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하우스로 향하는 길, 쫓기는 발소리도 귓가를 가로지르는 바람소리도 모두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건 그런거였나보다.
근 한달여만에 마주한 건물은 여느 때와 같았다. 수년같은 시간을 돌아보며 닿은 감상은 잠시 뒤로 물러둔 채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공연 전 무대는 한산했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음향팀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비었고 분위기는 뭔가 조금 어수선해서. 얼굴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눌 밴드 멤버들도 전원 바빠 보이는 탓에 말 한번 걸어보지 못하고 마침 건너편으로 걸어오는 소지로씨를 급히 잡아 세웠다.
아저씨는 잠깐 나를 못알아본듯 어딘가 어색한 표정이었지만 금방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개구쟁이 꼬맹이는 참을성 없이 부쩍 자라버려 추억 속에 살아 숨 쉬는 그때 그 시절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구나.
잠시 부산스러운 분위기를 피해 소지로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지로씨에게 어머니의 부고를 알리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앞으로 정리해야 할 일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고교 1학년생이 나눌법한 무게는 아니었지만. 좋든 싫든 이제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견뎌야했기에. 소년의 표정은 어울리지 않게 차분했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가다가, 휩쓸려온 대화 뭉치에 덮여 있던 일을 꺼내본다. 소년은 알지 못했다. 아저씨의 얼굴에서 잠깐동안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가는 그 의미를. 사고가 나버렸다고,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버렸다고. 마지못해 이어지는 목소리에 차분히 가라앉아 있던 표정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견뎌내고 있던 무게에 또 다른 깊은 무게감이 내려앉자 머리가 팽 돌아버릴것만 같아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가라앉은 얼굴 틈새로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감당할 수 없는 어린 마음에 저도 모르게 송곳니를 드러내 버렸다. 누군가에게 화를 낸다는 것은 소년에겐 낯선 것이라 그 모습조차 어색하기 짝이 없다. 대화 간에 잠깐 침묵이 흐르고. 히데미는 소지로씨에게 감정을 눌러담지 못한 실수를 사과한다.
"아저씨, 우리 사귀고 있어예. 야요이 누나야랑 저."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높은 건물을 바라보며 히데미는 생각했다.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반나절 만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네. 병원 로비, 안내데스크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지나치며 승강기에 올라 복도를 지난다. 내딛는 발자국 하나하나에 되살아나는 기억.
병실 한켠에 이르러 공백으로 남은 이름표 자리엔 아직도 엄마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은 것만 같다. 내부를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창틈새, 병상 위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나아간다.
바로 옆 호실. 소년은 입구에 걸린 익숙한 이름에 걸음을 멈추었다. 당장 헛웃음이 새어나온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이래서야 남자친구 실격이라고. 자조 섞인 웃음이었을테다.
두 손으로 얼굴을 포갠채 괜히 '그아아-' 앓는 소리나 내면서 바보처럼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화를 낼까, 아니면 울어버릴까, 여름 방학까지의 꼬맹이라면 깊게 생각했을 유치한 고민거리가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아, 억수로 파이다, 오늘."
짜증 섞인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굳게 닫힌 문을 확 열어제낀다. 또박 또박, 힘이 실린 걸음과 그 어느때보다 심술 가득 뾰족한 눈매로. 하지만 창가로 등을 돌리고 있는 야요이 누나의 뒷모습을 보자마자 금방 표정이 누그러져선 입술을 오므린다.
"야지마씨..? 오랜만에 뵙네예. 야요이 누나 지금.."
야지마 마키씨, 완벽하게 막역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누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밴드 멤버들과 몇번 말을 섞어볼 기회정돈 있었다. 혹시 잠든거냐며, 조심스럽게 작아진 목소리로 제 한쪽 뺨에 두 손을 포개 자는 시늉을 하며 묻는다.
야요이는 의사가 들어와 링거액을 다 맞은것을 확인하고 바늘을 빼는 중에도 아무말을 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름은 이미 한참전에 지나갔는데 어느새 장마가 다시 시작되기라도 한건지 우중충한 가을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것 처럼 흐릿한 물냄새가 났다. 숨을 쉬고있을 뿐이지 시체같은 모습에 야지마는 강렬한 기시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구나. 야요이는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그렇게나 아끼는 것도 이해는 갔다.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듯한 반응. 한때 이미 겪어보았던 일이니까.
정확히 말해 그때의 아주머니와 지금의 야요이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개인차-라는 편안한 단어보다는 단순하게 마키는 야요이가 천재이기 때문이라고 받아들였다. 평범한 인간이랑은 다른 음악의 별에서 태어난 무언가가 사람의 모습으로 여기에 있는건 아닐까. 아마도 어릴때부터 봐온 탓에 생긴 오지랖이나... 여동생에 대한 일종의 콩깍지같은 것일테지만.
정신력이라기보다는 광신. 일종의 신앙이 아닐까. 아주머니가 돌아가셨신 그날을 기점으로 오늘 하루 기타를 손에 쥐지 못하면 지금 당장 죽어버릴 사람처럼 미친듯이 연습에 매달리는 탓에 학교까지 보내가면서 좀 멀쩡한 생활을 하길 바랬는데. 어쩐지 이제는 좀더 멀어진것 같았다. 아이는 크고 나면 집을 떠난다는걸까. 나이차이는 별로 안나지만. 팬들은 그런 야요이를 흠집조차 나지 않을정도로 강인한 천재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이미 부숴져버린 탓에 사고의 구조가 망가져버렸다는 건 알아채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매달리는 것이 강한 정신이라고 한다면 더이상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한마디만 하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강철같은 정신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뿐인 이야기다.
실제로도 야요이는 오늘 하루를 못견디겠다는 것 처럼 방금 전에는 대화가 끝나자마자 거칠게 바늘을 쥐어 뽑은 탓에 이미 한 번 피범벅이 되었고 그 탓에 나는 모처럼 입고온 예쁜 옷에 피를 묻히는 꼴이 되었다. 자가용을 끌고오지 않았으면 불심검문이라도 당했을거야. 그래도 역시 바늘이 피부째로 뜯겨서 피가 흐르는 광경은 보기싫었지만. 나름 최연장자를 담당하다보니 그것도 익숙해지는 참이었다. 이대로 아무일없으면 좋겠다는 바람과는 다르게 거칠게 열리는 병실의 문을 바라본 나는 당활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자와군이었나? 분명 몇 번 라이브하우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깊은 교류는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야요이를 따라 스튜디오며 라이브하우스를 돌아다니는 모습에 대충 직감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전에는 그냥 팬보이일줄 알았는데 어느순간부터는 사귀고있더라-하는 단순한 일이다. 그보다는 야요이쪽이 숨길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이렇게까지 찾아오는구나.
"방금 막 잠든것 같은ㄷ... 귀신같네."
익숙한 목소리에 야요이는 힘들게 몸을 일으켜세웠다. 한창 피곤할텐데도 남자친구가 와서 그런지 어쩐지 아까 나와 이야기할때보다는 조금 더 밝아보이는 표정에 어쩐지 조금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배시시 웃는 모습에 어쩐지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망가진 고물 인형같은 표정이었는데 이젠 저런 얼굴도 하는구나.
"...뭐 보호자도 왔으니까 난 갈게. 젊은 두사람끼리 잘해봐~"
이럴때는 오래 있는게 더 안좋겠지. 병실에서 나가면서 아이자와군의 어깨를 가볍게 쳐주고는 문을 닫았다. ...그러고보니 별 문제는 없겠지?
"...왔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마키와 이야기할때는 그래도 제대로 나온것 같은데. 그래도 닷새만에 말하는 것 치고는 괜찮지 않을까? 아무도 안만나고 먹지도 않았으니 조금 갈라진 것 같기도 해서 조금 부끄럽네. 어쩌지.
"...한달만인가? 그렇지?"
여름방학이 끝난 이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다. 그보다는 내가 연락이 줄어든거겠지만. 페스티벌의 준비로 눈코뜰새없이 바빴고 여름방학의 마지막은 애초에 아야카미에는 없었다. 서머소닉에 나갔으니까. 끝난후에는 도쿄에서 머물며 인터뷰며 기획사와의 계약이며 하는 통에 정신이 없기도 했고 돌아와서는 경음부 애들의 레슨에... 그리고 지금 스트레스해소를 하다 지금 이상황. ...생각해보니 글러먹은 것 처럼느껴지는데. 고백 직후부터 애인을 방치한게 되나. ...쓰레기 밴드맨맞구나. 조금 부끄러워서인지 얼굴이 붉어졌지만 이게 열때문인지 아닌지도 ㅗㅁ르겠다. 멋쩍게 손을 흔들고 나서야 방금 그사단을 냈던 손이라는 걸 깨닫고 허겁지겁 감출정도로. 솔직히 말해, 이런저런 감정때문에 조금 화끈해진 상태다.
병실을 떠나는 걸음을 향해 '예, 살펴가이소.' 소년의 짧은 한마디가 이어진다. 카랑카랑 아이 같던 목소리는 설익기 시작해 제법 고교생 다운 분위기가 흘렀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야요이 누나의 얼굴을 보았다. 전보다 좀더 초췌해진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오르는걸, 어딘가 턱 막힌 목소리에 속 안이 욱씬거려 와락 올라올것만 같았지만 어떻게든 참아냈다.
야지마씨가 머물렀던 소파 옆에 말없이 앉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 따뜻한 시트 위에 허리를 길게 뉘였다. 이어지는 몇마디에 심술이 났는지 도통 눈도 안마주치고 수액걸이에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는 투명한 팩에 시선을 내다 꽂는다.
"야요이씨, 여전하네. 이래 누워 하는 소리가 마 딸랑 그거가?"
날카롭게 솟아오른 시선만큼 날이 선 말투였다. 불과 여름방학 전의 꼬맹이라면 우와아앙 울며 바보처럼 눈물 콧물이나 펑펑 터트렸을텐데. 이런 꼴이 되어선 고작 한다는 말이 키 컸냐는 말이라니. 울화통이 들끓어 올라오려는걸 수액 한방울마다 곱씹으며 깊은 한숨과 함께 비워낸다. 하필이면 왜 바로 옆 호실이냐고. 익숙한 병실의 풍경 속에 이제는 엄마가 아닌 야요이 누나가 누워있네. 왜 자신 주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아파야 하는걸까. 괜히 서러워서 화가 난 표정으로 열심히 외면했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오늘 들어왔다. 방학때 잠시 일이 생겨가 쫌 멀리 다녀왔네. 머 할말은 아인데.. 일이 너무 많아가, 그간 연락 몬해서 미안하다."
소지로씨에게 이야기 들었다고, 크게 다친건 아니냐고, 노래를 잠시 쉬게 되었다고 또 엉뚱한 짓을 하는건 아니냐고. 묻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그 많은 것들을 다 눌러담아 그간 있었던 일과 연락이 닿지 않았던 것에 조금 딱딱한 얼굴로 사과한다. 집에 닿자마자 걱정이 되어 그렇게 사방팔방 동네 똥개처럼 쏘다니고선. 꽁한 얼굴로 딴청을 부리는 태도가 자기도 답답했는지 다리를 꼰다.
"완전 감옥이겠네. 누나한테 말이다. 키타도 없고, 마실 것도 없고 병원식도 싱거워가 입에 드가겠나? 평소 밥도 잘 안먹는 사람한테."
뭐가 그리 급한지 무언가를 감추며 바뀌어가는 얼굴 색에 히데미는 자기도 모르게 엄한 표정을 풀어버리고 예전 같이 호선을 그리는 입꼬리로 조근조근 말을 이어간다. 이런 반골 밴드녀에게 어떤 스토리가 있었을지 묻지 않아도 대충 알것 같아서 턱을 괴며 바라보는 시선에 걱정이 한가득 담겼다.
"누나야, 야요이 누나야. 내 딴건 안물어볼란다. 그냥, 아프지마라.."
항상 그랬지. 누나랑 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보단 노래라는 도구를 통해서 서로의 감정을 간질이기만 해서. 비밀 투성이를 나뭇가지로 찔러봐야 괴롭기만 할뿐이라고. 더이상 캐묻지 않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마디로 함축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일댈을 이야기하는 것은 히나주였구나. 하지만 나는 나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라는 이유보다는 히나주도 즐겁게 놀 수 있을 자신이 있다면 그때 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다들 놀자고 모인거지...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상황극을 하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기에 나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보다는 히나주가 그렇게 놀아서 즐길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줬으면 해.
나는 정말 느긋하게 이어도 상관없어. 솔직히 일댈이면 아무래도 조금 텀을 느긋하게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히나주가 괜찮다고 한다면 나야 아무래도 좀 더 이것저것 이야기를 이어가보고 싶어. 꼭 지금의 설정이 아니라 IF 설정식으로 해서 둘이 주종이라던가, 혹은 둘 중에 하나가 신 혹은 요괴라던가 그런 느낌의 다른 관계성을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말이야. 혹은 사귀기 전의 좀 더 이런저런 이야기라던가... 사귄 이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있겠지. 좀 더 합의하에 이런저런 사건을 만들어볼수도 있을테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자고 일어났을때의 상황이 참 궁금해지네.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자고 일어난 후에 역시 조금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부담가지지 말고 그냥 이야기해줘. 혹시라도 여기서 자고 일어나니까 조금 힘들 것 같다. 라는 말이 나와도 진짜 진짜 원망 안할 거니까.
난 상황극은 기본적으로 즐겁게 놀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편하게 해주기야!
어쩐지 추궁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 어쩐지 조금 울컥하기도 했지만, 어쩔까. 이번 일은 순수하게 나의 잘못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분명 나는 쓸데 없는 말을 할게 뻔하니까. 얌전히 날카롭게 찔러오는 어두운 감정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망에 넣어둔 물고기처럼 어떻게 하더라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제멋대로인 판단이 앞선 탓에 자신만의 ‘특별함’이라는 가치에 빠져버려서 결국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이해를 바라는 건, 내가 생각해도 좋게는 봐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가치관에 가깝다고 본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한참 어린애에게 이름을 부려진 것 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미치광이 노친네가 되어버린 시점에서 그런 세속적인 가치관은 그냥 넘겨버릴 수 있게 되어버린 것이다.
“………괜찮아?”
바쁘다는 말 만으로 무언가를 전할 수는 없었다. 마음을 나누기는 했지만, 그 안에 언어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서로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비슷한 것 같다던가 아니면 기껏해야 그날 함께 보냈던 여름날의 열기가 식지 않은 탓에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려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런 탓에 그냥 조금 멋쩍은 미소로 화답했다. 이미 눈치를 챈 것 같았으니까. 입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말 때문에 나도 모르게 어색하게 지었던 웃음조차 거둘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부분까지 인간과 닮아가고 있구나. 조금은 안심 되었지만, 섬세함의 파편조차 없는 말에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조금 깰 수 밖에 없다.
우울해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영원토록 알 수 없겠지만, 무엇인가 거대한 것을 잃고 난 이후의 인간의 표정. 나와 마주한 사람이라면 몇 번이고 볼 수 있었던 그런 어둠이 히데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애써서 말을 돌리는 것은 퍽 귀엽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흘러서는 안될 눈물이 흐르고 있었기에. 몸이 먼저 움직이고 말았다.
쿠당탕―――― 하고 커다란 소리가 났다. 다행히 이번에는 바늘이 뽑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피로가 심했던 탓에 걸으려 하니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다고 말해야했다. 고작해야 이런 일로 이 아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싶지는 않다고, 생각했기에. 겨우겨우 벽을 짚고 일어서서 천천히 히데미를 향해 걸어간다. 이윽고 그 아이의 품으로 넘어지듯이 쓰러지며 가볍게 뺨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난 절대 안 죽어.”
있잖아 히데미. 나 말이야. 메이저에 갈거야.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리면서까지 올랐던 무대 위로 가기로 했어. 가족을 버리면서 기타를 치러간 남자에게 실망도 했지만, 그만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내가 혐오스럽더라. 아마, 좋은 연인은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독선적이고 기타가 없으면 아직도 손이 떨리니까. 누군가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고통조차 기타를 들지 않으면 제대로 아프다고 할 수 없으니까. 남의 등뒤에 서지 않으면 하고싶은 말조차도 하지 못한다.
몽롱한 정신으로, 나른하게 몸을 뒤집었다. 심장이 아프게 쿵쾅거렸다. 살갗에 닿는 것이 여전히 포근한 이불 속이어서 마음이 놓였다. 어젯밤엔 괜한 악몽을 꾼 것 같은데. 매번 기억해야지 하면서도 금세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 사실이야. 스피오- 스피오- 하는 애매미 소리보다 더 거슬리는 것은 지잉- 지잉- 하는 휴대폰 진동 소리.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에 얼굴이 뜨겁다. 아마도 아침부터 쬐여졌겠지 하는 생각에 뜨끔해버려. 여느 때보다 평온했던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네코바야시 히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무심코 팔을 들어 냄새를 맡았는데 고소한 우유 냄새가 났다. 애기 분유 냄새.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유우키의 뒷모습. 흐린 눈으로 벽시계를 바라보면 벌써 한 시가 넘어있다.
전날 밤은 그에게 있어서 꽤 행복한 시간이었다. 부모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방 하나를 얻어서 밤 늦게까지 놀다보니 어느 순간 잠들어버렸던가. 눈을 뜨자 들리는 옆자리의 작은 숨소리는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상당히 사랑스러운 소리였다. 습관처럼 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니 바로 옆자리에 자고 있는 존재. 원래 이 자리에 없을 이였으나 오늘은 있는 것이 당연한 존재. 그 존재의 모습을 유우키는 조용히 눈에 담고 미소지었다. 저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주고 싶었으나 그럼 깨어날까 싶어 차마 그러지 못하고 그는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몸을 끄집어냈다.
그녀가 푹 잘 수 있도록, 하지만 깨어났을 때 불안해하지 않도록 굳이 방 밖으로 나가진 않으며 ㅡ물론 화장실이나 잠깐 먹을 것을 먹기 위해서 자리를 비운 것은 있었다.ㅡ 그는 다다미 위에 앉아 핸드폰을 켜고 가만히 스케쥴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래도 저녁 시간에는 한 번 가서 확인하는 것이 좋겠지. 그 외에은 또 뭐가 있을까. 나중에 히나가 일어나면 어디 놀러갈까. 아니면 그냥 여기서 시간을 보낼까. 여름이지만 온천도 괜찮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와락 안는 느낌이 들어 그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억! 소리를 내면서 두 눈을 깜빡였다. 뒤에 있는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정면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필시 그 표정이 웃기다고 엄청 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유우키는 자신의 표정을 관리하며 살며시 고개만 뒤로 돌렸다. 그러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글쎄. 부인(奥さん)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먹을 수가 있어야지."
나 혼자 먹기는 좀 그렇잖아?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그는 자신을 끌어안은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잘 잤어? 히나? 일어났으면 일어났다고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 갑자기 이렇게 끌어안기나 하고."
소년은 어젯밤 꿈을 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유난히 겁이 많고 소심했던 꼬마아이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걸었다. 한 골목을 지나 조금 성장해버린 아이, 아버지는 어느 순간 작은 손을 떠나간다. 아빠, 어디로 가는거에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돌아선 뒷모습은 말없이 멀어진다. 사계절이 지나듯 빠르게 스쳐가는 불빛들. 고향의 전경이 반짝이듯 비추었다 사라지고 친구들과 인연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옆을 지나친다.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피곤해보이네. 손이 차가워, 걸음도 무거워 보이고. 괜찮은걸까. 엄마는 조금씩, 조금씩. 누군가 발목을 갉아대듯이 느려져서, 엄마의 차가운 손을 두 손으로 포개어 힘겹게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아빠 엄마만 바라보던 눈빛이 나아갈 길을 알리가 없어서 막연하게 가쁜 숨을 쉬었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밤이 된듯 싸늘한 바람이 불어서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너는 이름이 뭐야?"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언제 거기 서있었는지도 모를 낯선 아저씨가 말없이 어딘가를 가리켜준다. 소년은 아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소지로 아저씨-"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빛이 온몸을 감싼다. 추운 계절이 지나 벚꽃잎이 내려오고, 뜨거운 햇빛과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고개를 돌렸을땐 나는 허공을 움켜쥐고 있었다. 어느 순간 엄마도 떠나버려서. 이제 이 거리에는 나 혼자만이 남았네. 히데미는 숨이 막힐듯 어수선한 공간 한 가운데에서 막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지로 아저씨, 죄송합니데이. 아저씨가 알려주신 그 곳. 어딘지 잊어버렸어예. 그랬었는데.
쿠당탕―――― 하고 커다란 소리가 났다.
지금 귓가로 전해지는 숨소리는, 그리고 목소리는. 닿은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이 온기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냥 가벼운 꿈이라고 생각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머라는데.."
히데미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냥 그렇게 말했다. 갈라지듯한 목소리의 틈새에서 꾹꾹 감춰두었던 복잡한 감정들이 마구 솟구쳐 올라와서 두 눈을 적신다. 사구에 들렀던 그 날부터 이젠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뺨에 닿은 가벼운 온기에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떨어져서 저도 모르게 가쁜 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쉽게 안죽는다.. 그니까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마라.. 알았제이..?"
목구멍 아래로 끓어오를듯한 기운에 이를 꽉 물고. 서둘러 눈물을 옷소매로 훔쳐대며 먹먹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더이상,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아픈 모습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고와는 연관 없어 보이는 흉터에 그만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엉뚱한 시선에 자꾸만 보이면 안될 것들이 사로잡혀서 소중한 인연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가볍게 포옹한다.
줄곧 바라왔다. 언젠가는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가 자기를 이렇게 안아주기를. 기다림의 무게만큼 안아버린다면 바스라질테니. 슬픔의 무게만큼 안아주겠노라고.
와.... 그거 어떤 느낌인지 알아. 진짜 딱 평온한 여름철 일상이네. 그거. 그야말로 여름이었다... 와...분위기 너무 좋아! 지금 일상에서 해보면 되지 않을까? 료칸이니까 다다미 방이고 창문 열어놓으면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올테니 말이야. 여름이면 매미 소리도 찌르르 들려올테고!
사실, 어딘가 더럽혀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그것을 직시 해야만 할 때 가장 괴로워지는 법이다. 가슴은 답답해지고, 짙은 매연을 들이킨 것 마냥 머리는 아득하게 하늘을 날아간다. 두서없이 나열한 단어들이 어쩐지 무언가 의지를 품은 것처럼 느껴지고 머리속에서는 하늘을 나는 코끼리를 망상 할 수 밖에 없다. 나 혼자서도 이렇게 괴로운데, 그걸 어떻게 남에게 나눌 수 있겠어. 감히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그러니 굳이 말 할 필요는 없다. 힘든 것은 감추고, 남이 듣고 싶은 말을 내뱉으면 된다. 나 홀로 참고 아프다고 위로 받을 생각 따위는 하지 마. 운명은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를 낳아주신 위대하신 태양조차 나의 존재를 모르니까. 영원히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신으로서의 소명이리라. 점점 목을 졸라오는 어둠에 온 몸이 분해되어 가는 느낌을 느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미안해 히데미. 나는 여전히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어. 네가 있는 곳까지는 단 한걸음이면 충분하겠지만. 아무리 이끌어 주어도 나는 갈 수 없어. 무서운 무언가가 그 너머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존재를 지워버릴 때 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러니, 흐릿하게 비추는 모습만이라도 기억해주기를. 네 안에서 ‘조몬 야요이’로 있을 수 있기를. 가볍게, 그의 등을 쓸어 내린다. 영 커버린 줄 알았는데 여전히 어린아이구나. 사람은 빠르게 변하는 법인데. 여전히 그 안에 있는 자그마한 아이는 쪼그려서는 흐느끼고 있어서. 어쩐지 그것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아이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 흐르고 있는 눈물을 조금 닦아냈다. 잘생긴 얼굴에 눈물자국이라도 남으면 어떻게 해. 애인한테 이런 식으로 하는 걸 알면 그대로 주간 문춘에 실려 버릴 걸. 그야 이제 곧 유명인의 반열에 오를 테니까.
“안해. 절대로.”
절대로 혼자 두지는 않을 테니까. 너도 날 혼자 두지 말아줘.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고독만큼은 두려워서 어쩔 수 없으니까. 상실감을 달래고 싶어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에 매달려서 제 몸을 해치고, 해쳐서 닳아 없어지는 순간까지도 괴로워하는 것 말고 내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여전히 도망치고 도망치는 것 뿐이라. 앞으로도 너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괜찮다면. 역시 혼자 두지는 말아줘.
흐릿한 소독약의 냄새에 이끌려 끌어안은 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부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고작해야 기타를 들 수 있을 정도의 근력 밖에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려나. 온 몸을 휘감던 그 끈적한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살짝 미쳐버린걸까. 어쩔 수 없지. 나한테는 여전히 문제가 있고, 그것은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래. 이렇게 온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모두 다 환각이었다.
머리가 아프다. 피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슬쩍 쳐다본 손목에는 여전히 바늘이 꼽혀 있었고 조금 잔인하게 뜯어진 흔적은 있을지언정 지금은 괜찮았다. 그냥 머리 속을 울려대는 강렬한 드럼의 비트가 조금 어지럽게 느껴졌다. 이런 때에도 그런 것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드는 몸이다.
유우키주, 일대일 이어가자는 약속 못 지키게 돼서 정말 미안해. 혹시 관전 어장 봤을지 모르지만 내가 잘못한 것도 있고 안 좋게 보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입장에서 마음 편하게 글 나누지 못할 것 같아. 염치없지만 여유 생기면 말 남기러 들를게. 다들 남은 주말 즐겁게 보내길 바라!
일단 집에 돌아와서 보긴 했는데... 나도 다 봤어.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저격러들에게 마음 쓸 것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히나주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해도 괜찮아. 하지만 그 대신에 히나주가 늘 행복하고.. 이번 일로 인해서 너무 우울해하지 말고... 놀러갔으니 신나게 놀고 시원하게 바람도 쐬고... 즐겁게 힐링했으면 좋겠어.
대충 상황 봤는데 다른건 마음에 담을수 있다 쳐도 대놓고 시비 턴건 걍 원래 그런 애들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마 익명사이트라고 아이피 돌려가면서 숨어 돌팔매 하는 애들, 같이 고여서 나이도 꽤나 있을텐데 왜 저럴까?? 인터넷 세상 일에 너무 꿀꿀해하진말고.. 여행 즐겨 나중에 보자~
2-C반이 정확하게 뭘하는지 정해지지 않았으니 말이지. 아마 지금 시점에선 뭐가 되었건 2-C반 준비를 돕는다고 시간을 많이 쓰지 않을까 싶은걸! 아. 집사&메이드 카페가 있고 여러모로 도와달라는 요청이 나오면 접객 태도나 복장이나 그런 것은 봐주면서 조언을 해주지 않을까 싶네!
유우키주 하이요~!! 캡틴도 올만!! 👋👋 크아악.. 간발차로 얘기 못나눴네.. 어 뭐.. 캡틴도 얘기 해줬지만 개인적으로 신경 쓰이는 일은 잘 마무리하고, 나중에 후회 없도록 결정 잘 짓는게 좋을거같애 이렇게 말하니까 강요하는거 같긴한데... 유우키주도 그렇고 히나주도 그렇고 서로 얘기 더 이어보고 싶은 생각 충분한거 같아서 괜히 말 길어지네 암튼 울 참치들 점심 마싓게 먹구..! 요이주는 조금만 기다려.. 곧 답레 줄게 🥺
적어도 이 건에 대해서는 내가 더 말을 꺼내면 그건 강요가 될 것 같거든. 어쨌든 히나주가 힘들고 편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원인이니까 난 그 뜻을 존중해줄 생각이야.
뭐랄까. 좀 옛날 일이긴 한데 나도 괜히 내가 참아가면서 상대방이 원하는거 다 해주고 맞춰주고 그냥 속으로 꿍 참은 적이 있는데 진짜 힘들고 노는 것이 노는 것이 아니고 스트레스 그 자체였었거든. 그럼에도 상대방이 나 너무 좋아해주니까 차마 말은 못하겠고... 살짝 말을 해보니까 엄청 우울해하고 그래서 내가 죄인 같았고... 그래서 그 이후로는 그냥 나도 싫은 것은 싫다고 하니까 지금은 그런 거 없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아무튼 그런 성향이 되었다! 난 그냥 히나주가 힘들지 않고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암튼 그렇다! 점심 맛있게 먹어!
먼저 어제 다들 따듯한 말 남겨준 거 너무 고맙게 읽었어. 그리고 저격글도 너무 맞말이라 뭐라 반박할 수가 없더라고. 솔직히 화가 나기보단 부끄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어. 얼마나 보기 싫었으면 그렇게까지 뒷담을 깔까, 안좋게 보는 사람이 분명히 더 있겠구나. 그것보다 화났던 건 아닌 사실 들먹이며 장작 넣고 물타기 하는 이들이었어. 앞으로 내가 더 조심하고 자제하면 될 일이겠지만, 뒷담에 관심 쏠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몇 명이 없는 말 얹는 거 너무 싫어.
일대일로 넘어가더라도 이미 나한테 저격이 들어온 전적이 있는 만큼 남들보다 어그로나 뒷담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잖아. 어그로에 특히 취약한 것이 일대일이기도 하고. 괜히 나 때문에 유우키주까지 같이 피해보고 마음 상하게 되는 거 싫어.
그리고 어제 그 일 때문에 전혀 힘들어하지 않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푹 쉬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야~ 다들 이따 보자!
작은 속삭임에 굳게 닫혀 있던 시선이 희미하게 피어오른다. 순진한 아이는 하얀 거짓말에 속아 꺼져가는 불씨를 바라보지 못했다. 아빠도 엄마도. 그렇게 모두 내 곁을 떠나갔다. 헐겁게 닿은 포옹이 더욱 거세진다. 이른 아침, 잠을 깨우려 이불을 빼앗아가는 어머니의 손길을 강하게 저항하는 것처럼.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해서. 그런, 순간의 감정에 이끌려 그런 것은 아니다. 이별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언제나 찬란히 빛나던 아빠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강인했던 엄마. 작은 통찰력으로 바라볼 수 있는건 그뿐이어서, 알지 못했다. 짊어진 삶의 무게와 그 뒷모습 사이로 감춰진 작고 큰 상처들. 소년은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다.
히데미에게 '조몬 야요이'라는 인연은 한여름 아지랑이가 일렁이듯 강렬하면서도 희미한 존재라. 언제라도 물에 가라앉은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것만 같이 느껴졌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들조차 예고 없이 곁을 떠나버렸는데. 매번 부수어질듯 불안정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특히나 여린 마음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숙제였다. 그러니, 두려웠던건. 또다시 사라질까봐. 말없이 사라질까봐. 그래서 그래버렸다.
'괜찮아', 그 한마디를 이번에는 믿어도 좋을까?
상대의 숨소리가 느껴지는 거리에서 말없는 독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팔이 저릴 정도로 꼭 끌어안아버리고 마는 포옹이 짧게 이어지고, 저도 모르게 놀란 숨을 흘리며 두 사람 사이의 작은 거리를 되찾았다. 마주하는 시선 사이로. 됐다고, 억지스러운 웃음을 피식 흘려버렸다. 무거운 감정은 떨쳐내자. 늘 그랬던 것처럼. 더 슬퍼지기 전에.
"내 너무 급하게 와가 빈손으로 와삣네. 앞으로 병문안 자주 올테니까네. 생각 나는거 있으모 라인 도."
살짝 떨리는 손끝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화제를 바꾼다. 그간 열심히 돌아가던 메신저도 긴 휴가를 다녀왔으니 이제 기지개를 켤때라고. 돌이켜보면, 여름 꼬맹이는 지독하다시피 일방적인 메세지를 던져오곤 했다. 어찌나 할말이 많은지. 하루에 수십통 정도는 다반사인데다 답장이라도 오는 날에는 신이 나선 진동이 멎을 날이 없었다. 그랬었는데, 여전히 메신저 속 날짜는 아직 한여름 계절에 머물러있다.
학교보다 스튜디오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불성실한 학생'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듯 조금 자연스러워진 표정으로 능청을 떨어댄다. 근 한달 사이에 마법에 걸린것처럼 주욱 길어져선 젖살 가득했던 예전 모습은 이제 흔적만 어렴풋이 남았지만.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건 아니었으니까.
"그라고, 아직 아저씨한텐 말 안했는데. 내 조만간 집 옮길 생각이다. 별일은 아이고, 갑자기 생각나가 말했다."
가을 말쯤 맨션 계약이 끝난다. 본래 고교 졸업까지 갱신하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지만, 그간 소지로씨께 폐를 끼쳐온걸 생각하면 더이상 신세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도 그렇고, 이젠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그런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충동이라면 충동이겠지만.
일단 외국인에게 친절한 이유는 관광도시니까! 거기는 관광 특수로 먹고 사는 곳이거든. 그래서 자연히 외국인들이 엄청 많이 오고 거기서 벌어들이는 수익도 많은 편이야. 그러니까 자연히 외국인들에게 친절해지는 거고. 왜 한국 여행객들이 유독 많은지는 잘 모르겠네. 내 생각엔 교토나 유니버셜 등등 다양한 것들이 많아서 구경가기에는 좋아서가 아닐까 싶긴해. 특히 교토 같은 경우는 유명 명소를 보러 가면 분위기가 일반 도시와 좀 달라.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기도 하고.
ㅋㅋㅋㅋ 처음 한번이 어렵지. 한번 갔다오면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어렵진 않아. 단지 돈이 문제일 뿐이지. 일본이야 생각보다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진 않지만 유럽이나 미국 이런 곳은 한번 가는데 엄청 들어가니 말이야. 아무튼 그렇다! ㅋㅋㅋㅋ 대단한 것 정도는 아니야. 당장 이 스레에서도 일본 여행 갔다 온 이들 많잖아.
생각은 중요하다. 자기 자신에게 빠져서 깊은 고찰을 하는 것은 인격적으로도 큰성장을 불러오니까. 언젠가 말했던가. 아니면 말하지 않았던가.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은것 같았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을것이다.
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살고 있습니다.
나의 사색은 언제나 이 한마디로 시작한다.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위해 수치심을 먼저 알아버렸고 언제나 자신이 생가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잊어버린채 그 지독한 감정에 매몰되어 한치앞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 일종의 루틴이 되어버리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도 그 사색을 놓지 못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날이 될것이다. 그렇다면 모래는 내일보다 더욱 좋은 날이 되겠지. 눈에 보이지않는 무형적인 가치관을 추구하다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져버리는 짐승들과 달리 적어도 나방처럼 눈에보이는 불빛에 매료되어 타들어가는 삶이길 바란다. 대부분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찌되든 좋지 않은가. 꿈이라던가 열정이라던가. 아주 청춘을 즐기는 학생같아서 조금은 질투까지 났었다.
나아갈 수 없음은 나아질 수 없음이라. 평생을 어두운 길위에서 살아가온 나는 어쩌면 태어난 순간과 지금이 그다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라는 존재는 교육을 통해 배웠다. 위대한 태양이 몸을 숨겼을때 내 지성이 싹을 틔웠으니 그럴다면 나는 태양의 아이인가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고 한때는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서 딸임을 인지해달라 빌어도 보았고 실제로 몇 번 정도는 성공했지만, 이내 그 자리에 위치한 '무언가'가 나타나 나의 것을 빼앗아갈 뿐이었기에. 위대하신 태양께서는 나같은 어둠을 낳지 않음을 깨달을 뿐이었다.
나에게 사랑과 관심은 언제나 과할정도의 댓가를 지불해야만 돌아오는 것이었고 그마저도 얼마 가지 않아 닳아버린 배터리마냥 툭하고 끊겨서는 다시 불을 지필때쯤에는 아예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우연찮게도 나에겐 시간이 있었고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도 무어라 하는 인맥이 없었으며 온전히 수백년정도를 자신의 안을 돌아보는데에 사용할만한 끈기도 없었다. 그렇다고 하기보다는 나 자신이라고 한들 내안의 무언가를 긁어내는 것 같은 느낌을 나 스스로 버티지 못했기에 하지 않으려 했던 것에 가까울까. 깊어지는 사색이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일은 없었고 언제나 어두운 사람 특유의 어두운 결과만을 영양가없이 곱씹어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후배의 앞인데도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괜찮다는 말만을 내뱉을 정도로.
괜찮다는 말은 얼핏 보면 남을 진정시키는 것 처럼 들리지만 결국은 자기만족을 위한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 그래 빌어먹을 사랑. 제어도 안되고 막을수도 없으며 나를 괴롭히는 이 포근하고 따뜻한 감정때문에 나는 그저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괜찮아. 그래. 이 말을 믿어준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괜찮다.
"...내 기타."
필요한게 있으면 가져다주겠다는 말에 곧바로 언제나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생각해보면 몇일 정도 있을 예정인데 그렇게까지 해봐야 의미는 없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메이저 데뷔를 앞둔 지금같은 시기에 연습을 멈추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으니까. 그래도 할 수 있는건 해야지. 곡의 마무리라던가. 딱 한 구간만 지나고 나면 나도 나름 한사람의 기타리스트로서 목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해도 되겠지.
"마키가 가져갔거든. 아마 집에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미 닥터스톱이 와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춰도 되는건 아니다. 의지가 육체의 한계를 넘은거라기보다는 일종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 솔직히 말해 히데미에게도 무척이나 크게 혼날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내야 했다.
소녀의 파멸 한겨울보다도 차가운 현실. 무엇도 남지 않은 것에 대한 상실감 ETC.ETC.
뭐 그런 것들. 내가 경험해온 것들을 가사로 뱉어낸다는 것은 그런것을 의미했다. 중간과정이 아름답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내가 겪어온 '삶'에 있어서 핍진성이라는 단어나 복선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투박한 날것 그대로의 고통으로 제살을 찢어발기며 써내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다. 연료로 삼을 비관이 아직 남아있을때의 가사를 써내려가야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게되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니까.
이대로 느껴지는 누군가의 온기를 경험하고 나서 어중간하게 달아오른 마음으로 써내린 곡은 '야요이'의 곡이 아니니까. 사랑은 가장 지독한 독이었다. 내 근간을 산산히 부숴버릴 수 있을정도로 지독한 독.
"...아, 그러면 이사갈 곳은 정했어?"
...그런걸 생각할때가 아니었구나. 지금의 맨션도... 솔직히 이름만 맨션인 아파트느낌이기는 하지만 위치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고등학교를 다닐거라면 아쉬워도 감안 못할정도는 솔직히 아니겠지. 그런데도 이런걸 물어보는건 무슨 생각일까. 여름이 지나더니 부쩍 어른이 되어버린걸까. 아직 이르다고는 생각하는데. ...아니네. 생각해보니 애초에 도쿄로 가서 같이 살자고 하거나 내집에 살던가 하고 말했던건 나였구나. 어딘가에서 들켜버리면 이상한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는 수준이다. 안좋네 이건. 응 안좋아.
502【 문화제 ~ 우리들만의 작지만 큰 축제 】 ◆.N6I908VZQ
(OH9mHjjKbM)
2024-06-07 (불탄다..!) 00:03:41
밝은 달이 넘어가면 그 때야말로 축제일. 우리들은 우리들만의 작지만 커다란 축제를 벌여 즐기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름하야, 문화제!
줄지어선 각종 부스, 교내 한가운데의 공연, 웃기고 예쁜 옷을 입고 다니는 지인의 동급생, 어라, 저 녀석 저런 면이 있었어─? 각종 다양한 이벤트와 홍보용 피켓이 주렁주렁 오갑니다. 저쪽 녀석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며칠째야, 서로서로 먼저 귀신의 집 골랐다고 네들 쪽이 늦었다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일러복이 있는 것을 보니 친구 보겠다고 다른 동네에서 넘어오기라도 한 모양입니다, 근면하네─ 어라, 저 쪽은 아는 세일러복. 아무래도 아야카미 중학교 쪽이겠죠. 한 남자아이가 아까워─! 하며 발을 구르며 부실에서 나옵니다. 저 쪽은 틀림없이 게임부. 귀한 상품을 걸고 도전자를 받는 위험천만한 짓을 감수하는 모양입니다. 한 번 도전해봐? 펑!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돌아보면 미안해─ 하며 여자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다급한 양 허리를 숙입니다. 떨어진 장식 풍선을 밟아버렸던 모양입니다. 그런 사고 때로 있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 악기를 껴안은 학생들─분명, 취주악부들─이 삼삼오오 웃으며 그 태도도 살갑게 팜플렛을 건넵니다.
「후반부엔 공연이 있잖아. 우리 공연 보러 와줄 거지?」
아─ 그렇습니다. 전반부는 부스 운영. 교내 한가운데는 공연할 작은 자리가 마련되고 때로 군데군데 기타 치는 버스킹 코스도 볼 수 있다지만, 진정한 꽃은 후반부였습니다. 연주하는 소리와 노래하는 소리. 고조되는 분위기. 하나 되는 마음들.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들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단지, 공연하는 그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좋다고 느낀 걸지도. 단지, 부스이니 무엇이니 하며 철없이 구는 지금의 공기가 애틋하게 여겨진 걸지도.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자, 힘을 이기지 못한 단풍이 아까울 만큼 고운 석양색으로 춤추며 손 안으로 날아옵니다. 그 때야말로, 새삼 알아차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문화제였습니다. 분명 우리들의 작지만 큰, 틀림없이 다시 올 터인데도 다시는 오지 못할, 우리들만의……
문화제 배경으로 일상/로그를 돌릴 수 있습니다.
(6月7日~미정) ※ 23일 마무리 예상, 변동 가능
【 이상하지, 이런 날은 분명 다시 돌아올 텐데 】
문화제. 예정된 이벤트였으나 조그마한 사정으로 부제는 변경되었습니다. 이벤트 역시 곁가지를 쳐내고 극 간소화. 단, 어려움 없이 문화제를 즐길 수 있기 위한 아주 짧은 가이드라인만을 마련했습니다.
문화제를 위한 부스 설정은 선점제입니다. 학급이 운영하는 부스 설정도, 동아리가 운영하는 부스 설정도 기본적으로 선점한 자가 임자를 원칙으로 합니다. 별도로 다른 참여자와 상의할 필요는 없이, 일상이나 독백에서 즉각 활용하거나 잡담에서 언급하시면 OK입니다. 중복도 가능하기는 하나, 후발주자가 선점자와 상의하거나, 선점자 장본인이 미리 중복 허용을 선언하는 방안을 캡틴 측에서 적극 권장하겠습니다.
후반부에 배정된 공연의 경우는 독백, 일상 등 형식을 자유롭게. 전반부 부스 타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상황을 맞춰 돌리시면 되겠습니다. 전반부 부스 타임 역시 후반부 공연에 얽매이지 않고 돌리시면 됩니다.
아야카미 문화제에 관한 추가 설정은 자유롭게 하되, 문의 사항이 있으면 얼마든지 캡틴에게 문의 주세요.
그럼, 아무쪼록, 즐겁게.
가사 번역 https://namu.wiki/w/%EC%9A%B0%EB%A6%AC%20%EB%8D%B0%EC%9D%B4%EC%A6%88
아, 막연하게 다가오는 단어에 잠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너무 정신없이 달려와서 생각조차 못했다. 앞으로의 일은. 이제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런 거창한 문제를 하루이틀 안에 해결하긴 너무 촉박해서. 그냥 숨이 차오를 정도로 달려온 것 같다. 대화 중간, 짧은 정적 속에서 생각했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할 것 같은 강박감에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답을 찾기 위해 파낸 샘은 끝이 없어서 마치 물속에 잠긴듯한 착각을 들게 만드니까. 그냥, 지금 닿고 있는 모든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잖아도, 얘기 있었다. 쫌 먼 사촌인데. 근처 와가 사는거 어떠겠냐고."
히데미에게 그나마 남은 혈연이라곤 한번도 만나지 못한 먼 사촌들이었다. 아직 이름조차 외우지 못해 성씨로만 불렀던 그들을. 그래도 같은 집안 식구들이라고 낯선 얼굴이 내민 충고에 잠시동안 혹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 동네에 너무 정이 들어버려서. 떠나기 싫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가족만큼 소중한 사람이 한명 있었으니까.
"좋지, 좋은데.. 그냥 내는 졸업까진 여기서 지낼라고. 귀찮다. 또 새로운데 가가 적응하고, 뭐하고, 요래요래 한다는게. 지겹다 이제는."
비밀 많던 소년은 이제 가을에 접어들어 꽤나 솔직해졌다. 아야카미에서 쭉 지낼 계획은 자명했지만 맨션을 떠나는 것은 더이상 소지로씨에게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서였으니까. 히데미는 야요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숨겨진 뜻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자신의 확고한 계획을 말했다. 정말, 지금 상태로는 연고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다면 정말 외딴 섬에 홀로 갇혀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것 같아서. 도저히 그런 용기는 내지 못하겠다고. 친구들과 이웃들이 있는 이곳 아야카미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외곽에 잘 안나가는 맨션 있다카대? 건물이 쫌 오래되긴 했는데. 월세도 저렴하고, 등교 하기도 마 안나빠서. 거기로 갈라고."
소지로씨에겐 아직 말 안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이런저런 얘길 해버려서 죄송스러웠다. 야요이 누나와 사귀는 사이라고, 그리고 이젠 더이상 신세지고 싶지 않다고. 왠지 모르게 눈치가 보여서 두 손을 꼭 모아 소파 아래를 꾹꾹 눌러대며 중얼거리듯이 말해버렸다.
"누나야 졸업 얼마 안남았네? 그간 고생 만아따~ 하기 싫은거 억지로 채우느라. 아, 도그 데이 말이다. 그거 아나? 누나네 뺀드, 요새 틱톡이랑 유튜브에서 억수로 조회수 많이 나온데이. 이런 촌구석에서 그래 뜰 정도라카믄 도시에선 얼마나 인기 있겠나? 이제 출세할 일만 남았네."
거리가 멀어지는 순간이 올거라는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듯 태연하게 말을 이어간다. 서툴렀지만 미묘하게 진심어린 감정을 나눌 수 있었다는 것. 그정도만으로도 만족한 터라, 이별에 익숙한 소년은 아무렇지 않은듯한 표정으로 눈앞의 얼굴에 시선을 마주했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하며 이제 현실을 직시할때라고 생각했다. 청춘과 낭만, 늘 입에 달고 살았던 단어들. 그런건 배부른 일탈일 뿐이라고. 성공해야해.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거야. 한순간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사라져버리는 거. 낭만 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끝에 이르러 비참해지고 마니. 그냥 소소한 행복을 안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 '평범'이라는 단어를 거머쥐는 것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겠다만.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이제 큰 무대 스면 체력도 있어야 할거 아이가? 아, 맞다. 내랑 약속 하나 하자. 여 나가모 이제부턴 진짜로 건강하게 사는기다. 병원 그까이꺼 쓰잘데기 없다칼 정도로."
내가 모를줄 알았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실이 있다는걸. 아니면, 여름까지의 새카만 꼬맹이에게 동물적인 감각이 있던 걸지도. 단단할수록 유연하지 못하다고, 언제라도 망가져버릴것만 같은 분위기를 하고선. 불안하게 만들기나 하고 말이야. 이제 이 철부지도 이마에 도는 피가 약간은 말라버려서 알건 다 안다고. 건방진 생각으로 손가락이나 내밀고선 그렇게 말해버렸다.
병원의 약품 냄새는 좋아하지 않았다.아릿한 향이 코를 찌르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았으니까. 어느 구역에 감도는 침울한 분위기는 더더욱 싫다.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이별을 마주해야만 했기에. 그저, 그런 기억들이 싫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물이 흘러 넘칠 것 같은데,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 같은 분위기가. 시간이 흘러 상처가 아물면, 그 사이를 못 기다리고 새로운 상처를 새겨버리는데. 좋아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별, 그래 이별. 그냥 그렇다. 익숙해지기 보다는, 익숙해져야만 하는 것들이 싫었다.
“그,렇구나… 응, 잘됐네.”
조용하고 길게 늘어지던 호흡이 멈추었다. 조금 흘러나온 눈물을 억지로 삼키고, 허무하게 녹아버린 미래를 바닥에 깔고. 그냥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침대 위에 앉았다. 오랫동안 서있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가, 많이 좋아졌구나. 어른이 되어 버렸어. 이상하네, 분명 나이는 내가 더 많은데. 어쩐지 말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짊어진 것들의 무게가 괜히 더 크게만 느껴진다. 그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편견이겠지만. 그렇다고 슬픈 것 같지도 않았다. 아마 이것도 편견이겠지.
목 끝까지 차오른 이야기는 많았다. 서로 이야기 하지 못한 여름의 끝자락에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나… 하고싶은 이야기가 분명히 많았는데. 앉아서 바라본 눈동자 속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체념이 기분 나쁘게만 보여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이렇게 나약하다는 걸 알 게 되어버리니까.
“난… 음… 이번 문화제가 끝나면 도쿄로 갈거야.”
아마 자퇴하는게 되려나. 조금, 아니 너무 많이 늦은 것 같지만. 하고 헤픈 웃음을 흘렸다.
심장이 너무 아파와서.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이 아파서.
전해야 하는 말을 전하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이렇게까지 왔는데도 솔직함을 외면하는 내가 너무 미워서.
그냥 바보처럼 헤헤 웃고는 침대 위에 누웠다. 투명하게 보이는 천장 너머에는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저건 구름일까. 나는 지금 하늘에 있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뱉는 걱정의 말이. 순수하게 내뱉는 칭찬의 말이.
머리 속에 울려대는 강렬한 음악이, 짜증나.
[Fine, oh no, everything's fine] 아니, 괜찮아요. 다 괜찮아요..
[I'm not sure why I booked today's appointment] 제가 오늘 왜 예약을 잡았는지 모르겠네요...
날씨가 좋았다. 어지럽다. 그냥. 그냥. 공장의 굴뚝에서 뿜어대는 먹구름이 하늘을 메우고. 비는 내렸다 말았다를 반복하면서 워커의 안쪽까지 빗물로 적시는데다. 오랜만에 입은 귀여운 옷은 흠뻑 젖어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고.
시큰둥한 눈빛으로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잘 보이지 않았다.
떨어지면
아플까.
인간적인 감상이 어울리지 않는 주제에. 인간적인 상상을 하고는 했다.
어딘가 내 안에 있는 나약한 부분이 알 수 없는 사건으로 무너지게 되면 언제나 남는 것은 이미 넝마짝이 되어버린 이성 뿐. 건강하게 살아달라, 무슨 말인지는 안다. 나도 히데미나 밴드 멤버들에게는 오래 살아주었으면 하니까. 사장님은, 뭐 갈 때 되면 가던가. 그러면 된다.
히데미는 미소 짓는 걸 좋아했다. 아니, 좋아하게 되었다. 나누지 못한 슬픔이 배가 되기 전에 기쁨 속에 가라앉을 수 있도록. 하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감이 사라진 후에는 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젠 거짓말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온전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감정에 솔직해진 이후로 히데미는 조금 더 차분해졌다. 아야카미에 갓 상경했던 과거의 소년은 지금과 같았으니까.
어떤 콧수염 아저씨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바라보면 비극이나 멀리서 바라보면 희극이라고. 언젠가 가벼이 지나쳤던 문구 한 줄, 그 안에 담긴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여름의 끝자락을 지날 무렵 눈물이 나지 않았던 건 어쩌면 꺼져가는 불빛을 더는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테다.
기억 속 새겨진 흔적에 잠시 취해본다. 언젠가 엄마 아빠와 셋이서 들렀던 돗토리 사구. 한여름밤 해변에 은하수가 펼쳐진다. 홀로 뉘인 바닥은 차고 넓었다. 저 수많은 별무리 사이로 길고 먼 숨바꼭질이 시작될 무렵. 소년은 깨달았다. 지평선은 모래로 가득 채워졌지만, 그 순간이 아늑했던 것은 그보다 더 큰 존재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어. 밤하늘에 마음을 놓일 수 있는 건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지만 매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별이 되어버린 거리에서. 은하수 아래 눈을 깜빡이던 소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도 누군가의 별이 되어줄 수 있을까?
"으응, 가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보면 침대로부터 끼익, 눌리는 소리가 귀를 긁는다. 고작 점심 메뉴 따위나 고민하듯 느긋한 어조다. 히데미는 소파에 더욱 깊숙이 몸을 기댄 채 대충 거리를 어림잡듯 손을 펼쳐본다. 불과 몇 달 전이었다면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정말 가버리는 거냐고, 와앙 서럽게 칭얼댔을 테지만. 지금은, 마음이 식어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던한 몸짓과 표정일 뿐이다.
백색 소음이 넓어진 대화의 간격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머리카락 끝이 오싹 인다. 수액이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같은 공간, 다른 시선. 감정에 솔직해질수록 가슴 속에 담긴 잡음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짙어져서. 가슴 위에 손을 얹는다. 원래부터 말수가 적진 않았었잖아. 겁이 많고 낯설어서 그랬지. 그리고 지금은.. 뭔가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옷소매 끝에 달린 단추를 어색하게 어루만진다. 좀 바보 같네. 불꽃놀이가 있던 지난밤과 저녁이 다가오는 병실에서도. 답지 않게 단정한 교복차림이라. 우연인지 뭔지. 그런 마음에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 한마디에 금세 놀란 토끼 눈이 되어버렸다.
고개를 돌려보지만 보이는 건 병상에 누운 뒷모습뿐이라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그림이 낯설진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금방 닿을듯하면서도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하고 마는 게.
"내도 그러고 싶네."
가까워진만큼 언젠가는 다시 멀어지고 말겠지. 그래서 일말의 기대감 없이 막연하게 답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이대로 손을 잡고 따라간다면 정말 당신밖에 바라보지 않을까 봐. 그런 바보가 되어버린 채로. 언젠가 예고 없이 찾아올 이별에 무너져 내릴까 봐. 그게 두려워서 곧바로 '좋아.' 라고 답할 수가 없었다.
"와 내 멀쩡한 방 뺀다칸줄 아나? 여 첨머이 왔을 때 아저씨하고 약속한 게 있다. 울 어무이 다 나을 때까지만 신세 지겠다고. 가시는 길 방학 내내 잘 모시고 왔으니까네. 인자 마 받을 거 다 받았다 생각하고 내 알아 단디할라켔다. 그랬는데."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입술은 앙다물어졌다. 히데미는 소파가 들썩일 정도로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 앞에 몸을 기댄다. 마치 '얼굴 보고 얘기해.' 라고 말하듯이 고개를 깊이 숙이자 중력에 이끌린 머리칼이 눈앞을 가린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가르치는 일에는 뛰어나지 않다. 어떻게 보면 편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쓸모 없이 길다란 삶을 살아오며 겪은 것들이, 그리고 지금의 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니 반쯤은 편견이 아니라 자기고백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전한 손가락을 채우기 위해 침상 옆에 있던 작은 수납장을 뒤졌다. 아마도 이쯤에 담배를 넣어두었을 것이다. 마키라면 내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나는 타인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해서는 끔찍할 정도로 잼병이었고, 아무리 제 편한 것을 쫓는 마키라고 한들 믿음직스러운 환자가 홀로 있는 방 안에 그런걸 넣어 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갈 곳을 잃은 손은 허공을 휘젓다 이내 가지런히 모여 가슴께로 올라왔다. 그냥, 그렇다고.
천천히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막을 때린다. 안다. 이런 투정은 그냥 나 때문에 일어난 일과, 일어나게 될 일. 그 모모든 것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뿐이라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무섭다. 무서워. 빈말로도 아야카미와 도쿄는 가깝지 않았다. 그리고, 망각은 몸이 멀어지는 순간부터 찾아오는 법이다. 몇 년간 가까이 지낸 사람들마저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이해하기 힘든 무언가를 바라보듯 공포에 떠는 모습을, 그리고 그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어느새 ‘나’의 흉내를 내고 있는 ‘다른 것’을. 내가 해온 것과 완전히 동일할 수 밖에 없는 일임에도.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매일 밤 꿈을 꾼다. 그 안에서는 누군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 당한 얼굴을 가진 불특정다수가, 눈꺼풀이 사라진 채 원망스럽다는 듯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그냥 눈물을 흘리며 저지른 적 없는 죄에 대한 사죄를 반복한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는데. 그 누구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태어난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생각할 수 없었다.
가까워진다면, 그것의 배는 되는 거리를 떨어지게 되는 것이 운명이라면. 나는, 이번에도 그저 놓아 주어야 하는 걸까. 사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침대에 누워 온 몸의 힘을 빼는 것 만으로 힘을 모두 써버린 것처럼. 그 끝을 알 수 없는 탈력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건, [야요이]의 감정이 아니구나. 응, 그렇겠지. 어쩌면 아직도 외면하고 있었던 걸까. 각성의 순간은 정말 예기치않게 찾아온다. 그냥, 흐르는 눈물에 겹쳐서 웃음이 나와서. 천천히 손을 들어 히데미의 뺨을 쓰다듬었다.
“고작해야 고1이 그런 거 생각하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내가 사랑하게 된 남자는, 아직 어린 모양이었다. 응, 그렇겠지. 이 아이는 그날 만났던 그 사람이 아니다. 영혼의 형태가 같더라도,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도 그 안에 담긴 것의 형태도 전혀 다른 사람.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물며 수백년도 더 전의 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아이를 내버려둘 수도 없는 것이다. 어찌되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육체가 아닌 영혼의 형태. 이 아이는 잊어버리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을 영원히 안고 가야만 하겠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면 돼. 모자란 사람들끼리는.”
나만을 바라보지 않게 되더라도, 좋다. 나의 이름을 더 이상 부르지 못해도, 좋다. 네가 이별을 고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다하는 일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이 장소, 이 시선과 이 숨결까지. 여기까지 닿기 위해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달려왔는지, 소년은 알고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평생일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찰나의 순간으로 기억되리라는 것도. 신에 비할 바 못 되는 짧은 생애는 막을 내리고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야기는 이미 끝을 향해 저물어가고 있었고, 돌고 돌던 소년의 길은 마지막에 접어들었다. 궤도 밖을 빙글빙글 맴돌던 두 별이 가까워진 건 우연이 아닐 테다.
아름다운 꽃은 일찍 시든다. 만개하기까지 숱한 나날을 보내다 마침내 짧은 꽃피움이 찾아올 때면. 눈 깜짝할 사이에 저물어버리고 만다. 고작 한 송이 작은 꽃이 감춘 잎을 펼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추억이 양분이 되어야 했던가. 영원히 간직할 수 없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년은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더는 두 손을 모으지 않았다. 간절한 바람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리라는 것은 동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깨달아서. 지금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그 존재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역설적이기 짝이 없다. 이 작은 도시에, 수백 명 고교생 사이에 평범한 사람과 다른 존재들이 얼마나 많이 숨어있던가.
히데미는 뺨에 닿은 온기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가볍게 감아버렸다. 피부에 스며드는 따스한 온기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어쩐지 허전하다.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금방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왜, 만나고 싶나? 다른 사람."
장난스러운 말에 함께 웃어버렸다. 매번 바라보았던 얼굴이지만 이토록 아스라이 다가온 목소리가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번이 처음이어서 마음 약한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꽤 고집스러웠다. 도쿄가 아닌 저 먼 나라로 떠난다고 해도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걸 아니까.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앳된 소년의 표정을 흉내 내며 장단을 맞춘다.
"내 말이다. 여적 머 하나 제대로 끝마쳐본적이 없다. 그래가 이번에는 머라도 쫌 단디 해보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은 고교생이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되어버렸다. 기대어 살아갈 수 있도록. 쓰러지지 않는 기둥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학교생활에 충실히 하는 것이다.
"고작 2년이다, 길다모 길다케도. 라인도 있고, 방학도 있고, 아아, 신칸센 타면 코앞 아이가?"
고작 한 달여 만에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저보다 훨씬 의연한 선배조차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데. 나긋하게 이어지던 목소리는 끝에 이르러 파르르 떨리기 시작해 쏟아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같이 가고 싶어. 같이 살고 싶어. 의지하고 싶어. 그런 진심이 심장 소리에 맞추어 매초 들끓지만 억지로 삼켜낸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거운 어깨를 더욱 짓누르는 짐이 되긴 싫어서.
"근데 참 이상하다. 한참 어린건 난데. 우리 누나야 와이리 걱정되지? 객지에서 밥이나 제대로 챙겨 뭇겠나?"
먼저 덤벼들고선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달아나듯이 병상에 기댄 몸을 떼었다. 등을 돌려 몽글 거리는 눈가를 손등으로 닦아낸다. 어리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니까. 갑작스러운 작별 소식에 들려온 이야기들이 떠올라 혹시라도 나쁜 일이 생기진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안되겠다- 귀찮다케도 매일 라인으로 보고 받아야겠다. 아니모 누가 우리 슨배임 챙기겠나?"
서둘러 닦아낸 눈물 자국 그대로 고개만을 돌려 다시금 시선을 맞추었다. 잠시 자리를 비우기 전까진 매번 성가실 정도로 메시지를 보내곤 했었지. 거리가 멀어진다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해질지도 모르겠다고. 눈꼬리는 짓궂게 휘어 가벼이 미소를 지었다.
>>702 아앗.. 그렇게 됐구나 🥺 그래도 마무리까지는 잘 이어지길 바라구.. 바이올린이라니 엘레강스해.. >>703 잠깐 오늘 일요일 아냐?? 왜 퇴근이라는 단어가 오늘 보이는거지....? 🥺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니까..! 나메가 스쳐도 동접.. 그런 빈약한 논리
히데미. 왜인지 알고 있어? 여기에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야요이라면. 의연하게 그랬으면 좋겠냐고 되물었을테지만, 어째서인지 그렇게 내딛지 못했다. 주저없이 일직선으로. 좋든 나쁘든 '야요이'는 그런 성격탓에 죽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저 너에게 받은 사랑을 품고 이대로 너의 품에 뛰어들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얼마든지 그런 것도 가능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할 수 없었다. 힘이 풀려버린 다리, 목이 매인탓에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
좋아한다. 히데미도, 음악도. 쭉 함께 있고 싶었다. 그렇기에 분명 나와 함께 와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서워. 그렇게나 척척 나아갔던 악보위에서 언제부터인가 헤매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이대로라면 또다시 끝모를 어둠으로 떨어질것만 같아서. 잠시라도 악기를 손에 쥐지 않으면 손이 떨려와. 잊혀지는 것이, 무서워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무서워서......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가면, 언젠가 하나씩 잃어갈 것을 알고 있으니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벌벌 떨면서 날을 세우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멍청한 짓을 반복할 뿐이야. 훨씬 어린아이에게 이렇게나 의지하는 모습을 보일정도로.
가볍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미 일어난 일이다. 히데미의 말대로 라인도 있고 하물며 신칸센을 타고 온다면 하룻밤정도면 도착할 거리. 하물며 전업 밴드맨에게 시간은 흘러넘칠정도로 있었고 뭣하면 내가 아야카미로 오면 되는 그 정도의 일이다.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괴로울정도로 맑은 미소가 얼굴에 씌워졌다. 언제였을까. 이제는 기억조차 잘 나지않는 과부처럼. 담담하고, 조금은 탁하게. 아름답고 따뜻하며 슬퍼보이는 그 미소로.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방법따위 스스로도 모르는 주제에.
"인스타랑 트위터. 시작했으니까. 그쪽도 봐."
주위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으레 병원이면 들려야하는 소리도 멈추고 이윽고 두사람의 호흡마저 들리지 않게 된 일순간이 겹쳐서. 어쩐지 조금은 공허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사장님한테도 바로 이야기하고."
무언가 말해주기를, 함께 가고싶다고. 혼자 있으면 불안하다고.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나온 것은 나를 배려하는 한마디였다. 입안이 쓰라리다. 하고싶은 말이 많았다. 차라리 이대로 시간이 멈춰서 서로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 둘만의 공간에 버려진다면 좋겠어. 쓰디쓴 후회의 맛이었다. 차라리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히데미는 하려면 뭐든지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어리니까. 주위의 어른한테도, 가끔은 의지해야해. 그, 그러니까...... 괜찮지? 내... 내... 내가! 어... 없......어......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어느샌가 깨져버린 가면에서는 빗방울이 흐르고.
그리고 그 비가 그칠즈음에.
"......고마워."
기억 속의 움츠러들었던 작은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었다. 어린시절의 추억을 딛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언제나 이게 문제였다. 이번생의 이별은 아니었다.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어. 분명 다시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데도. 내 기억속에서 이별이란 준비하지 않았을때 잊혀지고 끝날 뿐이라.
짧은 인사 후에 정적이 흘렀다. 귓가에 삐이- 이명 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쏟아지려 했던 것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그렇구나, 이제 알겠어. 그토록 어리광을 부리고 숱하게 울었던 나날 모두 이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구나. 비는 그쳤지만, 먹구름은 여전해서. 외면했던 시선을 변덕스레 돌려버렸다.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소나기 위로 우산을 덧대듯 대담하게 침상 모퉁이에 앉아 젖은 얼굴을 바라본다. 어두운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찬란한 미소가 소년을 따라 웃게 한다. 거짓말이 서툴러졌구나. 아직 어른이 되기에 설익은 꼬맹이에게조차 들켜버릴 정도로. 장난스럽게 받아치고 싶었다. 더는 어둡고 무거운 느낌으로 서로 바라보는 건 싫어서. 물론, 히데미는 그런 인내심을 삼킬 만큼 의젓한 아이가 되진 못했다.
"그래 보이나? 근데 우짜지? 내 하나도 안개안타. 같이 가고 싶다. 마 어디가 댔든간에. 억수로 성가실 정도로 찔찔 쫓아가고 싶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언제쯤 전하겠느냐고. 그래서 '이게 내 진심이야.'라고 등 뒤로 감추어 놓은 감정을 나지막한 목소리에 담아냈다. 선배의 통증이 저에게까지 전해져 괴로웠지만, 꾹꾹 눌러담았던 무게를 내려놓자 홀가분해져서 오히려 편한 얼굴로 말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이 노력했다. 톡 건드려도 바스러질 것만 같았던 이 마음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엄마라는 존재를 위해서. 정신없이 달려온 탓에 지금껏 뒤돌아본 적이 없었다.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키만 쑥쑥 커선 여전히 어리광이나 부리는 걸 보면.
"누나야, 남사스러워도 내한테 남은건 이제 누나밖에 없다. 그러니까 없어도 개안나 이런 말 묻지마라. 나.. 누나 없으모 아무것도 몬한다."
지난 여름의 끝자락. 엄마를 떠나보내고 노을이 지는 해변을 바라보며 소년은 물에 발을 담갔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서.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수면 위로 무거운 짐을 내던지고 싶었다. 그런 저를 끌어안은 건 지난날의 추억들. 그 무대 위를 가득 채울 듯 피어나는 선배의 존재감에 서걱이는 모래 위에서 한참을 울어버렸다.
가을이 오기까지, 그리고 아야카미로 돌아오기까지. 아린 성장통이 발목을 붙잡았고,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것만 같았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이렇게 기쁜데. 벌써 이별을 말해버리면 어떡해.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준 건 조몬 야요이라는 인연 덕분인걸.
"진심으로 좋아하게 될 것 같은 거리네."
금방이라도 넘쳐 흐를 것 같던 눈망울은 얄궂게 기울어 마치 '기억 나?'라고 묻는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 목소리에 그 간질거리는 감정을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려버렸다. 그렇기에 그 소중함이 더욱 크게 와 닿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 야요이 누나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지. 착각이 아니라고, 서로 증명하기 위해서 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어.
소년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님을. 마주치는 시선과 작은 숨소리까지도 모든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795 졸업 후의 행보라. 아야나가 동경대를 간다고 했으니 아마 유우키는 거기에는 못 따라갈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근처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해서 학창생활을 보내고, 온천 일도 돕다가 주말에 한번씩 도쿄로 올라가서 아야나 자취방 꼴을 확인하고 청소해주고, 요리 좀 많이 만들어주고 다시 돌아가서 히나랑 또 연애하고...대충 그런 느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다시 그 친숙한 공간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지금 우리들은 여전히 새로운 공간에서, 전까지 있던 공간보다도 크고, 넓고, 높은 곳에. 꼭 움켜쥔 병원 이불에서는 싸구려 세제와 소독약의 냄새가 났다.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을까? 너와 함께…….
다음. 인생의 다음은 없지만. 지금만은 언젠가 찾아올 다음을 이야기한다면. 그런다면 즐겁게 웃을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길을 잃은 채로 계속 울부짖는다. 상처 입은 조그마한 짐승처럼.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격렬한 소나기로 변했고,
한 순간 하늘에 새겨진 우리가 사랑했던 꽃들은 이미 저물어 버렸다.
기억하고 있어. 그 날의 눈물을 구하고 싶었다. 그 날의 너에게 구해지고 싶었다. 너는 아마 기억나지 않았겠지만, 너와 처음 만났던 날부터. 그 전의 그 전의 전부터. 네가 했던 말은, 모두 기억하고 있어.
[레이와가 낳은 천재 기타리스트]
있는 힘껏 구겨버린 잡지에 적힌 글이 보인다.
천재?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만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안다.
남들보다 좋은 위치에서 시작했다. 사장님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여러 응원의 목소리를 들어왔고 그렇게 쏟아지는 목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고작 이 따위 실력에 하는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 만은 알 수 있어서. 아마,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프로를 꿈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 폴 길버트처럼 속주로 모두를 매료시킬 수도 없고 지미 헨드릭스처럼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하물며 아시아에서만 겨우 이름을 알린 아버지의 위상을 뛰어넘기는 고사하고 여전히 나에 대한 평가는 ‘그 후지타 소지로의 딸’이나 ‘걸즈 밴드’가 전부. 원치 않는 이름으로 나를 부르며, 기뻐하기를 바란다. 차라리 없어졌으면.
이름을 받은 이후로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넷이서 스타디움으로 가게 되었지만, 그 자리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대신 서는 꿈도 몇 번이나 꾸자…… 점점 잠자리에 드는 것 조차 무서워졌다.
그래서 나는 밤이 되면 조용히 기타를 쳤다.
역대 기타리스트들이 만들어낸 길을 하염없이 거슬러 올라가봤다.
시대에 뒤떨어진 주법을, 시대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의미.
강해지고 있는 것 같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기타를 좋아합니다.”
이미 누군가의 것이 되어버린 기억. 이제는 ‘나’도 ‘야요이’도 구분할 필요가 없어져버려서.
나는 맞서야만 했다. 나를 죽이려 드는 고독에.
질 수는 없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전해주었던 것과 완전히 같은 말에 조금 웃음이 나왔다. 눈물이 들어가버릴 정도는 아니라, 오히려 조그마한 자극이 가해진 감정선은 그 끝을 모르고 흘러 넘쳤다.
취기에 기대어서 나누었던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냥 하고 싶어서 할 때도 있는 거잖아.
무대에 설 때 입은 정장도, 귀걸이도, 경애하는 아버지의 의상을 흉내냈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그저 무대에 서기 위해 준비했을 뿐인 그 의상은, 나에게 있어서는 나 자신을 북돋기 위했던 것. 나의 약함을 숨기기 위한 것. 내가 아니라 ‘후지타의 딸’로 기억되는 것이 당연했다.
머리 속이 울리는 것 같았다.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흥이 오른 것 같은 비트로.
誰にも言えない孤独だとか 君の不安を終わらせに来た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독이라던가, 너의 불안을 끝내러 왔어 君が生きるなら僕も生きるよ ロックンロール イズ ノットデッド 니가 산다면 나도 살거야 로큰롤 이즈 낫 데드
침대 위에서 가지런히 자리를 잡았다. 마치 꽃꽂이를 하는 화도가처럼. 무릎을 꿇고 가지런히 모은 양손을 벌렸다.
どれだけの悲しみがあったのか 今僕に話してくれないか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었는지 지금 나에게 말해주지 않을래 心の中にかくれた本当の君に逢いたい 마음속에 품은 진짜 너를 만나고 싶어 震えるほどの夜をこえて 昨日のさびしさにさよならを 떨릴 정도의 밤을 넘어 어제의 쓸쓸함에 안녕을 本当の君が今世界で 一番の光を放つんだよ 진정한 네가 지금 세상에서 제일의 빛을 발하는 거야
조금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언제나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서. 이번에도 나는 누군가가 쓴 가사를 빌릴 수 밖에 없다.
『苦しみも喜びと同じく 分かち合えるそんな日が来るだろうか』 괴로움도 기쁨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그런 날이 올까
『心の中にかくれた本当の僕よ目覚めろよ』 마음속에 숨겨진 진정한 나여 깨어나라
『言葉にできないあのキズに 決着をつけるため強くなろう』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흠집을 매듭짓기 위해 강해지자
『本当の僕よ今世界で 一番の光を放っておくれ』 진정한 나여 지금 세상에서 제일의 빛을 발해줘
“어느새 이렇게 변태가 되어 버린걸까.”
いつだってこの世界には 光と闇があるだろ? 언제라도 이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겠지? ケチなさだめの僕にだって 光が降り注ぐってのかい? 구두쇠인 나에게도 빛이 내리쬔단 말이야? さだめに逆らう旅に出て さびしさつのる夜を過ごす 운명을 거스르는 여행을 떠나 쓸쓸하고 쓸쓸한 밤을 보내도 それでもあなたを思わせてくれ 그래도 당신을 생각하게 해줘요 涙のワケが毎日をかえるよ ロックンロール イズ ノットデッド 눈물의 이유가 매일을 바꿀거야 로큰롤 이즈 낫 데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떤 말로도 지금의 감정을 말하지 못할 것 같아서. 천천히 곱씹은 단어를 표현하기 보다는. 실력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겹치는 숨결의 온도에 어지러워질 것 같으면서도.
비는 그쳤다. 하지만 여전히 구름은 그대로. 시야에 비치는 거리에는 여전히 낮게 깔린 구름 탓에 어둡기만 하다. 하지만, 그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날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답레ㅔ에ㅔㅔ!!!!!!!!!!!!!!!!!! 노래는 삼보마스터의 로큰롤 이즈 낫 데드의 슈퍼비버 커버버전!!!
사실상 오늘이 마지막 날이네. 나는 일단 여기서 슬슬 작별인사를 할게! 뭔가..뭔가... 많이 아쉽기도 하고, 애매한 감정들이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여기서 정리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유우키는 아마 이후에는 아야카미에서 자리를 잡고 언제나처럼 지낼 것 같아. 대학은..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도쿄대는 무리다! 8ㅁ8 짧지만 길었던 나날이었고... 음. 그래도 재밌었어! 나는 이런 일상스레 좋아하거든. 상당히 재밌었어! 히나와의 이야기도, 아야나와의 이야기도, 다른 캐릭터들과의 이야기도 다 재밌었어. 못 돌려본 이들이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아쉽네. 하지만 요즘은 단체스레를 해도 다 비슷비슷하게 돌리는 것은 힘드니 말이야.
캡틴은 정말 고생이 많았고...다른 이들도 고생 많았어! 일댈은 아마 히데와 야요이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한번씩 관전하러 갈게!!
그럼 정말로 다들 바이바이야! 오늘도 날씨 덥고..앞으로도 더워질테니까 부디 여름 잘 쇠길 바라!
창밖으로 기울어진 비바람에 어깨가 젖어들었던 건, 피어오른 회색 구름 떼가 바라보는 눈에만 닿아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조금 늦게 깨달아버렸다. 어쩐지 무거웠었어. 그것도 모른 채 젖은 발을 성큼성큼 내디뎠네. 미련함에 부끄러워 당당하게 펼친 우산이 작게 기운다.
나는 항상 내일을 생각해왔다. 오늘을 바라보는 건 너무 괴로웠으니까. 그래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에 두 손을 모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건 모두 공상 속 바램이었다는걸 금방 깨달아버려서. 어리석은 내 모습을 피해 또다시 떠나갈 길을 바라보기만 했어. 오늘 날씨는 여전히 흐리지만 기나긴 장마가 지나면 따스한 햇볕이 다시 찾아올 거야. 이 작은 영혼이 그토록 오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봄은 저물고 여름을 지나 창밖으로 무수한 낙엽이 쏟아진다. 아름다운 벚꽃도 푸른 잎사귀도 모두 한때. 그들이 남긴 흔적이 모두 지고 나면 창백한 빛으로 세상이 물든다. 그럼에도 사계는 이어진다. 끝이 없는 실타래처럼.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이름이 잊힌 후에도.
笑ってるんだねぇもしも僕がさ | 全てを言葉にしても 웃고있구나 있지, 만약 내가 | 모든 것을 너에게 털어놓아도
なんてことのないこの日々は | ずっと消えないまま 별 것 없는 이 날들은 | 계속 지워지지 않은채로
ここに在るの変わらないの | その先で僕ら笑えていますか? 여기 있을까? 변하지는 않을까? | 그 앞에서 우리 웃을 수 있을까?
このままどこか遠くへ | このままずっと遠くへ 이대로 어딘가에 멀리 | 이대로 계속 먼 곳으로
巡り巡って君と | 旅をしたいんだ 돌고 돌아 너와 | 여행을 하고 싶어
人生において地図なんてなくて | 行き当たりばったりの 인생을 사는데 지도 같은건 없어서 | 정처 없이 떠도는
不安定な毎日なんだ | だからせめて僕は 불안정한 하루하루야 | 그러니까, 적어도 나는
この長い旅路を | 君という「愛」を連れてさ 이 긴 여정을 | 너라는 “사랑”을 데리고 말이야
生きたかったんだ 살아가고 싶었어
언제나 그랬듯, 곁에 선 그림자는 의심 많은 내게 망설이지 않고 답을 건네주었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재차 확인받고 싶은 욕심은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와 다르지 않아서. 어리숙한 어른 흉내는 금방 들통 나버렸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지 않고도 진심을 전하고, 전해 받을 수 있었던 건. 같은 문을 지나 같은 풍경을 걷고 걸었던 발자국이 지워지기엔 너무 선명하게 남아버려서일지도.
의지하지 않고 싶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씩씩한 사람이 되고 싶어. 잊을만하면 가슴 속을 스쳐 가는 그 말들이 고작 이 짧은 한순간에 물에 닿은 솜사탕처럼 사라져버린다. 어느 누구보다 솔직하지 못했던 소년의 본심은 그토록 원했던 순간 완전히 벗겨져서 다른 이의 품을 고스란히 느낀다. 사랑받는 아이가 되고 싶어. 이 깊은 공허함을 모두 채우고 넘치도록.
매 순간 기울어지는 초침마다 가쁘게 차오르는 숨도 잊을 만큼 다가오는 모든 것을 벅차게 끌어안았다. 몸짓과 목소리 사이로 겹겹이 감추어둔 마음에 닿기 위해. 소년은 영영 깨닫지 못할 테다. 지금 이 온기와 숨소리를 넘어 언제나 가까우면서도 멀었던 '외로움'이라는 이름에 닿기 위해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했는지를.
このまま遠くへ | このまま遠くへ 이대로 멀리 | 이대로 멀리
巡り巡って君と 돌고 돌아 너와
夢を見たいんだ | 独りぼっちの冴えない僕を 꿈을 꾸고 싶은 거야 | 외톨이인데다 보잘것 없는 나를
暗闇から連れ出してくれた | 太陽のような 어둠으로부터 데리고 나와 주었어 | 태양과 같은
君を道標にしてもいいかな 너를 이정표로 삼아도 괜찮을까?
시계를 외면한 채 움켜쥐었던 순간이 얼마나 길게 이어졌는지. 가늠이 잡히질 않았다. 끝나지 않을듯한 여운이 이미 지나가 버린 순간을 지독히도 붙잡고 있을 뿐. 내가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 모를 거야, 라는 이기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선배에게나 저에게나, 바램의 크기는 숫자로 빚어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이었으니까. 이제는 두렵지 않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인지, 그곳에선 누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두 다 알게 되었으니까.
"살고 싶다.. 누나야랑 같이."
소년은 속삭이듯이 말했다. 언제나 사라질 듯 위태롭던 얼굴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다가와서 심장은 터질 듯 거대하게 차오른다. 아니, 희미했던 건 내 쪽이었을지도 몰라.
2년이라는 시간은 당신께 닿기에 조금 늦을지도. 혹은 어디로 튈지 모를 변덕에 참지 못해 뛰쳐나갈지도 모르지만. 맞닿은 이 숨결을 떠올리면서 견뎌낼게. 언제나 기대어 쉴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다시 만나는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을게.
我儘だって知ってる | それでもやっぱ僕は君 제멋대로라는 건 알고있어 | 그럼에도 역시 나는 너와
生きてみたいんだ 살아가고 싶어
我儘だって知ってる | それでもやっぱ僕は君 제멋대로라는 건 알고있어 | 그럼에도 역시 나는 너와
ㅠㅜ 나쁜 야근녀석.. 빨리 낫길 바라..! 나메 보고 곰곰이 생각해본건데, 일댈쪽은..~~ 하..... 너무너무 아쉬운데 😭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본편에서 마무리 짓는걸로 하는게 더 좋을 것 같아.
요이주 컨디션도 그닥 좋지 않은 상황이구.. 나도 내년 상반기까진 상판 접률이 지독하게 곤두박질 칠 예정이라 자주는 못올것 같거든?? 한달이라는 시간이 짧은 건 아니지만 나도 지금으로썬 상황이 하루에 두어시간 내면 어어어엄청 많이 내는거라.. 기간 안에 마무리 짓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되면 괜히 마음만 조급해지구.. 결국 현생 이슈로 흐지부지 끝나진 않을까, 싶은 생각도 조금은 들어버려서.. 이대로 열린 결말로 남겨두는게 더 좋겠다는 느낌이 드네.
그래도.. 연플이라는 특별한 선물 안겨줘서 진심 감사해..!! 간택해준 덕분에 도키도키하면서 굴릴 수 있었어 😉 '설마 내 캐릭터에게도..?'라는 소소한 기대감이 이뤄질거라곤 상상도 못했거든.. 실제로 연플 맺어본건 처음이기도 해서 너무 오바하면서 돌린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무튼 야요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깊은 관계 맺을 기회 만들어줘서 고마웠어..!! 아직 마지막은 아니지만.. 먼가 곧 마지막이 될 것 같아서.. 작별 인사 남기듯이 적어버렸음 😑
아쉬운 마음에 계속 어장만 쳐다보게 되네 😭 나도 조금 이른 작별 해야할것 같아.. 하.... 우는 소리는 앞에서 많이 했으니까 그만하기로 하고..
캡틴 긴 시간동안 정말정말 고생 많았어..!!!!!!!!! 중간에 여러 비프도 있었는데 중간중간 잘 조율해준것도 정말 고맙구.... 익명으로 돌아가는 사이트에서 열정 하나만으로 책임감을 이고 가기 정말정말 어려운 일인데... 존경스러워 🥺 매번 즐겁게 놀 수 있도록 이쁜 판 깔아줘서 너무 고맙구.. 연성 선물까지 한아름 안겨줘서 많이 감동 먹었자너.. 못 잊을거야.. 캡틴의 어장도 요이주와의 연플도.. 옛날 상판 돌릴때 그 향기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