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적으로 상황극판의 규칙을 따릅니다. 2. 모니터 뒤에 사람 있음을 알고 언행에 주의하도록 합니다. 3. 무언가 요구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는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도록 합니다. 4. 15금 어장으로 도가 지나친 선정적, 잔인함을 유의하여 활동합니다. 5. 활동에 있어 밝히기 어려운 질문은 웹박수를, 그 외는 캡틴에게 질문하면 성심성의껏 안내드립니다. 6.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생긴 문제는 속에 담아두지 말고 말해야할 것은 말하도록 합니다. 7. 무조건적인 반응은 아니더라도 인사는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도록 합니다. 8. 모두 현생이 있는 사람들인 만큼 건강도 챙겨가며 즐기도록 합니다.
사실 종족이라는 말도 영 낯설다. 모든 것을 영원과 필멸만으로 이분하는 그의 특성 상 단번에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개념이었고. 하지만 아주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설명 역시도 일목요연해서, 들은 내용을 잠깐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대강이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다.
[ 라클레시아는 친절하구나 ]
그리 쓰인 종이를 보여주며 눈으로는 감탄의 기색 투명하게 반짝인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궁금증이 또 하나.
[ 라클레시아도 뜻이 있어? ]
윈터는 겨울, 알레프는 신. 미하엘은…… 아쉽게도 그때는 물어볼 생각을 못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봐선 미하엘이라는 이름에도 아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잠시 본래의 용무도 잊고 대화에만 집중하던 중, 불쑥 질문이 들어왔다. 그는 곧장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시선을 돌린다. 하지만 그런다고 눈앞에 닥친 상황이 없던 일이 되지는 못하는 법. 결국 느릿느릿 답을 써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 목소리 내는 연습 ] [ 하고 있었어 ]
그렇게 말하는 표정 왜인지 묘한 것이…… 본인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듯싶지만, 아마도 조금 부끄러워하는 듯한 눈치였으리라.
풀 죽은 표정으로 시무룩하기도 잠시, 남자가 덧붙이는 말애 소녀가 환한 미소 되찾는다. "정말이지?!" 물론 고려해본다는 말은 확정이란 뜻도 아니지만, 순진하기 짝이 없는 소녀가 그걸 알 수 있을리 만무했다. 아무튼 착한 사람이다! 장사꾼은 원래 이득을 쫓는 게 당연하기에 선악의 구분 따윈 의미없거늘 소녀는 이 남자가 착한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보다 이 사람은 치킨이나 피자가 뭔지 알고 있구나. 그럼 지구와 비슷한 기술력이 있는 세계에서 온 걸까? 추측해보기도 잠시 남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음... 게임?"
그 뿐이다. 떨어지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냐 묻는다면 정말 게임만 하고 있었고. 아, 막 컵라면을 먹으려고 하기도 했었다. 다소 빈약하고 싱거운 대답이지만 소녀에겐 그런 자각도 없다.
하지만 소녀의 눈은 거짓 한점 없는 순수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세상에 맙소사, 이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릴 여기로 끌고 온 놈은 뭔가 목적이 있어서 끌고 온게 아닌 것 같았다.
"진짜로? 시한부라던가? 부모님의 원수를 갚고 허탈해서 게임만 하다가 온거라던가?"
진짜 모르겠다. 대체 이 일을 꾸민 흑막 놈을 우리에게 뭘 원하는걸까? 하다못해 그냥 게임하던 평범한 여자애를 끌고왔다고? 아무 사연도 없는 애를? 좋아, 오늘부터 결심했다. 이 일을 꾸민 흑막 놈은 내가 꼭 잡아서 우리 부하놈들이 잠자고 있는 앞바다에 다이빙을 시켜버릴거다.
"하하... 좋아요, 뭐 게임하다 올 수도 있죠... 음식은 저희가 고려를 해볼게요, 대신 가격이 좀 비쌀 수도 있답니다?"
이젠 아무래도 좋아, 정말 우리에게 즐기라고 하는걸 수도 있잖아? 우선 진짜 장사나 열심히 해야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허탈함에 무기력증이 올 것만 같아...!!
"그럼 간단한 구두 조사는 이쯤하구 서류 하나 작성해주시겠어요?"
그 곳에는 인적사항을 적는 칸들이 적혀있었다.
이름에서부터 나이, 종족, 좋아하는 메뉴, 싫어하는 메뉴, 못 먹는 것 등등... 다양한 종족들이 모인 추락자들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서류였다.
헛기침을 하는 상대에게 의아한 듯, 괜찮으십니까? 하며 물었다. 어째서 갑자기 헛기침을 하는걸까. 노예상 특유의 시취같은건 전혀 나지 않는데, 인간적이지 못했던 일을 했던걸까. 사내가 경계하는 태도가 조금 커졌다. 흐음, 하며 탁한 눈으로, 그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서는.
"만물상이라... 그거 신기한 직업이로군요. 제가 있던 곳에서도 비슷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헌데.."
사내는 조용히, 지팡이를 들어 심음이 들려오는쪽으로 망설임 없이 겨누었다.
"제가 착각한것이 아니라면, 시민증이라 함은, 시민으로써의 권리를 말씀하시는것입니까? 차라리 착각이었으면 좋겠군요. 없는 이들에게서 가장 기본적인 것 마저 빼앗아 고작 몇 푼의 돈과 식량으로 바꾸다니. 그것들을 좋은 일에 썼을 리는 없을테고요. 그렇지 않습니까?"
군 말씀입니까? 하며 물어오는 태연한 듯한 사내의 태도. 허나 알 수 있었다. 두근거리며 미친듯이 뛰는 심장소리. 사내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 땀 소리. 당황. 분노. 초조. 도주. 망설임 없는 가능성들. 그러면서도 머리가 회전하는 소리. 하하, 그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거 아십니까?"
"저는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 말하고는 천천히, 한 발자국 더 그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죠... 거짓말을, 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허나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띈 채로, 사내는 말을 이어갔다.
"계약이 필요하겠군요."
"이전 세계에서의 위법을 처단할 정도로 저는 대단한 이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저 약속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만. 그 전에 한가지."
망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던 그런 종류의 사람 같았다. 아니 그전에 사람은 맞아? 마치 속을 뻔히 꿰뚫어보는 듯한 모습은 평상시 같았다면 욱해서 네가 뭔데 하고 덤벼봤을 상황이었지만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소름돋는 위압감이 있었다.
"에이, 세상물정 너무 모르신다~! 우리 아델형씨!"
난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면서 겨눠진 지팡이를 옆으로 살짝, 공손하게 두손으로 슬며시 밀어내려했다.
"잘 들어보세요, 아무래도 우리가 살던 세상이 달라서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희 세상의 시민증은 그냥 별 것 아니에요. 그 사람의 데이터는 정부기관에 다 입력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냥 시민증은 평범한 자료 조회를 도와주는 용도랍니다."
그러던 중 계약? 이상한 말들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정신은 멀쩡한 사람이 허세로 저런 말을 하는건 아닐테니 뭔가 비장의 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눈이 안보이는데 군인이었다고? 얼마나 사람을 잘 썰면 눈이 안보이는데 군인을 해!?
적어도 그의 검에 썰린 사람 중 한명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난 최대한 자세를 낮춰서 비굴한 말투와 능청맞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만약에 저희가 그런 보험도 없다면 돈을 어찌 돌려받겠습니까? 이 칼이 솔직하게 말씀드리는데 그랬다간 이자는 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할 겁니다요! 그리고 시민증은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조회용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저 위치나 조회 가능한 용도이지요 헤헤... 이제 오해가 좀 풀리셨습니까?"
물론 사는 곳이 확인되면 수금을 하러갔다. 이자를 못받았기 때문에 물건, 혹은 그들의 소중한 것들을 받아가긴 했다. 적어도 나에게 뺐어가던 양아치보단 나은 것 아닌가? 난 아무 것도 얻은게 없이 빼앗기기만 했지, 그들은 내 돈을 가져다 썼는데... 어떻게든 최대한 둘러대려고 했지만 나긋하게 들려오는 아델의 목소리에는 위압감이 실려있었다. 마치 예전에 내게 팔을 빼앗아간 그 로열 영감쟁이와도 같은 느낌의 목소리였다. 결국 난 긴장 속에서 그의 질문에 답을 했다.
"그런데 마가 뭡니까? 저는 그런거 모르는 평범한 인간이랍니다. 우리 형씨가 잘 모르는 것 같으니 이 칼이! 설명을 잠시 해드리자면... 저는 순수하게 작성한 계약서에 따라 장사하던 장사꾼이었답니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던 그런 도시 마스코트 같은 사람이 바로 저였답니다!"
통찰은 짧게 번쩍인 직후 다시금 빛을 잃었다. 그것이 그리도 중요하느냐 묻지 않은 것만이 최후의 분별이었으리라. 그는 속사정 제법 깊어 보이는 상대에게 무어라 말 더하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못 해. 나는 너도 정말 좋아하는걸.”
그 대신에 한 차례 소생한 몸을 끌어당겨 더욱 다가갔다. 낡아서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던 마디도, 녹은 피부가 당기는 감촉도, 곳곳이 적출되어 균형이 어긋나 있던 감각도, 이제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죽게 된 것은 조금 아깝지만 그는 이런 점만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온전한 몸이란 게 이토록 개운한 상태였던가? 상쾌한 감각에 상황에 맞지 않게도 기분이 들떴다. 날아간 기억에 대한 염려마저도 미뤄둘 정도로.
“이제 좀 진정됐어?”
목소리는 여전하게도 천연스러운 웃음기 서려 있다. 곁까지 다가간 그는 쓰러진 상대를 앉은 채로 내려보았다. 이에 치렁치렁하게 내려오는 머리칼이 중상자의 위나 피 웅덩이 곁으로 마구 쏟아졌으리라. 그러나 그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듯했다. 회색이었던 머리 끝이 붉게 물들어갔다.
“나는 ▒̴̨͖̥̣͍̠̓̇̍̍͒͊̅͊͊̿͟이라고 해. 추락자라는 건 너도 알 테고……. 너는 아까 소개했으니까 말 안 해도 돼.”
하나로 들리지 않는 말,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광의의 언어. 대답은 제때 하지 못했지만 아델라이데의 말은 모두 제대로 들어 두었던 모양이다.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몸 일으킨다. 도중에 제 머리카락을 밟아 비척거리긴 했지만서도. ……역시 머리카락은 거슬린다. 일이 다 해결되기만 한다면 얼른 잘라 버려야겠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으니까, 일단 움직이자. 치료 받아야지.”
태도가 마냥 태연했기에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는 잠시 이 거구를 어떻게 옮겨야 할지 고민하다……. 마침내 시도한 방법이란 게 무식하기 짝이 없었다. 드러누운 부상자의 두 다리를 당겨서 질질 끌고 가려 한 것이다. 인체에 대한 부실한 이해도가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소녀는 황당해하는 남자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한다. "그런 거 아니고, 갇혀있다가 풀려난 뒤로 계속 게임만 하다 온 거야." ...더 아리송한 대답이다. 같은 신들에게 배반당해 하계에 갇히고, 최근 풀려나 인간의 문물에 매료되었다는 이야기인데... 많은 걸 생략해버린 탓에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비, 비싸? 얼마 정도...?"
순간 소녀는, 가격 언급하는 그의 말에 흠칫한다. 너무 비싸면 못 먹을지도 몰라. 더군다나 지금은 돈도 없는데... 잠깐 시무룩해하던 소녀는 곧 남자가 내민 종이를 받아든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묵묵히 작성한다. 이름, 알레프. 나이, 모름. 종족, 신... 상대 입장에선 해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서류를 소녀가 다시금 내민다.
친절하단 말을 유독 많이 듣는 것 같네. 뭐 나쁜 말은 아니니까 감사히 듣고 있다. 이것도 오래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이 유해지고 이해심만 늘어나다보니 생기는 부산물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곧이어 나온 다음 질문, 내 이름엔 뜻이 있냐는 것이었다. 이름엔 다들 뜻이 있겠지만 내 이름 같은 경우엔,
" 있다곤 들었는데 기억이 안나요. 물론 아이에게 지어주는 이름은 가급적 좋은 뜻을 담아서 지어주니까 저도 좋은 뜻이 있겠죠? "
어릴때 할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로는 고대 엘프어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했었는데 그땐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려버려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주시자는 모든 기억을 다 갖고 있는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정확히는 주시자가 된 이후의 기억만 전부 가지고 있다. 아니었으면 난 어머니 뱃속에 있던 시절부터 모든 기억을 다 갖고 있겠지.
" 라클레시아라는 이름은 길어서 쓰기도 어려우니까 간단하게 라크라고 불러주세요. "
한쪽 눈을 가볍게 윙크하며 대답한 나는 이윽고 이 사람이 밖으로 나온 목적을 들을 수 있었다. 말하기 어려운 것인지 잠깐 망설이는듯 해서 진짜 어디 갈 생각이었나 싶었는데 정작 그가 보여준 이유는 상당히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 목소리 내는 연습? "
그러니까 이렇게 필담으로 얘기를 하는 이유가 목소리 내는 법을 몰라서 그랬다? 내 입장에선 어처구니 없는 말이었지만 여기엔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면 제대로된 방법을 알지 않는 이상 꽤나 힘든게 아닐까 싶었다.
" 그렇다면 제가 도와드려도 되죠? "
나는 그의 손을 잡으려하며 말했다. 잡힌다면 그의 손을 내 목에 가져다대고선 여러가지 발음을 해주었다. 목이 떨리는 느낌을 손으로 느끼고 그것을 자신의 목에 적용시킨다면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지막히, 타이르듯 이야기하면서 조심스레 밀어진 지팡이를 그대로 움직여, 팔을 타고 갈비뼈 부근에 대려 했다. 피하려면 피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으나, 일종의 경고에 가까웠다. 자신의 검술은 충분히 당신을 벨 수 있는 정도라고.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으니, 쉽게 넘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마라는 듯.
"제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인지 아십니까?"
"심장소리와 맥 뛰는 소리, 흐르는 땀의 소리,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 혓바닥이 움직이는 소리, 떨리는 목소리..."
"그런 것들로도 충분히 알 수 있지만."
그는 느릿하게 미소지으며.
"사람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 말하고는, 곧이어 오해라는 말에 가벼이 귀를 기울인다. 사내는 설명했다. 시민증은 별것 아니라고.
"데이터?"
그리 짧게 되뇌이면서도, 적당히 이해 할 수 있었다. 서류 같은 것으로 이미 정리가 되어 있고, 단순히 개개인이 지니는 소지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인가. 허나-
"그리 가벼운 것이라면, 시민증이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을 텐데요."
여전히 의심하듯 말하면서도, 돈에 관한 사내의 이야기는 진실된것 같았기에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고뇌했다. 평범한 장사치인가.
"그렇군요. 이제 알겠습니다."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는 마술서 같은 것으로 보험을 들어놓고, 돈을 빌려 준 뒤에, 그 돈을 빼앗아냈다... 쉽게 말해,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다 했을 뿐이다, 그 말씀이시지 않습니까? 만물상이라 했으니 사람 역시 다루셨겠지요."
그리 말하면서도, 마와 관련되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기에, 사내는 지팡이를 거두어 탁, 하고 바닥을 짚었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은데.
"하아... 그렇다면 됐습니다. 이렇게 하실까요."
"두가지만 약속해주십시오. 돈이라면 제시하는 금액의 두배를 드릴 테니, 첫번째로."
"마와 관련된 의뢰는 어떤 것도 받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사내는 한 발자국 더 그에게로 다가갔다. 탁한 눈으로, 사내의 기척을 좇으며.
"인간이 아닌 것. 살아 움직이는 시체. 불경한 것. 시귀. 그 무엇이 되었든, 인간이 아닌 자의 의뢰는 받지 마십시오. 그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아닌 불경한 것과 연관이 된다면-"
"제가 직접 경을 벨 것입니다. 저를 쓰러트리실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터입니다."
사내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되도록 도시에 해를 끼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이신만큼 정도를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부탁으로, 도시가 불타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저의 욕심일 뿐이니, 들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으십니까. 내 목숨을 앗아가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당신은 도대체..."
그것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흙 밟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간신히 힘을 짜내어 고개를 든다. 빛무리와 어둠 뿐인 세계에서, 사내는 무엇을 갈구하는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사내는 무엇을 눈에 담고자 하는가.
들렸다.
이제 좀 진정되었느냐고 묻는 소리. 치렁치렁하게 흐르는 머리칼이 닿는 감촉. 서늘한 감각.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전혀 들리지 않는 심음. 배어 있지 않은 체취. 그리고.
'▒̴̨͖̥̣͍̠̓̇̍̍͒͊̅͊͊̿͟永'
하나로 들리지 않는 말.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언어. 사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당신은, 당신은.."
"신이군요."
천사, 신, 창조주, 무엇이라고 불러도 좋았다.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것은 고대의 마법 주문과도 같은 것이리라. 단순히 들어보지 못한 언어 따위가 아니었다. 고작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저런 언어, 저런 개념을 말 할수 있는 것은 분명히 그런 존재이리라. 무슨 농간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사내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아! 탄식을 뱉는다. 두 눈에서는 흐르는 피와 섞여, 피눈물이 흘러내린다. 새빨간 눈물. 사내의 빛과 어둠뿐이던 세계에 새빨간 색깔이 물든다. 그것의 이름은 죄책감이리라. 저것은 마이며 동시에 선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날, 내가 베어 온 그것들에게도 영혼이 있으리라. 내가 베어 온 것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규칙이 있고 법도가 있으며 신이 있으리라. 나는 무엇을 베어왔는가. 나는 무엇을 동경했는가.
내가 선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부서질 따름이었다.
사내는 꾸욱, 하고 주먹을 쥐었다. 말아 쥔 주먹에 손톱이 박혀 피가 터져나올때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분했다. 그저 억울했다. 그저, 그저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아파왔다. 심장에 박힌 비수가 수만개의 조각으로 갈라져 미친듯이 진동한다. 사내는 죄책감으로 얼룩져 다시금 피를 토해냈다.
그 아이가 그저 악이었을 뿐이다. 여느 평범한 사람들 처럼. 나는 배신 당했을 뿐이고, 나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선을 행하리라 맹세하고 악을 휘둘러왔다. 많은 것을 베어왔고 위선에 떨며 어리숙하게 눈 먼 장님처럼 행동할 뿐이었다.
사내는 질질 끌려가며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빛과 어둠 뿐이던 세계에 죄책감이라는 새빨간 빛이 새어들어온다. 마치 선악과를 한 입 베어 문 것 처럼. 사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엣 거짓말 아닌데. 윈터의 말에 나는 좀 당황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 총알 한발에 죽을 수도 있다는게 덧없긴하다. 기왕 불로불사를 시켜줄거면 그런 외부 요인으로도 안죽게 해줬어야지 그들의 의중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냥 이러면 재밌겠다- 라는 생각이 더 컸을 것 같지만.
" 그게 어떤 상상일까요? "
엉뚱한 상상이라,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래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직접 말해주지 않는 이상 모른다. 알고 있어도 모른다고 할거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흐음, 하는 소리를 내며 딴청을 피웠다가 이내 평소보다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면서 윈터를 바라보았다.
"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저는 모르겠는걸요. "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 그래도 내 마음과 당신의 마음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그래, 내가 생각해도 성급했다. 하지만 급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던 것도 맞다. 아마 동료 주시자들이 보았다면 누군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웃을 것이오, 누군가는 믿지 못하겠다며 눈을 비빌 것이고 누군가는 이건 거짓말이야! 하고 도망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의 조급함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 순수한 감정을 부딪힐 수 있는 것이라면,
" 난 당신을 좋아해요, 아마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
아,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혹시나 누군가 보고 있으면 ... 시선은 좀 피해줬으면 좋겠다. 부끄럽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