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법이라니욧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럼 그건 시윤을 놀리기 위해서 대충 말한 것이었던가? 그건 또 아닐 것이다
"에.. 그렇게 피투성이인 상태의 스릴러 영화같은 거가 이 배 안에서 없을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으니까요." 그런 거에 휘말리고 싶진 않았구나. 아직 정상적인 인지범위에 있군요 그리고 스트레스라도 쌓였냐는 물음에는 젖은 옷을 내려다보다가..
"음.. 평소에는 보조를 해서 그런 거고요.." 혼자서 처리해야 할 때에는 조금..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는걸요? 라는 말을 합니다. 하긴. 강산이나 다른 이들을 보조하고 치료를 하는 것이라면 피가 튀기는 것은 치료의 영역이라면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서 메스를 휘두르는 것은(*그리고 메스는 누가 봐도 날이 짧다) 자가치료가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었을지도?
어느 세력인진 모르겠지만 이 게이트가 혼자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보니 다른 사람들 일정에 맞추느라 별로 쉬지도 못하고 바로 온 건가.... 강산이 안쓰러워하는 눈빛으로 시윤을 보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한다, 시윤이 거부하지 않는다면. 망념을 낮춰두고 싶은 거라면 혼자 가만히 쉬게 두는 것보단 같이 대화하는 편이 좋겠지. 강산은 그렇게 판단하고 계속 말을 건다.
"부활자 쪽이야? 아니면...요즘 게이트에 휘말렸다가 돌아온 사람이 많던데 시윤 씨도 그래?"
크읏. 놀리는 걸 아는지 크읏거리기만 할 뿐. 되돌려주지는 않는군요. 또 돌아오면 너무해욧! 이라고 할수도 있으니까!
"미치광이 고위 각성자 빌런이면 전 죽는데여...아 죽지는 않겠당.. 아까도 몬스터 칼날 관통은 좀..그러긴 했지만요~" 자힐좀비가!!! 어쩐지 옷도 좀 많이 너절거리더라니. 그걸 조금 깨닫기는 했는지 눈동자가 조금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그..그렇죠.. 그런 거죠~" "서포터의 고충이라기보다는.. 대항할 수단이 제게.. 많이 없었다. 에 가깝긴 하죠?" 자힐하다가 당하고 싶진 않았다고요? 라는 말로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망념화.. 같은 말도 가능하니까요. 일단 그건 넘어가고 치우려면 빨래도 해야하고요~ 묻은 피도 다 닦아야 하고요~ 라는 말을 한 다음. 조금 어물거립니다.
"....어 그 관련이에용?" 저번의 그 죽을지도 모른다라던가. 만약에.. 같은 것과 관련이었던 걸까요? 라는 생각을 하며 여선은 시윤을 빤히 바라봅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죠.. 말해주지 않는 이상...이라곤 해도 나중에 백색의 기사나. 명성을 보면 알 수도 있을까..?
"아? 대항이요?" "아뇨. 다 닦아도 제가 이 꼴이면 핏가루를 뿜뿜할테니까 샤워를 해야 하는데 침실에 계실래요 아니면 그.. 창고 같은데나. 의료실에 가셔서 과산화수소수랑 세제같은 걸 가지고 오실래요...?" 여벌옷은 다행히도 있어서 그건 설마.. 안 구해오시겠죵? 이라는 말을 하는 여선입니다. 어물거린 건 그쪽이었나 봅니다. 물론 대항할 수단은 있으면 좋긴 하죠. 혼자만 떨어질 수는 없다...같은 건 맞긴 합니다.
내 머리가 유감스러워진 것이 아니라, 진짜 주변에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이런걸 우쭐대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쩐지 자랑스럽게 소개하지 않는건 그거대로. 날 이렇게 불러주는 사람, 그리고 불릴 수 있게 만들어준 그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일단은 친한 사람에게 먼저 위트있게(강조) 소개해보기로 했다.
"아. 정식으로 소개할 땐. 대한제국 미리내 고등학고 특별반에 소속중인, 카하노 기사단의 평기사. 백색의 기사 윤 재클린 시윤입니다. 라고 해야겠지."
길기도 길다.
"뭐 이런걸로 허세나 거짓말을 부려서 무얼 하겠어."
그렇다기보다, 허세를 부리기 위해 스스로의 이명을 백색의 기사라고 칭하면. 그건 뭐라고 해야할까. 여러모로 다소 불쌍한 사람 같다.
"엑."
그 말을 남기고 씻으러 들어가는 그녀를 보고, 말릴 틈새도 없고 이전에 한 말 때문에 나가기도 애매해진 나는 당황한채로 자리에 앉아 그럭저럭 긴 시간 동안 물 소리를 들었다.
아니 아니, 내보내는게 낫지 않아...? 일단은 또래 남자애일텐데, 침실에 냅두고 바로 옆에서 씻어도 되는건가...? 신경을 그다지 안쓰는건가...? 아니지. 신경을 써서 '나가' 라는 의미를 담아 권유한걸 내가 눈치 못채고 거절한건가....? 그럼 나 지금 좀 뻔뻔하지 않아...? 애늙은이 정신 때문에 사춘기 청소년의 고뇌를 하지는 않았다만, 유교 사상에 충실한 고지식한 마인드로써는 스스로가 뭔가 죄를 저지른 것 같은 묘한 기분에 머리를 싸메게 된다.
"..........."
그런 생각을 한참 빙빙 하다보니, 말끔해진 상태로 여선이 방 밖에 나왔다. 고민할 시간에 그냥 잠깐 나가있을걸.
"엄청 길네요오..." 나는 그런 긴 칭호는 모르겠는데 말이지요! 라는 생각을 한 여선입니다. 허세나 그런 걸 부리지 않는다는 말에 큭큭 웃는 여선. 그리고는 쏙 들어가서 빨랫감은 찬물에 따로 담고 따뜻한 물로 씻어내야죠.
그렇다. 시윤에게 어.. 같이 있으면 좀 그렇다고 생각하시면 나가서 잠깐 구해온다거나 하는 걸로 하는 게 어때요? 를 거절했으니 뭐 상관어보겠거니~ 하고 들어간 거죠.
"그렇죵? 머리카락을 땋으면 3분의 1은 짧아진다는데. 저는 좀 느슨하게 땋아서 덜 짧아지기는 해도요.." 허리까지 오는 머리카락이라도 땋으면 생각보다 짧아진다고 하던가. 그런 만큼 꽤 긴 머리카락을 지닌 여선입니다. 샤워하는 시간보다 머리카락 말리는 시간이 더 길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청소할 준비를 하려 하네요. 박박 닦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강산은 시윤의 말이 끝나고 5초 뒤까지, 어안이 벙벙하여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그는 진지하게 스스로를 음유시인이라 정의한 적이 없었다. 여태껏 한 번도.
"좋다! 그거 재밌겠는데!"
그럼에도 이어진 대답은 흔쾌했다. 강산은 흥미와 열의로 빛나는 눈빛으로 시윤에게 씩 웃어보이며 말한다.
"벗이여, 한 때 네가 말했었지. 무언가를 잃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면 연주하라고."
아이같은 수락의 답이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과 표정은 마냥 가볍지만도 않았다.
"예전이라면 나는 가야금을 탈 줄만 알 뿐, 제대로 작사와 작곡을 해본 적도 없고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한다며 거절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음악계 마도를 공부하고 또 직접 써보니 알겠더라고. 꼭 가사가 있어야지만 뭔가를 전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강산은 바로 가야금을 꺼내든 채로 배 상갑판에 양반다리로 앉아서는, 분주한 손놀림으로 나노머신 화면을 띄우고 노트와 펜도 꺼낸다.
"물론 가사를 붙이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면 좀 더 많은 걸 전할 수 있겠지만...일단 곡과 이야기가 있다면, 언젠가는 거기에 노랫말을 더해줄 사람이나, 그 곡조를 타고 춤춰줄 사람이 또 나타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렇지 않더라도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걸로 최대한 표현해봐야지."
배에 타기 전에 챙겨온 음료수와, 여기 곁들일만한 약간의 간식도 꺼내져 나온다. 시윤이 자신이 카하노 기사단의 마지막 기사라 하였을 때, 강산은 시윤이 예전에 그의 질문에 답했던 일을 떠올렸고...거의 동시에 그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 또한 누군가의 상실을 안고 있는 이야기임을 눈치챈 것이다.
"그러니까...그것이 너의 바람이라면 들려다오. 카하노 기사단의 이야기를."
웃음기가 서서히 거두어져 차분함에 가까워진 진지한 표정으로, 강산은 상실을 품은 기사에게 손짓해 자리를 권하며 청한다. 어쩌면 그가 원했던 것, 하고 싶은 것 또한 시윤이 말했던 카하노 기사단의 그러한 신념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희망의 증인이 되어 이를 전한다는 점에서.
//10번째. 아...ㅋㅋㅋㅋ이러시면 기술 더 안 늘리려고 했는데 가창 루트 진짜로 밟아야 하려나요?😂 간만에 우필을 쓸 곳이 생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