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이, 어딘가로 이어지고. 마치 고위의 존재가 라비를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어옵니다.
그 눈은 라비를 주목합니다. 아니, 라디로비엔이라는 존재의 기억을 주시합니다. 그것의 존재는 어디에서 오고 있습니까. 과거의 풍경 속 지나가듯 누군가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기억은 마치 이상하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재에도 그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라비는 이것이 미래에도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언가가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지독히도 오래된 존재이며 이 땅에 이전부터 존재한 것이고, 때론 누군가의 모심을 받기도 했으며 잊혀지기도 했고, 다시금 그것을 세움을 받아 이 땅을 주시하는 존재입니다.
"아무래도 서로간에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UHN측에서 뭘 해줬는지 까먹은 모양이고 말입니더."
여기서 일부러 UHN측에선.. 하며 그쪽의 오해를 말하지 않았다. 확실히 UHN측에선 해준 것이 많이 있다. 미리내고의 특별반이라는 이름으로 얻은 혜택들이 당연시 여겨져서 그렇지. 흠... 여기선 카드 한 장을.. 뽑을 때가 온 것 같다.
"놀라지예. 놀라고 말고. 미리내고 미리내고 하다보니 고등학생처럼 사춘기가 왔다고 내는 생각한데이. 근디, 그 사춘기도 이제 끝무렵이고... 우린 값어치를 한다. 라는 걸 이제 슬 증명할 때 되지 않았습니까?" "여 오기 전에 자오 한. 천자 금마랑 친분을 쌓았고... 다음엔 사자왕도 한 번 만나서 친분을 쌓을 생각입니데이." "윤시윤, 금마한테 길드화 허락을 해줬다고 들었는데, 천자와 사자왕과 친분이 있는 길드가 나온다! 라고 하믄, 값어치는 쪼까 하지 않을랑가 모르겠습니다."
통할지 안 통할지는.... 도박이다. 천자는 몰라도 사자왕의 이름을 파는 건 불확실한데... 하지만, 해봐야지. 우리가 값어치를 하는 녀석이다. 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나는 그의 손길을 쓰다듬으면서, 조금 생각에 잠긴다. 야속하다. 내 주변에서 함께 시간을 공유했던, 내가 좋아하는 어른들은 왜 이렇게도 빨리 떠나고 싶어하는가.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것이 '살아가는 길'로 결정되었다면. 함부로 참견하는 것은, 각오를 짓밟는 무례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912 다른 말에는 그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도, 두 단어가 나오자 상당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천자. 사자왕.
그 두 단어는 어쩌면 미리내고의 '특별반'이라는 이름보다도 더 이전부터 들려오던 이름입니다. 어쩌면 영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던 두 사람.
" 그 이름의 무게가 썩 가볍지 않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몸에 나타나는 거품을 털어내며 말합니다.
" 단순한 '이름'만으로는 이제 특별반은 그들에게 밀리지 않고 말입니다. UGN의 협력을 받아낼 정도의 집단. 그정도로도 나름 나쁘지 않은 결과였으니 말입니다. "
그는 그리 말하며 토고의 말을 기다립니다.
>>913 " 카하노 기사단은, 한 바보로부터 시작된 기사단이야. "
바보.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진한 향취에 시윤은 자세를 고쳐잡습니다.
" 멸망해버린 이런 세상에서는 아이들은 점점 메마르기 마련이지. 이런 세계는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보다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게 되기 마련이거든. 그렇게 꿈 꾸는 법을 잊어버리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떤 바보는 그런 아이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던 이야기를 알려주게 돼. "
동화를 모으는 기사단. 그것이 바로 카하노 기사단의 전신이었을 겁니다.
" 그 바보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자며, 그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한 기사단을 만들었어. 무모하지만 언젠가 영웅이 되자는 의미로. 우리들의 바보같은 이야기를, 마치 과거의 한 소설처럼 해나가자는 의미로. 그들의 고향인 '카하노'를 따서. 카하노 기사단이라 칭했지. "
그렇게 카하노 기사단이 탄생했습니다.
" 초기의 기사들은... 기사도와 같은 것들보다는 일종의 힘 센 위협에 지나지 않았어. 기사도? 예? 그런 것보단 생존이 우선시되는 세상이었으니까. 살기 위해 사람들을 착복하고, 그들을 이용해 게이트를 토벌하며 벌어먹을 것을 걱정하던 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런 이들에게서 사람들에게 동화의 기쁨을 주기 위해 무기를 들었지. 그게 바로 카하노 기사단의 기사도야. "
그는 그러면서 다른 이야기들을 털어놓습니다. 새로운 동화를 모으며, 그와 관련된 기사들이 모여들고. 점점 그런 기사들에게 보호받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마침내, 작은 숲을 거점삼아 카하노 기사단의 크기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기사도가 세워지고 몰락하던 시기. 카하노 기사단이 전하고자 했던 '희망'은 굳건해보였습니다.
" 그러나... "
그는 쓴 표정을 짓습니다.
이미 시윤도 알고 있을. 그 때의 기억.
" 그때의 나는 그 바보 녀석과 떨어지고 말았어.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니 그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우리들은 다시금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지. 하지만 녀석은 그런 말을 듣지 않았어. 우리를 보고, 우리를 위해 모여든 이들이라고. 그들을 버리고 갈 수 없다고 말했지. 결국 난 녀석과 반목해서... 기사단에서 떨어져 나왔어. 그리고 내가 떠난 동안 그 일이 일어나고 만 거지. "
동화의 밤. 수많은 이들이 죽고, 카하노 기사단의 기사도가 몰락했고. 흑기사가 탄생하고 말았던 밤.
" ... 어쩌면, 내가 그들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
그는 웃으며, 말합니다.
" 진짜 돈 지오테는 유약하고 부드러운 녀석이었으니까. 그 이름을 빌린 나라는 녀석과는 다르게 말야. "
[하하하, 마도의 길을 택한 이상 그래야 할 일도 생기는 것은 어찌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게 싫으면 다른 무기술이나 전투술을 택하면 되었을 일이겠지만...
[이제와서 그러기 싫다고 아주 다른 길로 빠지기에도 너무 멀리 왔네요.]
강산은 장난스레 답장을 쳐서 보내다 아, 하고 시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러고보니 시윤 씨가 예전에 에브나의 스승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었지. 이거 얘기해도 괜찮은건가? 강산은 주문형에게 에브나를 언급하기 전에 괜찮을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정주 주가의 가문원들 앞에 마도에 재능은 있으나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여자아이가 나타났을 때 아이의 의사가 존종받을 수 있는지, 또 그 앞날이 어른들에게 휘둘리진 않을지를...
#주문형과 대화를 계속하면서, 에브나를 언급하기 전에 이 행동이 시윤과 에브나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곤란한 결과를 일으키진 않을지 잠시 생각해봅니다. 필요하다면 잔여망념 30을 사용해 영성을 강화합니다.
" 아니.. 아닙니다. 벌써 수십년도 전의 일이니. 아마 그에게도 사정이 있을 수 있겠네요. "
" 아. 여기 자료가 있네요. "
가디언은 차분히 이야기를 꺼냅니다.
" 공연의 밤 사건 이후. 카하노 기사단은 큰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몰락하진 않았었다고 합니다. 물론 단장과 부단장이 실종되긴 했으나 고참 기사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규합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흑기사'라 불리는 몬스터에 의해 기사단의 기사들이 몰살당했다고 하더군요. "
그는 하나의 사진을 시윤에게 전송해줍니다.
소름 끼치는 검붉은 기운, 두꺼운 검을 등에 매고 흐릿한 유령마를 타고 있는 기사가 눈에 보입니다. 얼핏 보기에도.. 아니. 확실히 시윤이 마주한다면 질 법한 적입니다.
" 흑기사는 그 이후로도 유럽에서 종종 나타나 많은 기사들과 전투를 벌이고, 패배한 기사들을 사살했다고 합니다. 이따금 승리한다 하더라도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깨어났다고 하네요. 결국.. 지금은 '검은 숲'이라 불리는 침식형 필드에 거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위험도와 특수성 때문에 지역은 봉쇄되어 있다고 하네요. "
그는 안경을 고쳐 쓰면서 얘기합니다.
" 좀... 심상치 않은 소식이긴 합니다만, 흑기사가 다시금 검은 숲을 벗어나 활동하고 있단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
"알고 말고. 가능성이 없으면 입 밖으로 내던지지도 않았지예. 크크크... 실제로, 내 중경 한가의 후원을 받기도 하고.. 자오 한 금마랑 만나가 같이 바티칸의 소동을 정리한 적 있데이."
슬쩍 떡밥을 던져준다. 그리고... 그간 생각해온 것을 말해보자.
"내 처음엔 궁금했습니데이. 황서비고도 있꼬, 베니온 아카데미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미리내고에 특별반을 만들었을까... 하고." "근디, 다니다가 이런 저런 일을 겪고 나니까 아! 하고 알게 되더라고예. 미리내. 신 한국의 제주도 말로 은하수 라고 하던데. 그 말이 참이라고." "우리 헌터들의 개개인의 힘은 약할지언정.. 뭉치면 밤 하늘을 수 놓는 은하수가 되지 않습니까? 그 중심이.... 헨리 파웰이고 말입니다." "특별반 프로젝트는 차세대 헨리 파웰을 만들어내는 거지, 용이나 사자왕을 만드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크크... 금마들은 알아서 냅둬도 영웅이 되고 못해도 준영웅이 되는 아인데.. 그럴 '운명' 을 타고난 아로는 헨리 파웰이 못되제." "그래서 내는 이해한기라. 미리내고에 특별반을 만든 이유. 모든 헌터들을 하나로 모아 은하수를 만들어야 하기에 미리내고가 최적이구나 하는 걸."
토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그와 눈을 마주본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입을 연다.
"지금 특별반은 UGN에게 협력 의뢰를 받을 정도로 이름 값을 떨치고는 있제. 다만, 그건 UGN의 입장이고. 헌터들은 우릴 고깝게 보고 있는 거 다 압니다. 그러니까 헌터들에게도 특별반의 위상을 드높일만한 일거리. 고거 따악 하나면... 우리 값어치가 헌터와 가디언에게도 증명되는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