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메뉴가 아메리카노. 인기메뉴도 아메리카노. 그 말에 유우키는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아메리카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보통 이런 케이스는 둘 중 하나였다. 아메리카노가 상당히 맛이 좋다거나, 혹은 다른 메뉴들이 조금 별로라거나. 과연 여기는 어느 쪽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유우키는 류지를 가만히 바라봤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학생. 그렇다면 아야카미 고등학교의 학생일까. 얼굴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서 스쳤던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시즌 한정 메뉴라는 말이 나오자 유우키는 흥미를 보였다.
"메론라떼라..."
다른 라떼는 꽤 많이 들어봤는데 메론라떼는 또 처음 들어보는 메뉴였다. 조금 흥미가 생겼는지 그는 그것을 먹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메론라떼로요. 시즌 한정 메뉴라면 역시 그걸 먹어봐야죠. 안 그런가요?"
물론 딱 들어봐도 굉장히 힘들 것 같은 메뉴지만... 그래도 자신은 돈을 내는 손님. 이 정도 요구는 상관없겠거니 생각하며 그는 가만히 디저트도 고민을 하다가 류지에게 말했다.
"치즈 조각 케이크도 추가로 부탁해도 될까요? 그건 그렇고 저와 비슷한 학생인 것 같은데... 아르바이트? 아니면... 여기 사람?"
결국 결정된 것은 메론라떼 오늘도 메론을 썰고, 갈며 하나의 음료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다 요청하는 치즈케이크..오늘 치즈케이크가 남아있던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조금만 기다려주세...? "
손님은 나의 인적사항이 궁금한것인지 묘한 말을 꺼냈다. 이건 뭐라고 대답하는게 베스트려나. 음
" 사장님이 아버지 이십니다 "
이거면 충분하겠지.
아무튼 계산을 서둘러 끝내고, 장갑을 낀 뒤, 음료를 서둘러 만들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니 기왕 만드는 김에, 메론을 조금 더 잘라서, 슬슬 방문할 아야카에루의 메론소다도 미리 준비해두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메론라떼를 만들며 짬이 나는 틈에 메론 시럽과 탄산수를 꺼내둔 나는 다시 정신없이 라떼를 만들고, 아침에 준비해둔 조각케이크를 꺼내 접시에 예쁘게 담은 뒤. 트레이에 담아서 내려두었다.
물론 확신을 가진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빠가 사장이라고 해서 자신도 사장이 된다는 법은 없지 않겠는가. 물론 자신처럼 집안의 사명대로 살아가는 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었다. 어느쪽이건 얼굴을 알아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계산을 마치며 열심히 준비를 하는 류지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역시 아무리 봐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능숙하게 하시네요. 후훗. 고마워요."
트레이에 음료를 올리고, 치즈케이크를 예쁘게 담은 후에 올린 것을 확인한 후, 유우키는 바로 가져가지 않고 류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살며시 뒤를 돌아보다가 줄을 서는 사람이 없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파악하고 그에게 물었다.
"고등학생이에요? 왠지 저와 비슷한 나이 같아서. 아야카미 고등학교의 2학년인데... 그쪽은요?"
만약 고등학생이 아니라면... 그건 그거대로 상관없었고, 비슷한 나이라면 앞으로 친하게 지내는 것도 좋겠다고 그는 판단했다. 딱히 카페의 음료나 디저트를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인간관계를 넓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란스러움 끝에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가 휑한 교실, 역시 한 사람이나마 가져주던 관심마저 사라지니 마음이 못내 아쉽다. 어른스러운 체를 하며 옷 사이로 겨드랑이 보일 듯 머리 뒤로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교실 문을 나가던 아이의 뒷모습을 무심코 눈으로 좇고 있으면, 창밖을 지나며 마주치는 시선에 네코바야시 동공이 반짝 빛난다. 놀렸다는 듯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자그마한 소년을 바라보면서.
"그르긴 뭘 글러.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학생 인원수 맞춰 급식 준비했을 거라고. 그 귀한 야키소바 빵을 한 사람에게 두 개는 주지 않을 건데."
정말 급식 먹으러 안 가? 하는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는 또 호들갑을 떨면서 무언가를 꺼내어 얼굴 바짝 내밀어온다. 버섯을 닮은 초코 과자인가. 네코바야시는 소년이 내민 과자를 받아들기보다, "손은 씻었어?" 하고 되물으며 무릎 위에 올려둔 제 가방을 뒤적인다. 이 녀석은 우유를 몇 개나 가지고 다니는 걸까, 유통기한이 한참 남은 신선한 우유이지만 살짝 미적지근한 것을 초코송이 건네는 소년에게 되레 내밀어 보인다.
"하나 먹을래?"
하면서 네코바야시는 소년이 내민 과자를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다. 아주 약간의 거리 두기. 어느 매체에서 보았던 '태닝 양아치'를 상상하기엔 녀석의 키가 너무 작았지. 너무나도 순박한 강아지 같지. 말하는 본새만 보고 있어도 괜히 기분이 말랑말랑해져 마음이 따듯해짐을 느끼면서도, 먼저 다가가고 싶은데도 살짝 밀어내는 척을 하려던 것일 뿐이었다.
//으아아앗 정말 미안해... 어제는 갑자기 일이 있어서 말도 없이 나가버렸네... 답레는 편할 때 이어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힐링인 귀여운 히데 군....
익숙하기 짝이 없는 물기와 편안하기 짝이 없을 한기가 지금만큼은 찝찝하니 불쾌했다. 물에 탄 재 가루처럼 교묘히 섞여드는 탄내의 소치일 터다. 한 치 물러남 없고 성깔 만만찮은 것들끼리 만나니 겨우 두 번의 마주함 사이 이리도 부닥친다. 불현듯 앞으로도 죽 서로의 살을 깎아먹게 되기란 깨달음이 엄습했다. 낭청 떠는 저 치는 몰라도 자신은 불에 덴 물고기 꼴이 될 것이라고. 불건강한 관계란 몇 번이고 구축해 봤으니 새로울 것도 없다. 이 또한 그저 고와 죽겠는 성품 탓임을 알아서. 헌데 말이야⋯⋯. 대개 제 패악으로 비롯된 폐단이나 이건, 저놈 비중도 깨나 되지 않나? 말본새 한 번 저 못잖게 고약하다. 망령들을 처넣는 용광로 같은 눈만 멀거니 응시했다. 이젠 숫제 뭐하나 보자는 식이었는데, 제 뺨을 만지작거리더니 이윽고 달랑이는 파스를 떼어낸다. 턱 부근만 차단된 공기를 맞닥트려 닿아오는 온도가 달랐고, 상태도 달랐다. 가라앉았네.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알았다. 저놈 짓이라는걸. 어투는 방종하고, 태도는 방자하며, 행하는 짓들은 흉포하다. 요괴 머리통 수십을 뱉더니 예를 갖춰 보내주고, 별안간 물을 끼얹더니 살갗을 원상태로 되돌려놓는다. 머리채에 달라붙는 물기를 툭툭 털며 가만 생각했다. 얘도 퍽이나 변덕스러운 놈이라고.
"머저리가 따로 없어."
스스로에게 복수랍시고 하는 꼴이 제법 웃겨서 열 없는 웃음이 샜다. 자존심에 살짝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앙칼진 낯은 미적지근한 미소도 묘하게 비웃음처럼 보이게 했다. 물론 조소가 없었느냐 물으면 긍정하긴 요원했다. 한바탕하고 나니 정신을 놨나, 슬슬 즐겁기까지 했다. 아니, 뒤틀림은 여전한데. 뭐, 미친 적이 한두 번인가. 백팔십도 돌은 놈은 저 뿐만 아니라서, 웃기지도 않는 질문을 꽁초와 함께 내뱉는다. 가당키나 해.
"진짜 개새끼였음 묶어놓고 채찍질이나 해줬어."
비로소 한쌍을 되찾은 눈. 청보랏빛을 받치는 흰자위 일정 부근에 옅은 붉은 기가 감돌고, 눈매는 약하게 찢어졌다 새살 돋은 상흔이 자리했으며. 상처만큼이나 인격적으로도 자못 흉한 인어가 차갑게 웃으며 농조 섞인 경멸을 뱉는다.
"욕실부터. 이 비루먹을 꼴부터 치워야겠어. 설마 이대로 귀잠 하라 청할 만큼 형편없음은 아니리라 믿어."
창백한 살갗을 휘감고 맞붙어오는 교복 천을 떼어낸다. 미친 것 같긴 하나, 저리 - 물까지 끼얹고 - 되묻는 것 보면 위험하긴 대단히도 위험한가 보다 싶긴 했다.
공물은 자고로 신이나 요괴에게 바치는 것. 하지만 자신은 신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난감한 듯 웃었지만 딱히 거절하진 않았다. 슬쩍 하나를 더 올려주는데 거절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와는 별개로 아야나가 메론소다를 늘 주문한다는 말에 의아하다는 듯이 그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납득했다. 하긴, 오이소다를 만들진 않을테니까.
"그래도 이렇게 주셨으니.. 저도 하나만 알려주자면 오이소다를 만들면... 아마 아야나님은 크게 좋아할 거예요. 만들 수 있을지는 별개로 치더라도 말이죠. 오이를 정말로 좋아하거든요. 후훗. 농담이지만요. 실제로 만들어도 팔라진 않을테고."
살며시 웃음소리를 감추면서 그는 류지가 주는 정보. 학교가 끝나면 일을 한다는 말에 일단 기억하기로 마음 먹었다. 다음에 학교가 끝나면 자신도 한번 와서 어떤 이가 일하는지 보도록 할까. 그런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어 손님이 오는 모습이 보이자 그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 류지에게 대답했다.
"이 이상 붙잡으면 일하는데 방해가 되겠네요. 그럼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얘기해요. 좋은 하루 되세요.(ごきげんよう)"
이어 꾸벅 인사를 한 후, 유우키는 안 쪽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잡담의 시간은 끝났으니 이제 이 디저트와 라떼를 천천히 즐길 뿐이었다. 굉장히 좋은 향이 나는 것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류지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트레이를 바라봤다. 다음에 학교에서 보면 정식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방만한 인어의 낯짝에 손을 댄 후로도 무신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들의 학교에서 일어났단 점에선 다소 험악한 사건이라 할 수 있기도 하겠으나, 그래봐야 두 눈 멀거나 턱을 못 쓰게 되지는 않았잖은가? 무신의 입장에선 그만하면 감사해도 모자랄 만큼이나 고이 보내준 셈이었다. 류지 녀석 곁에 머무른 이래로 피 흐르는 산 것에게 험한 수 쓴 지가 얼마만인지. 거칠게 긁혀 줄줄 피 흐르던 눈으로 노려보던 눈빛을 떠올지라면, 무료함에 질렸던 기분마저도 조금은 들뜨게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조금'이라 오래 가지도 못하고. 하여 무신은 오늘도 학창 생활 보내기에 질려서 잠이라도 잘 자리 찾을 작정이었다. 저 멀리에서 중얼중얼 혼자 분주한 요괴 하나를 보기 전까지는.
무신으로서도 저 요괴는 썩 반갑지 않다. 당최 종잡을 수 없으며 귀찮게 안겨드는 것 학교에서는 잡아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귀찮은 상대 마주쳤고, 그 상대가 딴생각을 하느라 바빠 자신을 눈치채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면 으레 곤란한 일 피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숨기는 것이 보통의 사람이리라. 하지만 노상 말하였듯 무신은 '보통'도, '사람'도 아니며 저 어린 요괴를 제 쪽에서 피하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지 못한다. 그는 차라리 정면으로 쳐 버리는 쪽을 택할 성정이었고.
그 결과가 바로 이렇다.
그는 오늘도 그 괴상한 신음 내며 나가떨어지는 요괴 여전하게도 무신경한 낯으로 내려다 보았다.
후기> 유우키는 아야나와 관련된 서사가 많이 나올줄 알았는데 류지가 언급하기 전 까진 관련 서사 보단, 유우키가 류지에게 관심을 두고 풀어가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유우키의 성격 자체가 인간관계를 넓혀가고 친근한 성격인 편이라 대화하면서 즐거웠네요! 고생하셨어요 유우키주!
앗. 나에겐 후기 안 줘도 괜찮은데 말이야! 음. 개인적으로 아야나와 연관이 있긴 하지만 일상에서 아야나에 대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굳이 막 언급을 하진 않으려 하고 있어! 접점으로 이야기는 할지도 모르지만...어쨌건 유우키의 이야기는 유우키의 것이고 아야나의 이야기는 아야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아무튼 류지와는 다음에 시간이 되면 좀 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한 쪽은 요괴의 집사이고 한쪽은 신의 후손이니... 뭔가 관련으로 노고를 이야기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말이지! 고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