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같다는 이야기의 중간쯤에 보이기 시작하는 반짝이는 결정! 나는 그 자그마한 결정의 중앙을 노리고 탄환을 쐈어! 탕-! 하는 요란스러운 사격음이 한 번 더 들리고 장수말벌 따까리는 다른 말벌과 똑같이 양력을 잃고 빙글빙글 돌면서 추락하며 제 운명이 다 했음을 알리고 있었지.
"고마워! 그런데 우리 뭐 잊고 있던 거 없나?"
어... 뭔가 찜찜한데... 보스라던가 말벌 리더라던가 피를 흘리고 있던 드론 하나가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검은 머리에 붉은 눈, 그와 대비되는 창백한 얼굴을 한 소녀는 그와 썩 어울리는 분위기의 옛 사당 앞에서 흰 천 자락이 날리는 정문 안으로 들어갈지 말지를 고심하고 있었다. 주어지는 의문의 메세지로, 때로는 주민의 입을 통해 맥락을 알 수 없는 자잘한 의뢰를 해결했지만 여전히 린은 이 층에 갇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실 그 이유보다도 그녀가 이 앞에서 가만히 서 웃는 낯으로 있음은 방금 전부터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경험으로 미루어 봐서 이 곳, 탑에 들어온 외부인은 저를 포함한 특별반 뿐이었다. 여태 마주한 사람들의 기척은 전부 외웠다 생각하다 낯선 기척이 감각에 잡혀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 뵙는 분, 좀 더 밝은 곳으로 오시는 것이 어떠올지. 음지에 계시는 건 그리 좋지 않으니 말이어요." 미소 짓는 낯으로 입을 열어 말한다.
"기세를 보아하니 이 곳의 주민들과는 다른 곳에서 오신 분인 듯 하오니, 같은 이방인으로서 서로 대화를 해보고 싶사와요." //1
"그렇죠.. 시련 자체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결국 닿아있는 게 아닐까요?" "어.. 뭐더라. 한번 내린 깨달음이 다음 깨달음에서 부정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걸어온 길이라고 하면, 어떤 것으로 인해 이런 생각을 하기게 되었는가. 그런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선은.. 경험이 부족한 편이죠. 비교적.. 그렇습니다.
"그럼 시윤 씨는 무기술 관련 깨달음에서 뭘 생각하셨을까요~" 그렇게 진지한 질문은 아닙니다. 무기술 자체가 다른 만큼 그냥.. 어떤 느낌이었을지 묻는 것에 가까울까요?
2층으로 올라가려면 소일거리를 해야 한 다라... 나는 이 탑이 흡족해할만한 일거리를 찾아 넓은 1층을 둘러보고 있었어. 그런데, 아까는 보지 못한 사당? 같은 것이 보이는 거야. 그래서 호기심에 슬쩍 내부로 들어가 봤지.
사당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누군가를 모시기 위한 이런저런 잡기들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서 자세히 살펴보기 전까진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할까. 거기다 여긴 신을 모시는 곳이니 함부로 물건을 만질 수도 없는 노릇이야. 그러니 그만 나가야겠단 생각이 들 때쯤,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더 있었다간 이곳에서 모시는 신이 노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어째서인지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 나와 흰 천을 조심스럽게 걷었어. 음, 이쪽도 모르는 얼굴인걸.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침착한 대응에 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들어가보면 대응보다는 신을 고려한 라즈의 말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신당에서 신성은 느껴지지 않으니 그리 우려하시지 않아도 괜찮사와요. 머무르는 신격없이 남겨진 사원으로 보이니." 예전에 사람들이 자주 오며 간 흔적으로 인간의 족적을 따라 만들어진 오솔길이 아직도 자란 풀더미 사이에 남아 있었다. 그 위에 새로히 흔적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관리정도는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예배가 행해진지는 오래된 것 처럼 보였다.
"네. 소녀는 마츠시타 린이라 하여요." 생긋 웃으며 앞에 선 붉은 머리의 여성을 바라본다.
세상이 엄격하고 잔혹하니 성격이 나빠진다는 얘기는, 실감중이라서 너무나도 잘 안다. 그렇지만 그게 썩 기분 좋게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전히 아닌 것이다. 나는 고개를 몇번 끄덕이고는, 이어지는 질문에도 익숙한듯 답변해준다.
"최악의 위기에서 아슬아슬하게 올라오고 있다, 라는 느낌일까. 특별반은 여러 세력의 기대를 모았던 대운동회에서 패배했어. 그러면서도 UHN과의 교류는 일절 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 마냥 독립을 시도한단 얘기가 나왔지. 그런 와중에 헨리 파웰 무덤 테러 사건도 엮였으니."
UHN에게서 지원받는 조직이, 지원에 대한 감사나 보답은 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서 실패했으며, 다른 집단의 의뢰는 수락하되 자기들끼린 독립하겠단 얘기가 나온다.
"그 결과는 뭐...짐작하고 있을테니 내 입으로 말하진 않을게. 나는 어쩌다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이런 얘기들을 들었지. 다행히, 대화가 잘 풀린 끝에 일단 우리가 그들을 배신하고 목덜미를 물 예정은 아니란걸 전했어."
'정리해고' 자체의 위험이 없어진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덕분에 그 들이 우리를 불러모아 대화하거나 일하게 할 여지는 생겼다.....고 할까. 라며 나는 덧붙였다.
"특별반의 실적만 놓고보면, 생각보다는 유능해. 마카오의 전쟁 스피커, 제주도의 식인귀, 바티칸의 눈먼성자라는 빌런들을 퇴치했고. 나도 고신의 게이트와, 흑기사를 토벌해내고 있으니까. 다만 그것은 UHN에게로 이어지는 실적이 아닌게 문제일 뿐."
"주변이 한적한 편이라 좀 더 많은 신도를 찾아 떠났을 수도 있사와요. 자연신이 아니면 신은 믿음으로 존재하는 존재이니." 단순히 사람이 없어서 한적한게 아닌, 요물이나 여러 위협으로 사람들이 도망가거나 잡혀서 사라진 것 같았지만 린은 구태여 할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해 생략한다.
"어머, 소녀는 편입생이어요. 서로 초면이었는지요. 아마 남아계신 분들이 루네티어 양의 생환을 안다면 기뻐하실 거여요." 비록 영월(시나리오1)을 겪은 정기 입학생의 수도 어느덧 얼마남지 않았지만 린은 그 역시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전에도 저희만 특수한 게이트에 떨어지는 상황이 있었으니 아마 그와 비슷한 돌발 상황일 것이어요. 혹여나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편히 물어보시어요." //5
"음...작금의 세태가 그리 비관적이기만 하지는 않사오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어요."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 어느정도 상대에 대한 경계를 내려놓고서 입가에 손을 살며시 얹으며 살포시 미소짓는다. 비록 기운을 돋우고자 긍정적인 전망을 말한다 하여도 그 자체가 무거운 주제인 건 어쩔 수 없으니 린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먼저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어가도록 해볼까요?" 밖에 돌아가는 것은 얼마든지 더 얘기할 수 있을테니까. 무엇보다 이도 나가고 난 다음의 일이다.
"맵지만 않다면 크게 가리는 것은 없는 편이어요. 감사히 받겠사와요." 말린 오징어를 들고서 귀퉁이를 작게 베어 먹어본다.
잘 대해주는 건 조금만 더 고민해 보고...라는 의미에서 어깨를 으쓱했어. 물론 장난이지만. 그야 같은 특별반이고, 같은 배를 탄 사이에게 잘 대해주는 건 당연한 이야기 아니겠어?
"나도 사실 말은 잘 하는 편은 아니라서 말이야. 오히려 사람의 화를 나게 하는데 특화돼있다고 해야 하나? 내가 몬스터한테 뭐라고 하면 다들 화가 나서 나한테 달려들더라고!"
저 어그로 잘 끌죠? 장난 어린 이야기도 잠시, 다시 우울한 이야기로 돌아왔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슬프게도 사실이지. 강림한 신을 상대하려면 충분한 힘이 필요할 테고 (나는 스킬의 특성상 GP도 많이 필요하겠지.), 충분한 힘을 가지게 되어도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건 운이 좋은 사람만 가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