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태휘는 부검 참관을 위해 안티스킬 산하 법의학 연구소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다행스럽게 주차공간이 넉넉해 입구 근처로 차를 댈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주차 자리를 찾아 한참을 뱅뱅 돌아야 했겠지! 차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풀어 나온 바깥공기가 놀랄 만큼 상쾌하다. 어제 비가 내렸기도 하고, 곧 여름이 다가오려는지 바람결에 습기가 살짝 느껴지는 날씨이기도 했다. 오늘이 지나고 여름이 되면 여기 사람들은 곧 끝장나는 시체가 들어오는 계절이라며 호들갑스러운 비명을 질러대겠지! 그리고 한 번 지른 비명을 뒤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할 것이다. 어차피 일상일 테니까. 입구로 들어가던 중, 멀리서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는 무리가 보였다. 그중 하나는 오늘은 쌀 종류를 못 먹겠다며 토로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앳된 얼굴을 보니 이제 막 들어온 조수들인 것 같다.
사람들은 연구소가 어둡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깔끔하다. 시체가 있는지 없는지의 유무를 제외하면 다른 연구소와 다를 바도 없다. 태휘는 말끔한 신소재로 이루어진 벽과 복도를 지나, 안티스킬로 첫 발령이 난 이후 자주 마주하게 되는 강 박사의 사무실 앞, 자그마한 비서실의 문을 노크했다. 비서실로 들어서자 홀로그램으로 오늘의 부검 스케줄을 체크하던 조그마한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일자리 대란으로 고통받는 요즘 세대의 사람들 속에서 자리를 찾은 운 좋은 사람이다. 요즘엔 AI 비서를 쓴다지만, 강 박사가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사람 냄새는 나야 한다는 완고한 고집을 가진 덕분에 이렇게 일할 수 있을 테니까.
"좋은 아침이에요, 태휘 씨!" "좋은 아침입니다." "소장님은 먼저 내려가셨어요. 어딘지는 아시죠?" "에이, 알죠. 제가 여기 온 지 오래됐는걸요! 그런데, 새로 온 사람들이 있나 봐요?" "인턴이에요. 소장님께서 구더기 제거를 맡겼는데, 그새 담배 피우러 가셨나 봐요?" "걔넨 오늘 정시 퇴근은 글렀네요. 점심은 어떻게 먹으려고 그런대?" "태휘 씨는 아침 드시고 오셨어요?" "한국인이라 쌀밥을 먹고 왔네요. 점심에 쌀알 보고 놀랄 일은 없겠어요." "에이, 이미 여러 번 보셨으면서!" "그 아이들은 아니죠." "그렇죠, 뭐! 하하,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태휘는 비서실을 나서며 오싹한 농담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째 날이 갈수록 강 박사님이랑 똑같아진다니까! 이건 불평이라도 좀 해야겠다. 급한 연락이 아니면 받지 않게끔 핸드폰의 설정을 켜둔 태휘는 지하로 내려가 두 개의 부검실 중 하나에 들어갔다. 강 박사의 조수 중 하나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조수는 입술을 달싹이며 기도를 마치고는 시선을 마주했다.
"아, 오셨어요? 소장님도 곧 오실 거예요." "오늘도 기도해요?" "네. 이번에 온 시체가 좀…… 안타까워서요." "시체는 항상 안타깝지요."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다르니까요."
태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은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갔을 생명이 지는 건 안타깝고 끔찍한 일이다. 분명 그 사람은 내일의 일을 생각하고, 꿈을 꾸었을 텐데. 아무리 일과 사적인 감정을 분리하려 애쓰는 태휘도 시체를 볼 때면 죽기 전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떠올리고 감상에 젖게 된다. 특히 시체의 나이가 어릴수록 그 감정은 배가 됐다.
"내가 늦었나?" "아뇨, 아닙니다." "아, 소장님. 방사선이랑 CT는 끝냈습니다. 시신은 옆방에 뒀고요." "잘 했어. 오늘은 칼퇴근 좀 해보자고. 태휘 씨는 이리 오면 됩니다."
옆 부검실 수술대를 본 태휘는 이를 악물었다. 마스크를 끼고 준비를 하던 강 박사는 태휘의 정의감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시체로 오싹한 농담을 하는 강 박사나 여타 연구소의 식구들도 쉽게 농담을 꺼낼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채 고이 누워있는 시체는 창백하고 매끈매끈한 것을 빼면 잠든 것처럼 보이는 어린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상도 여기까지다. 꿈결을 아주 오랜 시간 걸어 언젠가 새로운 문을 열어야 하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독하게 나가야만 한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시체라서 치가 떨리는군요." "당연하게도, 인첨공 내부에서 시랍화 된 시체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일 겁니다."
강 박사는 시체를 살폈다. 조그마한 아이는 130cm 정도 되어 보였고, 모발의 색을 보니 커리큘럼을 받은 아이는 확실하다. ID 카드로 신원을 대조할 수 있으리라.
"물론 불포화지방산이 포화지방산으로 변하는 것은 대략 2년에서 3년 정도니, 이 아이가 대략 5년 전에 이곳에 왔다가 죽었다면 충분하기야 하겠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인 게 상관이 있습니까?" "물론이죠! 시랍화가 되려면 흙이 상당히 습하거나, 아예 진흙이라 시체가 썩지 못할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인첨공에는 달리 흙이 습하거나 진흙밭은…… 없죠?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은." "그렇죠."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늦어도 5년만 지나면 백골만 남는단 거죠. 다들 벌레니 미생물이니 하는데 시체는 장내세균 효소에 의해 부패합니다. 이상적으로 시체 온도는 30도까지 올라갈 정도고요." "진흙이어야 한다면, 뭔가 차단된다는 겁니까?" "예. 진흙이나 습한 흙은 그 습기가 냉각제 역할을 해서 효소의 활동이 멈추고, 지방 분자는 떨어져 나오죠. 그러면 이렇게 시체 피부밑에 흰 덩어리로 굳는 거고요. 쉽게 말하면 시체 지방이 갑옷처럼 시체를 둘러싸는 겁니다." "그렇다면 육안으로 사망원인이 뭔지 알아낼 수 있습니까? "음, 외상의 흔적이 명확히 있다면 그렇죠." "안은 멀쩡하지 않은가 봅니다."
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체의 일부를 장갑 낀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속이 텅 빈 소리가 났다.
"내부는 햄버거 패티랑 비슷해요." "다진 고기요?" "네."
태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오늘의 메뉴를 수정하기로 했다. 젠장, 햄버거는 물 건너갔다. 쌀밥도 물 건너갔고, 면은 두 배로 싫다. 굶는 수밖에 없겠구나.
"안은 내장기관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 섞여있거든요. 조직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이죠." "그게 다행인가요?" "보기에 외관은 멀쩡하니 신원은 확실히 나올 테니 말입니다. 일단 보기에, 육안상으로는…… 10대 초반이지 않습니까. 운이 좋으면 지문 채취가 가능하고, ID 카드도 조회할 수 있겠죠. 잠시만요."
얼굴과 손에 홀로그램 스캐너를 스치는 박사의 행동과 함께, 태휘는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앳됐다. 시체의 볼에는 매력점이 있었다. 손과 발도 작고, 아마 살아있었다면 또래와 어울리며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며 찬란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ID 스캔이 되네?" "뭐라고요?" "이름은 곽유진. ID 마지막 갱신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아……." "무슨 일입니까?" "실종신고 이력이 있고, 소속이 적혀있습니다." "소속이요? 어딥니까?"
강 박사는 침음을 흘렸다. 기술력의 발전이 실로 두려웠다. 거대한 내막을 알아버릴까 두려운 마음도 덜컥 치솟은 탓이었다. 연구소에서 쓰다 버린 건 아닐까? 그런 비윤리적인 연구소는 넘쳐나니까. 하지만 더 큰 비극이 찾아오자, 강 박사는 묵직한 혀를 떼지 못하고 한참을 입을 다물었다가, 겨우 쉰 목소리를 뱉었다.
"필리 데 솔리스. 태양의 아이들로도 불리는 차일드에러 후원 재단입니다." "아이가, 차일드에러란 소리군요." "예. 그쪽에서 실종 신고를 했었는데 찾지 못해서 장기 실동 아동으로 처리됐고…… 안타깝게도, 살아있었더라면 고등학교 1학년이겠군요." "……혹시, 이 재단에게서, 가능성을 봐도 됩니까?" "큰일 날 소리! 여기는 데 마레랑 동시에 설립된 곳에다, 연결 되어있어서 그럴 곳이 못 됩니다. 당장 우리 조수도 이 재단에서 후원을 받아 여기까지 왔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외부에도 초점을 맞춰야겠군요. 일단 부고 소식부터 전하고."
태휘는 시체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일련의 부검 과정이 끝나고, 태휘는 재단에 찾아가 부고 소식을 전했다. 무릎을 꿇고 오열하는 윤 씨를 내려다보며 태휘는 다짐을 되새겼다. 내가 너의 죽음을 꼭 밝혀주마. 누가 너를 그렇게 차가운 땅에 파묻었는지, 그 죄의 값을 치르게 해주마.
서녘으로 기울어가는 태양을 따라 늘어지는 그림자가 연구실 안을 천천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모니터의 불빛을 난로 삼아 자판을 두드리는 손동작은 규칙적이고 정갈하다. 타닥 탁 타닥. 키보드 소리는 벽난로에 던져 넣은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데다가 내부 온도가 워낙에 서늘하니 한순간 겨울이 먼저 찾아왔구나 하는 착각마저 든다. 정인은 워드 프로그램의 하얀 바탕에 어느새 빼곡히 채워진 그래프와 활자들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훑어내린 뒤 저장 단축키를 눌렀다. 그리고 클라우드와 USB에 각각 파일을 백업한 후,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그새 붉은 해는 건물의 숲 너머로 온전히 저문 탓에 모니터 불빛이 사라진 연구실은 그야말로 암실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곧 퇴근 시간이니 구태여 불을 켤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때문에 정인은 그대로 의자에 앉아 5분의 여유 동안 무념무상의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반짝. 스마트폰의 직사각형 화면이 갑작스럽게 빛을 발하지만 않았더라도 그의 계획은 완벽히 이행되었을 것이다. 정인은 내리감았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올린 후 장시간의 작업으로 인해 뻣뻣해진 어깨를 들어 책상 위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래서 뭐냐. 택배? 아니면 스팸? 정기 구독 결제 알림? 셋 다 달갑지 않은데. 이미 집중은 깨져버렸으니 무시할 명분 또한 없지만서도. 그러나 가볍게 혀를 차며 잠금화면의 팝업 알림을 보면 차라리 앞서 예상했던 세 가지 중 하나인 게 이보다는 기분이 덜 더러웠을 거라고 확신하게 된다. 익숙한 전화번호 아래, 연달아 붙은 세 개의 메세지가 띄워져 있었다.
[엄시현이다] [얼굴 좀 보자] [(주소 - 3학구 어딘가의 카페)]
인천첨단공업단지의 저녁은 화려하다. 등대처럼 불 꺼지지 않는 건물들에 각종 네온사진, 가로등 따위로 빼곡한 도시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어둠이 깔린 뒤에는 유난히도 반짝인다. 단화 신은 발이 잘 정돈된 길을 따라 걸으면 손 안의 모바일 지도가 '나의 위치'를 초 단위로 갱신하며 길을 안내하고, 덕분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건 수월했다.
"여기."
저를 부르는 게 분명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후, 내뿜는 담배 연기로 눈 앞이 부얘진다. 안경 렌즈에 가게의 전광판 불빛이 반사되어 시야가 한순간 흐려졌다가 돌아온다. 그리고 모든 방해물이 걷힌 자리에는 반갑지 않은 낯짝이 삐딱한 자세로 자리잡고 있었다. 은색 눈동자에 회빛 도는 푸른색으로 겉만 덮은 머리카락. 카페가 아닌 옆의 어둑한 골목에 움푹 들어가 선 채 이리 오라며 손가락 까딱이는 폼만 보면 지나가던 가련한 직장인 삥 뜯는 양아치 한량 새끼라고 덤터기 씌워도 의심받지 않을 것만 같다. 정인은 노골적으로 인상을 구겼다.
"카페랑 길바닥도 구분을 못 하실 줄은 몰랐군요." "나랑 얼굴 마주보고 뭐 마시면 체할까 봐 배려해준 거다, 새꺄." "얼굴에 커피 맞을까 봐 무서우셨던 건 아니고요?" "요즘 드라마 뭐 보냐? 그건 거를란다."
짧고 불편한 침묵 사이로 쓰고 텁텁한 담배 연기 냄새가 스며든다.
"그래서 왜 불렀습니까? 8년 만에 드디어 자수할 생각이라도 드신 겁니까? 서까지 동행해드려요?" "윤정인 말하는 거 봐... 선배가 후배 근황도 못 궁금해 할 일이냐?" "8년 넘게 감감무소식이었으면서, 이제 와서?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 바꿨는데." "목화고 연구소 들어갔다며." "내 뒷조사 했습니까?" "멀쩡히 잘 살고 있지?" "내가 잘 살든 말든 당신이 X발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군요." "상관이 왜 없어? 너 떠날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내가 조져버린 연구소 10년 20년 걸려서라도 재건하겠다고 못박고 나갔잖아. 근데 갑자기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튀어나오네, 그 윤정인이. 안 쎄하고 배겨?" "한순간에 직장 잃고 발붙일 곳 없이 떠돌다가 흘러들어간 사정의 어디가 쎄한 겁니까. 시비 걸려고 부른 거면 이만 갑니다."
애초에 뭘 바라고 여길 나왔나. 저 치가 죄책감에 못 이기고 폐인이라도 되어 자신 앞에 무릎 꿇기라도 바랐던가?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는데, 멍청하기는. 정인은 스스로의 충동성에 치를 떨며 몸을 돌렸다.
"윤정인아."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는데. 잠깐 걸음을 멈춘 정인은 정확히 3초 뒤 이를 격렬하게 후회했다.
"조용히 살아라.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냥 다 잊고 흘러가. 거기서 배운 거, 듣고 익힌 거, 소장님도. 인첨공도 벌써 15년이야. 그때 하던 거 지금 다시 해 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순간적으로 뇌에서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시현은 제 멱살을 틀어쥔 정인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굴러떨어진 연초가 상대의 신발에 짓밟히는 꼴을 목격하고 얕은 한숨을 토해낸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이 옷자락을 무참하게 구기는 감각이 선연하다.
"엄시현 씨가 할 말입니까, 그게?" "아니 일단 좀 놓고." "도대체 왜 자꾸 혼자서 깨끗한 척입니까? 당신은 우리랑 뭐 크게 달랐습니까? 모두 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던 시즈의 연구원이었잖아요. 그런데 대체 왜!" "정인아, 좀!" "지금도 별반 다를 것 없죠. 정도의 차이만 있다 뿐이지 인첨공의 연구원은 다 비슷비슷하게 애들 쥐어짜서 성과 올리는 직업인 것을요. 어디에서 근무하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보나마나 당신도 여태 연구직일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있습니까?"
위선자. 악에 받친 한마디를 듣는 순간 시현은 얼굴에 침이라도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순수한 죄질로 따지면 당신이 우리보다 더하죠. 살인자 아닙니까. 엄시현 씨는. 그런 주제에 나한테 똑바로 살라고?" "......야. 사람 말 좀 들어라. 아니라고. 내내 아니라고 하는데 좀 믿어줄 수도 있잖냐, 제발." "내가, 당신을?"
헛웃음과 함께 멱살 쥔 손이 떨어져 나갔다. 시현은 잔뜩 구겨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정인을 바라본다. 등불을 등진 검은 머리의 연구원은 어둠에 푹 잠겨 표정을 읽기 어렵다.
"어디서 뭘 보고 들어서 나한테 이딴 식으로 연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하지 마십시오. 관심도 끄고요. 아,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내 성과에 입 댈 생각일랑 하지도 않는 게 좋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