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저녁은 오이 후토마키일지 뭐일지 생각하던 와중에 유우군에게서 별일이 맞냐는 말을 들었다! 게다가 무슨 귀애냐는 말까지!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최대한 별일 아닌 것처럼 설명하고 싶은데 솔직히 설레는 일이었어서 별일 아닌 것으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에헤헤 하고 웃으며 옆머리를 넘기며 조심스레 설명을 하려 하였다.
"별 거 아니고! 아야나의 첫 키스를 그분께 바쳤사와요. [ 요괴의 맹세 ] 를 했거든요 그분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며 하는 영원히 그분만을 흠모하겠단 맹세를. "
모든 요괴가 맹세를 아야나처럼 하는 건 아니지만, 아야나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며 맹세를 했다. 이 정도로 비장하게 하지 않으면 들어줄 분이 아니니까 당연한 것이다. 다소 수줍은 낯빛으로 아야나는 말을 이어나가려 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받아주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흔쾌히 받아주셔서 기뻤사와요. 생각보다 다정하신 분이신 것 같사와요. 그렇지 않사와요? "
인간의 상식으로 요괴의 상식을 판단하려고 하면 안되는 것일까. 아주 입술에 피칠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기뻐하고 있으니 요괴의 상식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일까. 그렇게 유우키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요괴의 문화와 인간의 문화는 다른 점이 있을테니 자신이 간섭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좋아하는 이가 있고, 그 분과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고 봐도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축하드립니다."
수줍어하는 모습. 흔쾌히 받아줘서 기뻤다는 모습. 그리고 첫키스를 바쳤다고 하는 요괴의 맹세. 일단 고백을 했고 사귀기로 했다라는 것으로 알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유우키는 판단했다. 하지만 다정한 이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기에 그는 그 점에 대해서는 난감한 웃음소리를 조용히 내뱉었다.
"실례지만 아야나님. 저는 인간이기에 요괴의 문화는 잘 몰라요. 적어도 인간 사이에선 그렇게 피칠을 하는 이는 다정한 이가 아니에요. 물론 요괴나 신 쪽은 잘 모르겠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겠지만..."
잠시 말을 끊던 그는 이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아야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조용히 지었다.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며 언제나처럼 차분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를 이었다.
"아야나님이 행복한다면 된 거 아니겠나요? 하지만... 만약에 누가 봐도 괴롭힌다거나, 못살게 군다거나 아야나님을 위험에 빠뜨리려고 한다거나 그럴 땐 얘기해주세요. 그게 누구라고 하더라도 시라카와의 이름으로 제가 어떻게 해볼테니까요."
설사 그 때문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나, 가문의 사명이란 것이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은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런 말을 고하는 그의 표정에는 조금의 불만도 보이지 않았으며 언제나처럼 차분한 미소만이 녹아있을 뿐이었다.
"후히히 그렇사와요. 아야나는 이제 그 분의 것이와요. 아, 인명을 미리 알려드려야 겠지요? 인명은 무카이 카가리 시랍니다. 이 학교에 1학년으로 재학중인 무신이시어요. "
후히히 웃으며 유우군의 말에 대답해 ㅇ 아니저기요? 지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인간 세계에서는 다정한 이가 아니라고??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서로의 입술을 탐하지 않는단 말인가?? 다소 놀란 얼굴로 똘망똘망한 두 눈이 띠용해 진 채 유우군의 설명을 들었다. 한숨을 내쉬는 걸 보니 걱정이 꽤나 되는 모양이다. 유우군이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은 정말 간만에 보는 모습이다. 역시 신과의 사이라 많이 걱정되는 것일까?
"걱정 마시는 것이와요! 비록 그분이 제 머리를 와앙 하시고 신발장에 저를 집어넣으시고 제 머리에 수도手刀를 꽂으셨지만 그분은 저를 해치실 분이 아닌 것이와요! "
저기요? 설득력이 전혀 없는 이야기인데요? 유우군이 더 걱정할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요?
"혹시나 무슨 일이 있어도 걱정 마시란 것이와요. 아야나는 인간보다 월등히 재생력이 좋은 강한 요괴쨩이니 어떻게든 견뎌내겠단 것이와요. "
후히히 웃으며 승리의 브이를 해 보여 요 아니....이게 승리의 브이가 맞는건가? 여하튼.....
시라카와가 내민 휴대폰 화면의 대화 내용으로, 그가 타카하시의 부탁으로 부실을 방문한 것은 증명되었다. 애초에 아무도 없는 부실의 문단속을 하지 않은 것도 선도부의 실책이고. 하지만 네코바야시가 삼엄한 경계를 내려놓고 사과를 하려던 것도 잠시. 이대로 도망치면 어떻게 되냐는 어처구니없는 질문과 함께 그의 입에서 새어나는 의미심장한 웃음소리. 그에 소녀는 그를 마치 범죄자 취급하듯 노려보며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역시...'
"아뇨. 제가 선배를 따라갈 수 있을 리도 없고, 괜히 쫓아갔다가 무슨 험한 꼴을 당할 줄 알고요. 이미 선배의 학적사항은 확인했으니,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무리 없이 잡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타카하시 선배의 부탁으로 선도부에 방문하신 것은 알겠지만, 선배가 이 안에서 무얼 보고 만졌는지에 대해선 추궁의 여지가 있습니다. 타카하시 선배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협조해 주시면 좋겠어요."
자신의 상식이 이상한 것일까. 이 아가씨의 상식이 이상한 것일까. 머리를 신발장에 집어넣고 머리를 때렸지만 해칠 이가 아니라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무신이라. 상대는 신이란 말인가. 인명은 무카이 카가리. 일단 인명은 기억해둬야겠다고 그는 생각하며 이야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칠 존재로밖엔 보이지 않는데 제 상식이 이상한건가요? 아가씨."
이거... 묘하게 이 순진한 아가씨를 속여먹고 폭력으로 제압중인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는 수상쩍한 눈빛만 보였다. 진지하게 다시 관계를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니. 하지만 요괴와 신은 원래 그런 건가. 그런 생각을 번갈아가며 하는 것이 참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천칭이었다.
"인간보다 월등히 재생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목숨은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일단... 저도 조금 지켜보도록 할게요."
만일의 경우에는 무신과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무신이라고 한다면, 그야말로 무를 관장하는 신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싸워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겠으나 그럼에도 자신 역시 시라카와였다. 조금 무섭긴 하지만...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저는 카와자토를 모시는 사람이지. 무카이인지 뭔지 하는 이를 모시는 이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아가씨에게 해를 끼친다고 한다면... 도저히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선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그땐 부디 제 무례를 원망하고 탓해주세요. 아야나님."
장난이 너무 심했나. 뭔가 노려보는 느낌이 더욱 강한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묘하게 작은 고양이 같은 이가 바짝 경계하는 느낌이 들어 묘하게 귀엽다고 느낀 것 또한 사실이었다. 고양이 카페의 고양이들이 대체로 저런 느낌을 보였는데. 살짝 그런 성향인 것일까. 그런 실례적인 생각은 애써 접어 없애버리며 그는 일단 그녀가 가리키는 자리를 바라봤다. 자신이 앉아있었던 자리였다. 다시 앉아달라는 그 말에 그는 두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도망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그러니까 안심하셔도 괜찮아요. 여기서 제가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요. 후훗."
설사 나쁜 마음을 품고 무슨 짓을 하려고 해도 이런 곳에서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상대는 풍기위원. 큰일이 나도 보통 큰일이 아닐테니 반드시 자신이 모시는 카와자토 가에도 피해를 줄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니 카와자토 가를 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비겁하고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는 얌전히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저는 얼마나 기다리면 되나요? 너무 늦으면 곤란하거든요. 돌아가서 빨래, 청소, 요리를 해야해서 말이에요."
어느 정도는 기다려주겠으나, 너무 오래 기다릴 순 없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며 유우키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 그녀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그는 다시 가볍고 차분한 어투로 이야기했다.
"풍기위원 일. 힘들지 않아요? 타카하시는 요즘 말 안듣는 이들이 너무 많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하던데."
언제 한번 그 무신이라는 이를 만나볼 필요가 있겠다고 유우키는 판단했다. 물론 자신이 둘의 사이에 끼여서 이러쿵저러쿵 할 자격은 없으며,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적어도 어떤 이인지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컸다. 아야나는 저렇게 말을 하지만, 자고로 마음을 뺏기게 되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자신이 직접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며 유우키는 한숨을 약하게 내뱉었다. 일단 이 이상 무슨 말을 할 순 없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저는 아야나님을 믿지만, 그 무신이라는 분은 아직 모르겠어요. 딱히 아가씨의 교우 관계나 사적인 관계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을 생각은 없지만... 이것만큼은 제가 직접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을 유우키는 하지 않았다. 염려마라고 했으니 일단 더 이상 무슨 말을 하진 않겠으나... 그래도 며칠 조용히 지켜보긴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말을 마무리지었다.
네코바야시는 역시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협조하는 태도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얼마나 기다리면 되냐는 물음에는 손목시계를 다시 한번 바라보고 "십오 분 정도면 될 거예요."라 답하고는 시라카와에게 등을 보인 채 부실 한편으로 걸어갔다.
'빨래, 청소, 요리? 너무 늦으면 곤란하다니 요즘 세상에 무슨 집사도 아니고. 가정적인 면을 어필해서 경계심을 늦출 생각인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티포트에 홍차를 우리고 있으면, 풍기위원 일이 힘들지 않냐는 물음이 들려온다. 소녀는 뒤를 흘금 돌아보았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죠. 지각생은 기본이고 월담하는 아이들은 점점 달리기가 빨라져서 잡기가 힘들어요. 담배 같은 반입금지 물품도 압수해야 하고. 특히 체육관 뒤편의 창고 쪽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불량학생들이 제일 말을 안 들어. 학기가 지날수록 불순 이성교제도 늘어서 단속하기 골머리예요."
그렇게나 경계하더니 우는소리를 줄줄 늘어놓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멎으면, 천천히 걸어와 시라카와의 앞에 홍차가 담긴 흰 찻잔을 조심히 내려놓는 네코바야시.
적어도 자신이 카와자토 가로 가서 일을 할 시간에는 늦지 않겠다고 판단하여 유우키는 안도하며 미소를 지었다. 몇 시간이라고 한다면 학생증을 맡기고 갈 생각이었다만, 그게 아니라고 하니 그는 여유롭게 의자에 앉았고 괜히 주변을 구경하듯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옮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선도부 부실 안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볼 생각이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한숨과 함께 그녀에게서 이런저런 한탄같은 소리가 쏟아져나오자 유우키는 절로 팔짱을 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이 많겠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다 유우키는 순간 고개를 갸웃했고 그녀에게 물었다.
"불순 이성교제라고 했는데 우리 학교에 연애금지 학칙이 있는 것은 아니죠?"
연애를 하고 싶은데 그런 학칙이 있으면 어쩌지? 라기보단 그냥 그런 것이 있었나? 정도로 가볍게 묻는 것과 동시에 방금 그녀가 말한 이런저런 일을 괜히 곱씹으며 유우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만 해도 힘들 것 같네요. 특히나 일학년이잖아요? 그렇다고 한다면 잡으려고 해도 말을 안 들을 것이 뻔하고... 힘내세요.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안타깝네요.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적어도 전 책잡힐 짓은 하지 않을게요."
물론 살다보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그 정도로 이야기를 하며 유우키는 그녀가 차를 내오자 작은 감탄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잘 마실게요."
우선 마시기 전에 향을 느끼면서 그는 눈을 조용히 감았다. 고급적이 느낌은 아닐지도 모르나 향긋한 것이 꽤나 좋은 느낌이라고 유우키는 생각했다. 그러다가 조심히 잔을 들어서 한 모금. 그 모습이 꽤나 익숙했으며 잔잔한 기품이 흘렀다. 어설프게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꽤나 익숙하게 마시는 모습을 보이던 유우키는 이내 잔을 아래로 살며시 내렸다.
"어디 차인가요? 이거? 고급적인 것은 아닌 것 같지만... 가볍게 집에서 끊여서 먹기에는 좋을 것 같은데. 괜찮다면 어디서 파는지 알려줄 수 있으세요?"
붉은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 일단 나중에 천천히 찾아보면 되겠거니 유우키는 생각했다. 이름이야 어차피 명찰이 있을테니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진 않을테고. 일단 불은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이들을 싹 찾아보면 언젠간 볼 수 있겠지. 혹은 1학년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좋을테고. 찾는 방법은 무수히 많았기에 그는 여유로운 표정을 보였다.
"하하하. 사모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을 제일 좋아해야죠. 아무튼 고마워요. 아야나님."
물론 그 좋아한다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괜히 그렇게 말하며 유우키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참으로 순수하기 짝이 없는 이였기에 걱정이 들지만, 그런 이기에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유우키는 생각했다. 물론 그 무카이라는 무신을 섬길 마음은 없었지만.
끌어안는 그녀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주나 자신이 굳이 팔을 내리거나 하진 않았다. 어느 정도 안게 해준 후에 그는 그녀를 살며시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가방을 제대로 들고서 그는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저는 시라카와 유우키. 당신의 시종이니까요. 아무튼... 오늘은 저녁이 조금 늦어질테니... 방 청소라도 하면서 기다려주세요. 일단 최대한 빠르게 준비할테니까요."
우선 오이무침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그 이외의 오이요리는... 뭐가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하던 그는 일단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며 그녀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혹시라도 데이트를 하게 되면 얘기해주세요. 그 분의 취향도 말해준다면... 어느 정도 적용해서 도시락이라도 만들어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