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서연이 읽어낸 내용을 실시간으로 전달받을 순 없었으나, 순간순간 달라지는 미세한 얼굴 근육의 떨림을 보면 저 일기에 담긴 기억이 마냥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어렵잖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조사가 종료된 후 서연이 눈을 떴다면, 리라는 아마도 서연이 읽어낸 내용들을 적절히 전달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응, 월이랑 같이. 벽 뒤에 뭔가 있다면 빈 공간이 존재할 테니까 투시 안경을 만들어서 위치를 살피고,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에 문을 그려서 열고 들어갔어."
감았던 눈을 뜨자 안경 너머의 갈색 눈동자가 똑바로 보인다. 리라는 그런 서연의 말에 대답하고, 유리알 너머의 눈을 보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이건, 가 보고 싶다는 뜻이겠지. 괜찮을까.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점령당한 사고 현장, 누군가의 수습되지 않은 몸이 약간의 천조각 따위만을 남기고 재가 되어 소복히 쌓여 있는 장소. 그곳에서 보게 될 일이란 뭐가 됐든 절대 좋은 게 못 될 텐데.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만류하기엔 늦었다. 이미 서연에게 여기까지 말한 이상, 그도 최소한 리라와 동월이 아는 만큼은 알 권리가 있다.
"......서연이 네가 원한다면 들어가게 해 줄 수 있어. 하지만 조심해야 해. 보고 싶지 않은 걸 보게 되면, 그래서 힘들다면 그냥 바로 중단하고 나와야 하고. 알았지?"
사연을 파헤치는 건 중요하다. 아직도 고인의 생존 여부조차 모르고 헤매는 사람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 이상으로 지금 제 앞에 앉은 친구 또한 소중하니, 네가 무리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이윽고 리라는 포스트잇을 꺼내 네모반듯한 천 하나를 그려낸 후 서연에게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거 투명 망토야. 나야 뭣도 모를 때부터 막 드나들었으니 이제 와서 굳이 가릴 필요는 없지만, 서연이 너는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기장을 옆구리에 끼고 필통을 한 손에 쥔 채.
"같이 가자."
목화고등학교 부속 연구소 어딘가의 유난히 인적 드문 복도. 리라는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오가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다가 주머니에서 액상 분필 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 그의 키보다 조금 더 높은 문 모양의 그림을 그린 뒤 실체화 시킨다.
이윽고 서연이 그 안에 들어갔다면, 먼지가 쌓인 오래된 커리큘럼실의 풍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인 커리큘럼실에 있는 각종 도구와 기구들, 반쯤 부서진 차트판이 올려져 있는 테이블, 캐비닛,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구석에 설치된 방음 부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내부에는 창문 하나 없는데도 어딘가에서 스산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거다.
"저 방음 부스 안에 구멍이 나 있어. 거기서 나오는 바람이야. 내가 추측하기로는 저 부스 안에서 상담이 진행됐던 것 같은데, 안에 들어갈 거면 조심해. 저기가 제일 심해서."
그 말대로, 방음 부스 안은 처절한 모양새였다. 탄 자국인지 핏자국인지 모를 검은 자국이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고, 테이블이나 의자는 반파되었으며, 눌어붙은 종이나 플라스틱 따위가 여기저기에 퍼져 있고, 방음 부스 한켠의 타일을 뜯어낸 곳에서는 고온의 무언가로 뚫어낸 듯한 시꺼먼 구멍이 탄내를 풍기며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저 구멍 안쪽은... 월이랑은 가 봤는데, 안 가는 걸 추천해. ......사람, 같은 게 있어서."
사람 같은 것. 그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 존재했다는 걸 증명할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 제대로 된 형체는 없었으니까. 이윽고 말을 끝마친 리라는 서연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둘러보자."
(이하 서연이 조사했다는 가정 하에 각 물품들이 보여준 기억들)
1. 커리큘럼실 한켠에 있는 수술대, 수술도구들 >> 눈을 감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류빈의 머리에서 전극을 떼어내고 봉합하는, 흰 가운에 어두운 밀색 머리를 한 연구원의 모습. 시점이 변경되어 늦은 밤, 어두운 커리큘럼실에서 의료용 쟁반 위에 작은 칩 하나를 올려두고 차트를 끼적이고 있는 같은 연구원의 모습. 또다시 시점이 변경되어 늦겨울로 추정되는 어느 날. 마취가 된 듯 잠들어 있는 류빈의 머리를 열고 칩을 이식하는 연구원의 모습. 이후로는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나, 칩 이식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류빈의 안색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는 듯하다.
2. 반쯤 부서진 차트판 >> 류빈의 커리큘럼 데이터와 커리큘럼 내용, 성장 흐름 등이 적혀 있는 차트판이다. 17세 때까지는 레벨 0에서 머무르던 게 그 해 겨울 즈음부터는 레벨 1, 그 뒤로 해가 바뀌자마자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최종 계수는 100. 전후로 선을 넘나드는 종류의 커리큘럼들이 실행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며, 18세 초반,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쯤의 기록에서 <뇌에 '전기 자극 칩'을 심었다는 내용>이 간단한 메모로 적혀 있다. 또한 이 시점 이후로 류빈의 레벨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성장 흐름 그래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하는 가장 마지막으로 기록된 선류빈의 커리큘럼 데이터다.
[xxxx년 xx월 xx일] [이름: 선류빈] [나이: 18] [성별: 여성] [능력: 포토키네시스 / 포톤 레이저] [계수: 100] [레벨: 4] 비고: 성공적으로 레벨 상승 중. 다만 최근 계수 감소의 폭이 적어짐. 하여 칩의 강도를 조절해서 더욱 빠른 성장을 도모하고자 함.
3. 캐비닛 >> 일기장을 만졌을 때처럼 계절별로 흐르는 기억들. 캐비닛의 문을 열고, 입고 있던 옷을 갈아입은 뒤 접어 넣거나 가방을 넣어두는 류빈의 모습이 스쳐간다. 계절이 지날수록 의기소침해지고 무표정해지는 표정이 눈에 띄며, 때때로 눈물 자국 투성이인 얼굴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거나 커다란 반창고를 대고 있는 모습들이 비춰진다.
4. 방음 부스의 벽 >> 조금 전 살펴보았던 물품들과 동일하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전개된다. 다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언뜻 부드러워 보이나 명백히 강압적인 태도의 연구원 앞에서 바짝 긴장한 학생, 그리고 그 모습대로인 대화 흐름. 그런 날들이 며칠이고 몇 달이고 쌓여가며, 조금 전 서연이 보았듯이 류빈의 안색이 점점 나빠진다. 그리고, 어느 날의 기억에 이르러서는 비로소 똑같았던 풍경에 변화가 일어난다. 차트를 내던진 후 머리를 부여잡고 울부짖다가, 일어나서 화를 내다가, 이내 바닥에 엎어지다시피 하며 애원하는 류빈의 모습. 그리고 그 모든 모습을 미동 없이 바라보는 연구원의 뒷모습.
"이런 말은 없었잖아요! 어떻게 저한테 한 마디도 없이 이런 걸 제 머리에 심을 수가 있어요? 그동안 아팠던 게 다 이것 때문이었다니!" "알았다면 동의했을 건가요? 아닐 텐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장 제거해요!" "두통은 곧 가라앉을 거예요. 한참 상승세에 올라 있는데 지금 포기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더 강한 약을 처방해주죠. 잘 해왔잖아요?" "그 약 효과도 없어요! 두통만 문제도 아니고요! 갈수록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에요. 성격도 이상해지고, 화도 못 참겠고,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충동적으로 굴게 되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도대체!"
그 말을 끝으로 류빈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모로 쓰러진다. 이윽고 연구원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류빈에게 다가간 뒤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안타깝게도 내용까지는 들리지 않지만, 서연은 연구원의 손에 무언가의 컨트롤러로 유추되는 작은 기계가 들려있는 걸 볼 수 있었을 것이다.
"..... ......겁니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연구원이 다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비명이 멎었다. 바닥을 뒹굴던 류빈은 한동안 미동이 없다가 연구원의 뒤를 따라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동시에 기이할 정도로 새하얗고 밝은 빛이 방음 부스 안을 채웠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공백의 시간 속에서, 서연은 낮은 목소리를 가진 누군가가 지르는 비명과 짙은 혈향, 그리고 벽을 이루는 구조물과 인간이 입은 천 따위가 함께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 것이다.
4학구. 은우가 홀로 침입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곳. 아마, 아니 지금은 확실하게 폐허가 되어있을 것이 분명한 연구소의 위치를 여러가지 일들이 켜켜이 먼지처럼 쌓여서 희미해진 머릿속에서 헤집어냈다. 희미하던 기억이, 천천히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서서히 선명해진다. 위치가, 그곳에서 봤던 강렬한 그 장면만이 선연하다.
은우에게는 동기 한명과 동행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예전의 자신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자신에게는 누군가와 무언가를 위해 함께 같은 공간으로 동행한다는 것-혹은 행동-은 어색한 일이다. 타인과 공통된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건 상관없지만,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라면 홀로 움직이는 게 편하다. 그렇기 때문에 혜성은 스트레인지의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비사문천 아지트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정말로 혼자 갈 수는 없고. 피우던 담배를 휴대용 재떨이에 눌러끄는 혜성의 눈길이 한량처럼 창문에 매달리듯 걸터 앉아서 다리나 흔들고 있는 K에게 향했고.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는 혜성의 하늘빛 감도는 새파란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K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스쳐지나가는 귀찮아질 것 같다는 K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죠." ".......**."
K는 단말마 같은 욕설을 씹어뱉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멀쩡하게 남아있는 물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폐허를 천천히 걸어다니는 비사문천을 대표하는 캡틴의 뒷모습을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던 K가 짜증스레 발치의 돌멩이를 걷어찼다. 쥐죽은 공기에 허탈하게 어딘가에 부딪힌 돌멩이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고철이라도 주으러 왔어? 이딴 폐허에서 뭐 찾을 게 있다고 그렇게 이잡듯이 뒤지는건데. 말은 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
이 빌어먹을 캡틴**야. 하는 말을 K는 어렵사리 꿀꺽 삼킨다. 제 눈에는 그냥 전부 부서지고 박살나서, 뭐가 있던 곳인지 알 수 없는 폐허인데, 그 어떤 초능력들보다 월등한 탐지계 능력자에게는 여기가 노다지인 모양이지. **. K가 다시 짜증스레 욕설을 뱉었으나 두어발 앞장서서 걷고 있는 혜성은 그저 느릿한 웃음소리를 흘릴 뿐이었다.
폐허로 들어서자마자 탐지 연산을 시작한 혜성은 곧장 찾고자 하는 것을 우선 순위로 탐지할 수 있게 연산을 약간 변형했다. 찾는 것은 그날 봤던 태아가 들어있던 배양관이나 혹은 그와 관련된 것들. 그리고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여, 주변에 적으로 간주되는 이들도 탐지 필터에 추가했다. 운동화를 건드리며 굴러떨어지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 여기저기 흩어진 부서져 있는 무언가들의 파편, 그 외 연구소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것들이 폐허 여기저기서 혜성의 눈에 들었으나 정작 자신이 목표하는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못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못 찾는 거라면.. 혜성은 걸음을 멈추고 탐지에 집중했다.
은폐하려던 공간이면 귀신보다 은폐를 주도한 수박들이 튀어나오는 걸 걱정해야 하나? 눈을 굴리며 가늠해 보는 서연이었다. 모르긴 해도 꽤나 뒤가 구린 공간 같은데, 리모델링이든 뭐든 구실을 붙여서 싹 밀어 버리지 않고 벽 뒤에 남겨 놓은 건 무슨 저의일까. 아직 무슨 일이 더 벌어지고 있어서일까. 벽 뒤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마저 깨끗이 잊혀서일까. 확인해 보면 알겠지.
그렇게 마음을 굳히려니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자기보다 타인을 더 염려하는, 리라다운 걱정이 이어졌다. 사람 심리란 참 묘하다. 커리큘럼으로 안티스킬에서 살인 사건을 조사할 때마다 힘들다고 징징댔는데, 이번엔 오히려 오기 비슷한 게 솟는다. 내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 헤아려진다는 게 이런 힘을 주나? 서연은 히죽 웃어 보였다.
" 응.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할게. "
" 고마워!! "
리라의 진심어린 걱정과 함께 투명 망토를 걸친다. 그리고 리라가 만들어 낸 문을 따라 가 보니 퀘퀘한 먼지 냄새부터 난다. 인기척은? 전혀 없다. 기묘하게 등골을 쭈뼛하게 만드는 바람 소리뿐. 귀신의 커리큘럼실 테마로 꾸몄대도 믿겠네.
몸서리를 치려니 리라가 방음 부스 안에서 바람이 불어온다고 알려 주었다. 그 안은 얼핏 봐도 새카맸다. 부서진 테이블과 의자, 타거나 녹아 버린 잡동사니, 먼지 냄새를 압도하는 탄내. 누가 불이라도 질렀을까? 저길 조사해 봐야 하나? 접근해 보려는데 리라가 말렸다. '사람 같은 거'라니, 불에 탄 마네킹이라면 참 좋겠지만 그렇다면 리라가 이렇게 완곡하게 말릴 리 없지. 모르긴 해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무언가를 본 게 틀림없다.
" 많이 놀랐겠다... 너도, 월이도. "
그럼 저쪽은, 아무 단서가 없을 때의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서연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손을 풀었다. 마치 그래야 사이코메트리가 더 잘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머리를 열거나 전기로 지져서 부작용이 왔던 거 같으니, 일단 수술대부터 손을 대 본다. 역시나 일기장의 주인인 소녀의 머리를 지졌던 모양이다. 여기까지는 익숙한데... 한밤중의 연구실이 보였다. 앞서 얼굴을 찡그린 채였던 것과 딴판으로 소녀는 잠든 듯 평온한 표정이다. 그런 소녀의 머리를 연구원들이 여는데... 어라? 뭔가 넣는다? 칩? 저거 (오맨들씨 연구소의 기록에 있던) 플레어의 뇌에 넣었다는 그런 류는 아니겠지?? 설마;;; 께름칙한 가운데 머리를 전기로 지지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소녀의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얼굴이 핼쓱해지는 것만 눈에 띈다. 아무래도 저 칩이 문제 같은데.
" 커리큘럼할 때 일기장 주인한테 수상쩍은 칩을 삽입했었어. 그 칩이 문제를 일으켰던 거 같아. "
다음으로 확인해 본 것은 커리큘럼 데이터를 기록해 놨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차트였다. 아니,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부서져 있었으니 차트였던 것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그것을 만져 보니, 일기장의 주인 역시 레벨 성장에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17세 때의 겨울에 레벨을 1까지는 올렸는데, 그 이후의 기록이 이상했다. 전기 자극 칩? 그걸 심었다는 메모가 적힌 시점부터 소녀의 능력은 급격히 성장했다. 아까 수술대에서 삽입했던 그 칩이 뇌를 전기로 자극해서 능력을 향상시키는 용도였나? 그런 식으로 짜맞춰 가던 중 마지막 데이터에 눈이 갔다. 다른 건 모르겠고, '칩의 강도를 조절'이라는 부분이 걸린다. 소녀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건 뇌를 계속 자극당한 탓일까? 일기장에서 봤던, 온 세상을 지우는 것 같던 빛. 그 빛은 그 결과이고?
" 아까 말한 수상쩍은 칩은 뇌를 전기로 자극해서 능력을 향상시키는 용도였던 거 같아. 칩을 심은 뒤부터 선류빈의 능력이 급성장했어. 칩에서 나오는 전력의 강도는 연구원이 임의로 조절할 수 있었던 거 같은데, 뇌가 지속적으로 전기에 노출되다 보니 선류빈이 점차 자기 통제력을 잃어갔을지도 모르겠어. "
그 외에 특별한 건 없나? 둘러보다 캐비닛을 열어 보았다. 일기장에 사이코메트리를 썼을 때 빛으로 가득찬 공간이 딱 이런 캐비닛처럼 좁았는데. 하지만, 그 빛이 영희도 쓰는 그 포톤 레이저라면 캐비닛이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캐비닛엔 선류빈이 갈수록 우울감에 젖어 가는 듯한 모습이 흘러간다. 어느샌가 무표정해지는 얼굴에, 칩의 기능이 능력 증폭임을 안 뒤임에도 플레어의 감정을 통제한다는 그 칩이 생각나 버린다. 머리에 붕대를 감거나 반창고를 붙인 모습들은 선류빈이 능력자로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어도 인간으로서는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상징 같았다. 저게 다 칩 때문이란 거지? 근데, 선류빈은 그걸 알았나? 알았다면 칩 제거도 고려해 봤음직한데. 어떻게든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어서 우울해지는 것도 감수했나? 싫다...
" ...... "
그렇게 살피고 나니 남은 건, 홀랑 타 버린 방음 부스뿐이다. 저기가 저 꼴이 난 원인은? 그 원인이 선류빈과 연관 있을까? 서연은 심호흡을 하고 마른침을 넘겼다. 그러고 방음 부스의 새까만 벽을 짚었다. 재가 묻는 듯한 감각을 무시하고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하자 주눅 든 선류빈과 대놓고든 은근히든 윽박지르는 연구원의 나날이 이어진다. 자기 통제력을 잃지 않았을 때의 선류빈은 어지간히 순한 성격이었나 보다.
그러던 중 선류빈이 달라졌다. 머리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모습이 전에 없이 격했다. 차트를 내던지기도 했는데, 그 차트는 서연이 사이코메트리로 보았던 그것 같다. 그런 격노도 오래 가진 않아서, 류빈은 바닥에 엎드려 애원조로 말했다. 칩은... 선류빈 몰래 심은 것이었다. 게다가 연구원은 선류빈이 동의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도 칩을 심었다. 이런 수박!!??
이어지는 호소는 서연의 짐작이 대강 맞음을 보여 주었다. 그 칩이 자기 통제력을 잃게 만든 원흉이었다. 그걸 확인하기 무섭게 선류빈이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졌다. 그제야 연구원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선류빈에게 무언가 말했다. 고막을 꿰뚫는 듯한 비명 소리에 묻혀 뭐라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좋은 소리일 리 없다는 거다! 연구원이 정체 모를 조종 장치를 쥐고 있는 걸 보면 빼박이다. 저 조종 장치로 뇌에 전기 충격을 가해서 선류빈이 꼼짝 못하게 한 거 아닐까?
그때 귀가 먹먹해졌다. 소름 끼치던 비명이 멎은 것이다. 연구원이 전기 충격을 그만뒀나? 근데 뭔가 이상하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는 선류빈의 움직임이, 사람 같지 않다. 좀비 영화 속 좀비에 가까운 어색함이다.
사이코메트리를 중단해야 한다는 예감이 스쳤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일기장에서 봤던 것 이상으로 환하고 끔찍한 빛이 눈을 감아도 시각을 헤집었다. 정체 모를 울부짖음은 아득히 들리는 가운데에서도 고통에 차 있었고, 선명한 피비린내는 고기를 굽는 듯한 냄새로 변질되어 갔다. 화학 물질을 태우는 것 같은 매캐하고 독한 연기가 뒤따른 게 차라리 다행일까. 그런 가운데 피부가 지져지는 듯한 착각마저 엄습했다.
" !!!! "
더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온 몸이 불에 덴 듯 얼얼하다. 구토가 목젖까지 치밀어 이를 앙다물고 몸을 웅크렸다. 그러고 한참을 침만 삼키길 되풀이하고서야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선류빈은 아마, 그 자리에서, 연구원과 함께 사망했을 것이다. 그게 선류빈의 복수였을지, 칩의 부작용이 극단적으로 치달은 결과일지는 모르겠다. 이래서 은폐했나?
" ...선류빈의 동의 없이 전기 자극 칩을 심어서 능력을 성장시켰는데, 그렇게 성장시킨 바로 그 능력 때문에 선류빈도 연구원도 다 죽었나 봐... 몰래 심은 칩이 그 정도로 큰 사건을 불러왔기 때문에 이 공간을 은폐했던 거 같아. 몰래 칩을 심는다는 사실도, 칩을 이용한 커리큘럼이 실패했다는 사실도 숨기기 위해 "
" 그리고 수박 씨는, 선류빈이 어째서 사망했는지 알아내려다 눈을 잃었고. "
수박이라 욕하기도 지긋지긋한 수박들. 분김에 바닥을 내리치고 만 서연이었다.
/설정하신 정보를 제가 맞게 해석했을지 모르겠네요👀👀👀 잘못 해석한 부분은 말씀해 주시는 대로 수정해 볼게요오오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