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해진 나머지 한 짝의 팔을 붙잡고 징징거리는 아 저 씨. 이것으로 아저씨의 근력은 초등학생에게조차 지는 수준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인두겁이라는 것인가, 이 아저씨는 근력을 스스로 키운다는 선택지조차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패, 패배를 이, 인정하게습니다... 우우..."
발음이 샌 것은 기분탓이 아니다. 어쨌건 아프기는 더럽게 아프고, 더 뻗대봤자 그 때부터는 정말로 팔에 붕대를 감아야 할지도 몰랐으니까. 엉망진창인 얼굴에 팔 붕대까지라, 정말이지 그런 꼴 만큼은 사양이었다. 「누나」에게 당하는 것조차 아닌데 구태여 그런 불편을 감수해야할까?
게다가, 음, 명색이 홍백전이라고... 꼴사나운 나의 패배를 보고 이대로 백팀이 질 수는 없다면서 팔을 걷어붙이는 학생까지 저벅저벅 등장해와서... 우와, 저 팔뚝 실환가?
"그, 그럼, 다음 도전자도 있는 것 같으니까... 헤헤..."
소매를 끌어올려 살살 눈가를 닦으며 주변의 눈치를 보고서 천천히 일어났다. 악씁 팔 아파. 제대로 꺾여버린 것이려나 싶었지만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 몰래 샐쭉이 웃어보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열심히 힘내보시라고요, 「압승의 카와자토 아야나」 님."
그렇게 말하며 쏙 빠져나갔다!!!!! 어디 한번 저 팔뚝을 상대로 힘내보던가!!!!!!!!
만용인 것을 알아도⋯⋯. 과거의 영광에 얽매인 자는 늘 회고를 탐닉할 수밖에 없다. 파도를 겹겹이 둘러 기어이 노도가 되어 돌아온 재앙을 떠올린다. 하나 둘 사라져가던 일족과 푸르름에 섞여든 불결한 붉은 것들. 우리는 울분과 비탄에 잠식되어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그저 뭍으로 나아갔지. 그리하여 허망하게 스러져 뭍에서 메말라버린 영혼들이 얼마나 있었는지. 잠깐이나마 눈앞 상대에게서 일족을 겹쳐보았다가 이윽고 퍼뜩 정신을 차린다. 요괴와 인간이 어찌 같으니, 웃기지도 않는 생각 말자고. 하여, 침잠하던 청보랏빛 눈이 가만 응시하다 이내 알았다는 듯 눈꺼풀을 느릿하게 한 번 깜박였다.
"해볼까. 근데 이 스미레 입맛이 꽤 고급인지라 너 그에 부응할 수 있겠어?"
문장에 섞인 농조를 잡아채곤, 다시금 되돌려준다. 삐죽 올라간 눈매가 날카로우나 그 안에 서린 빛 한없이 가벼우니 맞받아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좋지. 기대할게."
하물며 '우미' 선배라고 처음부터 성을 붙이는 예의범절까지. 기개와 절조가 뚜렷하고 예의가 바르며 카와자토가 신뢰하는 이, 썩 괜찮은 인간.
"교실도 시끄러운 김에 겸사겸사. 그 아이는 늘 비가 올 때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잖니. 아, 늘 네가 살피러 가던?"
"부응할 수 없다면 좀 더 노력해야죠. 그 입맛에도 인정받을 정도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된다면 저에게 있어서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잖아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그는 그녀의 말에 다시 반격했다. 농조로 이야기했으나 실상 정말로 그에게 있어서 나쁜 것은 없었다. 아야나에게 더 좋은 음식을 만들어주는 것을 떠나서 정말로 연인이라는 관계에 부합하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으나 제 여자친구에게도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고 그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자고로 맛있는 것을 먹으면 행복해지기 마련이었으니 제 주변에 있는 이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유우키는 생각했다.
"후훗. 기대에 부응하도록 할게요. 아야나님도 함께 먹게 될테니 더더욱."
그렇다면 오이는 빼는 것이 좋겠지. 편법을 쓴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저 선배가 오이를 좋아하는지도 알 수 없었으니 오이는 일단 빼는 쪽으로 생각해서... 하지만 역시 한두개 정도는 따로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허나 지금 당장 만들 것은 아니었으니 그는 이후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결심하며 생각을 멈췄다.
늘 비가 올 때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진다. 자연히 유우키의 시선이 창가로 향했다. 비는 주룩주룩,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일기예보로 판단하건데, 한동안은 계속 올 것이 분명했다. 이 나라 특유의 습기 가득한 비는 사람을 축 쳐지게 만들기 딱 좋았으며, 특히 아야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했다. 일단 지금은 안정을 찾아 침대에 누워있긴 하지만... 올해는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런지. 조금 걱정어린 표정이 그의 얼굴에 살짝 드러나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가급적 가능한한 시간대에는 살피고 있어요. 특히나 지금처럼 비가 계속 내리는 장마철에는 더더욱 말이에요. 후훗. 지금은 조금 안정이 되었으니 만나러 가도 별 일은 없을 거예요. 물론 그렇다고 컨디션이 온전히 괜찮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 하교때는 간만에 가방 속에 넣어서 하교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유우키는 생각했다. 나중에 하교할때 어쩔지를 물어보기로 그는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