오늘부터 의형제의 연을 맺기로 다짐했다. 아까까지 느꼈던 열등감은 내 마음에서 눈 녹듯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도 상인 분들은 좋아합니다. 돈으로 어느정도의 신뢰를 살 수 있으니까요... 이야기가 통해서 다행이란 말, 진심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정말이었다. 사내는 노예상같은 끔찍한 이들이 아니라면, 장사치라고 불리는 속물들도 제법 괜찮아 하는 편이었다. 그 역시 인간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다만 신뢰하지 못할 뿐. 배신, 이 어찌 끔찍한 울림일까.
"이렇게 합시다."
그리고 사내는 악수를 청하듯, 손을 뻗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거 아십니까? 저희는 세계를 점멸하며 유랑합니다. 언제쯤 다시 다른 세계로 넘어갈 지 알 수 없죠. 이곳에서의 화폐가 다른 곳에서도 통하지 않으리라는것은, 칼 씨라면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열배로."
금. 가치관이 완전히 뒤집힌 세계가 아니라면 반드시 화폐로 통할 물질이었다. 그 찬란한 광택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은 없으리라. 금이 발에 채이고, 돌이 귀한 세계가 아니라면 말이다.
"마와의 계약은 피로 이루어집니다. 분명 무엇을 제시하든, 끔찍한 대가가 따를 터. 허나 저와의 계약은 깔끔하지요. 열배의 금. 그 무엇을 제시하든. 아아, 영생 같은것이 이루어 질 리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마족들은 그런 나약한 부분을 거침없이 찔러오니..."
"그런 의미에서, 칼 씨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하, 이런 질문을 하니, 오히려 내가 마족같군. 자조적인 웃음을 띄우다, 문득 멈추어진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칼 씨.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군요."
잊어버렸구나. 조금 아쉽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말에는 알겠다고 쓰려다 의문스러운 표정이 된다. 라클레시아가 한쪽 눈을 부자연스럽게 깜빡거린 것이다. …뭐지? 눈에 뭐가 들어갔나. 잠시 아리송하게 생각했지만, 물어볼 정도의 일은 아닌 듯해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 ]
그리고 되묻는 말에 공연히 글쓰기에 열중하는 척 고개를 숙인다. [ 원래는 할 수 있었는데… ] 따위의 말이 한구석에 변명처럼 조그맣게 쓰였을 테다. 그마저도 끄트머리는 벅벅 문질러 지워 버렸고.
그는 라클레시아의 손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겹친 손 가만히 붙잡혀 목까지 가는 동안에는 꼼짝없이 굳어 있었다. 접촉이 싫다기보단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긴장으로 삐걱삐걱 뻣뻣해진 목 간신히 돌려, 라클레시아의 모습과 손에서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해 본다. 그러는 동안 긴장도 조금은 덜해졌다. 그가 반대쪽 손으로는 제 목을 짚고 입을 벌린다. 작은 숨 짧게 들이쉬더니.
……모기보다도 소심한 소리였지만 적어도 듣기 싫은 쇳소리는 아니었을 테다. 첫 발성에 비하자면 장족의 발전이다.
아델이 내민 손을 처음이었다면 거절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 눈에 저 손은 금칠 된 손이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손으로 보였다. 귀한 손을 내 양손으로 받들며 말했다.
"아이고,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부렁을 내뱉겠습니까? 이 신뢰의 대명사인 칼을 믿어주시지요!"
비굴하게 내 주둥이는 그대로 뭐든 필요한게 있으면 말만 해달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하긴, 돈이 최고야. 돈이면 평생 모신 형 뒤통수도 치는게 이 세상인걸?
이후 아델의 말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아델은 마치 내 의문증을 해결해주듯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이야기해주었다. 잠깐... 다른 세상으로 또 넘어간다고? 그러면 가게는? 순간 뒷목이 땡겨왔다. 카페는 그냥 노점상으로 해야하나? 그 어린 신이 들으면 내 햄버거는? 하면서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는데... 식인식물은 그냥 배고프다고 내 멀쩡한 다리 하나 떼 가는거 아냐?!
아, 난 이제 돈이 많지 참?
어느새 눈 앞의 아델은 금덩어리로 바뀌어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충격발언,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열배라...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디메리트가 넘쳐나는 사채와도 갚은 악마와의 계약을 할 리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제안을 듣지 않아도 그 대가의 열배를 금으로 받는다고? 잘됐다, 이제 양 팔도 금으로 도금... 아니 금으로 바꿔야지, 여기 어디 엔지니어 없나몰라?
난 이 날을 기점으로 주인님... 아니 아델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내 영혼이며 빛이고 내 주인이었다. 말만 하면 바로 배 뒤집어 까고 흙바닥에 드러 누을 수도 있었다.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내게 내 빛은 내게 또 다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그만 웃어버렸다. 주먹을 말아쥐고, 입가를 조심스레 가리면서 몇번 더 쿡쿡거리며 숨을 참고 웃었다.
"알기 쉬운 사람은 싫어하지 않아서요."
말 그대로였다. 이것으로 사내와의 신뢰 관계는 어느 정도 쌓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내는 돈을 원했다. 나는 그가 도시를 파괴하지 않기를 원했다. 이제 그는 차라리 누군가 도시를 파괴하겠노라고, 물건을 구해달라고 말해주길 바랄테다. 그러면 내게 다가와 그 정보를 귀띔해주는것으로,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있고, 사내는 많은 금을 얻을 수 있을테니.
"죄송합니다. 그것은 알지 못하나... 아아."
헌데, 말했잖은가. 우리는 서로를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금 더, 사내가 하듯 보험을 들어 둘 필요는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방법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져버린 몸. 조금쯤은 사도를 걷는다고 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거기에- 이것은 단순히 추측일 뿐이니.
소녀는 여전히 억울함을 피력하는 중이다. 맨발로 땅을 쿵쿵 굴러대기도 하면서. 진짜 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간이잖아! "거짓말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이대로 가다간 정말 인내심에 한계가 올 것 같았다. 인내심에 한계가 와봤자 별 뾰족한 수도 없지만.
"서명하면 되잖아, 이 멍청아."
콧김을 씩씩 내뿜으면서도, 남자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 얌전히 사인하는 소녀. 하지만 감정에 휘둘린 소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보지 않았다는 것...
알레프는 예상 외로 너무 쉽게 계약서에 싸인을 해버렸다. 아무래도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아 쉽사리 흥분한 모양인데 내게 있어서는 절호의 찬스였다. 정말 신이라면 부려먹기 좋은... 아니 미지의 존재를 얻게 된거니 비싸게 종교단체에 팔아먹으면 되고 허언증을 가진 소녀라면 알바비 대신 직원으로 부려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을 하던 손이 많아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에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사인을 해주시는 걸 보아하니 이 미천한 인간이 감히 무례를 저지른게 맞군요!"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하며 난 고개숙여 알레프에게 사과를 했다.
"제 이름은 칼이라고 한답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이것저거 다 파는 장사치였죠."
고객님이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신속하고, 정확하게! 라는 문구를 외친 나는 알레프를 달래주며 말했다.
"대신 누명을 쓴 알레프 고객님께는 특별히 할인가에 식사를 제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그래봤자 가격은 내 맘대로였다. 그거 아는가? 사이버넷에서 파는 제품들의 할인률 90%는 의미가 없는 숫자였다. 원래부터 3만 크레딧에 파는걸 90프로 할인한다고 하고는 3만 5천 크레딧에 파니까 말이다.
하지만 칼은 몰랐다. 훗날 이 계약서로 인해 자신에게 엄청난 파국이 닥칠것이란 것을 말이다.
이곳에 머무른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처음에는 평화롭기만 하던 도시에 균열이 이듯 여러 불안한 소문이 들려옵니다. “그거 아는가? 외곽 쪽 땅이 계속 무너진다더군. 그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다쳤던데······.” “아, 들었죠, 들었죠.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무너진 곳에 접근할 수 없게 해두었다지요?” “맞아요. 그러고 보니 지난 번 침입자 이후로 또 누가 중앙에 침입하려 했다더군요.” “겁도 없는 사람이야. 아니, 사람들인가?” “뒷골목 깡패 여럿이 살해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치들은 살해 당해 마땅하죠! 어찌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문제만 일으켰던지······!” “이 사람아, 이 도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된다는 것도 몰라?” “하지만요······.” “그렇거나 말거나, 도시가 불안정하긴 마찬가지네요. 이게 전부 ■■■ 탓일까요?” “관련 없다고는 못하겠지. 에휴, 우리는 우리 일이나 함세.” 문제라곤 없을 것만 같던 도시에 생긴 문제들은, 어쩐지 어떤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결코 평화롭지 않을 거란 것도요.
그가 알았다며 보여준 종이 끄트머리엔 조그맣게 '원래는 할 수 있었는데…' 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말을 원래부터 못한게 아니라 할 수 있었는데 못하게 됐다? 물론 그런 증상을 가진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어증이나 함묵증이 그러하다. 둘 중 어느쪽에 속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 오, 그렇게 하면 되겠는데요? "
영의 손을 잡아서 목에 가져다대고 말을 해주자 그도 반대 손으로 자신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선 무언가 말을 하려는듯 했다. 그리고 엄청 작아서 듣기는 힘들었지만 어쨌든 목소리가 나온 것은 들을 수 있었다. 일단 내는 법을 알았으면 크게 내는건 목에 힘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다르다.
" 거기서 목소리 크기를 키우고 싶으면 목에 힘을 더 주면 됩니다. 이렇게요. "
여전히 그의 손을 붙잡은채라서 나는 목에 다시금 가져다대고선 음의 높낮이를 바꿔가면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근육에 들어가는 힘의 정도라던가 그런 것까진 알려줄 수 없는게 아쉬웠지만 그런건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녀는 뒤늦게라도 들뜬 기색을 감춰보려 하지만, 한 번 품기 시작한 기대는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뒤이은 남자의 말이 그 기대를 더욱 부풀렸으면 부풀렸지.
"...정말? 친구 데려와도 돼?"
소녀는 눈을 번뜩이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라클레시아랑, 라클레시아의 친구랑, 네차흐도 같이? 역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아까 일은 사과도 했고, 누구나 오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니까! 남자가 건넨, 다소 유치한 스티커를 받아든 소녀가 제멋대로 결론 내리고선 고개 끄덕인다.
"그래, 좋아! 이제 화 다 풀렸어."
그러더니 아무 걱정 말라는 듯 방싯 웃어보인다. "칼은 좋은 사람이구나." 사실과는 영 거리가 먼 생각을 두어 마디 덧붙이기도 하고...
인간은 식물에게 열매나 잎을 요구했다. 잎을 새로 내는데는 양분이 필요했다. 그러니 벨트체와 교환하는게 그런 것들이라면 벨트체로 얻는 양분은 잎을 내는데 필요한 양분보다 많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글쎄, 그렇다면 인간의 일방적인 손해가 아닌가. 적은 양분과, 많은 양분을 교환하자니. 믿을수 없다.
"자세히."
인간은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양분과 관계 없이 미각이라는 것으로 더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같은 꿀이라도 더 향긋한 꽃을 찾아가는 벌과도 같은 습성이리라. 그렇다면 양분이 적어도 같거나 높은 가치를 가질수 있겠지. 식물은 납득했다.
그러나 식물은 제 잎과 줄기가 인간에게 무해한지, 선호도가 높은지 알지 못했다. 제 서식지에서 인간은 이미 한참 전에 떠나버렸고 식물은 인간을 추락 후에 처음 만났다. 식물은 어찌되었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제 잎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아 공생이 성립되지 않는다면 뭐, 인간을 땅에 묻어 비료로 쓰면 그만이 아닌가.
식물은 인간을 땅에서 뱉어냈다.
"열매는 맺지 않아. 줄기는 다시 내는 시간이 오래 걸려. 그러니 잎만 줄수 있어."
식물은 잎의 작은 조각을 쭉 찢어 내밀었다. 그는 동물을 잡아 삼키는 포식성 덩굴이었고, 사냥에는 언제나 미끼가 필요한 법이었다. 식물의 잎에서 단 향이 날수 있었던 까닭이다. 미끼가 되기에 충분한, 나무열매를 연상케 하는 향은 충분히 인간의 기호에도 어울리는 것이었다. 거름이 될 뻔 했던 칼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왜 거짓을 말하지 않느냐고, 왜 죽이지 않느냐고, 왜 용서하느냐고. 그 모든 질문의 답은 한 가지 문장으로 귀결된다. 너를 사랑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 역시 사랑하기에. 그저 그뿐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근본적인 이유를 풀어낸다면─ 기억 너머, 어느 세상의 풍광이 선연히 떠오른다. 모두가 주검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 나만을 남겨두고서. 어느 때는 무엇일지라도 좋으니 산 것을 찾고자 했고, 또 어느 때는 하염없이 낙담했다. 언젠가는 차라리 사라지기를 원해 이루어질 리 없는 희망을 하염없이 바라기도 했다.
“……나는 아프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외로웠거든. 네가 날 상처입힌다고 해도 나는 그것마저 기뻐.”
따스한 사랑과 안락한 온정도, 지독한 악의와 서글픈 공포마저도. 진선과 추악 또한 결국 그것을 정의할 ‘타인’이 존재해야만 성립되는 개념이다. 선과 악마저 당신의 있음으로서 존립하리니, 그러니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상관없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사랑하리라고. 과거를 깊이 조명하던 심상에서 벗어나 현재를 돌이킨다. 낭자한 붉은 피가 역설적으로 생을 증명하는 것만 같아, 그가 설핏 웃었다.
“글쎄. 그건 확신 못 해.”
이번에도 신이라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신이라는 존재가 모두 알레프와 같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신이라는 것이 확실한 알레프는 그와도 제법 닮은 점이 많으니 말이다. 이유 없는 적개심을 받아내고 칼에 베여 나갈 때까지도 마냥 평온했던 목소리에 어느덧 근심이 섞여들었다.
“많이 아파?”
그리 말을 걸어 봐도 돌아오는 반응이 조용했다. 자신은 결코 흘리지 못할 눈물. 여태까지도 사람의 생리에 어두운 그는 눈물의 의미 역시 알지 못했으나, 본능의 경종만은 예리하게 울렸다. 서둘러 도시로 돌아가야 했다. 환자를 엉성하게 끌던 것도 잠시.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그는 마침내 보다 효율적이고 적합한 자세를 찾아내었다. 짊어진 상대가 워낙 키가 컸기에 그러고도 다리가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것만은 방도가 없었지만. 다른 신체능력은 평범할지언정 체력만은 손꼽히게 뛰어난 그다. 멈추지 않고 빠른 걸음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관문까지의 거리는 수월하게 좁혀졌으리라. 수상하게 난도질된 차림을 한 채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짊어지고 오느라 한 차례 소동이 일었으나──
아무래도 잎은 인간의 기호에도 맞아 떨어진 모양이다. 입으로는 조금 부족하다고 말했지만, 그가 어떤 식물인가. 싹을 튼 이후로 모든 계절을 짐승을 꾀어 사냥하던 덩굴이 아닌가. 그러니 제 향에 홀린 생물을 알아보지 못할리 없었다. 포식자의 감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인간이 제 잎에 가치를 어떻게 메기든 자신은 충분한 양분만 받아낸다면 그만이다.
인간은 줄기를 내밀었다.
"?"
식물은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 알수 없었다. 이어 인간의 설명이 이어졌다. 악수라, 인간은 줄기를 맞잡는 행위를 통해 신뢰를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식물은 인간의 줄기에 제 줄기를 올렸다.
그게 어떤 상상이냐 되묻는 엘프의 말에 윈터가 꾹 그러쥐고 있던 주먹이 결국 그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팍'하는 소리는 아랫입술을 아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물었던 윈터의 표정과 달리 화난 고양이가 앞발로 툭 치는 것보다도 못한 가볍고 가벼운 충격이었는데. 엘프의 짓궂은 미소에 눈을 질끈 감은 윈터는, 끙- 하고 무언가의 감정을 참아내는 듯한 신음을 흘리더니, 이내 주먹을 한 번 더 내질렀다. 이번의 것은 나약한 인간이었다면 갈비가 두어 대쯤은 금이 갔을 법한, 엄밀히 말해, 감정을 실은 회심의 일격이었다.
"대체 내가 왜 좋은 건데. 내가 네 이상형 이기라도 해? 첫눈에 반해버렸다는 이야기는 그저 헛소리일 뿐이라고. 지금까지. 지금까지..."
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윈터는 여기서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캄캄한 거리의 돌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짓궂게 굴었던 탓일까 처음에 가슴팍에 닿았던 손길은 그냥 얹어놓는 수준이었는데 그 다음으로 날아오는 것은 맞았다간 그대로 골로 갈 수준이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아서 살짝 몸을 피한 것이 다행이었다.
" 이상형은 잊은지 오래에요. "
아니 잊을리 없다. 내가 무언가를 잊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상형이라는 것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한순간에 빠져들곤 했다. 그들 사이에 공통점이라곤 생각나지 않기에 이상형을 무어라 정의하기도 힘들다.
" 나는 행복했어요. 하루도 안되는 시간이지만 ... 좋았어요.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거든요. 나는 모든걸 잊지 못해요. 그리고 떠올리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들은 무진장 많아요. "
가족들이 죽는 모습, 전쟁에 휘말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생화학 병기, 각종 전염병으로 스러져 가는 문명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지금도 떠올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한 몸을 간신히 부여잡은채 나는 윈터에게 얘기했다.
" 그러니까 당신이랑 있으면 이런 기억들은 떠올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어요. 그게 너무 ... 좋았어요. "
내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원래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세월이 지나 묻혔을뿐 본래 그런 사람인 것이다. 나는 윈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는것은 내가 가진 몸뚱아리 그 이외엔 없는 법이다.
" 미안해요, 내가 이기적이라. 그래도 다행이에요, 마음만큼은 전달할 수 있어서. "
나는 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고선 힘겹게 쪼그려앉았다. 주저앉은 윈터의 앞에서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려하며 말했다.
" 윈터의 눈은 아름답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울린건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거 같아요. "
거절 당하긴 했으나 나는 그래도 자리를 지켰다. 이곳을 떠나가는 것은 그녀의 의지일터. 그리고 이 도시에 여관은 하나다. 방을 잡아놓고 위치도 아직 알려주지 않았다.
>>793 그래도 되고(물론 허락 받고) 수행 전 선관 짜듯이 상의 후 올려도 돼. 좀 더 쉽게 하자면, 미하엘과 알레프가 토끼를 잡는 미션을 함께 수행한다 했을 때 미하엘이 토끼를 발견하는 데까지 쓰고, 알레프가 그 뒤를 이어 토끼를 잡는 것을 쓰는 식이야. 물론 이외로 더 괜찮은 방식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돼.
>>840 돈은 받아주긴 해. 1회 이용권을 써도 되고. 그리고 그 외로는 해결법이 있다! 사람들이 경계하고 의심하기 전에 옷을 구했다고 하면 되지~ 하지만 상탈 영이도 제법...? 다윈이 보면 첫 만남이니까 저런 게 취향인가 보군. 할 테고, 미하엘은 손가락 틈으로 보면서 그새 옷 취향이 바뀐 거야? 할 것 같은 느낌~
>>841 로우 양갈래 진짜 너무 귀엽다. 뒤에서 꼬물랑꼬물랑 머리 만져준 후에 만족스러워할 것 같아. 알레프한테도 꽂을 장식해 줘야해. 미하엘이 해준 거면 엄청 흐뭇해할 것 같은 느낌이야. 역시 귀여워~ 하면서 복복박박 귀여워해주기.
아까 상탈이라고 하니까 생각난 티미인데~ 알렢이는 지금 여성체에 가깝다고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론 양성?무성?에 가까워여! 알렢이네 신족들은 인간처럼 후손을 남기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거든여! 애초에 성별이란 개념부터가 모호했다는 느낌? 지금의 알렢이는 인간들이 가진 관념에 따라 자기 성별을 정의한 거에 가까워여! 반대로 남성체(인간들의 기준에서 남성으로 여겨지는) 모습을 취하거나 하는 것도 가능해여~
377 이미_자신을_배신한_전적이_있는_사람이_용서를_빈다면_자캐는_한번쯤은믿어줄수있다_vs_절대믿지못한다 다윈 : 기대가 없다면 믿어주는 것쯤은 할 수 있죠. ▶배신을 당해도 그러려니 할 것 같음. 용서를 비는 것마저도 배신의 하나라면, 그냥 한 번쯤 더 배신 당해주겠다 할 것 같네.
112 자캐의_이상형 다윈 : 으. (으) ▶아아주 오래 전에는 있었겠지만, 지금은 생각도 안 날 것 같아. 다윈, 이야기해주세요!
다윈: 078 종교 다윈 : 신은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톨릭이었었음.
262 무례함과 예의바름 중 어느쪽에 더 가까운지 다윈 : 이 정도면 충분히 예의 있지 않습니까? (낮게 웃음) ▶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듯.
147 울 때의 모습은? 다윈 : 왜요. 내가 울길 바랍니까? ▶이건······ 상상이 안 간다. 진짜.
434 어린_자캐는_천둥번개를_무서워했는가 미하엘 : 어라, 난 지금도 무서워하는데~? (농담투) ▶무서워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서워할 것 같네.
326 자캐는_원하지_않는_이별을_겪은_적이_있는가 미하엘 : (눈동자를 데룩 굴리다가 미소 짓는다.) 글쎄? ▶추락자들은 전부 이별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지.
338 자캐가_죄책감을_느낀_순간이_있는가 미하엘 : 아하하, 내가 그런 걸 왜 느끼겠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렇다. 미하엘, 이야기해주세요!
미하엘: 031 생일파티를 좋아하나요? 미하엘 : 그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구? (놀람) ▶추락자가 된 이후에 날짜 개념이 거의 사라져서 생일파티를 즐기진 못했을 것 같지만, 이전에는 자주 했을 거라 생각해.
194 캐릭터가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미하엘 : 이런 건 다른 사람이 들으면 실망하잖아~ 비밀로 할 거야. ▶보통은 가족이거나 친구들, 선생님 정도긴 하지.
283 캐릭터가 내세우는 점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미하엘 : 엥? 자자, 인터뷰 갑니당~ 거기 추락자 씨. 내 평가 좀 해줄래? ▶일단 다윈의 평가로는 내세우는 점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정신 없는 여자애. 그리고 능력에 관해서는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정도일 듯.
>>908 사냥하지 않는 식물들은 어차피 눈을 못마주치고(?) 사냥하는 식물들은 서로 멀리 있는게 국룰 습성이었어서 가까이 자리잡으면 싸움신청 이런 느낌이었지. 근데 여긴 식물이 아니라 사람들이잖아? 식물이는 사람을 아무래도 (못먹지만)먹이생물쯤으로 보고있으니까(...) 먹이가 주변에 많다고 영역침범으로 느끼진 않는중이야
영주 푹 쉬시고 괜찮아지시길~~~ >>900 앞으로 네차흐라고 더 많이 불러줘야겠어여(??) >>905 ㅋㅋㅋㅋㅋㅋ 사람이 쳐다봐도 아무생각 없는 식물이 귀여워...(?) >>908 알렢이: (울먹) >>909 헉 우는 다윈 보고싶다() 천둥번개 무서워하는 미하엘 귀여워~~~~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일단 따라가보긴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털레털레 코우를 따라가던 메구무는, 그녀가 무기상으로 들어가자 기겁하면서 따라 들어가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작게 속삭였다.
"여기는 와...? 여 주인한테 물어볼라고...?"
물론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교자를 파는 식당의 위치를 묻기엔 너무나 무시무시한 장소였다. 무기상의 점원이나 주인이나 왠지 자신과 코우를 빤히 보는 듯 했지만(당연하다. 손님인줄 알았을테니까) 메구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두가지였다. 코우를 믿거나, 믿지 않거나. 사실 얼마 전 남을 믿었다가 뒷통수 맞은 전적이 있기에 코우를 믿는 건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묻기만 할거제?"
그렇지만 아직 결정을 못 내린 듯, 그는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딱히 쌈박질 하러 온 건 아니어보이고... 그렇다고 무기상에 온 건 무슨 뜻이지? 젠장, 왜 이럴 때만 망설여지는 걸까...
나 역시도 진심으로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것들이 활개치지 않는 세계를 보고 싶었으니. 꼭 평화롭지만도 않을 것 같기는 하였다.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기에. 윈터 양의 세계도 그리 평화로워 보이지는 않았고... 이 사내의 세계 역시도 어떨 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허나 자신은 믿고 있었다. 인간끼리의 다툼은 반드시 끝낼 수 있으리라고.
"제 세계에선 그것들이 활개치고 다녔습니다. 영혼이 없는 마족들, 그들이 세계를 유린하며 벌인 일들은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죠."
"저는 그들을 증오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이 세계에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 이야기하다, 이어지는 질문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마법은 참으로 악독한 것이라, 어쩌면 우리는 저주를 받았을지도 모르죠. 혹은 신같은 존재에게 농락당했을 수도 있고.. 우연이 겹쳐서 세계를 유랑하는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세한 것은 저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군요."
>>971 귀여워...(복복복) 마자마자 영주, 전에 편하게 이어달라구 했잔아~ :3 그러면 음... 약간 기절했다는 느낌으로 독백처럼 잇고, 여관에서 간단하게 치료를 받은 느낌으로(붕대같은거 좀 둘둘 매고..) 눈 떴는데 영이가 지켜보고 있어서 약간 말 거는 그런 느낌으로 이어와도 될까~? 아니면 막레를 원하면 여기서 끊고 다음번에 만나서 돌려도 좋아 ;3
'나는 아프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외로웠거든. 네가 날 상처입힌다고 해도 나는 그것마저 기뻐.'
외로움, 고독. 자신에게도 익숙한 단어였다. 자신 역시도 얼마나 고독했던가. 왕국이 전부 불타 사라져버린 이후로, 심장에 비수가 박힌 이후로 줄곧 외로웠다. 고독했다. 환한 태양같은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 섬길 주군이 있었다. 충성을 바칠 대상이 있었다. 내가 지켜야 할 국민이 있었다. 허나 전부 사라져버렸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무 걱정 없이 세계를 방랑하던 때에는 외롭지 않았다. 언제나 어머니와 함께 있는 기분 마저 들었다. 없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헌데, 얼마나 오랫동안 외로웠으면, 상처입힘 조차 기쁜것일까.
"신이시여, 대체 어디에 계셨나이까."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힘겹게 헐떡이며 질문했다.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전부 이유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전부 이유가 있어서 신께서 나를 굽어 살피지 않으셨노라고, 오히려 벌을 내리셨노라고 그리 믿었다. 전부 나의 잘못이다. 간악하게 인두겁을 뒤집어 쓴 그것에게 속아넘어갔기에, 신께서 분명히 경고하셨을텐데, 그리 믿고 있었기에... 그러나, 원망하지 않는 것 역시 아니었다. 괴로웠다. 심장은 이미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다. 그 정도로, 사내는 괴로웠다.
'...이 ...아파?'
점점 들려오는 소리마저 희미해진다. 세계는 어둡다.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지, 심장이 뛰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사내의 세계는 결국 어둠으로 물들었으니.
"바울 경, 바울 경!"
눈을 뜬다. 많은 소리가 한번에 귓가로 들려와 정신이 혼미하다. 구두굽소리. 칼 부딪치는 소리. 괴성. 함성. 번개 쏘는 소리. 역겨운 시취. 피냄새.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벌떡 몸을 일으킨다.
쿵, 하고 떨어지는 투구와 갑옷 소리. 나 역시 갑옷을 벗어던진다. 퇴각 나팔 길게 울리는 소리. 그리고 일순, 검 부딪힌다. 두근거리며 미친듯이 뛰는 심장소리때문에 적의 위치를 놓칠 일은 없다. 쐐액,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 들려오면 검을 갈라 부딪히고. 몇 합이나 이어졌을까. 백 합은 쉬이 넘었으리라. 이대로면 체력이 다해 쓰러지리라. 나는 날이 나가, 부러지기 직전인 검을 버린다.
"벌써 끝이냐, 심장 파괴자여."
"가로되-"
손 끝을 그러쥔다. 검을 쥐듯이. 츠즛, 하고 빛무리가 모여들고.
"호오."
"심검은 검인 듯 하나 곧 내 마음이니."
"오거라."
천천히 그 자리에서 검을 휘두른다. 초식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몇번이고 연습한 상단 휘두르기.
"베고자 하면 벨 수 있으리라."
첫 합에 녀석의 뿔을 베었다. 빠르게 달려오는 녀석 상대로 다시금 천천히 대각선으로 내려친다. 오른팔과 왼다리가 잘려나가고, 털썩, 떨어지는 소리. 허나 녀석은 계속해서 달려온다. 왼쪽 팔에서 번개 모이는 소리.
"끝이다."
검을 허리춤에 대고 발도한다. 곧 검은 형체도 없이 흩어진다.
고요하다. 이 순간이 내게 속삭여오는것처럼. 쭉 뻗은 검을 역수로 고쳐쥐고 천천히 두 손을 모은다.
털썩, 쓰러지는 소리.
"...훌..륭하다..."
각혈.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바....울 경, .....씨,"
[아저씨.]
뭐?
아니,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일순 뺨에 부드러운 두 손이 닿는다.
[왜 웃고 있어?]
내가, 웃고 있다고? 불타는 도시. 불타는 왕국. 쓰러진 전우들. 죽어간 나의 폐하. 동료들. 나를 사랑하던 이들. 내가 지키려던 것들.
[왜 웃고 있는거야?]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고!!!"
소리지르며 잠에서 깬다. 격통이 온 몸을 덮친다. 수백개의 화살에 꽂힌것같은 격통. 땀으로 푹 젖은 육신. 가쁘게, 허억 허억 숨을 내뱉으며 이마에 손을 짚는다. 대체, 나는...
엘프가 내미는 상냥한 손길을 신경질적으로 툭 쳐낸 윈터의 눈꼬리가 축축하게 젖어있다. 울지 않는다는 것은 바보도 알 수 있는 거짓말이다. 윈터는 분한 표정으로 엘프를 쏘아보았다. 꼴사납게 눈물을 흘린 것에 자존심이 상했을뿐더러 밀어내려 하는데도 마음처럼 모질게 굴질 못하겠기에 더 그랬다. 밤 내린 거리에 사람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희게 켜진 가로등에 비친, 엘프를 올려보는 눈동자는 여실히 주홍으로 반짝였다.
"그런 거라면..."
영생을 살아가며 한번 눈에 담은 기억은 절대 잊지 못하는 그와 반대로, 윈터는 갓 성인이 된 시점에 정신이 머물러있을 뿐이다. 이후로 십수 년, 혹은 그 이상을 더 살아왔음에도, 고된 일을 수없이 겪어왔음에도 그녀의 정신연령은 인간 나이로 이십 대 초반 정도에 머물러있다는 말이다. 그처럼 보아왔던 모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편적으로 남은 기억들은 어린 소녀가 감내하기 어려운 것들뿐이라. 더 무서웠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를 빼놓으면, 윈터도 싫은 기억이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살면서 본 적 없던 새파란 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좋았고, 호기심 많은 사슴과 토끼, 기분 좋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평화로운 세상과 친절한 주민들이 그저 좋았을 뿐이다. 함께 있으면서 그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다는 말. 그 말이 윈터에게 있어서는 조금은 커다란 의미로 다가와서.
"계속 곁에 있어 줘.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 "그러니까, 결혼하자는 말이 아니라...! 그냥 친구로...."
사실 지난번 이상한 소리를 냈던 것이 아직까지도 마음에 걸리던 참이다. 그동안 밤중에 몰래 나와 연습을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곁에 있으니 바짝 든 긴장이 좀처럼 빠지지 않아서, 도리어 목이 막히는 기분이다. 좀처럼 방금의 발성이 재현되지 않아 골머리를 썩이던 중 라클레시아가 말하길.
“……벌,”
아직은 갑자기 큰 소리 내기까진 무리였던 모양이다. 열렸던 말문 도로 닫혔다.
[ 벌써? ]
하려던 말 종이에 대신 써 보인 그의 기색은 조금 당황한 듯싶었다.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는 경험부터 생소하긴 했지만 그보다도…… 뭐랄까. 언제나 시간만이 무한하던 세상에서 살아 왔기에, 그의 시간 관념은 불사신이란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넉넉한 면이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 빠른 진도와 적극적인 교육열에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필담이 불편하다는 건 사실이니까. 알레프와 처음 이야기했을 때도 불을 켜기 전까지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고 말이다. 마침내 마음을 조금 다잡은 그가 짧게 중얼거렸다. 여전히 미미하고 발음이랄 것도 없는 쉬운 말이었지만, 조금 전보다는 목소리의 상태가 나아져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