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풍경에 잘 어울리는 청량한 웃음에 나시네도 따라 수줍은 듯 살포시 미소를 띄워본다. 평소 해맑게 굴어도 그 안에는 불길이 끓어오르는 걸 내리누르는 듯한 모습이었다면 지금의 그는 진정으로 이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당신은 당신일 뿐이죠." 린은 부정하지만 나시네가 그저 결국 나시네일 뿐이듯 누가 무어라 정의하더라도 자신이 믿는 바를 향해 나아간다면 그 지나간 길이 자신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것처럼 굴다가 린에게도 자주 보이던 비스듬한 미소를 옅게 지어보인다. 평소 미묘하게 요사한 심술이 덧대어져 있던 린의 미소가 나시네의 얼굴에 티 없이 그저 장난스럽기만 한 부드러운 곡선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알렌, 여태 꽤 무모하게 당신이 불의라 생각하는 것에 저항하고자 하지 않았나요. 자신이 걷고자 하는 길에 대해 칭해지는 칭호를 당연히 여기지는 말되 정당한 자신감은 가졌으면 해요." 겸허한 마음으로 찬사를 들으며 그에 걸맞는 당당함과 의연함으로 나아가길. 평소 담아두었지만 정확하게 구성하지는 못한 문장을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에서 말한다.
"적어도 여지껏 저를 곤란하게 한 만큼은 말이에요." 일부러 응원에 한 템포 쉬고서 조금은 짓궂은 본심을 담아 저 자신의 말로 마무리를 한다. 은근한 장난기가 담긴 맑은 적색의 눈이 그를 힐끗 쳐다본다. 산책을 수락하고서 나란히 걸어가는 길에 점점 연한 녹빛 일색이던 초원에 조금씩 색이 더해지더니 어느새 주변에 각양각색의 꽃이 만개하여 난만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서로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약속한듯 익숙하게 걸음걸이를 맞추어 가며 함께 걸어가는 길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청명한 바람과 다르게 나시네의 머릿속은 어쩐지 오락가락하며 화들짝 곤란하다는 듯 제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눈을 가리던 그의 반응에 머물러 있었다.
'평소에 알렌이 이렇게 자주 놀랐었나.' 그랬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바보용사라 꿋꿋하게 부를 일도 없었을 테다. 린이라면 또 다시 예의 그 계산적인, 무언가를 재듯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을 일을 나시네는 혹시나 저를 싫어한다는 말을 들을까봐 두려운 마음에 단순하게 의문을 매듭지었다.
"와. 꽃이 정말 예쁘게 피었어요." 사소한 고민거리로 제 자신을 어둡게 만들고 그마저 신경쓰이게 할 행동을 하기보다 이 짧고도 꿈만 같은 시간을 그대로 만긱하겠다. 당신이 저를 좋아하든 곤란한 이로 여기던 나는 당신과 이 곳에 있음이 기뻐서 다시 해맑은 웃음을 보이며 주변을 둘러보아달라 감탄과 함께 말한다. //8
계속 유지할 필요는 없겠다는 말을 하는 강산에게 굳이 대답하지는 않습니다. 그거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저도알고 강산씨도 아는 만큼 공격 기회적인 면을 주기 위해서라서! 일까요...
"뭐긴 뭐에요~ 공격이죠~" 말하는 여선..
"저 가차없는 거 모르셨구나요~" 장난스럽게 말하기는 하지만, 여선은 생각보다 무덤덤한 느낌으로 공격할 수 있지요.. 어페어런트 데스로 기절을 가한 뒤 공격이.. 먹히긴 하지만.. 일단 지금은 먹히는지 알아보는 거니까요. 그리고 다음 행동을 주시하는 것 같은 강산을 바라보며
"그럼..." 여선은 약점 간파를 쓰려 하네요... 아마도 출혈 쪽에 생기려나요? 아니면?
"가끔 보면 당신은 너무 예의를 차려요." 매우 정중하게 각잡힌 자세로 대하거나 혹은 속에 담아놓은 분노가 폭발하여 과격하게 굴거나. 조금 투덜거리듯 재잘거리던 나시네는 어느새 꽃밭으로 들어가 허리를 살짝 숙이고 꽃잎을 헨다. 본 적 없는 봄과 차가운 겨울만 보았을 테니까. 세계를 철저하게 이분된 둘로 보아왔으니 그러리라. 린은 세상을 위선과 절망으로 가득한 연옥으로 보아 끝없이 존재하지 않는 환각으로 얼어붙어 바스러져가는 마음을 포장해왔다. 마찬가지로 그의 세계도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도 잔혹했기에 폭발하거나 혹은 아예 누르거나 극단적인 양 방향으로 태도가 굳어져 왔다며 그렇게 여겼다.
"조금 건방져도 당신이라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음, 아니에요. 다시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어색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생각이 전혀 나지 않을 것 같아요. 눈을 크게 뜨다 깜박이고서 이내 그 또래의 소녀처럼 티 없이 즐겁다는 듯 웃는다. 세상에 시건방지고 오만한 그라니. 갑자기 물욕이 없어진 토고 쇼코와 같은 급의 소리처럼 들렸다. 빙긋 웃는 얼굴로 살짝 돌아서 알렌을 바라보다 무언가를 찾은 것처럼 어느 한 켠을 바라보았다.
"저는, 저도 오래만인데..."
소녀가 시선을 멀리 던지고서 바라본 곳에 하이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나무의 숲이 가득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벛꽃, 목련, 복숭아꽃, 배꽃 등등에 이어 이름 모를 봄 꽃이 가득 피어 꽃잎을 흩날렸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와 같이 정원의 화단에 물을 주던 기억이 나요. 벚꽃이 꼭 저렇게 예쁘게 피었었는데." 그의 바보짓을 신경쓰고서 한 마디 다시 그러니까 바보라고 부르는 거에요라 하려다 이를 다 잊은 표정을 하고서 흩날리는 꽃의 비보라를 바라본다. 천천히 돌아 알렌의 눈을 바라보고서 하고 싶은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사람같이 망설인다.
멋쩍게 웃다가 뭔가 찔리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달라 말하니 오히려 그 모습에서 린의 기억 중 일부분이 떠올랐다. 최근이라면 최근이고 멀다면 먼 바티칸 여정 중 이상한 게이트에서 마주한 흑발 흑안의 사나웠던 소년의 상이 어렴풋이 기억속에 맺힌다. 그 옆에 서있던 채 10살이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소녀가 훌쩍거리는 모습까지 그려진다. 아련한 기분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본다.
"바라시는 대로." 순순히 그러겠다 답하고서 감정에 북받혀 오른듯 꽃의 이름을 읊는 그를 옆에서 바라본다.
"정말요?" 잠시 눈을 내리깔다 언제 묘한 기색을 보였냐는듯 배시시 기쁜듯 미소를 짓는다.
"실은 같이 이런 풍경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또 아까부터 어디 좋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 명백하게 들떠 살짝 상기된 얼굴로 여태 묵혀놓은 말들을 하다가도 어느새 걱정하는 얼굴을 한다.
"마침 잘 되었네요. 잠시 앉아서 상태를 볼 수 있겠어요." 제 꿈 속의 알렌마저 현실의 알렌의 상태를 철저하게 반영한 듯 어색하게 안색을 붉히거나 열이 있는 것처럼 간간히 머리를 손으로 받치거나 하니 속이 답답했다. 정신력이 장점인 그가 새삼스레 저와의 대화가 민망해서 그럴리는 없고, 성격상 곤란한 일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고 피했을 거라 바보쨩은 스스로 생각하고 납득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여러 꽃잎이 휘날리는 정경속에 들어가는 중 마음껏 재잘거리다 나무 아래에 선다.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얼마든지 건네주세요. 저는 당신의 짐작대로 숨기고 있는 말들이 많으니까요." 하지 못한, 하지 못할 말들이지만 꿈에 취한 나시네는 망설이다 마음속 깊이 바라던 대로 그대로 생각하지 않고서 얘기한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