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소녀는 황당해하는 남자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한다. "그런 거 아니고, 갇혀있다가 풀려난 뒤로 계속 게임만 하다 온 거야." ...더 아리송한 대답이다. 같은 신들에게 배반당해 하계에 갇히고, 최근 풀려나 인간의 문물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많은 걸 생략해버린 탓에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비, 비싸? 얼마 정도...?"
순간 소녀는, 가격 언급하는 그의 말에 흠칫한다. 너무 비싸면 못 먹을지도 몰라. 더군다나 지금은 돈도 없는데... 잠깐 시무룩해하던 소녀는 곧 남자가 내민 종이를 받아든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묵묵히 작성한다. 이름, 알레프. 나이, 모름. 종족, 신... 상대 입장에선 해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서류를 소녀가 다시금 내민다.
친절하단 말을 유독 많이 듣는 것 같네. 뭐 나쁜 말은 아니니까 감사히 듣고 있다. 이것도 오래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이 유해지고 이해심만 늘어나다보니 생기는 부산물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곧이어 나온 다음 질문, 내 이름엔 뜻이 있냐는 것이었다. 이름엔 다들 뜻이 있겠지만 내 이름 같은 경우엔,
" 있다곤 들었는데 기억이 안나요. 물론 아이에게 지어주는 이름은 가급적 좋은 뜻을 담아서 지어주니까 저도 좋은 뜻이 있겠죠? "
어릴때 할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로는 고대 엘프어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했었는데 그땐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려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주시자는 모든 기억을 다 갖고 있는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정확히는 주시자가 된 이후의 기억만 전부 가지고 있다. 아니었으면 난 어머니 뱃속에 있던 시절부터 모든 기억을 다 갖고 있겠지.
" 라클레시아라는 이름은 길어서 쓰기도 어려우니까 간단하게 라크라고 불러주세요. "
한쪽 눈을 가볍게 윙크하며 대답한 나는 이윽고 이 사람이 밖으로 나온 목적을 들을 수 있었다. 말하기 어려운 것인지 잠깐 망설이는듯 해서 진짜 어디 갈 생각이었나 싶었는데 정작 그가 보여준 이유는 상당히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 목소리 내는 연습? "
그러니까 이렇게 필담으로 얘기를 하는 이유가 목소리 내는 법을 몰라서 그랬다? 내 입장에선 어처구니 없는 말이었지만 여기엔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면 제대로된 방법을 알지 않는 이상 꽤나 힘든게 아닐까 싶었다.
"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려도 되죠? "
나는 그의 손을 잡으려하며 말했다. 잡힌다면 그의 손을 내 목에 가져다대고선 여러가지 발음을 해주었다. 목이 떨리는 느낌을 손으로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목에 적용시킨다면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지막히, 타이르듯 이야기하면서 조심스레 밀어진 지팡이를 그대로 움직여, 팔을 타고 갈비뼈 부근에 대려 했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으나, 일종의 경고에 가까웠다. 자신의 검술은 충분히 당신을 벨 수 있는 정도라고.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으니, 쉽게 넘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마라는 듯.
"제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인지 아십니까?"
"심장소리와 맥 뛰는 소리, 흐르는 땀의 소리,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 혓바닥이 움직이는 소리, 떨리는 목소리..."
"그런 것들로도 충분히 알 수 있지만."
그는 느릿하게 미소지으며.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 말하고는, 곧이어 오해라는 말에 가벼이 귀를 기울인다. 사내는 설명했다. 시민증은 별것 아니라고.
"데이터?"
그리 짧게 되뇌이면서도, 적당히 이해 할 수 있었다. 서류 같은 것으로 이미 정리가 되어 있고, 단순히 개개인이 지니는 소지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인가. 허나-
"그리 가벼운 것이라면, 시민증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텐데요."
여전히 의심하듯 말하면서도, 돈에 관한 사내의 이야기는 진실된것 같았기에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고뇌했다. 평범한 장사치인가.
"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마술서 같은 것으로 보험을 들어놓고, 돈을 빌려 준 뒤에, 그 돈을 빼앗아냈다... 쉽게 말해,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했을 뿐이다, 그 말씀이시지 않습니까? 만물상이라 했으니 사람 역시 다루셨겠지요."
그리 말하면서도, 마와 관련되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기에, 사내는 지팡이를 거두어 탁, 하고 바닥을 짚었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은데.
"하아... 그렇다면 됐습니다. 이렇게 하실까요."
"두가지만 약속해주십시오. 돈이라면 제시하는 금액의 두배를 드릴 테니, 첫번째로."
"마와 관련된 의뢰는 어떤 것도 받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사내는 한 발자국 더 그에게로 다가갔다. 탁한 눈으로, 사내의 기척을 좇으며.
"인간이 아닌 것. 살아 움직이는 시체. 불경한 것. 시귀. 그 무엇이 되었든, 인간이 아닌 자의 의뢰는 받지 마십시오. 그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아닌 불경한 것과 연관이 된다면-"
"제가 직접 경을 벨 것입니다. 저를 쓰러트리실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터입니다."
사내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되도록 도시에 해를 끼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이신만큼 정도를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부탁으로, 도시가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저의 욕심일 뿐이니, 들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으십니까. 내 목숨을 앗아가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당신은 도대체..."
그것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흙 밟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간신히 힘을 짜내어 고개를 든다. 빛무리와 어둠 뿐인 세계에서, 사내는 무엇을 갈구하는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내는 무엇을 눈에 담고자 하는가.
들렸다.
이제 좀 진정되었느냐고 묻는 소리. 치렁치렁하게 흐르는 머리칼이 닿는 감촉. 서늘한 감각.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전혀 들리지 않는 심음. 배어 있지 않은 체취. 그리고.
'▒̴̨͖̥̣͍̠̓̇̍̍͒͊̅͊͊̿͟永'
하나로 들리지 않는 말.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언어. 사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당신은, 당신은.."
"신이군요."
천사, 신, 창조주,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것은 고대의 마법 주문과도 같은 것이리라. 단순히 들어보지 못한 언어 따위가 아니었다. 고작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저런 언어, 저런 개념을 말 할수 있는 것은 분명히 그런 존재이리라. 무슨 농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사내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아! 탄식을 뱉는다. 두 눈에서는 흐르는 피와 섞여,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새빨간 눈물. 사내의 빛과 어둠뿐이던 세계에 새빨간 색깔이 물든다. 그것의 이름은 죄책감이리라. 저것은 마이며 동시에 선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날, 내가 베어 온 그것들에게도 영혼이 있으리라. 내가 베어 온 것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규칙이 있고 법도가 있으며 신이 있으리라. 나는 무엇을 베어왔는가. 나는 무엇을 동경했는가.
내가 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부서질 따름이었다.
사내는 꾸욱, 하고 주먹을 쥐었다. 말아 쥔 주먹에 손톱이 박혀 피가 터져나올때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분했다. 그저 억울했다. 그저, 그저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아파왔다. 심장에 박힌 비수가 수만개의 조각으로 갈라져 미친듯이 진동한다. 사내는 죄책감으로 얼룩져 다시금 피를 토해냈다.
그 아이가 그저 악이었을 뿐이다. 여느 평범한 사람들 처럼. 나는 배신 당했을 뿐이고, 나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선을 행하리라 맹세하고 악을 휘둘러왔다. 많은 것을 베어왔고 위선에 떨며 어리숙하게 눈 먼 장님처럼 행동할 뿐이었다.
사내는 질질 끌려가며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빛과 어둠 뿐이던 세계에 죄책감이라는 새빨간 빛이 새어들어온다. 마치 선악과를 한 입 베어 문 것 처럼.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엣 거짓말 아닌데. 윈터의 말에 나는 좀 당황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총알 한발에 죽을 수도 있다는게 덧없긴하다. 기왕 불로불사를 시켜줄거면 그런 외부 요인으로도 안죽게 해줬어야지 그들의 의중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냥 이러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이 더 컸을 것 같지만.
" 그게 어떤 상상일까요? "
엉뚱한 상상이라,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래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모른다. 알고 있어도 모른다고 할거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딴청을 피웠다가 이내 평소보다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면서 윈터를 바라보았다.
"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저는 모르겠는걸요. "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 그래도 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그래, 내가 생각해도 성급했다. 하지만 급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도 맞다. 아마 동료 주시자들이 보았다면 누군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웃을 것이오, 누군가는 믿지 못하겠다며 눈을 비빌 것이고 누군가는 이건 거짓말이야! 하고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의 조급함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순수한 감정을 부딪힐 수 있는 것이라면,
" 난 당신을 좋아해요, 아마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
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혹시나 누군가 보고 있으면 ... 시선은 좀 피해줬으면 좋겠다. 부끄럽잖아.
역시 거짓이 통하지 않는 고리타분한 타입이었다. 난 내게 다시끔 겨눠진 지팡이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마치 한순간에, 이런 지팡이 따위로도 나 하나는 벨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었다. 강철 팔이 버텨줄까? 에이, 이게 얼마짜리인데... 저런 지팡이 하나 못 막을까? 하지만 도박을 할 자신은 들지 않았다. 아델은 그런 내 사정을 잘 아는지 협박을 이어갔다.
"그것 참... 우연이군요, 하하하... 저도 형씨랑 같은 타입이어서요."
적어도 사람을 믿지 않는 하나의 공통점은 있는걸 보아하니 아예 못해볼 상대는 아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금새 포기하고는 한가지만을 당부했다.
"하하... 우리 아델형씨의 말이면 뭔들 못 들어주겠습니까? 저만 믿으십시요. 신뢰 100퍼센트의 칼이 바로 저랍니다!"
돈을 준다는 말에 그새 또 이 촉새같은 주둥이는 멋대로 나불거렸다. 에휴, 그냥 머리를 싹 다 기계부품으로 갈아끼울걸...
"너무 걱정 마십시..."
당당하게 말을 하던 도중 나는 찔끔했다. 인간이 아닌 것이라... 잠깐만... 어? 식인식물도 포함이야?
망했다. 우리 카페에서 재료공급을 담당한 공급처가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겼다. 식물이 물론 순순히 당해주진 않겠지만 이 인간을 당해내기엔 조금 부족했다. 제대로 된 지성이 아직은 덜 성립된 순수악이니 말이다. 아니 그런데 이 양반 웃긴 양반일세?
그럼 그 악을 베어야지, 왜 나를 베냐! 왜!
당장이라도 따지고 들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바로 나는 당신 적이오 하고 까발리는 격이었다. 아직까진 생존본능이 내 자존심을 이겼다.
"두번째도 아주 쉬운 조건이군요!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저 장사꾼이랍니다, 이번에 하려는 가게도 그저 카페인걸요."
식인식물이 있는 카페지만... 그냥 조경용이라고 둘러대야겠다. 한편으로는 머릿 속에 아델을 이용해먹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식물의 가치가 다해서 거래가 안될 경우 놈이 날 잡아먹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때 아델에게 식인식물이 돌변했다고 한다면? 정의로운 그는 분명 검을 뽑아들것이다. 좋았어, 이거다...!
난 아델과 오늘부터 의형제의 연을 맺기로 다짐했다. 아까까지 느꼈던 열등감은 내 마음에서 눈 녹듯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도 상인 분들은 좋아합니다. 돈으로 어느정도의 신뢰를 살 수 있으니까요... 이야기가 통해서 다행이란 말, 진심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정말이었다. 사내는 노예상같은 끔찍한 이들이 아니라면, 장사치라고 불리는 속물들도 제법 괜찮아 하는 편이었다. 그 역시 인간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다만 신뢰하지 못할 뿐. 배신, 이 어찌 끔찍한 울림일까.
"이렇게 합시다."
그리고 사내는 악수를 청하듯, 손을 뻗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거 아십니까? 저희는 세계를 점멸하며 유랑합니다. 언제쯤 다시 다른 세계로 넘어갈 지 알 수 없죠. 이곳에서의 화폐가 다른 곳에서도 통하지 않으리라는것은, 칼 씨라면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열배로."
금. 가치관이 완전히 뒤집힌 세계가 아니라면 반드시 화폐로 통할 물질이었다. 그 찬란한 광택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은 없으리라. 금이 발에 채이고, 돌이 귀한 세계가 아니라면 말이다.
"마와의 계약은 피로 이루어집니다. 분명 무엇을 제시하든, 끔찍한 대가가 따를 터. 허나 저와의 계약은 깔끔하지요. 열배의 금. 그 무엇을 제시하든. 아아, 영생 같은것이 이루어 질 리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마족들은 그런 나약한 부분을 거침없이 찔러오니..."
"그런 의미에서, 칼 씨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하, 이런 질문을 하니, 오히려 내가 마족같군. 자조적인 웃음을 띄우다, 문득 멈추어진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칼 씨.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