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역시 거짓이 통하지 않는 고리타분한 타입이었다. 난 내게 다시끔 겨눠진 지팡이를 힐끔 내려다보았다. 마치 한순간에, 이런 지팡이 따위로도 나 하나는 벨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었다. 강철 팔이 버텨줄까? 에이, 이게 얼마짜리인데... 저런 지팡이 하나 못 막을까? 하지만 도박을 할 자신은 들지 않았다. 아델은 그런 내 사정을 잘 아는지 협박을 이어갔다.
"그것 참... 우연이군요, 하하하... 저도 형씨랑 같은 타입이어서요."
적어도 사람을 믿지 않는 하나의 공통점은 있는걸 보아하니 아예 못해볼 상대는 아니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금새 포기하고는 한가지만을 당부했다.
"하하... 우리 아델형씨의 말이면 뭔들 못 들어주겠습니까? 저만 믿으십시요. 신뢰 100퍼센트의 칼이 바로 저랍니다!"
돈을 준다는 말에 그새 또 이 촉새같은 주둥이는 멋대로 나불거렸다. 에휴, 그냥 머리를 싹 다 기계부품으로 갈아끼울걸...
"너무 걱정 마십시..."
당당하게 말을 하던 도중 나는 찔끔했다. 인간이 아닌 것이라... 잠깐만... 어? 식인식물도 포함이야?
망했다. 우리 카페에서 재료공급을 담당한 공급처가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겼다. 식물이 물론 순순히 당해주진 않겠지만 이 인간을 당해내기엔 조금 부족했다. 제대로 된 지성이 아직은 덜 성립된 순수악이니 말이다. 아니 그런데 이 양반 웃긴 양반일세?
그럼 그 악을 베어야지, 왜 나를 베냐! 왜!
당장이라도 따지고 들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바로 나는 당신 적이오 하고 까발리는 격이었다. 아직까진 생존본능이 내 자존심을 이겼다.
"두번째도 아주 쉬운 조건이군요!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저 장사꾼이랍니다, 이번에 하려는 가게도 그저 카페인걸요."
식인식물이 있는 카페지만... 그냥 조경용이라고 둘러대야겠다. 한편으로는 머릿 속에 아델을 이용해먹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식물의 가치가 다해서 거래가 안될 경우 놈이 날 잡아먹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때 아델에게 식인식물이 돌변했다고 한다면? 정의로운 그는 분명 검을 뽑아들것이다. 좋았어, 이거다...!
난 아델과 오늘부터 의형제의 연을 맺기로 다짐했다. 아까까지 느꼈던 열등감은 내 마음에서 눈 녹듯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도 상인 분들은 좋아합니다. 돈으로 어느정도의 신뢰를 살 수 있으니까요... 이야기가 통해서 다행이란 말, 진심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정말이었다. 사내는 노예상같은 끔찍한 이들이 아니라면, 장사치라고 불리는 속물들도 제법 괜찮아 하는 편이었다. 그 역시 인간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다만 신뢰하지 못할 뿐. 배신, 이 어찌 끔찍한 울림일까.
"이렇게 합시다."
그리고 사내는 악수를 청하듯, 손을 뻗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거 아십니까? 저희는 세계를 점멸하며 유랑합니다. 언제쯤 다시 다른 세계로 넘어갈 지 알 수 없죠. 이곳에서의 화폐가 다른 곳에서도 통하지 않으리라는것은, 칼 씨라면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열배로."
금. 가치관이 완전히 뒤집힌 세계가 아니라면 반드시 화폐로 통할 물질이었다. 그 찬란한 광택을 좋아하지 않는 인간은 없으리라. 금이 발에 채이고, 돌이 귀한 세계가 아니라면 말이다.
"마와의 계약은 피로 이루어집니다. 분명 무엇을 제시하든, 끔찍한 대가가 따를 터. 허나 저와의 계약은 깔끔하지요. 열배의 금. 그 무엇을 제시하든. 아아, 영생 같은것이 이루어 질 리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마족들은 그런 나약한 부분을 거침없이 찔러오니..."
"그런 의미에서, 칼 씨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하, 이런 질문을 하니, 오히려 내가 마족같군. 자조적인 웃음을 띄우다, 문득 멈추어진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칼 씨.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군요."
잊어버렸구나. 조금 아쉽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말에는 알겠다고 쓰려다 의문스러운 표정이 된다. 라클레시아가 한쪽 눈을 부자연스럽게 깜빡거린 것이다. …뭐지? 눈에 뭐가 들어갔나. 잠시 아리송하게 생각했지만, 물어볼 정도의 일은 아닌 듯해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 ]
그리고 되묻는 말에 공연히 글쓰기에 열중하는 척 고개를 숙인다. [ 원래는 할 수 있었는데… ] 따위의 말이 한구석에 변명처럼 조그맣게 쓰였을 테다. 그마저도 끄트머리는 벅벅 문질러 지워 버렸고.
그는 라클레시아의 손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겹친 손 가만히 붙잡혀 목까지 가는 동안에는 꼼짝없이 굳어 있었다. 접촉이 싫다기보단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긴장으로 삐걱삐걱 뻣뻣해진 목 간신히 돌려, 라클레시아의 모습과 손에서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해 본다. 그러는 동안 긴장도 조금은 덜해졌다. 그가 반대쪽 손으로는 제 목을 짚고 입을 벌린다. 작은 숨 짧게 들이쉬더니.
……모기보다도 소심한 소리였지만 적어도 듣기 싫은 쇳소리는 아니었을 테다. 첫 발성에 비하자면 장족의 발전이다.
아델이 내민 손을 처음이었다면 거절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내 눈에 저 손은 금칠 된 손이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손으로 보였다. 귀한 손을 내 양손으로 받들며 말했다.
"아이고,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부렁을 내뱉겠습니까? 이 신뢰의 대명사인 칼을 믿어주시지요!"
비굴하게 내 주둥이는 그대로 뭐든 필요한게 있으면 말만 해달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하긴, 돈이 최고야. 돈이면 평생 모신 형 뒤통수도 치는게 이 세상인걸?
이후 아델의 말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아델은 마치 내 의문증을 해결해주듯이 이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를 이야기해주었다. 잠깐... 다른 세상으로 또 넘어간다고? 그러면 가게는? 순간 뒷목이 땡겨왔다. 카페는 그냥 노점상으로 해야하나? 그 어린 신이 들으면 내 햄버거는? 하면서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는데... 식인식물은 그냥 배고프다고 내 멀쩡한 다리 하나 떼 가는거 아냐?!
아, 난 이제 돈이 많지 참?
어느새 눈 앞의 아델은 금덩어리로 바뀌어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충격발언,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열배라...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디메리트가 넘쳐나는 사채와도 갚은 악마와의 계약을 할 리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제안을 듣지 않아도 그 대가의 열배를 금으로 받는다고? 잘됐다, 이제 양 팔도 금으로 도금... 아니 금으로 바꿔야지, 여기 어디 엔지니어 없나몰라?
난 이 날을 기점으로 주인님... 아니 아델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내 영혼이며 빛이고 내 주인이었다. 말만 하면 바로 배 뒤집어 까고 흙바닥에 드러 누을 수도 있었다. 감격에 눈물을 흘리는 내게 내 빛은 내게 또 다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그만 웃어버렸다. 주먹을 말아쥐고, 입가를 조심스레 가리면서 몇번 더 쿡쿡거리며 숨을 참고 웃었다.
"알기 쉬운 사람은 싫어하지 않아서요."
말 그대로였다. 이것으로 사내와의 신뢰 관계는 어느 정도 쌓였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내는 돈을 원했다. 나는 그가 도시를 파괴하지 않기를 원했다. 이제 그는 차라리 누군가 도시를 파괴하겠노라고, 물건을 구해달라고 말해주길 바랄테다. 그러면 내게 다가와 그 정보를 귀띔해주는것으로,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있고, 사내는 많은 금을 얻을 수 있을테니.
"죄송합니다. 그것은 알지 못하나... 아아."
헌데, 말했잖은가. 우리는 서로를 믿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금 더, 사내가 하듯 보험을 들어 둘 필요는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방법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미 떨어질대로 떨어져버린 몸. 조금쯤은 사도를 걷는다고 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거기에- 이것은 단순히 추측일 뿐이니.
소녀는 여전히 억울함을 피력하는 중이다. 맨발로 땅을 쿵쿵 굴러대기도 하면서. 진짜 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간이잖아! "거짓말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이대로 가다간 정말 인내심에 한계가 올 것 같았다. 인내심에 한계가 와봤자 별 뾰족한 수도 없지만.
"서명하면 되잖아, 이 멍청아."
콧김을 씩씩 내뿜으면서도, 남자가 내미는 종이를 받아 얌전히 사인하는 소녀. 하지만 감정에 휘둘린 소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보지 않았다는 것...
알레프는 예상 외로 너무 쉽게 계약서에 싸인을 해버렸다. 아무래도 여린 마음에 상처를 받아 쉽사리 흥분한 모양인데 내게 있어서는 절호의 찬스였다. 정말 신이라면 부려먹기 좋은... 아니 미지의 존재를 얻게 된거니 비싸게 종교단체에 팔아먹으면 되고 허언증을 가진 소녀라면 알바비 대신 직원으로 부려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떤 일을 하던 손이 많아야 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에고, 감사합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사인을 해주시는 걸 보아하니 이 미천한 인간이 감히 무례를 저지른게 맞군요!"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하며 난 고개숙여 알레프에게 사과를 했다.
"제 이름은 칼이라고 한답니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이것저거 다 파는 장사치였죠."
고객님이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신속하고, 정확하게! 라는 문구를 외친 나는 알레프를 달래주며 말했다.
"대신 누명을 쓴 알레프 고객님께는 특별히 할인가에 식사를 제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그래봤자 가격은 내 맘대로였다. 그거 아는가? 사이버넷에서 파는 제품들의 할인률 90%는 의미가 없는 숫자였다. 원래부터 3만 크레딧에 파는걸 90프로 할인한다고 하고는 3만 5천 크레딧에 파니까 말이다.
하지만 칼은 몰랐다. 훗날 이 계약서로 인해 자신에게 엄청난 파국이 닥칠것이란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