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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붉은 불이 켜져 있는 순간처럼 활기차고 뜨거웠다. 태양은 하늘 위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며 우리를 더위로 물들였다. 특히 서한양이라는 청년은 더위에 매우 약했기에, 누구보다 더 기운이 없었고 정체되는 기간이기도 했다.
빨간불이네, 아직은.
그리고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서는, 노을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며 우리에게 이별의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다. 붉은 노을은 지고, 날씨는 점점 선선해져갔다. 살을 태울 것 같던 열기는 점점 사라져가고, 이러한 열기의 퇴장은 더위로 거의 반쯤 죽어가던 한양의 기운을 다시 돋게 만들어줬다. 이제 가을이 되면 슬슬 자신을 돌아보고, 천천히 다시 움직여갈 기력을 챙겼겠다.
곧 노란불이겠네.
가을을 맞이할 날씨다웠다. 아직 노란불은 아니지만, 덥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 오늘은 옷을 여름보다 길게 입어도 됐겠다. 서한양은 주로 많이 있는 평범한 흰 티셔츠와 그 위에 하늘색 데님자켓을 걸쳤다. 하의는 간단한 검은색 반바지를 입었다. 아무리 늦여름이라지만, 두껍거나 긴 바지를 입으면 다리에 땀이 찰 것 같단 말이지. 여름의 열기가 다 지나갔어도, 선크림은 필수였고.
이렇게 깔끔하게 입으니,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다. 누구랑 만나기로 했냐고. 음, 아니다. 그냥 그렇게 입고 싶은 날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입고 혼자서 간 곳은 근처의 한 카페였다. 아직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은,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카페. 서한양은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키고, 자리에 앉고, 귀에 무선이어폰을 꽂았다.
무엇을 하려나 싶었더니, 에코백에서 태블릿 하나와 문제집을 꺼내서 인터넷 강의를 보고 있었다. 대부분은 여름에 보충공부를 하지만, 한양은 여름이 지나면서 깡통이 되었다. 이제와서 치려는 발버둥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남들이 보기에는 조용히 공부를 하는 성실한 청년 A로 보이겠지만.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카페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한양이 비운 음료가 서너 잔은 테이블 위에 있었다. 태블릿에서는 인터넷강의가 아닌, 한양이 좋아하는 외국가수어 라이브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포스트 말론을 좋아했거든. 집중력은 다 흐트러진 상태. 이제는 이어폰 너머의 익숙한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이 밝은 목소리. 리라양이구나.
서한양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야를 옮겼고, 모자를 쓴 리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양은 양쪽의 이어폰을 빼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리라에게 손을 흔들었겠다. 음료수가 한두 개가 아니네. 외향적인 아이이니, 친구들과 놀러온 것이려나?
" 어? "
한양은 미소를 짓다가, ' 저 사람 어디서 본 듯 한데? '가 대놓고 드러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겠다. 리라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니었다. 리라 근처의 한 여성. 아마 선경이라는 분이었겠지. 독으로 인해 위독했을 때 한양이 죽을 힘을 다 해서 병원까지 후송시켰던 분. 여기서 이렇게 다시 보다니.
맞닥뜨린 얼굴에 미소가 번지니 손을 마주 흔들 수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진다. 다만 간단히 대화 나누는 데에는 무리가 없으니 평소 그랬던 대로 뭐 하고 있었는지, 하루 잘 보냈는지, 결국 방학이 끝나가는게 퍽 아쉬운데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런 것들을 조잘조잘 물을 수 있었겠다. 그러나 그런 소소한 말들을 꺼내기 전에 한양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정확히는, 그의 동행자인 선경에게로.
'리라? 음료 다 나왔는데.'
양손에 음료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나타난 여성은 4~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액면가에 160cm 정도의 키를 가지고 있었다. 짧은 갈색 머리카락이나 온화한 갈색 눈동자, 안경, 단정한 차림새... 그 모든 것이 그 날 선경정신건강의학과에서 한양이 마주했던 의사의 모습과 똑같았을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때보다 훨씬 안색이 나아 보인다는 것 정도였을까.
"선생님! 마침 잘 오셨어요. 여기여기, 저희 학교 저지먼트 부부장님인데요! 서한양 선배님이라고. 이 선배님이 그때 병원에서 박호수 일 있었을 때 선생님 응급실까지 데려다 드렸던 분이에요!"
한양의 이름이 리라의 입에 오르는 순간 선경의 눈동자가 한양에게 곧게 향했다. 그리고 곧 그 눈은 다정한 미소로 하여금 부드럽게 휘어진다.
'아, 학생이 그...! 반가워요. 얘기는 들었는데 그 뒤로 영 정신이 없는 바람에 감사 인사 한 번 하러 가지도 못 했네.' "두 분 다 바쁘셨으니까요. 그래서 언제 한번 날 잡은 뒤에 한양 선배님 센터로 초대할까 했었는데~ 어떻게 또 이런 식으로 만났네요!" '그러게. 한양 학생이라고 했었죠? 너무 늦게 인사하게 돼서 미안해요.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더라고요."
직후, 선경의 눈에 짙은 걱정이 서렸다.
"한양 학생도 그 당시에 병원까지 오면서 많이 무리했다고 들었는데. 걱정했어요. 몸은 좀 어떤가요? 아픈 덴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