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과 포화. 죽어가는 잔불의 날숨. 단말마의 외침. 눈 감으면 손 안에 전해지는 도병의 감촉과, 쇠와 살 맞닿으며 자아내는 심렬이 여지껏 선연하다. 살심과 해상害想으로 가득한 전운의 공기라면 언제나 간절히 바라 오고 있다.
─감았던 눈을 떴다. 눈가죽이 덮이고 뜨이는 찰나, 짧게 스친 감몽을 깨면 주변 모두 신에게 탐탁잖은 것들뿐이다. 어디선가 흐르는 노랫말과 악기 소리, 흥에 겨운 고성, 먹거리와 기념품 따위로 서로 손 안이 가득하고, 너도 나도 즐기고 떠드느라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떠들썩한 자리는 반갑지 않다. 보다 적확하게는 제 신사神思 지독히 고양하게끔 하는 흥취 없이 그저 떠들썩하게 흥성이는 소음과 인파가 싫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무신 결국 홀로 사는 생물인지라 전장이 아닌 북새판 거닐기는 성미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는 용맹의 관념으로 이루어진 신이므로, 시작부터 탐탁잖다 여기면서도 미리 나눈 약속만은 정확히 지켜 나온 상태였다. 북적이는 인파 사이로도 화려한 머리칼 눈에 띄었으리라. 아래로 조여 묶은 머리는 평소와 같지만, 새붉은 머리와 달리 걸친 의복은 회빛에 푸른색 섞인 듯 차분한 냉색이다. 단출한 몸으로도 걸음걸이 숙엄했다, 멀리에서 폴짝이는 개구리를 보자마자 성큼 빨라졌다. 그러잖아도 개구리 같은 녀석이 저리하고 있으니 썩 잘 어울린다 싶다. 달갑지 않다는 표정으로 적당히 사람 사이에 섞여 있었던 모습 언제였냐는 듯 무신은 길 가로막는 군중들 요령 좋게 헤쳤다. 그리하여 조막만한 녀석 앞까지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 삽시였다. 가까이에 서 꼬맹이 녀석 모습 가만히 살펴보는데, 머리에는 꽃 달았고 오늘은 웬일로 입은 옷 빛깔도 달라 보인다. 그런 점들 모두 알아보았으면서도 그렇단 티 내지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별다른 인사나 평범한 한 마디조차 없이 무심하기 짝 없는 반응부터 가장 먼저 들이닥쳤다. 한껏 공들였을 까만 머리 위에 한쪽 팔 턱 올리더니, 동글동글한 머리통이 팔걸이라도 된다는 듯 편하게 팔 걸치기나 하는 것이다.
"분요해서 잘 들리지도 않건만 무얼 그리 불러 대."
오늘을 위해 화사하게 꾸민 소녀에게 하기엔 가히 참담할 만치의 대응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무신 한 술 더 떠서 아예 그 위에 무게 싣고 턱까지 괴려 들기까지 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찌그러들었다. 머리 위에 팔이 턱 하고 올려진 건 기본이요? 아니 그냥 올려진 것만 이 아니라 팔이 걸쳐졌다. 팔만 걸쳐진게 아니다. 올려진 턱의 무게를 뼈져리게 느낀 어린 요괴의 입에서 끼에에에에에에엥 소리가 온 천지에 울려퍼졌다. 개구리 아파하는 소리 퍽 듣기 좋은 소리다. 아 물론 평소에 잡아먹는 사람 입장에서 말이다. 그래도 그와중에 주인에 대한 애정은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 이 어린 요괴 마주 보듯 돌아서서는 그대로 제 주인을 꼬옥 껴안으려 하였다. 머리가 끼에에에에엥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무게 실은채 괴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껴안는 순간 낯빛만큼은 해맑다.
”후히히히히히히 보고 싶었사와요 카가리 신님. “ ”아야나 카가리 신님 엄청 엄청 보고싶었단 것이와요. 카가리 신님은 안 그러시와요? “
꼬옥 껴안으려 한 다음에 가리켜 보인 것은 제 입술이다. 오늘을 위해 한껏 관리한 것인지 유난히 탱글탱글하고 연분홍빛으로 빛나고 있는 입술. 잘 보면 역시 복숭아향이 은은히 나는 립밤을 바른 것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다. 초롱초롱 거리며 바라보는 눈길은 뭘 기대하고 있는지 빤히 보인다.
아니 근데 저기요. 여기 보는 눈 많지 않습니까?
”카가리 신님. 카가리 신님. 저희 어디부터 구경할까요? 아니면~? “
구경을 먼저 하길 원하는지 다른 걸 원하는지, 빤히 바라보는 눈길 집요하다. 그러면서도 지독하리만치 맑은 눈빛이다. 어린 아이의 눈빛이란 이처럼 순진해 보이기 짝이 없다. 팔을 걸치지 않은 쪽의 팔에 팔짱을 끼려 하며 어린 요괴 물었다. ….최대한 눈을 맞추려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