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칼을 빼들고 서로 싸우기 시작하는 언데드들을 보며 한숨을 쉬던 사이 어느센가 다가온 익숙한 목소리에 알렌의 시선은 자연스레 옆으로 돌아갔다.
"시윤 씨..? 아,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시윤과 오랜만에 만난 알렌은 조금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현재 특별반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시윤에게 인사를 건냈다.
"그러니까 대강 설명하자면... 자기들끼리 싸우기를 계속 반복하는 언데드들을 해결하라는 의뢰가 나와서요. 일단 파악한 정보로는 생전의 고향에 돌아가려 했던 언데드들과 근처에 정착하려 했던 언데드들이 생전의 원한으로 계속 싸우기를 반복하는거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를 모르겠네요."
사실 왜 그런 반응을 하는지 대강 짐작은 가고 있기 때문에, 나도 다소는 머쓱한 느낌으로 대꾸한다. 여기서 더 파고들면서 따져서 서로에게 좋을게 없다. 여튼 눈 앞에 해결해야 할 일도 있고.
"....흠."
나는 잠깐 팔짱을 끼곤 얘기를 듣는다. 그리고 말릴려고 쩔쩔매는 알렌에게 잠깐 얘기한다.
"딱히 말리지 말아봐. 아니, 칼부림은 그야 좀 그렇지만. 그럴 땐 '진정하세요' 보단 질문 같은걸 해서 대화를 유도하는 편이 나을거야. 왜냐면 이 사람들이 지금 진정할만한 상황이 아니잖아. 서로의 말이 다소 일리가 있고, 억울함과 화도 쌓여있어."
다투지 않는게 제일이라지만, 현 상황에서 우리가 말린다고 화가 진정될만큼 앙금이 가벼운 것도 아니다. 그럼 일단 말하게 두는게 제일이다. 다만 그 말하는 것의 방향성을 잡자.
"좋습니다. 두 분다 맞는 말씀이죠. 다만 서로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선 논리 정연한게 좋지 않겠습니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 고향에 가야 되는 이유를 말씀해보세요. 아, 물론 당연히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중요한건 그걸 얼마나 정리해서 얘기하느냐죠. 고향을 찾는데 진전이 있었는지 같은 것들을요. 반대쪽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멈춰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보세요. 뱃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배에서 내리려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론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세균감염은 정화로 없애는 게 아니었나..." 여선주도 힐이 어떤 원리인지는 애매하기 때문에. ....거리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전투는 전투죠. 보조자로 시야를 공유해 어느 부분에 타격을 입혔는지 알고. 약점 간파와 분석으로 얻은 정보를 공유합니다.
"그런 거겠죠..." 보통은 그렇겠다라는 감상을 생각하며 여선은 강산이 공격하는 것을 봅니다.
-크아아악!!! -어떻게. 어떻게!!! 재클린으로 부하가 쓸려나가고 본체가 드러난 그것은 당황한 듯 공격을 마구마구 쏟아내려 하지만 그것은 위력적일 뿐 맞서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강산이 불길을 내뱉자 피하려 하지만 그 사기가 오히려 발목을 붙잡습니다. 이 사기를 포기하면 언제 또 모을 수 있지? 라는 갈등이 해소되기도 전이 덮쳐온 불길이 태워내네요.
-나는.. 나는!!! 단말마를 지르며 여선과 강산의 공격. 그리고 시윤의 공격으로 해골이 부서지고 와르르 무너집니다.
"...일단락된 것 같네요." 완전히 무너진 것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메스로 푹 찌르려 하는데. 해골의 잔해가 파삭 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집니다... 어쩐지. 이 배 밑바닥이 너무 춥고 음산했던 것이 좀 해소된 것도 같습니다...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시윤의 말대로 이들의 말에 방향을 잡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거야? 니들도 이 배에 있었다면 뭔일인지 알거 아니여?"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저희는 어떻게할지 선택을 못했습니다. 여기 계신 두 집단의 의견을 들어보고 저희도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배가 움직이는 게이트가 되기 전 상황에 묶여있는 언데드들인 만큼 알렌이 그에 맞춰 상황을 바꿔말하자 그제야 언데드들은 두사람에게 말을 할 의지를 비추는 것 같았다.
"너희도 알다싶이 우리는 모두 선장님을 따라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이 배에 올라탔다,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 시시각각 바뀌는 바다, 늘 부족한 물자 그 모든 것들을 버틸 수 있던건 언젠가 고향에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어. 그런데 저들은 이제와서 그것이 힘들다고 고향을 포기해버리고 생전 모르는 곳에 배를 갖다대고 정착하자는거다.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어떻게든 배에 자리를 내던 선장의 말도 무시한채로!"
"네 알겠습니다. 이제 정착을 원하시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참나 가만 듣자하니 온갖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만."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참고 있던 언데드들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고향 좋지. 나라고 왜 고향에 안돌아가고 싶겠나? 하지만 그것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뱃생활을 계속하는건 사양이라고! 솔직히 선장도 우리 아니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텐데 이쯤했으면 살길 찾으려는 사람들 놓아줘도 되는거 아니야?"
"이게..!"
"진정하세요, 아직 정착을 원하시는 분들의 말이 안끝났습니다."
알렌이 튀어나오려는 언데드를 제지하자 정착을 원하는 언데드는 말을 계속했다.
"괴물도, 배고픔도, 목마름도, 바다도 이제 지긋지긋해! 이제 어디라도 좋으니 땅에 발붙이고 살고싶다고!"
힘들다. 들리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차디찬 겨울의 메마른 대지에서 일어난 한기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말하는 살기위한 발버둥이라는 것이 그녀에게도 너무나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린은 알렌이 얘기하는 내내 그를 바라보지 않고 표정없이 앞에 놓인 잔만 바라보다 칵테일을 한번에 들이켰다. 잔을 든 손이 홀로 모포를 덮고 추운 바닥에 앉았던 그때처럼 곱아드는 기분이다.
볼을 두드리면 미온한 온기가 난다. 마주친열로 인한 약간의 온기가 몸에 남는다. 그렇게 되면 몸을 끌어안아 최대한 웅크리고, 이불속에서 입김을 한없이 불어넣는다. 그러다 보면 안의 온기가 미적지근하게 남아 잠들 수 있게 된다. 십대의 흔한 아이들이 집의 온기를 느끼때, 나는...
"술? 좋아해요." 그 모든 걸 잊게 해주니까. 평소처럼 정돈되었으면서도 화려한 언변이 아닌 띄엄띄엄 쥐어짜내어 이어진 단어로 말이 이어진다. 그는 차분하게 비명을 지르면서도 웃었고 그녀는 비명을 잊었는지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한 잔씩 들어가면서 머리가 혼몽하고, 갑자기 모든 것이 즐거워보이고. 또...하찮게 보여서 현실과 적당히 떨어져 있을 수 있게 하니까 좋아해요." 즐거운 비명과 웃는 소리 옹기종기 탁자에 모인 길드원들의 온기로 무르익은 그 곳에서 현실을 잊으려 했다. 좋았다. 뒷골목 태생에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살아보겠다고 모인 곳에서 가는 대로 휘두르던 나이프를 제대로 다루는 법과 각성자로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한 번에 술을 들이켜 잠시 몽롱한 기운이 들어 이미 마신 잔을 다시 들여다본다. 당연히도 비어있었다. 린은 알렌이 반응하기 전에 빠른 속도로 럼을 가져가 잔에 붓는다.
"어린 아이가 맨 정신으로 암살을 한다는 거 그렇게 쉬운일은 아니니까요?" 킥킥거린다. 표정을 다시 갈무리하여 마치 소소하게 재밌는 잡담이라도 하는 것처럼 빙그레 웃었다. 둥글게 눈꼬리가 휘며 눈웃음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래도 그 전보단 좋았어요. 쓸모가 주어지기 전엔 나도 당신과 별 다를 바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보기좋은 위로라도 해드려야 할텐데 아, 미성년자가 음주를 했다고 잔소리하지 마시죠 어차피 똑같은 신세니." 한 모금이 넘어가고 말에 두서가 없어진다. 이상하다. 이 정도로 취하진 않았었다. 옆의 그는 보기에는 멀쩡해보이지 않는가.
"신께서는 알아주실거에요. 나의 마음과 당신의 간절함과 절망도. 은인께서도 마음을 온전히 보존한채로 고히 마지막 안식으로 돌아가셨을 거에요." 어쩌면 정말로 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잔을 입에서 떼니 훅 들어온 술기운이 천천히 가신다. 단어와 단어를 이어 솔직한 마음을 담은 문장을 이은지가 얼마였던가. 심경이 형용할 수 없이 복잡하여 오히려 적당히 빈 것보다 꽉 들어찬 내용물을 꺼내기 어려운 것처럼 할 말이 떠오르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