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이 탄생하기 훨씬 전부터 살아온 나도 가게를 가리지 않고, 아메리카노면 그저 만족하고 마셨다. 나 때는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노 주문하다가, 에스프레소하고 얼음만 던져줘도 알아서 만들어서 먹었다. '
' 그래도 아직 어리니깐 이해를 해줘야 될 터이니. '
나오토는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아야나의 류지군이 만든 멜론소다에 대한 고집에 속으로는 군신님께서 라떼시절을 운운하고 계셨어요! 이탈리아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그 날! 종업원의 ' 이 놈은 뭐지 '라는 눈빛과 함께 에스프레소와 얼음을 받고 " 이탈리아는 그딴 거 취급 안 하니깐 알아서 만들어드쇼. " 라는 말을 들었던 시절! 근데 그걸 또 지 혼자 만들어 먹어서 만족하던 나오토의 과거!
그런데요. 아야나가 대뜸 나오토에게 카페 안에 타는 기운이 나지 않냐고 물어보네요. 떠보기 위한 것일까요? 나오토는 아야나가 요괴인 것을 기운 만으로 알아차렸지만, 아야나는 아직 나오토의 신분을 알 수 없었어요. 나오토는 확실히 타는 기운이 느껴졌지만..
" 네? "
나오토는 아야나의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정문에 다가가서 킁킁 냄새를 맡아보고는 했어요. 뮤지컬 배우 하루카와 나오토, 연기가 제법 뛰어났어요. 그러고나서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야나에게 묻네요.
나리야가 마무리되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는 4강전에서 떨어졌다. 일단 나리야 자체는 적팀의 완전한 승리였고, 그는 가만히 뒤로 빠져나와 전광판을 바라봤다. 조금 씁쓸한 감정이 있긴 했으나 그는 굳이 그 감정들을 표현하진 않았다. 경기에선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이며 이런 체육제에서 반드시 꼭 이겨야 하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금 복잡한 심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상 살면서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다 표출하면서 살겠는가. 일단 아쉬운 감정은 잠시 가라앉히기로 하며, 그는 달리기를 하기 전에 몸이나 풀겸... 살며시 저편으로 가서 몸을 풀었다. 달리기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분야였다. 여기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활약은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두 다리를 쭈욱 쭈욱 뻗으면서 몸을 풀었다.
"하나. 둘. 하나. 둘."
조용히 여러 번 외치면서 그는 쭈욱, 쭈욱 다리를 뻗었다. 쭈욱, 쭈욱. 그러다가 옆을 지나가는 이와 부딪칠 것 같았기에 그는 빠르게 몸을 옆으로 치우면서 바로 근처에 있던 이에게 사과를 보냈다.
"아. 죄송해요. 혹시...부딪치진 않았죠?"
딱히 부딪힌 느낌은 없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다. 확인을 해서 나쁠 것이 없었으니 그는 그렇게 물어보면서 답을 기다렸다.
콘소메맛 감자침을 바구니로 던졌다. 그 속에 든 무더기와 부딪혀 밖으로 튕겨나온다. 짧게 혀 차며 집어들고서 바구니를 미야비에게 건넸다. 계산은 몫이 아니었음에 휘파람이나 픽픽대며 주변 훑었다. 모로 살피다 개새끼 짖어대는 소리에 고개 틀었다. 들은대로 한마리가 이리로 달려온다. 그을린 피부에 미야비와 별간 동등한 높이였다. 캉캉대는 목청은 채 성숙치 못한 청춘을 닮았으나, 그 중심에는 변성기 앞둔 무게감이 존재했다.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는 단단한 몸체. 어디로 보나 남자 새끼라 곧 관심 끄고 매점 입구로 눈을 돌렸다.
"요즘 개 사육이 유행인가. 히데... 랬나? 들으라고 뱉은 소린 아냐. 그냥 농담으로 흘려."
당최 계집 앞에서 좋다고 살랑살랑 꼬리 흔드는 꼬락서니는 나나 저 개새끼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아니지, 쟤는 일순이나마 사랑 받고 있으니 매번 찬밥 신세인 나보다야 처지가 앞섰다. 별반 동네 똥개보다 못한 신세에 한숨이나 앓으며 여전히 입구 직시하는데, 노상 내 주인은 올 생각도 안 한다. 불 붙어 죽었나, 열에 시달려 누웠나. 무엇이든 탐탁잖기 그지없다.
"에효 씹.. 개새끼 사이에도 서열이 있지. 네가 나보다 낫다, 야."
강아지 쓰다듬는 미야비에게 시선 한 번, 좋다고 웃어재끼는 똥개한테 눈길 두 번. 이내 마주보고 응시하며 악수 겸 손을 내밀었다.
"네.. 저는 히무라 나기구요. 병신에다 개새끼입니다. 저보다 형편 좋으신듯 한데. 앞으로 잘 부탁드려. 이건 네가 사. 나보다 잘났으니까."
"에에잉 자세히 살펴보시는 것이와요. 분명히 여기서 무언가가 불탄 흔적이 느껴지는 것이와요. "
탄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야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문쪽에서 왼쪽? 오른쪽? 카운터가 있을 자리같아 보이는 벽쪽에서 뭐가 불타버린 듯한 냄새 가 나는 것이와요. 꼭 종이를 불태운 것 같이 고약한 기운이 나는 것이와요. 그리고 문 밖에서도 확실히 느껴지는 이 기운. 뭔가 태양열로 지져지기라도 한 듯한 탄 내와 탄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와요. 불쾌한 기운인 것이와요. "
평소에는 신 과 요괴 정도만 구분할줄 아는 카와자토 아야나가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는가? 상극의 힘을 지니고 있는 자는 서로의 기운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법이다. 카에루족 캇파인 모든 이들이 쓸 수 있는 힘은 물의 힘. 그리고 물의 힘을 유난히 강하게 사용하는 아야카에루. 이 상극의 기운에 진저리를 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 벽과 창문 정문 그 어디에도 불탄 흔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 혹은 불의 신이 이곳에 다녀갔다.
이러니 저러니 해서 백팀의 완전한 패배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끝까지 도박판에 남아있지 않았던 내 잘못도 어느정도는 있겠지만 진정한 '꾼'은 자리를 가리는 법. 익숙한 기운을 한 녀석이 믿지 못할정도의 성과를 보여줘버린 탓에 흥이 깨졌다. 활쏘기는 제사에도 포함되어있을텐데 어째서냐. 뭐 그리하여 조금 달아올라버린 기분도 여기서 끝. 나머지는 응원정도이니 느긋하게 관전이나 해볼까 해서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았다. 문제가 있다면 평소 인적이 드물어 애용하던 곳 중어디를 가도 체육제 특수를 제대로 받은 연인들의 연애의 장으로 탈바꿈해있었다는 걸까. -조몬 야요이-는 몰라도 '나'는 아이들의 연애에는 참견하지 않는 여자. 여기서는 쿨하게 자리를 떠줘야겠지.
툭, 하고 누군가와 부딪히기 전까지는. 아니 사실 부딪히지도 않았다. 잘 쳐줘야 옷깃이 스친정도. 문제는 아주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아 이쪽이야말로."
뭔가... 이 기운은 익숙하다. 분명 보이는것도 느껴지는것도 인간이지만 어렴풋이 묻어있는 기운... 개구리냄새... 얼마전에 만난 아가를 떠올리게 한다. 분명 비가 내린 후의 호수같은 청량한 기운이었던것같은데. 분명 그 아이가 무어라 했었지. 그래... 분명... 같은 유치원의...
짧은 검은머리. 밤을 상징하는 검은색과는 대조적으로 붉은 눈동자는 상당히 이질적으로 유우키의 눈에 비쳤다. 여러 사람의 시선을 그대로 뺏을 것 같은 외모라고 유우키는 생각했다. 우리 학교에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유우키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이내 그녀의 답이 들려오자 바로 대답했다.
"아니요. 이쪽이야말로... 부딪치지 않았다고 한다면 다행이에요."
체육제는 자연히 운동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마련이었다. 이렇게 몸을 풀다보면 자연히 누군가와 부딪칠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딱히 부딪친 느낌은 없었고, 살짝 스친 정도? 혹은 조금 더 옷깃이 충돌한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조용히 넘어가기보단 이렇게라도 말을 하는 쪽이 낫지 않겠는가. 일단 상대 쪽에 폐를 끼친 것이 아니라면 유우키는 살며시 몸을 옆으로 치워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그는 그녀를 다시 바라봤다.
시라카와 유우키. 자신의 이름은 시라카와 유우키. 즉 저기의 유우키는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아. 네. 시라카와 유우키라고 해요. 후훗. 4강전에서 떨어진 그 유우키에요."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았냐...라는 의아함은 없었다. 그야 전광판으로 자신의 이름이 다 떴으니까 이름을 알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나리야가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인상적이었나요? 제 이름이요?"
그렇게 묻는 것은 살며시 돌려서 무슨 용건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굳이 여기서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당연히 저 안의 카운터? 나 테이블? 쪽이 아니겠사와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와요. 무언가가 이 문 근처에서 탄 듯한 느낌 역시 느껴지는 것이와요. 몹시도 불쾌한 기운인 것이와요. "
히잉 거리며 열심히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켜 보아 요 아니 하지만 진짜로 카에루족 캇파 특성상 이런 기운은 바로 잘 눈치챌 수밖에 없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바로 불의 기운이기에 더더욱 그러하였다. 더위를 너무 먹은거냐는 학생쨩의 질문에는 "아닌 것이와요!!!! " 하고 단호히 부정해 보였다. 이 아야카에루님은 그 어느때보다 제정신인 상태이다. 이 기분나쁠정도로 상극인 탄 기운을 느꼈으니 더더욱 온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이대로는 안되겠사와요. 아야나의 주인님께 찾아가 이 모든 걸 고하겠단 것이와요. 그분께서는 무신이시니 이런 불쾌한 기운을 누가 내뿜고 다니는지 잘 알고 계시겠지요. 가서 뭔 일인지 낱낱이 알아보고 오겠단 것이와요. "
손풍기를 가만히 쬐며 말하다가 홱 몸을 돌리려 해요 아니 그런데, 저기 그거 아십니까? 눈앞의 학생쨩이 신인지 인간인지 요괴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881 아, 맞구나. 그럼 역시 오해였구나 그날 일은. 하긴 그렇지. 원래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들은 또래 아이들은 남자로 안보이는 법이다. 어른스러우면서 잘 챙겨주는 타입의, 옆집 오빠라면 모를까. 이런 어른스러운 애가 취향인가보구나. 그 아가는.
"아니? 솔직히 인상적이지는 않지. 평범하잖아 이름은."
너스레를 떨면서 자연스럽게 넘겼다. 그냥 이 시대의 인간인데도 이렇게나 요괴의 향이 짙은 경우는 드무니까. 헤이안이나 그 이전이라면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요괴의 피를 이은 인간이라던가 자주 있었지. 타무라마로 처럼 오로치 손자면서 관음보살의 화신이라는 뭔가 덕지덕지 붙은 녀석도 있었고. 특이할 것은 없지만... 이 시대는 아니다. 신과 요괴는 은닉되어야하는 것. 그런데 이런 기운은 요괴를 어지간히 가까이 하지 않는 이상 인간이 풍기기엔 묘해. 전국에 태어났으면 큰 장수가 되었으려나.
"경기 잘봤어. 4강전보다는 그 직전이 조금더 마음에 들더라."
분명... 마지막에 봤던 전광판에서는 되게 간발의 차로 이겼던 것 같으니까. 이럴땐 그런걸로 칭찬해야지.
"그냥 아는 꼬마애한테 들었던 그대로구나 싶어서."
도쿄대, 이야기가 나올 뻔 했지만 억지로 삼켰다. 아무래도 어렵겠지. 얘는 2학년인데 걔는 유치원생. 이 애한테 십수년이나 고난한 낭인생활을 보내게 할 수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