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가 켜지고, 격양된 얼굴의 네가 일어서서 소리를 지른다. 천둥보다도 더 크고 가까이에서 들린 윽박지르는 소리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정말로 충격을 받은 건 소리의 크기보다는 내용이어서. 나는, 난 그런, 그런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럴, 려던 건 아닌...데...
"...나, 난.... 그런 게 아니라....." "나 때문에.. 내, 내가 나와서... 길 잃어서 이렇게 됐으니까.....이, 이것도 따지고보면 내 책임이니까... 그래서...."
"그래서... 그랬는데....." "미안......"
최악이다. 뭘 골라도 최악만 고르게 되어버렸나봐. 나는... 난.... .....진짜로 쓸모도 없고 필요도 없는 쓰레기가 되어버린 거 아닐까. 아니. 아닐까?가 아니라 맞네. 그렇게 됐구나. 잡혀있는 손을 슬그머니 빼냈다. 툭툭 떨어지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냥, 침대의 제일 구석으로 가서 웅크렸다. 유우가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미안해..."
또 다시 천둥이 친다. 귀가 움찔하고 몸이 떨린다. 그래도 이제, 더는 유우가를 슬프게하고 싶지 않아서. 또 뭔가 잘못해버리고 싶지 않아서. 체르탄 대신 침대 시트를 꽉 쥐고, 베개를 움켜쥐면서 어떻게든 혼자서... 혼자서 참아내보자.
그런 상황에서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나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어슴푸레하게 새벽이 밝아올 무렵, 밤새 긴장한채로 있어서 여기저기 근육이 땡기는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유우가는 자고 있는지, 아니면 벌써 깼는지... 사실 모르겠다. 유우가쪽은 보지 않고 바로 옷을 챙겨서 씻으러 들어가버렸으니까.
조금 뻣뻣한 느낌이 들지만 바싹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다시 침대에 앉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말없이 먼저 나가면 또 화낼 것 같은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어제 밤의 그 일이 생각나서.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결국 앉은 채로, 멍하니 핸드폰 대기화면만 보고 있었다.
잠에 들었지만, 깨다 잤다 하기 일쑤였다. 마음이 불편한 채 잠에 든 것도 있겠지만 몸이 으슬으슬하게 추웠어서. 그러다가 씻는 소리에 깼을 때 내 상태는...
'목이 갔어...'
쌀쌀한 날 메이사 메이사 불러제끼면서 찾아다니고, 젖은 옷에 찬바람 맞으면서 돌아다니고는 마기막에 꾸짖을 갈로 목에 치명타. 열은 나지 않는데 목소리가 안 나온다. 속닥이듯이 하면 쌕쌕 소리와 함께 조금 말을 할 수 있을 정도.
옷을 갈아입고 앉아있는 메이사의 손을 잡아당겨 침대에 눕혔다. 옆에 꾸물거리며 다가가 귀에 대고 속닥였다.
'나 목소리가 안 나와...'
얼떨떨해보이는 메이사의 얼굴. 어제 그러고 나서 껄끄럽지만 어떡해. 나 아파. 너 때문에. 눈썹을 한껏 늘어뜨리며 약한 소리를 한다.
'맥모닝 먹으러 가고 싶은데 이러면 주문도 못 하잖아.' '도와줘. 어제 건 이거로 충분해.'
노곤한 몸을 일으켰다. 일단 속옷 대충 가운 아래로 입고... 그냥 후딱 환복했다. 아프니까 환복 하나하나에 화장실 들어가기도 귀찮다. 속옷차림이야 메이사는 종종 보던 거고... 가운을 대충 침대 위에 던져놓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화장실 들어가서 세수. 가글. 대충 하고는 물건들 챙기고 메이사도 챙겼다. 메이사 귀에 대고 약간 변명하듯이
'가서 씻을 거야... 좀 별로여도 참아. 난 몸 담그고 싶다고.'
라고 속닥였다. 어제 그래놓고는 이렇게 허물없이 대하는 건... 오히려 그래서다. 메이사는 지금 날 미워하지는 않고 자기가 제일 싫은 상태인데, 거기에다가 내가 쭈뼛거려봤자 '내가 또! 나라는 바보가 또 실수를! 죽음으로 사죄합니다!' 모드가 될 게 뻔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이러는 게 최선이다. 쓸모를 확실히 느끼게 하고 가야지.
좋아, 맥모닝 먹으러 출발이다!
...그래서, 종업원 앞에 놓인 광경이 이랬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 작은 여자애 뒤에서 속닥속닥거리고, 여친(처럼 보이는 동거파트너)이 카드를 내밀면서 시꺼먼 아저씨의 주문을 전달하는 체계. 일명 '휘핑크림 많이 주세요' 구도.
'베이컨토마토에그머핀 하나. 그리고 너 먹고싶은 거 하나 주문해.'
자, 내가 베이컨 마니 쥬세요!! 하면 네가 귀엽다는 듯이 웃는 거야. 알겟지 메이사!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맥모닝은 베이컨 추가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앉아있다보니 갑자기 손이 홱 끌려간다. 아무 대비도 안 하고 있었어서 그대로 풀썩 끌려가 누워버렸다. 무슨 일인가 파악이 안 돼서(사실 잠을 못자서 머리가 더 안 돌아갔다) 눈을 꿈뻑이고 있으면 꾸물꾸물 다가온 유우가가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목이 갔네 갔어. 그 와중에 맥모닝이냐고. 목소리만 보면 바로 병원으로 들고 뛰어야 할 것 같구만. 그래도 어제 건 이걸로 충분하다고 했으니까, 도와줘야겠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유우가가 준비를 마치는 걸 기다렸다가 같이 방을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복도를 지나 나간다.
그래서, 조금 부스스한 채로 아침부터 맥도날드라니. 이건 이거대로 처음이네... 나 아침 잘 안 먹는 편이니까. 거기에 내가 복화술 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유우가가 소근소근 주문을 일러주면 그대로 말한다는 획기적이지 못한 시스템까지 갖추다니 엄청난걸. ....그나저나 난 뭐 먹지....
"베이컨 토마토 에그 머핀 하나, 핫케익 3조각 주세요. ...세트로요." "그리고 머핀에 베이컨 추가...아, 유우가. 베이컨 추가는 안 된대."
그렇게 주문하고나면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답게 빠르게 준비가 끝난다. ...어쩌면 지금 주문한 사람이 우리밖에 없어서 더 그럴지도. 그렇게 나온 음식들을 들고 적당한 테이블을 골라 앉는다. 나는 유우가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아 핫케익을 포크로 푹 찔렀다. 싸구려 버터가 뜨끈한 핫케익 위에서 스르륵 녹아가는걸 멀뚱멀뚱 보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병원 가야하는 거 아냐...? 그 상태로 출근해도 되겠어?"
목소리 거의 안 나오는데? 트레이너만 하는 나랑 다르게 유우가는 교직도 겸하고 있으니, 목소리가 안 나오면 꽤 힘들텐데. 그렇다고 수업 내내 내가 복화술 인형이 되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무리 어제 일이 내 탓이긴 하지만, 그, 그것까진 좀.....
주문하고 결제까지 한 메이사를 대견하다는 듯이 어깨를 조물조물 해준다. 그보다 메이사 녀석 쟁반 엄청 난장판 아냐? 커피 다 넘쳤잖아. 잠 못 잤나... 그렇게 걱정하고 있다보면 누가 누굴 걱정하냐는 듯이 메이사가 묻는다.
"자습시키면 돼. 다행이도 오늘은 수업 적은 날이고, 진도는 다음에 빼려고."
참고로 내 과목은 고전. 수업 방식은 야시시한 옛날 야사들을 풀어서 애들 잠을 깨운 다음에 미리 요약해둔 필기 그대로 옮겨적는 얍삽이 식이다. 그래서 막상 진도 빼려면 팍팍 뺄 수 있다. 야한 얘기만 좀 줄이면 되니까.
그거 아웃 아니냐고? 에이, 다들 좋아해. 메이사도 한 때는 이 방식 개좋아했지. 교과서로 빨간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 얼마나 귀여웠는데...
...그랬던 애가 지금은 멘헤라를 친절한 아저씨들이랑 뒹구는 거로 해소하는... 그만 생각하도록 하자.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려 머핀을 왁왁 먹고 위장에 커피도 적셔줬다.
"너는? 잠 못 잤다 아냐? 일할 수 있겠어? 정 안 되면 오전엔 이쪽 부실 와서 자고 가." "아니면 나 씻고 준비할 동안 잘래? 깨워줄까?"
...개인적으로는 밤을 새는 걸 추천하고 싶다. 잠을 자면 기억이 장기저장으로 넘어간다잖아. 어제는 거 뭐 내 망신살도 있고... 우울한 거 너무 기억하면 안 좋으니까 새는 것도 방법...이지만. 깜박깜박하는 저걸 보자니 자는 게 나을 거 같다. 메이사 눈 앞에서 손가락을 딱딱 튕긴다.
"먹으면서 졸지 말고." "역시 나 준비하는 동안 자고 있어, 오전에도 시간비면 자고. 오늘 비오니까 트레이닝 시간 비고 일찍 퇴근할 수도 있는데... 퇴근하고 먼저 자고 있어도 돼."
어휴, 저 얼굴 좀 봐. 예전에 내가 수업 좀 진지하게 하려고 하면 저러고 가물가물하더니 턱 괴고 졸았는데. 픽 웃음이 난다.
"아니 뭔가... 너무 안 자서 잠이 안 오게 된 거 같기도 하고..." "아마..... ...아?"
잠을 못 자긴 했는데, 멍하기만 하고 잠은 안 오는 느낌이라서. 누워도 눈은 말똥말똥한 그대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어쩌면 그냥 바로 기절하듯 잠들지도 모르고. 하지만 커피가 넘친 쟁반과 난장판이 된 핫케익이 입에 들어가는 거 반, 떨구는 거 반인 지금을 보면 자는 게 나을지도 모르고. 아니 아무리 못 잤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타율이 안 좋다고? 나 사실 턱이 없는 게 아닐까.... 이걸로 잠이 깨진 않겠지만, 일단 커피도 좀 마신... 으겍, 이거 블랙이잖아...... 순식간에 얼굴이 구겨졌다. 핫케익의 달큰한 시럽에 익숙해진 혀를 사정없이 찌르는 쓴맛. ....잠 좀 달아났...나?
"흐앗, 으? 뭐?"
갑자기 눈 앞에서 딱딱 튕기는 손가락이 불쑥 보여서 놀랐다. 으, 으? ....뭐지, 나 분명 정신차리고 있었는데, 언제.... 아니, 그냥 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유우가가 뭐라고 길게 말하고 있는데 뭔가 머리에 안 들어오고 술술 옆으로 새어나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물어보는 말도 뭔지 제대로 못 들었다.
"어? 아, 미안 못들었어..." "....역시 자는 게 좋을지도..... 가서 자다가..."
......부실에 가서 자라고 해도, 어제 그런 일도 있었는데.... ....그래도 되는 건가 싶어. 나는... 그게.. 그렇잖아. 이제 담당도 아니고. 이렇게 생각한 순간 확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치. 담당도 아닌데, 귀찮게 굴기나 하고. 너도 힘들테니까.
".....그래도 피곤하면 퇴근하고 자면 되겠지 뭐."
그래서 오전에 와서 자라는 말은 어물쩍 넘기면서, 커피를 마신다. 지금 찡그리고 있는 표정은 이것때문이라고 속이듯이.
앵하입니다👋 이녀석들 화해하기 전에 마츠리 한 번 가줬으면 좋겠네요 🤤 멧쨔가 나갔는데 그날은 마츠리날이라 가면 쓰고 돌아다니다가 행복해보이는 커플들 보고 훌쩍...😿 하는 메이사랑 메이사 찾아서 가면 들추고 눈물 문질러 닦아주는 유우가를 생각하고 행복해졌어요...😌 유카타는 안 입겠지만 데이트하라고 이녀석들아... 갑자기 소나기 와서 신사 처마 아래서 비도 피하고 5엔으로 각자 소원도 빌고 했으면 좋겠는wwww
갈기갈기 찢긴 핫케익을 포크로 콕콕콕 찍어다가 메이사에게 내밀었다. 이거 먹으면 우리 집 가는 건데, 멍하니 내려다보는 게 답답해서 입술에 갖다대니까 먹었다. 그리고 입가에 묻은 시럽도 휴지로 문대서 닦아줬다.
시간은... 뜨순 물에 몸 담그긴 힘들겠고. 샤워하고 사람꼴 갖출 정도는 될 거 같네. 테이블을 정리하며 시간을 확인해보니 슬슬 출발하면 적당하겠다 싶었다. 두 사람 몫의 쟁반을 치우고 오니 메이사도 좀 말똥해보였다. 커피를 마시니 좀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퇴근하고 자겠다는 거 보니 조금 버틸 만한가 보다 싶기도 하고.
"그래, 그럼 가서 좀 자자. 일찌감치 움직이자고."
그렇게 집에 도착했을 때, 메이사는 다시 지친 얼굴이 돼선 침대에 다이빙했다. 그걸 보자니 나도 그냥 다이빙하고 싶어졌지만... 꾹 참고 씻고 나왔다. 머리도 말리고 옷도 바꿔입고 하니 십분 정도 남았는데...
메이사는 이미 곤히 잠들어선 누가 업어가도 못 깰 정도. 이걸 어쩐다... 업고 갈 수도 없고. 옷도 갈아입어야 할테고. 침대 모서리에 앉아서 메이사를 내려다보다가, 볼을 손등으로 한 번 문질렀다.
'자면 천사같은데 깨면 참 손 많이 간단 말이야.'
어차피 자고 있는데다 혼자 속삭이는 말이니 못 들었겠지. 그렇게 손가락으로 뺨을 몇번 간질여본다. 앞머리도 매만져보고. 이젠 립밤도 안 발라서 거칠거리는 입술도 당겼다가 놓아본다. 난 그냥 메이사가 이 얼굴로 웃어주면 좋겠는데. 다른 거 바라지 않고 생각없이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맛있는 거 먹었다고 행복해하고, 저녁 바람 냄새가 향기롭다고 꼬리를 살랑거리고, 노란 눈으로 날 보면서 살풋 웃어주면... 다른 서비스가 필요 없을 거 같은데.
'내 앞에서는 맨날 울거나 찡그리기만 하지...'
옛날 여친이 그랬던가, 넌 아가리 털어서 거쳐가는 인간들 인생을 다 조진다고. 그래놓고 자기는 아무 잘못 없는 양 군다고. 그러니까 다 너 때문이라고. 그 때는 미친 애가 또 아무 헛소리나 지껄이나 보다 생각했는데... 메이사를 보면,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아냐,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당장은 출근이 우선이니까.
한숨을 삼키곤 메이사의 겨드랑이를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 메이사. 이제 가야지.'
메이사 이마를 슥슥 문지르면 무거운 마음이 조금 걷힌다. ...그래,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자. 일해서 돈 벌고, 이 골때리는 똥강아지부터 사람 만들어놓아야지.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니까. 그게 맞아......
(*히히 막레입니다... 멧쨔가 곤히 자고 있다고 적어는 놨지만 어쩌면 안 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
🤔 그리고 뭔가뭔가 제 머릿속에서 유우가 악몽 나데나데 > 취중진담 > 망신살의 타임라인이 생겼어요 유우가가 악몽 꾸고 자기를 좀 돌아보고... 그리고 나서 메이사 이제 그만 억압할게...😣 내가 그렇게 싫으면 어쩔 수 없지 근데 언제든 돌아와도 돼 🥺 해주고 그 이후로는 외박할 때 적극적으로 뭐라하고 핀잔주고 비아냥대진 않지만 술이 좀 늘지 않을까 싶네요 🤔 물론 메이사가 개인 시간을 갖기 위해 외박해도...😏 그래서 망신살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그런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