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초여름에 걸쳐 따스함의 끝자락을 물어드는 아야카미 정에는 푸르른 신록이 싱그럽게 피어오르고 온 지천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다. 그중 언제나 사람이 복작한 상점가, 어려서부터 보았던 포목점 '토코요'는 사람이 오가는 것을 한 번 못 보았는데 십 년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번 해의 히나마츠리는 이미 한참 지나갔지만 왠지 전통복을 구경하고 싶다는 끌림에 한번 들러볼까, 문을 밀고 들어서면 '딸랑'하고 종이 울린다. 귀 듣기에 맑고 청량한 울림이다.
"안녕하세요."
손님이라 불러오는 점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서 주위를 둘러보면, 현 허우적대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옛 맛이 포근히 다가온다.
그중에서도 네코바야시의 눈에 들어온 것은 꽤나 묵직해 보이는 검붉은 기모노. 소녀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어여쁜 분홍머리 점원에게 묻는다.
그러고보니 유우키주 정주행 했으려나?? 대충 유우군 오기 전에는 아야나 외롭게 연못에서 지냈다는 거 이거에 대해 썰 자세히 풀자면
아야나 위로는 100년 단위로 언니오빠들이 있습니다 이 언니오빠들.......대부분 다 성년 되서 독립했습니다. 그나마 있는 미성년 형제들은 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고 집에 잘 붙어있지도 않아서 진짜 형제들 교류 없이 외롭게 지냈음 동년배 캇파 친구들? 연못에서만 지내서 그런 거 없음
사람 형상의 면면을 구분하거나 읽어내지 못하는 둔감한 체질답게도, 무신은 사람의 신장이란 측면에도 무감각한 편이었다. 본신의 형상에 비하자면 인간 기준의 장신이나 단신이나 그리 다를 것 없는 크기이기도 하고. 칩거했던 시절 너무 오랫동안 인간 탈을 벗어던진 채 지낸 탓에 인간 구분하는 능력이 감퇴하기도 했고. 결정적으론 그가 늘 심각할 수준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한 군상이라. 그 특유의 무신경함은 사람 구분에만 한하지 않아서, 어느날은 치수도 안 맞는 남의 옷을 가져오는 돌연한 사고가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한손에 세탁물 든 팩 느슨히 쥐고 털레털레 돌아와, 가져온 옷 대충 던져서 치워두려던 찰나. 문득 눈에 들어온 글자가 뜻밖에도 익숙지가 않았다. 신은 자신이 물건을 착각해 남의 것을 가져오고 말았다는 사실을 어렵잖게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이 시점에서 당장 세탁소로 돌아가 잘못 가져온 옷을 돌려주고 제 옷도 챙겼을 테지만…… 뭐, 어디 무신이 상식적인 사람처럼 굴었던 적이 있던가. 옷 따윈 대충 입으면 그만이다. 구태여 걸음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그는 멈칫했던 게 언제였냐는 결국은 세탁소 팩 째로 가져온 옷 집어던져 치워 두었다. ……남의 옷을 말이다.
그렇게 다음날이 밝았다.
옷이 커서 맞지 않는 쪽보단 작아서 맞지 않는 경우가 더더욱 곤란하다. 교복은 결국 들어맞지 않았다. 짐작지 못했던 상황은 아니라 당황은 없었다. 해서 결국 옷은 어찌 입었냐 하면 해답은 간단했다. 하의는 류지의 교복 바지를 훔치고(막 옷 갈아입으려던 류지에게서 힘으로 갈취했다.), 시원하게 풀어헤친 셔츠에, 외투는 대강 가방에 쑤셔넣어서 입지도 않았다. 그러고도 팔 부분이 도저히 들어맞질 않아 평소보다 키를 미미하게 줄이고 근육도 빼어 간신히 구색 맞춘 옷차림. 이번 해프닝이 아니고서도 평소부터 늘 불량스러운 차림으로 다닌 탓에 위화감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더란다.
교복의 원 주인과는 달리 무척이나 태연하게 잘 지내던 무신은, 난간에 팔 기대고 바람이나 맞는 한갓진 시간 보내고 있다가― 제 가명 들리자 고개를 휙 돌렸다. 기척을 느꼈기론 마찬가지라 놀란 눈치는 아니다. 바람 부는 방향이 바뀌니 훅 끼쳐 오는 진한 물비린내. 해무와 소금의 심상. 옷에서도 같은 냄새가 났기에 대뜸 저를 찾아온 용건이 무엇인지 뻔히 짐작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순순히 말 따라 준다는 보장은 못 되니. 심성 꽤나 불손하신 신께선 시큰둥히 눈썹만 치켜 올리셨다.
"맞붙고 싶은 것이라면 화응해주지."
아니, 그저 시큰둥한 것이 아니라 기다렸다는 듯 소매 걷어 올려서 주먹 쥔다. 당장이라도 주먹 나갈 것처럼. 속으론 이미 전후사정 다 짐작했으면서도 대화 이상하게 트는 짓거리에 망설임이 없다.
세상에, 저게 무슨 꼴이람. 지금 이 스미레의 옷을 저렇게 입었다는 사실에 눈이라도 감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폐목하여도 눈앞 현실이 거짓이 되는 일 없음을 명백히 알고 있는지라 한숨만 꾹 삼켜냈다. 게다가 셔츠뿐이잖아. 치마와 재킷은 어디에 둔 거야? 설마 먼지 나는 곳에 내팽개쳐둔 것은 아니겠지? 이쪽은 얼마나 깔끔하고 온전하게 가져왔는데! 물론 신장 차이 탓에 구김은 어쩔 수 없다만, 일의 발단은 저가 아니니 책무감은 부재하다. 뒤 돈 그녀를 마주하고 믿을 수 없다는 양 눈을 두어 번 깜빡인 스미레는 지체 없는 발걸음으로 성큼 다가갔다.
누가 무신 아니랄까 봐 다짜고짜 전투태세다. 품위 제로, 기품 제로, 교양 제로. 거칠고 야성적이기까지. 한쪽 눈썹을 들썩인 스미레는 검지로 걷은 소매를 가리킨다. 불쌍한 내 와이셔츠.
"있지, 온전히 돌려받을 수 있음 좋겠는데. 신장 차를 의식하고는 있어? 혹 찢어지기라도 할까 이 스미레 심장 떨리거든."
고저 만무한 어조로 뇌까리는 낯은 지극히 무미건조하다. 심장 떨리긴, 과장하는 거지. 하지만 정말 찢어지거나 한다면 수선하는 등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니 걱정은 됐다. 스미레는 살풋 질린다는 낯으로 검지 손가락을 쥔 주먹으로 옮겼다.
"이래서 무신이란……. 좀 치우지? 세상은 이제 야만 사회 아닌 문명사회이니, 그에 걸맞게 굴어야 하지 않겠어."
반신은 동물, 반신은 인간이면서 야생 바다에 사는 인어가 그리 말한다. 태생부터 모순을 떨칠 수 없는 종족, 인어는 다시금 어쩔 수 없이, 또 운명적으로 모순을 입에 담고. 우습게도 인간 같은 사고를 했다.
천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대답을 내놓으면서, 신은 조금 어색하게 웃으면서 눈을 내리감았다. 그러고 보면 한 인간의 생각을 이렇게 가까이서 귀기울여 듣는 것도 처음이다. 비록 친구 맺는 것은─ 솔직히 말해, 신이 인간의 껍질을 쓰고 인간계까지 내려왔으면 인간 학생들이 그렇게 떠드는 「친구」라는 것 한번쯤은 만들어봐야 하지 않느냐는 지극히 경박한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포부였지만, 인간 틈에 스며들고 싶은 것은 진심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인두겁을 쓰고 이렇게 있지도 않았으니까. 권력자의 향방을 이 눈에 똑똑히 담아두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그러니까아─ 알고 지내고─ 가까워지고─ 이야기 하고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오─ 맛있는 것도 먹고 말도 걸고오오─... 이렇게 하는 게 맞았었지???? 따, 딱 이렇게만 하면... 히히..."
즉시 멍청한 얼굴이 되어 무식하게 방법론만을 읊는 것을 보면 아직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기엔 한참 멀었지만.
>>802 아기올챙이 과거 무슨일이야.......? 연못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거 생각하면....진짜 내 마음 힘들다................ 아기를 혼자 두지 마........ 🥹🥹🥹 >>825 이정도 오케이야? 선 안쪽이야?!!! 다행이야~!!!!!! ;;;ㅁ;;;; (늘 지문 쓰면서 쫄리는 사람) >>828 나기주 잘자 쫀밤~ <:3
그래도 이 선배라면 어떻게든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유우키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는 없었으며, 결국엔 자기가 하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그보다 선배치고는 뭔가 제법 귀여운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며 유우키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고 살며시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제 주인이 어째서 이 선배를 은근히 괴롭히는지 잘 알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그래도 선배가 노력하면 반드시 그 결과가 따를 거예요."
그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잘할 수 있다는 듯이 확신을 가진 목소리를 냈다. 이어 그는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후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돌아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아오이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렇다면 저는 슬슬 가볼게요. 연이 있다면 또 보도록 해요. 선배."
꾸벅. 늘 하는 그 인사 자세를 취하면서 그는 살며시 뒤로 돈 후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또 다른 연이 생긴 것에 만족하며... 더 나아가 제 주인에게 조금은 자제를 해줄 것을 부탁하기로 결심하며.
/그렇다면 이렇게 막레를 줄게! 일상 수고했어! 캡틴! 아오이...귀엽다!! 너무 귀엽다!!