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대체 무얼 하고 싶은 건데요? 그렇게 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온 세상의 인간을 모조리 없애버리지 그러세요? 어차피 인간은 우매한 존재니까. 언제나 기만을 달고 사는 미천한 존재니까. 이과적인 발상으로 한 말씀 올리자면, 저도 인간은 애초에 글렀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의 환경 보호를 위해서도, 다른 생명체들의 보전을 위해서도 지구환경적인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려면 자원을 아껴 쓰니 재활용을 하니 따위 아무도 듣지 않는 모조리 쓸모없는 일이고,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는 것이 그저 올바른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코바야시는 고개를 숙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핀트가 어긋났나요."
"당신, 이미 저를 불신하고 있잖아요. 입을 막고 몸을 묶어놓은 것부터. 저는 옛일의 참극에 대해 벌을 논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그저 당신이 했던 언행들이 몹시 글렀다 생각했을 뿐. 어째서 눈물 질질 짜면서 노려보았냐 묻는다면, 그건 제가 폭력을 극히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각을 보란 듯이 비춰놓고서 몰입하지 말라고 하면 너무한 처사이시겠죠. 작금의 세상에 과거에 있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 그 이전부터 수없이 많았던 전쟁들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하고 위로하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요? 저는 그런 부류는 아니에요. 그저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냥 전부 죽여버릴수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그건 쉽지않아. 그래. 목적이라 말하자면 증명이겠네. 여긴 이 가증스러운 꽃의 신을 태워버린 자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아야카미는 내 벗이 '신앙받았던' 땅이기도 하니까. 그날 나는 내 벗을 잃게한 모든 것을 벚나무의 거름으로 만들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이 땅에는 그 혈육에서 그 가증스러운 피들이 흐르지 않겠어?"
네코바야시야 이성적인 판단으로 묻는 질문이겠지만, 나는 꽤 머리가 홰까닥 한지 오래니까. 명분을 말하고자한다면 억지를 부려도 이상할 것은 없다.
"아야카미 고교는 말이지. 신도 인간도 요괴도 가면을 쓰고서 저마다 제 목적을 가지면서도 연극을 하고 있단말이야. 그 잘난 우정의 민낯이 드러났을때도 웃을수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거든. 너희들이 말하는 우정이고 신뢰라는 것이 과연 가면을 벗고도 꺾이지 않는지. 나는 계략하고, 모략하며, 이간질 할거야."
그럼에도 꺾이지않는다면, 나의 패배. 그날 겪었던 광란을 재현한다면 나의 승리. 그런 증명이다.
패배해서 단죄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그것도 즐거운 결말이다. 승리해서 결국 그것 뿐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괴로운 결말이다.
아무튼 엄청 센 신이라고. 쇠락했단들 지금에 와서도 강함만은 자부할 수 있다. 그러니 분명 옳은 말은 맞건만…… 그 기준이 저 녀석을 깨물 수 있어서라 한다면 심히 기분이 묘해진다. 무신은 저도 모르게 제 뒷머리 거세게 흩뜨리다 입을 열었다.
"무신이다. 전사戰事와 싸움, 무예야말로 내 격이니라."
숭앙에는 사실 그리 거창한 당위가 필요치 않다. 고대로부터 인간은, 혹은 무언가를 믿고자 하는 자들은 으레 허락지 않았음에도 무엇이든 우러르고자 하는 기질 있었으니. 친숙하기에, 혹은 경애하기에, 혹은 두려워하기에 신앙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선신이든 이지 없는 한갓 짐승이 되었든간에. 그러니 저 요괴가 무슨 이유로든 무신을 믿겠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말에 틀렸다 말하지 않은 것 또한 같은 까닭이다.
"……너, 자못 영특하군. 이치를 제법 바르게 볼 줄 알아."
어찌 저로서는 못 들은 체 넘어갈 수 없는 말만을 골라 꺼내는지. 그것이 괜히 괘씸하여 절로 손이 간다. 그는 검지를 뻗어 아야나의 이마 한가운데를 툭, 가볍게 밀치려 들었다. 이번만큼은 여태껏 그러했듯 은근한 짜증이나 귀찮음 묻어나지 않았다. 이 손길 구태여 형용하자면, 약간의 가상함과 칭찬의 기색 담겼다 할 수 있겠다.
"그래. 하늘 아래 모든 것들은 욕망하는 존재로서 태어났으며, 욕망은 그 자체로 그르지 아니하다. 무어라 한들 우리는 원하고 탐함으로써 살아가는 중생들이니. 하나 그 바람이 무엇을 향하는지는 중하느니라. 스스로 어떤 욕망을 추구할지 견지하며, 제 욕망에 어떤 마음이 개입하고 있는지 경계하지 않거든 우리는 삶의 고통으로부터 영원토록 벗어날 수 없으므로."
불법佛法의 설說 이르기를 중생은 탐욕貪慾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의 삼독三毒을 제거함으로 고락에 흔들리지 않는 열반에 다가갈 수 있다 하더라. 하나 우리 사는 세상은 욕망의 세계이며 욕망하는 존재로서 태어난 유정有情이 무욕을 강박하는 것 또한 바르지 않으므로, 욕망을 경계하라 함은 곧 욕망이 탐욕으로 변질하지 않도록 이끎을 뜻한다. 이와 같이 욕망은 그 자체로서 악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정도를 넘어서고 이기利己만으로 이루어진 탐심에 닿는다면 이는 곧 미혹이고 어리석음이니. 욕망은 불과 같아서 쓰기에 따라 품은 자를 불태우기도, 만인에게 온기를 베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신은, ■■■은 이치를 건너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끝내 그 위位 불태우고 부서지길 택한 신이었다. 신으로서 처음 세상을 인지했을 적부터 심중에 늘 꺼지지 않는 불이 있었다. 옳게끔 다스리고자 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신의 이지마저도 불살라서, 결국은─ 삼거화택三車火宅의 비유에서 말하기를, 탐욕과 번뇌에 눈먼 행태는 불 속에 타들어갈 처지도 모르는 채 뛰놀길 멈추지 않는 어린아이의 모습과도 같다 했던가? 하나 나는 차라리 타고난 악성에 몸 맡기어 기꺼이 불타 죽을 테다. 고락 없는 정토 따윈 당초부터 바란 적도 없다. 그렇기에 영영 금수밖에 되지 못하겠지. 신의 면에 떠오른 미소란 제법 유쾌했다.
"이해하다마다. 이 나야말로 과욕하여 자멸한 처지인 것을. 나 또한 그런 자라 한다면 네 어찌 답할 셈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