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장 먼저 뜨고, 가장 밝게 빛나고, 가장 마지막에 지는 별이 될 거야." "그 별이 뜨는 곳은... 유우가의 옆이었으면 좋겠어. 내가, 유우가만의 샛별이 되도록." situplay>1597038191>1 히다이 유우가 situplay>1597038191>2 메이사 프로키온 situplay>1597038191> situplay>1597039238> situplay>1597041174> situplay>1597044204>
아니, 존재 자체를 까먹었단 건 아닌데, 잊고 있던 게 끌어올려져서 놀랐다. 여기 이사 올 때 책 사이에 끼워다 잘 보관하고, 있는지 체크만 하고는 꺼내 볼 일이 없었으니까. 그 녀석에게 도망쳐오기도 했고 당분간 혼활할 일도 없으니 그러고 잊으면 그만이었다. 이후로는 내 집안에 큰 근심거리가 하나 굴러들어와 신경쓸 새도 없었고.
"그게." "그러면 되." "긴 하지만..."
오히려 편리해졌다며 좋아할 법도 하지만, 어쩐지 난 웃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치만, 그, 일단, 학생이던 메이사랑 썼던 거고, 그, 그래서랄까. 좀, 거, 그. 아씨...!
하지만 임신까지 한 메이사한테 "아, 그거 이사하면서 잃어버렸으니까." 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그것만큼은 뭔가 이 세상 빛을 보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내 애아빠가 이런 하남자라니..." 할 거 같고, 완전히 딜레마. 그야말로 사면초가.
나는 진땀을 빼며 스리슬쩍 눈을 피하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그, 그게 말이지. 그때 작성한 증인란이, 츠나지 시절의 증인이라 여기에는 없... 잖아. 그래서 아마 통과가 안될 수도 있고."
그러면 도쿄에서 우리 둘을 아는 사람들이, "이 녀석들 제대로 결혼한대요 얼레리꼴레리" 라고 해줘야 한단 거다. 그리고 우리를 잘 알고, 이런 거 부탁해도 될 정도로 (그나마) 친한 건... 미스미씨랑 이누키 정도려나. ...걔네한테 부탁을 해야 한다고... 그러면... 이 사정을 다 말해야 하잖아... ......그냥 역시 제출할까? 그런 생각이 든 시점에, 메이사는 이미 내 이야기를 응응 하며 열심히 듣고 있어서 물리기도 그랬다.
난 생각이 짧아서 진짜 망할지도 모른다.
"......그, 그렇다고... 그러니까 새 걸 써서 제출하는 게 가장 빠르지, 않을까 하는... 그... 뭐시기... 그런..." "젠장......"
가릴 수도 없이 새빨개진 얼굴을 메이사의 어깨에 파묻었다. 그야말로 딸기꼴이 된 둘이서 이러고 있는 게 내심 웃기기도 했지만, 역시 내일 출근해서 이누키의 증인 서명을 받아내야 한단 것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다음 날.
"...메이사, 역시 우리 예전에 쓴 거 제출할까? 응?"
도저히 제정신으로 할 수가 없어서 나는 운동장에서 지도를 하는 이누키를 멀찍이 두고, 메이사에게 거의 애원하다시피 했다...
제출했다가 반려라도 당하면 우리의 결혼은 더 늦춰질 뿐이다. 그래봐야 하루 이틀 정도겠지만.... 아니 어쩌면 일주일이 될지도 모르고, 이걸 계기로 '역시 결혼은 좀 아닌 거 같아'라고 생각할 여지를 줄지도 모르고(?) 그런 일은 피하고 싶다. 사실 유우가의 성격을 봐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지만, 그래도 불안 요소는 전부 치워두고 싶다고 할까.... 애원하다시피 말하는 유우가를 올려다보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내가 받아올게."
물론 그게 예전 신고서를 그대로 쓰자는 말에 대한 동의는 아니고. 유우가 대신 내가 받아오면 되겠지. 유우가의 손에서 잽싸게 혼인신고서를 채와서 이누키를 향해 뛰어갔다. 몸조심해야지 하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지만, 뭐 이 정도 뜀박질로 큰일이 나진 않겠지.
메이사는 내가 "아니 그래도 쫌..." 하면서 설득할 말을 고민하던 새에 서류를 휙 채가서는 파바박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뒤를 좇으래도 어려운 속력 때문에 "마 가스나야! 니 미친나! 몸 챙겨야제!!!!" 라고 외치는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관서다." "관서사투리야." "오사카인이다." 하고 지나갔다...
그나저나 멀리서 실눈을 뜨고 관찰하자니...
*
안녕하세요, 이누키 시로입니다🌟 파릇파릇한 스물 셋이고 도쿄 트레센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저한테는 짝사랑하는 누나가 있는데요, 그 누나를 따라서 시험을 치고 여기까지 취직했답니다. 지금은 누나가 다른 녀석에게 눈길을 주고 있지만 언젠가는, 늘 누나 곁에 있었던 진국인 저를 알아봐줄 거라고 생각해요. 왜, 요즘 여자들 사이에선 또 댕댕남이란 게 유행한다잖아요. 서브남주에 대한 동정여론도 꽤 크고?
어쩌면 제 존재를 불쌍히 여긴 서브남주의 신님께서 서브남주가 이기는 세상을 가져와주시진 않을까요? 랄까나.
아, 저기 오네요. 갈색 머리에 이마에는 흰 점이 있는, 좀 냉한 인상의 누나. 누나가 오랜만에 날 제대로 보면서 다가와주고 있어요. 마주 손을 흔들며, 지도해주던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누나에게 다가갑니다.
"누나 안녕! 저 보러 왔어요?" - 응, 나 여기 사인 좀 해주라.
응, 하는 말에 살짝 들떠서는, 저는 서류가 뭔지도 안 보고 일단 볼펜부터 받아들었습니다.
"어렵지 않죠. 근데 왜 제 서명이 필요한 거예요?"
그 대답이라는 양, 누나는 손가락으로 서류를 가리켰는데 그 서류는 호 혼인 신고 서...!? 서, 설마 누나... 나, 나랑?!
"누나 이, 이, 이게 무슨 서..." - 혼인신고서야.
누나는 정말이지 쿨데레였던 거구나, 그 놈팽이가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역시 그 시꺼먼 양아치녀석은 아니었던 거죠! 저는 알고 있었다니까요, 누나 앞에서는 뭔 내숭을 떠는진 모르겠지만 그 새끼 순 OO에다가 싸움꾼...
- 나랑 유우가의.
"예?" - 여기 서명하면 돼. 이름 석자만 써주면 되니까.
"이..."
머리에 피가 싹 빠지고, 이 이후로는 그저 분노에 몸을 맡길 뿐이었습니다.
*
- 이 새끼가―!!!!!
키사마―!!!! 하는 외침에 일단 가드를 올리면 저 싹바가지 없는 녀석이 냅다 달려와선 멱살부터 잡아올렸다. 메이사, 쉽긴 뭐가 쉬워. 고생은 내가 하니까 넌 쉬운 거지 이것아...
원래라면 이누키의 발악은 일단 무시했을 거다. 이녀석 말은 저렇게 해도 키사마 수준이 최고의 욕인데다, 주먹 한 번 못 지르는 순한 놈이라. 무시하고 있는 게 일단 편한데, 이 녀석이 아니면 남는 옵션은... ...미스미 씨.
진퇴양난이라고. 귀찮아지더라도 이녀석 선에서 끝내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한숨을 내쉬고 부탁했다.
"...그 부분을 어떻게 해줄 수 없겠냐? ...어차피 오늘 안에 제출히야 한다고. 우리 서명만 받고 바로 구청으로 갈 거야."
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너 아니면 우리 아는 사람은 미스미밖에 없잖아. 근데 그... 미스미는......"
...
"...아무튼 좀 해주라. 부탁이니깐."
...그런 내 기색을 살피던 이누키는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미스미에게 연락했다. 미친 놈.
*
- ...그래서.
"네..."
- 설명.
연락을 받은 미스미, 명목상으로는 나의 전여친인 사람이 와서, 전혀 화가 풀리지 않은 눈으로 우리 셋을 쏘아봤다. 그 설명이 뭔지는 이누키도 궁금해하는 듯 했는데, 이거 내 입으로 어떻게...!!! 도저히....!!!!!!!!!!! 악....!!!!!!!!!!!!!!!!!!!!!!!!
이누키는 유우가의 멱살을 잡더니 곧 미스미씨를 불렀다. 뭐, 증인 서명을 받으려고 찾아갈 예정이긴 했지만.... .....분위기 완전 무겁잖아.. 무겁달까 흉흉하달까. 자동적으로 정좌를 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라고 할까. 미스미씨 무지 화가 난 눈이고.... 힐끗거리며 미스미씨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미스미씨와 이누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다. 무, 무서워... 그보다 이누키는 왜 궁금하단 얼굴인거야.... 하긴 사정 설명을 안했으니 그럴만한가. 고개를 푹 숙인채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간다.
"....그으... .....했습니다." "...그래서... 생겼고요...." "책임지기로 해서... 이렇게 됐어..."
주어가 많이 빠졌지만, 전달은 잘 됐으리라 믿는다.
-주어 빼지 말고 상세하게.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젠장.
"그게... 으으... 2주 전쯤에 유우가랑.. 잤어요....네..."
이 대목에서 이누키가 풀썩 주저앉았다. 아니. 나도 그... 다른 남자 앞에서 이런 이야기 하는 거 힘드니까... 나도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라고 지금...
"그리고 어제 테스트기에서 두 줄이 나왔고...." "...그래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려고 했습니다..."
이누키, 입에서 거품같은게 나오고 있는데. 꽃게같네... 아까부터 이누키에 대한 서술만 많은데, 이건 지금 내가 차마 미스미씨 쪽은 못 보고 있어서 그렇다. 아니. 지금 무섭다고 진심으로. 이 사람....
"..예전에 썼던 건 증인이 지금 중앙엔 없으니까, 혹시라도 반려될까봐 새로 쓰려던거고요..." -아니 예전에 쓴 게 있다고요?!
다시 벌떡 일어선 이누키가 유우가를 정말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다. 시선에 질량이 있었으면 지금 유우가랑 나는 채썰기로 썰렸을지도 모른다... 유우가는 이누키의 시선에, 나는 미스미씨의 시선에 말이다.
"아무튼 그래... 그러니까 둘 다 서명 좀 해줘."
그리고 다시 혼인신고서를 들어보였다. 마침 딱 둘이니까 이거만 받아서 얼른 제출하면 되겠다.
했고, 생겼고, 책임지기로 했다. 어른이라면―아니, 어른이 아니더라도 알아먹기 충분한 맥락이어서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저기서 얼굴이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이누키와는 달리 미스미님은 미스미님은 악 메이사 보던 눈을 나한테 돌리지말아줄래제발
결국 메이사가 얼굴이 빨개지면서 분명하게 밝힌 그 선언, 그리고 옛날에 쓴 혼인신고서의 존재마저 밝히는 악수. 쓰러졌다 부활하는 듯 했던 이누키는 결국 보라색 시체로 임종을 맞았고. 그리고 미스미는...
뻑―!!!!!!!!!!!!!!!!!!!!!!!!!!!!!!!!!!!!!!!!!!!
소리 나게 내 뒷허벅지를 돌려찼다. 풀썩, 하고 주저앉은 내 허리를 구두 끝으로 까버리기까지 했다. 어릴 때 가라데 했다더니 폼이 ㅆㅂ 예사롭지가 않고 뒤지게 아프다...
- 너 안 했냐? "...아, 아뇨. 극 그게... 아, 잠깐. 잠깐. 폭력 중지. 제발 말 좀 하게 해줘."
말대꾸하자마자 주먹을 꽉 쥐길래 눈을 질끈 감고 진정시켰다.
"극, 아, 씁, 아니... 하... 안 했는데. 잠깐잠깐제발 아!" "할 말이 없지만...... 그런데..."
"―미스미 너랑은 상관없는 일 아니야?"
네, 히다이 유우가 특제, 최악버튼 누르기 재림입니다. 아니 그야 나도 억울하지. 어떻게 한 번에 붙어버리는지는 둘째치고 책임지기로 했는데 남들이 죽일듯 노려보면 나도 좀 마음이 고까워지는 것이 사실. 하지만 내가 또 어떤 부분에서 실수를 한 건지, 미스미는 미간을 꾹 짚고 침묵했다. 이누키 녀석은 내 말에 얼굴이 보랗다 못해 새파래져선 미스미의 눈치를 보고 있고.
해설 : 미스미는 자기가 사귀는 거로 알려졌던 남자가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직장을 활보하는 걸 봐야하며... 주변인들의 자와자와를 견딜 생각에 벌써부터 골치가 아픈 상태입니다 😅 미스미의 명예가 여러모로 실추되는 상황인데, 유우가는 미스미를 지인 이상이하로 생각하질 않아서 그 정도의 사려깊은 생각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네요 🤔
사실 저도 크게 할 말 없지만요..... 그래도 이건 아니야... 이누키만큼 새파래진 얼굴로 미스미씨를 보다가 슬쩍 유우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보다 그렇게 아프게 맞았으면 그냥 다물고 있지 않나 보통.....
"상관없는 건 아니지. 그, 위장...이라고는 해도 일단 유우가랑 사귄다고 공표한 사이였잖아..." "근데 유우가가 나랑 결혼하면 주변은 어떻게 생각할지, 그, 알잖아...? 거기에 우마무스메들이 소문 퍼트리면 이상하게 꼬이고 와전되는거 츠나센에서도 겪었잖아 직접. 그렇게 되면 한 명 한 명 붙잡고 오늘처럼 사정 설명할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러니까아... 미스미씨도 상관이 있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일에 휘말린 거고."
.........정리해서 말하고 나니까 더 면목이 없네.... 그야.. 그... 헤어져!라고 하면서 카페에 혼인신고서(사본)들고 갔던 녀석입니다만, 사정 설명하고 복수 계획도 말했더니 선뜻 도와주겠다고 한 사람을 어떻게 보면 뒤통수 쳐버린 거나 다름이 없게 되어버렸으니... 우물쭈물, 머뭇거리다가 미스미씨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골치아픈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요. 그게... 이렇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지만, 그래도.... 주의하지 않은 건 잘못이니까."
아니 진짜로 몰랐긴 하지만. 진짜로 이럴 계획은 아니었지만. 진짜 계획은 좀 더 나중에... 아직 제대로 다듬지도 않았고 앞으로 미스미씨랑 다듬어 나가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이게... 그... 네.... 나랑 유우가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지... 응....
"근데 진짜로 사고였다고 할까 경황이 없었다고 할까 결코 고의는 아니고요 미스미님이 도와주시겠다고 했던 거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면목이 없고 하여간 그 죄송합니다아아아......"
그대로 땅에 납작 엎드릴 기세로 와다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아니. 그치만.. 아까 유우가가 두들겨 맞는 거 보니까 무서워졌는걸(?)
둔감한 나 대신 쩔쩔매고 사과하는 메이사를 보다보니 마음이 안 좋다. 머리를 긁적거리다 맞은 곳을 추스리고 일단 일어나서 나도 같이 사과하기로 한다.
"내 생각이 짧았네. 일단 이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술취해서 사고친 거 수습하느라 이래저래 경황이 없었어. 네 입장도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이게 당장 어제 터진 일이라. 말실수 해서 정말 미안해."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미스미의 성격을 아는 내가 좀 정리해야 할 때다. 내가 미스미에게는 냉하게 구는 것도 그 특유의 성격 때문이니까. 극한의 실리주의에 소시오패스(*유우가의 편견입니다. 좀 맞말도 있지만), 그 성격에는 사과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빠르게 먹힌다.
"그러니까 문제는 내가 너한테서 메이사로 환승해서 바로 임신을 시켰다...는 게 와전되는 거에 따라 너한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말인 거잖아. 다행이도 여기는 트레이너들의 가십에 큰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와전 자체를 피하기는 어렵겠지..."
그렇다고 냅다 그만두고 우리가 츠나지로 다시 가기에는 부담이 크고.
"...메이사랑 내가 겨울학기까지만 근무했다가 육아휴직을 하면 되잖아. 나는 1년 하고 복귀하고 메이사는 애 조금 키우다가 시간차를 두고 복귀하면, 그 사이에 또 트레이너들 한번 싹 바뀌지 않겠어? 프리랜서들도 있고 담당따라 내려가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애초에 중앙은 실적싸움 밥그릇싸움으로 피가 말라서, 우리같은 어중이떠중이들은 뭘하든 크게 신경 안 쓰기도 한다. 거진 몇명씩 패거리로나 몰려다니고(우리처럼) 저쪽 선생 무리의 누구가 육휴에서 복귀했다더라 정도는 들어도 남의 패거리에 굳이 말을 많이 얹지는 않는... 그래, 딱 관동 녀석들답달까.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메이사의 의견도 듣고 쓰러져 있는 이누키를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구석으로 치워도 놓고. 이래저래 설득을 하고 나니 미스미도 오랜 침묵에서 입을 떼었다.
휴우. 어떻게든 마무리된 느낌이다. 사과하고 나니 유우가도 뭔가 알았다는 듯이 나서서 착착 사과하고 정리를 했고, 걱정인지 뭔지 모를 말과 서명을 남기고 미스미 씨는 휭 가버렸다. 유우가가 해석해줬지만, 정말로 그 뜻이 맞아...? 나 무서워... 이누키도 마른 문어 내지는 마른 오징어가 된 느낌으로 훌쩍거리면서 서명해줬다. 너무 울어서 뭔가 엄청 미안할 정도네. 나중에 밥이라도 사줘야지.. 술은 이제 내가 못 마실테니까.
그렇게 미스미도 이누키도 가버린 후에 유우가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무책임한 녀석의 애는 좀 아닌가?라고. 하아? 뭐냐고 그게. 아까 그 말 신경쓰고 있던 거야? 바보 같아. 복어라도 된 것처럼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로 유우가의 정강이를 가볍게 톡 찼다. 찼다기보단 건드렸다가 어울리겠다. 아까 미스미가 무진장 때렸으니(부위가 다르지만) 다리 아프겠지.
"흥, 됐네요. 유우가의 아이니까, 낳을 거야." "이제와서 무르려고 해도 소용없다구? 제대로 책임져."
그렇게 말하고, 조금 자조적인 웃음을 띄웠다. 뭐어, 무책임한 녀석이라고 한다면 말이지....
이 이야기를 들은 순간 뭐랄까, 약간, 그, 상식이 뵤와앗...하고 날아가버렸달까. 메이사가 뭐라뭐라 말하는 건 들리지만 막상 머리에 꽂히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되짚어보자. 내 이름 유우가 맞지? 응, 히다이 유우가 맞지. 그러니까 유우가의 아이라는 건 내 아이라는 이야기인데. 메이사가 내 아이라서 키워준다고? 잘못 들은 게 아니고 내 아이라서?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멀뚱하게 우뚝 선 내 팔을 메이사가 잡아당겨도 꼼짝하지 않았다. 메이사가 얘 왜 이래? 하고 돌아볼 때가 되어서야 입술을 달싹여서 한 마디를 뱉었다.
"...내 아이라서?"
"그럼... 나 좋아해?"
오히려 이럴 때만 심장이 기이하리만치 뛰지 않았다. 이누키랑 미스미와 실랑이하느라 시간도 제법 잡아먹었고, 제출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데 어쩐지 발을 절대 떼고 싶지 않아서, 메이사가 당기는 손길에도 그냥 미련하게 멈춰서는 대답만 기다린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꼼짝도 안하는 유우가를 돌아봤다. 대체 왜 이래? 서, 설마 '아니 역시 생각해봤는데 이거 아닌 거 같아'같은 말 하는 거 아니겠지...? 약간의 불안을 안고 돌아보자, 유우가는 어쩐지 얼어붙어 있었다. 아니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나, 유우가를 죽여버리겠단 말을 했나. 전부 아닌데 대체 왜 이래.... 그리고 달싹이는 유우가의 입에서 나온 건, 이게 지금 나온다고?싶은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 아마 나도 좀 멍청한 표정이었을 것 같긴 한데. 눈을 깜빡이면서 유우가를 보다가 또 다시 복어가 되어버렸다. 하아?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바보 같아." "난 우리가 임시 팀이었을 때부터, 유우가가 날 두고 떠난 이후에도, 중앙에서 다시 만난 뒤에도... ...쭉 좋아했단 말이야."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지낼 리가 없잖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 그...것도 할 리가 없잖아!!"
새빨개진 얼굴로 빽 소리를 지르고서, 미련하게 멈춰선 유우가에게 가벼운 펀치를 날린다. 메이사 펀치! 메이사 펀치! 그래도 제대로 힘을 실어서 친 건 아니고, 그냥 툭툭 소리가 날 정도만. 바보냐고, 진짜 바보야. 조금 원망하던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난 유우가가 좋다고.
클래식 시즌 때부터 지금까지 안 좋아했던 적이 없다고. 비록 내 쓰레기 짓에 밉기도 했지만, 좋아하니까 내가 집에 데려올 때 눌러살았던 거라고. 정작 나는 이 녀석이 나 없더니 인생의 단맛 쓴맛 다 봐버렸구나 생각하고 이것저것 체념한 채로 지냈는데. 그거 다 센 척하는 거짓말이었던 거 이제는 알지만...
그렇게 좋아한다고 몇 번이고 듣고 나자 실실 웃음이 샜다. 그냥, 뭐랄까. 그런 생각도 했거든. 나는 메이사처럼 제대로 된 녀석이 아니니까, 좋아하지 않아도 남의 집 정도는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그랬던 적도 있고). 관계를 맺는 것도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냐고. 그러니까 어쩌면 메이사가 날 좋아하지는 않지만 죄책감 때문에 키우겠다고 하는지도 모른다고. 부부라곤 해도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내심 있었단 말이다. 그러다 해도 그 상대가 메이사라면 못할 게 있겠나 싶었으니 결혼하기로 한 거지만.
애정없어도 괜찮았던 사람이 사실 날 쭉 좋아해주고 있었고, 앞으로도 좋아해줄 거라고 생각하니까... 뭐랄까, 심장 엄청 두근거리네. 조금은 벅차오르기까지 했다. 이런 증상이라면 나도 어쩌면 메이사를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 어쩌면, 메이사 말마따나. 불쌍하다는 이유만으로 집안에 들여놓고. 속이란 속은 다 썩이고 집안 어지럽혀 놓고, 손 많이 가면서도 옆에 뒀던 게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가자며 채근하는 메이사의 팔을 역으로 휙 당긴다. 품에 들어온 메이사의 양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이마에 입술을 가볍게 눌렀다. 머리카락에서 은은히 올라오는 나와 같은 샴푸 냄새를 들이쉬고는 놓아주었다.
"...이제 됐어. 가자."
(*뭔가 이걸 막레로 하고 🤔 서류는 알아서 제출했다~ 이제 부부임~ 해도 좋을 거 같고 더 이어주셔도 괜찮습니다 히히... 너무 귀엽고 순애라 엄청 행복했네요 답레 쓰면서wwwww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