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이성적이고 침착한 대응에 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들어가보면 대응보다는 신을 고려한 라즈의 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신당에서 신성은 느껴지지 않으니 그리 우려하시지 않아도 괜찮사와요. 머무르는 신격없이 남겨진 사원으로 보이니." 예전에 사람들이 자주 오며 간 흔적으로 인간의 족적을 따라 만들어진 오솔길이 아직도 자란 풀더미 사이에 남아 있었다. 그 위에 새로히 흔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관리정도는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예배가 행해진지는 오래된 것 처럼 보였다.
"네. 소녀는 마츠시타 린이라 하여요." 생긋 웃으며 앞에 선 붉은 머리의 여성을 바라본다.
세상이 엄격하고 잔혹하니 성격이 나빠진다는 얘기는, 실감중이라서 너무나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게 썩 기분 좋게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전히 아닌 것이다. 나는 고개를 몇번 끄덕이고는, 이어지는 질문에도 익숙한듯 답변해준다.
"최악의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올라오고 있다, 라는 느낌일까. 특별반은 여러 세력의 기대를 모았던 대운동회에서 패배했어. 그러면서도 UHN과의 교류는 일절 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 마냥 독립을 시도한단 얘기가 나왔지. 그런 와중에 헨리 파웰 무덤 테러 사건도 엮였으니."
UHN에게서 지원받는 조직이, 지원에 대한 감사나 보답은 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서 실패했으며, 다른 집단의 의뢰는 수락하되 자기들끼린 독립하겠단 얘기가 나온다.
"그 결과는 뭐...짐작하고 있을테니 내 입으로 말하진 않을게. 나는 어쩌다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이런 얘기들을 들었지. 다행히, 대화가 잘 풀린 끝에 일단 우리가 그들을 배신하고 목덜미를 물 예정은 아니란걸 전했어."
'정리해고' 자체의 위험이 없어진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덕분에 그 들이 우리를 불러모아 대화하거나 일하게 할 여지는 생겼다.....고 할까. 라며 나는 덧붙였다.
"특별반의 실적만 놓고보면, 생각보다는 유능해. 마카오의 전쟁 스피커, 제주도의 식인귀, 바티칸의 눈먼성자라는 빌런들을 퇴치했고. 나도 고신의 게이트와, 흑기사를 토벌해내고 있으니까. 다만 그것은 UHN에게로 이어지는 실적이 아닌게 문제일 뿐."
"주변이 한적한 편이라 좀 더 많은 신도를 찾아 떠났을 수도 있사와요. 자연신이 아니면 신은 믿음으로 존재하는 존재이니." 단순히 사람이 없어서 한적한게 아닌, 요물이나 여러 위협으로 사람들이 도망가거나 잡혀서 사라진 것 같았지만 린은 구태여 할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해 생략한다.
"어머, 소녀는 편입생이어요. 서로 초면이었는지요. 아마 남아계신 분들이 루네티어 양의 생환을 안다면 기뻐하실 거여요." 비록 영월(시나리오1)을 겪은 정기 입학생의 수도 어느덧 얼마남지 않았지만 린은 그 역시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전에도 저희만 특수한 게이트에 떨어지는 상황이 있었으니 아마 그와 비슷한 돌발 상황일 것이어요. 혹여나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편히 물어보시어요." //5
"음...작금의 세태가 그리 비관적이기만 하지는 않사오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어요."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 어느정도 상대에 대한 경계를 내려놓고서 입가에 손을 살며시 얹으며 살포시 미소짓는다. 비록 기운을 돋우고자 긍정적인 전망을 말한다 하여도 그 자체가 무거운 주제인 건 어쩔 수 없으니 린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먼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어가도록 해볼까요?" 밖에 돌아가는 것은 얼마든지 더 얘기할 수 있을테니까. 무엇보다 이도 나가고 난 다음의 일이다.
"맵지만 않다면 크게 가리는 것은 없는 편이어요. 감사히 받겠사와요." 말린 오징어를 들고서 귀퉁이를 작게 베어 먹어본다.
잘 대해주는 건 조금만 더 고민해 보고...라는 의미에서 어깨를 으쓱했어. 물론 장난이지만. 그야 같은 특별반이고, 같은 배를 탄 사이에게 잘 대해주는 건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어?
"나도 사실 말은 잘 하는 편은 아니라서 말이야. 오히려 사람의 화를 나게 하는데 특화돼있다고 해야 하나? 내가 몬스터한테 뭐라고 하면 다들 화가 나서 나한테 달려들더라고!"
저 어그로 잘 끌죠? 장난 어린 이야기도 잠시, 다시 우울한 이야기로 돌아왔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슬프게도 사실이지. 강림한 신을 상대하려면 충분한 힘이 필요할 테고 (나는 스킬의 특성상 GP도 많이 필요하겠지.), 충분한 힘을 가지게 되어도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건 운이 좋은 사람만 가능하니까...
맞다. 마도는 유동적이다. 개인의 생각으로 표현되는 마도에 있어 마도는 불안정하지 않은가? 그 질문은 이렇게도 바꿀 수 있다. 마도를 시전할 때 꼭 같은 생각을 하며 고정된 형태와 형식으로 시전해야 하는가? 그래야만 마도가 안정적이라 할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은 의념의 여부와 무관하게 예술 분야에서도 유사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강산의 상황에 가장 흔하게 들 법한 의문으로, '가야금은 국악만을 연주하기 위한 악기인가?'가 있을 것이다.
예술과 마도는 상당히 큰 공통점을 갖는다. 예술은 특정한 형식으로 미를 창조하고 표현하는 인간 활동이다. 그러나 이 표현 활동에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여 인간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인간은 각자 다른 가치관과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마도가 유동적인 것은 이것이 '의념 각성자'가 '의념'을 다루는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의념'이라는 힘은 그것을 각성한 사람의 욕구나 의지, 바람 등을 따르는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의념 각성자가 어떤 능력을 개화하고 다루게 되는지는 그 사람이 바라거나 생각하고, 또 믿거나 행하는 것에 유의미한 영향을 받는다. 특히 '마도'는 의념의 그러한 성질을 직접적으로 다루어 바라는 현상을 재현 혹은 구현하는 것에 집중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다른 기술군에 비해 이러한 개개인 간의 차이나 유동성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질문인 '가야금은 국악만을 연주하기 위한 악기인가?'로 잠시 돌아가자면, 강산은 이미 이 질문에 '아니기를 바란다'라고 답한 바 있다. 과거부터 해 온 행동으로, 또 미리내고를 찾았던 청비 서이환에게 답한 말로 말이다. 가야금으로 현대 가요 형식의 응원가를 연주했을 때 그의 공연을 칭찬하면서도 한편 국악기로 양악을 연주한 것이 조금 아쉽다고 말했던 서이환에게, 강산은 자신의 연주를 국악 혹은 양악 어느 한 쪽에만 묶어두고 싶지 않다고 답하였다. 당시 강산은 자신의 악기가 온전히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한 악기가 아닌 후대에 양악과의 호환을 위해 개량된 종류임을 밝혔지만, 의념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각성자이자 연주자인 강산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찌 그 손에 들린 것이 전통적인 12현 산조 가야금이라 하여 힙합 음악을 소화해낼 방법을 찾지 못하랴.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강산의 음악관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 강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주자가 자기 버스킹에서 무슨 곡을 연주할지는 자기 마음이다. 원하는 대로 표현할 실력만 갖춰준다면 자신이 표현하기 나름이다.
마도에 대한 강산의 인식도 이와 유사하다. 옛말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하였다. 자신이 쓰는 마도가 남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심지어 이 모양 이 꼴로 쓰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자기 자신 뿐이라 하여도 상관없다. 그 방식이 심히 비효율적이지 않으면서 충분히 자신이 의도한 결과를 일으킬 수만 있다면 그것은 유효하지 않은 마도가 아니며, 마도를 어떻게 응용할지는 시전하는 마도사의 자유다.
그는 이 문제에 이런 결론을 내린다. 마도의 유동성과 다양성은 마도의 불안정성과 별개로 보아야 한다. 마도를 시전해 현상을 일으키는 것 자체가 불안정하다면 그것은 시전하는 사람이 마도, 즉 '의념을 기반으로 현상을 뒤틀거나 일으키는 기술'의 숙련도가 떨어지기 때문이거나, 주변에 마도의 시전 및 구현이나 의념의 발현 그 자체를 방해하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전하는 사람이 무언가 의도를 가지고 이에 맞게 마도를 변형해서 사용하고 있다면...극단적으로는 시전할때마다 매번 마도의 형태가 시시각각 달라진다 하여도, 그것이 시전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한 마도가 불안정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시전자가 변덕쟁이인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