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을 불렀다. 메이사가 없었다. “너희들 중 메이사 왜 안 왔는지 아는 놈 없냐?” 라고 물었지만 “몬다이가 모르면 우리도 모르지~” 하는 답변과 실없는 성희롱성 질문만 들어왔다. “연락되는 놈들은 한 번 물어보고 쌤한테 알려줘라.” 라고 일러는 뒀다만. …사실 안다. 메이사의 무단 결석은 나 때문이란 거. 그리고 D반의 어느 누구도 메이사에게 변변한 답을 얻어내지 못할 거란 것도.
무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끝마친 후, 트레이닝 시킬 녀석은 없지만 트레이닝을 핑계 삼아 외출했다. 스쿠터를 세우고,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마음을 가다듬고는 문을 열면 짤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고즈넉한 식당이 나를 반긴다. 런치 세트의 시간도 끝나고 저녁은 먹기 이른 미묘한 시간이다보니 손님은 나 한명 뿐이고 종업원들은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었다.
그 종업원 중 한 명, 아니 여주인이 날 알아보고 인사했다. 하야나미의 주인장 프로키온, 내 담당 메이사의 어머니.
“…오랜만에 뵙네요 메이사 어머님.”
가볍게 악수하고 본론.
“저 사실 여기 온 건 다름이 아니라, 메이사가 오늘 결석을 해서 말입니다. 혹시 메이사한테 뭔 일이 생겼나 하고요. 아픈 건 아니죠?“
”메이사 좀… 볼 수 있을까요?“
이렇게 거두절미하고 들어가는 이유는… 뭐랄까. 그래, 상성. 나는 프로키온씨와는 상성이 안 맞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단 말이지. 연상 여성이기도 하고, 실눈캐이기도 하고, 어쩐지 하야나미 올 때마다 메이사와 나를 유심히 바라보시니까. 단적으로 말해 껄끄러워.
가볍게 악수를 한, 뒤로 느슨하게 묶은 머리를 한쪽 어깨에 걸쳐두고, 실눈을 한 우마무스메. 메이사의 어머니인 프로키온이 생긋 웃으며 테이블을 가리킨다.
"어머, 히다이 트레이너. 어서오세요." "많이 바쁘셨나보네요. 자, 편한 곳에 앉—"
아마 늦게 점심을 먹으러 왔다고 생각한 건지, 그렇게 안내하려던 프로키온은 히다이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다른 목적으로 왔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무언가 짐작간다는 듯,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어머나, 메이사가... 아픈 건 아닐 거예요. 아침에는 학교에 가는 것처럼 나갔으니까." "그리고 아직 들어오지 않았으니, 메이사는 여기에 없어요. 아마 자주 가는 곳에 가있는 게 아닐까 하는데..."
곤란하네~ 하고, 전혀 곤란하지 않은 어조로 말한 프로키온씨는 한 손을 턱에 받쳤다. 여전히 실눈에 입가엔 웃음까지 서려있어서 아직까지 안 들어오는 딸을 걱정하는 걸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메이사는 속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고 혼자서 삭히는 편이고, 이런 성정은 꽤나 오래 지속되어 왔을테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곧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저녁쯤엔 돌아올테니까요. 여기서 기다리시겠어요?" "걱정마세요. 그이가 중식도를 들고 나오지 않게 잘 감시할테니까요."
아… 나 이래서 이 사람이 어렵다고. 속내를 모르겠어. 이 사람 배에서 진짜 메이사가 나온 거 맞아?! 딸이랑 어머니랑 달라도 너무 다르고 닮은 거라곤 이마의 점 하나 뿐인 거 같은데요? 그보다 딸이 학교 간다고 하고 집나왔는데 저 걱정하나도 안 하는 표정은 뭔데. 나 이 사람 무섭다고 정말.
…아니, 자주 가는 곳이랬나. 그러면 이런 일이 잦은데다 심지어 그럴 때마다 가는 곳이 있단 소리렷다… 그걸 바로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보다 메이사 가출 그만하란 말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몰라? 아이고 이 똥강아지야.
그러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프로키온 씨는 여기서 기다리길 권했다. 안심…하라고 덧붙이며. 안심하라고 하는 말 맞지? …아닐지도.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서 그냥 냅다 “아뇨 됐고요. 중식도 무서우니까 우리 멧쨔 찾으러 갈래요. 자주 가는 곳 거기 어딥니까?” 하고 묻고 나가? 그게 아니면 학부모 상담 한 번 해? …아 ㅆㅂ 나 학부모 상담 싫다고 ㅅㅂ… 학교에서 1년에 한 번 하는 것도 하기 싫어서 시즌만 되면 죽고싶은데 제가 왜 여기서 사서 고생을 해야 하는 거죠? 싫다고. 싫어. 학부모 싫다고. 악.
하면서도 나는 자리에 앉고 있었다… 이 속이 검은 유부녀가 굳이 앉아서 기다리는 것을, 그것도 저녁까지라고 말한 건 어쩐지 ‘이야기를 나눠보자’ 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저 그럼 일단… 말차 한잔 주문하겠습니다.”
프로키온씨가 따끈한 말차를 내리러 간 사이 머릿속을 한 차례 정리하고… ^^하는 웃음과 함께 말차를 내왔을 때, 일단 화두로 꺼내는 건 그거였다.
“그나저나 프로키온 아버님은 왜 저를 볼 때마다 중식도를 꺼내시는 걸까요…”
어 알아. 안다고. 남자는 늑대라는 거고 내 추악한 본성을 이미 남자 대 남자로서 알고 계신 거지. 과보호도 있겠다만은… 아는 이야기를 굳이 묻는 건 그거였다.
메이사가 저 좋아하는 거 알고 계시느냐는 은근한 떠보기. 일단은 저 여자의 화법을 맞춰서 핑퐁을 해보자고.
말차를 내오자마자 훅 들어오는 질문에 프로키온씨는... 말차 담긴 잔과 다과가 올려진 접시를 히다이 앞에 내려놓고, 쟁반으로 입가를 가렸다. 후후훗, 하는 웃음이 들리는 걸 봐서는 아마 웃고 있는 것이 맞는데...
"글쎄요. 그이는 이래저래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니까.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닐까요?" "사실은 사위가 생기면 같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던 사람인데, 정작 마주보고는 말 못하는 편이니까~"
주방에서 쨍강!!하고 뭔가 금속성의 물건을 떨어트렸을 때 나는 소리가 크게 울렸지만, 말차를 내리러 갔을 때 뭐라 말해둔 건지 아무튼 주방에서 홀로 나오려는 인기척은 들리지 않았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좋을 일이겠지. 흘끔 주방 쪽을 보던 프로키온씨는 다시 시선을 히다이에게로 돌렸다. 쟁반은 슬쩍 내려간지 오래였다. 입가에는... 속내를 알기 어려운 웃음이 걸려 있다.
"이건 비밀이지만...."
아까보다도 목소리를 확 낮추고, 히다이의 귓가 가까이로 몸을 숙여 소곤소곤 말하는 프로키온씨.
"그이도 사실 트레이너였거든요. 제 담당." "그러니까.. 괜히 옛날 생각나서 부끄러워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후후후."
이미 알고 있고, 우리가 선례기도 하니까 발뺌할 생각은 말아라. 같은 뜻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비밀스럽게 속닥거림을 끝낸 프로키온씨는 숙였던 몸을 다시 세웠다.
"그나저나, 일부러 메이사를 찾아오실 정도라니. 결석 말고도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니겠죠?"
떨리는 손으로 말차를 마신다. 말차 너무 출렁거리지 않냐고요? 응 아니야. 착각입니다. 완전 착각이라니깐. 하하. 사. 사위. 어. 응. 짓궂으시다니까.
쨍강!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던 나는, 방심한 사이 내 공간에 훅 들어온 유부녀, 메이사를 닮은듯 닮지 않은 농염한 40대 밀프의 향에 숨을 꾹 참았다. 솔직히 깜짝 놀란 것도 사실이다. 아니 그야 유부, 아니 실눈캐들은 퍼스널 스페이스를 허용하면 칼을 찌르는 게 국룰이잖아.
그러나 들린 말은, 진짜 칼찌라고 착각할 정도의 무언가였다.
"풃, 커, 콜록 켁, 컬록켈록 뭇, 뭐. 뭔. 아니, 콜록. 예??"
상성 안 좋다고 했지 내가. 난 진짜 칼이라도 찔린 듯한 리액션을 성대하게 보여줬고, 진하게 탄 말차는 내 목구멍을 씁쓰름한 맛으로 유린했다... 내 옷도 검은색이라 망정이지 잔뜩 말차 범벅이 돼버렸다. 프로키온 씨가 가져다준 닦을 것으로 여기저기와 입가를 닦으면서 애써 진정했다...
그러니까 그런 거잖아. 프로키온씨도 메이사 아버님도 둘다 알고 있다고. 메이사가 날... 사랑하는 거. 결혼하고 싶어할 정도로. 혼인신고서까지 쓴 줄은 모르는 것 같지만, 거기에 준할 정도로 좋아한다고. 두분께는 이미 들키고도 남은 상황이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감출 게 없지.
"...저는 그럴 생각 없습니다."
맹물을 마시는데도 입안이 쓰다. 젠장. 귀가 홧홧해... 이게 뭐라고.
"......메이사한텐 늘 선 긋고 있어요. 담당이라서 소중히 하고 잘해주는 거랑은 별개로 그 정도 선은 압니다. 이번에도..." "메이사랑 저는 아무 사이 아니라고 했다가 메이사가... 마음이 안 좋아서 그런 거겠죠. 3관을 놓친 것도 충격이었겠고요." "담당으로서 최소한의 멘탈케어를 해야 하니까 찾아왔을 뿐이고..."
혼인신고서 이야기는... 안 하는 게 낫지. 어차피 제출도 안 할 거.
"그 뿐이에요." "메이사가 달리지 않게 되면 저도 걔 인생에서 사라져줄 거니까 걱정 마세요."
웃겨 바보... 나쁜 새끼... 이런 말이 사랑고백이라는 말이 있죠 유우가의 사랑고백은 이런 거겠지...😌 네 인생에서 사라져줄게(메이사는 그러면 죽어 이 바보야) 난 질나쁜 사람이라 널 베릴 거라고(메이사는 그게 좋대...) 으힉... 으히힉....... 으아아~~~~ 히메이가 너무 맛있어~~~~~!!!!!!!!
"어머나~ 그립다~" "옛날의 그이를 보는 것 같네~ 후후후, 싫다아, 너무 주책이네~ 그쵸?"
그럴 생각이 없다고 단언하는 히다이를 본 프로키온씨의 감상되시겠다. 주방에서는 재료를 손질하고 있는지 무언가를 다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지만 분명 착각이겠지. 잔뜩 쏟아버린 말차 대신 물을 마시는 히다이—정확히는 새빨개진 히다이의 귀를 슥 보던 프로키온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히다이 트레이너는 그이랑 많이 닮았네요." "트레이너 시절의 그이랑 똑같은 소리를 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메이사, 어릴 땐 늘 아빠같은 사람하고 결혼할거라더니... 그래서 메이사가... 흐음~"
또 혼자서만 뭔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 실눈 유부녀의 속은 어디까지 새까만건지, 들여다보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최소한의 멘탈케어 치고는 꽤 사이좋지 않나요? 후후후, 뭐어. 그런 걸로 해둘게요." "저랑 그이는... 아니, 저는 관명까지 버리고 츠나지로 오는 걸 택했지만, 저희 딸과 히다이 트레이너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눈을 감고—사실 실눈이라 언제나 감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튼 눈을 감고 프로키온씨는 그렇게 말했다. 얼핏 들으면 히다이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것 같지만.
"아, 하지만 따로 메이사에게 말하진 않을 거니까요. 메이사도 이제 어른이고,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질 나이니까."
딸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그냥 그거다. 앞으로도 그냥 지금처럼 지내겠다는 말. 하야나미에 히다이가 오면 다~ 알고 있다는 눈으로 보고, 메이사가 자고 오겠다 전화하면 흔쾌히 허락도 하고, 중식도 들고 나오려는 그이를 막아주겠다.
내가 저 다혈질 아저씨랑 뭐가 닮았다는 거야! 제가 더 잘생겼다고요. 성격도 좋고. 프로키온씨 그렇게 안 봤는데 남자 보는 눈 없으시네. 하는 마음은 속으로만 삼켰다... 들키진 않았겠지.
그나저나 결국 이 유부녀... 메이사의 어머니 맞나 고민하게 만드는 순간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는 메이사와 닮았다. 뭐랄까, '네가 뭐라 하든 나는 내 맘대로 굴겠다' 하는 부분이 특히나. 메이사는 행동하는 혈기가 있다면 이 유부녀에겐 두고 보는 진중함이 있달까.
.........모녀에게 쌍으로 놀아나는 게 꼴받는다. 젠장.
"...딱히 말해도 상관 없어요."
그래서 유치하게 틱틱댔다. 저 아줌마는 별로 신경도 안 쓰겠지만! 제기랄!
"...젠장 이게 다 뭐하는 건지. 메이사가 자주 가는 곳 어딥니까?"
결국 학교 선생으로서의 예의나 권위는 다 내팽겨치게 됐다. 이런 것도 메이사와 닮으셨군. 맞지도 않는 화법일랑은 때려치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래놓고 또 학부모 면담 때 뵙게 되면 정말 민망하겠지만... 뭔가 꼴받고 짜증나고 열받고 으으으으...! 젠장, 그래서 그냥 질러버렸다고.
...행선지를 짐작할 만한 정보를 얻어내고 나서, 나는 말차를 다 마시고 자리를 박찼다. 문을 닫기 전에 주방에까지 다 들리도록 이렇게 외치고서.
"애가 외박한다고 하면 뜯어말리기도 하고 그러세요 좀!"
그리고 메이사를 찾아 헤매는 내내 마음이 술렁거렸다. ...난 절대로 결혼 안 해. 메이사한테 딱 잘라 말해둘 거라고. 저 모녀는 글렀어 트레이너 잡아먹을 생각만 하는 거가 유전돼서 아무 판단이 안 서잖아. 부모의 협조를 얻긴 글렀고... ...그렇게 메이사를 찾아냄과 동시에, 생각이 닿는 곳이 있었다.
―중앙 라이센스. 마구로에서 메이사가 1착을 한다면 내가 라이센스 갱신을 포기하고, 일부러 시험에 떨어진다던가 하고. 메이사가 1착에 실패한다면 나만 중앙으로 간다. 관명을 버리고 츠나지로 도망쳤다는 프로키온 씨의 말이 좋은 발상을 선물해준 셈이다.
그렇게 하야나미에서 마마랑 유우가가 한바탕 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나는 비밀들판에서 뒹굴고 있었다. 나무가 적당히 가려주는 풀밭은 밤에는 별을 보기도 좋고, 낮에는 이렇게 낮잠을 자거나 시간을 보내기도.. 사실 시간 보내기엔 별로 안 좋을지도. 좀 지루하긴하다. 차라리 밤이라면 나을지도...
풀내음도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도 조금 질려왔을쯤, 오가는 사람이 없는 이 비밀들판에 점점 가까워지는 인기척을 느끼고 귀를 쫑긋 세웠다. 야도카리쨩인가? 그런 것 치고는 발소리가 좀 다른데.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곳을 응시하다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 보여 화들짝 놀랐다. 편하게 사지를 뻗고 누워있던 자세도 후다닥 일으켜서, 언제든 뛰어갈 수 있도록 자세를 취했다.
".....뭐야."
우연히 지나가던 길이라고 하기엔... 조금 느낌이 달랐다. 뭔가 좀 지쳐보이기도 하고 피곤해보이기도 하고. 애초에 꽤 깊숙한 산속에 있는 곳이라고 여기. 지나다가 들리기엔 이상한 곳이지.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으면서, 뭐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짜증나게. 그 짜증을 한껏 담아서 퉁명스럽게 뱉었다. 뭐냐고. ....뭐, 학교 빠져서 잡으러 왔다고 해도 이상하지. 보통 이렇게까지 잡으러 오진 않는 걸.
"....아무 사이도 아닌 데 이런 곳까지 찾으러 오지 말아줄래? 스토커 같아."
혼자 하루종일 있으면서 생각도 좀 정리하고 했는데도, 여전히 감정은 정리되지 않은 채라서. 그래서 그렇게 틱틱대는 말을 해버린다. 그치만,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한 건 저쪽이니까. 난 나쁘지 않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