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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각이 옳다고 믿으며 타인의 의사는 무시하고 모조리 죽이겠다는 거잖아?"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으니 괴물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
철현은 유니온을 가리킨 후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잘났으면 시간을 되돌려서 자살해버리지 그래? 그러면 끝 아니야?"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나간다.
"인정할게. 우리의 능력이 가져서는 안되는 보석이라는 점은 말이야."
과거 무고한 사람들을 해친 저지먼트와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인을 일삼던 해피데이, 그리고 분명히 제압된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공격한 저지먼트 부원, 통제할 수 없는 능력으로 고통받는 부원, 자신의 성장속도를 비관하며 학교 밖을 떠도는 스킬 아웃과 그들을 골칫거리 취급하는 학교
최소한 이 곳 밖에서는 이러지 않을 것이다.
교육받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한 이들에게 주어진 강한 힘, 인간 개인이 가지기엔 과분한 힘은 재앙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야? 모두를 죽인다면? 일본이나 프랑스, 독일에게 있는 초능력자까지 모두 죽일꺼야?"
철현은 키득거렸다.
"이거이거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게 또 먹히겠는 걸?" "아니면 비굴하게 더 큰 대가를 주고 초능력자 기술을 얻어오거나"
무심코, 몇 년 전 생각이 났다. 행복 따위 찰나의 꿈이란 듯 잡아주던 손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남겨졌을 때가. 누군가와 이어지는 감각과 그것이 끊어지는 경험을, 동시에 떠안아야만 했던 그 시절이.
왜, 생각났을까. 그 때 이미 부서졌으면, 지금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지도 몰라서, 일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내 것 같지 않았다. 몸도 정신도 다 제각각인 양 들리는 말들도 전부 너무나 멀게 들렸다.
뭔가 말을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희미하게 형태만 남은 정신 위로 차가운 손길이 내려와 덮였다. 내가 대신 해 줄게.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오가는 와중 눈 가린 마른 손 내리는 서늘한 손 있었다. 여전히 눈물 범벅인 눈이 검푸른 머리카락 사이로 유니온을 응시했다. 옅지만 분명하게, 호선을 그린 입술이 움직였다.
"그런 식으로, 네 아버지 핑계를 대며, 도망치려는 거구나. 너."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짧게 이어졌다.
"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벌어진 모든 일에서 눈을 돌리고 도망가려고 해... 사실 알고 있지? 네가 없어진다고, 이 나라에 여기와 같은 곳이,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걸?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거잖아. 그렇지? 이 도시를 세운 기반이 네가 아니면 그만이고, 이 도시를 수립한 사람이 네 아버지가 아니면 그만인 거잖아. 현재의 짐, 무게, 중압감... 그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뿐이잖아. 안 그래? 아니라곤 못 할 걸. 나도 완전히 똑같은 기분이었던 때가 있었으니까. 잘 해봐야 무시, 정도겠지."
크흐, 흐흐흐.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 탓에 일그러진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그래, 나는 알 것 같아. 네가 왜 당장 파멸을 택하지 않고 그렇게 주절주절 떠들며 저지먼트를 상대하는지. 단 한 명에게라도 인정 받고 싶잖아? 네가 할 행동이 정당하다, 그것을 지지한다, 네 뜻을 존중하겠다... 그런데 사실 아는 거야. 누구라도 해도, 너나 네 아버지의 결정을 인정해 줄 사람이 없는 걸. 하물며 저 밖에 날 뛰는 리버티조차, 너와 네 아버지를 부정하기만 할 테니까. 책임지고자 나섰지만, 막상 마주하니 무섭지? 무겁지? 얘, 사실대로 말해 봐. 너, 아버지가 원망스럽지? 하나부터 열까지 너를 위해서라며 저질러놓고, 정작 본인은 저 안에 들어가 편안히 있는 모습을 보면, 당장 뒤엎고 싶어지지? 하지만 무섭지? 그렇게 아무도 모른 채, 인정 하나 받지 못 한 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건 말야... 후흐, 흐흐하하하...!"
다시금 정신 나간 웃음소리가 터졌다. 힘에 겨워 고개를 휘청이면서도 미친 사람마냥 웃고, 또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뚝, 떨어진 고개 아래로 눈물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무력하게 늘어진 몸을 다독이는 손길이 느릿하다. 뒤에서 안아 다독이던 손을 천천히 올려 혜우의 눈을 덮어 가려주려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고개를 올려 유니온을 정확히 마주하고자 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양 발언하는 꼴에 두 눈이 가늘어진다. 책임을 지면 좋겠지만 아버지는 원치 않는다. 오로지 아버지 탓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으니 나는 그럴 것이다, 소중하니 그래야만 한다. 추잡한 변명이다. 본심을 숨기는 자의 비겁한 변명이자, 저런 것이 인첨공의 가장 위에 존재했기 때문에 이 꼴이 났음이 당연한 일이다. 태오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다, 눈을 감았다 떴다.
겁이 많다. 지금도 스스로를 괴물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가여이 여기고, 아버지를 방패로 삼아 두려움을 곱게 포장하고 있었다. 타인에 대해 속단하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이 사람이 이런 사정을 가졌노라, 어떤 삶을 살았노라. 그런 것이 주어진들 사람은 자신조차 납작하게 생각하는데 타인을 어찌 생각하겠나. 그만큼 깊게 곱씹고 오래 보며 눈을 제대로 떠 직시해야 한다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 가치관이 무색하다. 태오의 눈길이 점차 무심해졌다. 인간의 봄은 그리도 짧으나 너는 봄도 볼 수 없을 만큼 쫓기고 살았구나.
"불안하군요, 당신."
태오는 느릿하게 주변을 살폈다. 제각기 스스로의 삶을 변호하며 나서고, 자신의 가치는 파편이 아니라며 하나의 인간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태오는 이 상황에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이내 그만 두었다. 리버티를 막아세워, 지금이라도 그만 둬, 지금부터 바꿀 수 있어. 과연 그 말이 통할까. 저게 변심한다 치면 나머지가 전부 변심할까, 가장 최악의 결과만 생각하고 살았고, 최악의 결과만 보고 산 사람은 희망을 붙들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혀가 붙어버린 듯 단단하게 굳는다. 멸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 '누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줄 알아?' 라고 말해도 들어주기나 할까, 형식상의 사과를 들어 무엇하랴.
"그만 둘 수 없는 이유가 아버지의 뜻 때문은 아닌가 봐요……. 그 사람이 미쳤음을 인정하면서 그만 두지 않는 건, 네 욕심이 더 큰 거잖아요."
대체 내가 여기에서 대화를 해서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운명은 순응하는 것인데.
"당신, 새장을 부순다면서 정작 새장 바깥 야생으로 나서기는 두려웁군요. 욕심이 문제가 아니야…… 당신, 진정 욕심이 두려웠다면 되돌릴 방법이 있으니 휘둘렀겠지. 그게 진정 아버지를 위한 것일 테니."
순응하여 나는.
"진정 새장을 부수면 아버지도 없이 홀로 있겠지. 밖으로 나와서, 만인에게 괴물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겠지. 이곳에서도 그런 시선을 받았는데 바깥이라고 아니할까요. 너로 인해 파생된 것을 보며 눈독 들이는 건 부차적인 문제겠죠……. 너를 풍파에서 지켜주던 아버지는 없고, 새장 밖은 지나치게 넓겠지. 그래서 흔적도 없이 괴물의 파편도 지우면, 아버지와 함께 사라지면 모두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는 그거……."
정녕 끝까지 승천하지 못해야 한단 말인가? 비색 눈동자 주변을 고이 포장한 공막이 검게 물들고 팔에 돋아있던 이식된 비늘이 일순 솟아난다. 아니, 나는 오를 것이다. 아니지, 오르지 못해도 상관 없다.
"단 한 번만이라도, 저지먼트를 신뢰할 수는 없나요."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못한 말이다. 태오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이 말을 올려볼 수 없었다. 암부의 일원이었던 자, 그림자에 암약한 자, 돌아가야만 하는 삶을 가진 자…….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얘기해야만 함을 알았다. 너는 내가 안은 불안을 가졌다. 그러나 그 깊이가 다르다. 기회가 있고, 삶의 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
"넌 괴물도 아니고, 외로운 녀석도 아니게 될 텐데 왜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차나요.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아니하게끔 네게 손 뻗어줄 텐데. 미욱한 힘이더라도, 크리에이터와 싸웠을 적 네가 봐온 것이 있을 텐데."
태오는 유니온의 눈을 정확히 마주치고자 했다. 그 속내를 남김없이 듣고 싶고, 들어주겠다는 듯. 너는 더 이상 강자가 아니다. 저지먼트에게 손 뻗음 받기를 간곡히 호소하나 그 방법이 뒤틀린 학생일 뿐이지.
유니온은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모두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어 그는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기대에 전혀 부응해주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이해해달라고 이러는 거 아니야. 이해를 못하는 것이 당연해. 그냥 너희들 입장에서 나는 너희들에게 죽어달라고 말하는 거잖아. 아주 당연하게 말이야. 물론 나에겐 그게 당연한 결론이긴 한데, 너희들은 당연히 아니겠지. 하지만 적어도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 것도 못 들으면 억울하고 섭섭하잖아. 적어도... 이유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갑자기 너희가 죽는다고 해도 말이야. 뭐, 그조차도 이기적이긴 해. 그런데...나는 왜 이기적이면 안되는 거야? 나에게 수많은 이들이 이기적으로 굴었고, 하다 못해 암부나 일부 과학자들은 엄청 이기적으로 굴고 너희들도 때로는 이기적으로 굴잖아. 그런데 왜 나는 안 되는거야? 죽어야 하는 이유는 아까 설명했잖아. ...이 세상에 초능력자와 초능력자의 파편은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많이 기다려줬어. 아버지는 많이 노력했지. 특히나 에어버스터가 선정되는 그 순간까지도 필사적으로 막았고, 이후에도 이것저것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1년 후라고 다를 것 같아? 왜 달라진다는 보장이 생겨? 지금까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그만둘 순 없어. 이제 와서 그만두기엔 너무 늦었어. ...너희도 그 정도는 알지? 그리고 딱히 너희들에게 깃털이 되어달라고 한 적 없어. 너희들이 어떻게 움직이건 그건 너희들 마음대로잖아? 난 여기서 너희들이 건방지다고 능력을 써서 억누르거나 할 생각은 없어. 뭐... 방어는 하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괴물이 될 생각이야. 난. 돌아갈 생각은 없거든."
"맞아. 희생자 만드는 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어. 4학구 없애버리려고 한 거 봤잖아. 그걸 내가 했는데, 내가 모를까봐? 희생자라는 거 알아. 단지 존재해서는 안되는 '파편'이기에 없애려는 것 뿐이야. 과거라. ...아니지. 아니지. 이건 현재진행형인걸. 너희들도 잘 알지 않아? 어디 대표이사와 그림자만 관여된 문제라고 생각해? 너희들도 스스로 알 거 아니야. '몇몇'은 다른 어둠에게 시달려봤을테니 말이야. 그게 현실이야. 나는 현재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야."
거기서 잠시 말을 끊던 유니온은 다시 모두를 조용히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습니다.
"그래. 후달려. 무서워. 너희들의 말이 맞아. 난 많은 것이 무섭고 힘들어. 나로 인해서 생겨난 모든 것도, 나로 인해서 태어난 모든 비극도, 나로 인해서 겪어야만 하는 모든 아픔도. 내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어. 그저... 그저... 나와 비슷한 이가 좀 더 있었으면 했었어. 하지만 어른들은 그걸 떠나서 더 많은 것을 욕심냈지. 아버지도 절대로 정당하지 않아. 그리고 나 역시도 정당하지 않아. 맞아. 그건 맞아."
"자살도 생각은 해봤지만... 불가능해. ...내가 돌릴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년 정도거든.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한번이 아니라 몇번째일지도 모르지. 아. 이건 농담이야. 그리고... 딱히 원망스럽지도, 인정받고 싶은 것도 아니야. 이런 말을 해도 안 믿기려나. 하지만 진짜야. 인정받을 생각은 없어. 내가 인정받고 싶다면 너희들을 설득했겠지만, 난 딱히 설득하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괴물이라고 부리는 것은 무섭지 않아. 내가 정말로 무서운 것은......"
이어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습니다. 이어 그는 태오를 조금 더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뢰할 수 없냐는 물음에는 마치 답을 피하듯,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설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그게 시간낭비라는 것도 알지? 그러니까 나는 내 방식대로 '책임'을 질 생각이야. 저지먼트. 제로는 말이지. 내 아버지의 데이터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AI는 말이지. 새장을 파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야. 하지만 딱히 너희들 능력자와 싸우기 위한 존재는 아니야. 그저... 계산에 따르면 새장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초능력자'에 가까운 힘이 8개가 필요해. ...그러니까 만들게 한 거야. 내 뜻을 따라주지 않을 7명의 순수한 초능력자 대신... 그에 가까운 또 다른 순수한 초능력자가 말이야. ...과연... 이 8개의 힘이 어떻게 쓰일 것 같아?"
이어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살며시 뒤로 돌았습니다.
"크리에이터와 싸운 것을 봤기에... 더더욱 너희에게 말할게. ...역시 새장은 파괴하고, 순수한 초능력자와 '파편'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말이야. ...너희들이 인정하건, 하지 않건 상관없어. ...내가 느낀 것이 그거니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운명인데... 그냥 마지막이 오는 그날까지 못하던 것이라도 즐겨보는 것은 어때?"
"물론 거절할거지? 하지만 최후의 날은 반드시 올 거야. 그 날 나는 내가 할 일을 하고 모든 것과 사라지겠지. 영원히."
"...발버둥친다고 한들, 너희가 뭐가 가능해?"
그것은 묘하게 저지먼트를 도발하는 듯한 목소리 톤이었습니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갑자기 이렇게 태도가 바뀐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664 그러게 말야, 대체 뭘 바라고 저지먼트 붙들고 그런 요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더라니깐>< 그 순교 해봤자 본인도 별로 이득될 거 없어보이는데. (그런 의미에서 서연이가 한 대사들, 전혀 비굴하지 않았어! 1년이라도 벌어보려고 설득해보는 것도 똑똑했구, 내용들도 다 일리 있던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