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했대.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거야? 귀에 바람 부는 걸로 잘못했단 말이 나오다니 대체 무슨 꿈을 꾸는 거냐구 유우가~ 히죽히죽 웃는 얼굴로 내려다보다가 다시 상체를 기울였다. 아슬아슬하게, 맞닿기 직전까지 다가간 귓가에 대고 천천히, 느릿하게 말을 꺼냈다.
"뭘 잘못했는데에?"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번 더 바람을 후~ 그나저나 유우가, 체르탄을 엄청 끌어안고 있는데. 체르탄 얼굴이 꾸깃해졌다고? 어깨너머로 비치는 꾸깃꾸깃한 체르탄을 보다가, 정말 뜬금없지만 무지 좋은 생각이 났다. 오호오, 해버릴까나. 해버릴까? 해버리자!
"무슨 잘못인진 모르겠지만, 말로만 사과하면 안되잖아?" "이건 벌을 줘야겠네~"
유우가가 깨어있었다면 꿀밤 한 번 먹었을만한 대사긴 하지만, 유우가 지금 자고 있죠? 깨지도 않죠? 아무것도 못하죠? 그래서 마음놓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슬쩍 다시 다가가서... 이번엔 귀에 바람을 불어넣는 대신에, 유우가의 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살짝 뒤척이면서 드러난 뒷목이 마침 딱 좋아보이는데. ...그, 그치만 역시 좀.. 좀이 아니라 많이 두근거리는걸. 슬쩍 문가로 시선을 뒀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다시 입을 떼었을 땐 뭐, 그냥... 꽤나 얼룩덜룩해졌네. 너무 많이 했나. 잠시 머쓱함을 느낀다. 하지만 조용한 부실과 잠들어 있는 유우가를 앞에 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은 그 정도로 가라앉지 않아서, 뒷목에서 다시 귓가로 다가가서는 이번엔 귀를 슬쩍 핥아보기도 하고, 귓볼을 가볍게 우물거리기도 해본다. 으히히. 무진장 하면 안 되는 짓 하는 느낌이라 더 두근두근한데.
".....엄청 나쁜 짓 하는 기분. 에헤헤."
...뭐 그야, 잠든 사람한테 이런 거 하는 건 나쁜 짓이 맞지. 그치만 나 유우가를 너무 좋아해서 어쩔 수 없었어(?)
메이사의 10연속 귓바람불기 공격에 머리가 흐물흐물. 메이사는 기어이 발로 허벅지를 꾹꾹 눌러가며 근육결을 파헤치며 메슥가키를 넘어선 소악마 메이사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살짝 때가 탄 흰 양말로 잘근잘근 허벅지를 누르고, 슬금슬금 올라오는데...
"으우... 그, 그만해..." - 에~ 싫은거얼~ 나는 해도 되지만 유우가는 하면 안 되니까 이런 거💕
귓가를 낼름하며 속살거리는 목소리. ...그렇게 농밀서O버스 메이사에게 엄청 희롱당하는 꿈을 꾸고 깨어났다. 눈을 꿈벅거리며 부비고 안경을 고쳐쓰면서 꿈은 전부 잊어버렸지만, 어쩐지 뭔가가 쌓여있는 듯한 뭉근한 기분과 함께 일어나 개운치가 못하다. 찌부드드한 몸을 기지개를 켜며 풀어봐도...
"...젠장, 피곤해..."
옆 빈 백에서 폰을 하고 있는 메이사를 보니... ...뭔가 기분이 이상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뭔가 엄청 찝찝한 꿈을 꾼 기분이란 말이야.
"나 얼마나 잔 거지? 에? 40분이나 잤는데 이렇게 피곤하다고?"
역시 낮잠을 자니까 더 피곤한 건가― 낙담했다. 뭔가 뒷목도 따끔따끔한 게, 빈백에서 자서 그런가 자세가 좋지 않았던 건지 근육통이라도 가볍게 온 건가 싶고.
"메이사 심심하지 않았어? 기껏 왔는데 잠만 자고 있어서 미안하네."
뒷목을 긁적거리고선 난처하게 웃어보였다. 내가 자는 동안 귀랑 뒷목에 뭔 짓을 해놨는지는 상상도 못한 채.
그렇게 장난을 잔뜩 즐기다보니 슬슬 깰 것 같아서-우마무스메의 감으로 알았다(?)- 슬그머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옆 빈백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대로 누워서 '아무 일도 없었고 나는 심심해서 혼자 핸드폰 하고 있었으니까'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우마튜브를 틀어서 별 의미 없는 쇼츠 영상들을 대충 눈으로 훑는다. ....어, 이 서바이벌 나이프 멋있잖아. 뀨~하고 오는 데 뭔가.
"아, 유우가. 깼어?"
그리고 감은 틀리지 않았다. 우마튜브를 튼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우가는 엄청 피곤한 모습으로 깨서 안경도 고쳐쓰고 기지개도 켜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욕망에 져서 계속하고 있었다면 무지 큰일났겠네... 잘 참아내서 다행이야~
"에~ 꽤 길게 잤네? 그런데도 피곤해? 유우가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뭐 중간고사가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나. 선생님도 참 큰일이네~"
뒷목을 긁적거리는 모습에 괜히 찔린다. 드, 들키진 않은 것 같은데 아직.... 그리고 심심할 틈도 없었죠 뭐. 엄청 두근두근하고 쫄깃하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렇게 말할 순 없으니까 그냥 애꿎은 핸드폰 화면만 두드린다. ...눈을 마주친 상태에서 태연하게 굴 배짱은 아직 없다기보단... 나 표정에 잘 드러나버리니까.
늙었나봐 나도. 동료가 잠 좀 못 잤다고 두드러기 올라오곤 할 때 '늙었네ㅋㅋㅋ' 하던 업보를 이제야 받는 기분이다. 자도 자도 졸린데다 몸 이곳저곳이 아프기까지 하고. 메이사 앞에서는 크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이렇게 아파오니까 마음이 안 좋다. ...메이사 이 녀석은 나처럼 늙은 놈 어디가 좋다고 껌딱지처럼 붙어다니는지 원.
그나저나 메이사가 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걸 곱씹다보니, 어쩐지 뭐가 생각날락 말락 하기도 하고... 긴가민가한 얼굴로 메이사만 한참 바라보다가 결국 기억해내진 못했지만.
"...아, 맞아. 누나가 전해달랬는데."
"메이사, 너 저녁에 한가하면 우리 본가에 와서 밥 좀 먹고 가라던데. 엄청 좋은 고기를 얻어서 스키야키를 해먹겠다던가 하더라고."
다같이 먹으려면 전골 아닌가 싶긴 한데, 전골을 애써 피해가는 걸 보자면 어지간히 좋은 고기인가보다. 솔직히 나 혼자라면 아무리 좋은 고기여도 가기 망설여지지만, 메이사랑 같이 간다면 가족들도 잔소리 덜 할 거 같고 괜찮아보였다. 그래서 제안을 서슴없이 전달하는 거기도 했지.
나를 보는 유우가의 얼굴은 뭔가.. 뭔가... 애매한 표정이다. 뭐지? 들켰나? 아주 잠깐 철렁했지만 들킨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한동안은 좀 조심할까. 계속 연이어서 하면 아무래도 들킬 것 같으니까. ....내가 참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심히 참아보는 걸로. 대충 결론을 내리고 나자 유우가가 뭔가 생각해냈다는 듯 말을 꺼냈다. 에~ 전혀 예상 못한 쪽이네 그거~
"엣, 본가?" ".....그렇구나. 처음으로 유우가의 부모님을 뵈러 가는 건가아. 나 준비할 시간 조금 필요한데 괜찮아?"
앗, 참지 못한 드?립이 그만. 하지만 날 데리고 본가에 간다는 건 그거지? 예비 시부모와 예비 며느리의 첫 만남 뭐 그런 거? 사실 반은..... ....반의 반의 반 정도는 농담이었으니까. 히죽히죽 웃으면서 말하긴 했지만. 우와 그치만 문득 상상해버렸어. 그치. 언젠가는 상견례도 해야하니까?
...그렇게 부실에서 나와서 교무실에 들렀다가, 다시 수업을 하러 들어가는데. 복도를 오갈 때마다 뭔가 시선이 엄청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녀석들을 마주 보면 얼굴이 빨개지더니 휙 도망가고.
과연... 결국... 나이 31에 나의 황금기가 와버린 건가... 하긴, 나 20대 때도 은근히 수요있는 얼굴이었고~ 자다 일어나니까 뭔가 그거? 퇴폐미? 같은 거 생긴 거 아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퇴근 준비를 할 때쯤 돼서야 동료 트레이너에게 조심스러운 한마디를 듣게 된 것이다. 피부에 두드러기 같은 게 난 거 같으니 조심하라고. 남이 볼 때도 티나다니 대체 얼마나 나버린 건데? 팔을 최대한 뒤로 제끼고 찍어보려 애를 썼지만 어깨 근육이 굳은 탓인지 흔들리는 사진만 나오고 영 스스로 보기가 어려웠다.
일단은 남들이 보기 좀 그런 모양이니 져지 지퍼를 목깃까지 올리고 생활하기로 한다. ...젠장, 나의 제 2의 전성기 시작일 리가 없지. 애초에 츠나센에서 그래봤자 골치 아프기만 하다고, 메이사 녀석이 극대노 할걸.
그렇게 생각하며, 메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불러냈다.
"스쿠터 타고 가자. 오늘 날씨 진짜 좋으니까 기분 좋을걸?"
그리고 주차장에서부터 부릉부릉, 메이사를 뒤에 태우고 앞머리에 봄바람을 맞아가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 평범한 가정집처럼 생긴 집의 명패에는 「히다이」라고 적혀 있고, 아직 준비는 전혀 시작하지 않았는지 집은 조용했다. 누나랑 조카, 아버지보다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한 모양.
"...일단 어머니께 인사 드리러 갈까."
말하고 보니 어감이 좀 그렇지만?! 그런 거 아니라고!? 일단 왔으면 인사를 해야 하니까!
방과후에 다시 만난 유우가는 목깃을 세워 지퍼를 끝까지 올린 상태였다. ...스스로 알아챈거면 이렇게 태평하게 스쿠터 타고 가자는 말 대신에 메이사 너!!하고 불호령이 떨어졌겠지. 그러니까... 아직 들키진 않은 걸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유우가의 허리를 꼬옥 안고, 봄바람을 맞으며 스쿠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유우가의 본가였다. 평범한 가정집에 히다이라는 명패가 붙어있다. 우와아. 와버렸다아. 어쩐지 긴장되는데.
"으엣?! 그, 그, 그러네! 갈까!"
어머니께 인사 드리러 갈까. 그 말에 몸이 크게 움찔했다. 우와. 직접 들으니까 뭔가 엄청 긴장되고 우와아 장난아닌데. 고개를 끄덕이고 유우가를 따라 집안으로 향한다. 기, 긴장돼~ 떨린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무지 떨린다. 게이트인 하는 거랑 비슷한- 아니 그것보다 더 두근거릴지도. 너무 긴장해서 어디로 왔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우가가 멈춰서서 이야기를 하고, 이제 내 차례라는 듯이 내쪽을 본 건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바깥에서는 암만 어른인 체 해도 집에서는 막내라는 듯이, 나는 어머니를 서슴없이 부르며 반말인사까지 던졌다. 어머니는 적당히 "왔니?" 라고 대꾸하며, 슬슬 스키야키 준비를 하는 듯 했는데... 내 뒤에서 귀를 쫑긋거리는 메이사를 보더니, 와, 그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메이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엄마의 모습은 또 신기하네.
"그... 내가 담당한다던 애. 누나가 말했지? 자, 인사 드려."
...그래, 우리 엄마가 좀 무뚝뚝해보여서 첫인상이 좀 그렇긴 하지. 히다이가 특이랄까, 누나가 좀 특이한 변종이랄까, 우리 집안 사람들은 대개 다 이런 느낌이란 말이야? 삐걱삐걱거리는 메이사를 걱정스레 바라보긴 했지만 어련히 잘 하겠거니 싶었는데.
-이슙니다!
하는 성대한 말실수에 나도 엄마도 그만 푸학 웃고 말았다. 내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는 동안 엄마는 "이야기 들었어요. 이쪽도 유우가를 잘 부탁해요~" 하며 부드럽게 악수를 했는데, 나는 나름 이거 괜찮았다고 생각해? 분위기도 풀어주고. 그런데 메이사의 얼굴은 귀 안쪽까지 시뻘개져 있어서 나는 그만 벽에 기댄 채 한참이나 끅끅대고 웃어버렸다.
"아~ 웃었다 웃었다. 히다이 센세께 늘 신세지고 잇쓤다! 라니. 너 얼마나 긴장한 거냐고!"
멧쨔의 말실수를 따라하면서 놀리기도 하고,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완전 편해져서... 나는 그냥 거실 바닥에 벌렁 누워버렸다. 아, 역시 우리집 다다미 최고네에~
"누나가 뭣 좀 사오기 전까진 게으름 피워도 OK야~ 할 일도 없을 테니까 좀 놀고 있지 그래."
푸학 터지는 웃음소리에 진짜 좀 죽고싶어졌다... 왜 여기서 혀를 깨물어버린거냐고 나!!! 어이! 옆에 너무 웃고있잖아?! 적당히 웃으라고!! 마음같아서는 옆구리에 주먹이라도 풀파워로 때려넣고 싶었지만 어머님이 앞에 계시니 그럴 수도 없고. 그저 나는 새빨갛게 된 얼굴로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어머님의 손을 맞잡고 악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크으으으으윽... 유우가... 두고 봐아아....
"으, 으우우... 너무 긴장해서어.... 저두 잘탁드립니다.." "으으 진짜아! 따라하지마!!"
나 그렇게까진 안 했다고! 날 따라하며 놀리는 유우가를 찰싹찰싹 치면서(무지 열심히 힘조절했다) 화내보지만 응, 이거 겨울까진 놀림감 당첨이겠네. 젠장...!!
"으우우... 진짜..." "유우나씨 오기 전까지라..."
좀 놀고 있으라는 말에 잠시 두리번거리다 바닥에 누운 유우가를 빤히 바라봤다. 혼자만 그렇게 편하게 있고 말이야~ ....아. 그래. 이왕 본가에 온 김에 유우가의 방이라도 구경해볼까.
"그럼 유우가 방 구경해도 돼? 아, 자취방으로 옮기면서 창고처럼 됐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
메이사가 말해놓고 보니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못 버려 병이 엄청 심각한 타입이고, 그래서 창고에 온갖 수납 시스템을 설치해놓고서도 부족해서 다락방까지 온갖 것을 넣어놨으니까. 관서에서 이쪽으로 넘어올 때 제법 많이 덜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10년 쯤 지내다보니 또 뭔가 엄청 불어나더라. 완전 자리 잡을 셈인 거지.
...그러니까 이제 안 쓰게 된 방을 창고 대신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 집에선.
"그... 아... 아닐... 걸? 그래도 나 독립한지 몇 달 밖에 안 됐는데... 그 정도 온정은 있을 거야. 아마."
하며, 일단 내 방인 2층으로 올라가 본다. 2층에는 아무도 없는 듯이 고요했고, 익숙하게 내 방의 미닫이 문을 열어 보면... 오, 의외로 깔끔했다. 좌식 책상 위에 큰 박스 몇개가 쌓여져 있고 그 아래에도 자잘한 박스가 들어가 있는 걸 제외하면 의외로 양호해.
노을이 드리운 방 안에는 먼지가 보얗게 떠다니고, 벽에 붙어있는 책장에는 책이라곤 전혀 없이 트로피랑 메달 등이 장식되어 있었다. 아, 저건... 내 리즈시절 사진도 있네. 그리고 자주 입던 유니폼도 잘 개켜 넣어져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좀 쓰라린 기분이다.
"추억이네~"
내가 직접 보기엔 좀 마음이 안 좋아서, 중학생 때부터 써오던 침대에 냅다 누웠다. 나중엔 키가 너무 커져서 침대를 못 쓰게 돼서, 점프를 묶어다가 침대 발 아래에 받침대로 두곤 했지. 그러고 몇 년이고 살아온 게 대단하다 새삼.
슬쩍 매트리스 아래에 손을 집어넣어보면 익숙하게 만져지는 종이감촉. 이것도 아직 있구나아 생각하며 아무 일도 없었단 척 손을 도로 뺐다. 그나저나, 엄청 익숙한 냄새가 나서 무진장 그리워지네...
"아무튼, 자유롭게 둘러봐. 볼 것도 없긴 하지만."
실상 선수 시절의 흔적이랑 앨범 몇 개, 그리고 취직을 위해 마련했던 정장 셋업 말고는... ...헉.
지금은 안 쓰는 방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먼지가 좀 떠다니긴 하지만, 정리가 잘 되어 있고 창고처럼 쓰이는 것 같지도 않다. 박스 몇 개가 창고화의 조짐을 알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책 대신 트로피와 메달이 자리한 책장을 눈으로 훑는다. 우리집에도 파파랑 마마가 트로피를 이렇게 소중히 장식해놨지... 아. 이거 유니폼인가? 승부복 같은 거지?? 이거 입은 유우가도 보고싶긴 한데... 사진으로 만족해야하나. 슬쩍 유우가를 보면 이미 침대에 벌렁 누워있었다. ....먼지 안 날리나...?
"알았어~ 우와, 이거 유우가 몇 살때야? 앗! 이거 우마무스메로 치면 승부복인거지? 이거 입고 뛰는 거구나~" "응? 서랍장?"
사진과 유니폼을 가리키며 꺄아꺄아 들떠서 말하기도 하고, 여기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도 유우나씨가 말한 그거 있는걸까~ 하고 침대를 의미심장하게 보기도 하고(발치에 왜 점프를 쌓아둔거지?) 증명사진에서 본 거 같은 정장도 쓱 훑고, 그러다 서랍장 앞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노렸단듯이, 서랍장은 열지 말라는 말이 들린다.
"........유우가. 판도라의 상자라고 알고있지?" "열지 말라고 하면 더 열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그런 말은 트리거라고 할까, 플래그 발언이라고 하는 거지. 히죽 웃으면서 손을 뻗어 서랍장을 열어재낀다. 침대에 누워있던 유우가가 반응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열어본 그곳에는.......
그래, 나는 내 무덤을 스스로 파버린 거다. 메이사의 얼굴이 소악마의 그것으로 변하는 걸 보자마자 나는 침대에서 튀어나가 서랍장을 열려는 그 손을 저지하려 했는데...!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던 게 패인이었던 거지. 나는 막지 못한 채, 메이사가 그것을 들여다보는 걸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말랑말랑하고, 조금 핑크빛도 돌고. 그 뭐야. ...아니건강한남성이라면한번쯤은그런거사보고싶지않아?!돈키만가도이런거널려있다고?나나도원래이런걸좋아하는타입은아닌데취직전에여친이오랫동안없었어서그냥호기심으로하나사봤지만딱히타입이아니었고이거안타는쓰레기로배출하기도좀그렇고엄청처치곤란이었다고젠장!!!
뭔가 변명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하... 나는 힘빠진 메이사의 손에서 서랍장을 다시 밀어넣고, 긴 한숨을 내쉬고, 엄청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리며 이렇게 말하는 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서랍 안에는 그게 있었다. 그게. 그게.... 아니 그 뭐라고 해야하지 어설프게나마 어떤 용도고 어떤 물건인지는 알고 있고요 가끔 매수각희답게 그런 농담도 하곤 하지만 이게이렇게눈앞에선명하게놓인건처음이라서아니돈키나드럭스토어에서도팔긴하는데그건대체로포장으로잘가려져있고그냥보면잘모르니까이렇게적나라하게본건처음인데그그럼유우가는이런걸쓴다는건가아니본가에두고간걸보면지금은안쓰는건가그럼지금은뭘쓰(이하생략)
......잠시 그렇게 멍하게 있는 동안 서랍은 유우가의 손으로 다시 봉인당했다. 시야에 가득하던 그것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서랍장을 밀어넣은 유우가의 손만 보이고 있었다. 크고 듬직한 유우가의 손...으로 예전엔 아까 그걸 그렇고 이렇고 저렇게 했다는.... 으아아아아아악! 그만! 내 머리 속에서 나가!!! 소리없는 절규를 하며 조용히 고개를 서랍장에서 돌렸다. 차마 유우가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그리고 잊어주라..라는 말 다음 이어진 이 적막함을 견딜 수 없어서 뭔가 다른 주제를 찾기 위해 빠르게 눈을 굴렸다.
"그, 으...." "채, 책상 위 박스도 유우가 거야...? 뭘 넣어둔거야?"
애써 화제를 돌린다는게, 그것의 충격과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로 쥐어짜낼 수 있는 화제는 한계가 있어서.. 아무튼 급하게 눈에 보이는 것중 하나를 골라 가리키며 물어봤다.
그리고 잊어주라는 말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좀 충격적이긴 해도 그게 유우가 취향이라면야... 응...
...그러니까 남자는 가끔, 능지가 마비될 때가 있다. 평소처럼 돈키의 그렇고 그런 코너를 지나가다가도 여친이 오랫동안 없으면, 또 취직 스트레스가 심하고 그러면, 사람이 좀 빙글 돌아서 이런 걸 덥석 사버린다는 거다. 팔리는 데엔 이유가 있겠지 하며 헛된 기대도 좀 품게 되고 그런 거지.
그럴 때는 모른다. 이런 물건이 갖고올 폐해를... 그러니까 일단 현타가... 10배 정도 더 크고, 들키면 그날 밧줄에 매달릴까 고민도 하게 되고, 버리자니 이거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또 노심초사 하면서 버리기도 좀 그런, 그런 상황이 생긴다는 거다. 이런거 독립할 때나 언제 봄 옷 가지러 올 때 대충 가방에 쑤셔넣어서 처리해버렸어야 했는데... 귀찮다고 미루고 미루다가 이렇게 됐다고.
그저... ...절망...
"이건... 내 거 아냐..."
뭔가 할 말도 없어져서, 현타가 20배 정도 크게 머리를 휘적휘적하고 가서 메이사가 애써 꺼낸 말에 대꾸조차 멀쩡히 못할 때쯤,
- 엄마~! 나 왔어어~!! 버섯 사왔다구~!
요란하게 콰당하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나. 나이스.
"일단...! 나... 나갈까."
메이사의 손을 잡고 일단 2층에서 내려오고, 누나가 식재료도 사왔겠다 그때부턴 져지를 벗고 에이프런을 두르고선 준비를...
"...뭘 봐?"
져지를 벗다가,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토하려고 하는 누나의 표정과, '아... 미친. 빨리 장가가서 꺼져.' 하는 표정의 어머니. 둘은 나를 빤히 보다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저래...?"
그 이유를 나만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내가 부엌에서 엄마랑 스키야키의 준비를 하는 동안 누나는 메이사랑 거실에서 노가리를 까는 모양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방을 가득 메운다. 화제를 바꾸려고 해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으니 어색한 분위기만 증폭될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뭘 어째야하는거지!하고 괴로워하던 그 때, 구원같이 밖에서 시끌벅적하고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유우가도 비슷한 생각을 한거겠지. 이때다 싶다는 듯이 손을 잡고 1층으로 이끌고 있었다. 나도 별 말 없이 따라 1층으로 내려갔고.
"아, 유우나씨! 안녕하세요~ 오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2층에선 아무 일도 없었다고 주장하듯 방긋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슬쩍 고개를 돌리니 저지를 벗은 유우가 와 그 목덜미에 내가 남겨둔 얼룩덜룩한 자국을 보고 속으로 아차 싶었다. ....아니! 나도 이런 일정이 있을 줄 알았으면 저렇게 안 남겨놨거든요!? 완전 모르고 한 일이니까!? 으악! 큰일이야!! 의식하니까 애써 외면하던 2층 일이라던가 이것저것 몰려와서 무지 부끄러워지고 있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같아서 후다닥 유우가한테서 피하듯 거실 쪽으로 향했다.
이, 일단 유우가는 눈치 못 챈 느낌이니까.. 괜찮을까... 괜찮겠지.... 좌불안석을 그대로 그려낸 것 같이, 앉아 있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고 조마조마해서 힘들다... 슬쩍슬쩍 주방을 힐끔거리다가 유우나씨의 말에 뜨끔해서 크게 움찔해버렸다. 으, 아, 그, 그렇죠.... 유우가 빼고 다들 눈치챈거겠죠 네. 저렇게 얼룩덜룩한데 눈치채지 말라는 쪽이 이상한거겠지...
"그, 그게에.... 조금 장난쳤다고 할까..." "저녁 같이 먹자는 말을 듣기 전이어서, 그, 미리 알았으면 안 했는데요... 네...."
허벅지를 쿡쿡 찔러오는 손길과, 히죽거리는 유우나씨의 웃음이 무거워.... 아니.. 진짜.... 이런 가족행사가 있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안 그랬다고요.. 저 그렇게 비상식적인 우마무스메 아닌데요... 괜히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변명 아닌 변명을 중얼중얼.
".......유우가한테 들키면 무지 혼날 것 같은데에... 우우..."
왜, 왜 그랬지...? 점심시간의 나, 대체 왜 그랬던거야.. 즐거웠냐...? 물론 즐겁긴 했지만. 으으. 이렇게 바로 업보가 돌아올 줄이야...
은근한 추임새를 넣어가며 메이사의 자백(?)을 듣던 유우나는, 어느 한 마디에서 턱을 괴던 손을 떼었다.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 말은...
"들키면...?"
다시 말해, 유우가는 저걸 모른다는 뜻. 유우가가 모르는 사이에 저정도로 얼룩덜룩하게 '이 남자는 내 것이오' 표시를 해뒀다는 건... 유우가가 의식이 없을 때 멋대로 해버렸다는 뜻. 학교에서 누가 후두부를 내려쳐서 기절시켰을 리는 없고, 낮잠을 잘 때 저렇게 장난감처럼 다뤄버렸다는 뜻이 된다.
"...어머."
"......어머머."
유우나는 그 한 마디를 듣기 전까지는 둘이 츠나센에서 대체 뭘 얼마나 해댄 거야 이녀석들 조만간 결혼하겠구만~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야기가 이렇게 되니 의외였다. 자빠뜨리라고 말은 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메이쨩, 내 동생 망가뜨리면 안 돼...? 이제야 사람 구실 하게 됐단 말이야."
이 엣치치한 싱글맘 유부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다 큰 청년을 망가뜨리지 말란 말을 갓 성인이 된 학생에게 하고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히다이가는 죄다 보케다.
- 뭔 얘기 하나 했더니... 내 뒷담 하냐?
에라이, 유우나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등장한 유우가. 가족 테이블에 가스 버너도 올려놓고 식기도 세팅하면서 바쁘게 오가는데 그 뒷목은... 메이사에게 메챠쿠챠 장난 당해서 이미 망가져있다구...
망가뜨리다니? 그, 그, 그럴 생각은 없는데요?! 그보다 뭘 어떻게 하면 잘때 몰래 츄~하거나 마킹하는 정도로 사람이 망가지는건데!? 유우나씨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어서, 대체 뭘 상상하고 계신진 모르겠지만... ....사실 잘 때 몰래 했다는 거 자체가 떳떳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뭐라 항변하는 것도 무리.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우와앗, 그, 그게. 아무, 아무것도 아니야!"
왜 하필 이런 이야기 할 때 오는 거냐구 유우가!! 당황해서 고개를 저으면서, 손까지 파다닥 흔들면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어필을 해본다. 그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걷어차는구나. 하긴, 우마무스메랑 다르니까 괜찮은가.
테이블에 이것저것 세팅을 하는 유우가를 보면 역시 뒷목이, 메챠쿠챠.... ..........점심에 너무 두근두근하고 들떠서 그만 너무.. 많이... 하긴 했지.....
이 녀석들 하츠모데 때도 지금도 가족들 앞에서 완전히 연애질하고 있잖냐wwwwwwwwwwwwww 히히... 저는 슬슬 졸려와서 답레는 내일 잇겠습니다...히히... 시니어 프리지아 뭔가 슴슴한 맛일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엄청 재밌는wwwwwwwwwwww 역시 엣치치는 만능이구나...😇
그랬으면 히다이 죽으려고 했을걸요...🙄 사실 전 멧쨔가 중학생때부터 유우가 향기가 농축된 침대에서 같이 뒹굴거릴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는데wwwwww 서랍장의 파괴력이 엄청 커서 둘다 산치 체크 들어간 게 너무 웃겼습니다...wwwwwwwwwwwww 나중에는 1층에 가족들 있는데에서 유우가 향기 폴폴 나는 침대에 같이 뒹굴면서 매트리스 아래의 책 낭독회하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