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시즌에 나를 처음으로 이곳에 데리고 와서 견학시켜준 사람. 나의 담당으로 사바캔부터 마구로 기념, 그리고 시니어 시즌까지 함께했던 트레이너. 시니어 시즌 겨울에 아무런 말도 없이 편지만 남기고 떠나버린 사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 situplay>1597038191>1 히다이 유우가 situplay>1597038191>2 메이사 프로키온 situplay>1597038191> situplay>1597039238> situplay>1597041174> situplay>1597044204> situplay>1597046156> situplay>1597046776>
오늘의 저녁은 햄버그스테이크였다. ....그럭저럭 맛있네.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다시 소파로 향했다. 체르탄을 줍기도 귀찮아서 대충 발로 슥슥 밀어놓고 소파에 앉아, 가라앉은 기분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키려고 담배나 피우러 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발소리가 점점 소파로 가까이 다가온다. ...밥 남기는 걸로 잔소리라도 하려는 건가. 그동안은 별 말 없더니. 대체 뭐가 불만인거냐고 따지려고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불이 붙은 초를 꽂은 케이크를 든 유우가가 있었다. ....누가 봐도 생일 케이크인, 그걸 들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떨어진 체르탄마저 주워들어서. 나에게. 생일? 내 생일이라고?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오른다. 케이크라는 단어만으로도 상기하게 되는 그 날의 기억이, 간신히 눌러둔 그것이 다시 꿈틀거리면서 튀어올라온다. 녹았다 굳은 촛농으로 뒤덮여 딱딱하게 굳은, 더 이상 먹을 수도 무언가를 축하할 수도 없어진 케이크였던 것을 내다버리면서 한참을 울었던 날의 기억이 나를 뒤덮는다. 너무 크고, 너무 많은 감정이 몰려와서 뭐라 하고 싶은데 그것들의 출구는 좁은 입술 단 하나뿐이라서, 꽉 막힌 입술만을 달싹이다가 손을 내밀어서—
——케이크를 내민 네 손을 뿌리쳤다. 공중으로 떠오른 케이크는 크림 때문인지, 조금 축축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처박혔고 밝게 빛나던 촛불은 크림을 잔뜩 뒤집어쓴채 꺼져서 연기만이 잠시 피어오르다가 그쳤다.
"——뭐냐고, 이제와서...!"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분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감정이 격해져 있단 건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분명 네 얼굴을 시야에 넣고 있는데도, 네가 어떤 표정인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 내 감정을 폭발시키기에 바빠서.
사람이 너무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면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순식간의 일을 제대로 못 받아들이고 얼떨떨해 하거나.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거나. 나에게는 후자였다. 손에서 떨어져 나가는 접시. 그걸 쳐내는 네 울컥한 얼굴. 촛불째로 바닥에 처박히는 케이크. 뒤늦은 철퍽하는 소리와, 이미 포기해서 접시를 잡아보려는 시도조차 안 하는 나. 그것들이 전부 생생하게 머리에 새겨졌다는 소리다.
- 뭐냐고, 이제 와서...!
몸이 빠르게 상황을 포착하는 것과는 다르게 머리는 멍했다. 네가 왜, 어디서,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났는지조차 전혀 감잡지 못했다. 이제 와서? 내가 언제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서프라이즈를 위해 잠시 거짓말로 미룬 것마저 문제였나? 그게 아니면, 더 옛날의 일인가?
얼굴을 한껏 찡그린 메이사. 마치 '네가 날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어' 라는 듯이, 증오를 담아 쏘아보는 눈빛에 속이 저며지는 느낌이다. 누가 살을 잡아 뜯어도 이런 기분은 아니겠다. 마음의 벽지를 잔뜩 뜯어내는 기분에 입을 꾹 다물고, 떨어진 케이크를 바라봤다.
회생 불가. 너와 나의 관계도 회생할 수 없다. 빚을 잔뜩 진 이상 복리로 불어나는 이자를 갚기만도 바쁘다. 생일이라고 정성들여 준비해봤자, 그건 네 원금의 티끌만치도 갚을 수 없노라고. 누가 손끝으로 가슴을 쿡쿡 찔러대며 일갈하는 듯 했다.
아마도 그건 사실이겠지. 그 증명이 이렇게 눈앞에서 펼쳐졌는데.
그냥... 허망했다. 지쳤다. 슬프기 이전에 힘이 빠졌다. 그래서 오히려 차분하게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네 앞에서 몇번이고 뱉었던 한숨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더욱 쓴맛이었다.
"...그래."
그렇게 말하고, 네가 죽고 못 사는 체르탄을 크림뭉치에 집어던졌다. 내 손으로 꿰맸던 물건이지만 아깝지도 않았다. 다 소용없는 거 아닌가. 내가 꿰맨 거 역겨워서 껴안기나 하겠나.
"미안하다. 이제 와서 생일축하한다고 성질 긁어대서."
"난... 모르겠다 이제."
"이제 나가서 살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해. 지랄 안 할 테니까."
케이크와 체르탄. 프리지아가 공고했던 시절의 추억이 전부 뒤엉켜서 엉망인 꼴이 되어 있다.
"......내가... 아니다." "너랑 엮인 것부터가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네."
머리를 헝클였다. 그런다고 멍한 머리가 맑아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네 뒤치다꺼리를 하며 몸에 익은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쓰레기 봉투째로 들고와서 체르탄도 질퍽거리는 크림덩이도 다 처넣고, 휴지로 대충 문대고 체르탄 위로 다 던져넣는다. 꽉찬 봉투를 묶고 신발장에 던져놓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케이크 위로 체르탄이 내던져진다. 크림이 덕지덕지 묻어서 엉망진창이 된 체르탄이 먼저 쓰레기봉투로 던져지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된 케이크가 던져지고, 그 위로는 크림 범벅이 된 휴지들이 던져진다. 꽁꽁 묶인 봉투는 현관 신발장 옆에 툭 던져지고, 그렇게 뒷정리를 마친 유우가는 방에 들어가버렸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너의 마지막 말을 곱씹고 있었다.
- 너랑 엮인 것부터가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네.
어디부터 잘못된걸까. 우리는 어디부터 이렇게 엉켜버린걸까. 그렇게 물어본다면 내 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가 날 버리고 떠났을 때부터 단단히 꼬이고 잘못됐다고. 하지만 너는 그것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나랑 엮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래.. 어쩌면..... 어쩌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르지. 괜히 프러시안을 나와서, 괜히 그날 옥상에 올라가서, 팀을 만들자는 그 제안을 괜히 받아들여서. 네가 그렇게나 거절했는데도 괜히 끈질기게 달라붙어선. 좋았던 기억만큼이나 끔찍한 기억을 가득 남겨서, 이젠 뭐가 더 큰지도 모르겠고......
진즉 바닥에 처박힌 줄 알았던 기분은 더, 더 아래로 더 깊숙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그래...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진짜 최악이다.
"..............그러네..."
조금 비틀거리면서 현관으로 향했다. 대충 슬리퍼에 발을 구겨넣다가 불투명한 봉투 너머로 체르탄과 눈이 마주친다. 너도 나처럼 너덜너덜해져선, 이렇게 버려지는구나. ...이젠 그 누구도 우릴 원하지 않는 거야. 물끄러미 보다가 봉투를 집어들고,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쓰레기장에 체르탄이 담긴 봉투를 내던지고, 그대로 드러그 스토어로 향했다. 봉투 가득 약을 사서 나와 또 다시 다른 드러그 스토어로, 거기서 나오면 또 다른 드러그 스토어로... 중간중간 길을 잃고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으로 길을 찾느라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렇게 양손에 든 봉투가 전부 약으로 가득해질 때까지 사서 다시 돌아간다. 들어가기 전에 1층에서 맥주를 가득 사는 것도 잊지 않고.
그렇게 한가득 챙겨서 다시 들어왔는데도 집은 조용했다. ....침실도 조용한 채다. 그 사이에 나갔는지, 아니면 안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젠 별로 상관없겠지.
소파에 앉아 그대로 테이블에 대고 봉투를 거꾸로 뒤집었다. 쏟아지는 것은 온갖 약들이다.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종류의 약을 전부 긁어모아서 사온 것이다. 포장을 마구잡이로 뜯어 닥치는대로 입에 쓸어넣고, 맥주와 함께 삼킨다. 너무 많이 우겨넣어서 목을 넘어갈 때 조금 아팠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계속. 아까 먹었던 밥보다도 맥주와 약을 더 많이 먹어치운다.
그리고 약보다도 빨리 돈 술기운에 조금 몽롱해질 무렵,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아— 하지만—— 그러네, 이건———
—————욕실에서 하는 편이, 쉬울지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말이야. 하하. 어질어질해서 뭐가 즐거운지도, 뭐가 슬픈지도 모를 지경이 됐다.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도 히죽거리면서, 욕조마개를 닫고 물을 받는다. 적당히 물이 차면 그대로 들어가서———
.....................춥, 다......... ............물이 전부 식은 건가...... ....기분이 나빠... 토할 것 같고...... 욕조에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몇 번이고 넘어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욕조 밖으로 발을 내딛었는데, 물기랑...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대로 큰 소리를 내며 넘어져버렸다. ....타일은 엄청 차가워서, 더 추워지는데..... ......몸에 힘은 안 들어간다. 어쩐지 시야도 점점... 까맣고..... ............이제 엮일 일도 없어지겠지......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눈을 다시 감았다.
눈을 떠보면, 메이사가 품 안에 있다. 사이드 테일을 하고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난 불편하게 내려다보다가, 꼬옥 끌어안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러질 말았어야 한다고."
자는 척 하던 메이사가 가늘게 눈을 뜨고 웃었다. 마음이 불편한 동시에 사르르 녹아서, 나는 포옹을 풀지 않고 내버려뒀다.
- 그치만 허접인데다 모쏠OOOO인 유우가를 받아주는 건 나 뿐이잖아. "아닌데? 나 다른 사람이랑도 잘 지낼 수 있는데?" - 유우가가 뒤치다꺼리 해주고 봉사해줘야만 받아주는 고집쎈 여자애들? "...뭐야." - 그런 사람들은 이제 싫잖아. 내가 주는 무조건적인 애정에 유우가는 이미 헤롱헤롱해져선, 이제 다시는 그 전으로 못 돌아간다구.
무조건적은 무슨, 나한테 뒤치다꺼리 다 받고 있으면서... 속으로 푸념하지만 반박은 하지 않는다. 눈을 감고서 건방진 매도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넘긴다.
- 유우가 어떡하지~💕 나 말고 이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은 없을텐데. - 유우가가 제일 추레하고 한심할 때도 좋아해준 건 나 뿐이잖아. - 나 말고 유우가의 지랄맞은 성격 받아주는 사람도 없다구💕 - 혼기 지난 아저씨의 구린내 참아가면서 이렇게 안아주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 내가 사라지면 유우가 정말 어떡하지~ 제대로 살 수 있으려나~💕 "뭔 소리야."
눈을 뜨고 묻는다.
내 품에서 얄밉게 헛소리를 하던 메이사는 없다. 어둡고 어두운 침대에 나 혼자 있을 뿐이다. 집은 기이하리만치 조용하다. 메이사는 또 가출인가? ...그러라고 홧김에 말해버리긴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또 싱숭생숭해서 걱정이 된다.
홧김에 이래저래 말해버리긴 했지만 메이사가 밉지는 않다. 그때는 노력이 배반당해서 좀 화도 났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알아, 안다고. 내가 메이사한테 해준 것보다 받은 게 더 큰 거. 꿈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 가끔 짜증은 내도 제대로 갚아나갈 거야...
- 내가 사라지면 유우가 제대로 살 수 있으려나. 흐린 꿈에서 한 말이 머릿속에서 불길하게 떠오른다.
침대에서 일어나, 침실 너머 가늘게 비치는 빛줄기로 간다. 화장실에서 불켜놓고 뭘하는 걸까. 울고 있기라도 한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여는데, 문이 중간에 걸렸다. 턱 하고.
내려다 봤을 때, 내 마음도 덜컥 하고 내려앉았다. 피가 싸하고 식고 머리가 새하얘진다. 토사물과 피 범벅인 메이사가...
"헉, 흡."
그 이후로는 무슨 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피와 땀, 오물 범벅으로 엠뷸런스에 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간호사가 나에게 재차 묻고 있었다.
- 환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시냐구요.
나? 내가 메이사의 뭐지? 죽이고 싶은 새끼? 꼴도 보기 싫은 놈? 개자식? 멍청하게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 남편이라던가, 약혼자라던가... 보호자라던가. 그런 거 여쭙는 거예요.
"아, 네... 저, 그러니까."
난 메이사의...
"담당, 트레이너... 입니다."
위세척과 봉합, 그리고 수혈. 보기만큼 심각한 건 아니었다는 의사의 말에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폰을 켜서 보면, 걱정하는 미스미의 문자가 와 있다. 내가 전화로 어떻게 하루 빼긴 뺀 모양이다. 전혀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 시각을 다시 보니 어느새 저녁이다. 밝아서 전혀 몰랐다. 의식하고 나니 옷에선 쓰레기봉투같은 냄새가 나고, 턱은 면도도 못해서 까끌까끌... 배도 고픈데 입맛은 없다. 꼴이 말이 아니다. 이제야 내 꼴을 점검할 여유가 났는데, 뭐 하나 처리할 기운이 없다. 그냥 정말, 정말, 진짜로.
울컥 올라온 눈물이 이불 위로 뚝뚝 떨어졌다. 이를 꽉 깨물고 숨을 참는데, 참아지지가 않았다. 끅, 끄득, 끕. 숨죽인 소리를 내며 얼굴을 비벼 닦았다. 참자. 꼴사납다. 내가 뭘 잘했다고 울고 자빠졌나.
아는데 잘 되지가 않는다. 내 하는 일이 다 그렇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얼굴을 묻고 꾹 참았다. 그러고서도 몇 분 더 있고 나서야 좀 슬픔이 가셨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져서...... 멍한 머리를 침대에 푹 파묻었다. 정수리에 닿는 손의 감촉에 속이 시끈거리지만, 눈을 감고 그냥, 그냥... 일단은 잊어버리기로 한다. 회피했다. 또.
꿈을 꾼 것 같았다. 저녁이었다. 해가 서서히 지면서 세상이 불타는 것처럼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붉은색이 어디보다도 가득한 옥상에서, 펜스에 기대서 너를 보는 꿈이었다. 멀찍이 서서 뒤돌아있는 너에게선 익숙한 담배냄새가 나서, 괜히 반가웠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다가가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꿈이 깰 때까지 단 한번도, 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꿈의 마지막까지도 우리는 결코 마주보지 않았다. ....단 한번도.
문득 정신이 들었다. ....손목이 욱신거리고,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목도 좀 아프다. 젠장, 역시 한번에 너무 많이 삼켰었나.... .....눈을 감은 채로 그렇게 생각하다가, 퍼뜩 눈을 떴다. 아,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들어올리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퍼뜩이라고 말하기엔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눈을 뜨면, 환한 불빛과 커튼, 그리고 수액.... ....몸을 덮고 있는 모포까지 보고서야 병원이란걸 눈치챘다. .....실패한 모양이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한심하다. 그렇게 좌절감을 입 안에서 굴리며 시선을 더 내려보면, 힘없이 내려둔 손끝에 닿아있는 정수리가 보인다.
엉망진창이다. 그런 감상이 절로 떠올랐다. 부스스한 머리에, 옷도 엉망진창이고. 닦아낸 것 같지만 옷에 얼룩이 진하게 남아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도 그게 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왜 그런 꼴이 된 거냐고....
".....왜..."
잔뜩 갈라지고 가라앉은 목소리는 쇳소리에 가까웠다. 그런 소리를 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왜.... 여기..."
뭐 그야, 집 화장실에서 쓰러진 사람을 보면, 거기에 피도 좀 나있고 그러면 당연히 병원에 데리고는 오겠지만. 하지만, 나랑 엮인 게 후회될 정도라면... 그러면 데리고는 와도 굳이 병실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지 않나 싶어서. 내가 그렇게 지긋지긋하고 싫었던 거 아니었나 싶어서, 나는 이제 필요없는 거 아니었냐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전부 말로 꺼내기엔 목도 너무 아프고,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그냥.... ....짤막한 한 두마디를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머리카락을 누가 만지작거리는 기분이 든다. 그러자마자 퍼뜩 깼다. 원래부터 잔뜩 긴장하고 있던 몸이고, 메이사가 깨지도 않는 한 안심도 안 되니까 눈 붙이고 절전모드로 들어가 있던 수준이다. 덕분에 아까보다 마음은 차분하지만.
그런데, 고개를 들어 메이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손등에 축축한 기미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못 볼 꼴을 보였다. 아, 젠장... 급하게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는다. 정말이지, 뭘 잘했다고 메이사 앞에서 이런 꼴을 보이는 건가. 내가 한심하다 진짜.
"...미안."
뭐가 미안하느냐.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미안해 해야 하지? 아니, 미안하지 않아야 할 일이 뭐지? 따지고 보면 너랑 엮여서, 널 이런 꼴로 만들어버린 것부터가 잘못 아닌가? 내가 없었으면 넌 적당히 레이스 하다가 식당 일을 배우고, 하야나미의 장인으로 일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평온한 삶을 망친 건 내가 아닌가.
임시 담당 주제에 꿈을 꾸게 만들고. 섣불리 잘해줘서 좋아하게 만들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애에게 입맞춤까지 받아가 마음 쓰게 만들어버린 내 잘못 아닌가.
"미안..."
그런 주제에 뭐가 잘못이고 아니고 따질 형편이나 되나? 내가 메이사에게 뭘 하지 말아달라 요구할 주제가 되나? 전혀 아니지. 아는데, 알고 있는데. 이를 꽉 깨물었다. 잇새로 동물같은 소리가 났다. 괴롭고 아픈데 언어가 없는 소리.
유우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흘러가던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져 손등에 툭 퍼지는 것을 보다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연신 사과하는 유우가를 보면서, 어쩌면 이거 꿈인가 싶었다. 그도 그럴게, 유우가가 이렇게 우는 건 처음 봤으니까... 다급하게 닦아내긴 했지만 말이지.
".......유우가..."
여전히 목은 아프고, 목소리는 갈라질대로 갈라지고, 쉬어있어서 듣기 거북했다.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여보지만, 혀도 말라있어서 효과는 없었다.
".......미안해...."
잇새로 새어나오는, 언어가 되지 못한— 하지만 뜻은 충분히 전해지는, 그런 소리에 마음이 아팠다. 그 아픔에 비하면 손목의 욱신거림도, 목의 통증도 가볍게 웃어넘길만한 것이었다. 나비침이 꽂힌 오른손을 들어 유우가를 향해 뻗었다.
"...자꾸 엮이게, 해서......"
엮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억지로 들러붙어와서. 클래식 시즌부터 내가 싫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슬프고, 더 미안했다. 다소 충동적이고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해서, 그래서 이렇게 했던 건데 그것마저도 실패해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이렇게 엮이게 해버렸다. 최악이지.... 진짜.
차라리 '죽다 살아났는데 깨자마자 보이는 게 니 면상이라니 기분 거지같네' 라고 했으면 웃음이라도 났겠다. 삶의 의지라던가, 마음에 아직 힘이 남아있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거짓말은 못 하겠으니 대답을 회피하고, 대신 내놓는 게... 바란 적도 없는 사과라니. 난 미안해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닌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 거지. 내가 돕는다고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악화만 시키면 시켰지. 그럼 나는 이대로 손 놓고 메이사가 스스로를 망치는 걸 두고 보기만 해야 하는 건가.
...속이 썩어들어간다. 그렇다고 미안하다고 하는 애한테 그러지 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메이사가 뻗은 손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내려와, 까슬한 볼과 턱에 닿다가 떨어졌다.
"......일단."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한 번 끊자. 끊어야 한다. 누가 잘못했고 미안하고 이런 걸 구분하기엔 우린 너무 뒤엉켰다. 아직 축축한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메이사의 의식이 돌아온 거만으로도 이 정도가 되다니. 보다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우리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언젠가... 지내다보면 그런 날도 오겠지. 우리 둘이 화해하고, 이런 거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때. 그 때 말하자."
"......지금은 내가 도저히 못하겠다."
억지로 웃어보인다. 거의 찡그리다시피한 얼굴로 핫핫 작은 웃음을 터트리고는 침대 위에 놓인 메이사의 손목을 지그시 바라봤다.
"난 기다릴 수 있을 거 같은데... 넌 어때?"
나야 기다려야지 뭐 어쩌겠나. 집 나간 너를 하루 종일 소파에서 기다리는 것도 이미 해봤던 일이고. 도쿄까지 오지 않을 너를 마음속에 묻어두는 것도 해봤던 건데, 이런 건 일도 아니다. 좀 쓰라릴 뿐.
핫핫, 하고 웃고는 있지만 소리도 힘이 없는 것 같고, 얼굴은 그냥 찡그렸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그런 유우가를 보면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나도 엄청 울상이지 않을까. 몸도 이래저래 아프고, 기분도 울적해서 도저히 웃는 상은 만들 수가 없으니까....
언젠가, 나중에, 우리가 화해하고 웃으면서 이런 일도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오면 얘기하자고. 그런 날이 오게 될지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나도..." "기다릴 수 있어...."
편지를 다 읽고도, 케이크가 엉망진창이 되어도 계속 새벽까지 기다렸던 것처럼. 언제든 돌아올 수 있게 미련하단 소릴 들을 정도로 팀 프리지아를 유지했던 것처럼. 은퇴하기 직전까지도, 네가 돌아오리라고 믿으며 기다렸던 것처럼..... 그때도 많이 기다렸었는데, 이제와서 못할 건 또 뭐람. .....아마도.
손끝에 툭, 닿는 느낌이 들어 시선을 그리로 향하면 유우가의 손끝이 닿아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서 손끝을 살짝 쓸어내렸다. ...아, 무리. 다시 또 졸음이 몰려온다. 손끝을 조금씩 움직이는 것도 버거워지고 있어서, 눈꺼풀이 또 무거워지고 있어서.
"......졸려... 좀 잘게.." "잘자.."
간신히 쥐어짜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눈꺼풀이 툭 내려온다. 뭔가 웃기네. 죽으려고 그렇게 했던 건데, 몸은 어떻게든 회복하려고 필사적으로 잠을 청한다. 하지만 역시,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유우가가 더 슬픈 얼굴을 하는 건 역시 싫으니까... 잠들기 직전의 그런 마구잡이로 솟아나는 생각들 사이를 헤엄치며 천천히 몸이 가라앉는다. ...일어나면 다시 사과해야지...
일어나자마자 또 사과한다니...🥹 사과 받는 게 불편한 유우가의 표정 때문에 또 서로 엄청 속 썩을 게 벌써부터 보이는걸요...🤭🤭🤭 괜찮아 유우가가 악몽꾸고 취중진담까지 한 번에 해줄테니까...😌 여름 안에는 무조건 솔직한 유우가를 보여주고 말거라구요 😏 막레 감사히 받았습니다...😊😊 이번 일상 엄청... 엄청...에스프레소였지만.... 행복했습니다...🙄🙄🙄🙄
이제 멧쨔는 유우가의 흔적을 평생 가지고 살아가는 거구나 생각하니까... 우효...😇😇😇😇😇
>>215 🙄 너 너를 혼자 두면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하면 메이사가 또 신기한 거 보여줄 거 같은데요 😏 유우가는 정말 입이 방정이야... 입만 꾹 다물고 있어도 앵웨 시점에 이미 혼활 성공했을지도 몰라요 🙄 그러니까 유우가가 입방정인 건 멧쨔를 위한... 아무튼 운명적 빌드업이니까 1년만 참아줘 멧쨔...🥺
사실 미스미는 둘이 동거하는 거 한 4월서부터 알고 있었겠지만...🤭 내심 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그 싸가지없는 히다이가 맨날 일찍 퇴근하고 속썩고 자기한테 부탁까지 하나 싶었을 거 같아요 😏 옷 가지러 유우가네 집 들어갔다가 거실 꼬라지 욕실 꼬라지(...) 그리고 병원왔더니 유우가 꼴까지 보고 엄청 궁금해 할 거 같네요 으히히... 그래서 메이사랑 유우가가 둘이 붙어 있는 거 보이면 은근슬쩍 말걸었을지도...🤔
>>223 이렇게 되면 오히려 본격적인 화해는 좀 늦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 후히히는 해도 그다지 솔직하게 흉금을 터놓고 말하지는 못했을지도...
🤔 "유우가 그러고보니 병원비 수납은 어떻게 한 거야...?" 🫠 "미스미한테 꿨는데" 🙀 "끼뺫...?!" 🫠 "아니, 이제 다 갚았으니까 괜찮아" 🙀 "마 말을 하지....;;;;;; 지 지금이라도 보태줄 테니까!" 🫠 "...우리 사이에 뭘 갚아 됐어..." 하는 대화가 눈에 선한wwwwww
뭔가 멧쨔는 유우가랑 동거하고 나와서 의외로 현금 엄청 모여있을 거 같단 말이죠... 도피생활 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일지도 😏 유우가가 멧쨔한테 아낌없이 줘서 멧쨔가 떠난 거야...(?)
>>230 저는 화해가 한 9월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 왕코쨩이랑 티격태격도 해야 하고... 왕코쨩은 여름방학 추가모집때 오지 않았을까 싶구요 으헤... 취중진담쯤은 해놓고 나서 덜 투닥댈 때 오지 않았을까요 😏 그리고 왕코쨩이 오고나서는 유우가가 캬아아악 하기 시작하는 거야... 성가신 아저씨 녀석...😏
🤔그렇구나... 하긴 그쪽이 더 자연스러운 타임라인이죠.. 그럼 취중진담 이후에 왕코쨩이 오는 걸로...😏
뭔가 멧쨔는 취중진담 하고서도🤔 유우가한테 고맙단 말은 잘 안하는데(대신 미안하다고 자주 할 거 같음) 왕코쨩한테는 어 고마워~ 하는 식으로 자주 말해서 유우가가 더 캬아아악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있어요 ...아니 했으면 좋겠어(????)
>>231 그 그럼 이번달 생활비라도 내가 낼래😿하고 고집부려야만..히히히.... 유우가 덕분에 돈을 엄청 모았는데 홀랑 도망가버린다니 역시 멧쨔는 나빠😏 그래도 그 돈들은 또 아끼느라 결국 멧쨔는 고생하면서 지낸다는 걸로..🙄 하긴 아이도 있고 앞으로 혼자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막 쓰진 못했겠죠...
>>233 아니 무조건... 무조건 할 거 같아요 유우가는 찌질한쓰남이니까...😏 멧쨔한테 뭐 줄 때 멧쨔가 아무말도 않고 그냥 받으면 붙잡고 안 놔줄 거 같은데요 🤔 😒 "...고맙습니다 해야지." 😾 "하? 내가 초딩이야? 내놔." 하고 무력하게 뺏길지도... 왕코쨩이 멧쨔한테 잘해주는 건 츠나지때부터 좋아해서도 있겠지만 유우가가 유일하게 긁히는 때라서 더 그런 거라는 설정이 방금 생겼어요 😏
그나저나 멧쨔 애 혼자키운다고 생각한거야?! 아예 그 생각으로 완전 도망친 거야?! 애아빠 울어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