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0 차라리 몰랐더라면, 아무 것도 모르는 멍청이였다면, 그랬었다면... 연구소 영락은 현재 재적 중인 학생이 몇 없었다. 인첨공의 학교들이 사설 연구소의 학생 영입을 꺼리는 편이기도 하고 영락의 방침상 너무 많은 학생은 오히려 커리큘럼의 질을 떨어뜨리기에 적극적으로 새로운 학생을 포섭하기보다 이미 재적 중인 학생을 조금이라도 더 신경 쓰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연구소 내 별개 공간을 쓰는 학생이 바로 그녀였다.
몇날며칠을 머리 싸매게 하던 뇌파 기록으로부터 해방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사소한 일들은 몇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별 일 없이 지나갔다.
솔직히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그녀의 신변을 우려해 그런 장치를 몰래 착용하게 하긴 했지만 그게 작동한다는 건 그만한 일이 생겼다는 의미니까. 막연히 생각하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게 됐을 때의 대처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그 장치가 쓰이길 바라는 마음 반, 바라지 않는 마음 반, 그랬었는데...
덜컥
"음?"
잠깐 사무실에 들렀더니 낮잠 자던 아메가 깨어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못 보던 간식이 책상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그녀가 온 듯 했다. 오늘은 커리큘럼 하는 날도 아닌데 왜 왔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그녀가 돌발행동 하는게 하루이틀도 아니니 오늘도 그냥 심심해서 놀러왔나보다 했다. 다시 사무실을 나가 복도를 걸을 때, 그런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어머, 박쌤. 오늘 커리큘럼 아니었어요? 왜 여기 있대?"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박쌤 담당인 그 애- 아까 저 쪽으로 가던데? 걔 전용 실습실 그쪽으루요." "그래요? 뭐 두고 온게 있ㄴ"
때마침 지나가던 연구원과 짧은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다른 바이오키네시스 담당인 연구원은 조금 전 실습실로 가는 그녀를 보았다고 알려주었다. 커리큘럼도 없는데 실습실을 갔다니, 불안이 제일 먼저 엄습했다. 그러나 애써 아닐 거라며 말해보았지만 언제나 불안한 예감은 적중하는 법이었다.
대화 도중 긴 복도 저편에서부터 들려오는 파열음과 괴성이 있었다.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에 연구원은 흠칫했고 나는 머리를 헤집으며 급히 몸을 돌렸다.
빠르게 걷던 걸음은 이내 달음박질이 되어 긴 복도를 내달렸다. 두어번 굽이진 복도를 지나 무방비하게 열린 실습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안에 비치되어 있던 철제 스툴을 양 손으로 들고 숨을 몰아쉬는 그녀가 있었다. 이미 실습대 하나를 넘어뜨리고, 내부 유리선반들의 절반은 깨부순 후였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잠시 얼이 빠진 채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헉, 후욱... 흐, 흐흐, 흐흐흐...!"
챙그랑! 콰직... 쨍강!
그녀는 숨을 고르자마자 다시 의자를 휘둘렀다. 가는 팔로 잘도 의자를 휘두르며 아직 부수지 못 한 유리선반들을 마저 부수고 중간에 걸린 실습대는 의자로 몇 번 내리치더니 바닥에 고장해 둔 다리를 휘게 만들어 또다시 넘어뜨렸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쇠로 된 실습대 넘어지는 소리가 섞인 굉음이 울렸다. 그걸로도 안 풀리는지 넘어뜨린 실습대를 의자로 내리치며 그녀는 광소하고, 절규했다.
"흐흐, 흐히히... 하, 하하, 아하하! 하하하하하! 친구? 치인구? X발 그래 아주 잘난 친구 나셨다 이 X발X들아!!!!!"
쾅! 쾅! 쾅! 쾅!
"내가 기다린게 잘못이야? 내가, 힘도 없고 능력도 없는 내가! 아무 것도 못 하고 기다리기만 한게 잘못이야?!"
쾅! 쾅!!!
"차라리 밉다고 하지!!! 미워서! 싫어서! 그래서 그 동안 모른체 했다고!!!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았다고!!!!! 차라리 그렇게 말하지, 차라리!!!!!"
쨍그랑! 트드득...
삐비비빅. 삐비비빅...
"왜 X발 왜!!!!! 왜!!!!!!!!!! 사람 미치게 만든게 누군데 왜!!!!!!!!!!!!!!!!!"
그녀의 손에서 의자가 날아가 부서진 선반들 사이로 처박혔다. 한 섞인 절규 속에 가죽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빈 손에 어느새 큼지막한 유리조각을 들고 있었다. 새빨간 궤적이 엉망이 된 실습실 안에 흩뿌려졌다. 붉게 물들어가는 다리로 일그러진 실습대를 짓밟으며 그녀는 계속 내뱉었다. 들을 사람 하나 없는 빈 실습실 안이 그녀의 헛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이 X끼고 저 X끼고 뚫린게 입이지 아주. 어? 뱉으면 다 말인 줄 아나 봐? 아하하, 하하하하하?! 그래, 이 X끼 저 X끼 다 똑같아. 한결같이 나를 가지고 놀다 버리고 그리고!!!!!!!!!!! 그래놓고 뻔뻔히 돌아와도!!!!!!!!!!!! 그러려니 해야 하는 거 겠지 그치? 내 주제에 뭘 바라 아무 것도 못 하는 등신X끼가 X발 주제를 알아야지!!!!!"
퍽! 퍽! 콰직! 퍽!!!
"그런데,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내 존재가 잘못됐어? 내 주변은 죄다, 멀어지고, 떨어지고, 사라지고, 없어지는데! 왜 너희만 그래? 왜? 나는, 나는 혼자였는데, 어떻게 너희는 그래? 안희야, 나더러 소중하다매, 잊지 않으려 노력하기까지 했다며. 현태오, 너도 그랬잖아, 너도, 마지막 날, 소중한 동생이라며, 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네가, 너희가!!!!! 그 잘난 주둥이로 씨부려놓고!!!!! 그걸 그렇게 내다버려?! 니들이 어떻게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들이! 그 사람하고 똑같이, 아니, 어떻게 그 사람들보다 더할 수가 있어! 그들을, 그 인간들은 차라리 대놓고 죽으라고 했는데!!!!! 니들은, 지키지도 않을 희망을 내 안에 박아놓고, 그걸 버려?! 그걸, 나를, 버려서 이렇게 썩어들어가게 만들어?! 그래놓고 뭐? 뭐? 미운게 아니야?! 기억하려 했어?! 개소리 작작 해 안희야 현태오 이 개X발X끼들아아아아악!!!!!!!!!!!!"
콰장창!!!!!
다 부서진 유리선반의 잔재를 여린 팔이 훑고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에 붉은 궤적이 질척하게 남겨졌다. 단단히 미친 듯한 그녀의 행보에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에게 채웠던 장치가 이상을 감지하고 알람을 울려대고 있다는 것을 선반의 잔재에 주먹을 내려치며 울부짖는 그녀를 보느라 느끼지 못 하고 있었다.
"나는! 말도 못 하고 혼자 미쳤는데 너희는! 니들은 잘난 친구X께서 쉴드도 쳐주고 아주! X발 아주 잘도 살았지 어!!!!! 아니야?! 아니면 반박해 보던가 아니면!!!!! 니들이 겪었다는 거, 당했다는 거! 티끌만큼이라도 내뱉어 보라고!!!!!"
빠각-
순간, 불길한 파열음이 나며 일순 공기가 멈췄다. 그녀의 다리가 선반 기둥을 걷어찬 순간이었다. 본래라면 벽에 고정되어 있었을 선반이 기우뚱 하더니 한 렉이 분리되어 그녀를 덮쳤다. 실습대 넘어지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소리가 실습실을 꽉 채우더니 곧 요란한 알림음 만이 내 귀를 때렸다. 그녀에게 착용시킨 장치가 파괴되었을 때 나는 알람음이었다. 실습대에 걸쳐 쓰러진 선반 아래로 그녀의 팔이 길게 나와있었다. 슬금슬금 번지는 붉은 웅덩이와 함께.
"...하아..."
짜증을 한숨으로 내뱉으며 난장판이 된 실습실을 가로질렀다. 넘어진 선반으로 다가가 그 밑을 보자 머리를 맞았는지 기절한 그녀가 선반과 실습대 사이에 엎어져 있었다. 다행히 깔린 부위는 없어서 그녀를 끌어내기만 하면 되었다. 이게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엉망인 몰골에 다시금 한숨을 쉬며 폰을 꺼냈다.
>[방금 알람 터졌지] >[그거 영락에서 터진거다] >[올 거면 XX병원으로 와서 의국에 내 이름 대] >[저번의 그 병동으로 안내해줄거다] >[안 와도 되고 서두를 것도 없다]
중요한 내용만 보내긴 했는데 과연 제대로 다 보긴 했을지 모르겠다. 빠르게 톡을 전송하고 점점 더 붉게 물들어가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이제보니 서서히 푸르스름해지는 팔다리나 안아드는데도 유리조각 소리가 나는 걸 보니 평소보다 더 성가시겠단 생각부터 들었다.
"조각 언제 다 빼냐..."
...영락의 부속 병원, 그곳의 특별 병동은 본 연구소와 연결된 구간에 있었다. 연구소에서 위중한 부상을 입은 학생을 급히 옮겨 제때에 치료 받을 수 있게 하는 곳이었다.
보통은 잘 쓰이지 않는 그곳을, 그녀는 단골마냥 쓰고 있었다. 학기 초부터, 작게는 교통사고 골절에서, 크게는 과출혈과 뇌진탕이 의심되는 수준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유로 병동을 사용하던 그녀는 오늘도 그 병동의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서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었다. 옆에는 심박을 알리는 기기와 다른 기기들이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나도 있었다. 채 마르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백의를 걸치고 그녀의 침대 옆에 서서
"...어, 왔냐?"
하고, 태연하게 방문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출까. 이런 것도 못 막은 멍청이로 보일까, 아니면.
"마침 잘 왔다. 너 혈액형이 뭐냐? 얘 수혈을 해야 하는데 맞는게 여분이 없다네."
상황에 맞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누운 그녀를 바라보았다. 침대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새빨갛고 그녀 역시 검붉은 색으로 얼룩덜룩했다. 언뜻 보면 사람이 아니라 넝마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본능은 작동하는지 수많은 상처가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지만 얼굴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성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는 건 눈에 뜨게 확실했다.
그는 과연 그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말 할 수 있는 건, 전부 직접 만든 상처란 거다. 습격이나 사고 같은 건 없었어. 전부, 스스로 낸 것들이다."
덤덤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며 말하고 대기 중이던 기기들을 매만지며 수혈할 준비를 했다. 이윽고 새로운 기기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한 발 물러서 입가를 매만졌다.
심히 담배가 물고 싶었다.
그 뒤에도 나는 평소와 달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적합한 과정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행하고 필요에 의한 말이 아니면 조용히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목화고의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기 직전이었다. 카페에서 휴대폰을 보던 한양을 부르는 한 예쁘장한 여학생이 보인다. 한양은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을 했다.
" 왜 반말이죠? "
" 아..미안해요. 서한양 학생 맞으시죠? "
여학생은 곧 사과를 했고, 한양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한양과 한 브로커가 마약을 거래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한양은 이 사진을 보고는, 꽤 당황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여학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 일 커지기 싫으면 따라오시죠? "
그렇게 한양이 여학생을 따라간 곳은 스트레인지에 위치한 허름한 아지트였다. 안에는 껄렁껄렁한 남자들과 불량한 여학생들이 낄낄거리며 들어오는 한양을 조롱했다. 그 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흑발의 곱슬머리인 남성이 일어나며 한양에게 다가갔다.
" 너 레벨 5 유망주잖아. 그런데 어떡하냐? 레벨 5에 닿기도 전에 콩밥이나 먹게 생겼는데? "
" 그러게 왜 마약거래 하는 걸 우리한테 들켰어? 감옥에 가기 싫지? 그러면 우리가 시키는대로 해. 너는 남자니깐.. 그래도 음지에는 수요가 꽤 있겠네. 돈 많은 아주머니나 아저씨들ㅇ.. "
" 아오 X발, 담배냄새. "
녀석의 협박은 신경쓰지도 않고, 아지트 내부의 담배냄새에 불쾌감을 표하고 있는 서한양이었다.
" 너.. 내 말이 장난으로 들려? "
한양은 조롱하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 사진 다시 봐봐. 그게 마약인지 홍삼인지. "
" 뭐? "
아까 한양을 데려온 여학생은 당황하며 사진을 다시 봤고, 사진의 물건을 자세히 보니, 마약이 아니고 그저 붉은 홍삼박스를 거래하고 있었던 사진임을 알고서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 등신들... 스트레인지 내부에서 은밀하게 거래하면 다 불법인 줄 알지? 고맙다. 아지트까지 친히 모셔줘서. "
[3일 전]
아까와 같은 카페에서 후드를 뒤집어 쓴 왜소한 여학생과 한양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굴에는 누구한테 맞은 듯, 멍이 났고 초췌해진 여학생은 떨면서 한양에게 말했다.
" 한양아.. 나 좀 살려줘... 이제는 정말 죽을 것 같아.. "
" 무슨 일이야? 자세히 말해봐. "
" 석달 전에.. 아는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된 애들이 있었는데.. "
요약하자면 내용은 이러하다. 스트레인지의 한 조직이 이 여학생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친해진다. 그리고나서 여학생을 강제적으로 범죄행위에 동참하게 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범죄에 연루시킨다. 그 점을 협박해서 자신들의 돈벌이나 텍스트로는 표현하기 역겨운 장난감으로 사용했다는 것. 한양은 표정이 굳어진 채로 말했다.
" 너는.. 걔네들 연락 다 무시하고, 당분간 내가 빌린 방에서만 지내. 지금 당장 방 하나 예약할 테니깐.. "
" 잠시만! 그러면.. "
" 걱정마. 3일이면 해결할 수 있어. "
[현재]
" 이 역겨운 새X들.. 내가 너네한테 덜미 잡힐려고 거래를 몇 번이나 했는지 알아? "
" 전부 이 녀석 조져-!!! "
말해 뭐해? 바로 한양을 제압하려고 하는 녀석들. 곱슬머리는 너클을 끼고, 오른쪽 주먹으로 한양의 왼쪽 턱을 강타하려고 했다. 곧게 직선으로 날아오는 주먹. 너클을 꼈기에 한방이라도 허용하면 치명타였다. 사실 이 너클은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서 효율성이 천차만별이다. 기본적인 리치가 짧기에, 주먹을 쓸 줄 모르는 놈이 사용해도 별 차이가 없다. 왜냐고? 주먹을 던져도 맞지를 않는데, 그거 껴봤자 무슨 소용이야. 약한 힘을 보충하는 무기가 아닌, 기본적으로 깔린 실력을 바탕으로 위력까지 올려주는 무기지.
체중을 정확히 실기 위해 비튼 뒷발과, 반격의 데미지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당긴 턱, 혹시나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올린 왼손 가드, 한양이 자세를 안 잡힌 틈을 타서 공격하는 타이밍 등. 이 곱슬머리 녀석도 근본 없이 길바닥에서 구르기만 한 녀석은 아니었을 거다. 문제는 서한양 앞에서는 이런 녀석도 근본이 있어도, 근본이 없는 녀석으로 바뀌게 된다는 거지. 공격을 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미리 살짝 돌아가 있는 어깨와 허리로 주먹의 방향을 예측하고, 상체을 오른쪽으로 살짝 숙여서 주먹이 빗나가게 만든다. 곱슬머리는 왼쪽 주먹으로 숙인 한양의 턱에 어퍼컷을 꽂으려고 했지만, 한양은 이미 녀석의 왼쪽 어깨 옷깃을 잡아서 당기고 있었다.
' 왜 이렇게 빨라..? '
주먹을 뻗기 위해서 체중과 중심이 실린 녀석의 왼쪽 발. 즉, 이 부분을 툭 건드리기만 해도 중심이 무너지기 쉬웠다. 한양은 녀석의 후속타를 차단하고, 오른쪽 발로 중심이 몰린 왼쪽 발을 빗자루처럼 땅을 쓸듯이 쓸었다. 그렇게 녀석의 왼발은 공중으로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의 왼쪽 깃을 잡은 한양의 오른손. 단순히 후속타를 차단하려고 잡은 것이 아니었다. 녀석의 중심이 무너지면 그대로 당겨서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
' 이게 시합인 줄 아나.. 왼발로 먼저 땅을 짚어서 중심을 찾고, 오른발로 이 녀석의 얼굴을 기습해야지. '
그렇게 반격을 하려고 한 곱슬머리지만, 한양은 여유롭게 말했다.
" 내가 실내에서 싸울 때 무의식적으로 파악하는 게 있어. "
" 바로 모서리들. "
곱슬머리는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도중에 걸리는 한 테이블. 그 테이블의 모서리에 왼쪽 관자놀이가 제대로 강타를 당하는 것이었다. 곱슬머리의 왼쪽 관자놀이에서는 출혈이 나기 시작했지만, 워낙 충격이 심한 탓에 반격도 하나 못해보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다른 녀석이 서한양을 기습하기 위해서, 뒤에서 한양의 어깨를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한양은 태연하게 오른손으로 녀석이 잡은 손의 손가락 중 하나를 잡아서 우드득, 부러뜨려 버린다.
" 뒤에서 공격할 거면 바로 쳤어야지. "
손가락이 부러진 녀석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한양은 "더럽게 떽떽거리네"를 작게 속삭였다. 그대로 왼쪽 팔꿈치로, 몸을 왼쪽 뒷방향으로 회전시키면서 녀석의 오른쪽 갈비뼈를 강타해서 쓰러뜨린다. 그 틈에 한 녀석이 나이프를 들고 한양에게 달려들기 시작한다. 아마 뒤에서 기습한 녀석을 처리하느라 두 손을 다 써서 빈틈이 생겼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 감히 칼을 들어? "
달려오는 녀석이 한양의 거리로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칼로 공격을 하기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녀석의 턱 중앙. 한양은 녀석이 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왼발을 앞으로 차서 녀석의 턱 중앙을 올려찬 것이다. 녀석의 얼굴이 그대로 위로 올라가고, 잠시 뇌의 흔들림을 느끼면서 주춤거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정면을 봤을 때는 왼손에 재떨이를 쥔 한양이 가까이 와있었다. 그대로 녀석의 입에 재떨이를 강제로 물리게 한 뒤에 오른쪽 주먹으로 녀석의 볼을 여러 번 강타하기 시작한다. 녀석은 무릎을 꿇고 쓰러지면서 입안에서 입에 물린 재떨이와 흐르는 피 그리고 부러진 이빨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 다 뱉었어? "
칼을 쥔 녀석은 무릎을 꿇은 채로, 불안한 눈빛으로 한양에게 시선을 옮긴다. 이내 곧 한양의 여유로운 눈과 마주쳤다. 이 말이 끝나자, 한양은 꿇은 녀석의 얼굴을 오른발로 세게 차면서 기절시킨다.
나머지 녀석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로 떨기 시작했다. 이 조직에서 가장 강한 녀석들이 떼로 덤볐음에도, 능력 없이 간단하게 제압한 한양을 보고서 싸울 의지를 잃은 것이다.
" 아.. 팰 생각은 없었는데.. 갑자기 덤벼가지고.. "
서한양은 " 이게 무슨 꼴이니? " 라며 작게 말하고는, 녀석들의 아지트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녀석들이 피해자를 협박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폰들을 발견했고, 한양은 아직 안 쓰러진 녀석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 이거 피해자들한테 사용한 핸드폰들이지? "
" 대답. "
" 네... "
" 패턴 뭐야? "
" 전부 다 'ㄴ' 모양이요... "
" 잠시만.. 어, 맞네. 땡큐. 너네 이거 말고도 입금받은 통장이나 계좌들 있을 거 아니야. 아, 잠시만. 저기저기 금고가 있네. 이 새X들 전산추적 막으려고 전부 다 현금으로 받았구만. "
" 영상부터 시작해서 음지와의 컨택까지.. 여기 다 있구만? 너네 이거 단순히 몇 년 가지고 안 끝나. 그거 알아? 나는 너네 팰 생각이 없었어. 대신 이 증거들 싹 다 긁어모으고, 너네랑 같이 거래한 음지의 위험한 분들까지 같이 엮어서 보내버릴려고 했거든. 나와서도 존X 불안하라고. "
" 근데 이게 생각보다 쉽게 잘 풀리네? 알아서 아지트까지 모셔다주고, 이곳에 증거가 다 있어. 저 노트북들도 챙겨야겠다. 불만 없지? 당연히 불만 없어야지. 불만 있으면 여기서 뒤지는 거야. "
그렇게 서한양은 녀석들을 교도소로 보내버리는 것은 물론이요, 바깥에 나와서도 음지의 녀석들에게 죽을 때까지 위협을 받을 만한 정보나 증거들까지 싸그리 챙겼다. 염동력으로 모든 증거물들을 공중에 둥둥 띄우며 나가기 시작했다.
" 내가 말했지만, 너네가 미성년자라도.. 이거 몇 년으로는 안 끝나. 그래도 도망갈 생각은 하지마. 그냥 안티스킬이 잡으러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 "
누가 힘에 도취되었느냐 묻는다니, 우습다. 세상이 흑과 백으로만 이루어진 새카만 뱀은 시선을 흘겼다. 그 빌어먹을 장소에서 약자였던 네가, 지금은 제힘이 어느 정도인 줄 아는 녀석이 당연하게 사고를 쳤는데 그것이 도취가 아니라고? 아직도 자신이 약자라 생각하나? 그 당시 약자였을지 모르나 지금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 아니면서, 네 당연하다는 듯 단천한 탐심으로 비롯되었으면서. 당신의 신경질적인 모습에 태오는 천천히 눈을 좁혔다. 제 목을 붙잡기 전까지 그 순간을 지켜보며 제 뒤집어지는 속내와 당신을 가늠했다. 끔찍한 시선이다. 목 부여 잡힌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아마 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커다란 구렁이 같은 시선은 절대 끝내지 않을 것이다.
"끄으- 흐흐- 으흐흑-"
숨이 막혔지만 발버둥 치지 않는다. 관자놀이에 심장이 하나 더 달린 것처럼 맥이 쿵쿵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창백한 납색 얼굴에 피가 몰려 붉은 기운이 어리고, 눈이 뜨거웠다. 그렇지만 고통스럽고 삶을 갈구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 순간이 더없는 영감을 주고 있었다. 솔리스가 말하던 낙원으로 곧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신의 입에서 속내를 먼저 뒤집은 자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귀가 먹먹하여 잘 들리지 않았다. 숨이 턱없이 모자라 이젠 웃지도 못했다. "……."
당신이 목을 놓자 태오의 표정이 굳었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굳은 표정이 꼭 안드로이드 같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실실 웃던 것과 달리 이 모든 것이 끔찍하다는 듯한 무표정이 얼굴에 자리했다. 이성이 돌아오고 감정이 식는 건 누구보다 빠르지만, 그간 억누르던 모든 것이 그것보다 더 빠르게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추잡하고 음험한, 심지어 끔찍한 생각이 사고 회로를 지배했다. 머리의 피가 식는다. 태오는 인형처럼 가만히 있었다. 당신이 주먹을 휘두를 적에도 무력하게 맞기만 했고, 코에서 피가 흐르고 다시금 입안이 터져도 고통스러운 기색 한 번 없었다. 입은 일자로 꾹 다물리고, 표정 없는 낯가죽에 쿡 박힌 구렁이 같은 눈은 끊임없이 당신을 향했다. 아니, 자신만의 어떠한 생각 속에 푹 빠진 것 같았다.
마침내 뺨에 새빨간 실선이 그인다. 붉은 궤적이 생기고 피가 흘렀다. 코, 뺨, 입안할 것 없이 화끈거렸다. 태오는 깊은 생각을 끝마쳤다는 듯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눈이 뻑뻑한 걸 보니 어느새 부었나 보다. 당신의 눈에 서린 감정과 달리 태오는 여전히 차분했다. 빌어먹게 차분했고, 끔찍하게, 세상 모든 부정적인 미사여구를 지금 붙여도 턱없이 모자랄 만큼 차분했다.
"……추하네."
당신은 치부를 들켰고, 무너진 듯한 모습을 지금 보여주었다. 짐승이어야 옳다. 그렇지만 어째서 태오의 눈에 비친 당신은 인간으로 보이는 걸까, 왜 네가 인간인 척을 하듯 멈춘 거지, 바라던 모습이냐며 물을 정도의 이성이 왜 있지, 왜 나만, 왜 나만, 왜? 어째서 나만 인간 탈을 저렇게 당연하게 쓸 수 없지? 왜 너는 자비를 갈구하지도 않았으면서 운 좋게 사람들이 손 뻗었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었다가 울지? 왜 너만! 너도 짐승이잖아, 나만, 나만 외롭게 이리 짐승일 리 없잖아……. 나만 외롭게 여기 틀어박힐 리가 없지 않은가. 태오는 고개를 느릿하게 돌리더니 입에 고인 피를 툭 뱉었다. 당신의 면전에 뱉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색이 선명하고 끈적했다.
"상당히 추해…… 그러니까…… 왜 멈췄어."
잔뜩 졸려 쉬이 돌아오지 않는, 끽끽 새는 듯한 목소리가 흘렀다. 다시금 태오는 질문했다. "왜." 천천히 손을 든다. 당신의 팔을 긁어내 피가 맺힌 긴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덮어 가렸다. 나만 외로이 짐승이다. 야생에서 보호받고자 도와달라 했더니 하필 사육사 손에 걸린 나머지, 인간 틈새에서 활개쳐도 사냥도 당할 수 없었는데. 사육장 안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로 폐사할 수 있었는데. "아……." 짧은 탄식이 아쉬운 것 같았다.
"다 식었잖아. 기껏 좋았는데……."
기회였는데. 더는 혼자 있지 않고 저기 내가 불태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나에게만 오지 않는 차례 드디어 얻고 나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무한한 영감 속을 거닐며 영영 나 추구하는 진리 찾고자 떠나고 남겨진 살덩이로 걸작을 완성할 수 있었을 텐데……. 이번에도 망했다. 이번에도 작품은 완성할 수 없다… 어쩌면 내 평생……. 태오는 음울하게 읊조렸다.
"바라던 모습이냐고, 아니, 바라던 것과 달라…… 알량한 인간의 경계 때문이라면, 아니면 네…… 지금 이 모습 들키기 싫었더라면 그 어떤 시도도 말았어야 할 것이… 주제 한 번 알려줬다고 날뛰다 멈추는 꼴이 제법 같잖아……."
왜 너는 그 모습을 추하다 여기는가. 태오는 안면을 더듬거리다 제 목을 두어 번 쓸더니 쥐었다. 스스로는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힘을 주었으나 스스로 할 수 없다. 손의 힘이 무력하게 풀리고 시야는 당신에게 맺힌다. 뱀 같은 손이 뻗어 나와 당신의 양 뺨을 콱 쥐려 들었다. 당신을 쳐다보는 듯싶으나 실상은 허공에 대고 멍을 때리는 듯한 시선 뒤로, 눈 색이 짙어진다. 이것의 눈 본디 비색 아니었는가, 마치 당신의 선배 중 하나인 안희야와 같이, 색이 꼭 물드는 듯한 착각이…….
"왜. 비참해?"
당신의 속내 의도적으로 파고들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비참하면 내게 알려줘. 어디까지 비참하고 괴로운지. 네가 인간이라면 인간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아내서 자료로 삼아야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