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은 그에게 있어서 꽤 행복한 시간이었다. 부모님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방 하나를 얻어서 밤 늦게까지 놀다보니 어느 순간 잠들어버렸던가. 눈을 뜨자 들리는 옆자리의 작은 숨소리는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상당히 사랑스러운 소리였다. 습관처럼 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니 바로 옆자리에 자고 있는 존재. 원래 이 자리에 없을 이였으나 오늘은 있는 것이 당연한 존재. 그 존재의 모습을 유우키는 조용히 눈에 담고 미소지었다. 저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주고 싶었으나 그럼 깨어날까 싶어 차마 그러지 못하고 그는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몸을 끄집어냈다.
그녀가 푹 잘 수 있도록, 하지만 깨어났을 때 불안해하지 않도록 굳이 방 밖으로 나가진 않으며 ㅡ물론 화장실이나 잠깐 먹을 것을 먹기 위해서 자리를 비운 것은 있었다.ㅡ 그는 다다미 위에 앉아 핸드폰을 켜고 가만히 스케쥴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굳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그래도 저녁 시간에는 한 번 가서 확인하는 것이 좋겠지. 그 외에은 또 뭐가 있을까. 나중에 히나가 일어나면 어디 놀러갈까. 아니면 그냥 여기서 시간을 보낼까. 여름이지만 온천도 괜찮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와락 안는 느낌이 들어 그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억! 소리를 내면서 두 눈을 깜빡였다. 뒤에 있는 그녀에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정면에 누군가가 있었다면 필시 그 표정이 웃기다고 엄청 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유우키는 자신의 표정을 관리하며 살며시 고개만 뒤로 돌렸다. 그러자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글쎄. 부인(奥さん)이 일어나지 않으니까 먹을 수가 있어야지."
나 혼자 먹기는 좀 그렇잖아?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그는 자신을 끌어안은 그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잘 잤어? 히나? 일어났으면 일어났다고 말이라도 하지 그랬어. 갑자기 이렇게 끌어안기나 하고."
소년은 어젯밤 꿈을 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유난히 겁이 많고 소심했던 꼬마아이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걸었다. 한 골목을 지나 조금 성장해버린 아이, 아버지는 어느 순간 작은 손을 떠나간다. 아빠, 어디로 가는거에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돌아선 뒷모습은 말없이 멀어진다. 사계절이 지나듯 빠르게 스쳐가는 불빛들. 고향의 전경이 반짝이듯 비추었다 사라지고 친구들과 인연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옆을 지나친다.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피곤해보이네. 손이 차가워, 걸음도 무거워 보이고. 괜찮은걸까. 엄마는 조금씩, 조금씩. 누군가 발목을 갉아대듯이 느려져서, 엄마의 차가운 손을 두 손으로 포개어 힘겹게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아빠 엄마만 바라보던 눈빛이 나아갈 길을 알리가 없어서 막연하게 가쁜 숨을 쉬었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밤이 된듯 싸늘한 바람이 불어서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너는 이름이 뭐야?"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언제 거기 서있었는지도 모를 낯선 아저씨가 말없이 어딘가를 가리켜준다. 소년은 아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소지로 아저씨-"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빛이 온몸을 감싼다. 추운 계절이 지나 벚꽃잎이 내려오고, 뜨거운 햇빛과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고개를 돌렸을땐 나는 허공을 움켜쥐고 있었다. 어느 순간 엄마도 떠나버려서. 이제 이 거리에는 나 혼자만이 남았네. 히데미는 숨이 막힐듯 어수선한 공간 한 가운데에서 막연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지로 아저씨, 죄송합니데이. 아저씨가 알려주신 그 곳. 어딘지 잊어버렸어예. 그랬었는데.
쿠당탕―――― 하고 커다란 소리가 났다.
지금 귓가로 전해지는 숨소리는, 그리고 목소리는. 닿은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이 온기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냥 가벼운 꿈이라고 생각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머라는데.."
히데미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냥 그렇게 말했다. 갈라지듯한 목소리의 틈새에서 꾹꾹 감춰두었던 복잡한 감정들이 마구 솟구쳐 올라와서 두 눈을 적신다. 사구에 들렀던 그 날부터 이젠 울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뺨에 닿은 가벼운 온기에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떨어져서 저도 모르게 가쁜 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쉽게 안죽는다.. 그니까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마라.. 알았제이..?"
목구멍 아래로 끓어오를듯한 기운에 이를 꽉 물고. 서둘러 눈물을 옷소매로 훔쳐대며 먹먹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더이상,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아픈 모습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고와는 연관 없어 보이는 흉터에 그만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엉뚱한 시선에 자꾸만 보이면 안될 것들이 사로잡혀서 소중한 인연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가볍게 포옹한다.
줄곧 바라왔다. 언젠가는 병상에 누워계신 어머니가 자기를 이렇게 안아주기를. 기다림의 무게만큼 안아버린다면 바스라질테니. 슬픔의 무게만큼 안아주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