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짐작하는 게 맞다면, 아저씨들은 꽤나 돈을 집어주겠지. 그러니까 하루 하루 큰 돈을 받아챙길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업무에 투입되기 전의 이야기. 개학하고 일을 하게 되면 퇴근 후에 또 부업을 할 체력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그게 어디 리스크 없는 일이긴 한가? 그래서 번 돈은 홈리스를 하루하루 피할 뿐인 일에 다 써버리고?
넷카페야 저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게 30일씩이나 되면 꽤 무시못할 돈이 된다. 삼시세끼 직접 해먹을 수도 없으니 다 외식이겠고. 돈을 벌어봤자 눈 녹듯 사라지겠지. 집이 없어서.
메이사가 원래 이런 애였던가, 이렇게 멍청한 자식이었나?! ...아냐. 이 정도는 아니었지. 장기전망을 볼 최소한의 시야는 확실히 있었다고. 나보다 똑똑하고 영리한 녀석인데, X발 어쩌다 이런 꼴이...
미간을 확 구기고 머리를 벅벅 긁던 나는 속이 터지다 못해 거의 윽박지르다시피 외쳤다.
"아아 제기랄...!!! 진짜!" "아저씨들 신세? 하... 그런 X같은 짓 좀 하지 마. 너 진짜 왜 이러냐? 뭐 어디 나사 빠지기라도 했어? 너 이러고 계속 살 수는 있겠냐?!" ".........집 구해질 때까지는 내 집에서 살아."
"네 말마따나 안내는 필요없겠네. 따라 나와. 일단 짐 싹다 가져오게."
오랜만에 폭발하다시피한 속을 전담으로 달래고, 담배를 주머니에 찔러넣고는 흡연실 문을 거칠게 열어제끼고 나왔다. 너무 나 혼자 앞서갔나 싶어서 돌아봤다.
예상 못한 말에 담배를 그대로 툭 떨어트렸다. 아, 몇 모금 안 빨았는데 아깝.... 땅에 떨어진 채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는 담배를 집어 아쉬운 마음을 담아 비벼 끄고, 그대로 휴지통에 쓱 넣었다. 그러는 사이에 너는 벌써 흡연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문이 꽤 거칠게 열리고 닫힌 걸 보면 제법 자극이 된 모양이네.
"....무슨 상관이냐고 진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일단 따라 나섰다. 밖에서 안 나와?하고 묻는 게 꼭, 따라가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잡아 끌고 갈 기세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할까.
중간에 역 코인락커에 들러 짐을 빼왔다. 짐이라고 해봤자 보스턴백 하나 정도. 그것도 사실 꽉 채운 것도 아니라 가방이 흐물흐물하고 있고. '짐이 그거밖에 없어?'라고 물을 것 같은 얼굴을 태연하게 외면하면서 걸어갔다. ......버리고 갈 땐 언제고, 왜 그렇게 길길이 날뛰고 집에까지 들이는 건지 모르겠네.
뭐 상관없나. 가까이 붙어서 지내는 쪽이 앙갚음 하기도 좋을 것 같으니까.
"...여기야?"
그렇게 도착한 곳은 오피스텔. ...월세 비싸보이는데, 제법 괜찮은 곳에서 사는구나. 이런 곳 월세면 츠나지에서는 집을 두 채는 빌리겠는데. 잠시 그렇게 외관을 쓱 훑어보다가 안으로 들어섰다. 몇 층인지, 어디인지 모르니까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건 전적으로 맡기는 걸로. 가만히 팔짱을 끼고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며, 한 층 한 층 가까워지는 숫자를 멍하니 응시했다.
흡연실에서 나오고 난 다음은 의외로 순순했다. 정장입은 부사수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동료들을 보다가 내 옆, 후줄근한 추리닝에 퀭한 녀석을 보면 속에서 큰 한숨이 나온다. 그런 몰골인 메이사를 보다보면 마치―
―아니야, 이런 생각은 그만 해야지.
"짐은 코인락커에 있어." 하는 메이사를 따라 역까지 갔다. 메이사의 짐은 무슨 PT센터에 가는 것처럼 가벼웠다. 옷은 매일 코인 세탁소 신세를 졌겠군. 보기만 해도 돈이 술술 빠져나가는 모양새였다.
데리고 오는 건 솔직히 홧김에 지른 이야기였지만, 이 꼴을 보니 후회는 전혀 되지 않았다.
맨션은 좋은 곳이엇다. 1LDK라는 크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도 도저히 적당한 크기의 집이 구해지지 않아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한 곳이었지. 덕분에 이래저래 쾌적은 하다만. 트레센은 히또미미 도보로 15분 정도의 거리인데다 아래에는 주상복합이라 간단한 상가도 있었고, 또 5분 정도 걸으면 역도 있고 근방에 시장도 있는 괜찮은 곳. 그래서 월세가 개비쌌다.
이사를 안 간 이유는... 내가 이전에 살던 곳이 아예 3인도 살 수 있을 정도의 주택이라 집이 갑자기 좁아지면 적응도 안 됐고. 다른 매물들은 사고가 났거나 엄청나게 열악하거나 했으며, 교통편이 괜찮은 곳이다 보니 저어 멀리 가서 사는 건 이제 귀찮아졌다. 여긴 스쿠터도 없으니까 말이지. 무엇보다 이사비도 상당한 부담이고.
...그랬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다. 넓은 집이어서 다행이라 해야 하나. 이런 자잘한 이야기들을 오디오가 비지 않게 주절거리다 보면 어느새 도착.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까지 올라가서 오른쪽 복도 세번째 집. 비밀번호는 931228이라고 일러주고선 열어보면―
뭐, 조금은 생활감 있는 집이다. 슈퍼싱글침대, 소파, 식탁 그런 있을 건 다 있는 곳. 이전처럼 쓰레기장 거실에 매트리스만 하나 툭 놓은, 그런 비주얼은 아니란 말이지.
"...일단 소파에서 자. 손님용 이불은 없거든. 짐은 아무데나 둬도 되고... 수건이나 그런 건 맘대로 꺼내 써도 돼."
"아침도 안 먹었지? 쯥, 기다려봐."
그렇게 메이사가 여기저기 둘러볼 동안 간단하게 토스트와 계란후라이, 그리고 우유 한 컵을 마련해줬다.
>>42 2인 거주용 집을 구해버려서 룸메 구해야 하나~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월급의 1/3정도 털리고 살고 있을 거 같단 말이죠wwwwww 물론 여친 사귀고 난 후에는 조금 각 재보고 있을 거 같은데... 여친 쪽에서 안 내켜할 거 같아요 역시 😏 그런 상태였겠네요 멧쨔가 월세를 같이 내주면 유우가도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남아서 깜짝 놀랄지도요 🤔 하지만 이 녀석... 돈을 쓸 만한 곳이 없을 거 같네요
그렇게 들어선 집은... 예전보다 훨씬 말끔하고 생활감있는 집이었다. ......내가 없으니까 잘 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쩐지 뭐라 하기 어려운 기분이 되었다. 츠나센에 있을 때랑은 완전 딴판. 집도 그렇고.... ....씁, 모르겠다. 소파 옆에 대충 가방을 던져두고 소파에 앉았다.
"........."
그렇게 가만히 있다보면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서둘러서 나오느라 아무것도 안 먹고 나왔지.. 라기보단 세끼를 다 챙겨먹은 것도 엄청 예전 일이지. 아침은 생략, 점심은 주먹밥 하나 아니면 칼로리바란스 한조각 정도. 저녁은 뭐, 가끔 얻어먹으면 럭키고 아니면 편의점 도시락 정도. 그래서 그... ...꽤 오랜만이네. 이런 거.
"......잘 먹을게."
식탁에 가서 앉으면 토스트와 계란후라이, 그리고 우유 한 컵이 있었다. ...맛있어 보이네. 천천히 먹으면서도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다. ...역시 잘 살고 있었잖아. 내가 없어도.. 아니, 내가 없으니까...? .....아, 이거 위험한 거다. 당장 술과 담배를 쥐어주고 달래지 않으면 무지 위험해지는 그런게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근데 그냥 이렇게 집에 와도 돼? 나 첫 출근이었는데."
괜히 다른 소리를 하면서 어떻게든 회피해본다. 적당히 속여넘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무리라면... 뭐... ....1층에 편의점 있었지. 캔맥주로 달래면 되니까 뭐.
히히... 편의점 나갔다가 들어오는 현관 비번을 까먹어버려서 못 들어오고 😿 으우... 어떡하지... 하던 멧쨔가 그냥 맨션 앞의 벤치에 앉아서 4캔 정도 조질 동안 유우가는 😑oO(얘 왜 이렇게 안 와? 짐도 다 여기 있구만...) 하면서 걱정하다 나와서 마주치는 거 봐버렸어요
😑 "전화하지 그랬냐..." 😺 "유우가 번호 바꾸지 않았어?" 🫠 "안 바꿨어..." 😺 "헤에~ 연락에 답이 없어서 난 바꾼 줄로만 알았지~"
우와 이거네요...😇 내 연락은 다 씹었으면서 다른 사람하고는 저렇게 다정한 목소리로...😿하고 훌쩍훌쩍하다 못참고 오버도즈 해버리겠지... 야호 이걸로 전부 잊을 수 있어😸했는데 갑자기 화장실 끌려가서 강제로 구에에에엑하게 되고 끌려가는 도중에 여기저기 부딪혀서 아프고 토해서 목도 아프고 기분 안 좋고 약도 술도 아까워서 화냈는데 유우가 쪽이 더 화내서 내가 누구때문에 그랬는데 너무해 불합리해😿하는 멧쨔.. 봐버렸다구요😏
개학하고 나서 몇달 동안은 멧쨔의 오버도즈로 유우가 엄청 마음고생하겠네요 😏 >>53 히히... 문 열고 들어올 때마다 😺 얼굴로 오버도즈 생각하다가 유우가가 2개씩만 남겨놓은 상비약들 다 먹어버리는 멧쨔... 유우가가 과연 이 오버도즈의 트리거를 알아챌 수 있을지 😏 이거 엄청 궁금하네요... 으히히
5월달쯤 수련회 있을 때 유우가는 선생이라 가야 하는데 멧쨔 혼자 도저히 남겨둘 수가 없어서 🙄 인솔도우미로 억지로 끌고 갈지도 모르겠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은 방 쓰게 돼서 예민해진 멧쨔를 꼬옥 껴안아주고 싶다...
>>55 사실 시니어 시즌 멧쨔가 보기엔 '그냥저냥 친한 사람인가봐~' 정도로 쾌활하고 편하게 대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하지만...🤔(그게 여친쨩의 취향이기도 해서) 멘헤라 mk2쟝이 보기에는 나한테는 매일 화내고 토하게 만들고 사과도 안 하면서... 저 사람한테는 왜 그렇게 상냥하게 구는 거야? 😺 싶고 하지만 오버도즈를 할래도 약을 구할 수가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피날때까지 긁어버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어요...
>>62 🤔멧쨔 뇌송송에 멘헤라지만.. 그래도 수련회 인솔도우미 일은 열심히 할 것 같아요 근데 이제 히닷삐 모르게 조용조용히 할 거 하는 느낌 + 신경 쓸 일 많아서 양쪽 다 날카로워짐 때문에 삐걱거리고 충돌하고 그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어요🤔
멧쨔는 멧쨔대로 히닷삐가 자꾸 긁는 말(생일이라던가 뭐 그런거)하고 여친쨩한테 상냥하게 구는 거 보고 으윽 도망치고 싶어 행복스파이럴 필요해 그치만 인솔자 입장이니까 참..참...참아.... 하면서 나름 길?게 참다가 결국 터진건데 그렇게 안 좋은 말 들은거니까...😏 나도 열심히 참았다고!하는 억울함(?)도 있을거같고 애초에 내가 이렇게 된 건 전부 너 때문인데😾 하고 화내고 비꼬고 싸우겠지...히히히......
>>64 예전에 바닷가 해변에서 나데나데해주고 메디폼 붙여주던 히메이가 이젠 서로 싸우고 있다니 이거 진짜 룽한데요...🥹
유우가... 멧쨔가 😾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라고!" 소리 들으면 엄청 충격먹은 얼굴이었다가 멧쨔도 아차 싶어서 유우가 손 뿌리치고 휙 가버릴 거 같단 말이죠
유우가는 전혀 멘헤라 인자는 없으니까 짐작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직구로 들어서 어벙벙...한 상태로 수련회 돌아올 때까지 있을 거 같아...🫠 멧쨔는 당연히 뒷풀이 안 갈 거 같고 🤔 유우가도 기분이 영 아니라서 참여 안 하는데 여친쨩이 "공짜술인데 안 미셔? 웬 일이야~?" 하고 붙잡고 말 붙이는 짧은 틈에 멧쨔는 먼저 집으로 휙 가버리고...🤭
유우가가 집에 뒤늦게 들어가자마자 본 건 근처 상가에서 약 사가지고 올라가서 먹어치우고 쓰러진 멧쨔였다 하는 전개를 봐버렸어요
"상관 없어, 애초에 교육기간인데다 어차피 네 사수는 나니까. 이수 확인만 내가 하면 그만이라는 거지." "...사실 우리가 그때 봤던 건 완전 대략적인 거고, 더 이것저것 알려줘야 하는 게 맞긴 한데. 일단은 이게 더 급했으니까... 사소한 안내 같은 건 나중에 하자고."
오물오물 먹다가 주변을 둘러보는 메이사. 예전이라면 훤히 보이던 머릿속이 이제는 영 보이지 않는다. 이전에는 멍청하진 않고 그저 노련함이 부족한 녀석이었다면, 지금의 메이사는 어쩐지 좀, 멍청... 그래. 멍청하다고밖에 표현이 안 된다. 중앙 라이센스 따기까지 한 녀석이 왜 이렇게 구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머리 안 좋은 나한테까지 멍청하단 이야기를 들을 정도면 좀 긴장해야 한다고, 메이사.
그렇게 걱정하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적거리며 먹다가도 멍때리길 시작하는 녀석.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식탁에 놓여있던 여러 병들 중 갈색으로 찰랑거리는 걸 내밀었다. 계란후라이에 뿌려먹을 간장.
"...그래서, 왜 중앙으로 온 거야?" "달릴 것도 아니고, 그래서 커리어를 준비한다고 하면 역시 츠나센이 편하지 않아? 다 아는 얼굴이고, 이런 성가신 교육 받을 필요도 없고."
눈 앞에 내밀어진건 간장이 담긴 병이었다. 씹는 걸 멈춘 입 안에 느껴지던 무거운 것들을 삼켜버리고 손을 내밀어서 집는다. 그리고 그대로 계란후라이 위에 툭툭.
"—11착. 10착이었던 애랑은 대차로 벌어져선 결승선에 기어서 들어왔지." "사바캔 1착하던 애가 일반전에서 그런 착순까지 내려가버렸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잖아?" "하야나미에 밥 쳐먹으러 오는 녀석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짜증나고, 이런 실적으로 잘도 트레이너 하겠다고 츠나센에 얼굴 들이미는 것도 웃기겠다 싶어서."
툭툭 떨어지던 간장방울은 점점 모여서 계란후라이 위에 웅덩이를 만든다. 새까만 웅덩이는 점점 커지고, 커져서 흘러넘친다. 아하하. 완전 새까맣네. 이거, 몇 번인가 망설이다가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릴 때마다 보던 새까만 밤바다 같이 보이기도 하고. 계란후라이에 간장을 뿌렸다기보다 접시에 부은 간장 위에 계란후라이를 올렸다는 말이 어울릴쯤이 되어서야 손이 멈췄다.
"........도망친거지. 누구처럼."
아, 젠장. 이딴 거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는데. 더 이상 토스트건 우유건 계란후라이건 먹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이런 간장투성이 계란후라이가 아니라 산더미같은 수면제와 차가운 캔맥주라고. 전부 잊어버리고 자고 싶어. 도망치고 싶어. 지금 당장. 절반 정도 먹다 남은 토스트를 내려놓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아— 위험해. 위험해위험해위험해당장필요하다고지금당장빨리.
도망치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큰 소리를 내며 의자가 뒤로 넘어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소파 옆에 던져둔 가방으로 향했다. 옷가지나 간단한 생필품보다도 더 많이 들어있는 약들을 꺼내려다 멈칫했다. ......맥주가 없잖아.
"...1층에 편의점 있었지? 잠깐 갔다올게."
그렇게 말하면서 현관으로 향했다. 지금 수중에 있는 돈으로 3캔 정도는 살 수 있을테니까.
먹기 좋게 구워낸 반숙 후라이 위에 툭툭, 간장이 떨어진다. 툭, 대차가 벌어져 꼴등으로 들어왔다던가. 투둑, 그래서 체면이 설 수가 없었다던가, 툭, 하야나미에서 일하는 시간 조차 스트레스로 다가왔다던가. 주륵, 그 좁은 마을에서 제대로 망신당해서, 트레이너를 시켜달라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납득가는 이야기였다. 하기야 11착까지 하던 녀석이 트레이너를 한다고 한대도, 거기에 일을 시켜주는 사람은 드물다. 어지간히 온정적인 것 아니고서는. 학원장은 그런 점에서 꽤 괜찮았던 사람이지만 중요한 건 자기의 마음이지. 11착 그것도 대차로 기어들어온 트랙에서 누군갈 지도하고 싶지는 않을 거다. 끔찍한 기억만 떠오르겠지. 우마무스메들이 트랙을 달릴 때마다 표정이 썩어들어가던 나처럼.
넌 정말이지 나를 빼닮아간다. 그래서 도망쳐왔지만,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데서도 마음 깊숙한 곳부터 닮아왔다.
정신차리고 보니 어느새 계란후라이는 간장에 다 잠겨있고, 메이사는 먹던 것도 내려놓은 채 순식간에 문을 열고 내려갔다. ...더 먹을 생각도 없어보였다. 입맛 떨어진 어린 애가 장난을 쳐놓듯 해놓은 계란후라이를 처리하고, 먹다 남긴 토스트는 그냥 내가 집어 먹었다. 나도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나온 건 마찬가지라.
의자도 제대로 세워놓고, 설거지까지 하다보면... 메이사가 던지고 나간 말이 가슴에 걸린다. 누가 멍을 누르는 것마냥 어쩐지 아팠다. 사실이라서 더.
"...그나저나 이 녀석."
내려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 올라와? ...설마. ......설마. 문을 못 열고 있다던가.
겉옷을 챙겨입고 내려가보니, 메이사는 건물 앞 벤치에서 궁상맞게 술을 까고 있었다. 벌써 몇 캔은 발치에 굴러다니는 채로.
"이야..."
아저씨들이랑 놀아요, 담배도 센 거로 펴요, 술도 생수처럼 마셔요. 개판이네.
메이사의 옆자리에 앉아 한 캔 따 마셨다. 후룩 한 모금 맛 보고 나니, 어라. 아사히가 아니네 이거.
담다보니 8캔 정도 사버렸다. 괜찮아. 술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모자란 것보다 남는 게 좋지. 남으면 내일 마실 수도 있고. 그렇게 맥주만 가득 담은 봉투를 들고 들어가려다가 문득 생각났다. ....번호, 못 외웠어. 라고할까 귀에 영 안 들어와서. 여러모로. 무의식중에 핸드폰을 꺼내다가 멈칫하고, 도로 집어넣었다. 간절하게 보내던 연락도 닿지 않았었으니, 번호를 바꿨을 수도 있겠지. ....차라리 번호를 바꾼 쪽이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아. 젠장. 편의점에 들리느라 뒤집어쓴 얼굴 뒤로 또 다시 울컥거리면서 그게 올라온다. 약은 전부 위에 있을텐데. 근처에 약국은 안 보이고, 당장 사러 가기엔 주변 지리도 전혀 몰라. .....일단 술이라도 마시자.
건물 앞 벤치에 대충 앉아서 한 캔 꺼내서 깠다. 조금 다급하게 들이킨다. 탄산과 보리향, 그리고 약한 알코올의 맛. ....돈만 되면 좀 센 녀석을 사서 마셔도 좋았을텐데. 그렇게 한 캔, 두 캔... 어느덧 네 캔째 마시고 있다보면 맨션에서 누군가가 나온다. 오가는 사람이야 많지만 이렇게 술판 벌이고 있는 내 옆에 와서 앉을 사람은 별로 없지. 자연스럽게 한 캔 가져가서 따는 걸 보고도 별 말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쪽에 가까웠다. 빨리 마셔서 그런지 슬슬 취기가 돌고 있어서.
"......아사히 별로 안 좋아해. 누가 자꾸 생각나서....."
젠장. 잊으려고 마시고 있는데 말이지. 방해하듯 옆에서 쿡쿡 찔러대는게 기분이 안 좋다. 그냥 술 정도로는 역시 무리야. ....전부 잊어버리고 자고 싶어.
".....약 먹어야 돼... 올라갈래..."
술을 마시는 걸로는 모자라서, 나도 모르게 긁고 있던 팔뚝은 이미 새빨갛고,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따갑고 아프다, 바람이 닿아서 쓰라리다. 하지만 아프니까 생각하기 싫은 것들에서 도망칠 수 있어.
에비스의 맛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냥 뭐랄까, 사람마다 선호하는 풍미가 다르잖아. 네 입맛 정도는 나랑 달라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예전부터 달달한 걸 좋아했던 메이사 프로키온을 떠올렸다. 단 거 좋아하는 사람은 술 좋아할 일이 없다던데 이렇게 냅다 마시는 건... 어휴. 복잡해지는 생각을 맥주로 꿀꺽 꿀꺽 넘기려니, 또 가슴팍을 퍽 때리고 지나가는 말이 있다.
그거 어딜 봐도 나지? 그야 난 아사히 공장 기계 하나는 내 돈으로 마련해줬을 정도로 마셔제끼니까. 아사히만 봐도 생각나서 굳이 다른 맥주를 선택하다니, 이 정도로 미움 받는 건 나밖에 없겠지.
...어쩐지 넘기는 맥주 맛이 썼다. 이래서 에비스는 별로라고.
메이사가 긁적거리는 소리가 어스름한 맨션을 스치고 지나가고, 달짝지근한 봄바람을 안주삼아 캔을 제법 비우자 메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 먹으러 가야 한다고.
짐 안에 약이 있던 건가. 그보다 어디 아픈가? 그래서 예민했던... ...아, 생리일지도.
메이사가 발치에 뒀다가 두고 간 캔쓰레기들을 주워선 봉지에 담았다. 봉지 안에 든 새 캔과 헌 캔을 다 합쳐보니 8캔 정도를 샀다. 그걸 다 혼자 마실 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지만. 냉장고에 몇 캔 넣어놓고 당금당금 마시겠지.
현관 번호키 앞에서 멀뚱히 서있는 메이사. 뒤에서 느리게 번호를 눌러줬다. 경비 버튼, 1403호, 931228.
"내 생일이잖아. 벌써 까먹었냐? 다음엔 제대로 혼자 누르고 들어오라고."
자동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메이사를 살핀다. 표정은 아무리 봐도 좋지 않았다. 생리통이 심한 편이던가... 내 기억으론 컨디션이 좀 안 좋아지긴 했던 거 같은데. 요즘 환경 변화 때문에 더 아픈지도 모르지. 고생하는구만.
눌러지는 숫자를 보자 또 울컥 올라온다. 12월 28일. 아니, 아니 설마. 그냥 우연히 닮은 숫자겠거니. 바보같이 그렇게 우기고 있는 나를 비웃듯이 네가 직접 태연하게 말해준다. 생일이라고. 아, 그래. 생일이지. 클래식 시즌에는 울면서 목도리를 놓고 나왔던 날. 시니어 시즌에는, 울지 않고 제대로 축하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해서 찾아갔지만—
—담배 반 갑과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네가 사라졌던 날.
까먹을 리가 없지. 오히려 억지로 잊으려고, 어떻게든 그 기억의 페이지를 찢어내서 구기고 태워버리려고 이렇게 온갖 짓을 다 하고 있는데도, 찢으면 찢을수록 더 선명하게 새겨지고 각인되는 그게, 여지껏 나를....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그저 팔만 긁적였다. 아니, 더 이상 긁는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집요하게 쥐어뜯고 파내는 동작으로 바뀐지 오래인 그것은 어떻게든 페이지를 찢어버리려는 나의 발악이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성공하진 못했지만.
팔에서 느껴지는 쓰라림으로도 모자라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다. 현관문 앞에 도착하자 이번엔 직접 눌러보라는 말이. .......아, 그렇구나. 이런 꼴이 된 나를 그렇게 비웃는거지. 이건 전부 너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도. 으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물어뜯은 입술에선 비릿한 쇠맛이 났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른다. ....보기 좋게 잘못 누른 것이 두어번. 세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문을 열고, 누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가방 앞으로 향해, 아까 집어들려다 말았던 약들을 꺼낸다. 손바닥의 절반을 채운 형형색색의 알약들. 하지만 부족하다. 보통 손바닥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먹었으니까..... 초조하다. 당장 해야하는데, 당장 도망쳐야하는데....
"....상비약... 어딨어...?" "아무거나.. 빨리....."
반밖에 차지 않은 손 위의 약들을 꽉 쥐고, 초조한 목소리를 감출 생각도 없이 그렇게 물었다. 남은 손으로는 머리를 쥐어뜯을듯 쥐었다가 네가 든 봉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일단 맥주도 들고 있어야 바로 먹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