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 아앗.. 그렇게 됐구나 🥺 그래도 마무리까지는 잘 이어지길 바라구.. 바이올린이라니 엘레강스해.. >>703 잠깐 오늘 일요일 아냐?? 왜 퇴근이라는 단어가 오늘 보이는거지....? 🥺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니까..! 나메가 스쳐도 동접.. 그런 빈약한 논리
히데미. 왜인지 알고 있어? 여기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야요이라면. 의연하게 그랬으면 좋겠냐고 되물었을테지만, 어째서인지 그렇게 내딛지 못했다. 주저없이 일직선으로. 좋든 나쁘든 '야요이'는 그런 성격탓에 죽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저 너에게 받은 사랑을 품고 이대로 너의 품에 뛰어들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그런 것도 가능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할 수 없었다. 힘이 풀려버린 다리, 목이 매인탓에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
좋아한다. 히데미도, 음악도. 쭉 함께 있고 싶었다. 그렇기에 분명 나와 함께 와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서워. 그렇게나 척척 나아갔던 악보위에서 언제부터인가 헤매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이대로라면 또다시 끝모를 어둠으로 떨어질것만 같아서. 잠시라도 악기를 손에 쥐지 않으면 손이 떨려와. 잊혀지는 것이, 무서워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무서워서......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가면, 언젠가 하나씩 잃어갈 것을 알고 있으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벌벌 떨면서 날을 세우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멍청한 짓을 반복할 뿐이야. 훨씬 어린아이에게 이렇게나 의지하는 모습을 보일정도로.
가볍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미 일어난 일이다. 히데미의 말대로 라인도 있고 하물며 신칸센을 타고 온다면 하룻밤정도면 도착할 거리. 하물며 전업 밴드맨에게 시간은 흘러넘칠정도로 있었고 뭣하면 내가 아야카미로 오면 되는 그 정도의 일이다.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괴로울정도로 맑은 미소가 얼굴에 씌워졌다. 언제였을까. 이제는 기억조차 잘 나지않는 과부처럼. 담담하고, 조금은 탁하게. 아름답고 따뜻하며 슬퍼보이는 그 미소로.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방법따위 스스로도 모르는 주제에.
"인스타랑 트위터. 시작했으니까. 그쪽도 봐."
주위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으레 병원이면 들려야하는 소리도 멈추고 이윽고 두사람의 호흡마저 들리지 않게 된 일순간이 겹쳐서. 어쩐지 조금은 공허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사장님한테도 바로 이야기하고."
무언가 말해주기를, 함께 가고싶다고.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고.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나온 것은 나를 배려하는 한마디였다. 입안이 쓰라리다. 하고싶은 말이 많았다. 차라리 이대로 시간이 멈춰서 서로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 둘만의 공간에 버려진다면 좋겠어. 쓰디쓴 후회의 맛이었다.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히데미는 하려면 뭐든지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주위의 어른한테도, 가끔은 의지해야해. 그, 그러니까...... 괜찮지? 내... 내... 내가! 어... 없......어......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어느샌가 깨져버린 가면에서는 빗방울이 흐르고.
그리고 그 비가 그칠즈음에.
"......고마워."
기억 속의 움츠러들었던 작은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린시절의 추억을 딛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언제나 이게 문제였다. 이번생의 이별은 아니었다.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어. 분명 다시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데도. 내 기억속에서 이별이란 준비하지 않았을때 잊혀지고 끝날 뿐이라.
짧은 인사 후에 정적이 흘렀다. 귓가에 삐이- 이명 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쏟아지려 했던 것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그렇구나, 이제 알겠어. 그토록 어리광을 부리고 숱하게 울었던 나날 모두 이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구나. 비는 그쳤지만, 먹구름은 여전해서. 외면했던 시선을 변덕스레 돌려버렸다.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소나기 위로 우산을 덧대듯 대담하게 침상 모퉁이에 앉아 젖은 얼굴을 바라본다. 어두운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찬란한 미소가 소년을 따라 웃게 한다. 거짓말이 서툴러졌구나. 아직 어른이 되기에 설익은 꼬맹이에게조차 들켜버릴 정도로. 장난스럽게 받아치고 싶었다. 더는 어둡고 무거운 느낌으로 서로 바라보는 건 싫어서. 물론, 히데미는 그런 인내심을 삼킬 만큼 의젓한 아이가 되진 못했다.
"그래 보이나? 근데 우짜지? 내 하나도 안개안타. 같이 가고 싶다. 마 어디가 댔든간에. 억수로 성가실 정도로 찔찔 쫓아가고 싶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언제쯤 전하겠느냐고. 그래서 '이게 내 진심이야.'라고 등 뒤로 감추어 놓은 감정을 나지막한 목소리에 담아냈다. 선배의 통증이 저에게까지 전해져 괴로웠지만, 꾹꾹 눌러담았던 무게를 내려놓자 홀가분해져서 오히려 편한 얼굴로 말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이 노력했다. 톡 건드려도 바스러질 것만 같았던 이 마음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엄마라는 존재를 위해서. 정신없이 달려온 탓에 지금껏 뒤돌아본 적이 없었다.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키만 쑥쑥 커선 여전히 어리광이나 부리는 걸 보면.
"누나야, 남사스러워도 내한테 남은건 이제 누나밖에 없다. 그러니까 없어도 개안나 이런 말 묻지마라. 나.. 누나 없으모 아무것도 몬한다."
지난 여름의 끝자락. 엄마를 떠나보내고 노을이 지는 해변을 바라보며 소년은 물에 발을 담갔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서.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수면 위로 무거운 짐을 내던지고 싶었다. 그런 저를 끌어안은 건 지난날의 추억들. 그 무대 위를 가득 채울 듯 피어나는 선배의 존재감에 서걱이는 모래 위에서 한참을 울어버렸다.
가을이 오기까지, 그리고 아야카미로 돌아오기까지. 아린 성장통이 발목을 붙잡았고,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것만 같았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이렇게 기쁜데. 벌써 이별을 말해버리면 어떡해.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준 건 조몬 야요이라는 인연 덕분인걸.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것 같은 거리네."
금방이라도 넘쳐 흐를 것 같던 눈망울은 얄궂게 기울어 마치 '기억 나?'라고 묻는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 목소리에 그 간질거리는 감정을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려버렸다. 그렇기에 그 소중함이 더욱 크게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 야요이 누나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지. 착각이 아니라고, 서로 증명하기 위해서 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어.
소년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마주치는 시선과 작은 숨소리까지도 모든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