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모시는 것은 퍽이나 까다로워서, 글이나 말로 풀이하자면 상당히 긴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골치가 아픈 것은, 잘못된 해석으로 벌어지는 사건이다. 똑같은 그림을 바라보았도, 어느 부분을 시야의 중심으로 잡고 해석범위를 넓혀가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차이인지라 하나의 해석이 온전히 존재하는 신앙의 메뉴얼을 똑같이 바라본다한들 그것을 보고 취하는 행동은 여러갈래로 흩어진다.
무카이 카가리가 사토의 시조가 되어만 주고 그들을 방치하자, 그녀의 축복을 갈구하는 사토의 괴물들이 아야카미에서 행한 모든 악업들이 그 증거이고.
사토의 망령들에게 홀린 사토 레이지가 동생을 지키고자, 도시에서 자신의 패거리를 만들고, 지네의 문양을 등에 업고 행한 모든 폭력이 그 증거이다.
사토 레이나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아카가네 아오이를 바라보았다. 류지는 어찌하여 이런 것을 주워왔나, 역시 사토의 피가 문제인가 살짝 원망도 해보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주워담을 수 없다.
" 말 하나 하나에 두가지 뜻을 품고 있으니, 옛날 옛적 당신을 모시던 사람들은 참 고민이 많았겠어.. "
결국 아오이의 말에 수긍한 레이나가 살짝 물러나긴 하였지만 그녀의 금색 눈동자에 서린 노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물러난 것은 아오이에게 따지는 것을 무르기로 한 것 이지. 자신의 아이에 기분 나쁜 검붉은 실을 칭칭 감아대는 그 갑충에게 물러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 .... "
하지만 역시 기묘한 녀석이었다.
사토 레이나는 자리로 돌아와 기계를 닦으며 반사되는 아오이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정말로 저 기묘한 신은 자신이 저지른 죄업도 안다는 듯 굴고있으니 그 모습이 마치 거울 같았다.
후두둑 쏟아지는 빗소리는 점점 커지고, 레이나와 카가리의 시선이 교차한다. 그녀의 원심을 조롱하는 카가리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레이나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원령에게 홀려, 동생을 지키고자 신관이 되어_ 그저 공놀이를 좋아하는 그 어린아이가 폭력을 휘둘렀다.
그 지저분하고 끈적이는 도심의 구석에서 이게 옳은 것이라고 믿고, 어리석게도 자신을 갉아먹은 끝에 죽어버렸다. 싸늘해진 그 아이를 끌어안고 손에 묻은 피에 절망한다. 상실은 지긋지긋하게도 겪었으니 별거 아닐 것 이라 생각한 자신을 비웃듯, 눈물이 쏟아진다.
" .... "
레이나는 우산을 얌전히 접고 옆으로 힘없이 던졌다. 쏟아지는 빗물이 그녀의 눈가를 타고 흘러내려 눈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지금 아야카미에 쉴새없이 내리는 이 비가, 그녀의 눈물인듯 강에서 부터 넘처흐르는 강물이 그녀의 증오인듯
어느새 발등이 잠길정도로 차오른 여러 감정의 물이 그녀들을 잠기게 하려는 듯 쉴새 없이 차오른다. 너를 용서하지 않는다 라는 맹렬한 원한이 차갑게 첨벙거리며 끌어당긴다.
" 당신의 존재 자체가 사토에겐 시련이고, 죄업이야. "
늦어도 너무 늦는다 설마 길을 잃었나?
어머니는 오랜만에 아야카미에 오신거고 카가리는... 생각해보니 카가리는 자기 멋대로 행동할테니 애초에 마중에 안맞을지도 모른다.
" 비가 이렇게 오는데 말이야 "
슬쩍 하늘을 올려다보자, 여전히 비는 쉴새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튼 서두르자 싶어 서두르기 시작하자 철벅거리는 느낌과 함께 발목까지 차오른 빗물에 고갤 갸웃거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러다 홍수라도 나는게 아니려나 ..
" ? "
아무튼 물웅덩이를 해치고 겨우 전진한 나는 서로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카가리와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이 신(神)을 모독하고 기롱하기 위해 열어진 요괴의 축제라면, 한낱 인간인 내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이곳에 어떻게 흘러들게 되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언제 들러붙었는지 모를 이름 모를 괴이는, 본래 외로울 적에 장난삼아 만들었던 다정하고 상냥한 상상친구로부터 비롯되었다. 부서진 마음 부스러기로 만들어낸 상상친구가 그것의 그릇이 되었는지, 상상친구가 그것을 잡아먹고 악하게 변해버린 것인지는 확실히 할 수 없으나, 그것이 내 일부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자아가 생기기 시작한 그것은 실체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내 그림자 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미약하게나마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나를 이리로 끌어들인 것이겠다. 사실을 알고 나니,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할 광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고서도 마음이 그닥 요동하지 않았던 것이나, 그것이 유독 들떠있다는 것, 작금의 상황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것까지 모두 납득할 수 있었다.
가시 돋친 경종에 일제히 이쪽을 돌아다보는 요괴들의 크고 작은 눈동자가 일이십이 아니었다. 하나 맹목스러운 적개심이 조금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르는 이들에게 멸시받고 외면당하는 것이, 같잖다는 듯이 내려보는 시선이 더 무서우니까.
류지와 각별히 친하느냔 물음에 어렸을 때부터 나를 챙겨주었던 소꿉친구라고 답했다. 그의 이름을 들으니 하필이면 죽은 레이지가 떠올라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죽으면 류지가 '또' 궁상을 떨 것이다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한구레가 되어 억울하게 죽었다는 말뿐 다른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더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그러나 사토와 연이 깊은 그녀라면 무언가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 마음이 석연치 않았으나 그에 대한 질문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 윽."
나막신 신은 발 하나가 시야에 불쑥 들어오더니, 이유 모를 압박감이 가슴을 죄여왔다. 그녀의 발 아래 짓눌린 그림자는 몹시도 괴로워했다. 갑작스레 가까워진 거리에 한걸음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어째서인지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알면서도 붙이고 다니냐는 물음에 부정하기 어려워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녀의 인영이 흐트러지더니, 일순간 발 딛고 섰는 공원의 일대가 새까만 그림자로 뒤덮였다. 처음엔 월식이라도 왔는 줄 알았다.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한 바퀴 넓게 둘러보고 나서야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거대한 절지동물의 형상이었다. 그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거대공포증(Megalophobia)을 불러일으킬 만큼이나 공포스러웠지만, 발아래 그림자가 느끼고 있을 극도의 불안과 공포 절망 두려움 따위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와 도저히 서있기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없애주느냔 물음에 겨우 고개를 들어 여전히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를 올려보았다.
"없앤... 다고요?"
너무 귀찮게 굴어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매일매일이었지만, 이것은 내 마음의 부스러기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며 그동안에도 떨어지는 마음을 먹고 자라난지라. 다르게 말하면 이것은 나의 일부인지라. 무턱대고 없애버린다면 그만큼의 마음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지가 우려되어 대답을 망설였다.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 긴장을 풀어내려 깊은숨을 한번 내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