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사와요. 그럼 청컨대, 이 인세를 어지럽히고 사특한 힘으로 인간들에게 위협을 가해 두려움에 떨게 하는, ” “태양의 신을 처단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
왜 많고 많은 것들중에 불 관련 요괴도 아니고 태양의 신이냐? 태양열이 느껴지기도 하였지만 이 정도로 광대한 범위에 영향력을 가할 정도면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연못을 나온지 5년밖에 채 되지 않은 어린 요괴로써도 이정도는 추측해낼 수 있었다.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할 정도면 신급이 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히 청하옵건대, 이 오만방자한 태양의 신이 자신이 인간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똑똑히 깨닫게 해주시옵고, 자신이 겪은 방식과 똑 같 은 방식으로 고통에 떨게 해주시옵소서. 이곳을 방문한 모든 인간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떨며 스러졌는지 똑똑히 알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태양의 신이 제 잘못을 완전히 깨닫고 인간들과 요괴들에게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을 알게 된다면, 이 어린 요괴 그 이상 바랄 게 없사오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 어린 요괴, 군신 앞에 한쪽 무릎을 끓고 주저앉은 채 올려다 보고는 감히 이렇게 청해보이려 하였다.
“이 아야카에루, 감히 군신께 이 소원을 들어주시거든 그 어떤 방식으로든 은혜를 갚겠다는 [ 요괴의 다짐 ] 을 하겠사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이 어린 요괴, 나오토의 한손을 양 손으로 잡아 제 입가로 가벼이 이끌려 하였다. 잠깐의 닿음이었으나 이 닿음, 분명히 손등에 한 입맞춤이었으리라.
“ーーー이것이, 당신께 제 스스로를 바치며 청하는 [ 요괴의 다짐 ] 이오니. ”
바라보는 눈길 한없이 올곧고 청명히 맑다. 지금 이 모든 것을 고하는 눈빛, 일체의 거짓 없이 맑고 순진하오니. 이 소원이 이루어지는 그날, 태양의 신이 처단당하는 그날. 이 어린 요괴 무슨 수를 써서든 당신께 그 은혜 똑똑히 갚으리라.
나오토는 매우 당황한 듯한 표정을 보였어요. 당연하게도 소박한 부탁일 줄 알았는데.. 같은 편이 되어서 신격을 다시 쌓아나가야 되는 존재인 '신'을 처단해달라고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 그리고 나오토..아니, 애초에 군신은...
' 난감하다. 그리고 애초에 이 군신은. '
' 태양의 신. 신명만 들어봤지, 정확히 누구인지 어떤 신인지도 잘 모른단 말이야. '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는 신을 처단해달라고 하면 당연히 당황할 법도 하지요!!! 인세를 어지럽히고 사특한 힘으로 인간들에게 위협을 가한다라. 당연히 군신의 눈에 거슬릴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 아야나의 말만 들어서는 그것이 옳다고 판단할 수가 없는 것. 군신은 감정적으로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서 실행하는 신이 아니었어요.
"저기요..저기요.. 알겠으니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러니깐 인간을 위협하는 태양신을 혼내달라 이거잖아요? "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싸워야 마땅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위대한 신격으로 세계를 다스리던 시대가 아니에요. 지금은 잃어버린 신격을 찾아야 되는 시기. 혹여나 현재의 상황만 봐서 태양신과 싸우다가는... 저 위의 잘 나가는 대신님들이 극대노해서 신격을 되찾고자 하는 일은 물거품이 될 지도 몰라요. 그렇게 해서 요괴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이거는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판단해야 되는 문제였어요. 특히 전쟁의 전략과 체계를 전문적으로 관장한 이 군신. 단기간의 목표만 보고서 싸우는 일은 극히 드물었죠.
특히 저 강한 힘을 가진 태양신. 싸우기보다는 어르고 달래서 신격을 같이 되찾는 것이 나오토의 입장에서 더 이득이었거든요. 싸워서 둘 다 무사한다고 해도 대신들께서 노하시고, 지면 소멸되고, 이긴다고 해도 상처 뿐인 승리가 되겠지요. 이를 '피로스의 승리'라고 인간들이 부르더군요. 싸워봤자 아무 이득도 없는 신이었어요.
" 하하..이거 참 영광이네요. 요괴한테 다짐도 다 받고.. "
으아악!!! 손등에 키스는 왜 하는 거냐고요?! 차라리 도장이나 사인을 해달라고요?! 참으로 요괴들은 요즘 시대에 따라갈 생각이 없나... 이 생각을 한 나오토였어요.
' 내, 군신으로서 잠시 품위를 깨는 말을 하자면.. '
' 에휴.. 첫 날부터 상황이 이렇게 꼬이는지... 끊었던 연초가 다시 생각나는구나. '
" 그..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도 일이 해결이 안 된다면 다짐은 어련히 지워주시죠? 저 아직 이루어준다는 말도 안 했는데.. "
나오토는 하하.. 웃으면서 어색하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 일단 태양의 신이 누구인지나 한번 봐야겠어.. '
' 이 요괴의 말이 사실이라면.. 잘 어르고 달래야지.. 현 상황에서 싸워서 이득이 안 되는 신인 것을.. '
"짐작컨대 이 태양의 신은 아야카미 고교에 재학 중일 것이며, 추측컨대 3학년일 가능성이 높사옵니다. 그러니 3학년 반 어디에서든 둘러보신다면 어렵지 않게 태양의 신을 찾아내실 수 있으시겠지요. 이 아야카에루의 추측은 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사옵니다. "
부드러이 웃으며 이 어린 요괴, 군신 앞에 제 추측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고한다. 왜 3학년이냐고? 1학년 중에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 같거든. 2학년은 더더욱 그렇고. 그렇다면 3학년이다.
"이 오만방자한 태양의 신이 짐작컨대 인간에게만 해를 끼치고 위협을 가할 일 없사오니, 군신께서도 이 자를 처단하신다면 온 아야카미쵸에 평온을 되찾아 주시는 덕을 쌓으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신격 역시 어느정도 되찾으시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실 터. "
다짐을 지운다? 이 어린 요괴 그런 것 하지 않는다. 이미 무신께 한 맹세 역시 입술이 뜯어지고 아작나고도 무르지 않았다. 이 어린 요괴의 올곧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청컨대 신이시여, 부디 이 어린 요괴의 바램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
또렷이 올려다보는 푸른 눈빛 여전히 맑고 떨림이 없다. 이 어린 요괴 결코 무를 생각이 없다. 자. 이제 당신은 어찌할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