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안겨오는 작은 체구에 움켜쥔 팔목을 놓고 토닥이듯 한 팔로 어깨를 감싸 두어 번 두들겨주다 열없이 안아줬다. 잠자코 어린 요괴 하나 품에 안은 채 어깨부터 팔뚝이나 괜찮다는 양 쓰다듬고 있으면 어느새 경계도 없이 줄줄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건만 직접 상세한 내용을 들으니 다시금 머리가 지끈거렸다. 정확히 뭔진 파악은 못해도 기운을 억지로 틀어막은 것은 알겠다. 저가 열 올라 정신 놓고 있을 때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상한 게 대체 어디서 우리 개새끼 병이 또 도진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보건실에서 대치한 것? 겨우 그걸로 그런 짓까지 할 일은 없을 테고. 남은 건 무신 놈에게 당한 걸 카와자토가 알고 염려 어린 말을 건넨 것인데⋯⋯. 지 자식같은 놈에게 저가 해 끼친 것도 아니고 도리어 해 입고 왔으니 그것 또한 노할 일이 아닐 테다. 하, 대체 뭐에 꼭지가 나간 거야, 망할 자식. 속으로 욕이나 지껄이고 있다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열에 잠자코 이마나 매만졌다. 막 끓인 스프도 아니고 펄펄 끓네. 암만 정 없는 스미레라 해도 귀애하는 요괴 앓는 꼴이 내킬까. 자못 가엾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살피다가 수영장 물 속으로 이끌었다.
"지금도 많이 아프니."
비가 막 그칠 즈음의 방과 후, 하늘은 잿빛으로 흐리고 기온은 유난히도 서늘하다. 이런 날씨에 물속에 들어가는 건 보통 '인간'이면 안 한다. 요괴에겐 보다 더 기꺼운 환경에서 학생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교사처럼 양 손바닥을 내밀어 그 위로 손을 얹으면 천천히 너른 물길을 걸을 것이다. 물장구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적막 속에서 천천히 입을 연다.
"괜찮아, 스미레가 아프지 않게 해줄게. 임시방편이나 전부터 네게 들려주고 싶었던 게 있어 다행이었지."
카와자토에겐 영문 모를 소리. 허나 자신은 안다. 인어에겐 언어의 힘이 있다. 음성을 통해 신경 회로를 건드는 모든 음성으로 만들어내는 신묘한 힘. 이것으로 인어는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해냈다. 공격적인 성향은 희박하나 어찌 됐든 홀린다는 것은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는 말과 상통한다. 사용법에 따라 일종의 진통제 역할도 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인어의 입에서 비로소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본래의 것보다 느릿하고 숫제 바람 소리로 착각할 만큼 고요하며 따라서 요람가처럼.
Nobody hates you, you're not a burden 아무도 널 싫어하지 않아, 넌 짐이 아냐 It's just been a bad week, it's gonna be worth it 힘든 한 주였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을거야 Nobody hates you, your world isn't burning 널 싫어하는 사람은 없고, 네 세상은 위험하지 않아 Just 'cause you think it, don't make it true 너의 생각을 현실로 만들지 마
Alone and we're tangled 우린 외롭고, 복잡해 We're messy, we're mangled 엉망이고, 망가졌지 We stare at the ceiling 우린 천장을 올려보며 We'll scream 'til they hear me 그들에게 우리의 말이 들릴 때까지 소리칠거야
>>353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우와 진짜로 인자해... 그거 누구죠?? 일단 야요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어울릴 것 같다😏
>>355 오.... 오오오오....... 어떻게 해도 못 이길 것 같아서 좀 짜릿하다(?)
>>360 앗 선레 써준다니 고마워! 상황도 그렇게 하면 오케이! 선레에 참고가 될까 해서 며칠 전에 난장판 벌어졌던 당시 상황을 조금 설명하자면, 일단 난입하자마자 냅다 류지 들쳐메고 멀~리 던져두고 온 다음 몇시간 지나서 카페로 다시 돌아왔을 거야. 야마어쩌구도 불에 좀 그을려서 꼬질꼬질 탄내 풍기면서 돌아옴...
>>379 이제 노래 대신 불(나기)로 스스로를 지켜야만 할 스미… 근데 어느날 무심코 허밍하다가 멈칫한 적 있음 좋겠다. 노래 부르면 자동적으로 힘 실리는 구조라(인어들끼린 면역 탓에 안 통함)……. 그리고 해질녘 창으로 들어오는 노을 밑 역광에서 찢어내팽겨친 커튼 위에서 키스하면 그림 하나 나오겠다
끼엥 하며 스미스미 선배님의 품에서 기운이 없는 채로 고개를 끄덕여 요 아니 진짜로 아야나 많이 아프니까. 그래도 물에서 헤엄치다 보면 어느정도 나아질 것 같아서 오늘 온 건데.....어라라? 스미스미 선배님이 자신을 잡고 물가로 이끄신다. 또이잉 하고 눈이 휘둥그레 진 채, 아야나는 스미스미 선배님의 손을 잡고 이끌린 채로 물가를 걸었다. 영문도 모른 채로 후히히 웃으며 따라 걸었다.
"스미스미 선배님과 같이 걸으니까 좋사와요. "
비가 그친 직후라 어지간한 수영부원 아이들은 오늘 수영장을 이용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이게 무슨 소리냐면, 수영장에는 지금 스미스미 선배님과 아야나 단 둘 뿐인 상황. '인간' 은 헤엄치러 올 날씨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인간' 이 아닌 우리들은 마음껏 물살을 걸었다. 걸으며, 이 차가운 '물' 을 마음껏 즐겼다. 그렇게 적막 속을 걷다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그 아름다운 흥얼거림을 듣는 순간,
서서히, 고통이 나아지기 시작하는 것을 아야나는 느낄 수 있었다.
"오이잉............? "
열이 서서히 내려가고 고통이 잠시나마 멎는 것 같은 느낌.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서서히 열이 식어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신기하다! 라는 생각이 들어 아야나는 그 노래를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노래가 다 끝날 즈음에는, 완전히 고통이 멎은 느낌을 경험할 수 있었으리라.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노래가 끝나자마자 카와자토 아야나는 바로 스미스미 선배님의 품에 다시금 포옥 파고들려 하였다. 지금 이순간 그 무엇보다 기쁜 낯빛을 하며.
"감사드리와요, 스미스미 선배님! 열이 쫌 내려앉은 것 같사와요! "
그 말 그대로 카와자토 아야나에게는 더 이상 큰 열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운없어 보이는 것은 여전했지만. 태양의 손길이 지나갔으니 족히 일주일은 이러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간에 지금은 고통과 열이 잠시나마 멎었으니 그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겠지. 한없이 기쁜 낯으로 아야나는 스미스미 선배님을 올려다 본다. 창공을 그대로 담은 듯한 맑은 물빛이 보랏빛을 똘망똘망한 눈길로 또렷이 응시한다.
참으로, 누구보다 동경하고 경애하는 눈길로.
그 눈길이 누구에게 만 가야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면, 이 아이는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을텐데. 바보같은 카와자토 아야나. 당신의 주인이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진 생각하고 있지 않아? 어떤 생각을 하며, 하굣길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는거야? 후회하게 될거야. 카와자토 아야나.
>>380 노래(바다) >> 불(태양) / 이 변화가 쓰미 인생 그 자체라고 생각할게용 ㅎㅎ 근원 잃고 마냥 무력하던 거 새로운 터전 찾고 그 환경에서 습득한 수단으로 몸 지킨다는 게 너무 좋네요 ^^ 달에게 배운 사냥법 > 태양에서 배운 사냥법 느낌도 들고. 주변 휘말릴까봐 멈추는 건가요? 아니면 예전만큼 힘이 실리지 않아서? 사실 쓰미가 불에 익숙해지고 강해짐에 언어의 힘은 점점 쇠약했으면 좋겠다. 태생으로 받은 능력 잃고 망연자실하거나 얘 원망하는 쓰미 보고 싶어서용 ^^ 하..그쵸? 그림천재 그림체로 맛깔나게 표현해주세요 기대합니당
그림자 없는 수영장. 그늘진 어린 요괴의 낯빛. 물에 살면서 비에 겨워할 만큼 여리고 약한 애. 앓는 태 보니 퍽 안쓰러워, 히비스커스 절반의 꽃잎이 짓밟힌 날로부터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음성을 냈다. 말하는 것과 확연히 다른, 힘 실린 음성. 인어의 노래의 효과와 효능은 부르는 당사자 소망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므로, 보다 효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문장 있는 노래를 주로 부른다. 진통제 역할 뒤에 숨겨진 또 하나의 효력이란 심신의 안정과 <보호>. 인어의 힘이 지속되는 시간-여덟 시간-동안은 물리적과 비물리적인 악의 담긴 공격으로부터 지켜지리라. 인어가 건 능력을 상회하는 힘이 아닌 이상은.
다행히 효과가 제대로 들었는지 차츰 낯빛이 맑게 변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안도했다. 하나는 아이가 일시적으로나마 아프지 않게 되어서, 다른 하나는 아직 내 심저의 샘이 메마르지 않음의 방증이었기에. 야트막한 숨을 내쉰 후 품에 들어오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듯 토닥여주려 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여하간 카외자토, 되도록 그놈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렴. 위험해."
혹시라도 험한 말이 샐라 유의하며 조언했다. 기실 그 속 모를 방탕한 놈 시야에 들었다간 무슨 일 일어날지 모른다. 암만 목줄 채워진 개 흉내 내봤자 숨길 수 없는 맹수적 야생성 24/7 동안 내내 붙어있으며 질리도록 보았으니 모르고 싶어도 알 수밖에. 그러던 중, 염려 어린 문장 줄줄 내뱉는 동안 자꾸만 묘한 감각이 들었다. 적요 속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하는 이명처럼, 혹 심장께나 뇌 끄트머리를 자그마한 송곳으로 쿡쿡 찌르는 듯한⋯⋯. 절로 심기가 약간 모로 기울었다. 아무한테나 손대는 천한 개새끼 태생 어디 안 가지. 스스로도 모르게 난 성에 속으로 태양 놈 마구 신경질적으로 씹어댔다. 그래, 이건 아마. 아무래도 제 주변을 연거푸 태워없애려는 원수에 대한 증오임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닥친 충동에 잘 다듬어진 손톱으로 제 손목을 콱 그었다. 지저분하게 벌어진 상처에서 붉은 피가 뚝, 뚝, 수면 위로 떨어지며 파란 물을 시붉게 물들였다. 쥘 수 없는 물을 그러쥐듯 손아귀에 벌건 물을 담자 고체화되며 단단한 보랏빛 구 형태로 변모한다. 새끼손톱 위로도 채 안 찰 만큼 작은 크기의 자색 구슬을 눈앞 상대에게 내밀었다.
"아마 여덟 시간 뒤면 효력이 소멸될 수 있으니 너무 아프면 삼키도록 해. 어느 정도는 중화될 터이니."
>>393 주변 휘말릴까봐 + 나기한테 들려주기 싫어서 (ㅋㅋㅜㅜ) 태생적으로 언어의 힘을 믿을 수 밖에 없는 인어인데, 그간 죽음으로 파기된 언약들만 수없이 많은 스미에게 남은 유일한 언약(나기 반지는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일단 제외)인 인어 고유의 능력까지 잃으면 진짜 이제 쥐고 있는 게 낙인밖에 유일해지는거네요……… 🥹🤤 그 그림이요????? ………그냥 돈 열심히벌어서커미션을넣어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