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시즌에 나를 처음으로 이곳에 데리고 와서 견학시켜준 사람. 나의 담당으로 사바캔부터 마구로 기념, 그리고 시니어 시즌까지 함께했던 트레이너. 시니어 시즌 겨울에 아무런 말도 없이 편지만 남기고 떠나버린 사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 situplay>1597038191>1 히다이 유우가 situplay>1597038191>2 메이사 프로키온 situplay>1597038191> situplay>1597039238> situplay>1597041174> situplay>1597044204> situplay>1597046156> situplay>1597046776>
🙄 "..." 🫠 "뭐~ 그렇지~" 😏 "저 녀석 어릴 때부터 나 따라하는 걸 좋아했거든. 저 넥타이도 봐, 본 기억 있지? 저번에 OO씨 결혼식에 내가 하고 갔잖아." 🙀 "어! 정말 그러네요?" 😏 "봐봐, 벨트도 똑같네." 🙀 "지... 진짜요." 😏 "그러니까 닮게 느낀게 착각이 아니야. 진짜 닮았거든. 여보는 눈썰미가 좋네~"
하면서 다 들리게 티배깅하겠네요 😌 이런 식으로 서열 찍어누르는 짓에 당해서 유우가에 대한 열등감이 깊겠지 생각했어요 멧쨔를 낼름낼름한 것도 메이사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메이사 생일마다 약혼자가 보내오는 의문의 선물들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신혼여행 끝나고 보니 메이사 생일이 근처라서 선물 고민하다가 원하는 거 있냐고 물어보는 유우가가 보였습니다 뭔가 부끄럽지만 스낵바 아가씨들 조언만 듣고 고르기보단 진짜 아내가 좋아하는 걸 사주고 싶어서...🤭 이히히...
야쿠자 에유... 순애력 진짜 크잖아...🙄 사실 일상하면서도 유우가가 진짜 멧쨔한테 헤롱헤롱 벌써부터 감겨있어서 완전 완전이었다구요... 근데 이제 가족보다 자길 소중하게 여겨주니까 유우가 인생 망해버렸어... 🙄🙄 아내가 죽어달라고 하면 죽어주는 수밖에 없는wwwwwwwww
중앙의 여름은 츠나지보다 덥고, 빠르게 찾아왔다. 6월 초인데도 벌써 습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득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츠나지는 그래도 아직 선선할텐데. 탁 트인 해안가가 없어서 그런지 더 숨막히는 느낌이다. 그런데다가 새로 배우는 트레이너 일이라던가, 이런저런 것까지 해서 정신도 없고. 뭔가 지친단 말이지....
"...하아..... 죽겠네..."
교원 자격 없이 단순히 트레이너로만 일하는데다, 아직 제대로 된 담당도 없는 나는 유우가에 비하면 퇴근이 빠르다. 후덥지근한 공기, 따가운 햇볕을 이겨내며 먼저 돌아와서는 대충 손발 씻고 에어컨을 틀고 소파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움직이면 더우니까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하는 거지.. 요즘은 더워서 담배 피우러 나가기도 힘들다. 의도치 않게 줄이게 된달까.... 아— 생각하니까 땡기네. 하지만 나가면 더워... 역시 그만두자...
그렇게 누워서 뒹굴뒹굴. 동거인이 있다면 한심하다는 눈빛을 받을 정도로 누워서 시간을 보내다보면 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발소리, 번호키 누르는 소리,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차례대로 난다. 아, 봉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장이라도 봐 왔나 보네. 냉장고가 비어있었던가.... ....여기 와서는 주방에도 잘 안 서고, 그냥 해주는 대로 먹고 자고 지낼 뿐이라서 몰랐지. 그리고 알았어도 오는 길에 장을 봐서 온다는 기특한 생각도 사실 안 했을 것 같고. 계속 누워있긴 좀 양심이 찔리니까,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인기척을 좇아 주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왔어? ....뭐야 이거."
정리중인 식재료들 사이에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등을 돌린 채로 냉장고에 이것저것 넣고 있는 유우가를 향해 툭 던지듯 말했다. 감자, 양파, 당근 뭐 그런 야채들과 생활용품들 사이에 이질적으로 보이는, 딱 봐도 어디 베이커리에서 사온 것 같은... ....조각 케이크가 담겨있을법한 그런, 박스가.....
".....단 거 별로라고 하지 않았어?"
나도 모르게 한 손을 들어 입가를 더듬었다. ...그래. 케이크가 아니라 그냥 다른 디저트일수도 있지. 푸딩이라던가, 쿠키라던가. ..하지만 유우가는 단 거 별로 안 좋아했을텐데.
메이사는 어떻게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나는 메이사를 제법 좋아한다. 아니 이성적으로서가 아니고 인간적으로. 그야 그럴 게, 도쿄로 올라와서 혼자 지내는 1년이 제법 쓸쓸했으니까.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그런 소중한 것들이 다 모여있는 츠나지를 박차고 올라왔지만 마음의 준비는 전혀 안 돼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새 인연을 만들기엔... 이전의 실수를 되풀이할까봐 사리게 됐고. 그래서 의도치 않게 나는 관서녀석이라곤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찬바람이 쌩쌩부는 캐릭터가 되어버렸다는 건데.
성가시고 손 많이 가긴 해도 마음 줄 곳이 생겼다. 속도 많이 썩었지만... 어쩐지 낡아빠진 메이사에게는 이전보다 더 마음 편하게 이거저거 챙겨줄 수 있었다. 저쪽도 날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더욱이 그렇고.
둘이 물리적인 거리만 가까워져도 싫어 최악이야 너같은 거 이젠 보기도 싫어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난 그런 메이사여도 마음을 쏟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싫어할 짓을 잔뜩 해버린 주제에 좋은 이야기는 바라지 말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는 일인가. 아닌 것 같아도 은근히 속으로는 어떤 보답이 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조각난 체르탄을 답지도 않게 꿰매고, 평생 가보지도 않을 디저트 맛집 카페에서 어느게 잘 나가느냐고 물어보기도 하면서,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했다.
메이사가 그 생일 케이크를 발견했을 때 이렇게 답한 건, 때가 됐을 때 좀 더 놀라줬으면 해서였다는 거다.
"......약간 바뀌었어. 땡길 때가 종종 있더라고."
빠르게 식재료 정리를 끝내고 문을 쾅 닫았다. 닫는 손에는 미스미랑 맞춘 커플링이 끼워져 있었고. 그걸 물끄러미 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채 서프라이즈를 위해 답지도 않게 둘러댔다.
"전에 한 번 갔는데 맛있더라고. 추천받았을 때는 그래도 단 거 별로다 싶었는데 너무 달지도 않고 과일도 신선해서. 전에 미... 누구랑 같이 갔을 때는 파운드 케이크였는데 그냥 케이크도 괜찮을 거 같았거든."
취향이 바뀌었다고 대답하는 유우가의 약지에서 빛을 반사하는 반지를, 미스미 트레이너와 맞췄다는 그 커플링을 물끄러미 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유우가가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아니지, 사실 감추려고 하는 건지 아예 말을 꺼낸 적도 없었지. 그래도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라. 내 귀에 들어오는 것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래. 미스미 트레이너랑 같이 가서 먹어보고 맘에 들어서 사왔다는 거네.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아, 그래." "됐어. 나 이제 케이크 잘 안 먹으니까. 맛있게 드셔."
저 포장 안에 있는 것은 다른 디저트가 아니라 케이크가 맞았구나. 조금 퉁명스럽게 들릴 말투로 됐다고 말하고는 다시 소파로 향했다.
시니어 시즌, 유우가의 생일에 직접 케이크를 만들었었지. 최대한 단맛을 줄였는데 좋아해줄까, 그렇게 기대하면서 찾아간 유우가의 집은 텅 비어있었다. 짐이 전부 빠지고 휑해진 방에는 편지와 담배 반 갑만이 남겨져 있었지. ....바보같이, 그냥 집으로 돌아갔으면 됐을 텐데. 미련하게 그대로 앉아서 기다리다가, 케이크에 초도 꽂아보고, 그래도 돌아오지 않아서 초에 불도 붙여보고.... 녹아내린 촛농이 케이크를 뒤덮고, 그대로 싸늘한 겨울 바람에 식어 굳어버릴 때까지도 가만히 그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었던 그 날.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소파로 걸어가는 그 몇 발자국 사이에 순식간에 기분은 저 아래로 깊숙히 가라앉아서.......
".......바보같아."
그 날 이후로는 케이크 자체를 피하게 돼서, 먹어본 지도 오래다. 내 생일 때도 일부러 케이크 없이 식사만 하고 방에 틀어박혔었지. ....왕코쨩이 사다줬을 때도 그냥 냉장고에 처박아둔채 내버려둬서, 결국 마마가 치웠던가... 어쩐지 스스로가 한심하고 바보같고... ...기분도 안 좋아져서, 바보같다고 중얼거리며 소파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엉망진창으로 꿰매진 체르탄이 소파 아래로 툭 떨어졌지만, 주울 마음도 의욕도 들지 않았다.
아까까지는 기분이 그럭저럭 30점이라는 느낌이었는데, 나의 감이 지금은 10점 아래로 떨어졌다고 경고했다. 메이사가 워낙 예민하고 기분이 하루에도 열 번은 더 바뀐다지만. 아까 나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그게 아니면...
...뭐 생각 정도쯤이야. 생리일지도. 단 거 땡겨오는데 조건걸고 반만 주겠다고 해서 짜증났을지도 모른다.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장 떠오르는 건 이 정도. 아예 말이 안 되는 소리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식사를 만들었다. 잘게 썰은 당근과 갈은 돼지고기, 소고기를 한데 뭉쳐 만들어낸 햄버그스테이크와 밥 한 스쿱, 그리고 감자 샐러드와 자우어크라우트. 이번 자우어크라우트는 대성공이라고~ 고깃기름에 절은 혀를 싹 씻어주는 히다이씨의 역작이라고요. 나 요식업할까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식사를 준비하고, 메이사를 부르고, 깨작거리는 녀석과 말 없이 식사하고, 메이사의 잔반을 치우고(보통은 내 입으로 들어간다.) 메이사가 소파에 다시 들러붙었을 때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자박자박 다가섰다.
"생일 축하해, 메이사."
소파 아래로 떨어진 체르탄을 주워 능청도 부려본다.
"체르탄도 축하한대."
웃어줬으면 좋겠다.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네가 태어난 게 기쁜 나만큼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오늘의 저녁은 햄버그스테이크였다. ....그럭저럭 맛있네.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다시 소파로 향했다. 체르탄을 줍기도 귀찮아서 대충 발로 슥슥 밀어놓고 소파에 앉아, 가라앉은 기분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키려고 담배나 피우러 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발소리가 점점 소파로 가까이 다가온다. ...밥 남기는 걸로 잔소리라도 하려는 건가. 그동안은 별 말 없더니. 대체 뭐가 불만인거냐고 따지려고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불이 붙은 초를 꽂은 케이크를 든 유우가가 있었다. ....누가 봐도 생일 케이크인, 그걸 들고.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떨어진 체르탄마저 주워들어서. 나에게. 생일? 내 생일이라고?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오른다. 케이크라는 단어만으로도 상기하게 되는 그 날의 기억이, 간신히 눌러둔 그것이 다시 꿈틀거리면서 튀어올라온다. 녹았다 굳은 촛농으로 뒤덮여 딱딱하게 굳은, 더 이상 먹을 수도 무언가를 축하할 수도 없어진 케이크였던 것을 내다버리면서 한참을 울었던 날의 기억이 나를 뒤덮는다. 너무 크고, 너무 많은 감정이 몰려와서 뭐라 하고 싶은데 그것들의 출구는 좁은 입술 단 하나뿐이라서, 꽉 막힌 입술만을 달싹이다가 손을 내밀어서—
——케이크를 내민 네 손을 뿌리쳤다. 공중으로 떠오른 케이크는 크림 때문인지, 조금 축축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처박혔고 밝게 빛나던 촛불은 크림을 잔뜩 뒤집어쓴채 꺼져서 연기만이 잠시 피어오르다가 그쳤다.
"——뭐냐고, 이제와서...!"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분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 감정이 격해져 있단 건 스스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분명 네 얼굴을 시야에 넣고 있는데도, 네가 어떤 표정인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 내 감정을 폭발시키기에 바빠서.
사람이 너무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면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순식간의 일을 제대로 못 받아들이고 얼떨떨해 하거나.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거나. 나에게는 후자였다. 손에서 떨어져 나가는 접시. 그걸 쳐내는 네 울컥한 얼굴. 촛불째로 바닥에 처박히는 케이크. 뒤늦은 철퍽하는 소리와, 이미 포기해서 접시를 잡아보려는 시도조차 안 하는 나. 그것들이 전부 생생하게 머리에 새겨졌다는 소리다.
- 뭐냐고, 이제 와서...!
몸이 빠르게 상황을 포착하는 것과는 다르게 머리는 멍했다. 네가 왜, 어디서,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났는지조차 전혀 감잡지 못했다. 이제 와서? 내가 언제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서프라이즈를 위해 잠시 거짓말로 미룬 것마저 문제였나? 그게 아니면, 더 옛날의 일인가?
얼굴을 한껏 찡그린 메이사. 마치 '네가 날 이렇게 괴롭게 만들었어' 라는 듯이, 증오를 담아 쏘아보는 눈빛에 속이 저며지는 느낌이다. 누가 살을 잡아 뜯어도 이런 기분은 아니겠다. 마음의 벽지를 잔뜩 뜯어내는 기분에 입을 꾹 다물고, 떨어진 케이크를 바라봤다.
회생 불가. 너와 나의 관계도 회생할 수 없다. 빚을 잔뜩 진 이상 복리로 불어나는 이자를 갚기만도 바쁘다. 생일이라고 정성들여 준비해봤자, 그건 네 원금의 티끌만치도 갚을 수 없노라고. 누가 손끝으로 가슴을 쿡쿡 찔러대며 일갈하는 듯 했다.
아마도 그건 사실이겠지. 그 증명이 이렇게 눈앞에서 펼쳐졌는데.
그냥... 허망했다. 지쳤다. 슬프기 이전에 힘이 빠졌다. 그래서 오히려 차분하게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네 앞에서 몇번이고 뱉었던 한숨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더욱 쓴맛이었다.
"...그래."
그렇게 말하고, 네가 죽고 못 사는 체르탄을 크림뭉치에 집어던졌다. 내 손으로 꿰맸던 물건이지만 아깝지도 않았다. 다 소용없는 거 아닌가. 내가 꿰맨 거 역겨워서 껴안기나 하겠나.
"미안하다. 이제 와서 생일축하한다고 성질 긁어대서."
"난... 모르겠다 이제."
"이제 나가서 살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해. 지랄 안 할 테니까."
케이크와 체르탄. 프리지아가 공고했던 시절의 추억이 전부 뒤엉켜서 엉망인 꼴이 되어 있다.
"......내가... 아니다." "너랑 엮인 것부터가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네."
머리를 헝클였다. 그런다고 멍한 머리가 맑아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네 뒤치다꺼리를 하며 몸에 익은대로 움직일 뿐이었다. 쓰레기 봉투째로 들고와서 체르탄도 질퍽거리는 크림덩이도 다 처넣고, 휴지로 대충 문대고 체르탄 위로 다 던져넣는다. 꽉찬 봉투를 묶고 신발장에 던져놓고는 침실로 들어갔다.
케이크 위로 체르탄이 내던져진다. 크림이 덕지덕지 묻어서 엉망진창이 된 체르탄이 먼저 쓰레기봉투로 던져지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된 케이크가 던져지고, 그 위로는 크림 범벅이 된 휴지들이 던져진다. 꽁꽁 묶인 봉투는 현관 신발장 옆에 툭 던져지고, 그렇게 뒷정리를 마친 유우가는 방에 들어가버렸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너의 마지막 말을 곱씹고 있었다.
- 너랑 엮인 것부터가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네.
어디부터 잘못된걸까. 우리는 어디부터 이렇게 엉켜버린걸까. 그렇게 물어본다면 내 답은 정해져 있었다. 네가 날 버리고 떠났을 때부터 단단히 꼬이고 잘못됐다고. 하지만 너는 그것보다도 더 거슬러 올라가서, 나랑 엮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래.. 어쩌면..... 어쩌면 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르지. 괜히 프러시안을 나와서, 괜히 그날 옥상에 올라가서, 팀을 만들자는 그 제안을 괜히 받아들여서. 네가 그렇게나 거절했는데도 괜히 끈질기게 달라붙어선. 좋았던 기억만큼이나 끔찍한 기억을 가득 남겨서, 이젠 뭐가 더 큰지도 모르겠고......
진즉 바닥에 처박힌 줄 알았던 기분은 더, 더 아래로 더 깊숙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그래... 네 말이 맞는 거 같아. 진짜 최악이다.
"..............그러네..."
조금 비틀거리면서 현관으로 향했다. 대충 슬리퍼에 발을 구겨넣다가 불투명한 봉투 너머로 체르탄과 눈이 마주친다. 너도 나처럼 너덜너덜해져선, 이렇게 버려지는구나. ...이젠 그 누구도 우릴 원하지 않는 거야. 물끄러미 보다가 봉투를 집어들고, 현관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쓰레기장에 체르탄이 담긴 봉투를 내던지고, 그대로 드러그 스토어로 향했다. 봉투 가득 약을 사서 나와 또 다시 다른 드러그 스토어로, 거기서 나오면 또 다른 드러그 스토어로... 중간중간 길을 잃고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으로 길을 찾느라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렇게 양손에 든 봉투가 전부 약으로 가득해질 때까지 사서 다시 돌아간다. 들어가기 전에 1층에서 맥주를 가득 사는 것도 잊지 않고.
그렇게 한가득 챙겨서 다시 들어왔는데도 집은 조용했다. ....침실도 조용한 채다. 그 사이에 나갔는지, 아니면 안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젠 별로 상관없겠지.
소파에 앉아 그대로 테이블에 대고 봉투를 거꾸로 뒤집었다. 쏟아지는 것은 온갖 약들이다.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종류의 약을 전부 긁어모아서 사온 것이다. 포장을 마구잡이로 뜯어 닥치는대로 입에 쓸어넣고, 맥주와 함께 삼킨다. 너무 많이 우겨넣어서 목을 넘어갈 때 조금 아팠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계속. 아까 먹었던 밥보다도 맥주와 약을 더 많이 먹어치운다.
그리고 약보다도 빨리 돈 술기운에 조금 몽롱해질 무렵,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아— 하지만—— 그러네, 이건———
—————욕실에서 하는 편이, 쉬울지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말이야. 하하. 어질어질해서 뭐가 즐거운지도, 뭐가 슬픈지도 모를 지경이 됐다.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도 히죽거리면서, 욕조마개를 닫고 물을 받는다. 적당히 물이 차면 그대로 들어가서———
.....................춥, 다......... ............물이 전부 식은 건가...... ....기분이 나빠... 토할 것 같고...... 욕조에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몇 번이고 넘어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욕조 밖으로 발을 내딛었는데, 물기랑... 다리에 힘이 빠져서.... 그대로 큰 소리를 내며 넘어져버렸다. ....타일은 엄청 차가워서, 더 추워지는데..... ......몸에 힘은 안 들어간다. 어쩐지 시야도 점점... 까맣고..... ............이제 엮일 일도 없어지겠지......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눈을 다시 감았다.
눈을 떠보면, 메이사가 품 안에 있다. 사이드 테일을 하고 곤히 자고 있는 녀석을 난 불편하게 내려다보다가, 꼬옥 끌어안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러질 말았어야 한다고."
자는 척 하던 메이사가 가늘게 눈을 뜨고 웃었다. 마음이 불편한 동시에 사르르 녹아서, 나는 포옹을 풀지 않고 내버려뒀다.
- 그치만 허접인데다 모쏠OOOO인 유우가를 받아주는 건 나 뿐이잖아. "아닌데? 나 다른 사람이랑도 잘 지낼 수 있는데?" - 유우가가 뒤치다꺼리 해주고 봉사해줘야만 받아주는 고집쎈 여자애들? "...뭐야." - 그런 사람들은 이제 싫잖아. 내가 주는 무조건적인 애정에 유우가는 이미 헤롱헤롱해져선, 이제 다시는 그 전으로 못 돌아간다구.
무조건적은 무슨, 나한테 뒤치다꺼리 다 받고 있으면서... 속으로 푸념하지만 반박은 하지 않는다. 눈을 감고서 건방진 매도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넘긴다.
- 유우가 어떡하지~💕 나 말고 이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은 없을텐데. - 유우가가 제일 추레하고 한심할 때도 좋아해준 건 나 뿐이잖아. - 나 말고 유우가의 지랄맞은 성격 받아주는 사람도 없다구💕 - 혼기 지난 아저씨의 구린내 참아가면서 이렇게 안아주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 내가 사라지면 유우가 정말 어떡하지~ 제대로 살 수 있으려나~💕 "뭔 소리야."
눈을 뜨고 묻는다.
내 품에서 얄밉게 헛소리를 하던 메이사는 없다. 어둡고 어두운 침대에 나 혼자 있을 뿐이다. 집은 기이하리만치 조용하다. 메이사는 또 가출인가? ...그러라고 홧김에 말해버리긴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또 싱숭생숭해서 걱정이 된다.
홧김에 이래저래 말해버리긴 했지만 메이사가 밉지는 않다. 그때는 노력이 배반당해서 좀 화도 났고. 서운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알아, 안다고. 내가 메이사한테 해준 것보다 받은 게 더 큰 거. 꿈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 가끔 짜증은 내도 제대로 갚아나갈 거야...
- 내가 사라지면 유우가 제대로 살 수 있으려나. 흐린 꿈에서 한 말이 머릿속에서 불길하게 떠오른다.
침대에서 일어나, 침실 너머 가늘게 비치는 빛줄기로 간다. 화장실에서 불켜놓고 뭘하는 걸까. 울고 있기라도 한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여는데, 문이 중간에 걸렸다. 턱 하고.
내려다 봤을 때, 내 마음도 덜컥 하고 내려앉았다. 피가 싸하고 식고 머리가 새하얘진다. 토사물과 피 범벅인 메이사가...
"헉, 흡."
그 이후로는 무슨 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피와 땀, 오물 범벅으로 엠뷸런스에 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간호사가 나에게 재차 묻고 있었다.
- 환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시냐구요.
나? 내가 메이사의 뭐지? 죽이고 싶은 새끼? 꼴도 보기 싫은 놈? 개자식? 멍청하게 서있기만 할 뿐이었다.
- 남편이라던가, 약혼자라던가... 보호자라던가. 그런 거 여쭙는 거예요.
"아, 네... 저, 그러니까."
난 메이사의...
"담당, 트레이너... 입니다."
위세척과 봉합, 그리고 수혈. 보기만큼 심각한 건 아니었다는 의사의 말에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실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폰을 켜서 보면, 걱정하는 미스미의 문자가 와 있다. 내가 전화로 어떻게 하루 빼긴 뺀 모양이다. 전혀 기억나진 않지만.
지금 시각을 다시 보니 어느새 저녁이다. 밝아서 전혀 몰랐다. 의식하고 나니 옷에선 쓰레기봉투같은 냄새가 나고, 턱은 면도도 못해서 까끌까끌... 배도 고픈데 입맛은 없다. 꼴이 말이 아니다. 이제야 내 꼴을 점검할 여유가 났는데, 뭐 하나 처리할 기운이 없다. 그냥 정말, 정말, 진짜로.
울컥 올라온 눈물이 이불 위로 뚝뚝 떨어졌다. 이를 꽉 깨물고 숨을 참는데, 참아지지가 않았다. 끅, 끄득, 끕. 숨죽인 소리를 내며 얼굴을 비벼 닦았다. 참자. 꼴사납다. 내가 뭘 잘했다고 울고 자빠졌나.
아는데 잘 되지가 않는다. 내 하는 일이 다 그렇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얼굴을 묻고 꾹 참았다. 그러고서도 몇 분 더 있고 나서야 좀 슬픔이 가셨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져서...... 멍한 머리를 침대에 푹 파묻었다. 정수리에 닿는 손의 감촉에 속이 시끈거리지만, 눈을 감고 그냥, 그냥... 일단은 잊어버리기로 한다. 회피했다. 또.
꿈을 꾼 것 같았다. 저녁이었다. 해가 서서히 지면서 세상이 불타는 것처럼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붉은색이 어디보다도 가득한 옥상에서, 펜스에 기대서 너를 보는 꿈이었다. 멀찍이 서서 뒤돌아있는 너에게선 익숙한 담배냄새가 나서, 괜히 반가웠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다가가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꿈이 깰 때까지 단 한번도, 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꿈의 마지막까지도 우리는 결코 마주보지 않았다. ....단 한번도.
문득 정신이 들었다. ....손목이 욱신거리고,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목도 좀 아프다. 젠장, 역시 한번에 너무 많이 삼켰었나.... .....눈을 감은 채로 그렇게 생각하다가, 퍼뜩 눈을 떴다. 아,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들어올리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퍼뜩이라고 말하기엔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눈을 뜨면, 환한 불빛과 커튼, 그리고 수액.... ....몸을 덮고 있는 모포까지 보고서야 병원이란걸 눈치챘다. .....실패한 모양이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한심하다. 그렇게 좌절감을 입 안에서 굴리며 시선을 더 내려보면, 힘없이 내려둔 손끝에 닿아있는 정수리가 보인다.
엉망진창이다. 그런 감상이 절로 떠올랐다. 부스스한 머리에, 옷도 엉망진창이고. 닦아낸 것 같지만 옷에 얼룩이 진하게 남아있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도 그게 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왜 그런 꼴이 된 거냐고....
".....왜..."
잔뜩 갈라지고 가라앉은 목소리는 쇳소리에 가까웠다. 그런 소리를 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왜.... 여기..."
뭐 그야, 집 화장실에서 쓰러진 사람을 보면, 거기에 피도 좀 나있고 그러면 당연히 병원에 데리고는 오겠지만. 하지만, 나랑 엮인 게 후회될 정도라면... 그러면 데리고는 와도 굳이 병실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지 않나 싶어서. 내가 그렇게 지긋지긋하고 싫었던 거 아니었나 싶어서, 나는 이제 필요없는 거 아니었냐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전부 말로 꺼내기엔 목도 너무 아프고, 머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그냥.... ....짤막한 한 두마디를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머리카락을 누가 만지작거리는 기분이 든다. 그러자마자 퍼뜩 깼다. 원래부터 잔뜩 긴장하고 있던 몸이고, 메이사가 깨지도 않는 한 안심도 안 되니까 눈 붙이고 절전모드로 들어가 있던 수준이다. 덕분에 아까보다 마음은 차분하지만.
그런데, 고개를 들어 메이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손등에 축축한 기미가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못 볼 꼴을 보였다. 아, 젠장... 급하게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는다. 정말이지, 뭘 잘했다고 메이사 앞에서 이런 꼴을 보이는 건가. 내가 한심하다 진짜.
"...미안."
뭐가 미안하느냐.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미안해 해야 하지? 아니, 미안하지 않아야 할 일이 뭐지? 따지고 보면 너랑 엮여서, 널 이런 꼴로 만들어버린 것부터가 잘못 아닌가? 내가 없었으면 넌 적당히 레이스 하다가 식당 일을 배우고, 하야나미의 장인으로 일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평온한 삶을 망친 건 내가 아닌가.
임시 담당 주제에 꿈을 꾸게 만들고. 섣불리 잘해줘서 좋아하게 만들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애에게 입맞춤까지 받아가 마음 쓰게 만들어버린 내 잘못 아닌가.
"미안..."
그런 주제에 뭐가 잘못이고 아니고 따질 형편이나 되나? 내가 메이사에게 뭘 하지 말아달라 요구할 주제가 되나? 전혀 아니지. 아는데, 알고 있는데. 이를 꽉 깨물었다. 잇새로 동물같은 소리가 났다. 괴롭고 아픈데 언어가 없는 소리.
유우가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흘러가던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져 손등에 툭 퍼지는 것을 보다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연신 사과하는 유우가를 보면서, 어쩌면 이거 꿈인가 싶었다. 그도 그럴게, 유우가가 이렇게 우는 건 처음 봤으니까... 다급하게 닦아내긴 했지만 말이지.
".......유우가..."
여전히 목은 아프고, 목소리는 갈라질대로 갈라지고, 쉬어있어서 듣기 거북했다.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여보지만, 혀도 말라있어서 효과는 없었다.
".......미안해...."
잇새로 새어나오는, 언어가 되지 못한— 하지만 뜻은 충분히 전해지는, 그런 소리에 마음이 아팠다. 그 아픔에 비하면 손목의 욱신거림도, 목의 통증도 가볍게 웃어넘길만한 것이었다. 나비침이 꽂힌 오른손을 들어 유우가를 향해 뻗었다.
"...자꾸 엮이게, 해서......"
엮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억지로 들러붙어와서. 클래식 시즌부터 내가 싫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더 슬프고, 더 미안했다. 다소 충동적이고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해서, 그래서 이렇게 했던 건데 그것마저도 실패해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이렇게 엮이게 해버렸다. 최악이지....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