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디아나 그레이스. 그녀는 오전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기도회를 즐기지 못하고 줄창 성실하게 경비를 섰는가. 그렇지 않았다. 오전부터 들려오는 기도문 소리와 폐하의 쾌유를 비는 기도문이 자장가처럼 쏟아져내릴 때에는 그러하였으나, 해가 가라앉으며 놀이 지고 그 붉은 빛과 닮은 와인이 사람들의 흥과 소리를 조금씩 돋울 때 즈음에 모네는 긴긴 남색 로브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 쓰고 주머니로 산딸기 한 알, 석류 세 알, 심지어는 낮은 잔에 채워진 얕은 샴페인까지 두어 모금 슬쩍하였다. 그리하여 기사의 입에서는 달콤하고도 붉은 과일 향과 쌉싸름하면서 농염한 알코올의 향취가 어우러져 축제와도 같게 되었다.
기사는 다시, 기사로 돌아와 담벼락에 기댄체 창 하나를 바로 붙잡고 정면을 굳게 응시하였다.
-" 교대하지."
마침내 끝없는 기다림이 지나 교대할 타이밍이 오면, 기사는 후드를 신나게 벗고 두 뺨에 홍조를 띠며 낡은 천으로 둘둘 싸맨 제 머리칼을 굽이굽이 풀어낸 다음, 기다렸다는 듯 화려한 은 장신구들을 뽐내며 자연스레 정원 깊숙이 들어갈테다. 이미 그녀는 그 속의 사람들과 같은 향취를 풍겼으니. 목에 맨 스카프를 제외하고는 전혀 정갈하지 않은 태도로 창과 갑옷 등등을 지나가던 하인에게 돈 몇푼과 함께 쥐어주는 것까지 마치자 모네는 이제 영락없는 어느 영애와도 같은 몰골을 갖추었다.
그리하여 모네, 디아나, 그레이스는 이 기도회를 즐기기 전의 속죄로 가장 눈에 덜 튀는 자리에 공손한 자세로 앉아 손을 모으고 기도하였다.
" ..신이시여.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but deliver us from evil."
까맣게 내려앉은 속눈썹 위로 기도에 응답하듯 해가 저물었다. 기도를 마친 그녀는 느른한 몸짓으로 몸을 일으키다간 옆에서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는 기사의 발 맡에 난 제비꽃을 보고 허리를 숙였다.
파티의 현장에 자신이 가 봤자 분위기만 안좋게 만들 뿐이다. 프란츠는 그런 생각으로 정원의 덜 튀는 자리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이 기도는 황제의 쾌유를 비는 기도이기도 했으나, 그의 손에서 스러져간 생명을 위한 기도이기도 했다. 부디 그 혼에 안식이 있기를.
홀로 가만히 있다 보면, 프란츠는 문득 스스로의 몸에서 피 냄새가 난다는 것을 자각한다. 다른 이가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목욕을 하고, 닦아내는 것으로 피는 씻어낼 수 있으니. 하지만 누군가를 죽였다는 사실만은 씻어내지 못한다. 프란츠가 품은 고민이 핏내음이란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 옆에서 들려오는 기도문 소리에 그 쪽을 돌아보는 프란츠.
"...죄송합니다. 혹여 제 존재가 경을 불쾌하게 해 드리진 않았는지?"
스스로가 밟고 있는 제비꽃을 알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출신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여기는 기색이었다.
모네는 자신과 조금 비슷한 향이 풍기는 이를 마주한다. 향이라고 표현했을 뿐 이것은 특유의 분위기에 가까웠다.
"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군요."
지나치게 상냥하고 예의바른 자였다. 모네는 그에 맞장구라도 치듯 가볍게 목례를 하여 먼저 자신을 낮춘다. 하지만 그의 발끝이 조금씩 움직임에 따라 발밑의 제비꽃이 숨죽어가는 것에 조바심이 일어 직접적인 단어를 쓰기로 했다.
" 경의 존재는 전혀 저를 불쾌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발끝에 핀 여린 존재는 그러할 수도 있겠군요."
꽃 한송이에 심상을 얹을 처지냐. 모네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추위를 막기 위해 안쪽이 털로 제작된 두툼한 망토 아래로는 옅은 제비색의 쉬폰 셔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까만 가죽바지가 있었고. 또 그 밑으로는 검은 단화가 있었다. 그것을 한꺼풀씩 벗겨보면 단단히 메고 있는 벨트에는 커다란 초승달검이 한 자루 차여져 있었고, 또 가죽바지에 매달린 주머니 안쪽에도 던지기 쉬운 단검들이 자질구레하게, 마치 어느 이의 주머니에는 동전이 들어 쨍강거리듯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혀왔고, 그것을 닦아왔고, 또 다듬고 날을 세워 누구를 해칠 준비를 하고...
꽃을 소중히 여기는 정숙하고 여린 여인. 그렇게 인식 되었을까. 모네는 그렇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긴 소매끝을 여며 잡았다. 아름다운 꽃. 그녀는 그 말을 계속해서 되새김질 하였다. 아름다운 꽃이라. 작은 제비꽃이 그 크기를 부풀리더니 허리를 세웠다. 한 번의 밟힘에도 굴하지 않은 자주색이었다. 그러게, 아름다운 꽃은 밟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앞의 남성에게 하는 책망이 아니었다.
" ..꽃을 좋아하시나요?"
이제 모네는 그가 듣든 자리를 뜨든 그러한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듯 싶었다.
" 순진한 사랑. 꽃말이 그러하다더군요."
순진. 이곳이 가면무도회라면 그녀가 썼을 가면의 이름을 순진이라 붙일텐데. 가느다락 손가락이 제비꽃의 다섯 꽃잎을 스쳐 잎대로 내려가 그대로 힘을 주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가 제 귓가엔 들리는 듯도 하다.
" 잘 어울리나요?"
꽃받침만 조금 남기고 뜯겨나간 줄기가 덩그러니 바닥에 남았다. 그녀는 꽃을 제 귓가에 꽂았고, 손에서는 약간의 연두빛 진액과 함께 여린 냄새가 난다. 다시보니 참으로 차가운 눈매다. 오늘 뜬 가느다란 달과도 같이 가느다랗게 웃은 모네가 반바퀴 정도 돌아 몸을 기울여 쟁반 위의 와인 한 잔을 집어든다.
" 모네 그레이스라고 한답니다."
상대도 잔을 든다면 잔을 부딪히고 나서, 그렇지 않다면 혼자서 그녀는 와인을 조금 머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