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수경의 말은 뭔가 수수께끼 같을 때가 종종 있었다. 나로써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뒤에는 무언가가 있겠지 싶었던 것들. 그러한 말의 틈바구니에서 확실하게 밝혀진 뜻은... 결국 변함이 없었다. 이런 일로 농담하는 것 같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랬기에 더욱 곤란했다. 잠깐, 곤란하다고? 왜?
내게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그 어떤 예상도 하지 못한 일이니까. 설마하니, 수경이 내게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준비가 하나도 되지 않았다.
"나는 너에 대해서 모르는게 너무 많아."
개인적인 것을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어떤 애인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에게 있어서 알아둬야만 할 중요한 뭔가가 있다, 하는 여부마저도 모르는 상태다. 그런 가운데 각별한 사이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급하게 결정을 할 수는 없을 거 같은데."
아직도 나는 얘가 날 왜 좋아하는건지 모르겠다. 솔직히, 나 외에도 수경이 말한 이런저런 모습들은 많이들 보여줬잖아. 왜 하필 나일까. 두근거리는 설렘보다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물론 지금부터도 알아가면 된다. 하지만, 다짜고짜 사귀고 나서 알아가다가 후회할 일은 하고싶지 않았다. 가슴이 먹먹하고 갑갑하다. 흔쾌히 받아들이고, 여자친구로 삼고, 뭐, 남들 하는 것 처럼 하고. 그래도 될텐데. 그냥 그렇게 단순하게 가도 될텐데, 왜 괜히 이런데서 조심스러워지는건지.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라는 말은 한꺼풀 덮여진 것이다. 본질과는 차이가 있는 듯 없는 듯할까? 수경의 앞에 놓였던 모히토 잔이 테이블에 손을 댄 그녀의 앞으로 이동합니다.
"어쩌면 오늘이 제가 가장 솔직한 날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마찬가지로. 선배에 대해 잘 모르는 게 많아요..." 자조하듯 말하는 그녀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했던 것은 취중진담이 당신의 감정의 부분을 채워버렸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것에나마...이었을지도? 그것은 나쁜 일이지만. 한번 잡고 싶었던 것을 놓기 싫어함이란...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일이 소설같기에 소설같은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일이지요.
"글쎄요... 당장 급하게..일 필요는 없는걸요.." 선배의 말을 듣고는 턱을 굅니다. 흐르는 머리카락이 새카맣네요. 어딘가의 빛을 전부 먹은 듯한 색처럼, 하루는 길지만 일주일과 한달은 성큼이고요... 라는 말을 하다가. 아주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면.
-....결국엔 꺾여버리는 것도 성큼 다가오겠지요...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오늘도 연구소에 발걸음을 옮긴다. 새로운 발명품이 있으니 꼭 보여주고 싶다는 연락에 확 연락처를 차단해버릴까 하는 충동에 사로잡혔다가, 이번에는 쓸데없는 장난감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저지먼트 활동을 하면서 쓸만한 물건이라고 하길래 속는 셈 치고 초청에 응했다.
"이번에도 또 무슨 이상한거 만들려고..."
웬만한 물건들은 이제는 리라에게 부탁하면 된다. 그놈의 희한한 물건들도 솔직히 리라한테 부탁해도 무방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내게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걸 보면 뭔가 있겠지. 부디 뭔가가 있어야 한다. 제발. 이 돌팔이들에게 오늘만은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여전히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연구소장과 연구원들 모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뭔가 손짓이라던가 움직임이라던가... 하나같이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흉내를 내는 것 같아 더더욱 불안해졌다.
"오늘 와준 건 진짜 후회 안할거야. 자, 기대하시라... 우리의 진짜, 진짜, 진짜배기 역작!" "지난번에는 폭발하는 토스터기였으니까, 이번에는 방전하는 믹서기 그런거 아니죠?" "아니라니까 그러네, 이건 너도 좋아할거야!" "아, 가면 갈수록 못미더운데..."
그리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팔짱을 낀 채 서 있다가, 그제서야 보여주는 뭔가에 고개를 살짝 삐딱하게 돌린다. 마치... 거북이 등껍질 압축시켜 놓은 거 같은데.
"...뭔데요, 그래서 이게." "백문이 불여일견!"
그러더니 리모컨을 누르자, 그 정체모를 물건이 펼쳐지며 귀퉁이에서 푸르스름한... 배리어 같은게 발생했다. 이건 정말 놀랐는데. 아니, 잠깐만. 여기서 방심하지 말자. 이거 이래놓고 그냥 홀로그램일 가능성 있잖아. '뭔가 배리어 같지만 실제로 배리어는 아닌 물건' 같은것일 수도 있다.
그리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한 가운데, 연구원 한 명이 그걸 펼쳐 세우며 내게 말한다.
"자, 인핸스드 스트렝스로 그걸 힘껏 쳐봐." "...진심이세요?" "진짜! 아예 박살을 낼 기세로 한번 쳐 봐!"
그래. 이 양반들이 또 무슨 허풍을 치나 싶었더니... 하지만, 허풍은 깨트리라고 있는 법. 주먹을 들어올리고,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주먹을 휘둘렀다. 배리어 비스므리한 무언가가 픽 사라지거나 깨지거나 할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뭐야, 멀쩡하잖아? 아니 그보다는 뭔가 힘 자체가..." "흡수된거 같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밖에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분명히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이 조잡해보이는 장치와 그게 세워진 벽까지 한꺼번에 다 박살낼 기세로.
"실제로 흡수된게 맞아. 이게 바로 우리의 진짜 회심의 역작... '초동역학 배리어!' 느낌표는 빼먹어도 상관없어. 말 그대로, 동역학을 초월해버린 물건이지."
이건... 솔직히 말해서 놀랐다. 이런걸 만들 수 있었다고? 그냥 이상한 장난감만 만드는 허당들인줄 알았는데!
"거기다 이게 끝이 아니야. 다음에 또 부를때는, 훨씬 굉장한걸 볼 수 있을거야."
처음으로, 이 연구소에 오는 것이 기대가 되는 것 같다. 한동안은 바보같은 물건들을 만들거나 해도 좀 봐줘도 괜찮을 것 같다.
급하게 알 필요는 없다, 라... 그래. 어찌보면 맞는 말이다. 미리 모든걸 알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받아들여야 하나? 받아들이고 나면 뭘 해야 하지? 애틋한 감정이라던가 그런건 솔직히 말해서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그냥... 그렇구나 싶은 정도.
멜로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의 그런 것 처럼 사귀기도 전에 상호간에 애정을 충분히 쌓은 그런게 아니었다. 말했듯이 나는 수경에게 그냥 평범한 후배 이상의 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내쳐야만 하는가? 아니. 딱 잘라서 그러기에도 힘들다. 그리고 이미 나는 한번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리까지 마련해서 사람을 거절하기 힘들게 만들다니, 얘가 생각보다 영악한 부분이 있구나.
그렇다고 이걸 그냥 받아들이기엔...
"근데 너... 대담한건지, 아니면 그냥 별 생각 없는건지 모르겠다. 적당한 데이트나 뭐 그런게 아니라 이런 거창한 곳에서 단 둘이라니."
아무리 추첨으로 받은거라고 해도 말이지. 이거 참... 잔을 들어서, 이젠 거의 얼음물에 가까워진 모히토를 꿀꺽꿀꺽 마셔 비워버린다. 속이 탄다는게 이런거구나. 이젠 이 표현도 남발해선 안되겠다.
이게 무슨 일일까. 태오는 커리큘럼 별관 누수로 인한 공사 안내문을 읽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수도가 터진 것 때문에 공사를 해야 하니, 약 일주일 동안 커리큘럼은 자율적으로 연구원과 합의하여 진행하도록 한다, 라. 태오는 오늘 왔던 알림을 눈을 한 번 깜빡이고 증강현실을 통해 망막 너머로 쭉 훑었다. 이런 일은 연구원에게 누구보다 먼저 공문이 내려가기 마련이거늘, 달리 한결 선생님께 연락이 온 건 없었다. 오늘은 커리큘럼이 없는 걸까 생각했을 때, 오렌지색 알림이 깜빡였다.
[안녕하세요, 태오 학생. 오늘 커리큘럼에 대해 안내드리고자 연락 드려요. 별관의 공사로 인해 일주일 간 다른 곳에서 커리큘럼을 진행해야 하는데, 아니무스에 마련된 상담실은 어떠신가요? 편하게 답해주세요!]
태오는 아니무스를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2학구로 생각이 닿자 몸이 굳는다. 꾹 주먹을 쥐고 노이즈 속에서 입술을 깨문 태오는 뇌파를 통해 글자를 하나하나 입력했다.
[죄송합니다. 2학구는 너무 멉니다.]
……
[외람되오나 선생님 댁이 3학구라고 했었나요?] 생각보다 한결은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자신이 사는 펜트하우스는 아니지만 작은 오피스텔은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오피스텔과 펜트하우스의 거리 중앙에는 편의점이 있고, 아무리 자신이 잘 나가지 않는다 해도 지금까지 서로 마주치지 못했다는 점이 새삼 신기할 정도였다. 건물을 올려다 보던 태오는 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하려다,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하실 말씀이라도?"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은 키가 엇비슷했다. 앵화색 머리카락은 보드랍게 목 주변을 덮고, 꿀처럼 부드러운 눈은 우거진 녹음과 돋아나는 새순 같기도 했다. 여린 체구와 손등을 고이 덮은 백의의 소매까지 보니 두 사람 다 타인에게 보호하고 싶은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건 비슷하지만, 전반적으로 시들어가는 봄이기 때문에 안쓰러워서라도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태오와 달리 화사하니 만개한 봄이기에 유지하고자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다. 남성은 메마른 태오와 달리 보드랍고 수분기 많은 입술을 지저귀듯 달싹였다.
"여기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네가 이시미야?" ─ 저게 한결이의 새 장난감인가?
단아하니 세상물정 모르는 규수같은 말씨와 달리 훅 치고들어오는 속내에 태오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백의 차림을 보니 연구원인 것 같은데, 자신을 아는 것은 둘째치고 한결 또한 아는 듯하다. 데 마레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없던 얼굴이었던지라 태오는 비밀번호를 입력하길 그만두고 자리에서 한 걸음 벗어났다.
"맞습니다만…… 용건이 있으신지요, 커리큘럼이 예정된지라 오랜 시간을 내어드릴 수는 없지만요……." "얼굴 한 번은 보고 싶었거든."
연구원은 눈을 곱게 포개듯 접어 웃었다. 퍽 애교있는 웃음이지만 숨결부터 묻어나는 짙은 와위에 태오는 속이 싸하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내가 버린 놈이 대체품을 찾았다길래, 대체 누군가 싶었거든."
해사한 미소와 함께 연구원은 태오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런데…… 맛을 못 잊었다고 해도 그렇지, 급한 나머지 장난감을 주워 껄떡대면 어떡하니. 기분 나쁘게." "장난감, 이요." "그래, 장난감. 왜? 모르모트가 더 낫나?"
연구원은 순수한 눈망울로 고개를 기울였다.
"반동분자들이 아무리 지껄여도 결국 너희는 우리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잖아. 지금 날뛰어봤자 얼마 지나지 않으면 울면서 커리큘럼 좀 해달라고, 확률에 기대 올라서고 싶은 마음 탓에 굳이 말 안 해도 발밑에 설설 기는 주제에."
안 그래? 묻는 소리가 들렸으나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으음, 한결이가 대체품으로 널 고른 거면 나랑 나름 잘 맞을 줄 알았는데…… 대답이 없네." "……." "엘리트라고 한들 버릇이 없으면 다시 조립해야지. 맞다, 훈씨가 그러더라, 네가 주제도 모르고 우위를 점하려 든다고." "훈씨, 라면……." "사람인 척하는 구제불능인 네게 진짜 이름을 지어준 사람."
순수한 눈망울, 해사한 미소, 봄결같은 모습…… 태오는 어디에서 불쾌함을 느꼈는지 깨닫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낮은 로퍼를 신었던 탓에 눈을 정확하게 마주칠 수 있었다. 아스라한 파도의 끝자락을 보는 듯한 비색의 눈과 달리 녹음 우거지고 새순 돋아나는 생명을 품은 눈이 몹시도 따스했다. 태오는 그 눈을 가만히 마주하다, 돌연 손등으로 연구원의 뺨을 쳐올렸다. 철썩 소리와 함께 연구원의 고개가 휙 돌아가고, 목에 걸어둔 연구원증이 순간 들썩였다. 사랑스러운 시원과 달리 태오는 성숙한 태도 탓에 세게 후려치는 꼴이 우아했다. 일렉트로키네시스 연구소 수석 연구원 류시원. 태오는 그 이름을 머리에 기억하며 손을 거뒀다.
"존경하는 연구원 님."
태오는 연구원의 황당함과 모멸감, 근거 없는 자존감과 선민의식에 가득 찬 시선을 마주하며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보듯 버릇이라곤 일절 없는 모르모트가…… 연구원 님처럼 지고하신 분을 여덟이나 갈아치웠음은…… 아시겠지요……. 그렇다면 그건 지고하시다 일컫는 존재들이 역량이 부족하여 나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두려운 나머지 먼저 꼬리를 마는 것일까요……."
세로로 길고 가늘게 찢어진 동공이 명확히 연구원을 향했다. 항상 지친 기색이 어린 얼굴에는 달리 이렇다 할 표정이 없었다.
"내 구제하기 힘들고 가능성 없는…… 열등한 자면 모를까, 어디에서나 나를 떠받드는데…… 그토록 성과를 바라는 당신들이 막상 감당을 못 하고 그리 군 것이면, 두려운 것이지요. 내가 자신들의 추악한 속내를 읽을까 두려워 그러는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속내를 읽는다라, 글쎄…… 당신들의 빈약한 상상력으로 대체 뭘 한다고. 하품이 다 나오겠어. 그래, 진부하지요…… 고작 그런 상상밖에 할 줄 모르는 것과 내 격이 다른 것을 아는지ㄹ-"
태오는 휘청이며 입을 딱 다물었다. 순간 시야에 불꽃이 튀는 듯했고, 충격으로 혀를 깨물어 피어싱이 눌린 탓에 전신을 타고 기어오는 고통이 짜르르 느껴졌다. 뺨과 깨문 혀가 화끈거리고 시야는 아찔하다. 먹먹한 귀 사이로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태오는 홧홧한 뺨을 한 손으로 더듬다 돌아간 고개를 다시 정면에 두고, 초연한 표정으로 연구원을 응시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머리가 열심히 결과를 도출하고 있었다.
"더 해봐."
부드러운 목소리가 흐르고, 태오는 현 상황의 결론과 함께 새로운 상황의 결과를 예상해 도출해냈다.
"더 지껄여보라 했잖아. 이시미야, 네 주제를 알아야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면 뭐하니? 한 대 맞아야 정신이 드는 장난감 주제에." "……." "그렇지, 말 안 듣는 건 때려 키우라 하지. 이참에 버릇이란 걸 들여보자."
연구원의 손이 다시금 올라갔다. 태오는 최소한의 반항을 제하면 반항하지 않았다. 팔을 올려도 뺨을 얻어맞고, 멱살을 붙들기가 무섭게 짝 소리와 함께 뺨을 또 후려치는 소리가 텅 빈 건물 주위를 선명하게 울렸다. 끝나지 않는다는 듯 다시 손을 올려 뺨을 후려친 연구원은 담담한 얼굴로 또 뺨을 치고자 손을 올릴 적 문이 열리자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결아." "……." "너, 연락도 안 받고 말이야. 형이 늘 전화는 똑바로 받으라고 했잖아." "……." "그래서 너 대신에 애 혼 좀 냈어. 네 탓인 건 알지? 애가 버릇이 없더라. 데 마레 같은 곳에서나 일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야." "……." "아."
한결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표정을 굳히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연구원의 손목을 덥석 잡아 쥐어 뿌리쳤다. 여린 체구의 연구원은 뒤로 쉽게 밀려났고, 한결은 태오를 연구원의 손에서 어떻게든 떼어놓기가 무섭게 태오를 보호하듯 품에 덥석 안아 가뒀다.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는 가슴팍의 움직임이 선명하고,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한결아, 그런 장난감한테 감정 쏟지 말랬지." "……." "그러지 말고 우리 얘기 좀 하자. 그때 일 이후로 입 닫는 병x 됐다곤 해도 말은 할 수 있잖아." "……." "어라."
태오의 눈에서 후두둑 무언가 고여 쏟아지자 연구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한결은 태오의 상태를 보고는 머리를 더 품에 밀착시키머 괜찮다는 듯 등을 다독였고, 더 할 얘기가 없다는 듯 연구원을 사납게 응시했다.
"왜 그런 눈으로 봐? 너도 똑같으면서." "……." "거기 그만 두고 돌아와." "……." "음, 꼬왔으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또 찾아올게. 난 만족했거든. 그때는 장난감 버릇도 잘 들이고…… 또, 영악한 이시미야, 또 보자. 다음엔 커리큘럼실이면 좋겠다."
연구원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뒤를 돌아버렸고, 한결은 뒷모습을 끝까지 노려보다 인영이 온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품에 있던 태오를 황급히 살폈다.
"저는…… 괜찮습니다."
태오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고통 정도야 익숙하거니와 정보를 건졌다 생각하니 이 정도는 괜찮은 편이었다. 다만 한결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엄지로 태오의 눈가를 쓸었다. 그제야 태오는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껏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울어야 하는 순간이 있으면 지금 흘리면 되는구나 판단하여 짜냈던 것이라 쉽게 그칠 수 있던 것이 수도꼭지를 비틀어버린 듯 제멋대로 뚝뚝 흐른다. 태오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고개를 다시금 저었다.
"괜, 괜찮……."
한결은 다 괜찮다는 듯 태오를 품에 안아 다독였고, 태오는 자신의 그 순간 한결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제 속내를 명확히 읽을 수 있었다.
아. X됐다. 온기에 무너지면 안 되는데. 당신은 그저 떠나간 그것과 같은 족속일 뿐인데.
그 미적지근함이 당신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안고 있기에. 부디. 그 강력함이 당신을 돌보아주기를. 망설임이 당신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기를. 그리고 확신하는 당신이 우리를 용서해주기를...
영원이 아니기에 그렇던 걸까요...?
사물들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갇히신 기분은 어떠신가요... 나의... 선생님...? 그리고 나는 저를 증오하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제가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을 들었지요...
─아... 지금 리버티가 있었다면 이런 일을 한 걸로 나는 충분히 받아들여졌을 텐데요... 그렇죠...? 에 미미하게 떨리는 것..이었을까요? 정말 꿈이로군요.. 알 리가 없잖아요... 이건 그저 만일을 시험하는 무대.. 꿈일 뿐이니까요.
만약이란 정말로 달콤하지요. 당신에겐 그랗지만도 않지만.
"...그래서...." "...그런 것을 보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것은 정말 꿈이었나요? "그럼요... 꿈에 불과하다는 걸 전 안답니다..." -하지만 당신이 연을 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맞아요.. 저는 갈기갈기 찢겨졌답니다..." -.....제게 과분한 빚을 지우셨지요. "그들은 납득했지만요." -그래요. 그렇죠... 그래서... 더... 그런 거에요... "이런. 케이스... 당신은 이제 인첨공이 당신을 살려줄 수 있다고 믿는군요." -저는 투신에 관한 기사를 보았답니다.. 금방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요. "생명에 지장이 없었기 때문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