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금을 모티브로 하고있지만 잘 모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상황극판의 기본 규칙과 매너를 따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오고 가는 이에게 인사를 하는 자세를 가집시다. ※상대를 지적할때에는 너무 날카롭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15세 이용가이며 그 이상의 높은 수위나 드립은 일체 금지합니다. ※특별한 공지가 없다면 스토리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7시 30분~8시쯤부터 진행합니다. 이벤트나 스토리가 없거나 미뤄지는 경우는 그 전에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이벤트 도중 반응레스가 필요한 경우 >>0 을 달고 레스를 달아주세요. ※계수를 깎을 수 있는 훈련레스는 1일 1회로, 개인이 정산해서 뱅크에 반영하도록 합니다. 훈련레스는 >>0을 달고 적어주세요! 소수점은 버립니다. ※7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 경우 동결, 14일 연속으로 갱신이 없을경우 해당시트 하차됩니다. 설사 연플이나 우플 등이 있어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존 모카고 시리즈와는 다른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따라서 기존 시리즈에서 이런 설정이 있고 이런 학교가 있었다고 해서 여기서도 똑같이 그 설정이 적용되거나 하진 않습니다. R1과도 다른 스토리로 흘러갑니다. ※개인 이벤트는 일상 5회를 했다는 가정하에 챕터2부터 개방됩니다. 개인 이벤트를 열고자 하는 이는 사전에 웹박수를 이용해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벤트를 진행하는 이는 계수 10%, 참여하는 이에겐 5%를 제공합니다.
"적어도 세은이는 눈칫밥을 조금 먹고 구박받는 것이 싫어서 내가 데리고 나온 것으로 알고 있을거야. 그런 이야기를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인 애에게 직접적으로 말할 순 없었어. 일단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야. 그건."
물론 세은에게 숨긴 비밀은 여러개 있긴 했지만 그걸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친구라고 한들, 모든 것을 반드시 다 알아야만 하는 법은 없었으니까. 청윤에게만 살짝 밝힌 사실이라던가, 지금 여기서는 또 말하지 않은 작은 자잘한 것들이라던가. 자신만이 아는 '학대'라던가. 그런 것들은 굳이 더 말하지 않고 조용히 제 가슴 속에 묻고 싶다고 은우는 생각했다.
또 다시 자신의 동생을 향한 죄책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눈을 감았다. 그나마 올해 초 봄보다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이 마음만큼은... 아마 영원히 사라지는 일이 없겠지. 자신이 죽는 그 날까지. 그렇게 생각하며 은우는 혜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 삶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지만... 네가 나와 세은이의 삶을 산 적이 없듯이, 나도 네 삶을 산 적이 없으니까 정확히 어떻다고 할 순 없지만... 나라면 차라리 이곳의 삶이 더 나을 것 같은걸. 인첨공은 참 무서운 곳이야.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지옥같고 무서운 곳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 지옥같고 무서운 삶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거든. 하하. 그건 내가 레벨5고 경제적 어려움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객관적으로만 보자면 은우는 이곳에서 7번째로 강한 능력자이며, 그만큼 대우를 받고 혜택도 많이 누리는 이였다. 그렇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하는 씁쓸한 웃음소리를 내며 그는 곧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존경받을 정도의 인물은 아니야. 내가 원망스럽다면 계속 원망해도 상관없어. ...아니. 너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수도 있겠지. 너만이 아니라 정하라던가, 수경이라던가, 새봄이라던가."
제 동생의 친한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그는 조용히 손가락을 접었다. 제각각 친하게 지낸 기억은 없었으나 따지고 보면 자신은 그들에게서 제 여동생을 뺏어가고 어둠 속으로 처박아버린 존재였다. 그 네명이 모두 자신을 저주하고 원망한다고 해도 자신은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가족은 그렇게 해주지 않아도, 널 생각해주는 이는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남자친구도 있는 것 같고, 그 외 너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이들 은근히 많잖아. 가족이 그래주지 않는다면, 다른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과 잘 지내면 될 뿐이야. 가족이 먼저 너를 버렸다고 한다면 너도 가족을 버리면 그만이야. 너에겐 그 정도의 능력이 있고 힘이 있고 여건이 있어. 아니야?"
이어 그는 마찬가지로 피식 웃으면서 두 어깨를 으쓱했다.
"남자친구 있는 기분은 어떤 느낌이야? 믿거나 말거나지만 레벨5, 퍼스트클래스임에도 불구하고 연애 한번 못해본 나로서는 은근히 궁금하던데. 아. 그 부분은 프라이버시라서 말하기 좀 그런가?"
"곧 개학이구나?" "네에……." "왜, 학교에서 또 불량하다 말 들을까 싫니?" "조금은 그렇답니다, 인간의 편견이란 완고한 법이니……." "놔둬라, 담탱이나 학우들이 뭐라 해도 얼마 안 남았으니." "……담탱, 이요." "……요즘엔 안 쓰니?" "……시쳇말이죠." "……." "……."
여름도 슬슬 끝물이다. 해 떨어져도 식지 않던 더위에 잠 못 이루던 열대야도 어느샌가 지나갔고 그에 따라 공기 중의 습기 또한 천천히 사라지는 게 곧 있으면 단풍이 지고 완연한 가을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듯하다. 이 카페 저 카페에서 우후죽순 내놓아졌던 여름 맞이 신메뉴나 빙수들은 어느새 소비자층의 관심에서 뒤로 밀려났으며, 영광스러운 인기 메뉴 자리는 조금 이르게 출시된 가을 신메뉴 혹은 조금 덜 차가운 음료들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장 내부는 아직 에어컨이 상시 가동되고 있었다. 차가운 냉방기 바람은 무더위를 쫓아내는 현대 문명의 축복이지만 동시에 추위에 약한 몇몇 사람들에게는 꽤 고달픈 것이라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바깥의 더위와 반대되는 실내의 냉기로부터 몸을 방어할 겉옷을 상시 구비하고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리라도 예외가 아니다. 흰 바탕에 검정 체크 무늬가 새겨진 남방은 충분히 넉넉한 크기로 냉방장치에서 비롯된 서늘함을 적절히 커버해주고 있었으며 손에 들린 핫 페퍼민트 티는 빠르게 식을지언정 손바닥에 온기를 전달해준다. 아직 나오지 않은 음료들을 기다리는 동안 먼저 나온 티를 한 모금 마시면 따뜻함과 상반되는 상쾌한 맛이 목구멍에 퍼지니 역시 다가올 가을을 준비할 음료로 적절하구나 싶다. 정기 상담을 마친 후 센터 선생님들의 커피를 사기 위해 마실을 나온 선경을 짐꾼 명목으로 따라붙었는데 그러길 잘했다 싶다. 방학이라서 그런지 이 시간대의 카페는 유독 더 붐비는 것 같다. 카공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 수다 떠는 또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활기찬 풍경이 썩 마음에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리라는 캡모자를 더 꾹 눌러썼다.
"어?"
그런데 이게 누구람. 모자 챙 아래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실내를 탐색하던 두 눈동자가 어느 한 곳에 멈췄다. 검은 머리. 익숙한 얼굴. 학원도시라는 공간 특성상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만남에서 반가움을 느끼는 건 또 별개다. 때마침 픽업대에 올라온 음료 캐리어 하나를 집어든 리라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한양에게로 향했다.
"한양 선배님! 안녕하세요!"
한 손에는 음료 캐리어, 한 손에는 제 몫의 음료가 담긴 컵이 들렸어서 손을 흔들지는 못했지만.
그럼 적어도 눈칫밥에 구박 받은 것은 기억한다는 것일까. 아무 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아는 것과 하나도 모르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 하나하나 열거하기는 어려우나 그 조금의 차이가, 최악과 최선을 나누는 것 만은 분명했다.
"세은이가 고작 4학년이었으면 부장님은 고작 6학년이었죠. 그걸 혼자 속에 묻고 선택을 했다는 점도 대단한 거에요. 그 나이에."
어쩌면 그것이 부모님 대신 세은이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에서 나온 행동일 지도 모르지만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이란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모르지만.
"차라리 이곳이 낫다라... 뭐, 부장님에겐 그렇다면 다행 아닌가요. 잘 됐네요."
대화가 너무 무겁지 않게 적당히 대꾸하던 나는 은우를 향해 다시금 조소를 날렸다.
"부장님이 스스로를 비난하는 건 뭐 상관 않겠는데, 제가 부장님을 원망하든 존경하든 그건 제 자유에요. 제 말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고. 부장님이 해도 상관없다느니 할 자격, 권리 없으니까, 자책은 혼자 침대 속에서나 하세요."
조소와 더불어 쓰게 내뱉고서 자세를 조금 고쳐 앉았다. 늘어졌던 상체를 일으키며 다리를 슥 꼬다가 참나, 하고 작게 읊조렸다. 곧 은우에게도 까칠하게 말했다.
대놓고 빈정거리고 눈을 가늘게 떠 은우를 흘겨보았다. 연애 기분 어쩌고는 둘째 치고, 그 앞서 했던 말에 짚을 것이 있었다.
"부장님, 방금 하신 말 말인데요. 가족이 아니어도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과 잘 지내면 되지 않냐. 예, 그 말 맞긴 해요. 정론이죠. 그런데 그랬던 사람들도 다 한 번씩은 그랬다면, 저는 대체 누구와 잘 지내야 할까요? 결국은 돌아왔고, 그들에게도 사정은 있었겠지, 하며 넘어가줘야 할까요? 그래도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왔고, 저를 생각해주니까?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하! 숨을 터뜨리듯 웃음소리를 냈다. 눈매를 한껏 구겨 짜증을 여실히 드러냈다가 슬그머니 풀어내곤 은우에게 질문했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요. 부장님, 현태오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요? 안희야도요. 걔들도 날 버렸다가 돌아와서 뒷수습 안 해주는 유사 가족인데, '부장님 조언대로' 버리기 전에 뭔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지는 좀 알아야 할 거 같아서요."
제 눈에는 대화가 아니라 싸움을 거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은우는 그냥 적당히 넘기기로 했다. 저런 태도 또한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능했으니까. 굳이 여기서 저 말에 하나하나 말꼬리를 잡아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의 말따마다 어떻게 하는지는 그녀의 자유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유로 두면 좋지 않을까 생각을 하나 그는 그 말을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꿀꺽 삼켰다.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은 또 없어서. 글쎄. 내가 좋다는 이가 있으면 생각 정도는 해볼까."
피식 웃으면서 답하는 것이 처음부터 진지하게 묻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지금도 그다지 진지하게 말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조금 쉬었다가 슬슬 생각을 해볼까. 딱 그 정도의 감각은 있었으나, 지금 당장 연애를 하고 싶다? 그것까진 스스로도 알길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연애를 하긴 하는구나. 그런 확신을 가지면서 그는 살며시 리스트를 생각했다. 물론 확정이다 못해 모르면 바보가 아닐까 싶을 정도의 이가 떠오르긴 했지만.
"나라면 상대방의 사정을 생각하고, 내 감정을 생각해서 내가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용서할거고, 아니라고 한다면 거기까지라고 생각할거야. 결국 선택해야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내 감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다른 이의 눈치를 볼 것 없이 내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 물론 세은이의 오빠로서는... 세은이와 잘 지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내가 강요할 순 없고, 그 부분은 세은이의 몫이니... 내가 더 뭐라고 하긴 힘들 것 같네. 아무튼... 사람은 많으니까 또 맞는 이가 있겠거니 하고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정말로 네가 마음 속으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다면 말이야."
그녀가 말하는 이들이 누구인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은도 포함이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생각을 덤덤하게 밝혔다. 물론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에게 있어선 혜우 역시 세은이가 가장 힘들때, 가장 도움이 필요할때 연락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주지 않은 이였으니까. 하지만 너는 왜 그랬니? 그때 세은이가 어쨌니. 그런 것을 지금 따져봐서 뭐하겠는가. 그렇기에 그는 조용히 말을 삼켰다.
이어 들려오는 물음. 태오와 희야. 그 둘의 일에 그는 피식 웃어보였다. 이어 그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표정을 굳혔다.
"알고 있어. 다만 뭔 짓거리를 하고 있냐가 아니라 뭔 짓거리를 '당했냐'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 했다면 내가 이것저것 말해줄 수도 있겠지만, 당한 것이기에 함부로 말할 순 없어. ...그 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난 그 둘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어. 그렇기에, 그 둘이 말하지 않은 '당한' 사실을 내 입으로 먼저 말할 순 없어. ...알리고 싶어하지 않은 것을 굳이 후벼파고 싶진 않거든. 네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말이야."
>>132 4개도 너무 많네요. 2개였던 것 같은데? 적어도 제가 탄 배는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혹시나 불안하면 멀미약 하나 먹고 타면 어지간하면 멀미 하는 일 없을 거예요. 아마. 배 여행... 괜찮았어요. 안에 목욕탕도 있고, 오락실도 있고 노래방도 있고 24시간 편의점도 있고 카페도 있고... 솔직히 한번은 타볼만하다고 생각해요.
여름은 붉은 불이 켜져 있는 순간처럼 활기차고 뜨거웠다. 태양은 하늘 위에서 불꽃처럼 타오르며 우리를 더위로 물들였다. 특히 서한양이라는 청년은 더위에 매우 약했기에, 누구보다 더 기운이 없었고 정체되는 기간이기도 했다.
빨간불이네, 아직은.
그리고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서는, 노을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며 우리에게 이별의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다. 붉은 노을은 지고, 날씨는 점점 선선해져갔다. 살을 태울 것 같던 열기는 점점 사라져가고, 이러한 열기의 퇴장은 더위로 거의 반쯤 죽어가던 한양의 기운을 다시 돋게 만들어줬다. 이제 가을이 되면 슬슬 자신을 돌아보고, 천천히 다시 움직여갈 기력을 챙겼겠다.
곧 노란불이겠네.
가을을 맞이할 날씨다웠다. 아직 노란불은 아니지만, 덥지도 쌀쌀하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 오늘은 옷을 여름보다 길게 입어도 됐겠다. 서한양은 주로 많이 있는 평범한 흰 티셔츠와 그 위에 하늘색 데님자켓을 걸쳤다. 하의는 간단한 검은색 반바지를 입었다. 아무리 늦여름이라지만, 두껍거나 긴 바지를 입으면 다리에 땀이 찰 것 같단 말이지. 여름의 열기가 다 지나갔어도, 선크림은 필수였고.
이렇게 깔끔하게 입으니,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다. 누구랑 만나기로 했냐고. 음, 아니다. 그냥 그렇게 입고 싶은 날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입고 혼자서 간 곳은 근처의 한 카페였다. 아직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은,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카페. 서한양은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키고, 자리에 앉고, 귀에 무선이어폰을 꽂았다.
무엇을 하려나 싶었더니, 에코백에서 태블릿 하나와 문제집을 꺼내서 인터넷 강의를 보고 있었다. 대부분은 여름에 보충공부를 하지만, 한양은 여름이 지나면서 깡통이 되었다. 이제와서 치려는 발버둥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남들이 보기에는 조용히 공부를 하는 성실한 청년 A로 보이겠지만.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카페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한양이 비운 음료가 서너 잔은 테이블 위에 있었다. 태블릿에서는 인터넷강의가 아닌, 한양이 좋아하는 외국가수어 라이브영상이 틀어져 있었다. 포스트 말론을 좋아했거든. 집중력은 다 흐트러진 상태. 이제는 이어폰 너머의 익숙한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이 밝은 목소리. 리라양이구나.
서한양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시야를 옮겼고, 모자를 쓴 리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양은 양쪽의 이어폰을 빼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리라에게 손을 흔들었겠다. 음료수가 한두 개가 아니네. 외향적인 아이이니, 친구들과 놀러온 것이려나?
" 어? "
한양은 미소를 짓다가, ' 저 사람 어디서 본 듯 한데? '가 대놓고 드러나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겠다. 리라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니었다. 리라 근처의 한 여성. 아마 선경이라는 분이었겠지. 독으로 인해 위독했을 때 한양이 죽을 힘을 다 해서 병원까지 후송시켰던 분. 여기서 이렇게 다시 보다니.
맞닥뜨린 얼굴에 미소가 번지니 손을 마주 흔들 수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진다. 다만 간단히 대화 나누는 데에는 무리가 없으니 평소 그랬던 대로 뭐 하고 있었는지, 하루 잘 보냈는지, 결국 방학이 끝나가는게 퍽 아쉬운데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런 것들을 조잘조잘 물을 수 있었겠다. 그러나 그런 소소한 말들을 꺼내기 전에 한양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정확히는, 그의 동행자인 선경에게로.
'리라? 음료 다 나왔는데.'
양손에 음료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나타난 여성은 4~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액면가에 160cm 정도의 키를 가지고 있었다. 짧은 갈색 머리카락이나 온화한 갈색 눈동자, 안경, 단정한 차림새... 그 모든 것이 그 날 선경정신건강의학과에서 한양이 마주했던 의사의 모습과 똑같았을 것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때보다 훨씬 안색이 나아 보인다는 것 정도였을까.
"선생님! 마침 잘 오셨어요. 여기여기, 저희 학교 저지먼트 부부장님인데요! 서한양 선배님이라고. 이 선배님이 그때 병원에서 박호수 일 있었을 때 선생님 응급실까지 데려다 드렸던 분이에요!"
한양의 이름이 리라의 입에 오르는 순간 선경의 눈동자가 한양에게 곧게 향했다. 그리고 곧 그 눈은 다정한 미소로 하여금 부드럽게 휘어진다.
'아, 학생이 그...! 반가워요. 얘기는 들었는데 그 뒤로 영 정신이 없는 바람에 감사 인사 한 번 하러 가지도 못 했네.' "두 분 다 바쁘셨으니까요. 그래서 언제 한번 날 잡은 뒤에 한양 선배님 센터로 초대할까 했었는데~ 어떻게 또 이런 식으로 만났네요!" '그러게. 한양 학생이라고 했었죠? 너무 늦게 인사하게 돼서 미안해요. 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더라고요."
직후, 선경의 눈에 짙은 걱정이 서렸다.
"한양 학생도 그 당시에 병원까지 오면서 많이 무리했다고 들었는데. 걱정했어요. 몸은 좀 어떤가요? 아픈 덴 없나요?"
한양의 시선이 향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선경. 둘이 먼저 눈이 마주쳤나 모르겠지만, 리라는 곧 다정하게 선경에게 한양의 소개를 해주었다. 리라가 한양을 소개해주는 동안 한양은 속으로 작게 안심을 했었을 것이다. 전에 봤던 모습과는 매우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한동안 리라의 눈치가 보여서 무사히 퇴원했냐는 질문을 건네지 못했었다. 혹여나 정말로 잘못되어도, 리라는 부원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다는 이유로 밝은 모습을 보였겠지. 그래서 질문을 못했다. 혹여나 아픈 곳을 건들까봐. 하지만 다행이야. 퇴원소식을 차마 접하지지를 못했는데, 건강하셔서 다행이야.
선경의 반갑다는 얘기에 한양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 아, 예예.. 안녕하세요.."라고 어색하게 인사했다. 역시 처음 보거나 아직 안 친한 사람은 힘들어. 아, 저 사람이 힘들다는 게 아니다. 한양이 힘든다는 거지. 현장이나 부실에서 부부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도, 역시 천성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은 완벽히 숨기지 못했겠다. 사실 대화를 이어나감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렇게 만남이 시작될 때가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겠다. 오너의 손으로는 당장 서술할 수 없는 그런 어색함. 그것도 한양 본인만 느끼는..
이어지는 리라의 말. 언젠가는 한양을 센터에 초대할려고 했었다고 한다. 한양은 머쓱 웃으며 말했다.
" 에이, 무슨 초대까지 해. 리라양도 나중에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세요. 그거면 됐어요. "
" 아,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그렇게 할 사람이지, 리라양은. 뭐 어쨋든 간에.. "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말을 끝냈을 것이다. 텍스트로만 보면 무안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만, 입으로 뱉는 톤과 어투는 잔잔하고 온기가 있었다. 건네주는 호의에 무안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한양이 칭찬에 약해서 나오는 서투른 표현이었다. 이어서 신경은 한양에게 늦게 인사를 드려서 미안하다고 말했고, 한양은 두 손을 작게 흔들며 괜찮다고 말하였다.
" 죄송할 필요 없으셔요. 건강하셨으니깐..굳이 얼굴로 안 봐도, 그게 가장 크고 반가운 인사죠. "
선경의 걱정어린 눈빛. 한양은 선경을 후송하고나서, 순간적으로 매우 과도한 힘을 사용했기에 병실에 누웠다. 사실 치료랄 것도 없이, 링겔 하나 맞고 하룻동안 휴식을 취한 게 전부이긴 한데.. 이걸 듣지는 않았겠지?
" 저 완전 멀쩡해요! 다음 날에도 쌩쌩하게 돌아다녔는 걸요. 선생님 지금까지 걱정하셨겠네. 괜찮으니깐 이제 내려놓으셔요. "
코피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리한 보람은 있었는지, 몰려오던 천마리의 괴생물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그래도 채엑이었던 설탕시럽을 밟지 않은 개체는 동료를 밟고 넘어오려나 싶어 긴장을 놓지 않는데... 어라? 천장 위에서 동월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천장이 말 그대로 내려앉아 깔끔하게 괴물들이 있는 곳만을 깔아뭉개는 광경에 새봄은 눈만 끔뻑이다, 정신을 차리고 동월이 걸터앉은 천장을 향해 다가가 위로 올라섰다. 그러고는 그가 건네는 말이 저를 향한 칭찬임을 인지했음에도 답할 틈도 없이 청각과 시각을 곤두세웠다. 혹시나 깔리지 않은 벌레가 있어 이쪽으로 올라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숨을 죽이고 있어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새봄은 그제야 숨을 돌리고 동월을 향해 생글 웃으며 대답했다.
"아하하, 그냥 평범하게 살아서 졸업하고 싶은 레벨 0이면 위기상황에 이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칭찬 감사해요."
뭐 목표가 생존이 아니라 결사항전이 될 뻔도 한 것 같지만, 그래도 이번 경험 덕에 어지간한 실전은 어우, 노래도 부르면서 할 수 있을지도? 뭐 잠입같은 거라면 노래 부르면 안되겠지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앤이에요. 앤 셜리. 한 때는 제럴딘, 코델리아 피츠제럴드같은 근사한 이름을 가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포기했어요. 제가 그렇게 불러달라고 해봤자 저만 우스워진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아! 저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에이번리에 있는 그린게이블즈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빨간머리랑 주근깨가 컴플렉스니까 그걸로 놀리시면 석판으로... 아참참! 제 소개를 하자면 끝이 없으니까 이쯤 마무리하고 제가 놓인 상황에 대해 말해볼게요.
저는 분명 방과 후에 다이애나와 집에서 놀기로 약속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교실을 빠져나왔는데, 세상에! 학교가 이상해졌지 뭐예요! 건물도 이상하고 여긴 다이애나는 물론이고 제인도 루비도 조시 파이조차도 없어요. 그래도 화단의 꽃들은 무척 아름다워서 무심코 매료당한 탓에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뭐라고 이름을 붙여줘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웬 흰 가운을 입은 분들이 저를 신새...봄? 뭐 그런 이상한 이름으로 부르더니 절 우악스레 끌고 가시지 뭐예요! 제 이름은 앤 셜리고 사람 잘못 보셨다고 침착하게 말도 해보고 발버둥도 쳐봤지만... 소용 없었어요.
앗, 그래도 한 분은 말이 좀 통하시더라구요! 제가 앤 셜리라는 것도, 이상한 학교에 조난당한 것도, 심지어 화단의 꽃의 이름을 이사벨라라고 하고 싶다는 것도 다 들어주시더니, 제가 겪고 있는 기현상에 대해 설명해주셨어요. 이야기하면 길지만, 중요한 건, 이 세계에서의 저는 상상력과 먹을 수 없고 살아있지 않은 물건들만 있으면 맛있는 것들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게다가 며칠간 여기에 머물면서 달콤한 것들을 만들어내면 (그게 실패작이라도 괜찮으니) 집으로 보내주시겠대요! 그래도 다이애나와의 약속에 늦을까봐 걱정이 돼서 지금 보내주시지 않으면 안되냐고 했는데, 지금은 곤란한 가봐요... 그래도 할 일을 마치고 에이번리로 돌아가면, 교실을 나온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갈 거래요! 마법의 힘이라나요~.
그래서 훈련실이라고 하는, 정말 제가 본 실내시설 중 가장 재미없게 생긴 방으로 들어가서 커다란 대야에 접시를 넣고, 그걸 사과파이로 만드는 상상을 하게 됐어요. 제가 파이는 정말 잘 굽는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마릴라 아주머니와 함께 파이를 구웠을 때를 상상하며 열심히 떠올렸어요. 새빨갛게 익어 싱싱한 향을 풍기는 사과의 껍질을 벗겨 노란 속살을 드러내고, 자그마한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서 흑설탕, 레몬즙, 계피가루를 넣으면 새콤달콤한 속이 완성되지요. 그런데 왜일까요? 상상을 하면 할 수록 머리가 아파져서 생각이 끊겼더니 접시는 온데간데 없고 보글보글 끓는 사과파이 속재료만 웅덩이를 이루고 있지 뭐예요. 속재료만 따로 있으니까 영 맛이 없어보이네요... 그래도 실패작이라 해도 괜찮다 해주셨으니, 전 곧 에이번리로 돌아가 다이애나와 놀 수 있겠죠? 그 애가 저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제 방이라고 안내해주신 곳에서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답니다! 돌아가서 오늘 겪은 일들,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을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어쩌면 좋은 소설의 소재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오늘은 이만 하고 자야겠어요. 내일은 파이보다 간단한 걸 만들어 봐야겠네요!
내 태도가 어느새, 아니 처음부터 적대적이었음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대화 중에 존경심이 새로이 솟았다 한들 그만큼 원망이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단지 최은우라는 인간에게 새로운 감상이 추가되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니 내 이런 거슬리는 부분을 지적한다 해도 코웃음을 쳤겠지만 단 한 번의 지적도 들어오지 않았다. 되려 그 포용하는 듯한 태도에, 흘려넘기는 저 태도에 나만 긁혀가고 있었다.
그 태도로 나를 대한다는게 참을 수 없이-
"...생각 정도는 해본다니 참 여유가 넘치시네요."
웃음기 없이 메마른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어지는 말에는, 바로 뭔가 말하지 않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보면, 나는 내 원래 성격이란 걸 몰랐다. 집- 그 저택에서는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죽은 듯이 있어야 했고 데 마레에서는 미움 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착한 아이인 척 해야 했고 영락에서는 하루하루 미쳐버리지 않게 정신을 붙잡고 있는게 고작이었고 같은 말이라도 표정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걸 알았고 무표정보다는 웃는게 인간으로 받아들여지기 쉬운 걸 알았고 그래서, 그러니까, 그랬으니까.
그러므로 내가 지금 취해야 할 태도는.
"...습, 후-..."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서 심호흡을 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것을 하면 됐다.
감정을 죽이고, 기분을 죽이고, 이 상황을 넘기면 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래.
나는 차분히 감정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들었다.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로 말했다.
"부장님의 의견은 잘 들었어요. 분명 사람마다 다른 생각과 가치관이 있으니, 저와 생각이 다르실 수도 있겠죠. 저는 용서하고 용납하고 그러지 않을 거에요. 거기에 대해선 세은이하고는 이미 얘기가 끝난 상태에요. 이제 세은이 차례일 뿐이죠. 세은이 본인이, 다시 친구가 되겠다고 직접 말했으니까요. 직접 한 말을 지킬지 이번에도 버릴지는, 세은이 하기 나름이에요. 전 그저 지켜볼 뿐이구요."
나는 마시지 않은 이온음료를 챙겼다. 완전히 미지근해진 캔을 후드집업 주머니에 넣었다.
"태오와 희야에 대해서는, 말하실 것이 없다면 그런 줄 알게요. 말하지 못 한다는 사실 만으로 충분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멋대로 끌어온 의자를 제자리에 넣고 부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귀한 시간 낭비하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귀가할 테니 마저 일 보세요. 안녕히 계세요."
나는 돌아서 내 자리로 가 내 가방을 챙겼다. 가방을 한 쪽 어깨에 올려 걸치고서 부실 입구로 갔다. 뒤에서 붙잡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 나는 주저없이 부실을 나갔을 것이었다.
//은우야 고맙다 덕분에 초기 혜우 생각이 났다 혜우 잡는거 아니면 그냥 가버릴 거라, 이걸로 막레 해도 되고 따로 막레 써줘도 좋다
다소 어색하고 머쓱한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그저 만족스러웠는지 똑같이 미소지으며 한양을 바라볼 뿐이다. 특히 선경은 한양의 현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 눈에 띄게 안심한 기색을 보였다.
'다행이네요. 한양 학생이 그 일 때문에 계속 아팠으면 마음이 안 좋았을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또한 리라는 이 광경에 다른 의미의 안정을 느낀다. 여러모로 강력한 스크래치를 내고 지나간 초여름의 사건은 관계의 재정립과 안정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겼으니. 약의 종류와 양은 늘어났고 길어지던 상담 텀은 다시 짧아졌으며 종종 괴로운 기분이 되곤 했다. 하지만 역시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그 모든 고단한 일들이 마냥 의미없이 일어난 사건만은 아니었구나 하고 재차 느끼게 된다. 파도 쓸려간 자리에도 남는 것이 있다.
'사실 나는 리라가 저지먼트를 한다고 했을 때 조금 걱정했었어요. 하지만 한양 학생 같은 좋은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더 밝아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네요.'
내부의 일—이를테면 그림자와 위크니스 같은 것들—을 모르는 만큼 일면에 불과한 감상이었으나 그 또한 진실의 일부분이다. 리라는 저지먼트와 함께하며 옆 사람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법을 배웠으니까.
"물론! 좋은 건 잘 배워서 써먹어야죠. 그게 후배가 할 일 아니겠어요?"
다른 이의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일. 한양의 말에 리라는 웃는다.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만난 김에 뭐라도 사 주고 싶은데. 혹시 음료수는 이미 마셨나요?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다.'
그러던 중 어깨에 맨 가방을 뒤적이던 선경의 손에 작은 플라스틱 용기가 하나 딸려나왔다. 선경은 그것을 한양에게 내밀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덮개 안에는 분홍색, 노란색, 연두색의 다식이 각각 2개씩 들어있었다.
'내가 만든 거예요. 답례라기엔 약소하지만 가져가서 한번 맛봐요. 음... 아니면 고등학생인데 케이크 같은 게 더 좋을까?' "한양 선배님 떡이나 녹차 같은 것도 좋아하세요. 부실에서 간식 드실 때 보면 그런 거 자주 드시더라고요."
당장 봄에 마니또를 할 때도 건넸던 간식들에 대부분 긍정적 반응을 보여줬던 걸 고려하면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더 나을지도? 그건 한양이 가장 잘 알겠지만.
>>0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있었대?] "다들 먼가 화풍이 달라진 느낌이에여." [...그건 또 무슨 소리래?] "마치 의도적인 작붕 같은거 말임다. 시리어스 장르에 있는 코미디계 그림체인 캐릭터처럼여." [그렇게 설명해도 전혀 모르겠거든...] "에이잉... 대충 그런 검다. 설명하는 것두 귀찮아여..." [이젠 또 제풀에 지쳐서 늘어져있거든...]
물론 당장 보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이해할수 있을만큼 그녀의 모습 역시 며칠 전과는 딴판이었을까? 생전 본적 없는 단발, 더위를 타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복장, 세상 다 산 사람마냥 피로에 쩔어있는 인상까지... 단지 그녀라고 짐작할수 있는 거라곤 그녀가 늘상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것, 여느 훈련때와 다를 바 없는 패턴을 보인다는 것과 특유의 독보적인 실루엣 뿐이었을테다.
[걱정까지 될 정도거든...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바뀌면 죽음을 암시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했으니까.] "설마 그러겠슴까~ ...머, 솔직히 살아오면서 그런 생각 안해봤다곤 못하지만... 확실히 있던게 없어진 느낌이라 허전하긴 하네여. 그렇다 한들 어쩌겠슴까? 잃어버린건 노력해서 다시 찾으면 그만이고, 그래도 못찾는다면 다른 길을 선택하면 그만임다." [...단어선택 하나하나가 어째 청춘이랑은 거리가 멀어보이거든. 솔직히 말해, 너 점례 아니지?] "...이래서 눈치 빠른 유라는 아보카도인 검다." [뭐래.]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였지만, 다시금 그녀와 눈을 마주한 순간 자신의 의문이 모두 바로잡히는 경험을 했을테다. 그것은 일평생을 후회로 점철했던 인간성이 누락된 자의 말로가 느껴지는,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은 동공이었다.
>>252 시간아! 맞아라! 저 개인적으로 애린이vs크리에이터 보고 싶단 말이에요! (어?)
>>253 사실 그보다 조금 더 딥하긴 한데... 이 부분은 차후 챕터3에서 조금 더 묘사가 될 것 같으니 말을 아낄게요. 스포일러 조금만 하자면 대체 그 문제의 '높은 분'은 퍼클들에게 어떤 요구를 하고 어떤 지시를 하고 어떻게 대하는지 나오게 될 것 같네요. 직접적으로요.
휴. 다행스럽게도 한양이 기절한 사실은 알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사실 이걸 리라가 말했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지금 보니깐 말은 하지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다만 이제 조금 걱정되는 사람은... 웃음짓던 한양의 실눈은 잠시 반 정도 떠지며 리라를 흘끗 보았다. 하지만 곧 선경을 바라보며 다시 눈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 그 이상은 오지랖이겠지. 그래도 괜찮아보여서 다행이야. '
이후 선경은 리라의 저지먼트 활동에 대해서 많이 걱정했다고 한단다. 이어서 본인과 같이 좋은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밝아진다는 얘기. 박호수와의 싸움이 있었지만, 한양은 아직 리라에 대한 자세한 과거를 몰랐다. 점점 밝아졌다는 얘기는 곧 과거에 침울했던 적이 있다는 뜻이고.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아무리 같은 부원이라고 해도, 그 이상의 관계는 아니었으니깐. 그렇게 친한 은우나 철현이의 자세한 과거나 심리를 모르는 게 서한양이다. 그 둘보다 만날 일이 적은 것도 있고. 그래서 나온 대답은..
" 아아, 그래요? "
하지만 당사자가 점점 괜찮아지고 있으니깐 그만이었다. 적어도 한양을 비롯해서 다른 부원들이 리라에게 나쁜 영향은 주지 않는다는 의미 아닌가? 선경의 얘기를 한번 더 곱씹어보면, 어두운 걸로 추정됐던 과거도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의미였고. 그래서 서한양은 굳이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 저 음료수를.. 잠시 보자.. 벌써 네 잔이나 마셔서..헤.. 저 원래 어른이 사주는 건 거부 안 하는데.. "
뭐라도 사준다는 말에, 한양은 자신이 마신 음료수들을 가리키며 뻘쭘하게 웃는다. 사실 한잔으로 몇 시간을 버틸 수 있지만..사람들로 붐비는 이 카페에서 그러면.. 카페주인이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 한양 본인이 눈치가 보였다. 몇 시간 있을 거면 여러 잔을 시켜줘야 그래도 염치는 있지.
" 저 이런 거 엄청 좋아해요. 리라양, 사실 나 여기 있는 거 보고 만들어서 온 거지? 어떻게 이렇게 바로 내 취향인 간식이 나와요. "
한양은 헤실 웃으며 리라에게 말했다. 한양이야 뭐 사실 어떤 간식이나 음식을 가져다가 줘도 대부분은 잘 먹었다. 하지만 그것들 중에서 당연히 최애픽이 꼭 있기는 마련이다. 지금 선경이 건넨 다식이 한양의 최애픽에 해당된 것이고.
" 그럼 사양 않고.. 잘 먹을게요! "
한양은 선경이 건넨 다식을 받아들고서는, 부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에코백 안에 넣었다.
빨간모자는 할머니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 갈레트와 잼, 버터, 우유를 들고 숲속으로 향했어요. 하지만 숲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복잡한 공간이죠. 잘못하면 길을 잃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언제나 주위를 경계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해야겠죠?
"저건 뭐야?" "그러게? 여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저런 꼴로 스트레인지를 돌아다니네. 간이 처부었나?"
스트레인지 초입의 골목에서 알짱거리는, 하얀 머리에 붉은 망토를 두른 소녀의 존재란 첫눈에 이곳의 주민들에게 불청객으로 낙인찍히기 충분한 것이었다. 심지어 동화에나 나올 피크닉 바구니에 아기자기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양새 탓에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칙칙한 뒷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화사함은 자연스레 시선을 끌어낸다.
"야. 너 뭐냐?" "안녕하세요. 저는 빨간 모자라고 해요! 할머니 집에 병문안을 하러 가는 길이랍니다." "......엥? 뭐라고?" "혹시 어디로 가면 할머니 집이 나오는지 아세요?" "허? 참 나. 뭐? 뭐래? 이거 어디 좀 모자란 거 아냐?"
황당하게 바라보는 시선 직후, 상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명의 스킬아웃은 이 나사 하나 빠진 듯한 자칭 빨간 모자의 낯짝을 가만히 뜯어보았다. 반반한 게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사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할머니 집이라고 했냐? 나 거기 어딘지 아는데." "와! 정말요? 잘 됐다! 여긴 길이 복잡해서—" "길 안내해주는 값으로 오백." "...뭐?"
......뭐지. 방금 말투가 좀 달라진 것 같았는데. 스킬아웃은 순간 서늘해진 듯 했던 붉은 후드 아래의 얼굴을 미심쩍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내 머리를 살짝 털어냈다. 뭐가 중요하랴. 그래봤자 얼빠진 바깥 애새끼인데.
"오백만원이라고. 없어? 있을 것 같은데. 바구니 열어 봐." "갑자기 무슨 억지예요? 없어요!" "있는 게 나을 텐데. 열어보라니까— 아으아아악!"
얼빠진 바깥 애새끼— 였을 텐데. 스킬아웃은 멀쩡한 바구니의 입구에 자라난 날카로운 짐승의 이빨을 아연한 낯으로 쳐다보았다. 하얗고 뾰족한 이빨들이 바구니를 뒤지려던 손등을 파고들어 피가 진득하니 배어나온다. 다급히 고개를 돌린 그는 조금 전 함께 있었던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하지만, 이내 그 동료마저도 '빨간 모자'가 망토 안에서 꺼낸 길다란 분홍색 애벌레에게 목을 졸려 기절하고 말았다.
"어휴. 그러게 없다니까. 남의 바구니를 막 만지면 안 되죠! 이건 할머니께 가져다 드릴 거라고요!" "미, 미친......"
구멍 뚫린 손을 부여잡고 휘청거리고 있자니 다리에 얽혀드는 불쾌한 벌레의 감각이 선연하다. 스킬아웃은 순간 얼어붙고 만다. 다리에서 몸통으로, 몸통에서 목으로—...
숲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복잡한 공간이랍니다. 그러니 언제나 주위를 경계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해야겠죠? 예상치 못한 위험을 맞닥뜨릴지도 모르니까요.
빨간모자는 작은 분홍 애벌레 친구와 함께 도적들을 물리치고 다시 할머니 집을 향해 떠나갑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은우의 뺨이 뜨겁게 달궈졌습니다.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담배가 땅에 툭 떨어졌고, 은우는 표정을 살짝 찡그렸으나, 열중셧 자세를 풀 수 없었습니다. 그의 보고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의 앞에 앉아있는 학구장들의 장. 즉, 인첨공에서 제일 높은 그 분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자네에게 들어가는 지원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
"......"
"그깟 샹그릴라 문제 하나 해결을 못해서 다른 이를 동원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나마도 이렇게 늦게 해결했나? 퍼스트클래스라는 이름이 너무 아까운데? 자네가 아니라 웨이버가 했으면 훨씬 전에 먼저 해결했을 것 같은데. 왜 자네가 아니라 웨이버가 저격을 당했는지 이해가 안가는군. 아. 그나마저도 자네는 그때 병원에 입원했었지? 나약한 새X 같으니."
"....죄송합니다."
"에어버스터. 뭐 불만 있나?"
이어 그 높은 분은 앞으로 천천히 다가간 후에, 은우의 앞에 섰습니다. 탁! 강한 타격소리와 함께 은우의 고개가 옆으로 홱 돌아갔습니다. 이어 또 탁! 강한 타격소리와 함께 은우의 고개가 반대쪽으로 홱 돌아갔습니다.
"불만이 있으니까 일처리가 그따위잖아. ...퍼스트클래스라는 힘이 있는데 고작 그 정도 성과밖에 못 내? 자네가 그러고도 인첨공에서 7번째 강자라고 할 수 있나?"
"......"
"기분 잡쳤으니까 나가. 열심히 해라. 에어버스터. ...시원찮은 퍼스트클래스는 필요없어. ...네 동생 목숨 부지하고 싶다면 죽어라 해. 세상은 기브 엔 테이크. 너에게 준 지원만큼 성과를 못 내면 그 대신 갚을 것으로 갚아야지."
"알겠...습니다."
"담배꽁초 갖다 버려."
"...네."
다리를 굽혀 은우는 제 얼굴에 튀었던 담배꽁초를 줍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것이 기분을 가라앉히는 것일까요.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그는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대충 챕터1 끝나고 난 직후의 비하인드 스토리
퍼클들 대체로 높은 분들과 만날때 높은 분의 기분이 안 좋으면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그런 이야기.
제 3 학구의 은행이 복면을 쓴 강도에 의해서 털렸다고 한다. 그렇게 용의자로 추정되는 이들을 안티스킬로 소환했고, 조사를 진행했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치하는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들. 안티스킬 대원들은 믹스커피를 마시며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이를 구원할 영웅이 등장했으니..
" 한양이냐..? "
" 한양 홈즈라고 불러주시죠? "
' 멀쩡하던 놈이 갑자기 왜 그래? '
" 그래..무슨 일이냐? "
" 은행털이범. 여기 오자마자 범인을 찾았거든요. "
" 뭐?! "
한양은 바로 한명을 지목한다. 한양과 비슷한 체구,험악한 인상,패션 민머리,가죽 민소매 자켓 등의 특징을 가진 청년이었다. 청년은 억울한 듯이 항변했다.
" 뭐라고요?! 제가 왜요? "
" 이유는 지금 말해주죠. "
" 첫 번째.. 당신의 그 덜 깎은 수염. 두 번째.. 당신의 삼두에 선명하게 남은 칼자국.. 세 번째.. 전구와 같은 두상과 민머리.. 네 번째.. 당신의 그 험학한 눈빛.. "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박호수의 일을 해결하고 퍼졌던 소문이 거짓 소문임을 밝혔을지언정 부원들을 상대로 과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제대로 나눈 적은 아직 없으니까. 그게 맞는 일일지 아닐지는 사실 리라 본인도 모른다. 해명했을지언정 그 또한 말뿐이니 이곳에 들어오기 전 겪었던 일들을 바로 설명하지 않으면 해명을 믿지 않는대도 할 말 없는 처지임은 분명하나, 그는 아직 제 입으로 과거를 전부 말하기에는 조금 각오가 부족했다. 그리고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얹어줌으로서 마음의 짐을 더해주기 싫기도 했다. 그렇지 않나? 저지먼트를 아끼는 만큼, 또한 그들이 겪고 있는 일이 지독하게 큰일인 만큼 사적인 과거사 같은 걸 굳이 꺼내놓아서 머리 아프게 만들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그런 걸 굳이 힘들여 말하지 않아도 저지먼트가 리라를 믿어준다는 건 이미 증명되었기에. 그러니까 두렵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언젠가 각오가 충분히 되고,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먼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다식을 나누는 달콤한 이야기 시간이니까.
"선배, 여기 오래 계셨나 봐요. 하긴 카공 같은 거 하다보면 몇 시간은 그냥 훌쩍 가버리니까~ 선생님이 다식 챙겨오신 게 신의 한 수였네요."
사실 여기 있는 거 보고 만들어 왔냐는 말에는 장난스레 눈을 가늘게 떠 보이기만 했다. 물론 그러진 않았지만... 농담에 농담으로 받아치면 재밌지 않나? 그런 거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에요. 언제 또 먹고 싶거나 만들어 보고 싶으면 선 아녜스 센터로 와요. 방과후 교실 같은 것도 많으니까. 리라 선배면 3학년이니 많이 바쁘겠지만... 겨울 쯤에는 아마 한가할 테니까.'
내키면 들르라고. 그렇게 말하며 선경은 잠시 내려놓았던 음료 캐리어를 집어들었다.
'그럼 나중에 또 봐요, 한양 학생. 아! 목화고 저지먼트 학생들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줄래요? 덕분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저도 음료수 옮겨야 해서 이만 가 볼게요, 선배님! 나중에 또 봬요! 아 참. 금랑이 사진 좀 더 올려주세요!"
요즘 보고 싶더라고요, 추워지기 전에 금랑이랑 같이 밖에서 또 봐요! 그런 말을 건네며 리라는 유리문을 열었다. 양손이 꽉 차는 바람에 여전히 손 흔들 순 없지만 대신 고개를 푹 숙여보면서. 환한 미소로 우연한 만남의 즐거움을 마음껏 표현하는 거다.
/쓰다보니 막레 비슷하게 됐다! 이걸 막레로 해줘도 되고 막레를 써줘도 되고 더 이어줘도돼!
-그 소설의 물건이 되지 않은 점은 괜찮지 않나요? [그 소설의 물건... 하. 저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해피엔딩의 물건이 더.. 걸맞을 것 같답니다...] -그래도 황금 물고기의 모습은 굉장히 예쁘네요.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같이...하늘거리는 것이며... [잘 조절해주세요. 얼어죽고 싶진 않거든요] -첫번째 키스로 추위를 잊게 해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두번째는 무엇을 잊게 될 것일지... 궁금해지네요.] -아마도 인간적인 것들을요? [...그럼 티에게는 해피엔딩일까요?] -그건 알 수 없어요.
그러나 이런 대화는 if에 불과한 일이기에 진실로 일어난 일이었는지 알수는 없는 일이죠...
오늘 수경의 커리큘럼은 연지에서 수행되었습니다
"이 나풀거리는 끈은 뭐람.." 팔카타는 그것을 잡고는 희미한 충동을 느꼈지만 겨우 손을 놓았습니다. 수경은 그것을 놓고 싶지 않다는 듯하지만.. 숨을 내쉬고는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인첨공 앞바다에서 나풀거리며 떠다니다가 사라지겠죠...
"기숙사는 다음 학기에도 유지하기로 했다면서?" ".........네에." 약간의 침묵이 있었지만 진호를 비롯한 연지의 인원들은 긍정의 대답을 들었고 그 뒤로는 잊어버렸을 겁니다...
"...." -집은 어때요? 예쁘죠? 라고 자랑스럽게 내보아는 곳은 케잇가 얻었다는 공간입니다. 확실히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곳이었습니다. 수경과 다르게 현관문에도 쓴 흔적이 꽤 존재하는.. 그런 것이지요
-이제 저도 현관문 많이 안 쓸 수 있겠네요~ 가끔 와서 저랑도 쉬어요. 라는 말을 했었답니다.
>>0 어느날 탑 옆을 지나가다, 들려오던 노랫소리에 발걸음을 멈췄을 때. 노랫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까. 탑 위로 올라가 보려 하였지만 문이라곤 없는 탑에 포기하며 돌아섰지만,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당신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했으므로.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던 중에 탑에 다가간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그 탑을 오르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렇게 다음날 해가 저물고 어두워진 때, 탑 아래에서 위를 향해 외친다.
한결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믿고 학교에 하루 틀어박히면 된다더니, 과부 구렁이는 그렇게 인간 되었다. 그렇지만 한결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세상에는 여러 문학이 있고, 반드시 행복한 동화가 될 보장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문학 대다수는 철저한 욕망과 시대상, 그리고 작가의 의도에 따라 모든 것이 역변한다는 사실도.
"……지금이 그러니까… 언제라고요?" [민국 113년입니다.] "민국 26년이 아니라?"
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여덟 번째 물음이었다.
"……그럼, 일본은 어떻게 되었나요?" [어떤 의미인지…….] "젊은 청년들이 애국자가 되어 목청을 그렇게 높였는데…… 뭐,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마는 혹시나 하여서요."
한결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대체 무슨 소설이지?
"그것보다 빨리 가야 하는데." [어딜 가셔야 하는데요?] "당연히 공연장이죠. 오늘은 원대인께서 오신다고 하셨어요."
한결은 일단 소설 빙의가 망했다는 사실보다 더 끔찍한 것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소설은 자살로 끝나지 않았지만…….
그때 조그맣고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던 걸까. 그 머리 끄트머리가 네 턱에 닿을까말까 하는 조그만 성별 불상의 어린아이 하나가, 남루한 슬랙스에 셔츠 차림을 하고서는 딱 짚어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색의 눈과, 이상한 색의 머플러- 목 뒤로 늘어지는 게 아니라 무게가 없기라도 한 것마냥 바람 한 점 없는 허공에 나부끼고 있는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이상한 차림의 꼬맹이였다.
소년은 이내 망설임없이 하나뿐인 머플러를 끌러서, 발목이 잘려나간 다리를 동여매어주려 시도했다.
아 뭔가 몹쓸 상상했어 태오가 주인공인 웹툰 연재중인데 한이 일상이랑 성운이 일상이 번갈아 나오는 거임 근데 한이 일상에서 딱 그 장면에 끊기곤 그 담에 한 2주? 성운이 일상만 연재되서 댓글에 현태오 몇주째 잡혀있는 중, 한아 언제 태오 놓아줄거니 등등 댓글 달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운은 태오의 말을 가만히 경청했다. 그랬다. 성운은 태오의 팔에 새겨진 그것을 너무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나는 이것이 마음에 들어서 이런 장식을 내 팔에 얹었다-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이니 나를 건드리지 말아라. 단순한 「선호」 따위가 아니라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힘」의 표시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진 심오한 의미를 겨우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한스럽지만, 열여덟 살 어린 남고생의 머리로 짐작해볼 수 있는 한계가 거기까지인 것을 탓하도록 하라.
돌이켜보면, 그늘 속에서 자신을 흡사 죽어가는 짐승 보는 까마귀마냥 바라보던 그 시선. 자신이 일일이 공중에 들어올렸다 한번 내팽개쳐서 쫓아내었어야 했을 그 부랑자였으나, 그는 태오의 팔에 새겨진 그것만을 보고 줄행랑치지 않았나. 그건 단순히 어떤 미학이 아니었다. 어떤 권력의 징표이기도 했던 게다. 자신이 연고 없는 버러지가 아님을, 자신을 건드린 자는 합당한 수준 이상의 대가를 치를 것임을 드러내는 징표 말이다.
그리고, 그 힘의 출처가 결코 다른 이들 앞에 떳떳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닌, 그늘 속에 드리운 사악한 무언가에게서부터 나왔다는 것을 성운은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그 봉서를 준 어르신이라는 이의 존재와, 그 어르신을 가리켜 구렁이 운운하던 총잡이, 그리고 태오의 팔에 새겨진 뱀비늘······ 그리고 그런 힘을 얻었다고 하면, 자연스레, 자기 자신을 대가로 받아간 그 어둠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군침을 흘리지 않을지를 경계하게 될 것이다.
“거기까지는, 이해했습니다만······”
다행히도 이 녀석 눈치가 아주 눈먼 가자미 수준은 아니라 태오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전부 다 알아들은 듯하기야 하다만, 성운의 목소리에서는 다른 의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래, 혜우라면 학기 초만 해도 0레벨에서 머물러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러나 내 알기로 당신은 태생 3레벨의 강능력자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4레벨의 대능력자 반열에 이름 올린 이가 아닌가? 그런 당신이 왜 그런 것을 두려워해 굳이 그런 어둠에 몸을 의탁할 필요가 있었단 말인가···? 어둠에 굳이 의탁하지 않더라도, 명성 높은 연구소가 몇 곳이고 앞다투어 당신을 맡아주려 했을 텐데, 왜···? 성운은, 태오와 알터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모른다.
“······꺼내고 싶지는 않았던 이야기지만 다 읽으셨겠지요. ···모른 체하셔도 좋습니다.”
성운은 부지깽이를 뒤로 슥 밀어버렸다. 그렇지만, 당신이 혜우를 지켜주기 위해 그랬다 한다면 지금 혜우에게 걸려 있는 그 세뇌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성운의 생각이 거기에 닿아버렸다. 무언가에 대해서 무어라 말을 꺼내려다, 갑자기 몰려오는 심각한 두통에 코와 눈에서 피를 쏟는 혜우의 모습이 성운의 말에서 적나라하게 묻어나왔다. 그리고 혜우에게 뭔가 강한 암시가 걸려 있다는 설명을 성운에게 해주고 있는 유준의 모습과, 혜우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는 좌절과 혼란이 성운의 말에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성운의 온 얼굴에, 아차, 하는 충격의 기색이 굳이 그 목소리에서 생각을 읽을 필요도 없이 얼굴에 다 묻어나왔다. 성운은 황급히 입을 가렸지만, 때는 늦었다.
# 이 레스, 어쩌면 중요한 레스가 될 수도 있어서 일단 차근차근 쓰긴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태오가 혜우의 현상황에 대해 알 수 있는 레스이기도 하고, 태오가 헌오박사 안부 물어보거나 하면 성운이가 알터를 의심하게 되는 첫 단추가 될 테고...
126 자캐의_건강도를_0부터_10까지로_나타낸다면 1이 올라갈 때마다의 기준이 애매하긴 한데. 6이 평범한 고딩 남자애라고 기준을 잡으면 평상시는 2~3정도고 상태 개망하면 걍 0수준일것 같은 느낌이네요. 마이너스면 죽나.. 안죽으면 마이너스로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장 괜찮으면 4정도?
106 자캐가_아이돌이_된다면_포지션 비주얼. 아 비주얼이죠... 노래도 못하는 건 아니겠지만..
207 자캐는_떨어지는_꽃잎을_잡으면_사랑이_이루어진다는_말을_믿는가 (성운은 그 말을 한 당신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하늘하늘 떨어지던 꽃잎들이, 마치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아니. 이것만 갖고는, 안 돼. 더 크고··· 더 강해져야 해······.”
88 자캐_앞으로_도착한_수상한_택배_열어본다_vs_버린다 “열어보는 편이지. 이 인첨공에서 수상한 택배같은 건 더 조심해야 하는 편이긴 한데··· 멀리서도 택배상자를 열 수 있으니까.”
21 자캐는_먼저_사과하는_편_vs_상대가_사과하길_기다리는_편 “내가 잘못했냐 상대가 잘못했냐에 따라 달라. 둘 다 잘못했다고 하면,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일은 꼭 사과하고 싶어.”
>>452 어 (뇌정지옴) (성운칠라가 빨개져서 후다닥 도망가는 거랑, 성운설표가 뭐야... 꽤 엉큼한 취미잖아, 천혜우. 하는 몹쓸발언을 으아악 멈춰이자식아)
>>453 택배.. 저도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발신인 불명의 수상한 택배를 받았다고 가정하고 그냥 쓴 거라서요. 누가 연락도 없이 보내준 선물일 수도 있고, 금교의 유치한 부비트랩일 수도 있고.. 그러면, 성운이는 네 이런이런 점이 나한테 이렇게 느껴졌다고 짚어주고는 혜우가 뭐라고 할지 기다릴 것 같네요.
>>454 성운칠라 귀여워 하하하 > 아니근데 성운설표야 뭐라구? 그야 물론 혜우 스타일이 좀 많이 가늘고 얇고 레이스 팔랑팔랑하긴 한ㄷ(끌려감)
어 부비트랩 말고 허니트랩이면 어떡해 메이드복에 리본으로 포장된 혜우라던가(?)
ㅋㅋㅋ 혜우 그렇게 콕콕 집어주면 분한데 말못해서 볼따구만 빵빵해진다 물론 중요한거면 바로 사과하겠지만 좀 사소한거면 흥! 하고 방에 틀어박힐걸 불러도 안나오고 성운이가 들어오면 이불 뒤집어쓰고 자는 척 하고 그치만 지가 잘못한거는 팩트니까 결국은 한참 뒤에 나와서 "내가 잘못했어..." 하고 시무룩
>>460 아니잠깐 찌통요소나 코스프레가 아니라 그거말씀하시는거였어요????????? 나는 또 저번에 간병올때 입고 온 그런 옷들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옷장서랍안에 들어있는거 이야기할때 그럼 그거부터 떠올려야지난뭐엉뚱한걸떠올리고있었을까꺄아아아아악 (오너가 수치사) 아무튼 그거면 성운설표도 홍당무돼서 양손으로 얼굴싸쥐고는 사과 대여섯번 하지않을까요...
그리고당신 누가그런 허니트랩을 편의점에서 끼야아아앙 얼굴됐쟈나
성운이 밥차려놓고 혜우 기다리다가 알아줘서 고마워. 그러면 이제 밥먹자- 같은 이야기 할 거라 생각해요.
아구구 난리낫어 응 (품에 왁 가두기)(정수리 복복) >>비맞은 빨랫감<< 완전 공감 ㅋㅋㅋㅋ 종합비타민으로 먹다가 울렁거림 심해져서 끊은지 좀 되가지고 후후후... 약발도 안듣고 여생이 얼마 안 남았구만 이거... (이런발언) 사실 플리만이 아니라 알고리즘 자체가 지뢰긴 해 어휴 내가 봐도 어후 (절레)
해가 몇번이나 떴다가 졌는지, 세어보며 탑 안의 읽어버린 책들을 뒤져 또다시 읽고 그러다, 문득 외로운 기분이 들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제 노랫소리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섞여들어와서 느릿하게 눈을 깜빡인다. 매일 자신을 찾아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오랫동안 몸에 익은 버릇은 탑의 창문으로 걸어가서 긴 머리카락을 늘어트렸다. 머리카락을 붙잡아 오르는 느낌이 오면, 오르는 걸 돕기 위해 늘어트렸던 머리카락을 손에 감으며 천천히 끌어올렸다.
탑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당신은,"
손에 머리카락을 감은 채 뒤로 주춤 물러났던 것도 잠시 감았던 머리카락을 떨어트리며 탑에 오른 낯선 사람에게 한발짝 두발짝 가까워졌다.
"당신은, 누구죠?"
둘 서있는 공간을 휘감듯 머리카락이 퍼져나가고, 손끝이 살짝 맞은편에 서있는 상대의 뺨에 닿았다.
간지러워서 낯설게 느껴지던 공기와 분위기는 금의 질문에 자신이 대답했을 때, 언제 그랬냐는 양 바뀌었다. 간지럽고 부드러운, 푹신하던 분위기가 바뀌고 방금까지 제 말에 웃던 금의 표정이 바뀌어서 혜성은 그저 느리게 새파란 눈 깜빡이며 움켜쥐는 손에 자신의 손을 가만히 내준 채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는 금을 마주 바라보다, 뺨에 살짝 입맞춰줄 뿐이었다.
우리의 사이가 일반적인 연인의 형태가 아니라,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는 건지. 아니면 익히 듣고 보던 연인들 또한 이렇게 되기도 하는지. 생각이 어지럽다, 그럼에도 알 수 있었던 건 네가 울상을 짓지 않았으면 좋겠고, 네가 축 처져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네가 나로 인해 그런 표정을 짓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게 분명 좋은 사람이 아닐진데. 왜 그런 표정인 건지.
"믿을 수 있는 어른들이 없는 상태에서 너희들이 믿을 수 있는 건 스스로를 믿는 거야. 그러려면 한양이나 은우, 태진이처럼 앞에서 너희들이 스스로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잡아주는 애들이 있어야하고.. 나처럼 뒤에서 받쳐줄 사람도 있어야하니까."
자신의 능력은 소나키네시스 중 탐지와 색적이 가장 뛰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거기에 레벨 4라는 상위 레벨을 찍은 이상 색적을 유지하고 다른 행동을 하기에 용이했으니, 한발 뒤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파악하는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뺨에 입맞추고난 뒤였으나 혜성은 고개를 뒤로 물리지 않고, 손등에 입맞추는 금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엄지로 제 손등에 닿았던 금의 입가를 톡, 노크하듯 두드려본다.
"네가 나를 지키기 위해, 네가 위험을 무릅쓰지 않길 바래. 내 능력보다 네 능력은 몇배는 위험하니까."
금의 이마에 제 이마를 기대며 자신을 바라보는 금의 시선을 피하듯 눈을 내려감고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네가 나 때문에 네 불에 삼켜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날 위하다가 다치게 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것 같아."
네가 나를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또한 미지근한 온도로라도 너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로를 밀어넣고, 동월은 끌려갔다. 당황한 표정의 여로를, 평소라면 킥킥거리면서 놀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저 기다리라고 외쳤지만, 여로는 이미 안쪽에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을테다. 꽤나 갑작스러운 탈출이었다.
한편 동월은 상황이 그리 좋진 않았다. 안 그래도 빈혈 때문에 어지러워 죽겠는데 발목을 붙잡혀 속절없이 끌려가는 중이니... 어떻게든 발목을 붙잡은 손을 떨쳐내려 팔을 휘적거려보지만, 잘 되진 않았다. 그에 동월은, 이를 빠득 갈며 결단하기로 했다.
여로는 밖으로 나왔다. 밖이라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현실과 괴이를 이어주던 문은 사라져, 이미 완전히 밖으로 나왔을테다. 여로가 그대로 자리를 피했든, 아니면 동월을 기다렸든. 대략 10분정도 뒤에 근처에 있던 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을테다. 그 안에서 동월이 온 몸에 잘려있는 손을 달고 힘겨운 얼굴로 밖으로 나왔다.
" 난 전생에 손이랑 무슨 원수를 진걸까... "
짜증난 듯이 중얼거리던 와중에, 몸에 달려있던 손들이 기화되듯이 사라진다. 모든 손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동월이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본다. 여로가 밖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때, 여로는 근처에 있었을까?
이 후배님은 똑똑한 만큼 조심성도 많은 모양이다. 대충 끝났다고 봐도 좋을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을지도 모를 적을 탐색하다니.
" 걱정 마. 내가 널 찾은 이상, 죽지 않게 할 자신은 있으니까. "
그것만은 지킬 자신이 있었다. 지켜야만 하는 것이기도 했고. 아무튼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냐는 새봄의 질문에, 동월은 품 속에서 아까 챙겨놓았던 종이 몇 장을 꺼내 흔들어보인다.
" 어디긴. 퇴사하러 가야지. "
하지만 퇴사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종이를 챙겨 여기까지 온 이상, 자신들의 일거리를 늘리지 않기 위해 우리를 퇴사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훼방을 놓을 것이니. 우리는 퇴근 시간이 되기 전에 대영 공장의 대표에게 이 사직서를 제출해야만 한다. 단지 제출만 하는것도 아니고 싸인을 받아야 하지... 끔찍해라.
" 뭐, 어른이 된 후에 사회 생활을 미리 체험한다고 생각하자고. "
물론 그 때의 사회생활에는 목숨을 빼앗아 자신들의 식탁 위에 올리려는 미친 살인 괴이들은 존재할 리가 없겠지만. 평범함에서 약간 엇나간 스펙타클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겠는가?
살기 위해선 몸담을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이 능력 펼칠 수 있는 곳에서, 가장 예쁨 받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복이 없다. 태오는 그 복을 떠안았고, 그 증표를 팔에 새겼다. 그리고 누구도 태오를 건드리지 않았다. 불법 개조 안드로이드 투기 도박장, 메트로폴리스의 사람은 건드리는 것이 아니었기에. 도박장이 가진 무력 때문이 아니다. 총기를 포함한 불법 무기를 거래한 스킬아웃 세 조직이 연합하면 도박장 내부 인원의 무력은 쉽게 진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유는, 그 연합한 조직 때문이었다.
위험하기로 소문난 스킬아웃들은 메트로폴리스를 적대하지 않았다. 온갖 날고 기며 위험하다 알려진 스킬아웃들은 인간으로 존재하면 도저히 채울 수 없는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의 해소를 갈망했다. 그리고 그 욕구를 안드로이드를 통해 채워주는 메트로폴리스에게 적대적일 리가 없었다. 그들은 늘 우호적이었고, 심지어는 나서서 보호를 자처했다. 즐거움을 주고, 확실하게 돈을 내걸고 잔악함을 표출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이따금 자금줄을 대주기도 하고, 스킬아웃끼리 모여 음험한 작당모의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인 장소! 다른 도박장도 암암리에 존재했지만, 돈을 굴릴 줄 알고 욕망을 누구보다 잘 꿰뚫는 어르신의 안목과, 어린 수석 엔지니어의 손길로 실제 사람의 싸움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메트로폴리스만큼 성행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도박장의 일원은 귀히 대했고, 두려운 존재였다.
도박장의 일원인 태오도 그 두려움을 실감하곤 했다. 당장 골목에서 눈을 번뜩이며 당신을 노리던 까마귀 같은 녀석도 그랬지만, 더 이상 2학구와 모닥불을 같이 피우던 패배자들이 자신을 발견해도 다가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어찌 되었든 혜우에게 해가 되면 되었지 득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스킬아웃은 2학구를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닿길 바랄 뿐이다.
"……내가 말한 버러지는, 2학구 연구원을…… 뜻하는 거랍니다."
태오는 당신의 속내가 들렸는지 나긋하게 말을 정정했다. 2학구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혐오감 가득한 문장이나 어조는 평온하다. "모든 곳이 구더기떼가 득실거리는데, 그쪽 구더기는 인간 탈 뒤집어썼을 뿐이죠." 한 글자씩 깃털처럼 부드러운 어조를 붙여도 퍽 과하다. 당신도 아는 교내의 소문이 있으리라. 3년간 커리큘럼 연구원이 무려 8번이나 바뀌었고, 전부 자진사퇴요, 심지어 바로 직전 연구원은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네가 내 속을 읽으려 드는 것은 월권이라며 다그치기까지 했다던 그것. 열등생도 아니고, 태생 레벨 3의 엘리트에게 벌어진 일이라기엔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일. 그 내막은 아마 여기에 있는 듯싶다. 어디까지나 지금의 추측이지만.
그렇게 평온하기만 했으면 좋을 텐데, 다시금 태오의 걸음이 멈췄다. 골목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다, 당신이 의식을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이 새끼가 지금 나를 의심해서 이 골목 끝부터 시작해 지금껏 그리도 꼬아댔나?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건 내 업보라 치자. 그렇지만 혜우가 뭐가 걸려? 그걸 지금- 당신의 불쏘시개가 의도치 않게, 아직 채 식지 못한 잿더미 속 잔재를 꺼내버렸다.
"너 씨* 방금 생각한 거 뭐야. 엎질렀으면 똑바로 설명해."
사람의 눈도 잘 안 마주치던 것이 당신의 눈을 정확히 마주하려 들었다. 당신의 눈도 충분히 이질감이 들게 한다지만, 이것 또한 만만치는 않다. 기실 이 인간 얼굴 자체가 그랬다. 항시 평온하고 부드러운 무표정이라 누구나 대하기 편했던 것이지 절대 유순한 인상은 아니다. 인상 한 번 쓰면 저것 성질 안 봐도 앙칼지다 못해 지랄 잘하게 생겼구나 싶지. 길게 올라간 눈꼬리와 끝을 날카롭게 세운 속눈썹도 그러하지만,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이 그랬다. 상대가 자신 목 충분히 뜯어버릴 맹수라고 해도 이게 신경이나 썼겠나? 독악한 것이다. 제 처지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패악질 부릴 독악한 것. 태오는 눈 홉뜬 채 당신을 쳐다보기만 했다. 뭔가 더 제 입으로 얘기했다간 당신을 당장 여기에 던져버릴 것 같았기에.
빨간모자는 할머니에게 가져다 드릴 나무열매를 따는 틈틈히 길거리의 생쥐들에게 꿀처럼 달콤한 버찌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굶주린 생쥐들은 고맙다고 인사하며 이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고 맹세했지요. 빨간모자는 말했습니다. "그럼 먼 훗날 내가 길을 잃으면 안내자가 되어주겠니?" 생쥐들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잿빛 골목에 모처럼의 웃음꽃이 만발합니다.
회색 골목 구석에는 분홍색 버찌 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지나가는 자들은 풍경에 알맞지 않는 그것에 한번씩 시선을 주었으나 이내 큰 관심 두지 않고 지나친다. 동화보다 비현실적인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이곳에서 고작 아스팔트에 뿌리 내린 버찌 나무 따위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을 여유를 가진 사람은 없을 테니까. 다만 기이할 정도의 단내가 코끝에 머물렀으니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 그 오묘함을 곱씹게 되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소리 안 나고, 기척 없고. 됐다. 새봄은 내려앉은 천장의 끄트머리까지 노려보다, 이내 동월을 향해 씩 웃어보였다. 그러다, 그가 품에서 꺼낸 종이를 흔들어보이자, 아~ 하고 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종이인지 궁금했는데 사직서였네요. 사장님께서 벌레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사표 내려면 사장님이랑 대면해야 할텐데 벌레 사장님 앞에서 표정 관리하기 쉽지 않을 것 같고요. 뭐, 닥치면 해야겠지만요! 그래도 살다 보면 드럽고 싫은 일 많아도 괴물이나 귀신 사장님한테 퇴사시켜달라고 하는 것보단 수월할 테니 좋은 경험이긴 하겠네요."
동월을 따라가는 동안 쉴 세 없이, 그러나 행여라도 숨어있을 적의 주의를 끌 지 않도록 속삭임에 가까운 소리로 속닥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새봄은, 눈 앞에 나타난 두가지 선택지에, 살짝 미간을 구겼다. 또 양자택일인가. 다리도 아프니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긴 한데. 엘리베이터는 사방이 막혀있으니까 벌레가 쳐들어올 걱정도 없고. 하지만 여기 사는 귀신같은 게 일부러 떨어트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 반면 비상구 계단은 어떨까. 언제 어디서 벌레가 튀어나올 지 모르고, 앞뒤에서 몰려온다면 도망가기도 어렵다. 다만 운이 좋다면 가까운 층으로 피신할 수는 있겠지. 어쩔까... 새봄은 고민하다 대답했다.
>>0 오늘은 제가 목화 고등학교에 불시착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에요. 첫날 밤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서 울적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걸 먹으니 기분이 좀 낫네요! 뭘 먹고 있냐면, 제가 오븐도 없이 만들어낸 애플파이랍니다! 하얀 가운을 입으신 분들 중에 말씀이 통하는 분께서 어제의 훈련을 통해 제가 레벨 0이었다가 레벨 1로 올라갔다고 하시지 뭐예요. 뭔지 몰라도 좋은 거일 것 같아서 벌써 신났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맛있는 걸 상상하기 쉬울 거라고 하셔서, 어제 만든 사과파이 속과 종이로 열심히 상상해서 애플파이를 완성했답니다! 이 능력이 에이번리로 돌아가면 사라진다는 게 너무나도 아쉬워요. 열심히 연습하다보면 쓸모없는 물건들을 맛있는 걸로 바꿀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이 능력을 가진 채료 여기에 남는 거보다야 낫죠. 어쨌거나 저는 매슈 아저씨, 마릴라 아주머니, 다이애나에게 돌아가야 하니까요.
>>755 정하:동거중. 정상적인 것 같고 귀엽기도 하고 그러네. 나보다 인싸인 것 같아 여로:동거중. 믿기 힘든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좋은 녀석이야. 정이 벌써 많이 들었다구! 이경:좀 무뚝뚝하지만..그래도 여로를 좋아하는 마음은 확실해. 아지:귀여운 후배. 조금 걱정되지만.. 은우 선배께서 날 걱정하셨던게 이런걸까..? 태진:좋은 선배님이신데 방황을 하고 계신 것 같아.. 수경:좀 말 없고,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착한 후배야. 철현:고3이시지만 일 떠넘기기 스킬 때문에 다른 선배님들과 약간 원수를 지고 계신 것 같... 동월:쟨 왜 저렇게 장난을 좋아하냐!!!! 경진:얼굴도 좋고, 딱 정석을 따지는 믿음직한 후배 같아. 리라:장난을 좀 좋아하긴 해도, 계속해서 새하예지는걸 보면.. 걱정을 안 할수가 없는 동기지.. 유한:...뭐라고 해야할까...
>>742 태진: 농땡이도 많이 치고, 종잡을 수가 없는 놈이야. 그래서 뛰어난거지만. 태진: 웬만한 일로는 안 흔들리는 스타일이라서, 뭔 일이 일어나면 맡겨둘만한 느낌이지. 본인이 할지 말지는 미지수지만... 태진: 또 가끔 보면... 인핸스드 스트렝스는 저 녀석이 가졌어야 하는 능력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태진: 아니다. 쟨 그거 없어도 그냥 근육으로 어떻게든 하겠다.
>>0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뭐래.]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 그만두려는 것 같이 들리거든...] "그치만 돌가면 없잖아여." [장르가 틀려 장르가...]
신체에 사소한 변화는 있을지언정 본질은 그대로였기에 그녀의 훈련은 여느때와 다를게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사소한 변화마저도 중요한 실험요소일테지. 본래, 결과의 차이는 이런 사소한 변칙성에서도 일어나는 법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어릴 적에도 수식의 순서나 숫자 몇개 바꾼거 가지고 결과값이 달라진 적이 손에 다 꼽을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어젠 능력훈련, 오늘은 기초체력훈련이라니... 완전 대놓고 실험 뽕 뽑으려구 하는 건가봐여." [그런거 보면 난 목화고 안들어가길 잘한거 같거든...] "응, 들어갔었음 즈가 바로 저지먼트에 꽂았을지두 몰라여." [그... 일단 내가 너보다 선배거든...? 나 2학년이거든? 꽂았으면 내가 꽂았을 거거든. 무엇보다 넌 그 꼬마애가 한 말 하나 가지고 덜컥 들어갔던 거잖아. 거기 부장님이 뭐라 안하시든? 그 깽판을 쳐놓고서도?] "......"
순간적이지만 열사의 태양이 내리쬐도 이상하지 않을 공간에서 갑자기 한기가 도는 느낌이 들었을까, 다만 그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살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아우라였을지도 모른다.
"어쩌겠슴까, 달리 방법도 없었잖아여." [...뭐, 그것도 그렇다. 그치?]
여학생 역시 멋쩍은듯 웃어보였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킹받으니까 열바퀴 추가에여." [아 ㅆ...] "어허, 바른 말 고운 말임다!!!"
저지먼트가 요새 유토피아에 집중하긴 했어. 그래서 이 금쪽이 스킬아웃들이 다시 까불고 있잖아. 이런 녀석들 말이야. 진짜로 좌절감을 안겨줘서 다시는 못 덤비게 하는 방법이 따로 있어.
" 욱...! "
그냥 맨손으로 패는 거야. 능력? 안 써도 돼. 이런 녀석들은 동등한 무능력자인 상태여도,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절대로 못 이긴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돼. 저기 저 미련하게 달려드는 한 놈. 그렇게 달려들어서 쓰나? 일직선으로 스텝 없이 달려와서 뭐 하게? 중간에 방향전환이나 멈추는 데 있어서 번거롭잖아. 아, 주먹으로 크게 휘둘러서 한방을 노리려고? 어디서 이런 근본 없는 막싸움을 봤나.
저런 식으로 거리를 좁혀서 한방을 노리려는 녀석이 있었다. 서한양은 자신의 오른쪽 발을 앞으로 쭉 민다고 생각하여서 발을 뻗는다. 왼발은 골반이 앞으로 나가며 위력을 실어주기 위해 까치발을 들어주고, 발차기의 리치와 위력을 올리기 위해 골반을 앞으로 쭉 나가게 했다. 그와 동시에 오른발의 앞꿈치를 마치 창으로 찌르듯이, 매우 날카롭고 간결하게 스킬아웃 녀석의 명치에 찔러넣는다. 한방을 노렸지만, 오히려 자신이 한방에 나가떨어진 스킬아웃. 넘어진 채로 기침을 하며, 고통스러워 했다.
" 쯧..발은 주먹보다 더 길다고요. "
자신 앞에 쓰러진 스킬아웃을 보며 혀를 찬다. 사실 주먹에 대해 발차기로 카운터를 넣은 것이 승리의 핵심적인 요인은 아니다. 그냥 막무가내로 달려드니깐..스킬아웃 본인이 본인의 싸움을 망친 거지. 무작정 달려들면 갑자기 오는 공격이나 카운터에 반응하기 엄청 힘들거든.
내가 우희다. 이 나는 태어나기를 사내로 태어났으나 여인으로 자랐거니와 점지어진 운명은 패왕과 우희요, 그렇게 해야만 찬란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태오는 그렇게 살길 바랐다. 그렇게 자랐거니와 세상은 태오의 편이 아니었기에 그리 살지 않으면 추락하기 때문이다. 경극 배우의 삶은 한철 봄과 같다. 언제 목이 상하여 극단을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일본군이 처들어와 전쟁에 휘말려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순간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오의 패왕은 떠났다. 술집 여인과 사랑에 빠져선, 오늘 혼례를 치렀다. 무려 하루만에 급히 진행된 결혼식이라니, 지나가던 개도 웃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일 아닌가! 하물며 오늘은 원대인의 초대가 있었다. 무려 원대인께서 우리를 후원한다 하였는데 그 계집이 무어라고, 우리에게 있어 경극이 어떤 것인줄 알면서…….
"한나라의 군사들이 이미 포위하였으니, 사방에는 온통 초나라 노래 소리뿐이네……."
술에 취한 듯 하늘거리며 태오는 노래했다. 웃음 가득한 것이 허탈하다. 곁엔 원대인이 있었다. 태오의 원대인이.
"패왕의 기세가 다하였으니 소첩이 어찌 홀로 살아가리까……."
그리고 태오는 그 사람이 비수를 숨겨둔 곳을 안다. 칼을 빼들자 원대인이 외쳤다.
"조심하거라, 그건 진짜 칼이니!"
우희는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현태오라는 인물이 빙의한 것이 우희였기에 도망치지 않을 수 있는 진심을. 현태오라는 인물 자체가 품고있는 감정과 뒤섞여 지금 당장이라도 행할 수 있으나 우희의 마음 더 강하여 할 수 없는 행동은 그렇게 멈췄고, 눈에선 눈물이 후드득 쏟아졌다.
"한 번 웃으면 온 세상이 봄이요, 한 번 흐느끼면 만고에 수심이 가득하니 이 모든 것이 너의 권세인데, 어찌 네 미태에 탄복하지 않을까."
곁으로 다가온 원대인을 태오는 막아서지 않았다. 단지 원대인이 수벽의 경계로 하여금 마지막 선을 그었으며, 우희는 끔찍하게 문드러진 자신의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
“······안녕. 나는 천사가 아니야. 저 멀리 있는 별에서 왔어··· 너는 왜 발목이 없어?”
어린 왕자는 그대의 말을 경청했다. 왕처럼 외로워하고 있었고, 주정뱅이처럼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었으며, 사업가처럼 의미없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그대.
“얼마나 많은 벌을 받은 거야?”
어린 왕자는 그들 모두를 떠나왔으되, 그러나, 그들 모두를 합친 듯한 그대에게는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선심을 베풀어 그대 다리에 머플러를 매어주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자신의 별로 돌아갈 하나의 날개옷이었으나, 소년은 그것을 그대에게 사용하기를 택했다. 장미가, 여기 다시 피어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리고, 어리석어서, 어린 왕자는 그대 옆에 머무르기로 했다.
“같이 있어줄게. 그러니 우리 어디론가 가자. 그래··· 너도 알 거야, 그렇게도 슬플 때는 사람들은 해가 저무는 게 보고 싶지. 우리, 해넘이를 보러 가.”
소년은 그대의 품에 한가득 안겼다. 그러나 그 자리에 머무르지는 않았다. 대신 그대를 한가득 들어안고서는, 이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그대를 번쩍 안아올렸다.
무거운 머리카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왕자는 가볍게 발놀림을 옮기기 시작했고, 서러운 울음소리에도 이마 한 번 찌푸림 없이 그대를 좀더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대가 괜찮아지길. 그대가 자신을 묶는 게 아니라, 자신과 함께 떠나게 될 수 있길. 그대가 후회를 넘어 참회를 눈에 담을 용기를 얻길. 그래서 그 벌을 마주하고, 그 춤을 멈추고 장화를 벗을 수 있길. 그래서 마침내, 함께 손을 잡고 여행을 떠날 수 있길. 그 첫 발짝으로, 어린 왕자는 이 뿌리없는 장미와 함께 해넘이를 보러 가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장미의 참회는 보통 어린 왕자가 떠나는 것으로 완성되기 마련임을 어린 왕자는 아직 몰랐다.
그래. 인첨공을 만들고, 지금의 어둠을 만들어낸 이들을 믿을 수가 없다. 그런 환멸 나는 이들이 만든 이곳에서 세상의 잔혹과 비참함을 일찌감치 경험한 자신으로써, 당신들을 만나기 전부터 스스로 일어나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금은 자신의 입술에 닿는 당신의 손길을 느꼈다. 악과 달리, 순결하고 깨끗한 무언가를 쫓는 당신들. 어두운 현실에서 스스로 빛을 밝히고 있는 이들이 저지먼트 일원들이었으며, 그런 당신들을 바라보며 꿈꾸고 기원하던 미래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지옥을 견디는 것 이상으로 알지 못했던 자신에게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 그중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인 당신에 아름다움에 반했고, 곧 사랑하게 되었다. 이제는 가장 소중한 사람인 당신을 지켜야만 했으니,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앞장서 똑바로 어둠을 맞이해야 했다. 이마를 맞대면, 시선을 피하기 전 당신의 따스함이 가득한 푸른 눈동자를 금은 똑바로 바라보았을까. 당신의 그런 말에 금의 마음이 아프게 떨렸다.
"... 그래봐야 대단한 능력도 못 됩니다."
지금이 어둠 속에서 불이 피어올라야 하는 순간이었지만, 그대로 모든 것을 태우고 꺼질 생각은 없었다. 금은 맞댔던 이마를 떼어낸다. 그리고 손을 들어 당신의 얼굴을 감싸며 당신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려 시도 했을까. 옅은 미소와 함께 이해해달라는 눈빛을 보내며 금은 이어 말했다.
"선배를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미래를 위해서. 저 역시 위험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제것과 비슷한, 그러나 분명하게 다른 푸른색을 띄는 눈동자와 마주치고 혜성은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다. 제 새파란 눈동자에 얼마나 따스한 빛을 간직하고 있든, 제 부드러운 미소는 언뜻 피로해보일 게 분명해서 혜성은 오래 미소를 유지하지 못했다. 저지먼트의 완장을 차고 있으면서, 동시에 지금 스트레인지 구역을 술렁거리게 만들고 있는 자경단들을 이끄는 자경단장이라는 비밀스러운 활동에 몸 담고 있다는 비밀은 종종- 아니 자주, 혜성으로 하여금 금의 눈빛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비밀이 있는 자가 으레 그러하듯, 똑바로 애정과 사랑을 표현하는 눈빛을 마주하기 힘들기 때문이겠지.
"어떤 능력이든, 대단하지 않은 건 없어."
되려 능력의 대단함을 논하기보다, 가진 능력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지고,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 않게 되는 걸 경계해야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치 2주라는 상항선은, 수용되는 폭력의 범위가 아니라 그 선 안에서 최대의 피해를 막아야하는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야할 것은 이게 아닐테지만. 느리지만 부드러운 어조로 중얼거리며 제 얼굴 감싸는 금의 손에 나직하고 일정한 숨을 뱉어낸 뒤 고개를 기대고는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부드러우면서도 쑥쓰러움과 부끄러움이 공존하는 웃음을 살짝 지어보였다.
"금이는 날 너무 좋아하는 게 티가 나. 안그러겠다는 약속은 못하겠지만 최대한, 노력해볼게. 최선을 다해서 덜 위험한 방법을 선택하고, 덜 위험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걸로 괜찮을까?"
네 애정과 사랑을 어떻게 돌려줘야할지 모르는 걸 알면서도 너는 어떻게 나를 위해 그런 말까지 할 수 있는지. 여전히 제 얼굴을 감싸고 있을 금의 손등에 제 손을 겹쳐내려하면서 혜성은 예의 쑥쓰럽고 부끄러움이 깃든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며칠간의 기억이 없다. 연구원 선생님은 이만하면 빨리 돌아온 편이라는데... 거기에 기억이 없는 동안 레벨 1로 승급한 모양이다. 그건 좋은데, 기억이 없는 며칠간 내가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앤 셜리처럼 말하고 행동했다나. 일시적으로 머리도 지금보다 더 빨갛게 변하고 주근깨도 생겼었다고.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 빨간머리 앤이라. 재밌게 읽긴 했지만 중2 이후로는 손도 안 댄 책인데. 내가 변했던건 이상한 약물 테러(?) 때문이고 레벨은 그냥 열심히 훈련해서 오른 거니 굳이 다시 읽을 필요는 없겠지.
어쨌든 레벨 1이 된건 고무적인 일이다. 아직 딸기 쇼트같은 걸 앉은 자리에서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사탕이나 머랭이나 젤리같은건 무생물로도 만들 수 있고, 재료가 다 있으면 기본적인 쿠키나 빵이나 푸딩 정도는 만들수 있게 됐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저번에 실패한 사탕을 만들어봐야겠다. 맛은 통일해야겠지만.
저번처럼 대야에 유리구슬을 가득 담아놓고 훈련실에 앉아 상상한다. 유리구슬 더미가 새하얀 설탕 무더기로 바뀌고, 열이 가해져서 투명하게 녹아내려서 바글바글 끓는다. 식용색소도 좀 넣자. 엄마들의 애정행각을 대신하는 핑크색으로. 만질 수 있을 때까지 식혔다가 손으로 반죽하고, 조금씩 떼어 유리구슬 크기로 굴린다. ...뭐야, 여기까지 되네?
슬쩍 눈을 떠보니, 대야에는 유리구슬 대신, 아직 말랑하지만 분홍색 구슬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이렇게 깔끔하게 성공한 적은 처음이라 얼떨떨했지만, 아직 뜨뜻한 사탕을 식혀 입에 한 알 던져넣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매일 거르지 않은 보람은 있네. 이런 날도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