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 실수했다. 주목, 회양목, 남천, 갖가지 풀과 나무 향을 불사르는 화마는 대양마저 바닥을 드러내게 할 화기를 지녔음을 간과한 점. 제아무리 신의 이름이 지상에 추락했대도 신과 요괴의 간극은 무척이나 좁히기 어렵다는 점. 뿐만 아니지. 일이 잘못되어 돌아감을 인지한 것은 최근이나,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실 처음부터였을지도 모르겠고. 불현듯, 벼락같이 깨달았다. 돌다 못해 삼백육십도 돌아버린 미친놈한테 걸렸구나. 덫에 걸리고 만 거야. 인간에게 느꼈던 무력감과는 질 자체가 달랐다. 수조에 처넣어진 금붕어처럼 먹이마냥 던져지는 자비를 꼴딱꼴딱 먹어야 하는 신세. 허나 이대로 고개 숙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스스로가 고작 이까짓 것으로 헤엄치길 관두는 한심한 작자가 아님을 안다. 살 정도는 내어주리라, 그러나 언젠가는 뼈를 취할 터다. 푸슬 웃는 낯짝 표정 부재한 채 가만 응시한다. 욕망은 무엇이고, 탐욕은 무엇이기에 생의 기로에서 매번 제 발목을 틀어쥐는지. 매번 제게서 자꾸만 앗아가는지. 밤은 고요히 찾아오고, 파도는 삽시간에 몸을 부풀린다. 반대로 낮은 찬란하고도 화려하게, 황혼은 느릿하게 내려앉는다. 너는 그렇게 내 위로 내려앉았지. 일광에 짓눌리고 깔려죽든지 말든지, 그렇게. 뭐가 그리 즐거우니? 잔뜩 날 세우며 이 박아넣는 년 거듭 가지려는 게 이해가 안 가서. 이해하길 단념하고, 그저 제 격이 숨 막히게 뜨거워서 미쳐버린 거라고.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손아귀에 쥐여진 신의 목. 희고 매끈하다. 풀썩 꺾이면 볼만할 만큼. 당장이라도 경동맥에 초승달을 새겨주고 싶을 만큼. 힘주어 조르고, 당긴다. 죽기 싫어 죽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손아귀를 팽팽히 하며 넘어오는 숨을 받아들인다. 진득한 피가 엉긴 지저분하고 추잡스러운 입맞춤. 붉은 피가, 붉은 눈이, 붉은 빛이, 붉음이. 붉음으로 물들여지는 감각, 마비되는 이성 속에서도 달빛으로 빛나는 첨예한 에고만은 눈 감지 않는다. 가졌음 가졌고, 빼앗겼음 배로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정 여즉 꼿꼿했으니. 조였던 손힘이 풀리고, 눈매가 나릿하게 뜨인다. "줄게." 영원 같던 찰나, 순간 같던 기나긴 투쟁에서 끝끝내 토해낸 항복 선언. "허나, 언젠가 곱절로 돌려받아갈 터이니. 그게 무엇이든." 이어 선전포고. 전쟁은 이대로 끝나지 않음을, 월색 입혀진 낯으로 나지막이 고한다. 인어를 주체로 한 동화에서, 아둔한 인어는 왕자에게 차마 칼 꽂지 못해 물거품으로 돌아갔지. 그러나 하늘과 바다에 있는 내 혈족들이여, 당신들의 누이는 그리 멍청하지 않으니. 당신들이 쥐여준 은빛 칼, 언젠가 기필고 태양에 꽂아넣으리라.
"그래서, 대체 무얼 하고 싶은 건데요? 그렇게 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라리 온 세상의 인간을 모조리 없애버리지 그러세요? 어차피 인간은 우매한 존재니까. 언제나 기만을 달고 사는 미천한 존재니까. 이과적인 발상으로 한 말씀 올리자면, 저도 인간은 애초에 글렀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의 환경 보호를 위해서도, 다른 생명체들의 보전을 위해서도 지구환경적인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려면 자원을 아껴 쓰니 재활용을 하니 따위 아무도 듣지 않는 모조리 쓸모없는 일이고, 지구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는 것이 그저 올바른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코바야시는 고개를 숙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핀트가 어긋났나요."
"당신, 이미 저를 불신하고 있잖아요. 입을 막고 몸을 묶어놓은 것부터. 저는 옛일의 참극에 대해 벌을 논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그저 당신이 했던 언행들이 몹시 글렀다 생각했을 뿐. 어째서 눈물 질질 짜면서 노려보았냐 묻는다면, 그건 제가 폭력을 극히 혐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각을 보란 듯이 비춰놓고서 몰입하지 말라고 하면 너무한 처사이시겠죠. 작금의 세상에 과거에 있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 그 이전부터 수없이 많았던 전쟁들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하고 위로하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까요? 저는 그런 부류는 아니에요. 그저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요."
"그냥 전부 죽여버릴수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그건 쉽지않아. 그래. 목적이라 말하자면 증명이겠네. 여긴 이 가증스러운 꽃의 신을 태워버린 자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아야카미는 내 벗이 '신앙받았던' 땅이기도 하니까. 그날 나는 내 벗을 잃게한 모든 것을 벚나무의 거름으로 만들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이 땅에는 그 혈육에서 그 가증스러운 피들이 흐르지 않겠어?"
네코바야시야 이성적인 판단으로 묻는 질문이겠지만, 나는 꽤 머리가 홰까닥 한지 오래니까. 명분을 말하고자한다면 억지를 부려도 이상할 것은 없다.
"아야카미 고교는 말이지. 신도 인간도 요괴도 가면을 쓰고서 저마다 제 목적을 가지면서도 연극을 하고 있단말이야. 그 잘난 우정의 민낯이 드러났을때도 웃을수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거든. 너희들이 말하는 우정이고 신뢰라는 것이 과연 가면을 벗고도 꺾이지 않는지. 나는 계략하고, 모략하며, 이간질 할거야."
그럼에도 꺾이지않는다면, 나의 패배. 그날 겪었던 광란을 재현한다면 나의 승리. 그런 증명이다.
패배해서 단죄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그것도 즐거운 결말이다. 승리해서 결국 그것 뿐이라면 더할나위 없이 괴로운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