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그런 존재다. 그렇다면 그냥 받아들이는 녀석이 마음대로 생각하게 하는 편이 맞겠지.
“말했겠다? 뭐 틀렸다고는 생각 안하지만. 좀 더 돌려 말하는 버릇 같은 거 없어?”
아까는 되게 바른 생활 어린이 같은 느낌이었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되게 이미지가 다른걸. 요즘의 아이들은 다 이런 느낌인가? 무섭네-
“뭐야 그게. 도플갱어? 음, 게임은 뭔지 모르니까 잘 모르겠네. 그래도 하나는 알 것 같아.”
밤바람이 차다. 맥주는 역시 비어버렸지만 캔은 여전히 차가운 채로. 변한 것은 없었다. 조금 한기를 머금은 캔을 녀석의 뺨에 가져다 대면서 웃었다.
“지금 거짓말을 했구나.”
녀석의 어깨에 걸친 팔을 풀고서 조금 거리를 둔 채 자판기에 기댔다. 인공적인 빛을 등지고 최대한 안심감을 줄 수 있는 말투로. 적어도 이 아이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인지는, 싫어도 알 수 밖에 없었다.
모른다. 모르는 것은 두려운 것. 그렇기에 신을 찾는 법. 만약에 저 녀석이 나를 공격하면 어떻게 하지? 그런 하잘것없는 고민. 인간 다운 일이라서, ‘나’는 좋아해.
“불명확한 무언가에 대한 공포. 이대로 가면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뭐 그런 부류.”
깡,깡하고 비어버린 캔이 자판기에 부딪히며 신묘한 소리를 낸다. 조금 투명하고 맑은 것이 어쩐지 기원정사의 종소리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비어버린 캔을 쓰레기통 위에 올려두었다. 신기할 정도로 잘 잡힌 균형에 어디로도 떨어지지 않고. 캔은 그저 그 위에 세워진 채로 있었다.
“내가 대답해줄 수 있는 건 폭력적이지만 즉각적인 해결책과, 비폭력적이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해결책. 두 종류네. 어떤걸 듣고싶어?”
>>508 첫 만남부터 감이 왔댔지, 내가. 저놈이랑은 필경 상극일 것이라고. 이곳은 탄내가 그득한 태양신의 홈그라운드고, 공기는 건조하고, 대지는 버석이 말랐으며, 이 모든 것을 주관한 신이 목전에 있음에 스스로의 위장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가 간격을 좁혀올수록 인간보다 기본적으로 많은 수분이 휘발되어가는 듯한 감각이 증대한다. 달갑잖은 감각이다. 위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떨어졌을 땐 숫제 이까지 갈렸다. 더욱이 이 갈게 한 점은 저 격. 하필이면 상징성 하나 지독하게 확고하시다. 태양 따위 살 만큼 사셨는데 얼른 폭발이나 하실 것을. "해 닿지 않는 곳 오직 바다일진대 구태여 헛일할 필요가 있겠어. 인어가 곧 바다인 것을." 존귀하신 태양일 지어도 인어한텐 닿지 않으니, 내 언젠가 노도가 되어 그대를 집어삼키리라. 불경한 함의 그득한 발언이 사뭇 오만함을 알고 있으나 어차피 격에서 밀릴 거 입으로라도 패악질을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광견병 걸린 지네 — 무카이 카가리 — 를 맞닥트릴 줄 스미레가 어찌 예견해. 그리고 손대지 마." 희미하게 새어드는 빛마저 차단되자 안대 밑 눈가가 움찔거린다. 냉담히 대꾸하며 눈 가린 손을 찰싹, 하고 쳐내려 했다. 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 신놈, 손대는 게 몹시 빠르다. 귓전을 타고 들어오는 불경 읊는 소리와 비준되어서 퍽 배덕하다. 하기야, 신이 도덕적인 존재라는 건 편견이지(저가 아는 신들만 생각해도 말이다). 그것도 아주 잘못된. 이어 꺼낸 부적에 표정이 일변한다. 경멸, 한, 분노, 짜증 등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소거되고 의문만이 서렸다. "뭐니? 가만 불로 불사르지 않고." 인어들은 물속에서 사니 뭍으로 나간 이들 외엔 저렇게 잿더미가 될 일이 없다. 괴짜로 보이는 저 신이라면 번거로운 짓 않고 전부 다 태워 죽일 것 같았는데 뭐람? 휘날리는 재 가루에 두어 번 기침을 뱉고 나면 드물었던 의문은 전무하고 다시금 특유의 찬 인상이 드러난다. "개소리 말고 내 자리에 그대로 가져다 놔. 욕 듣는 게 취미라면 이번엔 달리해주지. 미쳤니? 목 따여 죽던, 말라죽던 죽는 건 매한가지겠지." 불교의 교리는 마음에 차나, 간간이 들리는 것은 괜찮아도 오래 있기엔 좀 그렇다. 어느 정도의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점도 그러한 대답에 한몫했다.
포옹을 받으시고 저를 용서해주시는 것이와요. 마침내 눈 앞의 어린 요괴는 작은 공 모습에서 온전한 갓파의 모습이 되었다. 제법 당돌한 말을 하며 두 팔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꽤 흥미롭기도, 귀엽기도 해 그만 웃음을 참지 못 하고 푸핫ー 하고 웃음을 터뜨려 버리는 것이다. 하필이면 크기도 껴안기 좋은 봉제인형 사이즈다 보니, 만화 캐릭터가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한동안 웃다 보니 짓궂은 마음으로 이 어린 요괴를 괴롭힐 생각은 어느새 전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아이가 안겨들려 한다면 순순히 그 품을 내어 주겠지.
"농이니라. 내가 어린아이를 잡아먹어 무얼 하겠느뇨?"
내 지금 바라는 것은 팥밥과 곧 나올 게임 신작 타이틀밖엔 없으니. 톡, 하고 눈 앞 어린 요괴의 미간 사이를 가벼이 두드리려 하며 말을 잇는다.
"허나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게야. 정말로 갓파를 잡아먹으려는 이도 있을지 어찌 알겠느뇨."
미간이 쿡 쿡 두들겨 져 요 어린아이를 잡아먹어 무얼 하겠냐고? 아니 그렇게 잡아먹힐 뻔한 게 한두번이 아니니까 그렇지!!! 이미 신에게 두 번 이나 잡아먹힐 뻔한적 있는 카와자토 아야나. 눈앞의 요괴님도 잡아먹으려 하는 줄 알고 순간 겁에 질려 있었다. 그렇지만 잡아먹지 않는다? 고 한다면 OK입니다. 후히히 하고 웃으며 바로 오토아의 품에 안기려 하는 아야나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