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과회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지만, 갑자기 비가 쏟아나리는 바람에 취소 통보를 라인 메시지 따위로나 받아버린 오늘. 호텔 뺨아리 후리도록, 기다란 나무 테이블에 깔끔하게 세팅한 찻잔과 과자, 그 옆에 차게 엎어진 자신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다. 내팽겨진 하녀도 아니고.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손에 든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괜히 심술 묻은 문장만 쏟아 나왔다.
[그렇게 말했는데 집이 어디냐고 묻는 사람이 어딨어요٩(`ω´٩ꐦ)] [지금 갈 거라고요] [하나부터 끝까지 다 말해줘야 알아듣는 바보 집사]
돌도리란 이름에 네코바야시 살짝 벌린 입술에서 허탈한 실소가 터져버렸다. 품에 안은 자그마한 수첩을 탁, 접어두고. 바짝 엎드려 교실 바닥을 이리저리 살폈다. 청소를 대충해서 과자 부스러기나 먼지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는, 두 손을 맞부딪혀 먼지를 탁탁 털어내고서.
비과학을 갈망하는 주제에 되레 과학적인 말을 쏟아내는데.
"환청이나 환시, 환촉은 뇌가 착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건, 아직 명확한 해결책이 없다고 들었지만. 스트레스가 주범이라 들은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소녀의 시선은 소년이 손에 쥔 반려 돌이라는 것에 바짝 이끌려서, 의뭉스런 미소로 그를 올려보며 한마디 보태어 그것에 손을 뻗었다.
내가 잘못한건가? 내가 잘못한거야? 집까지 데려달라는 식으로 톡이 온 것 같아서 집이 어디냐고 물어본건데 집이 어딨냐고 묻는 사람이 어딨냐니. 자신의 언어독해 능력이 떨어진 것일까. 당분간 책을 사서 읽던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유우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뚱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말 없이 유우키는 가만히 라인 메시지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일단 지금 갈 거니까 도와달라는 의미로 알아들을게요]
어쨌든 가장 메인적인 메시지는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혹시나 그녀가 세간에 들려오는 교토식 화법을 사용한 것이 아닌한, 일단 그로서는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밖에 없었기에 그는 일단 그런 의미인 것으로 파악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또 다시 올라온 지금 오면 차 한 잔은 말아줄 수 있다는 그 메시지에 유우키는 두 눈을 깜빡였다. 차라. 이전에 선도부실에 찾아갔을 때가 문뜩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 아마 다과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었던가. 또 다과회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런데 조금 전 메시지에선 혼자 있다는 식으로 메시지가 올라왔었던 것 같은데. 정보를 모으고 종합한 끝에 유우키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비도 오는데 차 한 잔 마셔볼게요. 금방 갈게요.]
라인 메시지를 보낸 후에 그는 자신의 반으로 들어갔고,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창밖 풍경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이내 창문에 커튼을 쳤다. 그리고 불을 완전히 끈 후에, 문단속을 철저하게 하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계단을 내려 그가 향한 곳은 이전에도 간 적이 있었던 선도부실이었다.
'금방 갈게요' 그 한마디에 변덕스러운 네코바야시는 마음이 분주해졌다. 바보 같은 선배. 여자 마음 하나도 모르는 바보 같은 선배. 퀴퀴한 냄새 나는 부실에서, 옷매무새 가다듬고 흐트러진 머리 풀었다가 다시 묶고. 남몰래 상큼한 비누 향 나는 섬유 향수도 살짝 뿌려보고.
이거,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손잡이 달리지 않은 두꺼운 도자기 찻잔을 렌지에 불쑥 집어넣고서 버튼부터 삑삑 눌러버리고 몇 초를 돌리면 될까 고민하는 와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잠깐만요!"
황급히 렌지에서 꺼내는 찻잔, 뜨거운 것도 모르고 거기에 맹물처럼 덜 우린 홍차를 쪼르르 담아내고서. 조심스럽게 쇠 문고리를 돌리면 역시 잘생긴 선배가 눈앞에 서있다. 괜히 고개 돌리면서 시선 피하고, 이제사 불편해오는 오른손은 뒤로 감추고서.
"진짜 오셨네요."
문틈으로 들어오는 잔잔한 빗소리, 부실은 어두워 밖에서 새아든 먹빛에 잠식되어. 불 켜는 것도 잊은 것이 분명하다. 수줍은 네코바야시는.
잠깐만요라는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안에서 차라도 끓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급한 서류작업 같은 것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시간은 많았으니, 여유롭게 문이 열리는 것을 기다리며 유우키는 괜히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차후의 스케줄을 정리하는 와중 문이 열리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안 왔으면 나중에 무슨 메시지가 날아올지 모르잖아요? 차가 꽤 끌리기도 했고요."
미끼 잘 던지네요. 그렇게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는 어두컴컴한 부실 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왜 부실 안이 어두컴컴한 것인지. 유우키는 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어 그는 일단 스위치를 눌러서 부실 안의 불을 켰다.
"설마라고 생각하는데, 계속 불 끄고 있었던 것은 아니죠? 눈 나빠져요. 불 끄고 있으면."
물론 바로 나빠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눈에 피로가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특히나 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어 그는 가만히 비어있는 부실을 바라보다가 일단 그녀에게 물었다.
"아. 이번엔 엄연히 먼저 오라고 했으니까 나중에 왜 부외자가 부실에 들어왔냐고 화내는 것은 아니겠죠? 후훗. 아. 그때의 일로 화가 난 것은 아니에요. 나중에 그 애에게는 만쥬를 얻어먹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