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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별다른 감흥이 소년에게 든 것은 아니었다. 그저 흔히 있는 과격파라고 생각하면 그럴듯했다. 단지 문제는, 저들이 일으킬 피해에 구분이 없을 것이라는 것 정도. 과격파인 만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얀 소년은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그럼에도 누군가는 곧 잘 찾아내겠지만-턱을 톡, 톡, 두드렸다.
'대부분'은 연구원이라는 말은 아닌 사람도 있다는 뜻이며, 모든 연구원이 그림자의 뜻에 찬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저들에게 닿지는 않겠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테러리스트들은 역시 곤란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는 저들을 막는 것이 옳겠지만 문제는,
"...여력이..."
그래, 여력이 문제다. 크리에이터로 추정되는 상대를 방해하며 동시에 리버티라는 집단을 막아내기에 여력이 부족했다. 그나마 그림자 역시 전력이 나뉠 것이나 우리의 수가 적어지면 그 역시 별 의미가 없었다.
4학구의 소멸과 2학구에 대한 테러... 하얀 소년이 고개를 숙인 채 제 미간을 살며시 눌렀다.
커리큘럼을 진행하는 이를 증오한다고 하는 말을 라는 것에 애매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게 오히려 방해가 되면 보상해 주실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요
"테러는 부상과 목숨과 관련되니까요. 돌이키기 꽤 힘든 편이고요...." 도움을 받는다와 도움될 수 있는 것은 많이 다릅니다. 그들이 도움이라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도움이라 생각하는 것도 말이지요. 안타깝게도 도움이 되고 되지않고는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닌 만큼... 이라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하시면 역시 저지먼트란.. 같은 거 하실 건가요?" 이건 그냥 궁금증에 가깝습니다.
' 자유를 쫓아 비상하는 날개.. 그래서 리버티군. 인첨공의 어둠을 용서하지 않는 자라.. 그런데 리버티가 우리들의 작전에 도움이 된다고? '
" 아뇨.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아는지는 당신들에게 안 중요하지,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라서요. 그, 제안을 드리는 입장이시면 우리의 조건에 좀 맞춰주려는 노력을 해주실래요? 그러면 우리도 당신들의 제안을 듣기 싫은데. "
분명 저 리버티란 녀석들도 일방적으로 도움을 줄 것 같은 구원자인 것처럼 말하지만, 우리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에 먼저 찾아가서 연락을 하는 것이겠지.
' 오호라.. 미친 새X들.. 그냥 자유주의자도 아니고, 완전 아나키스트들이잖아? '
2학구에 그림자의 본거지가 있으니, 2학구를 통째로 타격해서 그림자를 유인한다라.. 그리고 2학구의 연구원들도 선량한 사람들은 아니다라.. 흐흠..
" 일단 제 말을 들어보실래요? 대부분이 선량하지 않다고 했지, 전부는 아니잖아요. 우리 저지먼트는요. 나쁜녀석들 100명을 죽이는 것보다 선량한 사람 1명을 구하는 것이 더 가치있게 여기거든요? "
" 아, 그렇다고 당신의 작전이 아주 실현이 안 되는 방법은 아니에요. 당연히 본거지를 광범위하게 타격하면 병력이 그곳으로 쏠리고, 우리가 뚫고자 하는 적의 종심을 뚫을 수 있겠죠. 구상 자체는 제법 훌륭해요. 뭐, 당신들이 진짜로 그걸 실현할 화력이 있는지는 우리로서는 아직 모르겠지만. "
" 그런데요. 우리는 당신들의 일에 협조 못해요. 이런 식으로 극단적으로 나오면 우리는 못 도와주지. 덜 과격하고 위험부담도 적은 작전이라면 모를까. 당신들 그거 알아요? 당신들이 그래요, 테러를 저질렀다고 쳐요. 그래서 그 뒤에는 어쩌려고? 그래, 레드윙 구했어. 그래서 망가진 2학구는 어쩌려고? 막 인첨공을 위해서였다는 명분이어도 테러는 테러이신 거 아시죠? 우리 중에서도 누군가가 양심에 찔려서 본인도 잠시 묵과한 거 벌받을 생각으로 당신들 다 불면 어떡하려고? 게다가 우리들만 목격할 줄 알아요? 아니? 우리들 말고도 분명 목격하는 다른 이들도 있을 걸? "
" 이건요.. 서로의 목에 폭탄을 차는 행위에요.. 서로 이념은 맞아서 반가웠지만, 행위의 강도는 서로 감당하기가 어려워요. 아까 말한대로 덜 과격하고 좀 더 안전한 방법이라면 모를까.. 제안은 여기서 끝내는 걸로 해요. "
확성기 목걸이와 사탕, 보호 팔찌만을 챙기고 나머지 물품엔 손 대지 않았다. 현장에서 응용 없이 소리부터 내질러능력을 전개하는 것이 리라의 눈에도 선했던 걸까, 목걸이를 차며 잠시나마 그런 가벼운 방향으로 혼잡한 생각을 정리했다.
억지로 붙들어둔 평화는 그만큼 쉽게 깨졌다. 2학구의 테러를 논하는 소리에 자신의 담당 연구원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얄팍하지만 그러기에 소중한 그 관계성을 되뇌이며, 경진은 은우를 슬쩍 보며 혀 끝에 머물던 물음을 겨우 뱉어냈다. 그리고 그 쓸데없는 질문 끝에 제 소견도 몇마디 내었다.
"세은 씨는 왜 이 자리에 없는 거죠?" "그들의 말을 과하게 신뢰해선 안됩니다. 크리에이터 그 남자가 그림자와 연관 있을수도 있다는 것이 신빙성 없는건 아니지만..."
잠깐 침묵했다. 그러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는 테러가 마음에 걸립니다. 무고하지 않더라도 그게 죽어 마땅한 이유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부장님께서... 전력을 나누는 것에서 두 일 모두 그르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신다면,"
2학구를 테러한다. 말은 좋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부수적인 피해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수고가 앞으로 어떻게 생기게 될지는? 저 리버티라는 놈밖에 모른다. 남이 짜놓은 판에 들어간다는건 그런거다. 리스크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싸워야 한다. 당장에는 편할지 몰라도 나중에 가면 어떻게 되는데?
"우리와 협력하고 싶던거라기에는 타이밍이 참 악질적이네... 정신없고, 여력도 없고. 그런데 그때 짠 하고 2학구 테러라는 카드를 내민다니, 수상하기 짝이 없어."
종이나 대화로 작전이나 현황을 이야기한다면 제 아무리 해킹의 천재라고 해도 정보를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역 제안을 할게."
철현은 리버티의 말을 곰곰히 듣고 사악한 미소를 띄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정의의 사도도 뭣도 아니거든?" "불렛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난 복수를 하는 게 더 좋아." "2학구를 날려버리는 건 내가 하게 해줘. 직접 그 쓰레기들을 날려버릴 수 있는 기회가 눈 앞에 있는 데 누가 마다하겠어?" "연구원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스킬 아웃들을 선동하고 너희에게 물건을 받는다면 충분히 교란이 가능할거야."
만약 리버티가 이 제안을 수락한다면 리라에게 부탁하여 분신들로 적당히 순찰을 도는 선에서 끝낼 것이다.
이미 시작부터 이들의 알량한 껍데기가 보이는 듯 했지만 뭐 일단 뭐라고 지껄이는지 들어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들어보고 쓸 만 하면 그 때 말을 얹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세상에, 뚫린게 주둥이인 인간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네."
풉, 킥, 크크큭.
연달아 터지는 조소를 그대로 이어셋을 향해 흘렸다. 그리고 일말의 웃음기도 남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림자의 본거지를 알아낼 재주는 없고 2학구에서 난장을 칠 재주는 있나 보네. 어? 야, 뭐가 인첨공의 어둠을 용서하지 않아, 뭐가 진정한 자유를 쫓아 비상 어쩌구야? 니들 하는 짓거리가 그림자나 블랙 크로우 등등이랑 다를게 뭔데."
하- 짜증나.
"명분이라는게 그 주둥이로 싸지르지만 하면 다인 줄 알아? 그래봤자 니들, 1학구는 얼씬도 못 하는 병X들이잖아. 안 그래? 그냥 솔직하게 말 해. 2학구가 거슬리니까 뒤엎고 싶을 뿐이라고. 마침 거기에 퍼스트클래스도 없겠다, 그래서 그나마 만만해뵈는 2학구를 이 참에 허울 좋게 쑤시려는 거 잖아? 아니야? 야, 더 씨부려 봐 이 T발X끼야."
다른 이들은 이어셋을 껐을지 모르나 나는 끝까지 안 끈 채 뭐라고 더 말하나 기다렸다. 그림자 하나 만으로도 속에서 천불이 끓는데, 이젠 이런 듣보잡들까지 설치니 겨우 가라앉은 열병이 금방이라도 다시 도질 것만 같았다.
"공리주의자로써, 그건 전혀 찬성할 수 없으니까요. 2학구에 있는 사람과 3학구에 있는 사람과 4학구에 있는 사람의 목숨은 모두 동일해요. 4학구를 구하자고 2학구를 날려버리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구요. 저들의 목적은 4학구가 아니죠. 사람들이 죽음에 익숙해지길 바랄 뿐이에요. 2학구에 있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면 그건..."
굳이 테러를 예고까지 해 가면서 한다고? 단지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약통에서 두통약을 꺼내 털어 삼키면 딱딱한 정제와 차가운 물이 식도를 긁고 내려가는 게 느껴지는 동시에 정신이 조금 더 맑아진다. 그 사이 모두의 팔목에 비상 워프 장치를 채워준 리라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스케치북을 집어든다.
"좀 도발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저런 테러 예고를 듣고 그럼 그렇게 하자, 대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 몇이나 될까요. '윈윈' 을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는 난장판을 벌릴 테니 막고 싶으면 이리 오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전력이 분산되며 자연스레 일 처리가 어려워지겠지. 그걸 바라는 건가? 리라의 눈동자가 살짝 굴러 부실 유리창에 닿았다. 며칠 전의 커리큘럼 이후로 빛바랜 머리카락과 똑같이 하얗게 변해버린 자신의 속눈썹이 시야에 들어오면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들끓는다. 연구원.
"아무래도 2학구에 악감정이 많으신가 본데, 확실히 하죠. 사실 당신들은 우릴 도우려는 것도 누굴 구하려는 것도 아니지 않나요. 그냥 마음에 안 드는 걸 전부 터뜨리려는데 우리가 끼어들어서 거슬릴까 봐 얼결에 얽힌 걸 이쪽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인 척 들이밀 뿐이지."
그림자의 소탕만이 목적이었다면 2학구 전체를 테러하겠다는 소리는 아마 하지 않았을 거다. 결국 허울 좋은 명분을 내밀며 지껄이는 헛소리에 가깝지 않나.
"죄송하지만 당신들이 지금 말한 건 명백한 테러 예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걸 스스로 자각은 하고 있나요? 참 나. 누가 보면 정의의 사도라도 된 줄 알겠어요. 어둠을 용서치 않는다라... 세상 모든 일이 합법적인 루트로만 처리된다는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걸 나름대로의 정의관 아래 합리화하는 꼴은 저지먼트로서 보기 어렵네요."
물론 인간은 감정적인 동물이고 감정에 따라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때도 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 그러나 저쪽은 무엇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조직. 누군지도 모르는 자의 감정에 공감해서 범법행위를 눈 감아줄 이유가 이쪽에는 없었다.
리버티. 자신들은 인첨공의 어둠에 대적하는 이들이라고 밝히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정말 순수하게 악을 처벌하기 위한 단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의는 이익과 증오, 욕망에 쉽게 압도당하고는 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예감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었을까. 어른들을 믿지 않는 금이라도, 그들이 하는 말에는 내면에서 밀려오는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폭력으로 이루어진 권력은 더 큰 폭력에 의해 뒤집힌다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테러'는 그림자에게는 당연히 효과적인 피해를 입힐 것이었지만. 금은 쉽게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음으로써 이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만들어 낼 결과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금은 아무 말이 없었으니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접근 방식이 잘못 됐다. 태오는 이어셋 너머로 흐르는 소리에 제법 안타깝다는 듯 눈을 흘겼다. 자신이 아는 목화고 저지먼트는 이미 많은 사건으로 같은 저지먼트 부원이 아니면 타인을 절대 믿지 않는다.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얘기해서는 안 됐다는 뜻이다. 자기들만의 사회에서 똘똘 뭉친 사람들에게 강제로 끼워달라고 한다며 작전을 떠벌리면 반감만 살 텐데. 퍼스트클래스 말고도 배신자가 또 있나보구나, 인간이란 역시 덧없는 존재다.
"이미 저지를 생각이 만연하군요. 우리에겐 그렇게 될 것이라 통보하는 꼴이에요……."
그것보다 테러라. 태오는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안타까운 사람들. 아니, 멍청이들. 2학구에 테러를 하겠다고 이미 선전포고를 해놓고 이들이 연구원이니 뭐니 덧씌우는 꼴이 우습다. 2학구에 있는 연구원은 당연히 죽여버려도 좋은 인물들이다. 역하고 치졸한 것들을 치우는 것 좋다만, 저렇게 대놓고 언급하며 '진정한 자유'라고 합리화하는 꼴이 우습다. 이건 자유가 아니다.
"솔리스도…… 자신들을 괴롭게 만든 엘리트와 신앙을 저버리는 배교자를 처단했노라 했지요."
─와 다를 바 없지. 세뇌 당한 사이비 테러단체랑 다를 바가 없구나. 팔이 올라갔다. 태오의 노이즈가 꺼지더니 시선이 은우를 향했다.
"미안한데…… 관련도 없는 것들 구한답시고 고등학생 분수에도 안 맞게 소년병처럼 사지로 나서는 사람들에게…… 관련도 없는 것들 죽이겠다고 통보하는 버러지들의 대화도…… 들어야 하나요."
눈이 마주쳤든 말든 손이 올라가 슬쩍 가린 입술이 비죽비죽 올라가고 있었다. 드문 반응이었다. 태오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 마디 뱉었다. "아, 인간이 다 이렇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